Friday, 14 February 2020

제임스 홀;로제타 홀; 셔우드 홀 선교사

언젠가 고국에 가면 양화진에 가 보리라
몇년을 두고 벼르던 터였다.
내 민족을 위해 복음을 전해 준 선교사님들이 잠들어 있는 그 동산이 그리웠기 때문이다.
그 중에도 꼭 보고 싶은 분의 묘지가 있었다.

1. 윌리엄 제임스 홀 선교사

나는 그분의 비문 앞에 서서
99%의 순금 목거리를 생각했다.
14k 목거리만 몸에 걸어도 진짜 금목거리처럼 아름다운데
그의 삶을 읽었던 나에겐 순금목거리만 같았다.

당신의 흉한 상처를 가려주기 위해 
100년 하고도
10년 전
어느 날,
과년한 처녀가 찾아왔다.
15세가 되도록 결혼을 못하면 문제가 있다는 조선 땅에서
16세가 넘도록 시집을 못간 처녀가 찾아왔다. 
맙소사!
그녀의 손가락은 세 개가 손에 붙어 있었다
불난 집에서 이 끔찍한 화상을 입은 것이로구나.
의사 선교사로 오지를 찾아온 홀 선교사는 
손가락을 떼어 펴 주는 수술을 성공적으로 하고 
한숨을 쉬었다.
볼상 사나운 수술자국을 피부 이식으로 덮어주고 싶으나
무지몽매한 원주민에게 설명할 길이 없었다.
그는 마침내 자신의 피부를 벗겨내어
그녀의 상처 위에 붙임으로 수술을 마쳤다.
놀란 조선 사람들은 이구동성으로 말했다.
자기 껍질을 벗겨 병자를 치료해주는 사람이라고.
온전해진 그녀의 손을 보는 사람들의 가슴마다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불붙었다.

100여 년이 지난 오늘날
이제 그 조선 사람들은 
만여 명의 선교사를 땅 끝까지 파송하고
자기들의 껍질을 벗겨 선교지 상처를 덮어주고 있다.

선교란 상대의 흉한 상처를 가려주기 위해 내 껍질을 벗기는 것이기에........ 


그가 하나님께 맡은 지경, 
평양에 전쟁이 왔다.
그리고
싸움이 끝난 지 3주가 지났어도
의사인 그의 일은 산처럼 쌓여 있었다.

"아들 셔우드가 정말 보고 싶구나 
그러나 너의 첫돌에도 난 서울에 갈 수 없다."

아빠가 부재 중인 서울의 가정에서는 
첫 생일을 맞은 아기 셔우드 앞에 진기한 물건들이 놓여있었다.
조선의 풍속대로 아이가 평생의 직업을 선택하는 장면 연출이었다.
상징을 따라 누더기 인형(거지), 책(교사), 성경(목사), 괭이(농부), 청진기(의사)가 놓여졌다.
어린 아가는 어떤 물건을 잡을 것인가?
아기 셔우드는 꼬막 손으로 청진기의 고무호스를 잡았다.
사람들은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해피 버스데이'를 불렀다.

홀 선교사가 그렇게 보고 싶어했던
부인과 아들 곁에 도착했을 때
그의 온 몸은 중병에 걸려 있었다.

"건강할 때 돌아와 아내를 만나는 게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는 이미 알고 있었지만
이제는 병이 났을 때 집에 돌아와 눕는다는 게 얼마나 편한가를 알게 되었소."

밤낮을 가리지 않고 사람을 구하러 자신을 불태우던 그는
더 이상 태울 에너지가 남아 있지 않았다.

"이제 내가 할 일은 다 끝냈다."

미국에서나 조선에서나 '아이들의 친구'였던 그는 
하나뿐인 자신의 아들과는 말 한 마디도 나누지 못한 채 영원한 작별을 고하려 하고 있었
다.

그가 마지막으로 부인에게 말하고자 애썼던 말은 이것이었다.

"내가 평양에 갔었던 것을 원망하지 마시오.
나는 예수님의 뜻을 따른 것이오
하나님의 은혜를 받았소." 

1894년 11월 24일, 석양이 물들 무렵
그는 예수님의 품에 안겨 고요히 잠들었다.
아름다운 서울 한강변 양화진에 몸을 뉘었다.
영원한 안식일에 다시 깨어날 때까지 평안히 잠자기 위해

그는 자신의 껍질만 조선인에게 벗겨 준 것이 아니었다.


2. 부인 로제타 홀 선교사 


건강한 사슴은 목이 마를 때, 시내를 찾고
배가 고플 때, 푸른 풀을 찾는다.
그러나 늘
푸른 시냇가에서만 살지 않는다.
푸른 초장만 거닐지 않는다.

그는 암벽 위를 뛰어다니고
때로 절벽과 절벽 사이를 넘나든다.

1898년 5월 1일 남편 윌리엄 제임스 홀이 사역하다 쓰러진 평양에, 그 부인인 
닥터 로제타 홀 선교사는 그가 남겨놓은 두 자녀(셔우드와 에디스)와 함께 도착했다. 
그러나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은 당시 많은 사람들의 생명을 앗아간 무서운 이질이었
다.
세 사람이 모두 이질에 걸렸지만 이제 갓 세 살이 되어 가는 어린 딸 에디스에게 그 고통은 
더욱 심했다. 여기 그의 마지막 순간을 적은 어머니의 일기를 소개한다.
5월 23일 새벽 3시 30분에 다시 고통스러워 했다. 병이 난 후 처음으로 에디스
는 안아달라고 했다. 심히 고통스러워하는 이 작은 얼굴..... . 
아침 10시 경, 나는 흰 민들레를 에디스의 손에 쥐어 주었다.
오후 3시 아이의 손과 발이 차다. 얼굴과 몸은 뜨거워 섭씨 39.5도
오후 6시 45분 아이는 쉬지 않고 숨을 물아 쉬고 메스꺼워 했다.
7시 15분 열은 40.5도
8시 25분 열은 섭씨 41도. 숨이 가쁘다. 나는 에디스를 팔에 안고 전에 낮잠 재
울 때 하던 것처럼 흔들어 주었다. 아이는 훨씬 조용히 숨을 쉰다. 만족한 것 같아 보인다. 
아이의 얼굴은 평화스러워졌고 호흡의 간격도 길어졌다. 크게 뜬눈으로 엄마를 보면서 이 
작은 영혼은 이렇게 떠나갔다.
오후 8시 40뷴. 에디스는 이 세상에 태어나게 해주신 하나님의 품으로 돌아갔다. 
닥터 홀이 우리 곁을 떠날 때, 하나님이 주신 보석 같이 귀한 에디스가 평양의 새 집에 정
착하기도 전에 우리 품을 떠난 것이다. 하나님께서 에디스를 데려갔다고 하자 그의 오빠 네 
살배기 셔우드는 첫 마디에 말했다.
"아빠가 에디스를 너무 원했기 때문에 하나님이 데려가셨을 거예요."
장미꽃들을 관 위에 얹고 아펜셀러 목사님은 성경을 읽었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그리고 말씀을 전해주었다. 
"당신의 사랑하는 딸 에디스는 지금 아빠 품에 안겨 잠들고 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재림 때, 다시 일어날 것입니다. 
당신 가족의 절반은 이미 하늘나라에 있습니다."

닥터 로제타 홀 선교사는 68세가 되기까지 43년간 우리 동족을 위해 봉사했다.
조선 처음 맹인 교육을 시작하였을 뿐만 아니라, 동대문 부인 병원(현, 이대부속병원), 경성
여자의학 전문학교(현, 고대의대) 등을 세우셨다.

나의 발로 암사슴 발 같게 하시며
나를 나의 높은 곳에 세우시며(시18:32)

우리는 닥터 로제타 홀 선교사 안에서
하나님 나라의 진정 아름다운 사슴의 의미를 만난다.


3. 아들 닥터 셔우드 홀과 그 부인 닥터 메리안 홀 선교사

아버지 윌리엄 제임스 홀 선교사도 젊은 나이에 천국 가고
그 어린 동생 에디스까지 애처롭게 죽어간 조선 땅인데 
셔우드 홀은
1893년 서울 생으로 신고되었다.

그가 조선 땅에서 자란 후
미국과 캐나다의 최고의 명문대학에서
의사 수업을 마치고
부인 의료 선교사 메리안 홀까지 데리고 다시 조선에 올 줄을 누가 알았으랴! 

무슨 권한으로 아내를 이런 벽지로 끌고 와 '고통'을 받게 하는가!

그러나 그는 황해도 해주 땅까지 왔고
1933년,
세계 최고(?)를 자랑하던 조선의 폐결핵과 싸울 구세 요양원을 처음 세운다.

믿음의 사람들 바다 건너서 헌금을 보내오고
가진 것이 없는 나라에서 될성싶지 않던 '크리스마스 실'을 이끌며
세계에서 유일하게 선교사들이 주관하는 '실' 운동, 성공시켰으니
그 땅이 얼마나 좋은 복음의 텃밭 되었으랴!

불쌍한 민족 사랑한 것도 죄라고
강점한 일제에 의해 추방당하기까지
2대에 걸쳐 희생으로 믿음을 표현한 홀 선교사 가문
박해 속에서도 의롭게 썩은 기독교의 밀알이었기에
비웃어도 30배로
시달려도 60배로
죽여도 100배로 결실을 얻어
선교 대상국이었던 이 나라가
오늘날 그 조선은 선교 강국이 되었으니

하늘보며 하나님께 감사를,
땅에서 당신 가문에 감사를 올립니다.

*** '조선회상'이란 책에서 홀 선교사 가문의 감동적인 모습을 읽고 은혜를 입은 한국민족
의 후손으로 적어보았습니다. 
크리스챤 월드에서 추수감사절 감사의 글을 부탁 받고 특히 우리에게 복음을 전해주신 선교사님들께 감사하는 의미로 '당신 가문에 감사드립니다'

짐 엘리엇과 그 사랑하는 사람들

'그리스도가 어떤 분이시기에.......   .

엘리엇과 그 친구들은
살기 등등한 아우카족에게 그 소중한 목숨을 내놓을 수 있는가?
그리고
엘리자베스 엘리엇은 그 남편을 이어 사지로 뛰어들 수 있는가?

끝내는 저들을 복음화한 그녀는 '영광의 문'이란 책에서 이런 고백을 하고 있다.

"다섯 남자들은 오래 전부터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데 아낌없이 자신을 바쳤다.
자신들이 아는 한 그들은 평범한 선교사였다.
로져는 앗슈리아족에게
짐과 에드와 피트는 키추아족에게
네이트는 비행기로 정글 전 지부를 섬기는 일에 보냄 받은 보통 선교사였다.
그들은 아우카 족이 살고 있는 집 몇 채를 발견했다.
작은 결정들이 내려지고, 그것은 더 큰 결정들로 이어졌다.
아우카족에 들어가는 문제를 놓고 간절히 기도하기 시작했다.
결국 한 남자의 개인적 선택은 중대한 고비에 이른다.
사랑하는 처자식을 둔 평범한 보통 선교사들이 생사가 달린 결단에 직면했다.
아우카 부족의 필요가 단순히 그들의 절대명령이 되었던 것이다.
그토록 하나님을 방패와 방벽으로 믿었던 그들이 왜 창에 찔려 죽도록 방치되어야 했는지,
우리들에게 그것은 최종적으로 답해질 수 없는 것이었다."

이런 사람들의 생애를 들으며 우리는 한 근본적인 질문을 갖게 된다.

'그리스도가 어떤 분이시기에 ....  .'

예수 그리스도의 가장 가까운 곳에 늘 머물렀던 수제자 사도 요한을 통해 주신 말씀이 생각난다.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는 자가 아니면 세상을 이기는 자가 누구뇨 (요일 5:5)

무겁지만 메야만 하는 것!

         아프리카 나이지리아에서 10년간 선교하셨던 로엘 케네디의 경험담입니다. 어느 날 원주민 두 명과 함께 어떤 마을로 전도하러 가던 길이었습니다. 돌무더기가 보이자 그들은 각각 무거운 돌을 한 개씩 들었습니다. 그들은 선교사님께도 무거운 돌을 하나 들라고 하였습니다.

"돌은 왜 들어야 하지요?"
"강을 건너는데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 선교사님께서는 무거운 돌을 짊어지고 가야 할 필요성을 느끼지 않았기에 그냥 나갔습니다. 곧 강에 도착하였습니다. 물이 불어 넘치고 있었습니다. 동행하던 두 사람은 무거운 돌을 메고 강에 들어섰습니다. 그들은 그 돌의 무게 때문에 떠내려가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목사님은 물살이 세서 건널 수 없었습니다. 당황하고 있는 선교사님께 그들은 소리를 질렀습니다.

"선교사님! 그냥은 강을 건널 수 없습니다. 무거운 돌을 메고 건너야 합니다. 그래야 떠내려가지 않습니다"

그때서야 그 선교사님은 무거운 돌을 메고 온 이유를 알게 되었습니다. 그는 오던 길을 다시 되돌아가서 자기가 들 수 있는 커다란 돌을 메고 와서 강을 건너기 시작했습니다. 이상한 일이었습니다. 물 속으로 들어오니 돌의 무게 때문에 몸이 떠내려가지 않을 뿐 아니라, 물의 부력 때문에 돌이 그리 무겁게 느껴지지도 않았습니다.

         연약한 우리가 이 험한 세상을 어떻게 세파에 떠내려가지 않고 천국까지 나아갈 수 있겠습니까?
         주님께서 십자가를 지시고 가신 그 길을 자신의 십자가를 지고 나아갈 때 우리는 시험의 강을 건널 수 있습니다. 우리의 십자가가 무거워 보이는 것 같지만 사실은 그 십자가 때문에 고난의 강을 헤쳐 나갈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아무든지 나를 따르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으라고 말씀하십니다. 기도가 때로 우리에게 무겁게 느껴지는 때가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기도란 십자가 덕분에 오늘까지 우리가 어려운 시험 강을 건널 수 있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마11:29-30)

Thursday, 13 February 2020

아버지만 신뢰하고 그 손에 부탁

헨리 나우웬의 '죽음, 가장 큰 선물'이란 책에 이런 이야기가 나옵니다.

'공중을 나는 로트라이히'란 공중 그네 팀과 한 주간의 여행을 하였습니다. 그를 사로잡은 것은 우아한 무용수의 공중을 날아오르는 모습이었습니다. 우아한 무용수가 공중 날기를 하고, 그를 붙잡아 주는 조우의 모습을 보면서 많은 감동을 느꼈습니다. 무용수를 부러워하는 그에게 무용수가 말했습니다.

"나는 공중날기를 할 때 나를 붙잡아 주는 사람을 전적으로 신뢰합니다. 대중들은 나를 위대한 스타로 생각할 지 모르지만, 진짜 스타는 나를 붙잡아주는 조우입니다. 그는 1초의 몇 분의 몇까지 맞출만큼 정확하게 내가 갈 자리에  있어야 하고, 내가 그네에서 길게 점프할 때, 공중에서 나를 잡아채야만 하니까요."

" 공중을 나는 사람은  아무 것도 하지 않습니다.

붙잡아 주는 사람이 모든 것을 하지요. 이것이 공중날기의 비밀입니다. 조우에게 날아갈 때 나는 그저 팔하고 손만 뻗으면 돼요. 그 다음엔 그가 나를 잡아 앞무대로 안전하게  끌어가 주기를 기다리면 되지요."

"그래요. 최악의 실수는 공중 나는 사람이 붙잡아 주는 사람을 잡으려 드는 거지요. 나는 절대 조우를 잡으려 들면 안됩니다. 나를 붙잡는 것은 조우의 임무에요. 만약 내가 조우의 손목을 잡는다면 그의 손목이 부러지거나 내 손목이 부러지고 말겁니다. 그렇게 되면 둘 다 끝장이지요.
공중날기를 하는 사람은 날기만 하고, 붙잡아주는 사람은 붙잡기만 해야 합니다. 공중날기를 하는 사람은  붙잡아 줄  사람이 자기를 위해 제 자리에 와 있다는 것을 믿고 팔을 뻗어야 합니다."

이 이야기를 하면서 헨리 나우웬은 이렇게 말합니다.

"두려워하지 마세요. 당신이 하나님의 사랑 받는 자녀라는 걸 생각하세요. 당신이 길게 점프할 때, 하나님께서 이미 그 자리에 와 계실 겁니다. 하나님을 붙잡으려고 애쓰지 마세요. 그분이 당신을 붙잡아주실 거예요. 그러니 그저 팔과 손을 앞으로 내밀기만 하세요. 하나님을 믿으세요."

이 글을 읽으면서 자꾸만 생각나는 말씀이 있습니다.

"아버지여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눅23:46)

성부 하나님께서 붙들어 주시는 모습을 생각합니다.

           성도는  오늘 세상을 떠나도 하나님 나라에서 날 붙잡아 줄 하나님을 신뢰합니다. '아버지여!' 부르며 나의 영혼을 저 하늘 나라에 계신 아버지 손에 맡기는 것이 죽음입니다.

윌리엄 J. 맥켄지 선교사님


선교사님의 집이 현지 인이 사는 집에 비하면 궁궐이더라고요.
선교사님이 식모를 둔 것도 과분한데
청소부 아줌마까지 두고 살더라고요.
그래도 되는 거예요?
너무 기가 막히고 열 받쳐서 단기 선교가 전혀 은혜가 되지 않았어요.

그러나 이런 말을 들을 때,
내겐
윌리엄 J. 맥켄지 선교사님이 생각난다.

당시 캐나다는 조선에 비하면 천국이었던
1893년 12월 12일
조선 제물포에 도착한 그는
서울을 거쳐 소래 땅으로 들어가셨던 선교사다.
조선인 옷을 입었다.
조선 음식을 먹었다.
조선집에 살았다.
동학란이 전염병처럼 돌 때도 소래 사람들 사이에 남아 전쟁으로 상한 사람들을 보살폈다.
조선 땅에 두 번 째 교회를 세웠다.
조선사람들이 수백   동안 서낭제를 지내던 바로 그 자리에.
그리고
조선 사람들과 똑같은 사람이고 싶었던 그는 일년 반만에 세상을 떠났다.
1895년 6월 22일
거의 읽어볼 수가 없을 정도로 필체가 흐려진 필체로
"예수님은 나의 유일한 희망입니다"
란 말을 남기고.
소래 사람들은 그를 보내고 "그처럼 그리스도를 닮은 사람은 없다"는 고백을 하였지만
그가 간 나이는 조선 사람들도 흔히 가던 나이었지만
그래도 그렇지 내겐 한사코 너무 아깝다.
선교지 생활 일년 반만에 세상을 떠나다니.
음식 해줄 사람의 도움을 받아서라도 건강을 돌보았으면 좋았을 걸
잔 일 해준 사람의 도움을 받아서라도 너무 무리하지 말았으면 좋았을 걸
좀 좋은 환경에 살면서라도 오래 살았으면 좋았을 걸
그렇게 해서라도 좀 오래 사역했으면 좋았을 걸

월 $50 주어 가정부 도움 받고
월 $50불 더 주어 집 정리하는 일을 맡기며
좋은 집에서 산다는 선교사 이야기를 들으며

'선교사님,
식모 두고 현지인과 함께 살면 언어 배우기에도 적합하고
일꾼 곁에 있으면 복음 전하기에 더 좋은 환경일 수 있으니
아무튼 오래 사세요.
좀 오래 살면서 사역도 많이 하세요.

맥켄지 선교사님처럼 너무 빨리 가지 마세요'

이렇게 말하고 싶어진다.

요일2:1-17 주 안에 거하는 것과 계명을 지키는 것


 
 
1. (v.1) 요한일서를 기록하는 목적은?
 
1 나의 자녀들아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씀은 너희로 죄를 범치 않게 하려 함이라
 
2. 누가 죄의 권세 아래 패배했을 때 누구를 찾아가야 합니까?(v.1b)
 
만일 누가 죄를 범하면 아버지 앞에서 우리에게 대언자가 있으니 곧 의로우신 예수 그리스도시라
 
3. 그리스도께서 죄를 위해 어떤 일을 하셨습니까?(v.2)
 
2 저는 우리 죄를 위한 화목제물이니 우리만 위할 뿐 아니요 온 세상의 죄를 위하심이라
 
4. 우리가 계명(말씀)을 지킨다는 것은 어떤 의미가 있습니까(v.3)
 
3 우리가 그의 계명을 지키면 이로써 우리가 저를 아는 줄로 알 것이요
 
5 누구든지 그의 말씀을 지키는 자는 하나님의 사랑이 참으로 그 속에서 온전케 되었나니 이로써 우리가 저 안에 있는 줄을 아노라
 
5. 우리가 계명을 지키지 않는다는 것은 어떤 의미가 있습니까(v.3)
 
4 저를 아노라 하고 그의 계명을 지키지 아니하는 자는 거짓말하는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있지 아니하되
 
6.(v.6)우리가 주 안에 거한다는 의미는 무엇입니까?
 
6 저 안에 거한다 하는 자는 그의 행하시는 대로 자기도 행할지니라
 
7. (v.9-11) 요한 사도를 통해서 전해주신 새 계명은 무엇입니까?
 
9 빛 가운데 있다 하며 그 형제를 미워하는 자는 지금까지 어두운 가운데 있는 자요 10 그의 형제를 사랑하는 자는 빛 가운데 거하여 자기 속에 거리낌이 없으나 11 그의 형제를 미워하는 자는 어두운 가운데 있고 또 어두운 가운데 행하며 갈 곳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어두움이 그의 눈을 멀게 하였음이니라
 
 
8. (12-14) 하나님의 가족에게 주신 새 계명은 다른 축은 무엇입니까?
 
9.(15-17)세상을 사랑해서는 안될 이유는 무엇입니까?
 
 
 
 
10.적그리스도는 어떤 자를 말합니까?(22-23)
 
22 거짓말하는 자가 누구뇨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부인하는 자가 아니뇨 아버지와 아들을 부인하는 그가 적그리스도니
23 아들을 부인하는 자에게는 또한 아버지가 없으되 아들을 시인하는 자에게는 아버지도 있느니라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부인하는 자
아버지와 아들을 부인하는 자
 
 
11. 어떻게 적그리스도를 극복할 수 있습니까?(24,27)
 
24 너희는 처음부터 들은 것을 너희 안에 거하게 하라 처음부터 들은 것이 너희 안에 거하면 너희가 아들의 안과 아버지의 안에 거하리라
 
기름부음(성령)의 가르치심음 받으리
주 안에 거하라
 
27 너희는 주께 받은 바 기름 부음이 너희 안에 거하나니 아무도 너희를 가르칠 필요가 없고 오직 그의 기름 부음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가르치며 또 참되고 거짓이 없으니 너희를 가르치신 그대로 주 안에 거하라
 
 
 
 
 
12.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약속하신 약속은 무엇입니까?(25)
25 그가 우리에게 약속하신 약속이 이것이니 곧 영원한 생명이니라
 
 
 
13. 하나님의 자녀들이 미혹을 당하지 않고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고 세상을 이기고 살 수 있는 길은 무엇입니까?(28)
 
영원한 생명 안에 거하는 것입니다
 
28 자녀들아 이제 그 안에 거하라 이는 주께서 나타내신 바 되면 그의 강림하실 때에 우리로 담대함을 얻어 그 앞에서 부끄럽지 않게 하려 함이라
 

요한일서 1:1-10 생명의 말씀은?


 
1. (v.1-2) 생명의 말씀은 어떤 분이십니까?
 
1 태초부터 있는
2 이 생명이 나타내신 바 된
2 영원한 생명
2 아버지와 함께 계시다가 우리에게 나타내신 바 된 자니라
 
 
2. (v.1-2) 생명의 말씀은 사도 요한과 어떤 관계에 있습니까?
 
1 우리가 들은 바요 눈으로 본 바요 주목하고 우리 손으로 만진 바라
2 우리가 보았고 증거하여 너희에게 전하노니
 
 
3. (v.3) 이 생명의 말씀에 대하여 전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3 너희로 우리와 사귐이 있게 하려 함이니 우리의 사귐은 아버지와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함이라
 
4. (v.4) 요한일서를 기록하는 이유는?
4 우리가 이것을 씀은 우리의 기쁨이 충만케 하려 함이로라
 
5. (v.5) 요한일서의 핵심메시지는 무엇입니까?
 
5 하나님은 빛이시라 그에게는 어두움이 조금도 없으시니라
 
 
6. (v.6-7) 하나님과 사귐을 가질 때 어떤 일이 우리 삶에 나타납니까?
 
7 저가 빛 가운데 계신 것같이 우리도 빛 가운데 행하면 우리가 서로 사귐이 있고 그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7. (v.8-10) 우리는 이 하나님의 사랑 앞에 어떻게 반응하여야 합니까?
 
죄 없다고 발뺌을 하든지 죄를 자백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결과는 큽니다
 
8 만일 우리가 죄 없다 하면 스스로 속이고 또 진리가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할 것이요 9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케 하실 것이요
10 만일 우리가 범죄하지 아니하였다 하면 하나님을 거짓말하는 자로 만드는 것이니 또한 그의 말씀이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하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