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말세를 당하여 어떻게 살 것인가?
이 말세에 자녀를 어떻게 키울 것인가?
이는 우리에게 참 중요한 생존의 주제입니다.
주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16)보라 내가 너희를 보냄이 양을 이리 가운데 보냄과 같도다.
그러므로 너희는 뱀같이 지혜롭고 비둘기같이 순결하라.
(17)사람들을 삼가라
저희가 너희를 공회에 넘겨주겠고 저희 회당에서 채찍질하리라
(18)또 너희가 나를 인하여 총독들과 임금들 앞에 끌려가리니
이는 저희와 이방인들에게 증거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
(19)너희를 넘겨 줄 때에 어떻게 또는 무엇을 말할까 염려치 말라
그 때에 무슨 말할 것을 주시리니
(20)말하는 이는 너희가 아니라
너희 속에서 말씀하시는 자 곧 너희 아버지의 성령이시니라
(21)장차 형제가 형제를, 아비가 자식을 죽는 데 내어 주며
자식들이 부모를 대적하여 죽게 하리라
(22)또 너희가 내 이름을 인하여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나
나중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23)이 동리에서 너희를 핍박하거든 저 동리로 피하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스라엘의 모든 동리를 다 다니지 못하여서 인자가 오리라.
먼저 우리가 있는 위치를 바로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가 어떤 시대를 살아가고 있느냐를 바로 이해해야 합니다.
1. 우리는 지금 세를 살고 있습니다.
우리는 분명, 하나님 나라 왕국에 속한 사람들입니다. 하나님 나라를 세워 가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은 우리 소유가 아닙니다. 아직 공중의 권세 잡은 자들이 대부분을 통치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아직 세를 들어 살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세상에는 아직 누룩이 가득합니다. 죄가 가득합니다. 바리새인과 서기관의 누룩이 있습니다.
이로 인하여 하나님 나라 왕국 사람들은 고난이 있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잊어서는 안될 사실입니다.
우리가 아직 세를 살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12사도들을 세상에 보내시면서 저들 앞에 닥칠 고난과 핍박에 관해 말씀하십니다.
왜 이 좋은 날 고난과 핍박을 말씀을 하셨을까요?
제자들은 예수님의 사도로 세상을 향해 나아갈 때, 장밋빛 꿈에 젖어 출발했을 수 있습니다. 메시아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사랑하고 환영할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인 자신들도 그 나라에서 한 자리 좋은 위치를 꿈꾼 사람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런 생각을 교정해 주셨습니다 .
'세상은 연고 없이 그리스도를 미워하였다!'(요 15:25)
세상은 예수 그리스도의 일꾼들을 미워한다!
그들은 공격당할 것입니다.
그들을 '공회에 넘겨 줄 것입니다'(17,18절).
무법자들에게 넘겨집니다(19)
공회에 넘겨집니다.(17)
임금 앞에 끌려갑니다(18)
총독들과 세상 임금들에게서도 고난을 받을 것입니다.
채찍질을 당합니다(17)
그들은 죽음에 넘겨질 것을 각오해야 합니다(21절).
신앙 때문에 미움을 당합니다(22)
가정에서 식구간 불화가 일어납니다(35)
그들 자신의 친족들로부터 배척을 받게 됩니다.
'형제가 형제를 죽음에 넘겨줄 것입니다' (21절).
이 때문에 아들이 자기 아버지와 불화하게 될 것입니다.
딸이 믿는 어머니를 대적하게 될 것입니다.
자기 집안 식구가 원수가 됩니다(36)
가족들의 손에 의하여 대적에게 죽임을 당합니다(21)
몸이 죽임을 당합니다.
그들은 이러한 고난 가운데서 가장 가증스럽고 수치스러운 이름들로 낙인찍힐 수 있습니다. 어둠의 권세(바알세불)에 붙들렸다 모함을 당합니다. 핍박받는 자들에게 먼저 곰 가죽을 입히우고 세상에서 부끄러움을 받을 것입니다.
이런 주님의 경고는 기독교 역사에서 현실로 나타났습니다.
바울은 '회당에서 다섯 번 매를 맞았습니다'(고후 11:24).
유대인들은 그들에게 남아 있는 권한을 사용할 수 있는 데까지 최대로 사용하여 제자들을 채찍질하였을 뿐만 아니라 저들이 그리스도께 행한 것처럼 그들을 로마의 권세 자들에게 넘겨주었습니다(요 18:30).
우리는 이땅에서 왕의 사자들이기 때문에 이 세상에서 환영을 받을 것으로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오히려 미움받을 것을 각오를 해야 합니다. 주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내 이름을 인하여 미움을 받을 것이다(22절).'
저는 이 교회에 매일 두세 번씩 옵니다. 새벽에 몇 시간 오전에 몇 시간, 그리고 오후에도 심방이 없으면 출근합니다. 이 교회 사람들과도 자주 만납니다. 그리고 따뜻하게 인사도 나눕니다. 내가 이 교회 사무실을 드나드는 것에 대해서 시비를 거는 사람이 없습니다. 내 집을 드나드는 것처럼 드나듭니다. 그러다 보니 이 교회가 우리 교회라는 착각 속에 살아갑니다.
그러나 어느날 사건이 일어나면, 그리고 듣고 싶지 않은 심한 말을 들으면, '아, 이 교회는 우리 서머나 교회가 아니라 빌려쓰는 교회로구나!' 생각하게 됩니다.
우리 많은 성도들이 이 세상을 살면서 이런 착각 속에 살아갑니다. 우리가 사는 이 캐나다 땅이 얼마나 좋습니까? 그래서 오래 살고 싶어하고, 영원히 살고 싶어합니다. 그러나 죄송한 말씀이지만, 이곳은 우리의 본향이 아닙니다. 이곳에 세를 들어 살고 있을 뿐입니다. 여러분 가운데 집을 소유하고 차를 사용하고 있을지라도 그것은 영원한 우리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 나라 왕국 백성다웁게 살아가려면 고난이 있게 마련입니다.
2. 왕의 제자들은 순결과 지혜를 갖추어야합니다.
이 세상은 아직 공중의 권세 잡은 자가 득세하고 있습니다. 여전히 악의 세력은 잔존하고 있습니다.
이 세상은 하나님 나라의 영역 확보를 위해 일하는 일꾼들에게는 외국과 같은 곳입니다.
왕국의 사람들은 이 세상에서 외국인과 나그네입니다.
예수님을 왕으로 모시고 그 나라를 위해 일하는 사람들은 아직 본향에 살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곳곳에서 영적인 전쟁에 대치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 교회에서 세를 들어 살고 있습니다. 매일 만나서 'Hi!' 합니다. 간이 녹을 만큼 따뜻한 미소로 인사를 나눕니다. 그러나 막상 어떤 조그만 사건이 나면, 얼음처럼 차갑게 대합니다. 그때 느낍니다.
아, 우리는 세를 살고 있구나. 미시사가의 어떤 교회가 쫓겨났습니다.
우리 주변의 어떤 교회도 쫓겨난다는 소식을 듣습니다.
세상을 살아가는 왕의 대사들은 세상에 대하여 신중함과 순박함을 유지할 필요가 있습니다.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의 누룩은 우리를 부패시킬 수 있는 충분한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1) 너희는 뱀같이 지혜로와라(16절).
뱀은 사탄에게 이용당한 죄로 많은 미움을 받고 있습니다.
허물을 벗고 새 허물을 씁니다.
독과 독 이빨이 있습니다.
향기로운 냄새를 피합니다.
그러나 뱀은 사실 하나님의 연금술에 의한 명작입니다.
뱀의 눈을 보셨습니까?
날카로운 직감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기민하고 신중한 동물입니다.
움직이는데 소리가 없습니다.
다른 짐승이 못 들어가는 데서도 길을 찾습니다.
머리를 지킬 줄 아는 동물입니다.
냄새가 없습니다.
털도 없습니다.
뱀처럼 지혜로우란 말씀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쓸데없이 고난을 자초하지 말라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오히려 자기 보존을 위해 공정하고 합법적인 모든 수단을 사용하는 것이 좋습니다.
우리 자신이 다른 사람으로부터 해를 받지 않기 위하여 지혜로와야 합니다.
우리는 그리스도를 위해 생명을 아끼지 않습니다.
좋은 신앙입니다.
그러나 그 생명을 함부로 버려서도 안됩니다.
'지혜로와야' 합니다.
우리는 뱀처럼 지혜로울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가 이 교회를 사용하는 동안
냄새를 피울 필요가 없습니다. 이것은 지혜입니다.
털을 떨어뜨리지 마세요.
오늘 아침 교회 오는데 맥주병이 찻길에 굴러다닙니다.
얼른 치웠습니다.
저는 쓰레기도 부지런히 치웁니다. 휴지도 떨어져 있으면 얼른 주어 휴지통에 버립니다.
내가 떨어뜨린 털이 아니지만 남기지 않으려고 힘을 쓰고 있습니다.
우리 기독교인들이 이 세상을 살아가는 일에 있어서도 그렇습니다.
소리가 없어야 합니다.
털을 남기지 말아야 합니다.
냄새를 피우지 말아야 합니다.
날카로운 직감력을 가지고 기민하고 신중한 처신이 필요합니다.
움직이는데 소리를 내지 말아야 합니다. 구제하고 선교한다면 요란하게 소리 내지 말아야 해요.
다른 짐승이 못 들어가는 데서도 길을 찾는 뱀처럼 뚫고 들어가야 합니다. 우리 형제 중 어떤 분이 말하더라구요. 아직 캐나다는 우리가 얼마든지 뚫고 들어갈 수 있는 어수룩한 구석이 있대요. 뱀처럼 지혜로운 말입니다.
머리를 지킬 줄 알아야 합니다.
우선 순위를 지킬 줄 알아야 한다는 말로 난 이해합니다.
신앙의 우선 순위가 무엇인가를 알고 지켜야 합니다.
하루 해야할 일들이 많습니다. 우선 순위를 지켜야 해요.
이런 일들이 다 우리 믿는 성도들이 누룩이 만연한 이 세상을 살면서 뱀에게 배워야 할 지혜들입니다.
2) 너희는 비둘기같이 순결하라.
비둘기는 평화롭습니다.
아무에게도 해를 끼치지 않습니다.
아무에게도 악의를 품지 않습니다.
우리가 지혜로와서 남에게 해를 입지 않은 일이 중요하지만 그러나 남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 일은 더욱 중요합니다.
다산하는 새입니다.
생육하고 번성해야 합니다.
영적인 자녀를 많이 낳는 것이 복입니다.
배우자를 사랑하고 화목합니다.
가정이 하나님께서 일하시는 천국의 모형입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믿음을 가정을 통해 실현하는 일은 우리 모두의 과제입니다.
무리 지어 살며 단결을 잘 하는 새입니다.
순결합니다.
비둘기처럼 진리에 대하여 순결할 필요가 있습니다
연합교회가 굉장히 마음이 넓은 것 같습니다.
동성연애도 허용합니다.
예수님의 동정녀 탄생도 포기했습니다.
예수님의 육신의 부활 문제도 착념하지 않습니다.
술 담배 문제에 자유합니다.
그러나 이런 관대함은 순결을 포기한 행위입니다.
교회는 진리 수호에 순결성을 유지할 때, 힘이 있습니다.
기독교인은 비둘기 같이 순결해야 합니다.
3] 끝까지 견디는 자이어야 합니다.
(22)또 너희가 내 이름을 인하여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나 나중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뱀이 요즈음 애완 동물로 집안에서 기르는 사람들이 많답니다.
그 이유 중 하나가
뱀은 20일간 먹이를 주지 않아도 살아남습니다.
그래서 애완용 동물로 키우는 사람이 많이 있답니다.
뱀에게 우리는 인내를 배울 필요가 있습니다.
개나 고양이가 조금 배가 고프면 깽깽거리고 요동을 치는 것과 대조적입니다.
제자들에게 고난을 각오하고 자신의 뒤를 따르도록 교훈 하십니다. 바로 이러한 예수님께서는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 말씀하십니다. 진정 주님을 위해서라면 무슨 일을 당하든지 기꺼이 참고 심지어 죽임을 당하더라도 결코 흔들리지 않는 인내가 필요합니다.
그들의 고난은 '유대인들과 이방인들에게 증거가 되게 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18절). 공회가 그들을 죽이기 위해 통치자들에게 넘길 때, 한 재판석에서 다른 재판석으로 급히 보내지는 것이 오히려 증거를 좀더 공적으로 만들도록 도우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복음이 믿지 않는 이방인들에게도 가져가는 기회를 제공해 주곤 하였습니다.
북한 수용소 문제가 요즈음 큰 주제로 세계에 부각되고 있습니다. 이순덕 씨는 기독교인들의 고난당하는 모습을 보고 예수님을 믿기로 결심하였다고 증언하고 있습니다.
왕국의 백성들이 이 세상에서 인내해야 합니다.
고난에는 하나님의 뜻이 있습니다.
마무리하는 말:
뱀처럼 지혜롭게
비둘기처럼 순결하게
인내하며 살아갈 때,
하나님께서 일을 행하십니다.
(18)또 너희가 나를 인하여 총독들과 임금들 앞에 끌려가리니 이는 저희와 이방인들에게 증거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
(20) 말하는 이는 너희가 아니라 너희 속에서 말씀하시는 자 곧 너희 아버지의 성령이시니라
하나님께서 제자들에게 주시는 큰사랑은 그리스도 왕국의 사역자들이 앞으로 받게 될 고난을 미리 알고 거기에 대비하도록 경고를 주신 일입니다.
그들을 이리 가운데 보내신 왕은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보내시는 분이 그들을 보호하며 지키실 능력이 있으십니다. 하나님께서 살아 계십니다.
이 동네에서 너희를 핍박하거든 저 동네로 피하라하십니다(23절). 그리스도의 제자들은 절박한 경우에 하나님께 맡기고 도피함이 좋습니다하나님이 그의 섭리 가운데서 그들에게 피할 길을 열어 주실 때가 있습니다.
그들은 어떤 경우에든지 그들과 함께 하시는 하나님의 특별한 임재와 그의 성령의 직접적인 도우심을 누릴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실 때 우리는 그가 말할 것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시리라고 믿어야 합니다.
성령께서 그들을 대신해서 변호해 주시는 분이라는 사실을 보증받았습니다. 말하는 이가 너희가 아니라 너희 속에서 말씀하시는 자 곧 너희 아버지의 성령이시니라(20절).
모세는 입을 지으신 하나님께서 할 말도 주실 것을 믿어야 했습니다.
다니엘의 세 친구가 고난 중에서 남긴 '그리 아니 하실지라도' 이 한 마디는 모든 고난 중에 있는 성도들의 힘이 됩니다.
폴리갑이 몸은 죽여도 영혼을 죽이지 못하는 자들은 두려워하지 않겠다는 명언이 그 고난 중에서 받은 말씀입니다.
고난들이 오래 지속될 수는 있으나 언제까지 계속되지는 않습니다. 이 고난들이 지루하게 계속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영구히 계속되지는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고난이 계속되는 동안 견디어 낼 힘을 주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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