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turday, 28 February 2015

마20:20-28 영적 거인이 되는 길

들어가는 말

자녀 출세는 어떻게 시킬 것인가? 부모된 분들의 한결같은 소원입니다.
부모님들의 자녀를 향한 소원은 거인이 되는 것입니다. 머리가 되고 꼬리가 되지 않기를 바라는 것이 부모의 소원입니다. 어떻게 소자를 거인으로 키울 것인가 이것 또한 우리 모든 부모의 깊은 관심사입니다.
오늘 말씀 안에는 하나님께서 그 자녀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서 어떻게 거인될 수 있었는가를 보여주십니다.
우리 주님께서 들려주시는 거인론을 들으시고 자녀를 거인으로 키울 뿐만 아니라, 우리 자신도 거인이 되는 축복을 받으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주님께서 전해주신 메시지의 핵심은 하나님 나라에서의 거인은 앉아서 섬김을 받는 자가 아니라 서서 섬기는 자라는 것입니다.


1.사람에겐 누구나 타는 목마름이 있습니다.

20 그 때에 세베대의 아들의 어미가 그 아들들을 데리고 예수께 와서 절하며 무엇을 구하니
21 예수께서 가라사대 무엇을 원하느뇨 가로되 이 나의 두 아들을 주의 나라에서 하나는 주의 우편에, 하나는 주의 좌편에 앉게 명하소서

육체를 입은 인간에겐
타는 목마름이란 것이 있습니다.

기업가에게 돈을 향한 목마름이 있고
정치가에게 권력을 향한 목마름이 있고
스포츠인에게 늘 힘을 향한 목마름이 있듯이
신앙인에게도 꼭 무엇을 먹고 입고 마실까 하는 염려 아니라도
영적 목마름이란 것이 있습니다.

예수님의 열두 제자 가운데 두 아들을 제자로 바친 어머니가 성경에 나옵니다.
살로메라고 알려진 요한과 야고보의 어머니입니다.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와는 자매관계로 알려질 만큼 가깝게 지낸 분입니다.
남편 세베데는 부자 어부였습니다. 제사장과도 친분이 있는 유력한 사회적 위치에 있었습니다.
그러나 요한과 야고보는 아버지와 그물을 버려두고 예수님을 좇았습니다. 두 형제가 자신들의 유력한 위치와 부(富)보다 예수님의 부르심을 더 귀한 것으로 생각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부친과 부친에 속한 부를 다 뒤로하고 예수님을 따르는 야고보와 요한의 헌신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계셨습니다.
야이로의 딸을 살리실 때 그들을 데리고 들어가셨습니다.
변화산상에 그들을 데리고 산에 오르셨습니다.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실 때도 그들은 예수님 곁에서 기도하게 하셨습니다.

야고보와 요한의 어머니 살로매는 그런 두 아들을 예수님께 바치고 그 목마름을 가지고 예수님께 나아온 것입니다. 주님을 통해 이루어지는 나라에서 출세하길 바라는 한 가지 목마름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메시아의 왕국에서 두 아들의 출세!
그것은 예수님 가장 가까운 곳에서 주님을 섬기면서 수제자라는 별칭까지 받고 있었기 때문에 외형상 옳게 보였습니다.

21 예수께서 가라사대 무엇을 원하느뇨 가로되 이 나의 두 아들을 주의 나라에서 하나는 주의 우편에, 하나는 주의 좌편에 앉게 명하소서

주의 나라에서 그분의 좌우 편에 앉는다는 것은 가장 큰 직분을 의미한 것입니다.
그렇다고 그녀에게 믿음이 없다는 비난은 옳지 않습니다. 이런 요구는. 예수님께서 메시야시며 주님의 나라 실체를 믿는 굳건한 믿음을 전제로 한 요구였습니다(Wycliffe). 또 이런 부탁은 예수님과 친밀한 관계에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기도 했습니다.

우리는 이런 목마름을 가지고 주님께 나아올 수 있어야 합니다. 주님께 주님께서는 그런 어머니와 그 목마름을 아십니다. 그리고 나무라지 않습니다.

마음 속에 근심 있는 사람 고하라 주께 고하라 주께!

거인이 되길 바라는 마음은 중요합니다.
더구나 하나님께서 맡겨 주신 자녀를 영적인 거인으로 키우고 자신이 영적 거인이 되는 일은 가장 중요한 일입니다.

그러나 영적 거인이 되는 일은 예수님 좌우 편에 자리만 잡고 앉는다고 되지 않습니다. 자신들의 영광과 성공만을 추구한다고 채울 수 없습니다.
우리의 관심사가 예수님의 고난과 영광에 연결되어야 한다는 데 있습니다.  (고전10:31).

<성공하는 사람들의 7가지 법칙> 이라는 책을 쓴 스티븐 코비는 '고갈'과 '풍요의 관념'을 말합니다. 사람들은 자기 것을 주면 모든 것이 다 고갈 될 것이라는 두려움을 가집니다. 그래서 자꾸 모으려고 하고, 쌓아두려고 합니다. 그러나 성숙한 사람은 쌓아두는 대신 자신의 소중한 것을 남에게 줍니다. 주면 줄수록 풍요하고 새로운 것이 나오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성도의 풍요하게 되는 원리입니다.

마중물의 원리도 이와 같습니다. 펌프의 작동원리 말입니다. 펌프가 있습니다. 펌프는 물이 빠지면 작동이 되지 않습니다. 물이 나오게 하려면 먼저 큰 바가지에 물을 떠서 펌프에 마중 물을 부어야 합니다. 그리고 펌프질을 하면 샘 속에 있는 물이 펑펑 쏟아져 나오게 됩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이 메시아 왕국의 약속에 참여할 수 있는 길은, 그 나라에서 크게 되는 일은 자리를 차지한다고 이룰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자신의 삶을 생수의 근원이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란 펌프에 붓고, 그분의 생수가 내 안에 넘쳐오도록 끊임없이 펌프질을 할 때, 진정한 영생을 누릴 수 있습니다. 그 분 안에서 솟아나는 생수를 마시고 사는 것입니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 의를 구하라는 말씀처럼, 우리 자신을 하나님을 영생을 얻기 위한 마중물로 드리십시오. 내 안에 그분의 영광이 가득하도록 주의 영광을 구하십시오. 자기 영광을 주님  안에 붓고 내 안에 하나님의 영광이 가득 넘쳐오도록 하십시오. 그런 사람 안에서 영적 거인이 이루어집니다.




2. 거인은 하나님께서 만드십니다.

22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희 구하는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 나의 마시려는 잔을 너희가 마실 수 있느냐 저희가 말하되 할 수 있나이다
23 가라사대 너희가 과연 내 잔을 마시려니와 내 좌우편에 앉는 것은 나의 줄 것이 아니라 내 아버지께서 누구를 위하여 예비하셨든지 그들이 얻을 것이니라


그녀는 구하는 것의 의미를 모르고 있었습니다.

딸이 시집가는 날 오전, 머리를 다듬기 위해 잠시 미장원에 들렸던 한 50대 아주머니는 『퍼머를 하는 것이 어떠냐』는 미용사의 말에 무심코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그리고 그 아주머니는 머리에 퍼머약을 바른 채 여성잡지를 이리 저리 뒤적이며 무려 3시간 동안을 미장원에서 보내고 말았습니다. 결혼식장은 나타나지 않는 신부 어머니 때문에 뒤죽박죽이 되어버렸고, 뒤늦게 딸의 결혼식을 떠올린 아주머니는 부리나케 결혼식장으로 달려갔지만 이미 결혼식은 끝나고 말았습니다. 이 경우는 건망증입니까? 아니면 치매입니까?

내가 추구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아는 것은 참으로 중요한 일입니다. 자기 자신만을 위해 사는 이기적인 마음을 가지고 있을 때, 자신의 요구를 잊게 됩니다.

목마름은 인간이 해결할 수 없습니다.
주님께서 목마르셨고 쓴잔을 마셨습니다.

예수님은 세 번째 수난 예고를 하셨습니다.
첫 번째는 마태복음 16장 21절에서 베드로가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니이다' 말씀하셨을 때입니다.
두 번째는 마태복음 17장 22-23절에서 변화산 사건 이후입니다.
세 번째는 마태복음 20:17-18절에서입니다.
중요하기에 세 번이나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의 관심사는 온통 눈앞에 다가온 고난과 그 이후의 부활에 있었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이 수제자라고 부르고 있는 야고보와 요한의 어머니는, 예수님 가장 가까운 곳에서 늘 함께 있었던 제자들은 영적으로 깨어있지 못했기 때문에 몰이해 속에 깊이 파묻혀 있습니다.
이는 건망증도 치매도 아닙니다. 영적인 둔감증입니다.

왜 예수님이 지금 예루살렘을 향해서 올라가고 계십니까? 영광스러운 자리에 오르시기 위해서 올라가시는 것 아닙니다. 십자가를 지시고 죽으시기 위해서 올라가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우편과 좌편은 두 강도가 달린 십자가입니다.
저들이 요청한 지위의 임명권은 전적으로 아버지의 대권에 속함을 알아야 했습니다(Wycliffe). 주를 위한 봉사는 자리를 얻는 조건이 전제되지 말아야 합니다(롬14:7,8) 우리 성도들은 아버지의 부르심과 그분의 뜻을 좇는 것을 최고의 경건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엡5:17).
영적 거인은 하나님 아버지께서 우리를 위해 예비하신 자리를 감사함으로 받아,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사로 충성할 때 이루어집니다. 은사는 하나님 아버지께서 예비하신 사람들에게 하나님께서 직접 주십니다.
결국 야고보와 요한의 모친은 두 아들이 예수님의 우편과 좌편에 달린 두 강도의 고난을 요구한 셈입니다.
답답하신 주님께서는 이렇게 대답하셨습니다.

22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희 구하는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 나의 마시려는 잔을 너희가 마실 수 있느냐 저희가 말하되 할 수 있나이다

본문에서 '세례'는 하나님의 진노 곧 고난을 의미합니다.(시 75:8, 사 51:17) 예수님의 잔과 세례는 갈보리에서 당하실 고난과 죽음을 가리키는 것이었습니다(26:39-42/눅 12:50참조).
예수님께서는 그들도 주님의 잔과 세례(침례)를 맛볼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말씀하신 대로 야고보는 첫번째로 순교한 제자가 되었습니다(행 12:2). 요한도 참혹한 박해를 받고 밧모섬에 유배당하였습니다(계 1:1-).
그러므로 주님께서는 당하신 고난의 잔을 마실 수 있는가 묻고 있습니다.

거인은 자신이 되자고 되는 일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만드십니다.

        당대 최고의 궁중 교육으로 무장된 불혹의 나이에, 모세는 거인 될 꿈을 안고 일어났다.
동족을 돌아보는 구원자의 열정으로 일어났다.
하지만 거인이길 원했던 그의 꿈은 살인자란 오명만 남겼다.
그리고 미디안 광야로 숨어들어 갈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모세를 광야에서 부르셨을 때, 한 사람도 구원할 수 없던 그는, 200만 하나님의 백성을 출애굽시키는 거인 되었다.
          갈릴리 바다의 어부들을 크게 본 사람들은 없었다.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무엇을 마실까 염려하며 살다 죽어갈 소인들이었다.
그러나 주님께서 그들을 부르셨을 때, 그들은 거인으로 변화되기 시작했다.
부활의 권능을 입고 영적 거인들로 일어섰다.
          유대인들이 버린 막달라 마리아, 그 외롭고 비천한 여인은 예수님을 만난 후, 부활의 증인으로 변화되었다.
          늘 목이 마르던 수가성 여인은 예수님을 만난 후, 영적으로 버려진 사마리아 사람들을 복음화시키는 영적 거인이 되었다.
          바울은 마가를 거인으로 키우길 원했다. 그리하여 그와 함께 선교지로 떠났다. 그러나 마가는 여행 중, 버가에서 집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는 소인이었다. 바울같은 거장도 마가를 포기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바울이 버린 마가를 데려다가 거인으로 키우셨다. 바울이 훗날 옥중에서 마가를 데려오라 편지에 쓸 만큼 소중한 거인이 되어 있었다.


때로 주님께서는 그 거인을 만드는 방법으로 고난을 사용하십니다.
해산의 고통 속에 자녀를 얻게 하시는 것처럼 말입니다.
ROLPH SOCHMAN은 그의 저술, '고통의 의미(The meaning of suffering)'에 고난 당하는 이유 몇 가지를 말합니다.
첫째, 우리가 지은 죄 때문에 고난이 옵니다.
둘째, 개인이 가지는 죄책감 때문에 고난이 옵니다.
셋째, 집단적인 죄악 때문에 고통이 옵니다.
넷째, 전쟁을 통하여 오는 고난이 옵니다.
다섯째, 잘못된 판단이나 실수 때문에 고난이 옵니다.
여섯째, 이해할 수 없는 고난이 옵니다.
일곱째, 축복을 주시는 고난이 옵니다.
축복을 주시는 가장 복된 고난은 십자가 고난입니다. 축복을 주시는 고난을 요셉, 욥은 가졌습니다. 이런 고난의 잔을 마실 수 있어야 하늘 나라에서 보좌에 앉게 되는 것입니다. 십자가 고난의 비밀을 아는 사람은 복된 사람입니다.

사랑하는 서머나 교우 여러분,
우리 자녀들이 거인 되길 원하십니까?
우리 자신이 거인 되길 원하십니까?
고난을 두려워하지 말고, 하나님을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3. 거인은 섬기는 삶 중에 일어납니다.

25 예수께서 제자들을 불러다가 가라사대 이방인의 집권자들이 저희를 임의로 주관하고 그 대인들이 저희에게 권세를 부리는 줄을 너희가 알거니와
26 너희 중에는 그렇지 아니하니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27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너희 종이 되어야 하리라
28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거인이 되기 위한 무언가를 하기 원하는 사람은 거인을 바라보고, 거인을 따라 사는 것입니다. 거인이 될 수 있는 지름길은 거인을 따라 사는 것입니다.
인류 역사에 가장 큰 거인을 들라면 당연히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거인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삶의 양식은 섬기는 삶이셨습니다.

'섬김(diakonoj / diakonos)'이라는 단어의 의미는
①'식사 시중을 하다(waiter)입니다. 레스토랑에 가면 웨이터가 있습니다. 손님들의 식사를 돕기 위해 기다리고 있는 사람입니다. 언제라도 필요할 때 찾아 와서 고객이 즐겁고, 편하게 식사를 할 수 있도록 돕는 자를 말합니다.
②'돌보다, 돕다(to serve)'입니다. 나의 필요에 의해서가 아니라 상대방의 입장에서 서서 돌보아주고 도와주는 것을 의미합니다. 여기서 영어 표현인 service 라는 단어가 나왔습니다. 또한 이 단어에서 servant(종)이라는 말이 생겼습니다. 그리고 원래 집사라는 단어 역시 섬김, '디아코노스deacon'에서 나온 말입니다. 교회에서 집사라는 직분은 '섬기는 자'를 의미합니다.(인용)

예수 그리스도는 바로 이런 거인이셨습니다.
수건을 때로는 허리에 두르고 발을 씻기시는 거인이셨어요.
예수님께서는 섬기시는 교훈의 본보기이셨습니다(빌 2:1-참조).
오래전 프랑스 파리에서 실재로 있었던 이야기입니다. 어느날 불이 났습니다. 큰 불이었습니다. 아파트 건물이 불에 휩싸였습니다. 불은 아래층에서 났기 때문에 4층 이상은 불 때문에 길이 막혔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피신을 하였지만 아직 피신하지 못한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4층에 아버지와 세아이가 살고 있었습니다. 아이들은 어렸습니다. 아버지는 아이들을 살려야 한다고 생각하고 옆집 아파트쪽으로 뛰었습니다. 옆집과의 거리는 불과 1미터 거리였습니다.
아버지는 뛸 수 있지만 아이들은 뛸 수 없었습니다. 아버지는 저쪽 집 창문과 이쪽을 잇는 다리가 되었습니다. ""얘들아, 빨리 아버지 등을 타고 건너거라"" 아이들은 조심스럽게 아버지의 등을 타고 건넜습니다. 셋 아이가 모두 건넜습니다. 아이들이 다 건너고 아버지가 일어 서려는순간 기둥이 무너지면서 4층이 내려 앉았습니다. 그때 아버지도 함께 떨어졌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바로 이런 희생을 통한 섬김입니다.

거인 되길 원하는 사람은 예수님처럼 섬기는 일에 앞장서야 합니다.  이 세상의 사람들처럼 "주인 정신"을 행사하는 것과 다릅니다. 거인은 자기 뜻과 교만으로 다스리지 않고 겸손하게 섬깁니다.

프로렌스 나이팅게일은 스스로 전쟁터에 나아가 섬겼을 때, 당대의 거인이 되었습니다.

이방인의 대인들이 섬김을 받으면서 사는 길과는 다릅니다. 이방인들이 피라미드의 꼭대기로 올라가 섬김을 받는 일을 출세라 한다면, 우리 주님께서는 피라미드의 아래로 내려가 섬기시는 것을 출세라 하십니다. 세상에서는 지위가 높이 올라가면 올라갈수록 자신이 섬겨야 할 자들의 수가 점점 적어집니다.

"예수께서 제자들을 불러다가 가라사대 이방인의 집권자들이 저희를 임의로 주관하고 그 대인들이 저희에게 권세를 부리는 줄을 너희가 알거니와."

우리가 잘 아는 몰로카이 섬의 성자로 일컬어지는 다미엥은 나환자들을 돌보는 일에 자신의 일생을 다 바쳤습니다. 그가 처음으로 그곳에 도착했을 때 나환자들은 그를 보며 건강한 사람이 왔다고 마음의 문을 열지 않습니다. 그 때 따미엔이 어떻게 했습니까? 그는 스스로 나병환자가 되었습니다. 그의 몸에 나병이 번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진실된 마음으로 하나님께 감사드렸습니다.

"오, 하나님! 제가 저들 앞에서 '우리'라는 말을 비로소 사용할 수 있게 해 주시니 정말 감사합니다."

그는 나병환자들을 돌보면서 우리라는 말을 쓸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자기의 몸에 나병이 번지면서 비로소 그는 그들과 함께 하나가 되어 우리라는 말을 쓸 수 있게 된 것을 감사했습니다.

우리는 어떻게 거인이 될 수 있습니까? 예수님을 본받아 섬기는 자가 됨으로 거인이 될 수 있습니다.


마무리하는 말

사랑하는 서머나 교우 여러분,

다니엘은 뜻을 정하여 왕의 진미와 그의 마시는 포도주로 자기를 더럽히지 않았습니다. 하나님만 섬기기로 뜻을 정했습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을 섬기는 분들은 뜻을 정할 필요가 있습니다.
어떤 분은 예수님을 믿으면서 술, 담배를 끊기로 뜻을 정한 분이 있습니다.
폐암으로 사망한 이주일씨는 죽기 전 새해 텔레비젼 방송에 출연하여 이런 인사를 했습니다.
"여러분, 새해 건강하시고요. 담배 꼭 끊으세요."
담배를 피우는 사람이 치매에 걸릴 확률이 5배가 높다는 전문의들의 연구가 있습니다.
인생은 결단입니다. 그 중 하나님을 섬기고 이웃을 섬기는 일도 결단할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누구나 영적 성장을 사모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영적 거인을 사모하는 마음이 필요합니다.
이를 위하여 우리는 끊임없이 묵상하고, 기도하고, 예배하고, 헌신하는 영적 마중물을 가지고 주님 앞에 나아가야 합니다. 이를 통해서 풍성히 주시는 예수님의 영적 은혜로 거인으로 자라야 합니다.
그러나 영적 성장의 키가 늘 하나님께 있음을 시인하고 주님을 의지해야 합니다.
그리고 생활 중에서 늘 섬기신 예수 그리스도를 본받아 생활화함으로 주님을 닮아가야 합니다.
이런 일에 다니엘처럼 뜻을 정하여 헌신할 때 주님께서 우리를 어느 날 거인으로 키우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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