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dnesday, 25 February 2015

눅 20:9-18 책임이 있는 사랑

들어가는 말

우리는 무책임한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저마다 옳다는 소리, 권리를 주장하는 목소리는 있으나, 책임은 지지 않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들의 이를 따라 말하고 생각하고 결정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책임이 있는 사랑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독생자를 내어놓으시기까지 인류의 죄를 책임지셨습니다. 십자가는 하나님의 책임을 보여줍니다.
우리는 오늘 성경말씀을 통해서 우리 자신에게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포도원에 대한 책임을 절감하기 원합니다.



1. 삶의 현장은 하나님의 포도원입니다.

(9)이 비유(譬喩)로 백성(百姓)에게 말씀하시되 한 사람이 포도원(葡萄園)을 만들어 농부(農夫)들에게 세(貰)로 주고 타국에 가서 오래 있다가

오늘 주인은 소중한 자산을 농부들에게 맡겼습니다. 포도원을 세로 줍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담에게 하나님의 회심작 에덴 동산을 맡기셨습니다. 그러나 에덴에는 중앙에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를 하나님의 영역으로 존중하게 하셨습니다. 아담은 하나님의 포도원을 관리하는 책임자입니다.
보디발은 요셉에게 집안 제반 일을 맡기셨습니다. 요셉은 보디발의 아내를 소중히 지켰습니다. 하나님의 선악과를 존중할 줄 알았던 요셉은 애굽 총리까지 맡게 됩니다.
사울왕은 하나님의 포도원 이스라엘 왕국을 맡았습니다. 그에게는 지켜야 했던 법이 있었습니다.
제자들에게는 모든 족속을 포도원으로 맡기셨습니다.

왕권신수란 말이 있습니다. 중요한 말입니다. 책임을 생각하는 일꾼에게는 귀한 뜻이지요. 하나님의 포도원입니다.

어떤 사람은 국가적 책임을 맡았습니다.
어떤 사람은 시대적 책임을 맡았습니다.
어떤 사람은 역사적 책임을 맡았습니다.
어떤 사람은 영적 책임을 맡았습니다.
어떤 사람은 가정적 책임을 맡았습니다.
어떤 사람은 회사적 책임을 맡았습니다.
우리 모두는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으로부터 책임을 맡았습니다.저는 지난 주간에 경향신문의 [휴먼인뉴스]에서  불치병 천재시인 11살 매티 스테파넥에 관한 기사를 감동 깊이 읽었습니다.

발이 가려울 때/ 엄마와 함께 공룡의 등 위에 올라타는 생각을 하면 좋을 거야/ 그러면 발이 가렵다는 걸 잊을 수 있겠지
발이 가려울 때/ 산타 할아버지와 함께 북극에서 밤을 보내는 생각을 하면 좋을 거야/ 그러면 너무 추워서 발이 가려운 걸 느낄 수 없겠지
발이 가려울 때/ 닉과 벤과 함께 노는 생각을 하면 좋을 거야/ 걔들은 누구나 가장 좋아하는 친구들이니까/ 그러면 발이 가렵거나 말거나 신경쓰지 않겠지
또 좋을 거야, 발이 가려울 때/ 천사들 생각을 하면/ 그들은 만져도 우리를 가렵게 하지 않으니까
     (매티 스테파넥, ‘Heart Songs-마음의 노래’에서)

미국의 11세 소년 매티 스테파넥은 두 가지 희귀한 것을 갖고 있다. 하나는 근육무력증을 타고난 것이고 다른 하나는 시에 대한 재능이다. 그는 전자와는 싸우고 있으며 후자는 가꿔나가고 있다. 두 가지 노력으로 그는 이제 같은 나이 어린이들이 좀처럼 이루지 못한 찬란한 꽃을 피워냈다.
천재시인, 그러나 근육이 점차 약해지는 진행성 불치병으로 이미 형 두 명과 누나 한 명을 잃고 자신도 언제 그들의 뒤를 따를지 모르는 불행한 아이. 하지만 그는 나약하지 않다. 마음이 강할 뿐 아니라 따스하고 깊다. 그는 열 한 살에 불과하지만 정신적으로는 수십 년 산 어른들보다 지혜가 많은, 이미 모든 걸 깨달은 사람이다. 1백만부 이상 팔린 시집 ‘마음의 노래’ ‘마음의 노래로부터의 여행’을 낸 ‘세계적 시인’인 그가 이달 초 3번째 작품집을 출간했다. ‘마음의 노래를 통한 희망’. 벌써 뉴욕 타임스 베스트셀러 13위에 올랐다.
무엇이 산소탱크를 단 휠체어에 갇혀 있는 가녀린 소년에게 이토록 놀라운 영감과 에너지를 주었을까. 스테파넥의 답은 ‘긍정적 자세’다. 그는 17일 CNN의 ‘래리 킹 라이브’에 나와 이렇게 말했다. “때때로 저는 물어요. ‘왜 나인가’ ‘왜 나는 그렇게 힘든 삶을 살아왔나’ ‘왜 내 형제들은 죽었는가’ ‘왜 그것은 그만 사라지지 않나’라고요. 그리고 그때 다시 생각하지요. ‘왜 내가 아니어야 하는가’. 나보다 먼저 고통을 받았고, 그것을 이해 못하고, 더 아프게 될 가능성이 많은 어린이들에 비하면 제가 훨씬 낫다는 걸 말예요”
그는 이런 ‘좋은 생각’으로 문학뿐 아니라 의학적으로도 기적을 엮고 있다.
“의사들은 제가 하루도 못 살 것으로 생각했어요.
그런데 살았지요. 그래서 그들은 말했어요.
‘오케이, 6개월 이상 가지는 못할 거야’.
그러나 난 갔어요. 그리고 2년,
그들은 또 ‘오케이, 5년…. 5년이면 끝이야’.
전 5년을 살았어요. 그러니까 또 그들은 말하더라고요,
‘10년’. 그런데 지금 전 11살이에요. 이제 그들은 ‘10대, 때로는 청년’이라고 하겠지요.
하지만 전 101살까지 살 겁니다”
스테파넥은 메릴랜드주 어퍼 말보로라는 곳에서 대학 연구원인 엄마 제니와 함께 살고 있다. 이 엄마가 그와 누나·형들에게 무서운 병을 내려준 유전자 소유자다. 엄마는 의사에게 “왜 아이 넷이 다 태어나기 전에 말해주지 않았느냐”고 울부짖었지만 병원도 그 이전에는 알 수 없었다. 스테파넥의 아빠는 이혼해서 그의 곁을 떠났다. 학교를 그만두고 고교 과정을 재택 교육받고 있는 그는 3살 때부터 구술로 시를 썼다. 삶과 죽음, 도전에 관한 것들. 지금까지 지은 작품이 수천 편에 이르며 에세이, 단편소설, 삽화도 많다.
그는 왜 글을 쓰느냐는 물음에 “나와 같은 상황에 있는 이들이 어려움을 헤쳐나갈 수 있도록 돕는 데 가장 좋은 방식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인생은 선물이니 최선을 다해 그것을 만들어 가야지요. 나는 친구들이 폭풍 후에 할 일을 배우게 되기를 바랍니다. 삶의 폭풍을 맞고 슬퍼하기보다는 그것을 얼른 극복하고 다음 폭풍에 대비해야 하니까요”
그가 요즘 가장 즐겨 읽는 책은 여섯살 소녀의 눈을 통해 인종문제를 다룬 하퍼 리의 ‘앵무새 죽이기’. ‘보물섬’ ‘반지의 제왕’ ‘두 개의 탑’도 그의 독서 목록에 포함된다. 그는 “나의 내면은 호수처럼 조용하고 평화롭지만 바깥은 재잘거리며 흐르는 냇물과 같아서 영원히 할 말이 줄어들지 않고 흐르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스테파넥은 지난해 그의 소원 3가지를 이뤘다. 시집을 내는 것, 그의 영웅 지미 카터 전 대통령을 만나는 것, 오프라 윈프리 쇼에 나가는 것이다. 그는 카터와 함께 보스니아와 아프리카 문제를 ‘논’했다. 그의 팬은 카터말고도 많다. 제리 루이스, 에드 맥매흔, 스티븐 스필버그 같은 문화계 유명인사들이 그를 사랑하며 돕고 있다.
“어른이 되면 아빠도 되고 싶고, 작가도 되고 싶고, 대중연설가도 되고 싶다. 그리고 무엇보다 평화운동가가 되고 싶다”고 말하는 매티 스테파넥. 그는 이번 시집 제목인 ‘희망’과 ‘테러리즘’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나는 사람들이 제 시를 읽고 새로운 느낌을 얻게 되길 바랍니다. 비겁하지 않고 스스로의 삶을 망가뜨리지도 않는 생각이지요. 절대로 화를 내며 맞서서는 안돼요. 우리는 폭탄으로 이 전쟁을 이길 수 없습니다. 말(words)로 이겨야 해요”
스테파넥은 이미 79세의 지미 카터와 생각이 일치하는 평화운동가다. 자신의 성치 않은 몸을 사랑하고 다른 모든 사람들도 똑같이 사랑하는 아름다운 시인이다.

[정기수기자 ksjung@kyunghyagn.com〉 경향신문 4월19일


우리가 사는 삶의 현장은 하나님의 포도원입니다. 스테파닉은 사망의 그림자가 집요하게 끈적거리는 그의 포도원을 긍정적으로 잘 가꾸고 있습니다. 현실을 부정하지 않고 긍정적으로 작품을 만들어 갑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책임 있는 소년 속에서 하나님의 작품을 시작하십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우리는 어떤 포도원에 서 있습니다. 우리의 포도원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인생은 선물이니 최선을 다해 그것을 만들어 가야지요."


2. 책임은 의무를 감당할 때 맺히는 열매입니다.

(10)때가 이르매 포도원(葡萄園) 소출(所出) 얼마를 바치게 하려고 한 종을 농부(農夫)들에게 보내니 농부(農夫)들이 종을 심(甚)히 때리고 거저 보내었거늘

    '한 사람이 포도원을 만들어'. 포도원을 만드는 주인의 마음은 이사야서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나의 사랑하는 자에게 포도원이 있음이여 심히 기름진 산에로다 땅을 파소 돌을 제하고 극상품 포도나무를 심었었도다 그 중에 망대를 세웠고'(사 5:1, 2).

주인이 포도원을 만들 때는 가장 기름진 땅에 포도원을 만듭니다. 땅을 파고 돌을 제거하는 모든 노력을 아끼지 않으며, 포도원을 안전하게 보호하기 위해 울타리를 치고, 망대를 세웁니다.
이스라엘의 역사를 살펴보면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이와 같이 위하셨습니다. 그들을 위해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을 마련해 주셨으며, 암탉이 병아리를 날개 아래 보호하듯 졸지도 주무시지도 않으시면서 이스라엘을 보호하셨습니다 (참조, 시 121:3-8).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때가 이르매 포도원 소출 얼마를 바치게 하려고'.

소출 얼마를 기대한 것입니다. 이사야서에서는 주인의 심정을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좋은 포도 맺기를 바랐더니'(사 5:2).

주인이 포도원을 최선을 다하여 포도원을 만들고 극상품 포도나무를 심어 농부에게 맡기는 것은 좋은 소출(포도) 얼마를 얻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많은 은혜를 베푸심도 얼마의 열매를 얻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백성의 열매를 전체 다 요구하시는 것이 아니라 '얼마를' 요구하십니다.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것이지만 '얼마를'요구하십니다.

성경에 이런 하나님의 기대를 저버리고 포도원을 망친 사람들의 예가 있습니다.
들릴라는 삼손이 푹 빠질 만큼 매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총명하고 담력도 있습니다. 인내와 끈기도 있습니다. 그녀의 민족을 사랑하는 애국심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 좋은 달란트를 가지고도 그녀는 책임 없는 사랑을 합니다. 소출 얼마는 바치기 실어하는 무책임한 사랑입니다.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소출 얼마에 인색하여 삼손과 자신의 인생을 망칩니다.
그에 반하여 라합은 그와 처지가 같은 이방 여인이었을지라도 이스라엘의 정탐꾼을 책임지고 숨겨줍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에 그의 소출 얼마를 바친 겁니다. 그로 인하여 그녀가 얼마나 큰복을 받게 되는 지 모릅니다.
오르바와 룻이 처지가 동일한 나오미의 며느리인데 룻은 하나님 나라 역사에 길이 남는 선택을 했습니다. 그 시어머니를 책임지려는 사랑의 열매란 생각이 듭니다.
아합과 나봇이 같은 포도원을 소유했습니다. 그러나 아합은 자신이 가진 권력을 사용하여 나봇의 포도원을 빼앗고 그곳에 자신의 궁궐 정원으로 삼았습니다. 하나님의 기업을 자신의 유락시설로 삼았던 겁니다.  그러나 나봇은 포도원이 조상 대대로 받은 하나님의 기업임을 죽음으로 고백하였습니다. 분명히 아합에게 팔았으면 돈도 많이 받을 수 있었지만, 하나님의 기업을 말씀대로 책임지다 순교하였습니다. 나봇의 받은 기업을 죽기까지 책임지는 사랑은 성경이 감동적으로 보도하고 있습니다.

이런 마음을 아는 하나님의 사람들은 아름답게 충성을 합니다.

사도행전에 9:30에 보면, 도르가라는 여선지자가 나옵니다. 그녀는 환경이 그렇게 완벽하게 갖추어진 것은 아닙니다. 부모도, 남편도, 자녀도 나타나 있지 않습니다. 재산이나 지위도 없었습니다. 그가 가진 한 가지 확실한 재산이라면 바늘과 실이었습니다. 그녀는 그녀의 손에 있는 것이 무엇이냐 질문을 받았다면, 바늘이나이다 하였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의 손에 들린 지팡이를 사용하신 것처럼, 도르가의 손에 있는 바늘을 사용하셨습니다.  그녀는 받은 바늘로 자신의 주변 어려운 과부들을 책임지는 사랑을 하였습니다.

"선행과 구제하는 것이 심히 많더니."(행9:36)

지난 주간에는 메트로 토론토 컨벤션 센터에서 "Mission Fest 2002"이 열렸습니다. 그곳에서 발표된 간증을 토론토 스타가 기사화 하여 여러분에게 소개합니다.

미 선교사 Dayna Curry(30)와 Heather Mercer(24)은 아프카니스탄을 맡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아프가니스탄에서 한 비정부기구(NGO)에 소속되어 활동하던 중에 작년(2001) 8월에 복음을 전했다는 죄목으로 강경회교도인 탈리반 정권에 의해 다른 6명의 동료 선교사들과 함께 체포되어 수감되었다.
11월 13일, 북부 동맹군에 의해 구출된 후에 그들은 기독교에 관심있는 마을 사람들을 모아서 예수 비디오를 보여 주다가 체포되었다고 고백하였다. 교회에서 성장한 커리 선교사는 자기를 심문한 심문관 한 사람에게까지 예수님을 전하였다고 한다. 머써 선교사는 이렇게 말했다.
"저는 고향에 있을 때보다 아프가니스탄에서 더 많이 예수님을 전했지요. 그건 정말 가치있는 일이구요. 예수님과 동행하는 것에 비견될 고난이란 없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위해 죽을 준비가 되어 있었습니다."
머씨의 증언이다.
"우리를 위해서가 아니라 오직 예수님을 위해서였지요."

작년 9.11사태이후, 강경 회교도 신정 정권인 탈리반 치하인 아프가니스탄에서 기독교를 전파하거나 기독교로 개종하는 것은 중죄에 해당하며, 대개는 사형에 처해졌다.
오늘 날 전도자들은 복음을 전파하는 데에 많은 위험과 도전에 직면해 있다. 브라더 앤드류가 세운 세계적인 선교기관인 "Open Door With Brother Andrew"의 한 전단에는
"주 예수는 우리가 세상 모든 나라에 복음을 들고 가야한다고 명하셨다. 만일 어떤 나라가 군대나 경찰, 그들의 문화나 종교로 반대할지라도 우리는 여전히 가야만 한다"고 쓰여있다. 그러므로 9.11 사태 이후의 이슬람 국가에서의 선교활동 역시 중단되지 않고 계속되어 왔던 것이다.
Dayna Curry와 Heather Mercer는 독일에서 시작된 기독교 구호단체인 "Shelter Now" 소속으로 작년 8월 3일 기독교를 퍼뜨렸다는 혐의로 다른 6명의 선교사들과 함께 체포되었었다. 그들은 카불에 있는 황폐된 감옥 - 구멍만 뚫어놓은 변기에서 나오는 악취와 고양이 크기 만한 쥐들이 기어다니는 감옥에 수감되어 있었다. 미국 중산층 출신의 여선교사들에게는 도무지 견뎌내기 어려운 환경이었다. 메트로 토론토 컨벤션 센터에서 열린 "Mission Fest 2002"에 초청연사로 참석한 머써는 이렇게 말했다.
"저는 무섭고 힘들고 처음에는 어찌할 바를 몰랐지요."
"저는 목숨을 바칠 각오가 되어 있었어요. 예수님께는 모든 것을 바칠 수 있습니다. '예수님 제가 만일 죽는다면 그것은 당신을 위한 것입니다'라고 말씀드렸지요."
"그러나 여러분이 아시는 것처럼 예수님은 정말 사랑스런 주님이시죠. 그분은 일하셨고 저를 살려주셨습니다."
이 두 선교사는 말하기를 그들의 주님의 임재가 석달 동안의 고통스런 기간 동안에 한번도 그들을 떠나지 않았다고 한다. 특히 9.11사태 이후 아프칸 탈래반 정권에 대한 미국의 보복 공격이 시작된 이래로 여건은 더욱 악화되었다. 어느날 밤 커리 선교사가 회충약을 한 알 먹자 곧 25Cm가 넘는 촌충 한 마리가 그녀의 목을 통해 입 밖으로 기어 나오기도 했다.
그들은 감옥 안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찬양과 기도로 보냈다. 공습이 시작되면서 침대 밑에 엎드려 있으면서 그들은 핍박 받는 복이 무엇인지 깨닫게 되었다. 15세에 예수님을 영접한 머써는 이렇게 생각했다.
'야, 이건 내 인생에서 최고의 특권이야. 나는 예수님을 전하다가 실제로 감옥에 들어온 것이니까. 이것이 바로 주님이 걸으셨던 길이었지.'
이번 수감되기 일년 전에도 탈리반에 의해 카불 시내 거리에서 공개적으로 매질을 당한 적이 있었던 커리 선교사도 같은 고백을 했다.
"우리가 체포되었던 것은 하나님의 주권적인 섭리였지요. 저는 감옥에 있게 된 것을 감사했어요. 주 예수님과 함께 dT는 기회였거든요. 주님은 나를 두렵지 않게 해주셨습니다. 이제저는 그가 결코 나를 버리지도 않고, 결코 떠나지도 않으신다는 것을 압니다. 우리 모두가 주님의 보좌 앞에 서게 될 때에 오직 한 가지로 판단 받게 될 것입니다. 세상에 있는 동안에 얼마나 많은 영혼을 건져내었는가?"
자신들의 체험을 책으로 쓰고 있는 머써와 커리, 두 선교사는 아프가니스탄으로 돌아가기를 고대하고 있다. 그들은 "How can I not go back?"라고 머써 선교사는 반문한다. "하나님은 우리를 아프카니스탄에 부르셨습니다. 우리는 그 사람들의 필요를 보았고 그들은 우리를 원하고 있습니다. 할 일은 너무 많고 문은 활짝 열렸습니다. 우리는 아무런 주저함이나 후회가 없습니다. 우리는 다시 가서 일할 것입니다.


우리가 연약하지만, 하나님 앞에서 책임 있는 사랑은 이토록 감동적입니다.

"How can I not go back?"

하나님 앞에서 우리는 어떤 의무를 책임있게 감당하고 있습니까? 그 책임으로 하나님께 대한 사랑을 표현하십시오.


3. 책임은 그리스도를 왕으로 모심으로 완성됩니다.

(13)포도원(葡萄園) 주인(主人)이 가로되 어찌할꼬 내 사랑하는 아들을 보내리니 저희가 혹(或) 그는 공경(恭敬)하리라 하였더니 (14)농부(農夫)들이 그를 보고 서로 의논(議論)하여 가로되 이는 상속자(相續者)니 죽이고 그 유업(遺業)을 우리의 것으로 만들자 하고 (15)포도원(葡萄園) 밖에 내어쫓아 죽였느니라

포도원은 구약에서 자주 인용된 이스라엘을 말하며 또한 천국(교회)을 상징합니다(시80:8; 사5:1-7; 막 12:1).
농부는 백성을 보호하고 인도할 책임이 있는 영적 지도자를 의미합니다.
종은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했던 선지자들을 의미합니다.
아들은 성자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킵니다.
그런데,
포도원 밖에 내어쫓아 죽였다는 말씀이 나옵니다.  예수께서 예루살렘 밖 골고다에서 죽으실 것을 예언한 말씀입니다.
"이는 상속자니 죽이자"고 그들은 말했습니다. "우리가 그 아들을 죽이기만 하면 보낼 아들이 더 없으니 포도원 밖에 내어쫓아 죽였던 것입니다. 악한 농부의 비유는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메시야로 받아들이지 않은 것을 비유로 말씀하고 있습니다. 많은 유대 지도자들은 머릿돌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왕으로 영접하지 않았습니다. 인류를 구원하러 오신 메시야, 예수 그리스도를 왕으로 영접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포도원을 맡은 농부인 유대인들은 주인되신 하나님의 아들을 십자가에 못박아 죽였습니다.

참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취는 빛이 있었으나 왕으로 영접치 않는 자는 ‘거치는 돌’이 되시어 심판을 받게 됩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유대인들을 버리시고 그 포도원을 다른 이방인들에게 주실 것입니다. 유대인의 사명은 이방인들에게 옮겨집니다. 이 비유는 책임있는 그리스도인들이 그리스도를 왕으로 온전히 영접해야 함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왕으로 모시고 살았던 역사적인 인물 가운데 윌리엄 윌버포스란 분이 있다.
1759년 8월 24일, 윌리엄 윌버포스는 태어났닸. 제임스 울프 장군이 퀘백을 점령하고 육해상 전누에서 프랑스를 물리친 해였다.
그는 하나님의 정치가(God's politician)란 책명에 걸맞는 삶을 살았다.     그의 인생 목표는 관습을 개혁하는 일이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노예무역을 금지하는 것이었다.

   당시 영국은 세계적인 해군력과 바다를 지배하던 힘으로 아프리카 흑인들을 북미대륙으로 실어 나르는 일에 많은 국력을 쏟아 붓고 있었다. 그러기도 할 것이 당시 영국의 수입 1/3이 노예 수송에서 들어온 것이라니 알만하다. 왕족, 귀족, 경제인, 정치가 할 것 없이 노예 장사한 이익에 중독들이 되어 있었다.

    노예 해방을 말하는 사람은 매국노처럼 인식되던 시대에 그는 살았다. 노예무역이 국가의 번영을 가져온다고 생각했고, 노예제도의 폐지는 무역을 망치는 것이라 했다. 노예문제는 안보에도 중요하다는 것이 당시 사회적 통념이었다.

  어떤이는 150여년 동안 약200만이나 북미대륙으로 노예로 팔려갔다고 하지만, 1776넌까지 영국이 프랑스, 스페인, 영국 식민지에 공급한 노예 수는 약 300만 정도였다. 그리고 더 비참한 것은 노예선 안에서  죽어 간 흑인들은 10%-25% 정도였다. 살아 남은 자 중에서도 1/3은 새로운 땅에 정착하는 가운데 죽어갔다.

    1783년 종(Zong)이란 노예선에서 벌어진 잔학 행위는 당시 노예들의 비참한 상황을 적나라하게 보여 준다. 이 배는 대서양 중앙 항로에서 길을 잃게 되었다. 그때 전념병이 돌아 60명의 노예와 7명의 선원이 죽었다. 더 무서운 것은 나머지 132명이나 되는 노예들도 바다 한 가운데 던져 버렸다. 족쇄가 채워진 채 그들은 수장되고 말았다. 마지막 10명은 족쇄를 푼 채 바다에 뛰어 내렸는데, 그 중 한 명이 배를 잡고 살아 나와 그 진상이 세상에 알려졌다. 선주는 돌아와서 보험금을 받았지만, 보험회사는 민사소송에서 졌다.
당시 대법원장은 이렇게 말했다.
'마치 말을 바다에 빠뜨린 것이나 다를 바 없다.'
당시 법무부 장관은 간단히 말했다.
'남은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서 물건을 바다에 던진 것과 같다.'
법무부 차관은 이렇게 거들었다.
'주인에게는 잔인하다거나 부당하다는 생각없이 자기가 적절하다고 여기는 만큼 얼마든지 노예를 물에 빠뜨릴 수 있는 명백한 권리가 있다.'
지도자들이 이런 몰상식한 폭언을 남기고 있다.
그들에게 노예는 '가재도구의 문제'였던 것이다.

이런 열악한 사회 풍토 속에서 뜻을 세우고 노예제도를 영구히 폐지하는 법안을 통과시키는데는  56년이 걸렸다.

그는 150번이나 되는 국회 논쟁을 통해서 불같은 사자후를 토했다.
"영국이 진정 위대한 나라가 되고자 한다면 하나님의 법을 지켜야 하는데 노예제도는 분명 하나님의 분노를 자극하는 일이다. 기독교 국가를 자처하는 영국이 황금에 눈이 멀어 노예제도를 갖고 있다니.....  . 이러고도 오래 살아남은 제국은 역사에 없었다."

그를 '영국의 양심'이라고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 있다.
그가 이 막중한 사명을 감당할 수 있었던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온 우주의 왕이라고 확신하는 믿음이 기본이 되었다. 그리고 뜻을 정하고 하루 두 시간씩 기도와 말씀으로 보냈다는 것은 유명하다.(설교문: 노하덕목사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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