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dnesday, 25 February 2015

눅11:14-28 귀신의 통치? 성령의 통치?

하나님께서는 구하는 자녀에게 가장 좋은 것을 주십니다.

몇 달 전 일입니다. 아들 위로가 어떤 아이의 스쿠터 타는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몇 번 사정사정 하여 한 두 번 타보지만 곧 돌려줍니다.
언젠가, 돌아오는 길에 위로는 저에게 물어보지도 않은 말을 합니다.
"아빠, 스쿠터는 over $100.00야."
"그래? 갖고 싶으면 하나님께 기도해라."
"아냐, 난 자전거 타면 돼!"
하지만 나는 위로가 마음에 없는 소리를 하고 있음을 압니다. 아빠인 나의 마음엔 정말 스쿠터를 사주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습니다.
'언젠가는 스쿠터를 사주어야지.........  .'
그런데, 자연스럽게 기회가 왔습니다. 그 가게엔 좀 미안한 일이지만 Closing Sale 하는 가게를 만난 것입니다. 혹시나 하고 들렀다가 그곳에서 스쿠터를 60% 할인하여 파는 것을 보았습니다. 지갑을 열어 보았습니다. 그것을 살 수 있는 돈이 있었습니다. '이 스쿠터는 하나님께서 위로를 위해 마련하신 것이구나!' 기쁨으로 살 수 있었습니다.
자동차 트렁크에 스쿠터를 실어두고 한글학교를 마치고 나오는 위로에게 물었습니다.
"위로야, 너 요즈음 찬양하는 게 좀 즐겁지 않은 모양인데. 네가 찬양 배우는 일에 참여한다면, 아빠가 선물을 하나 주겠다."
수요 찬양에 참여하지 못하는 것을 자기도 좀 미안하게 생각하던 위로는 선뜻, 그렇게 하겠다는 말을 했습니다.
위로는 그 스쿠터를 보자 기절할 듯이 기뻐했습니다. 그냥 그걸 힘차게 밟고 나갑니다. 너무 흥분하였던지 한 바탕 넘어졌습니다. 무릎에서 피가 났습니다. 그러나 얼굴 한 번 찡그리다 맙니다.
다음날, 친구 집에 가고 싶다고 보챕니다. 그 친구는 스쿠터를 가지고 있는 친구입니다. 당당히 함께 타고 싶은 것입니다. 자기도 이젠 스쿠터를 가졌다! 친구에게 빌려 타는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알려주고 싶었는지 모릅니다.

저는 아빠로서 얼마나 기뻤는지 모릅니다. 아마 위로보다 아빠인 제 마음이 더 기뻤을 것입니다. 지금도 이 일만 생각하면 너무 마음이 기쁘고 아들을 위해 나도 무엇인가를 해주었다는 기쁨이 솟아납니다.

이 사건을 통해 제가 배운 사실이 있습니다. '너희가 악할지라도 좋은 것을 자식에게 줄줄 알거든 하물며 하나님께서는 구하는 자녀에게 가장 좋은 것을 주시기 않겠느냐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자녀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기 원하신다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들은 또다른 한 가지 사실을 만납니다. 이 좋은 하나님과의 관계를 파괴하고 우리를 철저히 파괴시키려 드는 존재가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는 귀신입니다. 성경에서 '다이몬', '다이모니온'이라고 하는 귀신은 사탄의 수하에 있다가 함께 타락하여 전락한 범죄한 천사입니다.
성경에 보면, 공중의 권세 잡은 자, 사탄과 그 졸개 귀신이 있습니다. 그들이 다스리는 세계가 분명 있습니다. 그들은 가장 좋은 것을 주시 원하시는 하나님의 은혜 아래 사는 것을 결사적으로 막는 것을 사명으로 하여 살아가는 존재입니다.
우리는 귀신의 존재를 바로 이해하고, 하나님의 다스림 속으로 초대하시는 주님을 만나기 원합니다.


1. 귀신은 영으로 존재합니다.(24-26)

사도행전 19:15에서는 마술하던 스게와의 일곱 아들들이 예수님을 빙자하여 귀신을 쫓아내려 하다가
"예수도 알고, 바울도 내가 알거니와 너희는 누구냐 하며 악귀 들린 사람이 그 두 사람에게 뛰어 올라 억제하여 이기니 저희가 벗은 몸으로 집에서 도망"하였다는 말씀이 있습니다.
가나안 여자는 자기 딸이 흉악한 귀신에 들렸다고 주님께 '다윗의 자손이여 불쌍히 여기소서!'(마15:22) 간구하는 모습을 봅니다.
가버나움 회당에서도 '나사렛 예수여, 우리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우리를 멸하러 왔나이까?' 더러운 귀신들린 사람이 외치다가 '잠잠하고 나오라!'는 예수님의 말씀에 큰 소리를 지르면서 쫓겨나는  모습을 봅니다.(막1:21-26)

귀신은 존재합니다. 귀신은 사탄의 똘마니들로서 나름대로 조직이 있고 나라가 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이 없이 사는 사람들의 마음을 점령하고 삽니다. 마음에 더러운 생각을 주입시킵니다. 추악한 말과 사악한 행동을 하게 합니다. 불신의 마음 안에서 일합니다. 옛사람에 속한 마음 즉, 교만, 자기 일과 의무에서 이탈한 마음, 더러운 양심, 권위를 무시하는 마음, 우상을 섬기는 마음속에 삽니다. 술, 도박, 마약 음란물, 성적 타락, 거짓말, 도적질, 폭력, 탐심, 땅의 것만 추구하는 마음 안에서 귀신들이 열심히 일합니다.
(마10:1, 막5:13, 눅13:11, 행5:16, 행16:16)

'man of war'(군함)이란 물고기는 노메우스란 물고기와 공생관계가 있답니다. 그런데 'man of war'(군함)이란 물고기는 돛 같이 생긴 우아한 무지개 빛깔의 지느러미를 바다 위에 띄우고 치명적인 무기는 감추고 다닌답니다. 노매우스란 작은 물고기를 거느리고 다니면서 큰 물고기들이 노매우스란 물고기를 만만히 생각하고 달려들라치면, 'man of war'(군함)이란 물고기는 30m까지 뻗치는 무수한 촉수로 달려드는 큰 물고기를 순식간에 마비시키고, 노매우스와 함께 달려들어 뜯어먹는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상당히 똑똑한 것 같지만, 아닙니다. 얼마든지 사탄과 귀신에게 이용당할 수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가룟 유다가 누구입니까? 데마가 세상을 사랑하여 나를 버리고 갔다 하였습니다. 아나니야와 삽비라가 삽시간에 멸망을 당합니다.

스토코프스키(Stokovski, L. A.S)는 1949년 이래로 뉴욕 필하모니 교향악단을 지휘한 명 지휘자입니다. 그가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를 지휘하던 시절입니다.
어느날 베토벤의 오버츄어(Overture)를 연주할 때입니다. 그는 이 곡은 연주 도중 관중석 뒤쪽에서 트럼펫 솔로 연주가 나오게 되어 있다고 합니다. 스토코프스키(Stokovski, L. A.S)는 열정적인 지휘를 하였습니다. 그리고 드디어 트럼펫 독주의 시간이 되었습니다. 지휘봉을 관중석 뒤의 트럼펫 쪽을 가리켰습니다. 그런데 이게 웬 일입니까? 아무소리도 없었습니다. 지휘자는 얼굴이 새빨개지고 관현악은 실패로 끝났습니다.
트럼펫이 왜 침묵하였을까요? 사실은 이 연주의 내용을 모르고 있던 수위 아저씨가 트럼펫을 들고 관중석 뒤로 들어가는 연주자를 연주를 망치려드는 미친놈으로 생각하여 꼼짝 못하게 손을 비틀어 맨 것입니다.

정말 명 연주를 할 수 있었던 그 결정적인 순간에 무지막지한 수위에게 붙잡혀 작품을 망쳐버린 것입니다. 귀신에 잡히면, 이렇게 무력해 집니다.

본문에 보면 더러운 귀신이 한 사람을 얼마나 집요하게 망가뜨리는가를 잘 설명해주고 있습니다.

24 더러운 귀신이 사람에게서 나갔을 때에 물 없는 곳으로 다니며 쉬기를 구하되 얻지 못하고 이에 가로되 내가 나온 내 집으로 돌아가리라 하고 25 와 보니 그 집이 소제되고 수리되었거늘 26 이에 가서 저보다 더 악한 귀신 일곱을 데리고 들어가서 거하니 그 사람의 나중 형편이 전보다 더 심하게 되느니라'

여기 더러운 귀신에게 점령당한 사람이 있습니다. 귀신이 그 안에서 쉼을 얻는 귀신의 안식처가 된 사람입니다. 귀신의 집이 된 사람이었습니다. 귀신이 자유자재로 사용하는 집입니다. 그 귀신이 잠깐 외출했다가 일곱 귀신까지 초청하여 살기도 합니다.

[적용]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어두움 가운데 살았을 때, 악한 사탄의 권세 가운데 살았을 때, 귀신의 안식처요 집이었다는 사실을 아십니까? 얼마나 소름끼치는 일입니까? 우리가 귀신의 집이 되어서야 되겠습니까? 귀신의 집이란 귀신의 소굴이란 뜻입니다.


2. 예수님은 귀신을 쫓아내셨습니다.(14-22)

14 예수께서 한 벙어리 귀신을 쫓아내시니 귀신이 나가매 벙어리가 말하는지라

본문에 보면 더러운 귀신이 한 사람을 얼마나 집요하게 망가뜨리는가를 잘 설명해주고 있습니다. 사람을 벙어리 되게 합니다. 결코 쉽게 물러나지  않습니다. 더 악한 귀신 일곱을 데리고 들어옵니다.

미국 켄터키 주의 넒은 지역이 전력이 약해져 어둡게 된 적이 있습니다. 캔터키 지역의 터빈을 조사해 보았지만 뚜렷한 답이 없었습니다. 전선에 뱀 하나가 올라가 타죽어 있었습니다.

귀신의 역할이 바로 이렇습니다. 제 기능을 막아버립니다. 그러나 주님은 하나님의 손을 힘입어 귀신의 권세를 제어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귀신을 쫓아 내셨습니다. 그리고 열두 제자들에게도 귀신을 쫓아낼 권능을 주셨습니다. 이는 우리 성도들에게 큰 기쁨의 좋은 소식입니다
따라서 말 못하는 벙어리 환자를 고치셨다는 것은 깊은 의미가 있습니다. 귀신이 다스리는 영역에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임하였음을 선포하는 메시야의 표적입니다. 어두움의 권세가 다스리는 이 흑암의 땅에 하나님의 권세가 임하였음을 선포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손이 흑암의 권세를 극복하였습니다. 하나님의 통치권이 인간 사회에 임하셨습니다. '할렐루야!'

예수님의 원수들은, 그가 하나님께로 온 메시야임을 인정하지 않으려고, 귀신들을 제어한 이 능력을 `저가 귀신의 왕 바알세불을 힘입었다'고 폄하했습니다.  [바알세불(Beelizebul)은 귀신의 우두머리인 사단의 별칭으로 쓰였습니다.]
이때 주님은 무엇을 말씀해 주십니까?

20 그러나 내가 만일 하나님의 손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내는 것이면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임하였느니라 21 강한 자가 무장을 하고 자기 집을 지킬 때에는 그 소유가 안전하되 22 더 강한 자가 와서 저를 이길 때에는 저의 믿던 무장을 빼앗고 저의 재물을 나누느니라

그렇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벙어리 귀신에 들려 고통을 당하는 병자를 찾아 오셨습니다. 그들이 무엇이라고 하든 주님께서 십자가에서 고난 당하심으로 죄 값을 치루시고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셨을 때, 귀신의 무장은 해제되었습니다

'위대하고 강하신 주님, 우리 주 하나님.(X2)
깃발을 높이 들고 흔들며 왕께 찬양해
위대하고 강하신 주님, 우리 주 하나님.'

하나님의 손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내는 것이면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임하였느니라.
그리고 하나님의 능력으로 어두움의 권세 정체를 정확히 진단하고 하나님의 권세로 귀신의 능력을 제어하셨습니다. 강하신 주님께서 귀신의 권세를 묶으셨습니다. 하나님의 통치가 임한 것입니다.
주님은 어두움의 권세를 제어하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가 그 성도 안에 임하게 하십니다.
하나님의 성전으로 우리를 바꾸셨습니다. 할렐루야!

우리 주님은 얼마나 대조적이고 놀라운 분이십니까?
어두움에 빛을 주시는 주님,
악한 귀신의 집(소굴)을 변하여 성전이 되게 하시는 주님께 찬양과 영광과 존귀를 올려드립니다.


3. 우리도 하나님의 나라에 참여합시다.(27-28)

27 이 말씀을 하실 때에 무리 중에서 한 여자가 음성을 높여 가로되 `당신을 밴 태와 당신을 먹인 젖이 복이 있도소이다' 하니 28 예수께서 가라사대 `오히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 자가 복이 있느니라' 하시니라

이를 들은 한 여인이 감동하여 외쳤습니다.

`당신을 밴 태와 당신을 먹인 젖이 복이 있도소이다'

그럼요. 같은 어머니로서 마리아와 같은 어머니가 된다는 것은 얼마나 자랑스럽고 복된 것입니까? 여인이 보기에는 귀신의 모든 권세를 제어하시고 하나님 나라를 이루어 가시는 예수님만 생각하면 감사합니다. 하지만 주님께서는 그 관심을 우리를 향해 돌리십니다. 예수님께는 그 마음에 하나님의 통치를 받으면서 말씀대로 살아가는 사람이 복되게 보이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 자가 복이 있느니라.

그렇습니다. 주님께서 귀신의 권세를 제어하신 까닭은 우리 안에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시기를 원하셔서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성전이 되기를 원하셔서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지킴'으로 우리 안에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지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이런 하나님의 마음을 알고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지킴으로 하나님의 통치를 받는 사람이 福人입니다.

호머의 일리아드와 오딧세이란 작품에는 싸이러스 섬 근처에 사는 요정에 의해 수많은 뱃사공들이 바다에 뛰어들어 죽어 가는 장면이 나옵니다. 헬라의 명장 오딧세이는 선원 전원에게 초로 귀를 막도록 합니다. 자기는 몸을 돛대에 묶은 채, 고통을 이기며 그 해상을 지나갔습니다.
그러나 올훼스 장군은 자기 선원들에게 노래를 가르쳤습니다. 요정의 노랫소리보다 훨씬 더 큰 소리로 노랴를 부름으로 마의 싸이러스 섬 항해를 의기 양양하게 항해하였습니다.

어떤 형태로든지 우리는 귀신의 시험을 이겨야 합니다. 하나님의 성전인 우리 성도 안에는 주께서 임재하여 계시기 때문에 귀신의 권세가 우리 안에서 결코 쫓기게 되어 있습니다. 우린 이 사실을 믿고 담대하게 하나님 나라의 정권에 참여할 필요가 있습니다.


마무리하는 말

23 나와 함께 아니하는 자는 나를 반대하는 자요 나와 함께 모으지 아니하는 자는 헤치는 자니라

주님과 함께 한다는 말은 주님처럼 귀신의 영역에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어간다는 뜻입니다.

주일 오후가 되면 늘 거리로 나가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전도지를 나누어주는 한 그리스도인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던 어느 주일 오후,
몹시 피곤했던 그는 자기 집 서재에서 조용히 쉬고 있었습니다.
 그 때 그의 아들이 아버지에게 물었습니다.
 
   "아빠, 오늘은 왜 전도지를 나누어주러 가지 않으세요?"
   "비가 너무 많이 오고 있구나."

  그는 가볍게 대답했습니다.

   "아빠, 그럼 비오는 날에는 하나님께서 사람들을 구원하시지 않으시나요?"

  놀란 그는 아들에게 설명을 해주었습니다.

   "비가 너무 많이 내릴 때에는 거리에 사람들이 별로 없단다.
      게다가 아빠는 지금 몹시 피곤하거든."
    "아빠, 그렇다면 제가 아빠 대신 나갈까요?"

  아들의 진지한 모습을 본 그는 전도지를 주면서 다 나눠준 후
  곧장 집으로 돌아오라고 주의를 주었습니다.
  그러나 전도지를 나눠주는 데에는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마침내 소년의 손에 한 장이 남게 되어 그는 가장 가까운 집을 찾아가 문을 두드렸습니다.

     "누구지죠?"

  몹시 침통한 표정의 여인이 문을 열었습니다.
  소년은 얼굴에 큰 웃음을 띠고 공손히 말했습니다.

     "미안해요. 아줌마, 저는 아줌마께 이 전도지를 전해 드리러왔어요."

   그리고 다음 주일 예배 시간에 찬송과 기도 후 목사님께서 주님의 은혜를 간증하고 싶은 분이 계시냐고 물었습니다.
   그 때 한 여인이 일어났습니다.  그녀의 얼굴에는 평화의 빛이 감돌고 있었습니다.

      "저는 남편과 아들을 잃어버린 후 인간의 모든 고통을 맛보았습니다. 오랜 갈등 후 저는 자살을 결심했습니다.
       비가 많이 오던 주일 밤, 목을 맬 준비를 하고 있는데 갑자기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났습니다. 문을 열어보니 거기에는 생기 발랄한 작은아이가 서 있었습니다.
       그는 저에게 전도지 한 장을 주었습니다."

       "그것을 읽으면서 저는 하나님께서 저를 버리지 않으셨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 자' 한 사람이 어두움 속에서 죽어 가는 한 사람을 살린 것입니다. 그가 어린 아이일지라도 순종하면 쓰임을 받습니다.
우리 주변에는 귀신의 다스림 속에서 고통당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습니다. 죽고 싶은, 그래서 죽을 수밖에 없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 빛이 찾아오면, 죽어 가는 사람이 살아납니다.
나는 지금 이 복된 하나님의 나라 사역에 쓰임 받고 있습니까? 아니면 이에서 벗어나 어두움의 권세가 다스리는 지역에서 미로를 지나가고 있습니까?

마음에 가득한 의심을 깨치고
지극히 화평한 맘으로 찬송을 부름은
어린 양 예수의 그 피로 속죄함 얻었네.

주님의 통치를 영접하고 그 나라 전파 사역에 앞장서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주님의 말씀을 지키며 하나님의 통치를 받는 복을 받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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