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iday, 11 April 2025

내 인생의 맨토

나의 인생길에 좋은 영향을 미친 스승을 멘토라 해도 된다면, 나도 자랑하고 싶은 분이 있다. ​

중학교 시절 국어 선생님! 수줍은 소년은 교단에 서신 그분을 우러러보는 것만으로 만족했다. 나는 그분 인품에 매료되어, 국어교사가 되었다. 좀 그분 슬하에 가까이 다가가서 선생님의 삶과 신앙 지도를 받을 수 있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하지만 천만 마디 말씀보다 제자를 향한 따뜻한 눈빛과 마음으로 나의 청소년 시절에 소망으로 피어나게 해주신 그런 귀인을 맨토라고 할 수 있어서 감사하다. ​ 김명혁 목사님은 나의 목회에 직간접적으로 큰 영향을 미친 분이시다. 

 목사님은 내적 신앙을 깊고 넓혀 주셨다. 청년 시절의 무 절제된 청년의 교만을 다듬어 주셨다. 마음이 가난한 자가 복이 있음을 새삼 깨달았다. 고난은 저주가 아닌 하나님의 축복일 수 있음을 아들 철원의 묘지 앞에서 눈물로 보여주셨다. 살아계신 주님의 영광! 그 나라와 의를 구하는 생각의 창을 열게 되었다. 학생단체에서 야생마처럼 뛰어다니던 나의 설익은 자아를 조심스럽게 뒤편으로 내려놓게 하신 분이 목사님이시다. 그분을 통해 받은 외적 신앙유산은 새벽기도다. 신학교 교수, 복음주의협의회 사역, 교회담임 등 다난한 업무에 힘이 드셨을 텐데, 목사님은 새벽기도를 쉬지 않으셨다. 새벽마다 교인들 이름을 불러가며 조곤조곤 기도하시곤 했다. ‘아, 목회란 새벽마다 저렇게 교인들을 위해 기도하는 사역이구나’ 생각했다. 훗날 내가 365일 새벽기도 목회를 하고, ‘새벽기도 하다가 주님 앞에 들려 올라갔으면.... .’ 하는 소원을 하게 된 것도 그분의 영향이 아닐까? 연약한 자를 향해 열린 마음을 선교의 창으로 생각한 것도 목사님 덕분이다. 장애우 송명희를 찾아가고, 북간도에 흩어진 외로운 어린이들을 돌아보고, 작은 교회를 찾아가는 걸 우선순위에 두었던 목사님! 그는 선교를 이렇게 보여주었다. 

오늘까지 밀알 장애우들을 찾아가 배우고, 북에 있는 동족 어린이들을 돌아보고, 러시아 시골 교회를 찾아가 그 필요를 생각하는 나를 평가하는 분이 있다면 그분을 닮아 시늉을 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을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