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가는 말]
신앙의 위인 루터의 생애를 소개합니다. 그는 우리 프로테스탄트들에게 신앙의 영원한 푯대를 보여준 개혁자입니다. 우리가 루터를 바로 안다면, 그는 분명 기독교의 정수를 누리고 있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대가의 생애를 압축하기가 쉽지는 않지만 인내를 가지고 끝까지 읽고 생각하시는 분에게 큰 신앙의 유익이 있을 것입니다.
1. 구원의 길을 찾아서
마틴 루터는 평범한 농부의 아들이었다. 아버지 한스는 어린 아들 루터 잠자리 곁에서 기도하였고 어머니 마가레타는 기도의 여성이었다.
법학을 공부하여 남부럽지 않은 삶을 이루어 가리라 생각하였다. 부모님이 그렇게 바랬고 자신도 그렇게 사는 것이 성공적 인생이려니 했다. 그는 고향에서 멀지 않은 Erfurt 대학생이 되었다.
그러나 1505년, 여름 날(7월) 생애에 큰 전환점이 찾아왔다. 21세의 나이로 부모님을 뵙고 학교로 향하는 중에 벼락을 맞아 땅에 나동그라졌다. (그와 함께 가던 친구가 새까맣게 타 죽었다는 이야기도 전해온다.)
"성 안나여, 살려 주세요! 수도사가 되겠습니다."
구원은 그 인생의 중대한 주제가 되었다.
그는 평소에도 심판주이신 그리스도를 두려워하던 중에 이 무서운 사건을 통해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것으로 확신하였다. 그리고 아버지의 간절한 기대를 뒤로한 채, 가장 엄격한 어거스틴 수도원으로 들어갔다.
"구원받을 사람은 시작하는 자가 아니라 끝까지 견디는 자니라."
그는 음식, 육신의 정욕, 부, 자존심 등 모두를 내려놓고 자신을 부정하며, 두려우신 분 앞에 죽은 자같이 되어 갔다.
19년의 수도사의 삶을 통해 그는 고행과 기도 순종 금식 죽음을 각오하고 거룩한 삶을 향해 걸어갔다. 하지만 수도원 생활이 그에게 구원을 주지는 못했다. 다만 그가 훗날 고백한대로 수도원 생활로 천국을 갈 수 있다면 그건 바로 자기를 두고 하는 말일 것이라고 말할 수 있었다.
루터가 어느 정도 신앙 훈련을 마친 후, 성지인 로마 방문을 통해 구원의 답을 얻고 싶었다. 그의 신앙을 확증 짓고 한 단계 넘어설 기대를 가지고 로마를 향했다. 하지만 로마 교회 신부들의 천박하고 부끄러운 모습은 오히려 루터를 환멸 속으로 몰아넣었다. 자격 미달의 로마 신부들, 믿음도 경견도 없이 남발되는 고해성사와 성찬. 거기엔 구원을 발견할 길이 없었다.
성례에 대한 불경건하고 미신적인 불경을 털어 버리기라도 하려는 듯, 루터는 그리스도께서 딛고 오르셨다는 그 빌라도의 계단마다에 입을 맞추며 엉금엉금 기어올라갔다. 한 계단을 오를 때마다 주기도문을 외우며 연옥에 계신다는 하이네 할아버지의 영혼을 구원하려 정신을 집중하였다. 그러나 거룩하다는 그 의식이 끝나도 계단 끝에 선 그의 머리 속에는 엉뚱한 의식이 싹터 올랐다. "그게 사실인 것을 누가 알지?"
이는 로마교회의 천박한 성찬예식을 보며 구원의 소망을 기대할 수 없었던 것만큼이나 그를 낙심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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