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세를 우리가 익히 쓰는 말로 바꾸면, 권위(엑수시아)란 말입니다. 엑수시아는 권세, 힘, 권위로 번역이 됩니다. 우리는 권위주의는 있으나 진정한 권위는 잃어버린 시대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세도나 권위주의와는 구별되는 좋은 말이지요. 남이 인정하지도 않는데 스스로 가진 것처럼 어깨를 으쓱거리는 권위주의와 다릅니다. 권위는 자신이 지키는 면이 없지 않지만, 근본적으로 외부에서 주어지는 것입니다. 세도는 있으나 진정한 권세가 도전 받는 시2대에 살고 있습니다.
이 말씀을 통해서 우리는 하나님의 권세, 하나님께서 주신 권세의 소중함을 바로 알았으면 합니다. 그리고 그 권세를 받아, 바로 사용하며 살았으면 합니다.
예수님은 무슨 권세를 가지셨습니까?
예수님은 하나님의 권세를 가진 분이십니다.
(2)말하여 가로되 당신(當身)이 무슨 권세(權勢)로 이런 일을 하는지 이 권세(權勢)를 준 이가 누구인지 우리에게 말하라
예수님의 권위를 붙들고 오늘(눅 20:1-8) 종교지도자들은 두 질문을 하고 있습니다.
1] 당신(當身)이 무슨 권세(權勢)로 이런 일을 합니까? 배우지 못했는데 무슨 권세냐! 직분을 받은 것도 아닌데 무슨 권세냐! 예수님께는 인정할 만한 권위가 없다는 거죠.
2] 이 권세(權勢)를 준 이가 누구냐 묻습니다. 제사장들도, 서기관이나 바리새인들도, 장로들도 권위를 부여하지 않았는데, 이런 권세(병 고침, 성전 청결, 가르치는 권세)를 누가 주었단 말인가! 권세를 누구도 예수님께 주지 않았다는 겁니다.
우리 고국에 이원복이란 교수 만화가가 계십니다. 그분이 요즈음 서울대학 동창회보에 그린 그림이 화제입니다. 이회창 씨가 높이 뛰기를 하는데 첫 번째에 실패를 하고 이차 높이 뛰기에 도전하는 모습입니다. 그런데 그분의 옷에 서울대라고 써 놓았습니다. 그리고 그가 넘어야 할 큰 벽이 상고(商高)란 말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김대중씨도 상고 출신이요, 노무현씨도 상고 출신이니 이제 상고를 넘어야 대통령이 된다는 상황을 만화로 그린 모양입니다.
그 작품을 보면서 씁쓸한 한국인의 의식 단면을 보는 것만 같았습니다. 그분이 넘어야 할 진정한 담은, 지역주의, 흑백논리, 부정부패, 학벌족벌 등 우리 민족이 공통적으로 안고 사는 고질병이 많고 많은데, 어쩌면 그렇게 단순한가! 서울대가 상고를 극복의 대상으로 보았다면, 상고생들이 상처를 받을 수도 있겠다 싶습니다.
종교지도자들의 발상이 바로 이런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갈릴리 나사렛에서 자라나셨다고,
목수의 아들이다고,
그들과 같은 배움이 없으시다고,
그들과 같은 기득권을 갖고 있지 않다고 해서 예수님을 극복의 대상으로 설정한 것은 너무 짧은 생각입니다. 2저들에게는 가문, 부모의 직업, 학벌, 직업 등이 바로 참된 권세란 생각이 깊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진정한 권세는 서울대나 상고에서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것이지요.
대제사장들은 주로 사두개인들로 구성되어 있었습니다. 이들은 주로 성전을 관리하는 직책들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서기관들은 바리새인들이 주류를 이루고 있으면서 율법을 해석하고 연구하는 자들이었습니다.
그리고 장로들은 각 도시나 성읍의 장으로서 산헤드린 공의회의 회원이 되기도 하였습니다.
바리새인과 사두개인의 평소에도 교리 문제로 인해 불화가 잦았으나(참조, 마 22:23,42) 예수를 대적하는 일만큼은 서로 마음이 일치하였습니다.
메시야로서 예수님이 가지신 권위를 부인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메시야란 증거를 보이라 ' '신임장을 내 보이라'(헨드릭슨,Hendricksen) 요구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이 보기에 그런 일을 행할 만한 정당한 신임장을 갖고 있지 않습니다. 그들의 마음속에는 '신임장이 바로 권세(?)'라입니다. 메시야로서의 예수님 권위를 부인합니다. 당시 종교 지도자들에 있어 예수님은 신임장이 없는 임명되지 않은 랍비입니다. 성전에서 가르칠 권리가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부인하고 싶어하는 '이런 일'들은 예수님의 메시야적 권세를 나타낸 사건들입니다. 나귀를 타시고 평화의 왕으로 예루살렘에 입성하신 일, 성전을 청결케 하신 일, 그리고 소경 바디메오를 보게 하신 일, 성전에서 가르치시는 일 까지.
예수님께서는 자기를 시험하는 유대 지도자들에게 요한의 세례와 그 사역을 되물으심으로 하나님께로부터 온 권세가 있음을 상기시키십니다.
요한의 세례는 회개의 세례입니다.(마 3:2) 요한의 사역과 받은 권세는 하늘에 속한 것입니다. 그가 예수님을 메시야로 증거했습니다(요 1:29). 요한의 권세와 사역이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처럼 요한이 증거한 예수님은 하나님으로부터 온 권세를 지닌 메시야입니다.
예수님의 권세는 어디로부터 왔습니까?
예수님의 권세는 하나님으로부터 왔습니다.
하나님은 권세의 근원이십니다.
부와 귀가 주께로 말미암고 또 주는 만유의 주재가 되사 손에 권세와 능력이 있사오니 모든 자를 크게 하심과 강하게 하심이 주의 손에 있나이다(대상 29:12).
지옥에 던져 넣는 권세는 바로 하나님의 권세입니다. 우리가 진정 두려워해야 할 권세이지요.
마땅히 두려워할 자를 내가 너희에게 보이리니 곧 죽인 후에 또한 지옥에 던져 넣는 권세 있는 그를 두려워하라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를 두려워하라(눅 12:5).
이 권세는 영원하십니다.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아멘)(마 6:13)
하나님께서는 창조시 첫사람에게 그 권세를 위임하셨습니다.
1)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창 1:26-28; 1:29-31).
권세는 하나님께로 나지 않음이 없나니 모든 권세는 다 하나님의 정하신 바라
타락함으로 그 권세는 실종되었습니다.
예수님은 권세를 하나님으부터 받으셨습니다.
마 28:18
예수께서 나아와 일러 가라사대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權勢)를 내게 주셨으니
예수님은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받았습니다.
예수님은 모든 권세의 머리이십니다.
너희도 그 안에서 충만하여졌으니 그는 모든 정사와 권세의 머리시라(골 2:10).
예수님께는 마귀를 지배하는 권세가 있으셨습니다.
2
다 놀라 서로 물어 가로되 이는 어찜이뇨?
권세 있는 새 교훈이로다. 더러운 귀신들을 명한즉 순종하는도다 하더라(막 1:27;눅 4:36)
다만 어떤 이들은 그 권세를 보고 '저가 귀신의 왕, 바알세불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낸다'했습니다.
예수님께는 가르치시는 권세가 있었습니다. 그리스도는 성전에서 백성을 가르치시며 복음을 전하고 계셨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가르치심은 권세있는 자와 같고 바리새인과 서기관 같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의 사역은 권세가 있었습니다. 인위적이거나 냉랭하고 무기력한 사역이 아니라, 하늘의 권세로 충만하였습니다.
2
저희가 그 가르치심에 놀라니 이는 그 말씀이 권세가 있음이러라(눅 4:32).
예수님은 죄를 사하는 권세가 있으셨습니다.
그러나 인자가 땅에서 죄를 사하는 권세가 있는 줄을 너희로 알게 하리라 하시고 중풍병자에게 말씀하시되 내가 네게 이르노니 일어나 네 침상을 가지고 집으로 가라 하시매 (눅 5:24).
예수님은 심판하는 권세가 있으셨습니다.
아버지께서 아무도 심판하지 아니하시고 심판을 다 아들에게 맡기셨으니 ... 또 인자됨을 인하여 심판하는 권세를 주셨느니라(요 5:22, 27).
예수님께는 생명을 버리고 다시 얻을 권세가 있으셨습니다.
이를 내게서 빼앗는 자가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스스로 버리노라 나는 버릴 권세도 있고 다시 얻을 권세도 있으니 이 계명은 내 아버지에게서 받았노라 하시니라(요 10:18).
예수님은 이 권세로 원수를 용서하셨습니다.
아버지여, 저들의 죄를 용서하여 주옵소서.
예수님께서 저들을 위해 착한 일을 하셨습니다. 그들은 혜택을 입었습니다. 당사자는 물론 그 친지와 이웃까지도 예수님의 은혜를 입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결국 예수님을 배반했습니다. 십자가에 못박도록 내주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가지신 권세로 저들의 죄를 용서해주도록 하나님께 기도하셨습니다.
3. 예수님은 권세를 제자들에게 위임하셨습니다.
예수께서 나아와 일러 가라사대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마 28:18).
그리고 그 권세를 가지고 하나님의 용서를 드러내는 증인이 되라고 명하셨습니다.
오직 성령이 네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행1:8)
스데반도 예수님께서 주신 권세, 즉 용서하신 권세를 받아서 예루살렘에서 그 용서를 사용하였습니다.
요셉이 왜 많은 신앙인들의 모델이 되고 있습니까? 용서란 권세를 사용하였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 권세를 바로 사용할 사명을 가졌습니다.
용서란 참으로 어렵고 힘이 든 일입니다. 힘으로 안되고 능으로 안됩니다. 오직 하나님의 신으로 됩니다.
나는 얼마 전에 참 좋은 경험을 했습니다. 내 가정과 교회에 아픔을 남긴 사람을 용서하고 기도해주어야 했습니다.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용서의 권세가 축복하게 하신 줄 압니다.
이와 같이 우리 믿는 자들이 가진 권세는 생활 전반에 걸쳐 있습니다.
주님이 주신 권세로 새 계명(사랑)을 지키는 일은 가능합니다.
주님이 주신 권세로 죄의 유혹을 끊는 일이 가능합니다.
주님이 주신 권세로 겸손히 하나님을 섬기시는 일은 가능합니다.
주님이 주신 권세로 믿음이 가능합니다.
주님이 주신 권세로 선행이 가능합니다.
주님이 주신 권세로 천국 복음을 전하심이 가능합니다.
마무리하는 말
예수님은 우리 권세의 머리이십니다.
너희도 그 안에서 충만하여졌으니 그는 모든 정사와 권세의 머리시라(골 2:10).
권세를 위임받음
권세 받은 사람은 용서할 수 있습니다.
다윗은 위임받은 권세로 시므이를 칼로 칠 수 있었지만 대신 용서합니다. 그는 사면권, 곧 용서하는 권세를 사용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그를 향해 무고히 손가락질하는 원수를 위해 '저들의 죄를 용서하여 주옵소서' 기도하셨을 때, 벌써 사망의 권세에 대한 승리가 거기 있었습니다.
스데반의 씨가 움트고 있었습니다. 손양완 목사의 심장이 태반에 자리잡고 있었습니다.
권세 받은 사람은 전도할 수 있습니다.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는 일을, 가르쳐 지키게 하는 일을 할 수 있습니다.
보스톤 주변, 알릴턴 주유소엔 밥이라는 사람이 있답니다. 그는 주님으로부터 권세를 위임받고 자신의 직업과 사명을 어떻게 밀착시킬까 많이 생각하였습니다. 그는 그의 주유소에 예수님 당신을 사랑합니다라고 현수막을 걸지 않았습니다. 유리창에 차는 밥에게, 영혼은 예수님께란 표지를 써 붙이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주님과 함께 동업하고 있는 것을 사람들은 알 수 있었습니다. 그는 이미 수십 명을 예수 그리스도께 인도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에게 주신 권세를 아름답게 사용함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복을 받으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복하며 기도합니다.
바른 권세의 예화
미국 독립전쟁 때 펜실베니아에 피터 밀러라고 하는 목사님이 계셨습니다. 그 교회에 10년을 하루 같이 목사님을 괴롭히던 정말 원수 같은 사람이 하나 있었습니다. 차라리 교회에 안나왔으면 좋겠고 그렇지 않으면 다른 교회로 갔으면 좋겠는데 그래도 나와서 흠집을 찾아내고 또 만들어 수도 없이 괴롭혔습니다. 그 때 마침 독립전쟁이 일어났습니다. 그 당시 총사령관이던 워싱턴 장군이 간첩을 한명 잡았는데 그 못되게 굴던 녀석이 잡혔습니다. 밀러 목사님이 얼마나 속이 시원했겠습니까? 마음 속으로 그 놈 잘 잡혔다 라고 생각할만 하지 않았겠습니까? 군사 재판을 하고 사형 언도가 내려졌습니다. 이제 사령관의 싸인만 떨어지면 죽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밀러 목사님이 그 소식을 들었습니다. 피터 밀러 목사님이 그 머나먼 길을 달려가 워싱턴 장군을 만났습니다. "사령관님, 내가 책임을 질테니까 살려주십시오" "목사님이야 목사님의 교인이니까 살려달라고 하겠지만 이런 못된 놈을 살려주면 안됩니다" "아닙니다. 극단적으로 말을 하자면 그 사람은 십년 동안 하루 같이 저를 못살게 굴며 괴롭힌 저에게는 원수라면 원수같은 사람입니다" "그래요? 그런 사람입니까? 그러면 좋습니다"하고 싸인을 하고 그 사람을 밀러 목사에게 내주었습니다
(노하덕목사설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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