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turday, 28 February 2015

마 19:1-15 결혼에 담길 비밀, 이혼에 담긴 문제

들어가는 말


우리 서머나 교회 홈페이지에 실린 노목사 칼럼('내가 바로 소자다') 중 일부분을 소개합니다.

남편과 함께 길을 가다 화원 옆을 지난다.
흐드러지게 화안히 핀 꽃이 오늘따라 유난히 마음을 끈다.
'여보, 저 꽃 참 예쁘지?'
남편은 말이 없다.
아무래도 머리가 좀 덜 미친 듯하고
가슴이 좁아 보인다.
소자다.

그날 밤,
나는 힘에 넘치는 일로 인해 파김치가 되어 돌아왔다.
오랜 독감으로 몸이 너무 약해졌나 보다.
그러나 남편은 주섬주섬 옷을 챙겨 입더니 휭하니 밖으로 나간다.
그리고 몇 시간이 지나도 들어오지 않는다.
'내가 누구 빚 갚느라 이 고생인데 남편이란 작자가 이럴 수 있나?'
섧다.
힘든 날 위로가 되기 보다 슬픔을 주는 남편,
유익이 되기보다는 손해를 끼치는
그는  분명 소자다.
힘이 되기보다는
짐이 되는
그 소자를 향한 분노가 밤이 깊어갈수록 더 크게 타오른다.


더 이상 견디기 힘든 폭발직전의 깜깜한 방안으로
남편이 들어온다.
그 품에는 내가 그렇게도 갖고 싶어하던 꽃이 한 아름 안겨 있다.


아내가 꽃을 갖고 싶어하는데 사줄 돈이 없어서
몇 시간 동안 대리 운전을 하였다는 말과 함께.

'대리 운전 해 보아야 얼마 받지도 못하는데........  .'

알고 보니,
이 착한 남편을 소자로만 몰아 세우고
사랑과 기다림 대신 분노로 밤을 지샌
내가  바로
소자다.

이 작품은 평범하고 소박한 부부 안에 담긴 행복을 담은 작품입니다. 우리는 어떤 비밀을 가정에서 누립니까?

부부란 좋은 부분만 껴안고 사는 게 아니라
상대의 빚까지 떠 안고 사는 관계입니다.

이렇게 깊고 아름다운 관계가 세상에 어디 있겠습니까? 그래서 성경은 하나님과 성도와의 관계를 부부관계에 비유하고 있습니다. 우리 주님께서 우리의 빚까지 떠 안고 십자가에서 고난을 받으신 이유가 바로 이곳에 있습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 부부 안에 담아 두신 하나님의 비밀을 더 깊이 깨달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1. 결혼은 하나님의 작품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제 요단강을 건넜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갈릴리를  떠나 유대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예루살렘은 눈앞에 가까워옵니다.
병든 자들의 병을 고치는 역사가 활발히 일어납니다.
요한복음이 전해주는 바에 따르면, 예수님께서는 이쯤에서 나사로를 죽음에서 일으키십니다. 놀라운 역사가 무리들 앞에서 일어나고 있었습니다. 예수님 안에서 놀라운 메시아의 권능을 체험하던 큰 무리가 예수님을 따르고 있습니다.
종교지도자들이 정치지도자들 못지 않게 긴장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런 긴박한 상황 속에서 종교지도자들을 대표한 바리새인들이 예수님께 다가와 예수님을 시험하는 질문을 던지고 있습니다.

3 바리새인들이 예수께 나아와 그를 시험하여 가로되 사람이 아무 연고를 물론하고 그 아내를 내어 버리는 것이 옳으니이까?

가정에서 가장 소중한 아내, 살 중의 살이요, 뼈 중의 뼈인 아내를 내어버리는 것이 옳은가를 묻고 있습니다. 요즈음 동성 결혼이 핫 이슈로 등장하는 것처럼 당시에 심각한 주제는 이혼문제였습니다. 이 심각한 주제를 가지고 예수님을 시험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요즈음 미국에서는 캐리란 분이 대통령 후보로 급부상하고 있습니다. 그는 케네디 이후의 캐톨릭 출신의 대통령 후보입니다. 그러나 그는 캐톨릭으로부터 전폭적인 지지를 받을 수 없는 입장에 놓여 있습니다. 동성 결혼에 관한 입장이 캐톨릭과 다르기 때문입니다.
요즈음엔 이혼율이 극에 달하여 미주를 넘어 한국에도 이혼율이 50%를 넘어간다는 소식을 듣게 됩니다. 두 쌍이 결혼하면, 한 쌍이 이혼한다고 하니 얼마나 심각한 문제입니까? 우리의 자손들의 사고 관념 속에서 가정에 관한 고정관념이 무너지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이건 큰 사회 문제를 반영합니다. 한국인들이 정치문제로 고민들을 많이 하는 것 같은데요. 사실은 우리 자손들이 건강한 가정을 이룰 수 있도록 더 진지하게 고민해야 합니다.
예수님 당시에도 가정은 사탄의 공격을 받고 있었습니다. 풀기 힘든 과제들을 안고 있었습니다.

엣세네파는 종말론자들로 아예 독신주의였습니다.
보수파(샴마이)는 간음죄 이외의 이혼을 금했습니다.
진보적 견해를 대변하는 힐렐파는 남편의 임의로 이혼을 가능한 것으로 허용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께서 에세네파와 같은 어떤 입장에 서시길 원했을 지 모릅니다. 아무튼 주님께서 소수의 한 범주에 머무름으로 많은 대중들이 예수님으로부터 등돌리기를 원했던 것 같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런 시험에 성경에 기록된 말씀으로 알려주셨습니다.

4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사람을 지으신 이가 본래 저희를 남자와 여자로 만드시고 5 말씀하시기를 이러므로 사람이 그 부모를 떠나서 아내에게 합하여 그 둘이 한 몸이 될지니라 하신 것을 읽지 못하였느냐 6 이러한즉 이제 둘이 아니요 한 몸이니 그러므로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나누지 못할지니라 하시니

요즈음도 결혼에 관한 많은 생각들을 하고 살아갑니다. 결혼이나 이혼의 이해는 하나님 앞에서 생각하느냐 인간적 사고로 생각하느냐에 따라 큰 차이가 납니다. 성경을 존중할 것인가, 나 중심적으로 생각할 것인가에 따라 하늘과 땅 차이의 견해차가 나타납니다.

유진오 박사가 길을 가다가 마음에 드는 아가씨를 만났습니다. 따라갔습니다.
그 아가씨가 집에 들어갔습니다. 그도 따라 들어갔습니다.
문을 열어준 사람이 막았습니다.
왜 들어오려는 겁니까?
들어가 주인 어른께 말씀드리겠습니다.
결혼하고 싶습니다.
생전 처음 보는데, 자네가 누군 줄 알고 내 딸을 준다는 말인가?
뒷조사를 해본 그 부모가 결혼을 허락했습니다.

훗날 그 일화를 들은 그분의 제자가 그를 찾아와 교수님의 딸과 결혼하고 싶다고 했습니다.
유진호 교수는 대답했습니다.
"결혼은 따라하는 것이 아니네."

결혼을 인간의 일로 생각할 때, 가치관은 얼마든지 흔들립니다.
그러나 성경은 결혼이 하나님의 작품임을 선포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모두 취해야 할 입장은 성경이 말씀하시는 것을 표준으로 삼아야 합니다. 성경이 결혼에 대해서 말씀하시는 원리는 하나님의 작품이라는 사실입니다. 사람은 어떻게 할 수 없는 것이 결혼입니다. 하나님께서 짝지어주신 것이 결혼입니다. 사람의 일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일임을 시인하는 사람이라면 결혼을 사람 임의로 어떻게 하려들 지 않습니다.
남녀간에는 차이점이 있기 때문에 하나가 되는 결혼에는 결혼당사자가 극복해야 할 어려운 점들이 있습니다.

1] 믿는 자와 결혼해야 합니다.

믿지 않는 자와 결혼하지 말라는 말을 들을 때, 어떤 사람들은 기독교인이 유별나다고 생각합니다. 믿지 않는 자와 결혼하여 믿도록 하면 그것이야말로 일석이조가 아니냐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결혼을 전도전략 차원으로 이용하지 않습니다.
소와 말은 멍에를 함께 메지 않습니다. 말은 다리가 길고 황소는 다리가 짧습니다. 종류가 전혀 다릅니다. 신자와 불신자는 멍에를 함께 하며 작업을 할 수 없습니다.
어떤 분은 이렇게 설명합니다. 미끄럼틀 위로 사람을 끌어올리기가 쉽습니까? 아래로 끌 어 내리기가 쉽습니까? 신자는 좀더 고상한 차원의 신앙의 삶을 살려고 미끄럼틀 위에서 불신자를 끌어올리려고 하고 있고, 불신자는 아래에서 세상으로 끌어내리려 합니다. 끌어내리기가 더 쉬운 것입니다.

결혼에서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은 하나님의 짝지어주신 하나님의 일에 대한 섭리를 받아들이고 감사함으로 말씀을 따라 순종하는 일입니다.
[1] 부모를 떠나는 것입니다.
[2] 부부가 합하는 것입니다. 더하기를 하는 일입니다. 연합하는 일입니다.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도 할 것이 있습니까?

2] 상대의 필요를 채워줄 수 있어야 합니다.

상대의 잘못을 용납할 수 있어야 합니다.
미국 여성 잡지에서 행복한 결혼 생활을 이끌어 가는 비결을 공모했습니다.
1등: Love, Like, Laugh(웃음), Listen
하나님께서 짝지어 주신 대상을 사랑하고 좋아하고 웃고 듣기를 좋아할 때 결혼은 행복해진다는 말입니다.
2등: 부부가 각기 서로의 자질을 개발하기 위해 노력한다
이런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노력해야지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에 대하여 인간이 도를 넘어가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하나님 중심적으로 결혼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결혼을 세우신 분이 하나님이심을 인정한다는 말씀입니다. 이렇게 되면 결혼이나 이혼은 사람의 권한을 넘어갑니다. 결혼을 하나님의 일로 받아들이고 사람이 해야할 일은 무엇인가를 알아서 대처해야 합니다.


2. 이혼은 사람의 작품입니다.

7 여짜오되 그러하면 어찌하여 모세는 이혼 증서를 주어서 내어 버리라 명하였나이까
8 예수께서 가라사대 모세가 너희 마음의 완악함을 인하여 아내 내어 버림을 허락하였거니와 본래는 그렇지 아니하니라 9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누구든지 음행한 연고 외에 아내를 내어 버리고 다른 데 장가드는 자는 간음함이니라


이혼은 성경적으로 보면, 본질적으로 불가능합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인간의 결혼에 관여하여 그들을 짝지워 주신다는 것은 인간이 한번 결혼하면 자의로 갈라설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께서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나누지 못한다고 선포하셨습니다.

고전7:10 혼인한 자들에게 내가 명하노니 (명하는 자는 내가 아니요 주시라) 여자는 남편에게서 갈리지 말고 11 (만일 갈릴지라도 그냥 지내든지 다시 그 남편과 화합하든지 하라) 남편도 아내를 버리지 말라

선하신 하나님께서는 가장 좋고 합당한 배필을 만나게 해주신 것이므로 그것을 싫다고 하는 것은 선하신 하나님의 뜻에 대한 도전입니다.

성경에서 이혼이 성립되는 경우는 부부간에 음행 죄가 개입이 될 때입니다. 남편이나 아내 어느 한 편이라도 결혼 서약을 무시하고 간음죄를 범할 때, 이혼 사유가 됩니다.
지금 이 시대는 스와핑 교제까지 신문지상을 오르내리는 너무 부끄러운 시대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간음에 대하여 매우 엄격히 금하고 있습니다. 간음하지 말지니라!(제7계명) 엄격히 금하고 있습니다. 간음은 남편과 아내와의 인격적인 관계를 파기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간음은 결혼 서약을 위반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작품을 엉망으로 망가뜨리는 짓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하는 일입니다. 성경에는 그런 자를 돌로 쳐 죽이라 하셨습니다. 간음에 의해 부부관계를 더럽히는 자를 돌로 쳐죽여야만 했습니다(레20:10, 24:16, 신 22:20-24, 요 8:3-5).
그러므로 간음은 우상숭배와 비교가 됩니다. 우상숭배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깨뜨리는 일입니다. 우상숭배는 하나님과의 영적 이혼을 의미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에게 요구된 것은, 주 여호와에 대한 신앙의 절조였습니다. 바알을 비롯한 다른 신을 예배하는 것은, 주 여호와에 대한 간음죄를 범하는 죄입니다(렘 31:32). 호세아는 여호와와 이스라엘을 부부 관계로 표현하고, 그 올바른 관계를 깨뜨리고서 바알 예배에 마음을 돌리는 것을 간음죄로  표현했습니다(호 2:15, 16).
예수님께서는 율법의 완성자로서, [여자를 보고 음욕을 품는 자마다 마음에 이미 간음하였느니라]고말씀하셨습니다.
간음이 이렇게 무서운 일이기 때문에 간음 사건이 부부간에 일어나는 경우에 모세의 율법은 이혼을 허락하였습니다.

그러나 이런 경우에도 하나님께서는 이혼증서란 브레이크 장치를 사용하게 하셨습니다. 그것은 바로 이혼증서를 주도록 한 것입니다. 남편이나 아내가 자기의 사적인 감정에 따라 하나님께서 정하신 결혼이 유린될 수 없기 때문에 공적인 잠금 장치인 이혼증서를 만들게 한 것입니다. 이혼증서를 만들기 위해서는 객관적이고 공적인 절차를 거치도록 되어 있습니다. 그런 브레이크 장치를 통해서 사적인 감정에 의해서 함부로 결혼이 파괴되지 않도록 한 것입니다.
그런데 당시 많은 유대인들이 브레이크 장치를 엑셀레이터 장치로 사용하였습니다. 결혼이 하나님의 작품이란 사실을 무시한 채, 이혼증서만 남발하여 결혼을 깨뜨려버렸던 것입니다. 이혼의 늪을 우리 사고 속에서 제거하기 위하여 다음 사고를 입력시킬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가 이혼으로 하나님의 작품을 망가뜨리지 않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입니까?

1] 남편과 아내는 서로 다름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우리 교회 도서관에 가시면, '와플 같은 남자와 스파게티같은 여자'(빌과 팸 파렐 부부)란 책이 있습니다. 이 책의 저자는 제목처럼 남녀가 서로 차이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는 이 세상 모든 사람을 부류로 나눕니다.
"남녀의 차이를 인정하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
차이를 인정하는 사람은 남녀가 피차 부족함을 채워주는 관계임을 알게 됩니다. 그러나 인정하지 않을 때, 상대를 끝없이 피곤하게 할뿐만 아니라, 자신도 불행해 집니다.
남자는 삶에서 일어나는 갖가지 일들을 일정한 와플같은 칸막이에 한 가지씩 넣어둔답니다. 한 조각씩 먹어가는 것처럼 하나씩 처리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비하여 여성은 생각, 감정 신념이 한 데 얽혀 있어서 많은 정보를 처리하고 활동을 챙길 수 있습니다. 여성들의 일처리 방식은 스파게티 면발이 얽혀 있는 것과 같아서 여러 가지 일을 동시에 잘 수행한다는 겁니다. 전화통화를 하면서 식사를 준비하고 , 놀러가는 아이에게 주의 사항을 주고, 시장에 가서 살 물건을 적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남편과 아내는 삶의 방식이 다릅니다.
무엇을 배우는 방법이 다릅니다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방식이 다릅니다. 여자는 남자들보다 합의를 좋아합니다


2] 상대의 허물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1] 상대에게 잘못된 일이 일어날 수 있음을 인정해야 합니다.
2] 상대의 잘못한 일 때문에 그를 회복불가능한 사람으로 여기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3] 상대의 잘못한 행동에 대해 잘못한 자는 회개하도록 힘써야 하지만, 잘못이 없는 편도 그를 용서하도록 힘써야 합니다.
4. 상대가 저지른 잘못된 행동에 대해 보상할 것을 기대하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5. 상대의 잘못을 무기로 삼아 상대를 조종하려 해서도 안될 것입니다.
6. 무엇보다 상대의 실수가 나의 성장을 방해하도록 허용하지 않겠다는 결의가 필요합니다.
당시 사람들이 마음대로 결혼하고 마음대로 이혼할 수 있었던 까닭은 결혼을 사람이 한다는 사고 속에서 가능하였던 일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근본적으로 이혼을 허락하신 것이 아닙니다.

3] 서로의 변화를 소중히 여겨야 합니다.

상대의 변화를 분명히 인식해야 합니다.
나 자신과 상대의 변화에 성원을 보냅시다.
끝까지 격려를 아끼지 맙시다.
하나님의 눈으로 그를 보고, 하나님이 대하시는 것처럼 상대방을 세워주려는 노력을 해야 합니다.

우리 집에서는 물건이 제 위치가 아닌 곳에 굴러다니면 머슴 상자에 집어넣게 되어 있어요. 잃어버린 물건을 찾다가 머슴 상자에서 발견되면 5분 동안 허드렛일을 해야 그 물건을 찾을 수 있어요. 좋은 생각이네요. 그걸 처음 시작했을 때, 아이들이 몇 살이었나요? 아이들이요? 우리 애가 없어요. 그 남편용이예요.

이런 노력을 통해서 이혼이라는 생각 자체를 머리 속에서 지워버려야 합니다.

하나님이 짝 지워주신 부부임을 믿으시고 그 안에서 작품을 이루시는 축복을 누리시기를 바랍니다.



3. 홀로도 하나님 작품이 될 수 있습니다.

10 제자들이 가로되 만일 사람이 아내에게 이같이 할진대 장가들지 않는 것이 좋삽나이다
11 예수께서 가라사대 사람마다 이 말을 받지 못하고 오직 타고난 자라야 할지니라 12 어미의 태로부터 된 고자도 있고 사람이 만든 고자도 있고 천국을 위하여 스스로 된 고자도 있도다 이 말을 받을 만한 자는 받을지어다


하나님은 결혼을 모세의 율법이 있기 오래 전에 에덴에서부터 창설하셨습니다. 성경은 최소한 네 가지의 결혼의 이유와 목적을 제시합니다.
-사명을 잘 감당하도록 하기 위하여(창 1:28)
-동반자 합력하여 즐겁게 사명을 감당하도록(창 2:18)
-간음을 피하기 위하여(고전 7:1-6)
-그리스도와 그의 교회와의 관계를 예시하기 위하여(엡 5:22-23).

하나님의 본래 목적은 한 남자가 한 여자와 결혼하는 것이며, 죽음만이 결합을 깨뜨릴 수 있습니다(롬 7:1-3). 이것은 신성한 결합입니다. 아담 곁에 이브가 함께 있으면 보시기에 더 좋습니다.
그러나 둘이 연합하여 사명을 감당치 못하였을 때, 큰 비극이 인류가운데 찾아왔습니다. 차라리 이런 경우에는  홀로 사명을 잘 감당하는 모습이 더 보기에 좋을 뻔 했습니다.

이런 결혼의 엄숙함을 깨달은 제자들은 말했습니다.

10 제자들이 가로되 만일 사람이 아내에게 이같이 할진대 장가들지 않는 것이 좋삽나이다

제자들의 반응을 보아서는 그들이 결혼에 관한 하나님의 뜻을 이해하지 못한 것같습니다(10-12절). 성경은 독신 생활을 가르치는 것은 아니지만 모두가 결혼을 해야 할 것으로 보지는 않고 있습니다. 바울은 고린도전서 7장 7절에서 이러한 뜻을 비친다. 바울은 하나님께 더 잘 봉사하기 위하여 결혼을 절제한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주님의 모든 종들에 대한 하나님의 뜻은 아닙니다. 사람은 자기 삶에 대한 하나님의 뜻을 발견해야만 합니다.
이것을 하나님이 아십니다. 그래서 배우자를 허락하지 않으실 때는 절망할 필요 없습니다. 홀로 하나님의 작품이 되면 됩니다.

11 예수께서 가라사대 사람마다 이 말을 받지 못하고 오직 타고난 자라야 할지니라 12 어미의 태로부터 된 고자도 있고 사람이 만든 고자도 있고 천국을 위하여 스스로 된 고자도 있도다 이 말을 받을 만한 자는 받을지어다

그런 사람은 천국을 위해 스스로 고자된 자라고 스스로 믿고 하나님께 충성하면 됩니다. 다른 사람도 그를 천국을 위해 스스로 고자된 분으로 존중하면 될 것입니다.
아담이나 이브 어느 한편이 선악과를 따먹어서 하나님의 작품을 두 사람이 연합하여 이룰 수 없다면, 홀로라도 하나님의 작품을 이루십시오. 하나님께서 성령으로 함께 하십니다.


마무리하는 말

불행한 결혼 생활을 더 이상 참을 수 없어서 이혼하기로 결심한 여인이 마지막으로 한 사람을 찾아갔습니다.
그에게 남편을 정말 아프게 할 수 있는 조언을 구했습니다. 그는 남편을 두 달 간 온 몸과 정성을 다해 사랑해서 남편의 마음을 사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남편이 사랑과 만족을 느낄 때, 이혼 서류를 내밀라고 했습니다.
"그럼 부군의 마음이 찢어질 것입니다."
몇 달 뒤, 그녀가 그 현인을 찾아와서 말했습니다.
"더 이상 이혼 서류가 필요 없어요. 우리는 지금 두 번째 신혼여행을 준비하고 있거든요."

저는 가끔 프린터를 쓰다가 한 페이지만 인쇄해야 할 것을 인쇄 전체를 클릭할 때가 있습니다. 그때는 일단 프린터에서 전원을 차단한 후, 컴퓨터 안에 있는 프린터에 입력되어 있는 인쇄 내용을 지웁니다. 그런 다음 프린터를 다시 켜게 되면 모든 것이 정상적으로 작동합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 살고 있기 때문에 잘못 입력되어 있는 것이 있습니다. 그리고 반드시 지워버려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이혼은 사람의 일입니다. 하나님의 작품이 아닙니다. 여러분의 생애에서 지워버리십시오.

남편이나 아내가 부족하여 소자라고 느껴질 때 이 말씀을 다시 기억하십시오.
삼가 이 소자 중에 하나도 업신여기지 말라 너희에게 말하노니 저희 천사들이 하늘에서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얼굴을 항상 뵈옵느니라(마18:10)

여러분의 결혼 생활에서 불행을 느끼고 이혼이 생각날 때, 상대가 소자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하시고, 그와 함께 어떻게 하나님의 작품을 만들 것인가를 연구하고 기도하십시오. 하나님께서 가장 좋은 답으로 여러분의 생애를 채우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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