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nday, 1 March 2015

마1:1-17 예수님 족보에 담긴 한 비밀

들어가는 말

한 세무 공무원이 있었습니다. 그는 자기와 같은 세무공무원을 짐승처럼 멸시하는 사회에서 천대받고 살았습니다. 그러나 그에게는 한 가지 독특한 은사가 있었습니다. 그것은 사실을 객관적으로 정확하게 기술하는 은사였습니다. 어느날 그는 예수님으로부터 '나를 따라 오너라'는 부름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예수님 곁에 3년 가까이 머무는 동안 예수님께 대하여 보고 들은 사실에 대하여 한 권의 책을 썼습니다. 그 책은 세계 역사상 전후무후한 애독서가 되었습니다. 세계적인 작가로 알려진 세익스피어나 톨스토이와 같은 사람의 대표적인 작품들도 그가 남긴 복음서에 비교하면 1/10도 읽히지 않을 것입니다. 그의 이름은 레위라 하는 마태요, 그가 쓴 책은 마태복음입니다.
우리는 오늘부터 약 100회에 걸쳐 마태복음이 보도하는 예수 그리스도에 관하여 말씀을 듣기 원합니다.

성경을 읽으려고 했던 많은 사람들이 오늘 본문에서 책을 접곤 합니다. 신약 성경에 대한 보랏빛 환상을 가졌던 사람도 그 꿈을 접게 됩니다. 인류 최고의 책이라더라 해서 의욕을 가지고 접근하려 했던 자신의 생각이 안이한 것임을 발견하게 됩니다. '낳고'로 연결되는 40여명의 생소한 이름들에 싫증을 느끼거나 주눅들기 때문입니다.
마태복음은 소설이 아닙니다. 사람을 즐겁게 하자는 책도 아닙니다. 소설이나 사람을 즐겁게 하자는 책이었다면 오늘 우리들이 읽은 많은 사람들의 이름으로 서두를 장식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마태복음은 가깝게는 유대인을, 장기적으로는 모든 인류를 구원하자는 책입니다. 특히 예수님께 대한 무지로 인하여 메시야로 영접하지 못하고 있는 유대인들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바로 알려 주어서 구원의 메시야를 영접하게 하자고 기록된 책입니다.

1.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역사 속에 찾아오셨습니다.

우리는 마태복음, 특히 신약성경과 마태복음 서두에 해당하는 오늘 본문에서 메시야를 향한 준비를 만나게 될 것입니다.
아브라함으로부터 이어진 열 네 대에서
다윗으로부터 이어진 열 네 대에서
바벨론으로부터 이어진 열 네 대에서
우리는 줄곧 그리스도의 출현을 소망하게 됩니다.
언제 우리는 그리스도라 하는 예수님이 탄생하시는가 하는 생각을 갖게 됩니다. 그리고 이 모든 분들은 참빛 곧 세상에 와서 비추는 빛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의 역사 속에 오실 때, 딛고 오시는 데 필요한 징검다리와 같은 존재였음을 깨닫게 됩니다.
따라서 우리는 징검다리에 대하여 왈가왈부하는 것은 본서를 기록한 저자의 목적이 아닙니다. 그래서 어떤 징검돌은 그 이름조차 빼버렸습니다. 아브라함, 다윗, 바벨론 유수란 큰 징검돌을 세 개 놓고 그 사이 사이에 14개의 징검돌 이름을 적고 있습니다. 사실 정확하게 보면 그 사이 사이엔 더 많은 징검돌이 있지만, 그것은 그리 큰 관심사가 아닙니다. 그냥 사람들이 이해하기 쉽게 14X3=42란 징검돌을 보기 좋게 나열해 놓았을 뿐입니다.
중요한 사실은 오늘 여러 중요한 인물을 성경에 기록하여 두었는데, 이는 이스라엘의 인물사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그 역사에 찾아오셨다는 사실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스라엘 역사에 성육신 하신 사건은 하나님께서 인류 역사에 찾아오시고 주관하신다는 것을 보여주신 사건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역사에 찾아오시는 분이십니다. 에덴 동산에 첫사람이 범죄하였을 때, 찾아오셨습니다.
노아 시대에도 하나님께서 직접 찾아 오셔서 심판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을 찾아오시고 소돔과 고모라 심판하십니다.
발람 같은 거짓 선지자에게도 나타나셔서 그의 사술을 막으십니다.

오늘날도 우리 주님께서 인간의 역사에 찾아오시고 주관하시는 모습은 얼마든지 만날 수 있습니다.

월남 이상재 선생님께서 그를 찾아오신 예수님과 연결된 사건은 흥미진진합니다.
이 상재 선생님은 독립운동가입니다. 일제시대 대한민국의 독립을 위해 일하시다가 감옥에 갇혔습니다. 내 나라 독립을 위해 일하셨는데, 그것도 죄라고 감옥살이를 사셔야 하니 얼마나 기가 막힌 일입니까? 애국하는 일도 죄입니까? 나라를 생각해도 잠이 오지 않고, 자신의 기가 막힌 처지를 생각해도 잠이 들 수 없는 밤이었습니다. 아마 끓어오르는 분노로 인하여 잠을 이룰 수 없었을 것입니다.
핏빛 어린 그의 눈에 조그만 종이 조각 두루마리가 보였습니다. 누군가 감옥 바닥에 종이를 돌돌 말아 끼워둔 것이었습니다. 호기심으로 그는 그 두루마리를 빼서 펴보았습니다.

"또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갚으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악한 자를 대적지 말라 누구든지 네 오른 편 뺨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대며 또 너를 송사하여 속옷을 가지고자 하는 자에게 겉옷까지도 가지게 하며"

그는 이 말을 읽는 순간 말도 안돼는 웃기는 말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대로 바닥 틈새에 끼워버렸습니다. 그의 생각과는 전혀 다른 예수님의 말씀이 그의 마음을 흔들기 시작했습니다. '이건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던 것이 '이걸 누가 실천할 수 있겠는가!' 생각하게 되었고 결국 이 말씀이 옳다는 생각에 이르렀습니다. 그는 이 말씀을 통해 예수님을 만났고, 감옥과 일본을 뛰어 넘는 위대한 신앙인으로 역사에 자리매김하였습니다.

우리 하나님께서는 오늘도 우리 서머나 교회에 찾아오십니다. 우리 가정과 장래에 찾아오십니다. 그리고 크고 비밀한 일에 우리를 사용하시길 원하십니다.
이 놀라운 사랑의 하나님과 새로운 역사를 써보고 싶지 않습니까?


2. 찾아오신 하나님께서는 그 약속을 이루어 가십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에 쓰임을 받은 이 인물들은 중요한 의미를 지닙니다.
예수님께서 어느 날 갑자기 하늘에서 벼락치듯 역사에 개입되신 분이 아니란 사실을 알려주고 있거든요. 예수 그리스도는 누가복음적으로 말씀하자면 아담 때부터, 마태복음적으로 말씀하자면 아브라함 때부터 약속을 통해서 우리를 구원하려고 오시고 계셨던 구원자이심을 알려주시기 때문입니다.
창3:15에서 아담 때, 우리는 여자의 후손을 약속하시고 그분이 오셔서 뱀(사탄)의 머리를 상하게 하시겠다는 약속을 만나게 됩니다.
땅의 모든 민족이 아브라함의 씨(후손)인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구원하시겠다는 약속을 만나게 됩니다.
이 약속은 다윗에게서도 동일하게 적용되어, 땅의 모든 민족을 다윗의 씨(후손)인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구원하시겠다는 약속을 만나게 됩니다.
결국 그 약속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졌습니다.

프랑스의 잔 팔망 할머니는 90세 되던 해에 47세이던 이웃 사람과 계약을 맺었습니다. 매달 약 $500을 받고, 자신이 죽으면 살던 집을 이웃에게 주기로 계약을 맺었습니다.
그 이웃은 한두 해 사시다 가실 것으로 그런 계약을 맺었습니다. 그런데 그 할머니는 100세에도 돌아가시지 않고 , 110세, 120세에도 돌아가시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30년을 기다리던 이웃 사람은 77세에 자기가 먼저 세상을 떠났습니다. 할머니는 그 이웃 사람이 죽는 것을 보고도 2년을 더 사시다 1997년 8월 4일, 122세를 일기로 돌아가셨습니다.
이분이 기네스 북에 최고령에 오른 프랑스의 잔 팔망 할머니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사람들을 그리스도께서 오시는 역사의 징검돌로 놓으시면서, 이 징검돌을 딛고 인류의 구원자로 오실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약속을 이루어 오셨습니다.
 14대씩 3기로 나누어 그분의 형통의 흐름을 말씀해 주십니다.
  1] 아브라함에서 다윗까지 - 인내하는 백성들 가운데 하나님의 약속이 꽃피는 시기입니다.
  2] 다윗왕국에서 바벨론 포로의 시기 - 다윗 왕국의 열매를 봅니다.
  3] 바벨론에서 예수님이 오시는 시기 - 쇠퇴하고 암담한 시기이지만 메시야를 갈망합니다.
따라서 14X3=42란 42개의 징검돌은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 이전에 하나님의 약속이 얼마나 신실하게 역사 속에서 이루어져 왔는가를 증명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런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를 읽어 가면서 한 가지 아름다운 소망을 갖게 됩니다. 우리도 다시 오시는 재림의 주를 위한 징검돌로 쓰임 받고 싶다는 소망입니다.
챨스 베어드란 기독교 역사학자는 평생 역사 연구 주 깨달은 진리를 이렇게 요약했습니다.

하나님의 약속(계획과 의)는 반드시 이루어진다.
다만 하나님의 심판의 맷돌은 아주 천천히 돌아간다.
교만하지 마라. 교만하면 반드시 망한다.
어두움 속을 가는가? 어두움이 깊을수록 별은 또렷하게 보이고 별이 보이면 곧 날이 밝아온다.

누군가가 주님 오실 날을 준비하는 일에 쓰임을 받고 있다는 엄숙한 사실을 직시할 때, 이것은 매우 중요한 사건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깊은 뜻을 깨달을 때, 우리 또한 나팔소리와 함께 우리 중에 오시는 재림주의 징검돌이 될 수 있다는 소망을 갖게 됩니다.


3. 찾아 와 언약을 이루시는 하나님께 자신의 인생을 연 인생은 복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죄인이 어떻게  그런 귀한 징검돌이 될 수 있단 말인가 반문합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족보에서 만나게 되는 놀라움은 예수님께서 딛고 오신 징검돌의 종류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메시야의 혈통 속에 각양 각색의 사람들을 사용하십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결코 아름답고 깨끗한 돌만 딛고 온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만세전부터 선재하신 그리스도십니다.
온 인류를 구원하러 오신 유대인의 진정한 왕이십니다.
혈통적으로 구약에 약속하신 아브라함과 다윗의 후손입니다. 그러나 그분이 딛고 오신 징검돌을 살펴보노라면 매우 색다른 분들을 만나게 됩니다.

  물론 아브라함이나 다윗과 같은 신앙의 용장을 사용하십니다.
  그러나 평범한 인물들도 사용하십니다.
  더 놀라운 것은 아비야나 므낫세와 같이 사악한 인간들도 있습니다.
  유대인을 사용하십니다.
  그러나 이방인을 차별하지 않고 사용하십니다.

   남성과 여성을 모두 사용하십니다.

우리는 특히 네 사람의 여성을 만납니다. 그들의 공통점은 도덕적으로 세상에서 지탄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다말, 밧세바, 룻,라합과 같이 죄로 얼룩진 과거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징검돌을 부각시켜 기록하고 있습니다. 사라와 한나와 같은 여성들도 많이 있는데 그분들의 이름은 기록되어 있지 않고, 많은 사람들이 손가락질할 만한 다말, 밧세바, 룻,라합을 담담히 소개하는 것은 참으로 놀라운 일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들에게서 한 가지 공통점을 더 발견하게 됩니다. 그들은 비록 불명예스러운 죄로 얼룩 져 있는 징검돌 같지만, 하나님의 유업을 간절히 사모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다말의 표면적인 모습은 시아버지 유다를 유혹한 불의한 여성입니다. 그러나 그녀의 내면은 하나님 나라 유업을 향한 불붙는 간절함이 있습니다. 이방여인 룻의 간절한 사랑은 하나님 나라 유업 사랑과 연결됩니다. 라합의 민족 배반은 하나님 나라 유업을 향한 열정 앞에서 이해됩니다.
   여호와의 눈은 온 땅을 두루 감찰하사 전심으로 자기를 향하는 자에게 능력을 베푸시나니!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이 얼마나 깨끗한 도덕생활을 영위했는가 보다, 찾아오시고 언약을 이루어 가시는  하나님 나라 유업을 얼마나 사모하는가를 보십니다.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오신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라
하나님의 은혜는 아무리 타락한 인간이라도 찾아오십니다. 그리고 언약을 그 안에서 이루시기를 원하십니다.
이를 위해 요3:16처럼 우리 죄를 위해 독생자를 주셨습니다. 나를 찾아오셔서 약속을 이루기 원하시는 이 예수님을  생명의 구주로 모실 때, 우리는 새로운 하나님의 역사에 쓰임을 받게 됩니다.

이것이 예수님 족보에 담긴 한 비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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