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dnesday, 25 February 2015

눅11:29-36 네 등불을 밝히라!

이 세대는 죄악으로 눈이 흐려진 세대입니다. 공중의 권세 잡은 자가 다스리는 악한 세대입니다. 이로 인하여 많은 사람들은 빛을 잃고 삽니다. 어둠 속에서 죄와 사탄의 굴레에 잡혀 신음하며 사망의 길로 가고 있습니다.
이런 우리 인류에게 진정 필요한 것은 무엇입니까?
이 세대를 구원할 표적이십니다. 예수님은 이 세대를 구원할 표적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만남으로 내 몸의 등불을 밝히는 복을 받으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1. 내 몸의 등불은 무엇입니까?

네 몸의 등불은 눈이라
네 눈이 성하면 온 몸이 밝을 것이요 만일 나쁘면 네 몸도 8어두우리라

       '네 몸의 등불은 눈이라' 하셨습니다. 눈은 '관점'을 의미합니다. 이 관점에 따라 몸은 밝게도 되고 어둡게도 됩니다.
여기 최근 고국에서 활발히 일하는 역량 있는 여야 정치가의 관점을 소개합니다. 그들은 같은 재야시절 국제사면위원회에서 함께 일한 친구입니다.

7,80년대 민주화 투쟁 과정에서 이재정 의원은 앰네스티(국제사면위원회) 이사로, 이재오 총무는 앰네스티 서울지부 사무국장으로 일하면서부터 두 의원은 친분을 쌓아왔다.

지금은 여야에 달리 몸담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 인용하는 까닭은 시국을 보는 두 사람의 관점이 완전히 반대이기 때문입니다.

<한나라당 이재오 원내총무가 25, 26일 연이어 '대통령 탄핵 검토'발언을 한 것과 관련, 민주당 이재정 의원이 이재오 총무에게 보내는 공개서한>
이재정 의원은 서한에서 "이 총무가 상식을 뛰어넘는 비이성적인 궤변으로 더 이상 국민적인 신뢰감을 잃지 않도록 하기 위해, 또한 잘못된 논리를 앞장서서 수행하는 돌격대가 아닌 志士(지사) 이재오로 되돌아오기를 기대하는 간절한 심정으로 서한을 보낸다"고 밝혔다.
이재정 의원은 또 이재오 총무가 주장한 탄핵의 세 가지 이유(경제파탄, 남북관계의 정략적 이용, 언론자유 유린)에 대해 반박한 후 "백 번을 양보해도 도저히 탄핵소추의 사유가 되지 않을 이유를 가지고 대통령을 탄핵하겠다는 것은 정치공세를 넘어선 또 다른 깊은 속뜻이 있는 것은 아닌지 되묻고 싶다"고 적었다.
이재정 의원은 마지막으로 "평소의 이 총무처럼 담백하고 소탈하게 과도했노라고, 미안하게 됐다고 한마디하라"며 "이 총무의 가슴에는 우리가 예전에 함께 나누었던 통일과 민주에 대한 열정, 사회적 약자 편에 서서 투쟁하던 단심이 살아 있을 것으로 확신한다"고 당부했다.

한편 한나라당 이재오 총무도 인터넷 사이트에 <이재정 의원의 편지에 대한 답장>을 썼다. 이 총무는 27일 저녁 <오마이뉴스> 기자에게 이 답장 전문을 실어달라고 요청해왔다.
이 총무는 답신에서 "저는 아직도 옛날의 이재오이며 조국의 문제에 뜨거운 가슴을 갖고 있는 이재오"라고 밝힌 뒤 "야당정치인이 그것도 제1당의 총무가 한때나마 민주화 투쟁을 같이했던 동지가 대통령이란 그 이름으로 국가를 파탄으로 끌고 가는 것을 보고만 있는 것이 과연 동지가 원하는 옛날의 동지 이재오입니까"라고 반문했다.
그는 특히 "대통령도 법을 위반하거나 법을 자의적으로 판단하거나 초법적 정치 행위를 한다면 당연히 탄핵되어야 하고 양심있는 정치인이라면 당연히 탄핵을 거론해야 돼야 한다"면서 "그것이 곧 시대적 양심이며, 민주화 운동의 정신"이라고 말했다. (이재정 기자 235jun@ohmynews.com)

     이와 같이 사람은 자신이 처한 입장에 따라 여러 가지 다른 눈(관점)을 가지게 마련입니다. 여당의 눈(관점)이 있고 야당의 눈(관점)도 있습니다. 긍정적인 눈(관점)이 있고, 부정적인 눈(관점)도 있습니다. 감사의 눈(관점)이 있는가 하면 원망과 불평의 눈(관점)이 있습니다.
확실한 것은 어떤 눈(관점)으로 보느냐가 삶에 매우 중요한 결과를 가져온다는 것입니다.
열두 정탐꾼이 가나안 땅을 다녀와서 보여준 눈(관점)이 서로 달랐습니다.
우리 교회 홈페이지에 실린 이야기를 하나 소개합니다.

아버지와 아들이 사막을 여행하고 있었다.사막은 불같이
뜨거웠으며 아무리 걸어도 끝이 보이지 않았다. 두 사람은
목이 마르고 지쳐서 쓰러질 지경이었다. 아들은 원망에 가
득찬 눈빛으로 아버지를 바라보았다.

“이제 우리에게 남은 것은 죽음뿐입니다.더 이상 걸을 필요가 없어요.그냥 자리에 앉아서 편하게 죽는 편이 낫겠어요”

아버지는 아들을 타일렀다.

“얘야.조금만 더 가면 틀림없이 맑은 물과 마을이 나타날 거야.힘을 내렴”

그때 두사람 앞에 커다란 무덤 하나가 나타났다. 아들은 더욱 절망해 울부짖었다.

“이 사람도 우리처럼 죽은 거예요. 이젠 정말 완전한      절망이예요”

그러나 아버지의 생각은 전혀 달랐다.

“아들아, 무덤은 희망의 징조란다. 무덤은 마을이 가까이 있다는 희망의 표시다”

과연 두 사람은 곧 마을에 도착해 안식을 취할 수 있었다.

사람들은 인생을 살아가면서 가끔 ‘사막의 무덤’같은 시련을 만난다. 그러나 이것이 ‘희망의 징조’인 경우가 많다
       
이 눈(관점)이 삶에 미치는 영향은 현저합니다. 눈이 성하면, 온몸이 밝습니다. 그래서 눈이 건강해야 합니다. 우리의 눈(관점)이 어두움의 권세에 사로잡혀 흐려지지 않아야 합니다. 몸을 집으로 비유하자면, 눈은 유리창과도 같아서 이 눈(관점)이 깨끗해야 온몸이 밝습니다.
이런 면에서 볼 때, 본문 말씀은 귀신을 쫓아내신 지난주일 본문 말씀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우리의 눈을 어두움의 영에게 눈을 빼앗기지 말고 성령의 도구로 쓰임을 받기를 원하십니다. 우리 눈은 성령 세례를 받고, 충만하여야 합니다. 그래야 온몸이 밝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잠언에서 또 다른 귀한 말씀을 만납니다. '사람의 영혼은 여호와의 등불이라.'(잠20:27)는 말씀입니다.
내 몸의 등불이 눈이라면, 하나님의 등불은 내 영혼이라는 말씀입니다. 내 몸에는 눈이 중요한 것처럼, 하나님께는 내 영혼이 중요합니다. 내 영혼은 하나님의 등불이기 때문이지요.
내 영혼이 성령으로 충만하여 성령의 인도함을 받을 때, 하나님의 등불이 환히 세상을 비춥니다.


2. 어떻게 우리의 등불을 밝힐 수 있습니까?
누구든지 등불을 켜서 움 속에나 말 아래 두지 아니하고 등경 위에 두나니

등불을 밝게 하기 위해 우리가 해야할 역할이 있다는 말입니다.

1] 참된 표적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아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빛이십니다. 주님은 성도의 길이요, 진리요, 생명일 뿐만 아니라, 빛이십니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에게 들어가셔서 빛이 되십니다.

예수께서는 '표적'을 구하는 자들에게 참된 표적을 '요나의 표적'밖에 없다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요나의 표적은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의 예표적 사건이며, 요나의 '죽음과 부활'을 통하여 멸망할 니느웨 백성들이 구원을 받은 것처럼, 주님의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을 통하여 믿는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는, 이것이 바로 표적이라는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더 나은 무엇이 없는가 생각합니다.
없습니다.
예수님의 죽으심에 참여하는 일과, 죽음의 권세를 이기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영접하는 일이 전부입니다.
요나는 그러나 거부했습니다.
'그는 아닙니다! 니느웨는 아닙니다. 주님!'
니느웨의 죄악을 살펴볼 때, 모든 사람을 용서할 수 있지만 니느웨는 심판을 받아야 했습니다. 그들이 그런 죄를 지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생각은 다릅니다.
'그러니까, 니느웨는 죄인이니까 용서를 받아야 한다'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놀라운 사랑을 실현하기 위하여 요나를 사흘간 고기 뱃속에 두십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서 죽게 하시고 죽은 지 사흘만에 살리십니다.

[적용]
'그(나,너)는 아니다!'는 분이 없으십니까? 그 사람만은 심판을 받아야 해!'하는 분은 없으십니까? 이 시간 독생자를 십자가에 내어주신 하나님의 사랑을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바로 그를 위해 주님께서는 십자가에 돌아가셨습니다.
그를 당신이 손수 못박으려 하지 마세요. 예수님  한 분 죽으심으로 죗값은 충분히 치러진 것입니다.
그래도 죽어야 할 대상이 있다면, 그는 그가 아니라 바로 당신 자신입니다. 세상은 죽어야 할 대상이 나 아닌 누구라고 합니다. 하지만 성도에게는 타인 아닌 내가 바로 죽어야 할 대상입니다.
저 역시 내적인 아픔과 해결해야 할 문제가 있을 때는 정말 외치고 싶습니다. 하나님 저 사람을 변화시켜주옵소서. 기적을 베풀어주옵소서.
그런데 주님께서는 요나의 기적을 알려 주십니다. 예수님처럼 나 자신을 십자가에 못박고 부활하신 주님을 의지하는 일이 내가 할 수 있는 일의 전부라고 하십니다.
그리스도 예수의 십자가의 대속적 죽음과 사망의 권세를 이긴 부활을 통하여 죄인들이 살고, 가정이 살고, 민족이 사는 것입니다.

우리가 어떻게 우리의 등불을 밝게 할 수 있습니까?

2] 등불을 밝히려는 영적 갈망이 필요합니다.

목마른 사슴이 시냇물을 찾아 헤매이듯이 내 영혼이 등불을 밝히기 위해 주를 갈망해야 합니다. 우리 안에 계시는 등불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안에 두신 지혜를 얻기 위해 갈망해야 합니다.
시바의 여왕이 남방에서 왜 그 멀고 먼 예루살렘까지 달려왔겠습니까? 나라를 다스리면서 정말 어려운 일들이 많았을 것입니다. 그 백성을 살리기 위한 지혜가 필요했을 겁니다. 그 난제들을 해결하려는 열정으로 땅 끝에서부터 왔습니다. 인생 중 최고의 지혜자라 할 솔로몬을 찾아 팔레스타인 지역까지 왔습니다. 많은 시간과 재물을 허비하면서 찾아왔습니다. 솔로몬이 있어도 찾지 않으면 그 지혜는 자신의 것이 될 수 없습니다. 시바 여왕은 백성을 살리는 그 지혜를 자기의 것으로 삼기 위하여 많은 대가를 치르며 찾아왔습니다.
우리가 어떻게 우리의 등불을 밝게 할 수 있습니까?
우리에게 주님은 이런 시바 여왕과 같은 진리를 향한 열정이 필요합니다. 시바 여왕이 먼길을 달려온 것처럼 그런 열심으로 십자가와 부활의 지혜를 붙들어야 합니다.

우리가 어떻게 우리의 등불을 밝게 할 수 있습니까?

[3]회개가 필요합니다.

회개는 등불의 불똥을 제거하는 것과 같습니다.
니느웨 백성들은 그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하나님께서 보내주신 표적인 요나를 받아들였습니다. 그리고 그가 전한 말씀을 믿었습니다. 심판을 받아 마땅한 어두움에 속한 존재인 것을 솔직히 시인하였습니다. 그리고 왕으로부터 시작하여 백성들에 이르기까지 옷을 찢으면서 회개하였습니다. 참 빛이 되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모셔들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등불이 니느웨를 환하게 비추기 시작하였습니다. 이 일로 인하여 니느웨에는 온 백성이 구원에 이르는 복을 받게 되었습니다.

마무리하는 말

우리 교회 홈페이지에 올라있는 성정희 씨의 글을 인용합니다.

나는 20여년을 불교 신자로 오직 불법만 가까이 하고 그 법이 가장 귀한 줄로만 알았습니다. 언제나 시간이 있으면 "천수경" "반야심경" 그리고 "나무아비타불"을 입으로 말하곤 하였습니다. 10여년의 세월을 직장에 다니면서도 매달 1일과 15일에는 새벽 6시에 서울 세검정에 있는 구기동 산 중턱에 있는 승가사를 올라가 넓은 도량과 불당을 돌아보고 절하며 기원을 하면서 나의 반성도 하고 좀 더 잘 살게 해달라고 빌었습니다. 집에서도 매일 지장경을 조금씩 읽으며 자비로운 마음을 갖으려고 했으며 불가에서 말하는 대로 내 죄가 조금이나마 희석되게 빌었습니다.
불교에서는 죄는 없어지지 않고 다만 내가 선을 행할 때 넓은 그릇 속의 깨끗한 물에 소금 한 스푼을 넣으면 그 소금기가 엷어지듯 내 죄도 조금씩 엷어지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내가 죽어 환생할 때 죄 값대로 태어난다고 하여 나는 이 곳 캐나다에 와서도 '한마음 선원' 이라는 절에 몇 번이나 나가보았습니다.
...........권사님 말씀대로 성경 찾기도 하고 성경을 쓰기도 하며 시간이 나면 기도하며 1년을 지냈습니다. 그런 중에 기적 같은 일이 생겨났습니다. "일대일 제자 양육"이 끝나고 '창세기'를 배울 때 눈에 띄게 변화되는 것이 있었습니다.
작지만 진실로 하나님의 말씀이 무엇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지금 창세기를 마쳐가면서 내가 하나님의 창조가 어떤 것이고 왜 창조하셨는지를(창1:27-28) "하나님이 자기 형상대로 창조하시고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대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공중의 나는 새들과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믿고 다스시라" 하셨으니 이 땅에 생겨나서 살게 된 목적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숨쉬고 사는 것에 만족하며 살아온 나에게 이 구절이 나를 살게 해주신 목적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암으로 투병하는 남편의 상태 호전도 감사함)
(노하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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