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가는 말
이번 수요일에 캐나다 시민권 선서를 하러 오라는 통지를 받았습니다. 지난 14년 동안 저는 캐나다의 시민권과는 무관한 생각을 하고 살아왔습니다. 그러나 요즈음 서류나 사진에 시민권을 가진 목사만 할 수 있는 싸인을 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또 한 가지 사유는 미국에 들어가기가 너무 불편합니다. 결국 시민권을 받기로 결심하였습니다.
캐나다 정부는 저에게 시민권을 받으라 하고 저는 선택합니다. 캐나다 시민이 된다는 것은 저의 실체입니다. 누구에게나 열려 있는 현실입니다.
이처럼 당시 유대인의 경우, 메시아 왕국은 매우 가깝게 생각되는 실체였습니다.
천국도 또한 실체입니다.
그러나 부자 관원은 이 왕국 시민권을 어떻게 딸 수 있느냐고 물었다가 슬픈 마음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베드로에게서 확대됩니다. 그는 "처음된 자"들인 자신들이 부자가 넘지 못한 벽을 넘었으므로 메시아 왕국에서 얻을 상급이 생각난 것입니다. 자신과 그의 동료들이 모든 것을 버리고 주님을 좇았기 때문에 "우리가 무엇을 얻으리이까 ?" 질문하였던 것입니다.
베드로는 부자 청년이 확보할 수 없는 확실한 우위를 천국에서 점했다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오늘 천국의 비유는 이런 베드로와 같은 기득권을 볼모로 본질을 놓치고 있는 성도들에게 주시는 교훈입니다.
주님께서는 이 비유를 통해서 천국에서 사역자가 가져야할 하나님께 대한 생각과 자신들의 마음가짐을 알려주십니다.
바로 갖지 않을 때, 처음 된 자는 얼마든지 나중 될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천국이 무엇입니까?
나는 천국에서 어떤 존재입니까?
이 두 가지는 오늘 주님께서 말씀해 주시는 주제입니다.
1. 천국은 하나님이 중요합니다.
1]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면 천국이 이루어집니다. 천국을 포도원으로 비유하지 않고, 집주인으로 비유하심은 천국의 주권이 하나님께 있기 때문입니다.
1 천국은 마치 품군을 얻어 포도원에 들여 보내려고 이른 아침에 나간 집주인과 같으니
주님께서는 천국을 장소 개념으로 말씀하지 않았습니다. 진주를 산 상인이라든지, 보배가 묻힌 밭을 사기 위해 모든 것을 판 농부와 같이 천국을 자주 인격으로 비유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인격 안에 천국을 이루시기 원하십니다.
여기 본문에서 포도원 주인과 품꾼, 양편은 서로 필요한 관계로 만납니다.
한편은 포도원을 가진 집주인입니다.
포도원에는 할 일이 많습니다.
일손이 달립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품꾼이 많이 필요합니다.
하나님을 포도원 주인으로 비유했습니다.
다른 한편은 장터에 놀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사람들이 장터에서 놀고 있습니다.
집에서는 처자가 돈을 벌어올 줄 기대하고 있는데,
그 생각이 자신을 떠나고 있지 않는데
일하러 갈 곳이 없습니다.
장터는 요란하고 왁자지껄한데 그들은 부르는 사람이 없습니다.
하릴없이 시간만 낭비하고 있습니다.
이 사람들은 이 세상에서 갈 바를 알지 못해 세파에 허덕이고 있는 인간들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포도원 주인이 이 소망 없는 장터 사람들을 찾아왔습니다. 그것도 한번만 온 것이 아닙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3시, 6시, 9시 11시 장터에 나가 놀고 서 있는 사람들을 부릅니다.
그리고 포도원의 일을 맡겼습니다. 그렇게 함으로 양측의 필요가 충족이 됩니다.
포도원 주인이신 하나님은 장터와 같은 세상에서 의미 없는 삶을 살수밖에 없는 우리들을 찾아오시고 품꾼으로 불러 포도원 사역을 맡기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나라를 이루어 가시는 하나님의 방법입니다.
이러한 하나님 나라는 아담이후의 모든 인류 역사에 계속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먼지에 불과한 아담에게 생기를 부어넣으시고 생령이 되게 하시고, 에덴을 맡기셨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큰사랑입니다.
- 에덴은 하나님께서 지혜와 능력으로 설계하시고 세우신 동산입니다.
- 에덴은 완벽한 복지시설을 갖춘 참된 낙원입니다.
- 에덴은 아름다운 정원입니다.
- 에덴에서는 풍성한 열매와 생명수를 동산 어디서나 누릴 수 있었습니다.
- 에덴은 하나님에 의하여서만 이루어질 수 있었습니다.
아담은 그곳에서 하나님께서 맡기신 그 동산을 하나님의 영광이 충만이 나타나는 하나님의 나라로 이룰 수 있는 기회를 받았습니다. 그는 그곳에서 마음껏 하나님을 영화롭게 할 수 있었습니다.
- 하나님을 더욱 사랑할 수 있었습니다.
- 생육하고 ,번성하여 에덴에 충만할 수 있었습니다.
- 모든 생물을 잘 다스릴 수 있었습니다.
- 하나님의 형상을 지키며, 하나님 보시기에 좋게 살 수 있었습니다.
아담에게 가장 자랑스러운 일은 하나님께서 이런 아름다운 동산을 그에게 맡기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성도에게 주신 큰 축복은 이런 포도원을 우리에게도 맡기셨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찾아가시고 그를 불러 하나님께서는 가나안 땅을 맡겼습니다.
하나님께서 모세를 찾아가시고 그를 불러서 하나님께서는 200만 이스라엘 백성을 맡겼습니다.
하나님께서 여호수아를 찾아가시고 그를 불러 이스라엘 열두 지파와 가나안 땅을 맡기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다윗을 찾아가시고 그를 부르시고 솔로몬을 부르신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왕국을 맡기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열두 제자를 찾아가시고 그들을 불러 모든 족속을 맡기셨습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 어떤 선교사님께는 북한 동족을 맡기셨습니다.
황규만 선교사님께 미얀마 동족을 맡기셨습니다.
한옥희 선교사님께 칼리만탄을 맡기셨습니다.
김남수, 심재욱 선교사님께 파퓨아뉴기니아 동족을 맡기셨습니다.
열두 다락방 순장님들께 서머나 열두 지경을 포도원으로 맡기셨습니다.
하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장터와 같은 세상에서 방황하는 우리를 찾아오십니다. 우리를 불러 그분의 포도원을 맡기시는 분이십니다.
6시에도 9시에도 11시에도 하나님께서는 계속적으로 우리를 찾아오십니다.
그리고 부르십니다.
그리고 포도원의 일을 맡기십니다.
2] 하나님께서는 오늘 본문의 주인은 큰 포도원을 가지고 계십니다. 그리고 이른 아침부터 품꾼을 찾으십니다. 그리고 3시에도 6시에도 9시에도 끝마치기 한 시간 전인 11시에도 일꾼을 찾으십니다.
6 제 십일 시에도 나가 보니 섰는 사람들이 또 있는지라 7 가로되 너희는 어찌하여 종일토록 놀고 여기 섰느뇨 가로되 우리를 품군으로 쓰는 이가 없음이니이다 가로되 너희도 포도원에 들어가라 하니라
그리고 만나면 그들을 포도원에 들여보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오늘도 나 같은 품군을 필요로 하십니다. 내가 몇 시 인생입니까? 하나님께서는 11시(오후 5시)까지도 변변한 일자리 하나 찾지 못하고 빈둥거리는 그 사람을 부르시는 분이십니다.
이는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큰사랑입니다.
어떤 사람은 어린 시절에 부름을 받았습니다.
어떤 사람은 청년의 때에 부름을 받았습니다.
어떤 분은 중년의 나이에 부름을 받았습니다.
어떤 분은 노년의 나이에 부름을 받았습니다.
사랑하는 서머나 교우 여러분,
주님께서 우리를 찾아와서 부르시고 어떤 종류의 사역을 맡기십니까?
누구에게 있어서나 하나님께서 찾아오셨다는 것은, 그리고 부름을 받아 하나님의 포도원에서 일할 수 있다는 것은 참으로 큰 축복입니다. 하나님께서 줄로 재어 주신 구역(포도원)은 우리 모두에게 말할 수 없이 큰 축복입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지명하여 부르시고 우리 안에서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어 가시는 깊은 손길이 있기 때문입니다.
3] 하나님께서 일하는 자의 생활을 책임지십니다. 좀 늦게 부름을 받았을지라도 일하는 자에게 생활을 책임지시는 하나님이십니다.
8 저물매 포도원 주인이 청지기에게 이르되 품군들을 불러 나중 온 자로부터 시작하여 먼저 온 자까지 삯을 주라 하니 9 제 십일 시에 온 자들이 와서 한 데나리온씩을 받거늘
꼭 이른 아침에 온 자만의 생활을 책임지시는 분이 아닙니다. 비록 11시에 올지라도 동일하게 생활을 책임지십니다.
2. 맡은 자는 충성해야 합니다.
8 저물매 포도원 주인이 청지기에게 이르되 품군들을 불러 나중 온 자로부터 시작하여 먼저 온 자까지 삯을 주라 하니
우리는 포도원에 부름 받은 품꾼입니다.
"첫번째 온 사람들"에 속한 베드로의 말(19장 27절)은 무엇입니까?
"우리가 모든 것을 버렸는데, 우리는 무엇을 얻게 됩니까?"
당혹스런 질문이었습니다.
베드로가 먼저 포도원에 온 자인 것은 확실합니다.
또 포도원을 맡아 충성한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나 모든 것을 버려두고 3년이나 빨리 왔으니 무엇을 얻을 것인가에 관심이 집중되어 있었습니다.
뒤에 오는 사람들이 포도원에서 충성하도록 본이 되려는 노력을 해야 했던 것입니다.
포도원에서의 일은 언제까지 계속 되는 것이 아닙니다. 날은 어두워오게 마련입니다. 일꾼들은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갈 때가 옵니다.
어떤 사람은 9시간 일했습니다.
어떤 사람은 6시간 일했습니다.
어떤 사람은 3시간 일했습니다.
어떤 사람은 1시간 일했습니다.
얼마 동안 일했든지 일을 마치고 돌아갈 시간이 옵니다.
그러므로 맡은 자에게 구할 것은 충성입니다.
어떻게 잘 가꾸느냐에 관심을 가져야 했습니다.
일꾼에게는 삯보다 충성이 중요합니다.
먼저 온 자는 일의 시종을 잘 아는 자입니다.
일이 어떻게 시작된 것을 압니다.
일이 어떻게 진행되는 지를 압니다.
일터의 구조를 잘 압니다.
6시에도 오고, 9시에도 오고, 11시에도 오는데 그들은 이 모든 일에 익숙치 않습니다.
그러나 3시에 온 자는 이 모든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들이 어떻게 해주느냐에 따라 그 일터의 결과가 판이하게 달라집니다.
그러므로 3시에 온 자는 너무 중요합니다,
먼저 된 자는 늦게 온 자들의 본이 되어야 합니다.
엘리 제사장은 먼저 된 자였습니다.
그러나 그가 본이 되지 못하였습니다.
영적으로 깨어있지 못했습니다.
하나님께서 경고를 주셨지만 회개하지 않았습니다.
이로 말미암아 자기만 목이 부러져 죽은 것이 아닙니다.
자기 아들들만 전쟁에서 전사한 것이 아닙니다.
자기 며느리까지 아이를 낳다 죽습니다.
온 가족이 멸망당했습니다.
너무나 슬픈 이야기입니다.
그는 3시에 왔으나 자기가 충성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그의 뒤에 오는 자녀들에게 충성하는 본을 보여 주지 않음으로 말미암아 이 비극을 초래하고 말았습니다.
사울이 이스라엘의 첫 왕으로 3시에 부름을 받았습니다. 그는 이스라엘이란 포도원을 맡은 왕으로 부름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그가 맡은 포도원에서 충성하지 않았습니다. 왕국을 하나님의 통치로 다스리지 못하고, 자신이 임의로 다스리려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무엘을 통해서 경고를 주셨지만 그는 돌이키지 않았습니다. 결국 그는 망했습니다. 그의 착한 아들 요나단까지 멸망하였습니다.
다윗이 아니었으면 이스보셋까지 멸망당하였을 것입니다.
묵은 밭을 기경하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맡겨신 밭을 기경하지 않고 묵여두면 주인이 아는 언젠가 주인에게 빼앗길 날이 옵니다.
먼저 된 자가 중요합니다.
본이 되어야 합니다.
에스더서에 보면 모르드게가 나옵니다.
그는 포로로 잡혀간 땅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리고 하만의 모함을 받아 죽을 지경에 처했습니다.
그러나 신앙의 중심을 얼마나 잘지키는지 모릅니다.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하만에 맞서서 하나님께 충성합니다.
그 모습을 보는 에스더가 어떤 결단을 합니까?
죽으면 죽으리라고 나서지 않습니까?
이로 인하여 모르드개가 얼마나 영화롭게 됩니까?
에스더가 얼마나 왕의 괴임을 받습니까?
전 유대인이 구원을 받게 됩니다.
바로 이것입니다.
먼저 된 모르드개 한 사람이 맡겨주신 포도원에서 하나님 중심으로 바로 섰을 때, 본인이 살고 영화롭게 될 뿐만 아니라 그 주변 사람들이 살고 그들이 사는 곳엔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집니다.
일본 동경에서 1964년 올림픽 대회가 열렸을 때 10,000m 경주가 있었습니다. 만 미터면 400M 운동장을 스물다섯 바퀴 돌아야 합니다. 뛰기를 시작해서 스물다섯 바퀴를 도는데 꼴등 1등 두바퀴 반이나 떨어졌습니다. 1등으로 뛰던 사람이 골인점에 들어왔지만 꼴등은 아직도 두바퀴 반을 혼자서 뛰어야 합니다. 그는 끝까지 뛰었습니다. 그때 박수가 터졌습니다. 우리가 세상에서 예수 믿고 충성하고 신앙의 경주를 할 때 예수 믿는 사람은 평생을 달려야 하는 장거리 경주입니다.
이 놀라운 축복이 우리에게 임하실 수 있기 바랍니다.
먼저 된 우리 한 사람이 신앙에 본을 세우고 중심을 지키면 우리 자손까지 복을 받습니다.
사랑하는 서머나 교우 여러분,
우리는 지금 어떤 포도원을 맡고 있습니까?
그곳에서 우리는 어떤 위치에 있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무엇을 원하시리라 생각하십니까?
하나님의 마음을 시원하게 해드리는 일꾼들로 나타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3. 받을 상보다 올릴 극상품의 열매를 생각합시다.
"주인이 그 중의 한 사람에게 대 답하여 가라사대 친구여 내가 네가 잘못한 것이 없노라 네가 나와 한 데나리온의 약속을 하지 아니하였느 냐 네 것이나 가지고 가라 나중 온 이 사람에게 너와 같이 주는 것이 내 뜻이니라 (13~14절)."
일이 끝나고 품삯을 계산해 주는 시간이 왔습니다. 그런데 11시에 온 자들을 불러 주인이 한 데나리온을 주는 것이었습니다. 그보다 먼저 온 자들은 흥분이 되었습니다.
나는 그보다 3배를 더 일했으니 얼마나 받을 것인가?
나는 그보다 6배를 더 일했으니 얼마나 받을 것인가?
나는 그보다 9배를 더 일했으니 얼마나 받을 것인가?
그보다 더 많이 받을 것으로 기대했습니다. 그런데 이게 웬 일입니까? 먼저 온 자들에게도 똑같이 한 데나리온을 주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먼저 온 자들은 어떻게 그럴 수 있느냐며 주인을 원망하였습니다. 어떻게 이른 아침부터 와서 하루 종일 일한 사람과 저녁에 잠깐 와서 한시간 정도 밖에 일하지 않은 사람이 똑같은 품삯을 받느냐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주인은 품삯으로 한 데나리온을 약속하였고 품삯을 주는 것은 내 뜻이라고 잘라 말했습니다.
이 일 가운데서 포도원 주인의 마음을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리고 일하는 일에 참여하는 사람들의 태도 또한 중요합니다.
이 포도원 주인은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종들에 대하여 그분의 뜻하신 대로 다루실 권한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데나리온"은 구원이나 영생을 뜻하는 것은 아닙니다. 구원이란 공로에 의한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엡 2:8-9/딛 3:5-6참조).
옆에 계신 형제가 한 시간밖에 일하지 않았는데도 한 데나리온을 받았다면 그것은 품삯이 아닙니다. 그것은 주님께서 은혜로 주신 것입니다. 일한 만큼 받고 그 대가를 받는 것은 은혜가 아닙니다.
따라서 이 비유는 구원에 관한 것이 아니라 봉사한 자에게 주시는 은혜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봉사할 수 있는 은혜를 주십니다.
봉사할 때, 감당한 수 있는 은혜를 주십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나라에 쓰임 받은 사람들에게 그들만이 가질 수 있는 은혜를 주신 것입니다. 따라서 주님께서 각 성도에게 주시는 "데나리온"은 상대평가가 아니라 절대평가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포도원에 부름 받은 자는 하나님께 받을 상보다 나를 불러 포도원을 맡기신 일로 인하여 감사해야 합니다. 왜 저 사람에게는 한 데나리온을 주시면서, 9배나 일한 저에게도 한 데나리온을 주십니까? 이렇게 말하지 맙시다.
하나님 나라의 포도원에 부름 받은 자가 주님을 위해 일하면서 한 데나리온의 품삯만을 기대했다면 그 일꾼은 참 마음이 가난한 사람입니다.
어떤 열매를 주인에게 올려 드릴까 하는 일로 마음을 기울여야 합니다.
우리들은 하나님의 아들 딸로 부름 받았습니다.
하나님께 충성함으로 극상품의 포도를 올려드릴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습니다.
그 포도원이 아버지의 것이라면, 그 일꾼은 어떤 마음을 가졌을까요?
품삯을 초월하여 일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마땅한 자세입니다. 아버지는 품삯 이상을 주기 원하십니다. 그리고 품삯 이상을 줄 수 있는 분이십니다.
베드로의 실수는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 그를 늦게라도 부르신 까닭은 무슨 능력을 갖추었기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를 일찍 부르신 것은 무슨 자격이 있어서가 아닙니다.
일본의 신앙인 작가 미우라 아야꼬에 대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이런 내용을 읽었습니다. 미우라의 집 뒤에 조그마한 공장이 있는데 몹시 시끄러웠습니다. 낮에는 괜찮은데 밤에는 소음 때문에 잠을 잘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미우라 아야꼬가 자기 남편 미우라한테 뒷집에 가서 이야기 좀 하라고 하며 짜증스러워 견딜 수 없다며 불평합니다. 남편의 믿음이 훨씬 좋습니다. 남편이 하는 말이 불평을 이야기할 문제가 아니라 감사할 문제라고 합니다. 저 사람들은 추운 날 밤을 새우며 일해야 되는데 우리는 따뜻한 이불 속에서 잠자고도 살 수 있으니 생각하면 할수록 감사할 일이라는 겁니다. 그때 자기가 큰 감동을 받고 부끄러워 견딜 수가 없었다는 이야기입니다. 부부가 똑같은 일을 당하고 있는데 이렇게 생각하면 감사할 일이 되고 저렇게 생각하면 원망할 일이 됩니다.
[나의 봉사나 사역에서 감사가 사라질 때, 나의 사역 동기를 살피라] 우리가 사역하는 일에서 어떤 경우에 감사가 사라집니까?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주님 나라를 위해 봉사하고 사역하게 하신 일에 어떤 자세로 참여하고 있는가 우리의 동기를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동기가 잘못된 경우에 감사가 사라집니다.
100m 달리기 선상에 선 선수들을 보셨지요? 얼마나 스타트를 위해 신경을 쓰는지 모릅니다. 스타트가 잘못된 경우에 "나중된 자"가 될 것을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포도원에 부름을 받은 일꾼입니다. 한 데나리온은 한 장정의 하루 품삯이기도 하지만, 한 식구가 생계를 이어갈 수 있는 돈이기도 합니다. 그것을 받았으면 감사하지요. 이제 우리의 관심은 불러주신 분을 위해 좋은 열매를 만드는 일에 전심을 기울이는 것이 할 일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포도원 맡기신 것만으로 감사하고 우리의 남은 일생의 관심사는 하나님께 가장 좋은 열매로 올려드리는 일을 위해 관심을 기울여야 합니다.
마무리하는 말
주님께서는 우리 안에 천국을 이루기 원하셔서 오늘도 우리를 찾아오시는 분이십니다.
포도원에 초대하십니다.
포도원을 맡기십니다.
생활을 책임지십니다.
사랑하는 서머나 교우 여러분, 주님의 넓은 마음을 아시고 주님 품에 돌아오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우리 안에 천국을 이룰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처음 된 분들은 우리가 늘 "나중된 자"가 될 수 있음을 아시고 겸손히 맡은 일에 충성하시는 복을 받기 원합니다.
댓가보다 하나님 자녀된 일로 감사하시고 하나님 자체를 감사하며 맡은 포도 열매를 더 잘 키우기 위해 최선을 다하시는 남은 생애가 되도록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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