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가는 말
우리 고국 인기 드라마 가운데 '풀 하우스'란 문제작이 있습니다.
모든 면에서 부유한 청년이 가진 것 없고 집안도 없는 고아인 아가씨를 계약 결혼 형식으로 신부로 맞습니다. 침실만 따로 쓰는, 그러나 엄연히 결혼 반지까지 나눈 부부입니다.
그들은 결국 서로 반드시 있어야 할 소중한 존재임을 깨닫고 정식으로 청혼, 부부가 되는 그런 드라마입니다.
그런데 그 드라마에서 제가 유심히 보게 된 핵심 주제는 결혼반지입니다. 생활 중 중대한 고비를 만날 때면, 그들은 조용히 결혼 반지를 봅니다. 그리고 힘을 얻습니다.
오늘 우리 신앙인들은 예수 그리스도와 언약 관계에 있습니다. 풀 하우스의 주인공들이 언약의 반지를 나누고 온전한 결혼의 날을 기다리는 것처럼, 우리 신앙인들은 주님 오실 날을 기다리는 약속을 가진 신부들입니다.
1. 예수님의 제자라도 언약의 끈을 끊어질 수 있습니다.
가룟 유다가 바로 그런 사람입니다. 그는 예수님의 열 두 제자 가운데 한 사람입니다.
그는 자신이 있었습니다.
그는 주관이 확실했습니다.
그는 애국심도 있었습니다.
그는 외교수완도 있었습니다.
그는 철학도 있었습니다.
그에게는 재정관리를 잘 하는 능력이 있었습니다.
그에게는 가난한 이웃을 향한 마음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러나 그는 예수님과 언약관계에 있었을 지라도 주님의 언약을 존중하지 않았습니다.
입맞춤으로 언약을 주신 주님을 배반했습니다.
은 30에 언약을 끊었습니다.
예수님께서 그와 함께 계시는 동안 그는 언약관계에 있었습니다. 주님께서 하나님 나라의 언약을 그에게 주셨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 언약을 무시했습니다.
자아를 실현하기 원했습니다.
물질의 욕심을 채우기 원했습니다.
그것은 언약관계에 있는 가룟 유다에게는 위기였습니다.
<위기>는 <위험한 고비나 시기>입니다. 영어에서 (crisis)는 아주 급박한 위험의 처지를 이를 때 사용하는 말이지만, <새로운 기회>라는 의미로도 사용됩니다. turning point<전환점>일 수 있습니다.
[래리 엘 맥스웨인]은 인간이 살아가는 동안 겪는 위기를 다섯 가지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신체적 위기
자아의 위기
인간관계의 위기
환경적 위기
영적 위기
베드로도 당했던 영적 위기 앞에 가룟 유다는 위기를 turning point<전환점>로 바꾸지 못했습니다. 이 영적이 위기에서 그는 주님과의 언약을 붙들고 일어선 베드로와 달랐습니다. 그는 주님의 언약을 붙들지 못했습니다.
언약은 그 결과 시험의 풍랑이 밀려왔을 때, 그는 자신의 생각과 전혀 다르게 전개되는 현실을 보면서 자살하고 맙니다.
3 때에 예수를 판 유다가 그의 정죄됨을 보고 스스로 뉘우쳐 그 은 삼십을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에게 도로 갖다 주며 4 가로되 내가 무죄한 피를 팔고 죄를 범하였도다 하니 저희가 가로되 그것이 우리에게 무슨 상관이 있느냐 네가 당하라 하거늘 5 유다가 은을 성소에 던져넣고 물러가서 스스로 목매어 죽은지라
주의 언약을 굳게 붙드는 일이 이렇게 중요합니다. 사도 행전을 보면 '그는 그 몸이 곤 두박질하여 배가 터져 창자가 다 흘러나왔다'고 기록해 놓고 있습니다. 주님의 언약을 붙들지 못한 자의 처참한 말로를 강조해 놓고 있습니다.
그는 주님과 연결된 언약을 가볍게 생각했습니다.
주님과의 언약이 얇아지기 시작했습니다.
바람이 몹시 심하게 불던 어느 날
주님께서 그를 강하게 끌어당기던 성만찬의 밤,
그의 연은 주님으로부터 떨어져 멀리멀리 날아갔습니다.
그리고 그의 인생은 쓰레기처럼 피 밭에 버려졌습니다.
줄기로부터 끊어진 포도나무의 가지처럼 메말라 갔습니다.
오직 오늘이라 일컫는 동안에 매일 피차 권면하여 너희 중에 누구든지 죄의 유혹으로 강퍅게 됨을 면하라
우리가 시작할 때에 확실한 것을 끝까지 견고히 잡으면 그리스도와 함께 참예한 자가 되리라
(히3:13-14)
필립 얀시라는 분이 "Reaching For the invisible God."(내 안에 하나님은 없다)라는 책을 썼는데 베스트 셀러 중 하나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왕이시고 우리를 통치하신다고 하면서, 자신을 하나님께 드렸다고 하면서, 임마누엘 되신 하나님을 찬양한다고 하면서 전혀 그의 삶과 환경에 하나님이 보이지 않는 사람이 많다는 것입니다.
"내면의 평안과 평온함에 대해서 감사하며 아름다운 글을 쓰는데 컴퓨터 프로그램에 에러가 나가는 순간에 방금 전에 가졌던 평안과 평온함이 모니터 화면보다 먼저 사라져 버린다."
"나는 주변의 소음 때문에, 덜컹거리는 소파 때문에, 문이 삐걱거리는 소리 때문에, 하나님께 기도하지 못한다".
"이 음식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멘" 이 "아 맛있겠다, 어서 먹자"라고 쉽게 바꾸어 진다.
"현금이 많이 들어 지갑을 잃어버리면, 길가에서 차가 고장나면, 누군가로부터 부당한 한 마디를 들으면 우리는 하나님께 집중할 수 없다"
정말로 주님께서 나의 왕으로 다스립니까?
하나님과 언약관계에 있는 주님만을 바라보십니까?
해바라기가 아니라 주바라기십니까?
워싱턴 DC 에는 미국 대통령이 참석하는 교회가 있습니다. 그 교회 사무실에 매번 이런 전화가 온다고 합니다. "이번 주 대통령이 예배에 참석 하냐고!". 그 교회 목사님은 대답합니다.
"선생님, 대통령은 안 올지 몰라도 하나님은 언제나 함께 하십니다."
내 손에 하나님의 언약의 반지가 끼워져 있습니까? 이 반지로 인하여 어떤 고난 가운데서도 위로가 되십니까?
"한 번 비췸을 얻고 하늘의 은사를 맛보고 성령에 참예한 바 되고 하나님의 선한 말씀과 내세의 능력을 맛보고 타락한 자들은 다시 새롭게 하여 회개케 할 수 없나니........"(히6:4f)
2. 빌라도는 언약 밖에 머물렀습니다.
빌라도는 세상에서 가진 것이 많았습니다.
본디오 빌라도에 관하여 성경 사전에는 이렇게 적고 있습니다.
본디오 빌라도는 유대˙사마리아˙이두매를 다스린 제 5대 로마 총독이다(AD 26-37). 그의 가문은 분명치 않으나 세습(가문)이거나 혹은 공훈에 의해 기사(騎士)에 끼인 모양이다.
Pilum(투창X投槍〉이 능숙(무술)하였기 때문에 `빌라도'라는 이름을 얻었다고 전해오는 이야기가 있다.(Pilavto", Pilate)는 「창을 가짐)이란 뜻!
그의 전임자 발레리우스 그라투스(Valerius Gra\tus, AD 14- 25)는 가이사랴에 안주(安住)하면서 대제사장의 직임을 돈을 받고 팔고, 또 다른 것으로 사복을 채우는데 만족하면서 유대인의 미신까지도 숭배했다.
빌라도는 처음부터 전임자의 이런 처사에 반대했다.(청렴성)
빌라도는 부임할 때 아내를 동반하여(마 27:19) 취임했다.(가정존중)
그는 디베료 황제로부터 유대인의 열광적 신앙을 부수어 버리라는 명령을 받았을 것이다.(황제신임)
군대의 본영을 가이사랴에서 예루살렘의 헤롯 궁전(관저, 막 15:16, 기타)으로 옮겼다. 이때 빌라도는 일대의 병사를 밤에 예루살렘으로 보냈는데, 이때까지 성중에 들인 일이 없는 군기를 성내에 들였다.(충성심) 독수리 그림의 군기와 황제의상이 그려진 기는 유대인에게는 제 2계명을 어기는 것이라고 생각되었다. 흥분한 예루살렘 군중의 총독의 공식 체재 지인 가이사랴에 대표를 보내 탄원을 올리게 했다. 군중은 5일간이나 그의 관저를 둘러싸고 소란을 피웠다. 엿새째 빌라도는 군중을 법정으로 끌어들여, 만일 해산하지 않으면 사형에 처하겠다고 협박했다.(카리스마) 그러나 그들은 이에 응하지 않고 군사들 앞에 목을 내 놓았다. 빌라도는 마침내 그들의 탄원을 들어주어 군기를 성내에서 철수시켰다(고대사, 전기).
두 번째 충돌은 솔로몬의 못에서 예루살렘으로 수도를 끌어들이기 위해 성전고(聖殿庫, 고르반)에서 거룩한 금을 사용한 데서 일어났다.(민생고) 유대인들은, 이것은 하나님에게 바친 금을 세속 목적을 위해 도용(盜用)하는 것이라 생각하고 빌라도가 예루살렘에 왔을 때 소란을 일으키어 그를 둘러쌌다. 그러나 빌라도는 이런 일을 예기하고 있었으므로 흉기를 가진 사복 차림의 부하를 군중 속에 몰래 잠입시켰다. 소란이 최고조에 달하자 신호에 따라 일제히 폭도를 습격하여 많은 사상자를 냈다. 잔인무도한 참극이었다.
세 번째 충돌은 헤롯의 궁전에 황제조각을 한 방패를 걸어 반감을 샀다. 유대인은 디베료 황제에게 호소하여 그의 명에 의해 방패는 가이사랴의 아구스도 성전으로 옮겨졌다. 이런 소동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한 것은 갈릴리의 열심당이었는데, 그 때문에 빌라도는 헤롯 아그립바에게 불평을 호소했으나 효과가 없었다. 갈릴리의 열심당을 처벌하려고 마음을 먹고있었던 듯하다.
빌라도는 세례 요한과 주 예수 그리스도가 공적 활동을 시작했을 때 총독의 지위에 있었다(눅 3:1). 빌라도는 29년 유월절에는 소동이 일어날 것을 짐작하고 예루살렘에 올라갔다. 이때 많은 사람들이 예루살렘으로 모이는데, 총독도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는 것이 또한 당시의 습관이었다. 그럴 때 헤롯의 궁전에서 묵는 것이 상례였다. 빌라도가 갈릴리 사람들을 습격하여 그들의 피를 희생의 피에 섞은 것은 아마 이 때일 것이다(눅 13:1, 2). 아마 갈릴리 사람이 먼저 폭동을 일으켰을 것이다.
빌라도는 만일 자기의 이해 관계와 일치하면 기꺼이 이 세상적인 정의를 행하려 했으며 범죄 행위도 피하려 했다. 그러나자기에게 큰 희생이나 손해가 될 경우에는 올바른 행위를 하지 않았다.
빌라도는 예수님에게 기도하고, 예수님은 그를 용서하셨다고 전해오는 이야기가 있다. 이 전설은 아비시니아 교회에서 빌라도가 성도로서 성렬(聖列, 6월 25일)에 가입되는 근거가 되었고, 콥틱 교회에서는 그를 순교자로 간주하고 있다.
`빌라도의 죽음'은 빌라도의 빈나에의 추방˙자살, 그리고 끝으로 빌라도 호(湖)에의 매장을 기록하고 있다.
어떤 전설에 의하면, 그의 아내(프로클라, Procla) 글라우디오 프로클라(Claudia Procla)는 `문의 개종자'(Proselyte of the gate)인데, 숨은 예수님의 제자였다고 한다. 희랍 정교회에서는 그녀를 성도로서 성렬(10월 27일)에 가입하고 있다.
그러나 그는 언약 밖에 있었습니다.
그리고 빌라도는 기독교 신앙고백에서 아주 좋지 않은 역할을 감당한 사람으로 나옵니다.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사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시고'
누가 예수님을 죽였는가에 대해서는 많은 생각을 할 수 있습니다.
가룟 유다, 유대인 종교지도자들입, 로마 군인입니다. 우리 죄 때문에 돌아가셨으니 우리 자신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 성경본문을 따라 사도신경의 신앙고백을 부인할 길이 없습니다.
26 이에 바라바는 저희에게 놓아 주고 예수는 채찍질하고 십자가에 못 박히게 넘겨 주니라
빌라도는 예수님께 대하여 많은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는 누구보다 예수님께 대한 것을 정확하고 많은 지식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미 객관적인 자료를 확보하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을 유대인의 왕으로 묻고 그 대답을 이해하는 정도입니다.
11 예수께서 총독 앞에 섰으매 총독이 물어 가로되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네 말이 옳도다 하시고
그는 예수님께 대한 정확한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이 죄가 없으신 의인임을 알고 있었습니다.
23 빌라도가 가로되 어찜이뇨 무슨 악한 일을 하였느냐
대제사장들과 공회원들의 시기로 희생당하시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18 이는 저가 그들의 시기로 예수를 넘겨 준 줄 앎이러라
빌라도는 예수님의 처형을 막을 수 있었습니다.
빌라도는 유월절에 한 사람 죄수를 놓아주는 특전을 이용하여 의로운 예수와 아주 대조가 되는 가장 흉악한 죄수인 바라바와 동시에 세워 놓고 '내가 누구를 놓아주랴?'고 물렀습니다. 그러면 군중들이 '예수를 놓아 주소서.'라고 할 줄 알았습니다. 왜냐하면 바라바는 너무 무서운 흉악범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요18:40 '강도'로 표현했고,
막15:7에서는 '사람을 죽이고 옥에 갇힌 폭도'였고,
마27:16에서는 '소문난 죄수'로 기록되었습니다.
또 눅23:19에서 는 '성중에서 민란과 살인으로 옥에 갇힌 자'로 표현하고 있을 정도로 바라바는 잔인한 인물의 대표였습니다.
그러나 이게 웬일입니까? "바라바를 놓아 주십시요."
"그러면 예수를 내가 어떻게 하랴?"
"십자가에 못 박으소서"
이는 전적으로 종교지도자들의 음모인 것을 빌라도는 알 수 있었습니다. 그는 이 음모의 악을 꾸짖고 예수님을 석방시킬 수 있는 권한이 있었습니다.
(마 27:15)
빌라도는 사형선고를 내리지 않고 완전 사면을 할 권한을 가지고 있는 특별한 신분의 사람이었습니다. 명절이 되면 총독이 무리의 소원대로 죄수 하나를 놓아줄 수 있었고, 놓아준 전례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권한을 가지고 예수님의 죽음을 막지 않았습니다. 이는 빌라도가 큰 죄를 범한 것입니다. 빌라도는 언약 밖의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어떤 여인이 아기를 안고 어떤 사람들에게 쫓기고 있었습니다. 이 여인이 도망을 가다가 도저히 힘이 들어 더 이상 갈 수가 없어서 한쪽 구석으로 숨었습니다. 그런데 가슴에 안긴 아기가 자꾸 울었습니다. 여인은 쫓아오는 사람들에게 붙잡히면 죽을 것이라는 것을 알고, 품에 안겨 우는 아기의 울음소리가 새어 나오지 않도록 가슴에 꽉 묻었습니다. 쫓아오던 사람들이 그냥 지나친 후 한숨을 돌린 여인은 그제서야 품에 안은 아기를 보니까 아기는 이미 질식해서 죽어 있었습니다.
가장 소중하신 분을 자기가 살고 싶다는 한 가지 이유만으로 가슴에 묻는 것은 죄입니다.
수많은 유대인들이 독일군에게 잡혀갔습니다.
수많은 유대인들이 단순히 유대인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 죽음의 수용소에 끌려갔습니다.
어떤 유대인들은 이에 저항하여 레지스탕스 운동에 가담했습니다.
이 때 자신이 유대인인 것을 숨기고 오로지 돈벌이에만 골몰하던 유대인이 있었습니다.
그 유대인이 마음만 먹으면 동족들과 레지스탕스 요원들을 얼마든지 숨겨줄 수 있었고 얼마든지 도울 수 있었습니다.
자기 상점 지하에는 쥐도 새도 모르는 은밀한 처소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 유대인은 자신의 안위와 자신의 보신을 위하여 그들을 홀대했습니다.
자기 상점으로 숨어든 유대인들을 - 냉정하게 쫓아냈고 동포들을 소 닭 보듯 했습니다.
오히려 유대인들로 인하여 자신이 유대인이라는 것이 탄로 날까보아 전전긍긍했습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의 은신처를 은밀하게 비밀경찰에게 밀고하는 일까지 했습니다.
그런데 결국은 그도 유대인이라는 사실이 알려져 체포되어 끌려갔습니다.
결국 사형장에 끌려나온 그는 이렇게 외쳤습니다.
“나는 억울하오! 나는 아무 것도 안 했소!. 그런고로 나는 죽어야 할 이유가 없소!”
그 때 그를 곁에서 지켜보던 한 유대인이 말했습니다.
“그렇소! 당신은 아무 것도 하지 않았소!
수많은 유대인이 잡혀가고! 수많은 동포가 살육을 당하는데! 당신은 동족을 위해 아무 것도 하지 않았소!
당신은 얼마든지 동족을 숨겨줄 수도 있었고 도울 수도 있었소!
그러나 당신은 아무 것도 하지 않았소!
바로 그 아무 것도 하지 않은 그것이 당신이 죽어 마땅한 죄목이오!
그래서 기독교인들은 그 사실을 신앙고백 속에 넣어 예배 때마다 고백합니다.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사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시고'
빌라도는 예수님을 믿을 수도 있었습니다.
22 빌라도가 가로되 그러면 그리스도라 하는 예수를 내가 어떻게 하랴
그리고 예수님께 대하여 놀라운 마음을 품었습니다.
14b 총독이 심히 기이히 여기더라
빌라도의 아내까지 예수님의 의로우심에 대하여 말해주었습니다.
19 총독이 재판 자리에 앉았을 때에 그 아내가 사람을 보내어 가로되 저 옳은 사람에게 아무 상관도 하지 마옵소서 오늘 꿈에 내가 그 사람을 인하여 애를 많이 썼나이다 하더라
그러나 빌라도는 자신에게 맡겨진 직무를 유기하고 말았습니다. 민란을 꾸미고 살인을 했던 '바라바'를(막 15:7) 놓아주었습니다.
물을 가져다가 무리 앞에서 손을 씻으며 가로되 이 사람의 피에 대하여 나는 무죄하니 너희가 당하라
빌라도는 자신의 명예에 손해볼 일을 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음모자들을 채찍질하기는커녕 죄없으신 예수님을 채찍질하여 십자가에 죽으시도록 방치하였습니다.
빌라도는 당시 출세한 사람입니다.
세상적인 조건들을 많이 갖추고 있었습니다
권력이 있었습니다.
재력이 있었습니다.
체력이 있었습니다.
학식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과의 언약에 맺어져 있지 않았기 때문에 끈떨어진 연처럼 버려지고 말았습니다.
아무리 높이 날면 무엇합니까?
아무리 멀리 날면 무엇합니까?
끈이 떨어지면 한없이 멀리 날아가는 쓰레기에 불과한 것이 연입니다.
빌라도가 에디오피아 여왕 간다게의 모든 국고를 맡은 큰 권세가 있는 내시처럼 하나님의 언약을 붙들려는 의지가 있었다면 그는 역사적인 결정을 하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그는 하나님의 언약에 대하여 전혀 관심이 없었습니다.
빌라도는 예수님께서 아무 죄가 없으심을 알았습니다. 그러나 빌라도는 하나님의 입을 바라보지 못하고 백성들의 입만 바라보았습니다. 하나님의 언약을 붙들지 못하고 사람들의 눈치만 보았습니다.
어느 것이라도 할 수 있었으면서
아무 것도 하지 않았던 빌라도
오히려 예수님을 더 고통스럽게 하였던 빌라도
그것이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사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시고'
라고 기독교인들이 신앙 속에 고백하는 이유입니다.
그가 하나님의 언약을 바라볼 수 있었다면 그는 예수님을 믿고 역사적인 인물이 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모두 다 잃었습니다.
마리아가 옥합을 깨뜨려 향유를 예수님께 부은 것처럼
막달라 마리아가 그 부활의 새벽에 예수님을 찾은 것처럼!
아리마대 요셉이 주님의 시신을 모실 무덤을 제공한 것처럼!
무엇인가를 할 수 있었지 않을까요?
그러므로 빌라도가 하나님의 언약에 연결되어 있지 않았다는 사실은 그의 인생의 가장 큰 비극입니다.
[적용]
하나님께서 주신 우리의 삶에서 주를 위해 우리는 무엇을 했는가?
무엇인가를 더 할 수 있지 않았을까요?
지금도 무엇인가를 더 할 수 있지 않을까요?
어떤 환경 속에서도 사람들을 바라보지 마시고, 하나님의 언약을 바라보시는 축복을 받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3. 예수님께서는 하나님 언약을 이루셨습니다.
11 예수께서 총독 앞에 섰으매 총독이 물어 가로되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네 말이 옳도다 하시고 12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에게 고소를 당하되 아무 대답도 아니하시는지라 13 이에 빌라도가 이르되 저희가 너를 쳐서 얼마나 많은 것으로 증거하는지 듣지 못하느냐 하되 14 한 마디도 대답지 아니하시니 총독이 심히 기이히 여기더라
오늘 성경에서 예수님은 언약을 지키시기 위해 철저히 잠잠하십니다.
그가 곤욕을 당하여 괴로울 때에도 그 입을 열지 아니하였음이여! 마치 도수장으로 끌려가는 어린 양과 털깎는 자 앞에 잠잠한 양 같이 그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사53:7)
인간이 가장 하고 싶은 말이 많을 수 있는 자리인데.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는 물음에 "YES!" 한 마디밖에는 없으십니다.
'그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는 언약을 지키시기 위함입니다.
12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에게 고소를 당하되 아무 대답도 아니하시는지라
너무 안타까워서 빌라도가 다시 묻습니다.
13 이에 빌라도가 이르되 저희가 너를 쳐서 얼마나 많은 것으로 증거하는지 듣지 못하느냐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한 마디도 대답을 하지 않습니다. "세상 죄를 지고 가시는 하나님의 어린양"의 모습입니다.
14 한 마디도 대답지 아니하시니 총독이 심히 기이히 여기더라
침묵이 필요할 때 하나님의 언약을 믿고 침묵하는 일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한 노인이 송어 낚시를 하느라고 분주하게 손을 놀리고 있었습니다. 지나가던 청년이 이 노인을 유심히 지켜보았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송어를 잘 낚지 못하는데 유독 이 노인만은 쉽게, 또 많이 낚는 것이었습니다. 신기하게 여긴 청년이 한참을 지켜보다가 노인에게 물었습니다.
"노인장께서는 낚시질을 참 잘하십니다. 어떻게 이처럼 잘하실 수 있습니까?"
노인은 기분 좋은 마음으로 청년에게 말했습니다.
"송어 낚시를 하는 데는 네 가지 비결이 있네.
첫째, 한 눈을 팔지 말 것.
둘째, 미끼를 잘 사용할 것.
세째, 인내를 가지고 기다릴 것.
네째, 적당한 기회가 왔을 대는 절대로 기회를 놓치지 말 것일세."
그런데 여기에 한가지 더 추가할 것이 있다.
"그대로 실천하라"는 것이었습니다. 누구나 다 알면서 실천하지 않는 사항들이 많습니다. (곽선희목사 설교예화 중)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얼마든지 고난을 받지 않으실 능력이 있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죽음의 쓴잔을 피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이 '하나님의 어린양으로서 대속적 죽음'이심을 아시기에 그 고난의 길을 가십니다. 이것은 언약의 중심입니다.
이삭이 잠잠히 아버지 아브라함의 뜻에 순종하여 모리아 산에 올랐던 것처럼 예수님께서는 떨 깎는 자 앞의 어린양처럼 잠잠히 십자가의 길을 가십니다.
어느 날 관광버스가 손님을 가득 싣고 관광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이었습니다. 마지막 고갯길을 막 넘으려는 순간 브레이크에 문제가 생겼습니다. 내리막길에 접어든 버스는 속도가 점점 빨라졌고 피곤해서 잠에 취해 있던 관광객들은 뭔가 이상이 생긴 것을 눈치 채고는 흥분하여 소리를 지르고 이성을 잃어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렇지만 운전사는 침착하고 조심스럽게 커브 길을 잘 운전해 나갔습니다. 마을길을 지나 반대편 언덕으로 올라가서 차가 자연적으로 멈추게 하기만하면 됩니다. 그런데 그 때 저 멀리 아이들이 길에서 놀고 있는 모습이 운전사의 시야에 들어왔습니다. 깜짝 놀란 운전사는 경적을 울리며 피하라고 경고를 보냈습니다. 아이들이 다 놀라서 그 자리를 피했지만 한 아이가 피하지 못하고 우물거리고 있었습니다. 순간 운전사의 머릿속에는 엄청난 갈등이 오고갑니다. 저 어린아이를 살리자니 많은 관광객이 다 죽겠고 그렇다고 아무 것도 모르고 놀고 있는 어린아이가 다치겠고...그러는 사이 결국 그 아이를 치고 버스는 언덕에 가까스로 멈추었습니다. 운전사는 곧장 그 아이에게로 달려갔습니다. 그러나 그 아이는 이미 죽어 있었습니다. 둘러서 있던 모든 사람들이 이 운전사를 향해“살인자! 살인자!”하며 야유를 보내며 욕을 하기 시작합니다. 운전사는 아무 말 없이 아이를 안은 채 흐느끼며 오솔길로 걸어갔습니다. 사람들은 따라가면서“살인자!”라고 야유를 퍼부었습니다. 그런데 죽은 그 아이는 소리를 들을 수 없는 그 운전사의 아들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언약을 이루시기 위해서 외아들을 내어놓으셨습니다.
마무리하는 말
아무리 높이 날고 멀리 날면 무엇합니까?
- 하나 -
빌라도는 당시 출세한 사람입니다.
세상적인 조건들을 많이 갖추고 있었습니다
권력이 있었습니다.
재력이 있었습니다.
체력이 있었습니다.
학식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과의 언약에 맺어져 있지 않았기 때문에 끈없는 연처럼 버려지고 말았습니다.
아무리 높이 날면 무엇합니까?
아무리 멀리 날면 무엇합니까?
하나님과 연결되어 있지 않은 그의 연이란 멀리 날아가는 쓰레기에 불과했던 것입니다.
- 둘 -
가룟 유다는 한 때 주님의 언약에 연결된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 그는 높이 날았고
멀리 날 수 있었습니다.
자신이 있었습니다.
주관이 뚜렷했습니다.
애국심도 살아났습니다.
수완도 있었습니다.
철학도 있었습니다.
재정관리를 잘 하는 능력도 빛이났습니다.
가난한 이웃을 향한 마음도 움트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주님과 연결된 언약을 소홀히 하게 되었습니다.
주님과의 언약이 얇아지기 시작했습니다.
바람이 몹시 심하게 불던 어느날
주님께서 그를 강하게 끌어당기던 성만찬의 밤,
그의 연은 주님으로부터 떨어져 멀리멀리 날아갔습니다.
그리고 그의 인생은 쓰레기 처럼 피밭에 버려졌습니다.
줄기로부터 끊어진 포도나무의 가지처럼 메말라 갔습니다.
- 셋 -
우리 고국 인기 드라마 가운데 '풀 하우스'란 문제작이 있습니다.
풀이 있을 만큼 좋은 집이어서 '풀 하우스'인지 모르겠습니다.
아무튼 모든 면에서 부유한 청년이 가진 것 없고 집안도 없는 고아인 아가씨를 계약 결혼 형식으로 신부로 맞습니다. 침실만 따로 쓰는, 그러나 엄연히 결혼 반지까지 나눈 부부입니다.
그들은 결국 서로 반드시 있어야 할 소중한 존재임을 깨닫고 정식으로 청혼, 부부가 되는 그런 드라마입니다.
그런데 그 드라마에서 제가 유심히 보게 된 핵심 주제는 결혼반지입니다. 생활 중 중대한 고비를 만날 때면, 그들은 조용히 결혼 반지를 봅니다. 그리고 힘을 얻습니다.
- 결국 -
오늘 우리 신앙인들은 예수 그리스도와 언약 관계에 있습니다.
풀 하우스의 주인공들이 언약의 반지를 나누고 온전한 결혼의 날을 기다리는 것처럼, 우리 신앙인들은 주님 오실 날을 기다리는 약속을 가진 신부들입니다.
나의 연은 주님의 언약에 어떻게 연결되어 있습니까?
신랑 되신 그분이 오실 날이 가까운 이때
높이 나는 나의 연만 바라보지 마시고
멀리 날고 있는 나의 연메만 만족하지 마시고
주님과 연결된 끈을 점검해 보시는 기회가 되시길 바랍니다.
오직 오늘이라 일컫는 동안에 매일 피차 권면하여 너희 중에 누구든지 죄의 유혹으로 강퍅게 됨을 면하라
우리가 시작할 때에 확실한 것을 끝까지 견고히 잡으면 그리스도와 함께 참예한 자가 되리라
(히3:13-14)
"한 번 비췸을 얻고 하늘의 은사를 맛보고 성령에 참예한 바 되고 하나님의 선한 말씀과 내세의 능력을 맛보고 타락한 자들은 다시 새롭게 하여 회개케 할 수 없나니........"(히6:4f)
No comments:
Post a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