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dnesday, 25 February 2015

눅22:1-6; 눅22:21-30 영광의 아침은 어떻게 오는가?

한국이 축구에서 16강에 진출하자 '대한민국!' 사람들이 온통 기쁨이 가득합니다. 
최화순 권사님은 하루 종일 기분이 좋으셨답니다. 
금요일에는 다녀오는 길에 블로어를 지나는데 크리스티에서 온통 빨간 옷을 입은 젊은이들이 열광하고 있습니다. 
경적을 울리고, 태극기를 손에 쥐어주고 펄쩍펄쩍 뜁니다. 
대한민국에 영원하라! 
외치는 사람들의 환호성이 요란합니다.
손에 태극기를 잡고 걸어갑니다.
차에도 태극기를 꽂고 갑니다.
등에도 태극기로 코트처럼 걸쳤습니다.
핸드폰을 켜도 그 속에 월드컵이 들어 있습니다.

축구라는 경기에서 16강의 영광에만 들어가도 온 백성이 이렇게 좋아하는데 만일에 한국이 이번 월드컵에서 우승의 영광을 안게 된다면 얼마나 기뻐할는지 모르겠습니다. 
축구 경기를 별로 본 일이 없는 저도 포르투갈과 경기 처음 부분과 나중 부분을 보면서 참 신이 났습니다. 한국 선수들이 열심히 뛰는 모습을 아들에게도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기회 있으면 녹음해놓은 것을 빌려다가 함께 볼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성경에 보면, 요즈음 우리가 열광하는 16강, 8강 4강의 월드컵 우승의 영광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영광이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영원한 영광입니다. 
그것은 바로 십자가의 영광입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께 돌리시는 아침의 영광입니다.
축구 우승과는 비교할 수 없이 가치 있는 영광입니다.
그보다 훨씬 영원한 하나님 나라의 영광이 다가오고 있었습니다.


1. 영광의 아침은 인간의 음모란 험산준령을 넘어 옵니다.

(1)유월절(逾越節)이라 하는 무교절이 가까우매 (2)대제사장(大祭司長)들과 서기관(書記官)들이 예수를 무슨 방책(方策)으로 죽일꼬 연구(硏究)하니 이는 저희가 백성(百姓)을 두려워함이더라  (눅 22:1 -2)

무교절이 가까운 때에 여기 몇 사람(대제사장(大祭司長)들과 서기관(書記官)들)은 심각한 연구를 하고 있습니다. 예수를 죽일 방법을 연구하고 있었습니다.

예수를 무슨 방책(方策)으로 죽일꼬?

대제사장과 서기관들이 드러내놓고 예수님을 죽이지 못하고 음모(Conspiracy, Plottings)를 꾸밀 수밖에 없었던 까닭은 백성을 두려워했기 때문입니다. 

성경에 보면, 이런 종류의 음모가 많이 있었습니다.
삼손에 대한 들릴라의 음모(삿 16:4-21)
다윗에 대한 압살롬의 음모
나답에 대한 바아사의 음모(왕상15:25-28). 
엘라에 대한 시므리의 음모 
요람에 대한 예후의 음모(왕하 9:14-26)
요아스에 대한 신복들의 음모 
요아스의 신복들이 일어나서 모반하여 실라로 내려가는 길 아마샤에 대한 예루살렘 사람들의 음모 (왕하14:18-20)
스가랴에 대한 살룸의 음모
등, 많은 음모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 음모들이 철저히 영광에 이르지 못합니다.
그 열조의 행위대로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여 이스라엘로 범죄케 한 느밧 의 아들 여로보암의 죄에서 떠나지 아니한지라 (왕하15:8-10).
브가히야에 대한 베가의 음모 
베가에 대한 호세아의 음모 
아몬에 대한 신복들의 반역 
산헤립이나 아하수에로에 대한 음모 

이런 음모는 참으로 사람을 참으로 고통스럽게 합니다. 음모는 참으로 간교하고 무서워서 그 음모에 의하여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파멸의 길을 갔습니다

그 입에는 저주와 궤휼과 포학이 충만하며 혀 밑에는 잔해와 죄악이 있나이다.......저가 구푸려 엎드리니 그 강포로 인하여 외로운 자가 넘어지나이다 (시 10:7-10). 악인이 의인 치기를 꾀하고 향하여 그 이를 가는 도다(시 37:12). 

나봇은 이세벨의 음모로 포도원을 빼앗기고 죽임을 당하기까지 했습니다.(왕상 21:7, 15)
선지자 예레미야는 당시 위정자들의 음모에 의해서 많은 고통을 당합니다.

그들이 말하기를 오라 우리가 꾀를 내어 예레미야를 치자 제사장에게서 율법이, 지혜로운 자에게서 모략이, 선지자에게서 말씀이 끊어지지 아니할 것이니 오라 우리가 혀로 그를 치고 그의 아무 말에도 주의치 말자 히나이다(렘 18:18). 

예수님께서는 태어나실 때에 헤롯의 음모 때문에 고통을 당하셨습니다. 사역을 시작하실 때도 사탄의 음모를 이기시는 장면을 광야에서 만납니다. 사역 중에서도 바리새인이 죽일 음모를 꾸밉니다.

1)예수께서 날마다 성전에서 가르치시니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과 백성의 두목들이 그를 죽리려고 꾀하되(눅 19:47). 
2)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이 예수를 무슨 방책으로 죽일꼬 연구하니 이는 저희가 백성을 두려워함이더라(눅 22:2).

바울은 그를 죽이려는 유대인의 음모 때문에 너무나 많은 고통을 당했습니다.

1)여러 날이 지나매 유대인들이 사울 죽이기를 공모 하더니 그 계교가 사울에게 알려지니라 저희가 그를 죽이려고 밤낮으로 성문까지 지키거늘 (행 9:23,24). 
2)날이 새매 유대인들이 당을 지어 맹세하되 바울을 죽이기 전에는 먹지도 아니하고 마시지도 아니하겠다 하더니 이같이 동맹한 자가 사십 여명이더라

그러나 성경이 전해주는 더욱 중요한 사실은 그 음모란 험산준령을 넘어선 사람들에게 반드시 영광이 있다는 것입니다.

요셉은 형제들의 음모를 하나님 중심주의 신앙으로 극복한 후, 영광에 이르렀습니다. 

요셉이 그들에게 가까이 오기 전에 그들이 요셉을 멀리서 보고 죽이기를 꾀하여 서로 이르되 꿈꾸는 자가 오는도다 자, 그를 죽여 한 구덩이에 던지고 우리가 말하기를 악한 짐승이 그를 잡아먹었다 하자 그 꿈이 어떻게 되는 것을 우리가 볼 것이니라 하는지라(창37:18-20). 

요셉의 영광은 형들의 음모를 신앙으로 넘어선 그 지점에서 열매맺은 영광입니다.
모세의 영광은 고라의 음모와 같은 조직적이고 간교한 음모를 넘어 선 그 자리에 피어나고 있었습니다.(민 16:1-35)

에스더와 모르드개의 영광은 하만의 음모란 험산 준령을 넘어선 곳에 있습니다. 하만은 모르드개와 유대인을 죽이려고 무서운 음모를 꾸몄습니다.(에 3:5-1O). 
다니엘의 영광은 다른 총리들과 방백들의 음모를 기도로 이겼을 때 가능했습니다. 그는 저들의 음모로 사자굴에 들어갑니다. 
욥의 영광은 사단의 음모(욥 1:8-22)를 넘어 선 그 자리에 있습니다.

앞에서 보여준 신앙의 용장들이 누린 영광은 원수의 음모로 인하어 고통을 당하지만, 그 음모를 온전히 이기는 지점에서 열매맺은 것입니다.

사랑하는 서머나 교우 여러분,
우리에겐 인간의 지저분한 음모, 사탄의 간교한 음모가 늘 삶의 길목마다 자리잡고 있습니다. 그러나 기억하십시오. 하나님은 우리에게 영광의 자리에 서길 원하시며, 그 영광은 음모란 험산준령을 넘는 곳에 자리잡고 있다는 것입니다.


2. 영광은 배반의 강을 건너 옵니다.(3,4)

(3)열 둘 중(中)에 하나인 가룟인이라 부르는 유다에게 사단이 들어가니 (4)이에 유다가 대제사장(大祭司長)들과 군관들에게 가서 예수를 넘겨 줄 방책(方策)을 의논(議論)하매 (5)저희가 기뻐하여 돈을 주기로 언약(言約)하는지라 (6)유다가 허락(許諾)하고 예수를 무리가 없을 때에 넘겨 줄 기회(機會)를 찾더라
(21)그러나 보라 나를 파는 자(者)의 손이 나와 함께 상(床) 위에 있도다 (22)인자(人子)는 이미 작정(作定)된 대로 가거니와 그를 파는 그 사람에게는 화(禍)가 있으리로다 하시니 (23)저희가 서로 묻되 우리 중(中)에서 이 일을 행(行)할 자(者)가 누구일까 하더라 

가롯 유다는 열 두 제자 중 하나였습니다. 그런데 그리스도를 배반했습니다. 그리스도를 매우 잘 아는 그가 어떻게 그리스도를 배반하게 되었는지 우리는 십게 말할 수 없습니다. 
1] 돈을 사랑하는 유다의 마음 때문일 수 있습니다.
2] 마리아의 수준 높은 사랑과는 너무도 거리가 먼, 세속적인 가롯 유다의 마음 때문일 수 있습니다. 
3] 정치적인 메시야를 기대한 가롯 유다의 돌출행동 때문일 수 있습니다.

무엇이었든 그 이면에 사단이 들어간 것임을 성경은 전해주고 있습니다(3절). 
그것은 마귀의 소행이었습니다. 
대제사장들이 얼마나 그리스도를 체포하고 싶어하는지를 사탄은 정확히 알고 있었습니다. 사탄의 통치 아래 있는 유다 역시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자진해서 그들을 찾아가 그들에게 제안을 했습니다(4절). 
그리스도를 그들에게 넘겨주기로 했습니다. 그들은 그것을 기뻐했습니다. 
그 대가로 그들은 유다에게 돈을 주기로 했습니다.
유다는 예수를 넘겨줄 기회를 찾았습니다. 
유다는 찾던 기회를 얻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무엇이었든지 배반은 인류 역사의 가장 쓰라린 죄악이었습니다.

배반(Treachery, Betrayal)은 첫 사람 아담과 하와로부터 시작됩니다. 
세상 역사는 배반의 역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창14장에는 다섯 왕이 그돌라오멜을 배반하는 역사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당시에 시날왕 아므라벨과 엘라살왕 아리옥과 엘람왕 그돌라오멜과 고임왕 디달이 ... 이들이 십 이년 동안 그돌라오멜을 섬기다가 제 십삼년에 배반한지라(창14:1,4). 

이스라엘 역사는 하나님을 배반한 역사입니다. 또한 다윗의 집을 배반하였습니다.

저희는 계속하여 하나님께 범죄하여 황야에서 지존자를 배반하였도다(시 78:17). 
여호와를 배반하고 좇지 아니한 자와 여호와를 찾지도 아니하며 구하지도 아니한 자를 멸절하리라(습 1:6).

백성들은 왕을 배반하였습니다.

이에 이스라엘이 다윗의 집을 배반하여 오늘날까지 이르렀더라(왕상12:19;대하10:19)
다윗의 아들 솔로몬의 신복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이 일어나 그 주를 배반하고(대하13:6). 

압살롬은 아버지와 형제를 배반하였습니다.

압살롬이 이미 그 사환들에게 분부하여 이르기를 너희는 암논의 마음이 술로 즐거워할 때를 자세히 보다가 내가 너희에게 암논을 치라 하거든 저를 죽이라 두려워 말라 내가 너희에게 명한 것이 아니냐 너희는 담대히 용맹을 내라 한지라 압살롬의 사환들이 그 분부대로 암논에게 행하매 왕의 모든 아들이 일어나 각기 노새를 타고 도망하니라(삼하 13:28,29). 

예레미야는 친구의 배반으로 인한 깊은 슬픔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밤새도록 애곡하니 눈물이 뺨에 흐름이여 사랑하던 자 중에 위로하는 자가 없고 친구도 다 배반하여 원수가 되었도다(애 1:2)

들릴라가 삼손을 배반하였습니다. 연인 사이에도 무서운 배반의 강이 흐르고 있었습니다.  

믿음이 있다는 다윗 왕이 충성된 신하 우리야를 배반하는 사건을 만납니다.

장차 형제가 형제를, 아비가 자식을 죽는데 내어주며 자식들이 부모를 대적하여 죽게 하리라 (마10:21)

신앙인들은 진리와 언약을 배반하였습니다.

내가 나의 삶을 두고 맹세하노니 그가 내 맹세를 업신여기고 내 언약을 배반하였은즉 내가 그 죄를 그 머리에 돌리되(겔17:15,16,18,19)
유대인의 허탄한 이야기와 진리를 배반하는 사람들의 명령을 좇지 않게 하려 함이라(딛1:14)

그러나 서머나 교회는 배반의 강을 건넜습니다.
서머나교회의 칭찬받은 이유가 무엇이었습니까?
주님의 이름을 배반하지 않은 것입니다. 

볼찌어다 내가 네 앞에 열린 문을 두었으되 능히 닫을 사람이 없으리라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적은 능력을 가지고도 내 말을 지키며 내 이름을 배반치 아니하였도다(계3:8). 

좋은 땅에 뿌려진 씨앗과 같이 시험을 받아도 배반하지 않은 것입니다.

바위 위에 있다는 것은 말씀을 들을 때에 기쁨으로 받으나 뿌리가 없어 잠간 믿다가 시험을 받을 때에 배반하는 자요(눅8:13).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배반당하셨고 우리의 배반을 인하여 십자가에서 고난을 당하셨습니다.

"저는 며칠 전에 국민일보에 나온 기사인데 참 좋은 내용이 나왔어요. 일본의 에모토 마사로 소장이 실험을 한 것이고 연세대학 교수들과 동아대학 교수, 여러 대학 교수들이 함께 참여를 하고 연구를 하고 있는 것인데요. 너무 놀라운 거예요. 요약을 하면 3가지예요. 물을 떠다 놓고 베토벤의 전원과 쇼팽의 이별의 곡을 들려준 물은 놀랍게도 감정을 결정 구조에 그대로 담아 그대로 나타나는 거예요. 상쾌하고 아름다운 곡을 들려주면 그 물에 그대로 전달이 되어서 제일 좋은 물이 육각수라는데 물이 그렇게 된데요. 거기에다 아주 좋지 않은 음을 틀어 놓는다든지 엘비스 프레스 리의 하트 브레이크 같은 이상한 굉음을 들려주면 물은 나쁘게 변질이 된데요. 유리병에다 물을 넣고 글씨를 적어서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하고 적어 놓고 하나는 짜증나네, 미치겠네, 죽여버릴꺼야 라고 종이에 적어 놓으면 그대로 전달이 된데요. 밥을 병에다 넣고 글씨를 고맙습니다 하고 한 달을 두고 또 한쪽에는 욕을 적어 넣고 개뭐뭐 하고 적어 넣고 또 한 병에는 아무 것도 적지 않으면 이 각 병이 다 다른 거예요. 그래서 학자들이 말하는 것은 음식을 가져다 놓고 감사합니다.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하면 그대로 몸 안에 파장에 전달이 된데요. 지금 식물에 관한 것은 이미 실험을 몇 백 번 끝난 거예요. 식물을 기르면서 물을 주면서 사랑한다하며 기르면 장미꽃이 훨씬 향기 나고 더 아름다운 거예요. 이미 다 실험을 거친거예요. 말 한마디가 얼마나 중요한지 전달 다 된다라는 거예요. 그래서 여러분이 음식을 가져다 놓고 하나님 감사합니다 하면 이 말이 음식에 그대로 다 전달이 된다라는 거예요."(김삼환 목사)


3. 영광의 아침은 섬기는 삶을 통해 옵니다.

(24)또 저희 사이에 그중 누가 크냐 하는 다툼이 난지라 (25)예수께서 이르시되 이방인(異邦人)의 임금들은 저희를 주관(主管)하며 그 집권자들은 은인(恩人)이라 칭함을 받으나 (26)너희는 그렇지 않을지니 너희 중(中)에 큰 자(者)는 젊은 자(者)와 같고 두목은 섬기는 자(者)와 같을지니라 (27)앉아서 먹는 자(者)가 크냐 섬기는 자(者)가 크냐 앉아 먹는 자(者)가 아니냐 그러나 나는 섬기는 자(者)로 너희 중(中)에 있노라 (28)너희는 나의 모든 시험(試驗)중에 항상(恒常) 나와 함께 한 자(者)들인즉 (29)내 아버지께서 나라를 내게 맡기신 것 같이 나도 너희에게 맡겨 (30)너희로 내 나라에 있어 내 상(床)에서 먹고 마시며 또는 보좌(寶座)에 앉아 이스라엘 열 두 지파(支派)를 다스리게 하려 하노라

오직 사람만이 항상 높은 곳을 찾아 앉으려 하고
오직 사람만이 좋은 곳을 찾아 앉으려 하고
오직 사람만이 한번 앉으면 그곳을 떠나지 않으려 한다(최인호: '상도')

영광의 날에 우뚝 설 제자가 누구입니까? 섬기는 자입니다. 죄사함과 새언약으로 무장된 자는 세상에서 큰 자가 아닙니다. 
그러나 오늘 제자들의 마음속에는 제자들 가운데서도 큰 자이길 원하는 마음이 있었습니다.
이방인의 임금들은 큰 자로서 백성을 주관합니다. 집권자들은 큰 자로서 은인이라 칭함을 받습니다. 프톨레미 왕조 중의 한 사람은 "은인"이라는 성을 붙이기도 하였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너희는 그렇지 않을지니!"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 용서함을 받고 새 언약 가운데 부름을 받은 주님의 제자들은 섬기는 자가 되어야지 누구를 주관하려고 하면 안 된다고 말씀하십니다. 곱절 수고하여야 함을 말씀하십니다. 지도자는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함을 말씀하십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친히 이런 원리를 알려주셨습니다.

앉아서 먹는 자가 크냐 섬기는 자가 크냐?(27절)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의 발을 씻기셨습니다. 
종의 본을 보이셨습니다. 
그리스도는 제자들을 섬기는 자세를 취하셨습니다

  세상에서 주님의 제자들은 세상적 영예를 탐할 필요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 나라에서는 제자들을 위해 예비해두신 더 귀한 영예가 있기 때문입니다. 제자들은 그것을 함께 누리게 될 것입니다(28-30절). 주님께서는 충성된 제자들에게 보상을 약속하셨습니다. 

"너희에게 나라를 맡기리라." 

그리고 주님께서는 제자들에게 교회를 맡기셨습니다. 그들은  그리스도 상에서 먹고 마시게 될 것입니다(16,18절). 그들은 그리스도의 수고와 고난의 대가로 얻으신 기쁨을 같이 누리게 될 것입니다. 최고의 영광은 "내 보좌에 함께 앉게 하여 주시겠다"는 약속입니다(계 3:21).


마무리하는 말

김 삼환 목사님께서 설교하신 글을 읽노라니, 축구에 대해서 한 말씀 하셨습니다. 인용합니다.

"축구는 언제나 적과 싸우는데 
첫째 체력이예요. 건강해야되요. 어떠한 태클, 어떠한 싸움에도 이길 수 있는 육체적으로 건강해야 되요. 강건해야 되요. 
두번째는 스피드가 있어야 되요. 빨라야 되요. 축구 하는 모슨 선수는 대체로 12초대에 다 뛰어요. 11초대도 있어요. 그러니까 육상만 해도 밥먹고 사는 분들이예요. 조금만 늦으면 안되요. 언제나 앞서가야 공을 낚아채는 거지 0.1초 뒤쳐지면 공을 빼앗기는 거예요. 
세번째는 기술이 중요해요. 실력이 있어야 되요. 개인기가 뛰어나야 되요. 그 둥근 공을 손으로 만지는 것 보다 더 잘 만지는 거예요. 기술이예요. 
네번째는 전체 팀이 하나로 잘 이루어져야 되요. 혼자서 잘 못하는 것이 이런 축구나 야구예요. 
다섯번째 감독을 잘 만나야 되요. 감독의 지도를 안 받으면 좋은 팀도 좋은 선수도 나올 수 없어요. 
여섯번째 국가, 국민, 정부, 재정 이런 면으로 된 받침이 잘 되어야 축구가 발전을 합니다. 선수들이 아무리 잘 하려고 해도 뒷받침이 없으면 안 되요. 언론이나 국민들이 전체가 박수를 쳐주고 격려해 주고 할 때 축구는 발전하게 되는 것입니다.

저에게 한 마디만 더하라 한다면, 겸손해야 한다는 말씀을 나누고 싶습니다. 프랑스나 아르헨티나, 포르투갈 같은 팀에 관한 기사를 보니까, 어느 모로 보나 우승후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세네갈이나 우리 나라는 아무래도 그들의 상대가 아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모두 봇짐을 싸고 돌아갔습니다. 그리고 못 먹고 왜소하고 잘 알려지지 않은 세네갈은 결승전에 올라갔습니다.
체력도 스피드도 기술도 팀웍도 감독도 대부분 나아보이는데 승리하지 못했던 것은 교만한 마음 때문이 아니었을까 생각해봅니다.
우리는 종교지도자들이나 가룟 유다가 작전도 치밀하고, 머리도 좋아 보이지만 그지없이 천박해 보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아무런 음모도 꾸미지 않고 인간적인 머리를 굴리지 않아서 어쩌면 종의 모습으로 서 계시지만 한없이 감동적입니다. 
겸손하신 왕 예수 그리스도!
우리는 예수님으로부터 중요한 진리를 배웁니다. 인생의 참된 열매는 인간이 꾀를 쓰고 머리를 돌린다고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고 섬기는 사역에 맺힌다는 사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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