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풍요한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의식주를 비롯한 물질이 풍요합니다.
저희는 누리끼리한 백노지에 편지를 썼고, 연습장을 삼았던 시대를 살았습니다. 연필로 쓰고, 그 위에 볼펜으로 다시 쓰면서 아꼈습니다.
그러나 요즈음 아이들을 보면, 그렇게 말하면 코미디를 생각할 정도로 학용품이 풍요합니다.
초등학교 시절에 제 친구 가운데는 한준이란 아이가 있었는데, 서울에 사시던 그의 형님이 한준이에게 색이 잘 칠해지는 크레용을 사서 보내주었습니다. 그가 양질의 크레용으로 그림을 그리는 모습이 참 부러웠던 기억이 납니다.
요즈음 우리 아이들은 너무 좋은 크레용을 자유롭게 사용합니다. 특별히 감사하게 생각하는 마음도 없어 보입니다. 아무 데나 던지고 소중히 여기는 마음도 없습니다. 그만큼 물질이 풍요해졌습니다.
풍요한 세상에 살고 있다고 해서 더 아이들의 작품 실력이 뛰어나느냐는 별개 문제입니다. 재료가 다양해졌고, 풍부해졌을 뿐, 작품은 별개의 일입니다.
풍요한 것은 좋은 작품을 만드는 데 필요조건은 될 수 있지만, 풍요하다는 사실이 좋은 작품을 만드는 필요충분 조건은 아닙니다.
오늘 말씀은 무성한 잎만 가지고 성공한 것처럼 착각하고 사는 무화과나무와 같은 우리 세대에게 잎사귀를 풍요하게 갖추는 것 이상으로 열매를 갖추는 일의 소중함을 깨우쳐주고 계십니다. 그리고 그런 열매가 잘 맺는 지혜를 주십니다.
‘잎이 무성한 인생'에서 나아가 ‘주님께서 원하시는 때에 열매를 맺는 인생'이 되기 위한 변화는 어떻게 이루어질 수 있습니까?
1, 잎은 무화과나무의 중요한 부분입니다.
18 이른 아침에 성으로 들어오실 때에 시장하신지라 19 길가에서 한 무화과나무를 보시고 그리로 가사
무화과나무는 메마른 지역에서 잘 자라는 특성과 넓은 잎으로 시원한 그늘을 만들어 주어서 팔레스타인 지역에서는 가정마다 사랑을 받는 나무입니다.
성경에서는 처음 나오는 곳이 어디인지 기억하십니까? 범죄한 인간의 하체를 가리는데 무화과나무의 잎사귀를 사용합니다.
무화과나무 열매는 가나안으로 정탐 갔던 사람들이 그 땅의 비옥함과 번영을 증명하기 위해 가져온 산물 중의 하나였습니다(민 13:23).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민족 보기를 "무화과나무에서 처음 맺힌 첫 열매를 봄같이" 하셨습니다.(호9:10)
종말에도 주님은 이렇게 초대합니다.
"그날에 너희가 각각 포도나무와 무화과 나무 아래로 서로 초대하리라"(슥3:10)
무화과나무는 팔레스틴에 있는 여러 나무들 중에서 사람들에게 가장 많은 사랑을 받고 애용되고 있는 나무였으며 때로는 이스라엘을 상징하곤 했습니다(호 9:10;율 1:7). 언약의 땅을 가리켜 '무화과나무의 땅'이라고 하였습니다.(신 8:8) 그리고 사람들이 무화과나무 그늘에 앉아 있는 것은 바로 평화와 안녕을 상징하는 것이었습니다(왕상 4:25;미 4:4;슥 3:10). 성지를 다녀오신 분이 무화과나무에 대해 이런 글을 썼습니다.
이스라엘 나라에 있는 무화과, 그것은 좀 특별합니다. 우선 그 키가 15에서 20피트까지 자랍니다. 그 키보다 옆으로 더 많이 퍼집니다. 그래서 20에서 30피트까지 넓게 퍼집니다. 이렇게 옆으로 퍼지는 나무요. 그리고 무화과나무 잎이 비교적 큽니다. 멀리서 볼 때, 한 그루의 무화과나무도 굉장히 무성하게 그렇게 보입니다. 그런데 이 무화과는 일년에 두 번 열립니다. 4월경에서는 1년 동안 묵은, 묵은 나뭇가지에서 그대로 열매가 생깁니다. 이 열매는 먹을만한 것이 못됩니다. 아주 맛도 없고 떫고 씁쓸합니다. 먹을만한 것이 못되지만 그래도 정 시장한 사람들은 이 열매를 먹고 잠시 시장기를 면할 수 있는 그런 열매올시다. 그리고는 9월달 쯤 돼서 진짜 열매가 맺습니다. 이것은 새로 나온 가지에 달린 열매입니다. 그리고 노랗게 익어가면 냄새도 좋고 먹을만한, 맛있는 무화과나무 열매를 얻을 수 있게 됩니다.
당시 종교 지도자들의 종교 생활의 겉모습을 보면, 굉장히 우거진 무화과나무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율법을 너무나 잘 지킵니다.
종교 의식에 매우 철저합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율법을 다 지키었다는 청년을 만났을 때, 사랑스럽게 보셨습니다.
예루살렘의 성전은 앞에 서기만 해도 하나님의 임재를 느낄 만큼 훌륭한 외양을 갖추고 있었습니다.
무화과나무에 잎사귀가 무성하다는 것은 주님의 눈길을 끌만큼 그리고 주님께서 그쪽으로 발길을 옮길 만큼 중요한 일입니다. 주님의 기대가 있다는 말씀입니다. 잎이 없는 무화과나무를 향해 주님께서 무엇을 기대하실 리가 없습니다.
우리 서머나 교회 사무실에 지난주일 그럴 듯한 책장이 두 개가 들어왔습니다. 좋은 성화 테잎들이 우리 교회에는 상당히 많습니다. 특히 어린이들을 위해 많이 구입했습니다. 어떤 분이 기증도 해주셨습니다. 그러나 책장이 부족하여서 겹쳐두었습니다. 보기도 좋지 않고 또 사용하는 사람들이 불편합니다.
저 빈 공간에 이만한 책장 두 개만 있었으면 좋겠다는 소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소원이 이루어졌습니다. 김대겸 집사님과 기형탁 집사님의 수고로 참 좋은 책장이 갖추어졌습니다. 정말 감사했습니다. 여러분도 사무실에 한 번 들러보시기 바랍니다.
이와 같이 좋은 교육환경을 잘 갖추는 일은 중요합니다. 이런 잎이 없으면 어떻게 우리 어린이들이 열매를 기대할 수 있겠습니까?
꿈꾸기를 좋아하는 기 집사님은 한 나절 땀흘려 책장을 만들어놓고 꿈꾸기 시작합니다.
"야, 이곳에서 우리 어린이들이 수요일 밤에 이 좋은 성경 비디오를 보게 하고 감상문을 쓰게 하면 좋겠습니다."
수요일에 어른들이 예배를 드리는 동안 아이들은 TV와 DVD & VCR이 갖추어진 사무실에서 성경 읽고 성경 비디오를 보고 감상문을 쓰면, 아이들이 영적으로 많은 도움을 받으리라는 생각입니다.
이런 일들을 위해 교육시설을 갖추는 일은 열매를 맺을 수 있는 좋은 환경입니다. 교회를 무화과나무로 비유하자면, 교육시설은 잎이라 할 수 있습니다. 우리 교회는 어린아이들이 영적 열매를 맺을 수 있도록 풍성한 잎들을 갖추어 놓아야 할 것입니다. 주님께서 오셔서 보시면서 흐뭇해하실 만큼 좋은 교육환경을 갖추어 가야 합니다.
2. 잎의 사역은 열매를 맺는 일에 연결되어야 합니다.
잎사귀밖에 아무 것도 얻지 못하시고 나무에게 이르시되 이제부터 영원토록 네게 열매가 맺지 못하리라 하시니 무화과나무가 곧 마른지라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께서 무화과나무를 찾으신 이유는 무화과나무의 아름다움을 보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잎이 얼마나 풍성한가를 보시기 위해서 오신 것이 아닙니다.‘시장하신지라’는 말씀에서 보는 것처럼 예수님의 필요에 의해서 입니다.
무화과나무의 열매를 구하는 분이 계십니다.
눅13:6-9에서는 주인이 열매를 얻기 위해서 3년을 계속 찾아왔으나 열매를 얻을 수 없자, 일꾼에게 그 나무를 잘라버리라고 명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리고 일꾼은 일년의 유예기간을 부여받습니다.
6 이에 비유로 말씀하시되 한 사람이 포도원에 무화과나무를 심은 것이 있더니 와서 그 열매를 구하였으나 얻지 못한지라 7 과원지기에게 이르되 내가 삼 년을 와서 이 무화과나무에 실과를 구하되 얻지 못하니 찍어 버리라 어찌 땅만 버리느냐 8 대답하여 가로되 주인이여 금년에도 그대로 두소서 내가 두루 파고 거름을 주리니 9 이후에 만일 실과가 열면 이어니와 그렇지 않으면 찍어 버리소서 하였다 하시니라
무화과나무는 잎이 나기 전에 먼저 열매를 맺기 시작합니다. 꽃이 없다 해서 무화과라고 부릅니다.
1)관상용의 나무가 아닙니다.
2)재목으로 쓸 수 있는 나무도 아닙니다.
3)아름다운 꽃이나 향기가 있는 나무가 아닙니다.
4)오직 열매를 위한 나무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찾은 그 나무엔 잎은 무성한데 열매가 없었습니다.
잎사귀는 충분히 무성한데 무화과의 열매가 없었습니다.
무화과나무의 참 가치는 그가 남긴 열매에 의해서 평가를 받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잎만 무성하고 열매가 없는 무화과나무를 제자들을 위한 교육적 자료로 사용하십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주시고자 원하시는 교훈이 있습니다.
이 교훈을 바로 이해하시기 원하시면 예수님께서 행하시는 모습을 그려보십시오.
저쪽에 무화과 서 있습니다.
잎이 무성한 무화과나무입니다.
열매가 맺혀있지 않습니다.
그것을 예수님께서 아십니다.
그런데 무화과나무 있는 곳으로 가십니다.
그리고 잎사귀밖에 아무 것도 얻지 못하십니다.
무화과나무에게 이르십니다.
이제부터 영원토록 네게 열매가 맺지 못하리라
무화과나무가 곧 마릅니다.
이는 분명 잎만 무성하고 열매가 없는 존재에 대한 경고입니다.
아름다우나 제 기능을 못하는 성전에 대한 경고일 수 있습니다.
외적 행위는 현란하지만 내적인 성령의 열매가 없는 종교지도자에 대한 경고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가장 가까운 것은 제자들의 삶에 열매가 있어야 함을 깨우치기 위한 경고입니다.
어떤 분(곽선희목사로 생각됨)이 김익두 목사님에 대해 이런 글을 썼습니다.
여름에, 초여름에 모내기 할 때, 어떤 마을을 지나가노라니까 모내기하던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 앉아서 점심을 먹고 있는 거예요. 그냥 지나칠 수 없는 분입니다. 가까이 가서 "주 예수를 믿으라" 그랬대요. 밥 먹던 청년 하나가 나오더니 "목사님, 이 마을에서는 전도 안 하시는 게 좋을 겁니다." "왜요?" "몇 일 전에 비가 오고 바람이 치고 벼락을 때렸는데, 이 동네 한가운데 있는 서낭당 나무를 때렸어요. 저 가지가 부러졌어요, 불타고. 또 바위를 때려서 바위가 무너지고요, 논바닥을 때려서 논바닥이 푹 패였습니다. 이런 사건이 있었는데 아니, 나무가 무슨 죄가 있습니까? 아, 바위가 무슨 죄가 있습니까? 왜 저건 때렸습니까? 아, 하나님이 안 계시던지 계시다면 장님이든지 그럴 거"랍니다. 아, 목사님이 듣고 보니 일리가 있어요. 그래서 돌아서서 본인이 기도를 했대요. '하나님, 지혜를 주십시오' 했더니, 하나님이 지혜를 주더랍니다. 그래서 "자네 학교 다닐 때 서당에 다녔나? 학교 다녔나?" "학교 다녔습니다." "선생님의 손에 무엇이 있던가?" "아, 막대기가 있지요." "그 막대기는 무엇에 쓰는 것인가?" "아니, 흑판도 땅!땅! 때리고, 책상도 땅!땅! 때리고 뭐, 그런 거죠." "흑판이 무슨 죄가 있나?, 책상이 무슨 죄가 있기에 책상을 치나?" "아 그거야 졸지 말라고……." "이놈아! 지금은 바위를 때렸다만은 다음에는 네 머리를 친다" 그랬더니 "아이고, 아이고, 어떡하면 좋겠습니까?" 그 청년이 예수를 믿고, 그것이 중심이 되어서 거기에 교회를 세우고, 그 사람이 장로가 되었다고 이런 얘기를 말씀을 하십니다.
겉만 무성한 성전은 심판 받았습니다. 40년 후에 예루살렘 성전은 무너졌습니다.
잎만 무성하던 종교지도자들도 철저히 심판을 받았습니다.
열매 없이 잎만 무성한 무화과나무가 왜 심판을 받을 수밖에 없습니까?
수백만 명이 원근 각처에서부터 예루살렘 성전으로 모여듭니다.
제물들이 넘치게 바쳐집니다.
예루살렘 성전은 세계적인 성전답게 신비로 가득합니다.
주님께서 무슨 하나님의 열매들이 있나 들어가 보십니다.
당시 많은 사람들이 생각한 것처럼 입이 딱 벌어졌을까요?
안타깝게도 아무런 성령의 열매들을 찾아볼 수 없습니다.
주님께서 이스라엘 민족을 보셨을 때, 사랑의 열매를 볼 수 없었습니다.
주님께서 이스라엘 민족을 보셨을 때, 희락의 열매를 볼 수 없었습니다.
주님께서 이스라엘 민족을 보셨을 때, 화평의 열매를 볼 수 없었습니다.
주님께서 이스라엘 민족을 보셨을 때, 오래참음의 열매를 볼 수 없었습니다.
주님께서 이스라엘 민족을 보셨을 때, 온유의 열매를 볼 수 없었습니다.
주님께서 이스라엘 민족을 보셨을 때, 회개에 합당한 열매가 보이지 않습니다.
주님께서 이스라엘 민족을 보셨을 때, 성령의 열매(사랑, 희락, 화평, 오래 참음, 자비, 양선,충성, 온유, 절제) 열매가 보이지 않습니다.
주님께서 이스라엘 민족을 보셨을 때, 빛의 열매(모든 착함, 의로움, 진실함) 열매가 보이지 않습니다.
주님께서 이스라엘 민족을 보셨을 때, 의와 평강의 열매가 보이지 않습니다.
주님께서 이스라엘 민족을 보셨을 때, 입술의 열매(그 이름을 증거하는 전도)가 보이지 않습니다.
성전 뜰에 짐승의 피는 넘치는데 진정한 죄용서 함을 볼 수가 없습니다.
이사야 선지자가 외치던 그 음성이 성전 가득합니다.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너희의 무수한 제물이 내게 무엇이 유익하뇨? ….
나는 수송아지나 어린양이나 숫염소의 피를 기뻐하지 아니하노라. 12 너희가 내 앞에 보이러 오니 그것을 누가 너희에게 요구하였느뇨 내 마당만 밟을 뿐이니라…..
13 성회와 더불어 악을 행하는 것을 보지 못하겠노라
14 내 마음이 너희의 월삭과 정한 절기를 싫어하나니 그것이 내게 무거운 짐이라
15 너희가 손을 펼 때에 내가 눈을 가리우고 너희가 많이 기도할 지라도 내가 듣지 아니하리니 이는 너희의 손에 피가 가득함이라(이사야1:11-15)
종교적인 외양은 잘 갖추었지만, 경건의 능력은 없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잎만 무성한 당시의 예루살렘성을 바라보시며 눈물을 흘리셨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도 원하시는 열매들은 찾아볼 수가 없기 때문이었습니다. 굉장한 수준에 오른 듯이 생각되는 무성한 잎을 가진 종교 생활 이면에 속 빈 강정과 같이 열매가 없을 수 있습니다.
오늘도 열매를 얻기 위해 주님께서 우리를 찾으심을 인정하십니까?
무화과나무의 참 가치는 그가 남긴 열매에 의해서 평가를 받음을 인정하십니까?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고 물으십니다.
기도하는 집은 기도가 열매입니다.
성도의 열매는 거룩함입니다.
신자의 열매는 믿음입니다.
집사의 열매는 봉사입니다.
사랑을 받았으니 사랑의 열매를 맺어야지요.
용서받았으니 용서의 열매를 맺어야지요.
긍휼하심을 입었으니 긍휼의 사람이 되어야지요.
내가 10,000 달란트를 탕감 받았으면, 100데나리온 빚진 자에게 탕감해 주어야지요.
내가 하나님과 원수 되었을 때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하셨습니다. 원수를 사랑하는 열매를 맺어야지요.
감사로,
사랑으로,
아름다운 열매를 이제는 맺어야만 할 것입니다.
3. 믿음 있는 기도로 주 안에 거해야 합니다.
20 제자들이 보고 이상히 여겨 가로되 무화과나무가 어찌하여 곧 말랐나이까 21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만일 너희가 믿음이 있고 의심치 아니하면 이 무화과나무에게 된 이런 일만 할 뿐 아니라 이 산더러 들려 바다에 던지우라 하여도 될 것이요 22 너희가 기도할 때에 무엇이든지 믿고 구하는 것은 다 받으리라 하시니라
우리는 어떻게 이 열매맺는 일에 동참할 수 있을까요?
믿음을 가지고 무엇이든지 기도하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오늘 무화과나무를 마르게 하신 사건을 통해 제자들에게 알려주시고 싶으신 일이 있습니다.
그들은 물었습니다.
'무화과나무가 어찌하여 곧 말랐나이까'
열매가 없어서 내가 저주하였기 때문이란다
이렇게 대답하지 않으셨습니다.
의심치 아니하고 믿고 구하는 것을 다 받을 줄로 아는 기도를 말씀하셨습니다.
"만일 너희가 믿음이 있고 의심치 아니하면 이 무화과나무에게 된 이런 일만 할 뿐 아니라 이 산더러 들려 바다에 던지우라 하여도 될 것이요 22 너희가 기도할 때에 무엇이든지 믿고 구하는 것은 다 받으리라 "
예수님은 주제 파악을 못하시고 동문서답을 하신 것이 아닙니다.
무화과나무에 무성한 듯이 보일지라도 연결되어 있지 않으면 뿌리에 연결되어 있지 않으면 마르게 되어 있습니다
"이제부터 영원토록 네게 열매가 맺지 못하리라 "
주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믿음의 기도로 하나님께 연결되어 있는 삶이 마르지 않는 삶의 비결임을 알려주시고 싶으셨던 것입니다.
어떻게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까?
하나님께 연결되어 있으면 됩니다.
북한에 옥수수 박사님이라고 하는 김순권 박사님이 좋은 옥수수 종자를 가지고 가셨습니다. 이것을 좀 퍼뜨리려고 애를 씁니다. 그런데 잘 안 된답니다. 좋은 옥수수 종자를 갔다 심었는데 잘 자라면서 굵게 자라 올라오더랍니다. "아! 이거 됐다." 그랬더니, 얼마만큼 자란 다음에 이삭이 안나오고 말더랍니다. "땅기운이 모자라서요" 그러면 비료를 주어야 하는데 그게 없으니 옥수수가 안 된답니다.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요15:7)
옥수수에게 땅 기운이 소중하듯이 우리 성도는 하나님의 줄기에 연결되어야 합니다.
어떻게 하나님과 연결될 수 있습니까?
의심 없는 믿음의 기도입니다.
그래서 기도를 호흡과 같다는 표현을 많이 사용합니다.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의 성령으로 충만하면 하나님께서 자연스럽게 열매를 맺으십니다.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 이는 너희로 가서 과실을 맺게하고 또 너희 과실이 항상 있게 하여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무엇을 구하든지 다 받게 하려 함이니라."
지금 제자들이 살아야 하는 세상은 잎만 무성하고 열매는 없는 시대입니다.
종교지도자들에게서도, 몰려드는 수많은 순례 행렬 속에서도 열매를 찾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사람들 사이에 제자들을 보내셨습니다.
왜 제자들을 예루살렘에 보내셨습니까?
제자들에게 성령의 열매를 맺기 원하셨기 때문입니다.
제자들에게 열매가 있게 하시려고 제자들을 택하여 세우셨습니다.
과실을 맺게 하고 또 제자들에게 맺힌 과실이 항상 있게 하시기 위하여 제자들을 택하셨습니다.
이와 같으신 하나님을 확신해야 합니다.
내 인생에 과실을 맺으시려고 나를 택하셨다!
하나님의 뜻은 우리의 삶에 과실을 맺는 것입니다. 그 일을 이루시려고 나를 택하셨습니다.
이런 의심 없는 믿음으로 주님께 연결되어 있으면 열매는 반드시 있다는 말씀입니다.
믿음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의심하지 마시고 줄기 되시는 주님께 붙어 기도하시길 바랍니다.
내 인생에 과실을 맺으시려고 택하신 하나님의 꿈은 반드시 이루어집니다
마무리하는 말
어제 밤, 사무실 청소를 좀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베이큠을 찾았습니다. 최신식 베이큠을 찾아들고 사무실에서 청소를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이 베이큠 도르래가 요란한 소리를 내고 열심히 돌아가고 있는데 먼지만 온 방안에 가득할 뿐 전혀 청소가 되지 않습니다. 이상한 베이큠도 있다는 생각을 하고 다시 작동부분을 살펴보았습니다.
그런데 또 다른 스위치가 있습니다. 그것을 틀어보았습니다. 이건 조금 전 스위치와 달리 전혀 소리가 나지 않습니다. 도르래를 돌리지도 않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청소가 됩니다. 빨아들이는 장치인 것 같았습니다.
이번에는 둘 다 스위치를 틀었습니다. 정상적으로 베이큠이 됩니다. 앞에 요란한 소리를 내며 돌아가는 도르래는 바닥을 온통 휘젓는 역할을 합니다. 그리고 다른 스위치는 휘저어 일어난 먼지를 빨아들입니다.
그리고 전원 스위치는 두 기능을 가능하게 전원을 공급해 줍니다. 이 삼 요소가 합력하여 방안을 깨끗하게 합니다.
저는 이 세 요소가 오늘 본문에서 알려주는 신앙 요소에 적합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요란한 소리를 내고 열심히 돌아가는 도르래는 무화과나무의 무성한 잎과 같습니다
전혀 소리가 나지 않지만 먼지를 빨아들이는 장치는 열매와 같습니다.
전원은 이 모든 기능을 살려주는 기도와 같습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우리는 어떤 단계에 와 있습니까?
요란한 잎사귀를 자랑하는 단계입니까?
열매를 맺는 단계입니까?
나는 정말 예수 그리스도 안에 기도로 접목된 인생을 살고 있습니까?
깊은 깨달음이 있는 한 주간이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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