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turday, 28 February 2015

마17:22-27 주를 찬양할 이유!

들어가는 말

오늘은 찬양에 은사를 받은 천 민찬; 정 혜선 선교사님 부부와 함께 하나님께 예배와 찬양을 올리려 합니다.
예수님 이름으로 우리가 하나님을 찬양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1. 우리 위해 생명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22 갈릴리에 모일 때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인자가 장차 사람들의 손에 넘기워 23 죽임을 당하고 제 삼 일에 살아나리라 하시니 제자들이 심히 근심하더라

오늘 본문에 보면, 예수님은 인자라고 말씀하십니다.
다니엘서에서 나오는 대로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그 메시아이십니다.
온 우주를 창조하시고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우리는 이를 예수님의 다음과 같은 말씀에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시몬아, 네 생각은 어떠하뇨?
세상 임금들이 뉘게 관세와 정세를 받느냐, 자기 아들에게냐, 타인에게냐?"
이에 베드로가 대답하였습니다.
"타인에게 입니다"
그러자 주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면 아들들은 세를 면하리라"
무슨 말입니까?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란 말씀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성전세를 내십니다.
하나님의 아들이니 성전세를 면하는 것이 옳습니다.
성전세를 내실 이유가 없는 그분이 그러나 성전세를 내십니다.

출 30:11-16에 보면 그 나라의 백성은 생명의 속전을 드려야 합니다.
이십 세 이상 된 자가 반 세겔의 돈을 드려야 합니다.
"생명을 속하기 위해서"입니다.(15절)
부자나 가난한 자가 똑 같이 똑 같이 반 세겔씩 드립니다.
"이것이 여호와 앞에서 이스라엘 자손의 기념이 되어서 너희의 생명을 속하리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사건은 예수님 구속 사건의 중요한 상징이 됩니다.
성전세를 지불하신 주님께서는 십자가에서  우리 대신 생명의 속전을 갚아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반드시 피, 곧 생명으로 속죄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그 백성의 죄에 대해 죽으심으로 그 값을 치를 수밖에 없습니다.
피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기 때문입니다.
구약시대의 백성들은 매년 생명의 속전을 내야 하나님 앞에 설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대신 죽으심으로 이 속전을 우리 대신 내 주셨습니다.

"인자의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생명을 대속하기 위한 제물로 오셨습니다.

그리고 우리를 빚이 없는 하나님의 자녀로 살게 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서머나 교우 여러분 ,

이 세상에서 누가 나의 죗값을 대신 치를 수 있겠습니까?
내 죄 값을 남에게 뒤집어씌우는 사람은 많습니다. 그러나 남의 죄를 뒤집어쓰는 사람이 있겠습니까?
혹시 뒤집어 쓸만한 가치가 있는 의인을 위해 대신 죽는 사람이 있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대신 죽을 가치가 없는 나의 죄를 위해 대신 죄를 뒤집어 쓸 분이 누굽니까?
그러나 예수님께서 이 일을 하셨습니다. 그것도 죽음으로 말입니다.
저를 가장 사랑하는 부모님도 하실 수 없는 일을 예수님께서 하셨습니다.
죽으심으로 나의 죄를 대신 속죄하셨습니다. 죄 값을 지불하셨습니다.

우리가 찬양하는  이유는 바로 이런 이유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된 우리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하심 안에서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생명의 속전을 영원히 면하게 하셨으니 찬양합니다.
하늘의 기업을 잇는 흠없는 백성이 되게 하셨으니 주님을 찬양합니다.
율법의 저주로부터 영원히 놓이게 하셨으니 주님을 찬양합니다.
자기 생명을 대속물로 주신 이 주님을  찬양합니다.
우리의 생명은 더 이상 우리의 것이 아니오 하나님의 것이 되었기 때문에 찬양합니다.
영원하신 하나님께 속한 자임으로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2. 우리를 아시는 분을 찬양합니다.

24 가버나움에 이르니 반 세겔 받는 자들이 베드로에게 나아와 가로되 너의 선생이 반 세겔을 내지 아니하느냐 25 가로되 내신다 하고 집에 들어가니 예수께서 먼저 가라사대 시몬아 네 생각은 어떠하뇨 세상 임금들이 뉘게 관세와 정세를 받느냐 자기 아들에게냐 타인에게냐 26 베드로가 가로되 타인에게니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그러하면 아들들은 세를 면하리라

베드로가 들어오자마자 먼저 예수님께서 성전세에 대해 말씀을 하셨습니다.
밖에서  베드로는 세금 걷는 사람에게 한 질문을 받고 오는 길이 었습니다.

“너의 선생이 반 세겔을 내지 아니하느냐?”

주님께서는 이 모든 것을 아시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는 베드로의 것까지 세금을 낼 수 있는 돈이 있는 곳을 말씀해  주십니다.
예수님은 바다 속에서 헤엄치고 다니는 물고기의 입 속에 있는 동전 한 닢까지도 다 알고 계셨습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예수님의 전지전능하심을 말씀해 주신 것입니다.

예수님의 전지성은 이곳에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수가성 여인의 모두를 다 알고 계셨습니다.
나사로의 죽음을 먼 곳에서도 알고 계셨습니다.
바다에서 풍랑을 만나 고생하는 제자들을 아셨습니다.
가룟 유다의 배신을 미리 아셨습니다.
베드로가 세 번 부인할 것도 아셨습니다.

예수님은 전지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시편 139편에
'여호와여, 주는 나를 ....아셨나이다.
주께서 나의 앉고 일어섬을 아시며
멀리서도 나의 심장을 통촉하시오며
나의 길과 눕는 것을 감찰하시며
나의 모든 행위를 익히 아시오니
여호와여 내 혀의 말을 알지 못하시는 것이 하나도 없으시니이다'

에베소 교회에게 '내가 네 행위와 인내를 안다'고 하십니다.
서머나 교회에게 '내가 네 환난과 궁핍을 안다, 그러나 실상은 네가 부유한 자임을 안다'고 하십니다.
버가모 교회에게 '네가 어디 사는 것을 내가 다 아는데 네가 나를 믿는 믿음을 저버리지 않은 것을 다 안다'고 하십니다.
두아디라 교회에게 '내가 네 사업과 사랑과 믿음과 섬김과 인내를 다 안다'고 하십니다.
빌라델비아 교회에게 '적은 능력을 가지고도 내 말을 지키며 내 이름을 배반치 않은 것을 안다'고 하십니다.
라오디게아 교회에게 '차지도 덥지도 않은 네 행위를 다 안다.고 하십니다.
사데 교회에게 '네가 살았다는 이름은 가졌으나 죽은 자인 것을 내가 안다'고 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아십니다.
나를 낳은 부모가 나를 모르고, 내가 낳은 자식이 나를 모른다고 할지라도 하나님은 우리 사정을 다 알고 계십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구원이 필요한 것을 아십니다.
모든 사정을 아시는 주님께서는 우리 문제의 해답이 무엇인지도 아십니다.
나사로의 죽음을 아시는 주님께서는 나사로의 부활의 길도 아십니다.
수가성 여인의 남편 없음을 아시는 주님께서 그녀의 영적 해갈하는 법도 주십니다.
우리의 모든 것을 아시는 주님께서는 답도 알고 계십니다.
우리가 주님을 찬양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 있습니다.

할렐루야, 우리는 이 전지능하신  주님으로 인하여 하나님을 찬양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스몰리의 책 '영원한 사랑 만들기'란 책 가운데 한 의욕적 인간의 서글픈 인생을 적고 있습니다. 조그만 가게에 전 생애를 걸었다가 파산했을 때, 그는 모든 것을 잃었습니다. 친구, 가정, 사업체, 모든 것을 잃고 42세에 자살해버렸습니다.
그 인생의 모든 답을 아시는 주님을 만났더라면 그는 답을 찾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우리 인생과 우리 인생의 모든 답을 아시는 주님을 찬양합니다.


3. 예수님께서는 덕을 세우십니다.

27 그러나 우리가 저희로 오해케 하지 않기 위하여 네가 바다에 가서 낚시를 던져 먼저 오르는 고기를 가져 입을 열면 돈 한 세겔을 얻을 것이니 가져다가 나와 너를 위하여 주라 하시니라

주님께서는 세금을 내십니다. 무엇 때문입니까?
우리가 저희로 오해케 하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주님께서는 세상에서 덕을 세우셨습니다.

예수님은 세례를 받으실 필요가 없으셨지만 하나님의 의를 이루시기 위하여 세례를 받으셨습니다.
복음 전파에 덕이 된다면,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는데 덕이 된다면 예수님께서는 그 권리를 접으셨습니다.
죄가 없으셨지만 하나님의 나라와 그 의가 이루어지는 일을 위해서라면 자신의 생명을 포기하셨습니다. 이것이 예수님의 덕입니다. 찬양을 받으셔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그 은혜를 입은 우리가 하나님을 찬송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이는 또한 성도가 갖추어야 할 지혜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갈 때에 덕을 세우고, 칭찬을 듣는 성도들 되는 일은 중요합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이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세상사람들로부터 비난받고 오해받지 않도록 덕을 세워야 합니다.
얼마 전에 민간대북지원액의 75%를 기독교계에서 담당했다는 기록을 읽었습니다.
1996년부터 2001년까지 6년 동안 수재의연금으로 기탁되어진 금액이 종교별로 통계가 나왔는데 기독교가 2/3(67.3%)를 지원했습니다. 그 다음의 종교가 13.8%입니다.
지금도 어려운 이웃을 도와주는 일에 기독교가 거의 대부분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대한민국 헌혈의 80%는 기독교인들이 하고 있답니다.
기독교인은 하나님 나라와 그 의를 위해 덕을 세우시는 주님을 오늘도 삶으로 찬양합니다.

사도 바울은 할례의 필요성을 느끼지 않았지만 유대인들이 오해하지 않도록 하기 위하여 디모데를 할례 받게 했습니다. 또한 바울 사도는 고기를 먹는 일에 얼마든지 자유할 수 있었지만 믿음이 약한 사람이 보고, 우상 앞에 바쳤던 고기를 먹는다고 오해를 하여 시험에 든다면 영원히 고기를 먹지 않겠노라고 했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의와 그 나라를 위해 덕을 세우시는 예수님을 인하여 하나님께 찬양을 드립니다.


마무리하는 말

우스운 얘기 하나 전해드릴까요?
어떤 아이가 유치원에 갔는데요. 그 아이는 유치원에서도 늘 옷을 입은 채로 쉬를 합니다. 아이를 잘 다루는 선생님이 말했습니다.
“얘야, 쉬하고 싶으면 휘파람을 불고 싶다고 해라. 그러면 내가 도와줄께.”
이 아이가  집에 와서 잠을 자다가 아빠를 깨웁니다.
“아빠, 나 휘파람 불고 싶어요.”
“야, 이놈아, 다른 사람 다  자는 데 무슨 휘파람이냐?”
“아빠, 나 정말 휘파람 불고 싶어요.”
“얘, 정말 휘파람이 불고 싶다면 내 귀에다 조용히 불어라.”
(조봉희 목사님의 설교 중에서 인용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시나 우리를 위해 대신 죽으셨습니다.
우리를 아시고 구원이 되셨습니다.
죄가 없으셨지만 하나님의 나라와 그 의가 이루어지는 일을 위해서라면 자신의 생명을 포기하시며 하나님 나라의 덕을 세우셨습니다.
이 놀라운 일로 인하여 우리 성도들은 심령으로부터 넘쳐나는 휘파람을 불고 싶습니다.
하나님의 하신 놀라운 일을 우리는 찬양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신앙을 노래에 담아 오늘 초대받은 이 몇 분들은 아람다운 찬양을 하나님께 올려드립니다.
많은 은혜가 있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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