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가는 말
이 캐나다에 와 살면서 제가 실수한 이야기 하나 하겠습니다. HWY401을 주행하면서 있었던 일입니다.
"Express is very slow. Collector is slow. Beyond next transfer."
이 표지를 보고도 저는 그냥 Express 길로 갔습니다. 표지판이 가르쳐주는 그 반대 길로 간 것입니다. 사람들을 Express 길로 많이 가지 않도록 하기 위해 이렇게 유도한다고 이렇게 넘겨짚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 표지판이 맞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정말 Express 길이 너무 정체되어 많이 고생을 했습니다.
'다음부터는 저 교통 표지판을 믿어야겠구나!'
저는 그 표지를 만든 사회를 믿지 못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 불신의 대가를 톡톡히 치렀습니다.
세상도 믿음으로 살 때와 믿음 없이 사는 때가 많은 차이가 있습니다.
왜 하나님을 믿음으로 살아야 합니까?
1. 믿음은 영적 겨울을 녹이는 햇빛과 같기 때문입니다.
[마 17:14]저희가 무리에게 이르매 한 사람이 예수께 와서 꿇어 엎드리어 가로되 [15] 주여 내 아들을 불쌍히 여기소서 저가 간질로 심히 고생하여 자주 불에도 넘어지며 물에도 넘어지는지라 [16]내가 주의 제자들에게 데리고 왔으나 능히 고치지 못하더이다
다 같은 화원의 땅이지만, 겨울엔 꽃을 피우지 못합니다. 혹한이 온 땅을 꽁꽁 얼어붙게 합니다.
겨울을 나는 나무를 바라보고 있노라면, 저 나무에선 절대로 잎이 나올 것 같지 않습니다. 영원히 얼어붙어 있을 것 같습니다. 믿음이 흔들입니다.
그런데 봄이 오면,
어느새 나무들은 그 잎사귀를 푸릇푸릇 내고
여름이 되면 열매들이 달리기 시작하고
가을이 되면 맛있는 열매들이 맺히기 시작합니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은 바로 이렇습니다.
믿을 수 있습니다.
믿음이 없는 세상에서 한 소년이 고통 당하고 있습니다.
간질로 심히 고생하여 자주 불에도 넘어지며 물에도 넘어지는지라
간질로 인하여 고통 당하는 사람을 본 적이 있습니까? 그의 인생에 있어 이 겨울의 기간은 너무 힘든 기간입니다.
그 아버지에게 있어서도 그가 당하는 겨울은 혹독했을 줄 압니다.
제자들은 고칠 수 없어서 좀 부끄러운 모습으로 서 있습니다.
우리는 어찌하여 쫓아내지 못하였나이까 ?
제자들에게도 10장에 보면, 능력을 행하던 때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산기슭에 남아 있던 아홉 제자들은 실패로 인하여 부끄러움을 당하고 있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그들에게 귀신을 극복하는 능력을 주셨지만, 그 능력은 더 이상 그들 안에서 역사하고 있지 않았습니다(10:8). 왜 아무런 능력을 행할 수 없었을까요?
종교 지도자들은 그 난감한 상황을 오히려 비웃고 있습니다.
혹한의 바람이 부는 꽁꽁 얼어붙은 겨울상황입니다.
그 원인을 주님께서는 그들이 믿음이 없기 때문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아들은 마가복음 9:14에 보면, 벙어리 귀신들렸다고 말씀하십니다. 귀신이 다스리고 있습니다.
제자들의 마음 또한, 죄가 그 내면을 다스렸기 때문입니다. 아마도 그들은 다른 세 제자들이 예수님과 함께 산에 올라갔기 때문에 시기했을는지 모릅니다. 은밀한 죄가 그들에게서 능력을 소멸했을지 모릅니다. 그
서기관들의 마음에도 이웃의 실패를 즐거워하는 영적 겨울이 와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어떻게 이 인간 겨울을 어떻게 극복하기 원하십니까?
믿음의 훈풍으로 겨울을 극복하기 원하십니다.
[20]가라사대 너희 믿음이 적은 연고니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만일 믿음이 한 겨자씨만큼만 있으면 이 산을 명하여 여기서 저기로 옮기라 하여도 옮길 것이요 또 너희가 못할 것이 없으리라
믿음의 훈풍이 겨자씨만큼이라도 불어올 때, 겨울은 견딜 수 있습니다.
지난 주 금요일 밤, 저는 장례식에 급히 다녀와야 했습니다. 금요 기도회가 있는 밤인데, 우리 교회에 탁구대를 들여놓고 운동하러 오신 분들에게 문만 잠깐 열어주고 장례식 장으로 달려갔습니다. 그런데 가신 그 권사님의 마지막이 평안이었다고 증언했습니다. 그리고 그 사위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장모님께서 믿음으로 평안하게 세상을 떠나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믿음은 죽음의 권세까지도 잠잠하게 합니다.
50주년 기념관과 베다니 홀은 영락교회가 자랑하는 곳이었습니다. 담임 목사님은 손님들이 오면 그곳에 데리고 가서 자랑을 하였답니다. 그런데 바로 그곳에서 사고가 나서 한 분(이원형 집사)이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몇 사람(김영채 장로 등)이 부상을 하는 사고가 났답니다. 교회가 얼마나 당황했겠습니까? 그러나 믿음이 그 절대절명의 위기 가운데 있는 교회를 평온함 가운데 인도하고 있습니다. 만일에 사회에서 그런 일이 일어났다면 벌써 굉장한 혼란이 일어났을 것입니다.
하나님을 가장 기쁘시게 하는 일이 무엇인 줄 아십니까? 성도들이 믿음으로 살아가는 일입니다.
하나님을 가장 견딜 수 없게 하는 일이 무엇인 줄 아십니까? 하나님의 백성들이 믿음 없이 사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11장 6절에는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자기를 찾는 자에게 상주시는 것을 믿어야 할지니라
믿어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다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살 때, 하나님만 기쁘시게 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실 믿음으로 살 때, 우리 자신의 인생이 행복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자녀의 행복은 믿음에 달려 있기 때문에 주님께서는 우리들에게 믿음으로 살라고 말씀하십니다.
왜 믿음으로 살아야 합니까?
2. 패역한 세대가 치료되기 때문입니다.
[17]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믿음이 없고 패역한 세대여 내가 얼마나 너희와 함께 있으며 얼마나 너희를 참으리요 그를 이리로 데려오라 하시다 [마 17:18]이에 예수께서 꾸짖으시니 귀신이 나가고 아이가 그때부터 나으니라
보이는 육신의 세계가 실존하는 것처럼, 보이지 않는 영적인 세계도 실존합니다.
우주계가 실존하는 것처럼, 성경에 보면, 천국(하나님 나라)아 실존합니다.
라파엘(Raphael)이란 화가는 마태복음 17장에 있는 내용을 그림으로 표현하였습니다. 한 쪽에는 변화산에서 변형된 예수님이 모세와 엘리야와 함께 이야기하고 있는 것을 바라보고 있는 제자들의 모습을 그렸으며, 다른 한쪽에는 산밑에서 식은땀을 흘리면서 전전긍긍하고 있는 제자들의 모습을 그렸습니다. 이 그림은 프랑스의 루브르 박물관에 가면 볼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지성소(휘장)로 상징이 되는 산 위의 세계가 있었습니다.
그곳엔 하나님의 임재가 있었습니다.
[히 10:19]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 [20] 그 길은 우리를 위하여 휘장 가운데로 열어 놓으신 새롭고 산 길이요 휘장은 곧 저의 육체니라
예수님께서는 근본 하나님이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성부 하나님이 계시는 천국이 본향이십니다.
빛나고 높은 보좌와 그 위에 앉으신
그 얼굴 영광 광채가 해같이 빛나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좋은 천국, 아버지 집을 떠나 사람들 사이로 성육신하셨습니다. 베들레헴 말구유까지 내려오셨습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독려하며 천국의 형체가 빛나던 산에서 내려 오셨습니다.
그곳은 영문 밖으로 상징되는 산아래 세상은 아직 믿음이 없는 패역한 세대였습니다. 어두움의 권세 아래 머물러 있었습니다. 공중의 권세 잡은 자, 사탄이 역사하고 있는 세상의 특징은 바로 불신입니다. 믿음이 필요한 인생의 골짜기입니다.
주님께서는 그 흑암의 땅에 믿음을 심기 원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영문 밖으로 나아가셨습니다.
그곳, 영문 밖에서 십자가에 매달리셨습니다.
"휘장안"과 "영문 밖"은 이 패역한 세대에 믿음을 주기 위한 필수적인 두 가지 요소입니다(히 10:19-22/히 13:13).
이 두 세계는 상반되어 보이는 세계입니다.
산 위의 세계는 하나님의 영광이 있고, 다스림이 있는 지성소와 같은 곳입니다.
그러나 산 아래 세계는 불신이 팽배한 패역한 영문 밖의 세계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두 세계를 사셨습니다. 그리고 우리 신앙인들에게 이 두 세계를 다 보여 주십니다.
프레이지어 선교사란 분이 있었습니다.
이스수 족 선교사입니다.
어디가서 복음을 전하는 것이 좋을까요?
오전에는 남 이스수 마을을 위해 기도하라.
그리고 오후에는 북 이스수족의 전도하여라.
깨달음이었습니다.
몇 년을 그렇게 하였습니다.
어느날 남쪽 방언을 하는 이스수 족 한 사람을 만나 전도하였습니다. 복음 전하는 방법을 가르쳐 남으로 보냈습니다.
그리고 10여년이 지났습니다.
남 이수스 족을 방문했더니 수천 명이 믿고 있었습니다. 북의 수십 배였습니다. 이 열매는 어떻게 된 것입니까?
휘장 안에 계시는 주님께서 휘장 안에 거하는 그 백성에게 이 놀라운 열매를 주시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그러나 영문 밖으로 주님을 따라 우리는 나아가야 합니다.
믿음은 열매를 가져옵니다.
왜 제자들에게 열매가 없었습니까?
믿음이 없고 패역한 세대이기 때문입니다.
믿음이 없고 패역한 세대한 하나님의 통치 밖의 세대란 의미입니다. 사탄이 다스리시는 세대를 의미합니다.
그런 곳에 열매를 기대할 수 없습니다. 믿음이 없기 때문입니다.
내 인생은 지금 어느 곳에 머무르고 있습니까?
삶에 너무 초라함을 발견하신 적은 없나요?
휘장 안에서 주님의 임재를 만나시기 바랍니다. 믿음을 내 삶의 원리로 받아들이시길 바랍니다.
그러나 영문 밖으로 주님의 십자가를 따라 가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을 믿는 삶에 열매가 있습니다.
왜 믿음으로 살아야 합니까?
3. 산 같은 사탄의 권세가 옮겨질 수 있습니다.
[19]이 때에 제자들이 종용히 예수께 나아와 가로되 우리는 어찌하여 쫓아내지 못하였나이까 [20]가라사대 너희 믿음이 적은 연고니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만일 믿음이 한 겨자씨만큼만 있으면 이 산을 명하여 여기서 저기로 옮기라 하여도 옮길 것이요 또 너희가 못할 것이 없으리라
산은 비유적 개념입니다. 이 세상에서 이산을 명하여 저기로 옮기라 한 사람이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도 그런 일을 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렇다고 예수님께서 틀린 말씀을 하신 것은 더욱 아닙니다.
산은 인간에 늘 존재하는 사람이 할 수 없다고 생각되는 일을 의미한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힘으로 되지 아니하며 능으로 되지 아니하는 일입니다.
오직 하나님의 신으로 되는 일입니다.
큰 산아 네가 무엇이냐? 네가 스룹바벨 앞에서 평지가 되리라.
얼마 전, 고국에서 오신 분의 말씀을 들으니, 요즈음 한국인들은 소고기나 닭고기를 먹지 않기 때문에, 애꿎은 돼지만 죽어난다며 씁쓸한 웃음을 나눈 적이 있습니다. 그 광우병의 근원이 캐나다가 아니냐는 이론도 등장하는 모양인데 이곳 캐나다 사람들은 오히려 그렇게 설레지 않고 태연하게 먹는 사람이 대부분입니다. 그런데 우리 고국 사람들은 난장판이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 원인이 무엇일까 요? 당연히 믿음 문제입니다.
우리 한국인들에게 필요한 것은 정치를 잘하는 것도 중요하고, 경제 부흥도 중요하지만 믿음을 회복하는 일이 중요한 일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우리는 불신풍조가 팽배한 사회에서 성장했습니다. 믿음이 없는 세상은 믿을 수 없다는 병든 사고가 우리 안에 침투해 있습니다.
믿고 싶은 데 믿을 수 없다고 합니다.
믿어야 하는 데 믿어지지 않는다고 합니다.
요즈음 한국에서는 '실미도'란 영화가 선풍적인 흥행을 기록하고 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박정희 대통령을 암살하려고 30여명의 공비들이 청와대를 향해 진격하였다가 김신조씨 외의 모든 사람이 죽었던 일이 있습니다. 이에 보복 차원에서 계획하였던 684부대의 이야기입니다.
‘작전명 ‘오소리’. 임무는 김일성 암살. 작전 성공시는 사형 취소 및 잔형 면제, 그러나 실패 시는 자폭할 것.’
최근 북파 공작원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 ‘실미도’가 선풍적인 인기를 모으고 있는 가운데 당시 684부대(1968년 4월 창설됐다고 해서 붙은 이름) 훈련교관이었던 아현성결교회 양동수(54·영등포고 미술교사) 장로는 요즘 여러 곳에서 문의를 받느라 바쁜 하루를 보내고 있다.
1971년 8월 23일 오전 6시 난동사건 당일,현장에서 극적으로 살아난 6명의 기간병 중 1명인 양 장로는 제대 후 실미도 사건의 후유증으로 아직도 목이 아프고 어깨가 눌리는 듯한 느낌을 갖고 있다. 양 장로는 당시 실미도 684부대에서 당시 상병(위장계급은 하사)으로 태권도교육(당시 태권도 3단)을 맡아 일했고 사건 당일에는 훈련병들의 총격에 목을 관통 당하는 중상을 입었지만 극적으로 살아났다.
훈련병들이 가혹한 훈련과 형편없는 급식,북파 가능성이 흐려지자 집단 행동을 결심., 공군 하사관과 사병 등 18명 대부분이 시신을 전혀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비참하게 숨졌다.
양 장로도 사건 현장에서 목에 총상을 입고 쓰러졌다. 목에서 피가 계속 흘러 온몸이 피투성이가 됐다. 그는 ‘이제 여기서 죽으면 지옥 가는구나’고 생각하면서 점점 의식을 잃어가고 있었다. 바로 그때 2명의 훈련병이 총을 들고 다가왔다. 발견되면 죽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모태신앙인 양 장로는 그때 성경에 나오는 ‘다니엘의 기적’이 떠올라 그 자리에서 하나님께 서원기도를 드렸다.
“하나님, 다니엘의 기적을 믿습니다. 제가 목사님은 안됐지만 살려만 주신다면 앞으로 하나님을 위해 살아가겠습니다.”
절박한 기도후 얼마 되지 않아 2명의 훈련병은 그가 엎드려 있는 머리 옆까지 왔다가 그냥 돌아갔다. 놀랍게도 훈련병들은 양 장로를 발견하지 못했다. 기적이 일어난 것이다. 사건 발생 12시간이 지난 후 양 장로는 필사적으로 바다를 헤엄쳐 구원부대에 의해 구조됐고 병원에서 20일간 입원 후 퇴원했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양 장로의 어머니는 사건 직전 양 장로가 온 몸이 피투성이가 돼 애원하는 꿈을 꾸었다고 한다. 양 장로는 어머니가 그 길로 바로 교회로 가서 계속 기도했다는 얘기를 듣고 “내가 어머니의 기도 덕분에 살았습니다”고 간증했다.
이렇게 죽음 앞에서 살아난 양 장로는 이후의 삶을 덤으로 얻은 생명이라고 생각하고 하나님의 일에 힘써 왔다. 30여년간 교회 교사로서 중고등부 주일학교 교육을 담당하는 등 장로로서의 직분에도 충실했다.
지난해 2월에야 비로소 국가유공자로 인정받은 양 장로는 “신앙의 힘으로 당시 상처와 아픔을 이겨냈다”며 “더 이상 이 같은 불행한 사태가 일어나지 않도록 실미도에서 겪은 신앙 체험을 전하는 데 힘쓰겠다”고 말했다.
믿음 없는 사회에서 믿음을 가지고 승리한 좋은 이야기여서 소개했습니다.
인간 관계에서 믿음의 문제가 중요합니다.
믿음이 있는 사람들 사이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은 행복한 사람입니다.
자신을 믿을 수 있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입니다.
형제를 믿을 수 있는 가정은 행복한 가정입니다.
부부간에 서로간에 믿음이 있는 부부는 행복합니다.
교우간에도 믿음을 가지고 지낼 수 있는 교회는 행복한 교회입니다.
믿음은 누구에게나 행복을 가져오는 열쇠를 가지고 있습니다.
믿음은 매우 중요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믿음으로 건강한 삶을 살아갑니다. 기독교적 믿음이 사람을 윤택하게 합니다. 믿음이 있는 곳에는 평안이 있습니다.
큰산아 네가 무엇이냐?
네가 스루바벨 앞에서 평지가 되리라(슥4:7)
로마제국은 태산보다도 더 큰 장애물이었읍니다.
그러나 믿음으로 로마제국은 기독교화되었읍니다.
'힘으로 되지 아니하고
능으로 되지 아니한' 세계가 많습니다.
그러나 오직 하나님의 신으로만 되는 일이 많습니다.
다만 사람들은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문제를 극복하려 하지 않고 사탄의 권세를 대적하는 우를 범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금요일 낮 캐나다 서부 도시의 한 교회로부터 전화가 왔습니다.
노회 헌법과 평신도를 위한 신앙고백이란 책을 백권씩 주문하겠다는 것입니다.
이런 책은 장로고시나 목사고시를 볼 때, 쓰는 책입니다. 그런데 권사님도 아닌 여 집사님께서 노회 헌법을 읽겠다는 그 이유가 무엇일까 참 이상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답답한 문제가 있을 수 있지만 그런 책 속에 답이 없습니다.
예수님 안에 있습니다.
마무리하는 말
영적 겨울을 지내고 계십니까?
믿음을 회복하십시오.
당신의 영적 겨울을 녹이는 훈풍과 같습니다. 따스한 햇볕과 같이 당신의 얼어붙은 영혼을 녹여 주십니다.
닫힌 옥문으로 인하여 산 위로로 아래로도 가지 못한 채 망서리고 계십니까?
아말렉과의 전쟁 승패는 모세의 기도에 달려 있었습니다.
사도 베드로는 베드로는 감옥에 갇혀 있었지만, 기도하는 교회를 통해 옥문은 열렸습니다.
지성소든 영문밖이든 믿음으로 주님과 함께 가는 길에는 구원이 있습니다.
태산같은 사탄의 권세가 당신의 인생을 가로막고 있습니까?
겨자씨 같은 믿음이라도 붙들고 기도하십시오.
힘으로 능으로 할 수 없는 일들이 당신 앞에 무너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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