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nday, 1 March 2015

마10:23-43 사명인이 두려워 해야 할 일은!

들어가는 말

어제는 저의 생일이었습니다. 아침에 위로 엄마가 아침 식사를 준비하였으니 와서 식사하라 전화를 해 주었지만 피곤하여 갈 힘이 없었습니다. 종일 가벼운 공복감에 시달리다가 저녁에야 집에 들어가서 happy birthday를 했습니다.

우리가 주님께 은혜를 받아 주님을 수종들 수 있는 종의 자리에 부름을 받은 이 사실은  영광이요 참 기쁜 일입니다. 우리의 남은 생애가 좀더 주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는 일에 쓰임을 받았으면 하는 것이 우리의 소원입니다. 우리가 주님을 위해 일할 수 있다면 이보다 귀한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러나 두려운 일이 있습니다. 부름을 받은 제가 사명을 잘 감당하지 못함으로 하나님께 누를 끼치면 어떻게 하나 하는 것 때문입니다.

찬송가 474장에는 이런 찬양이 있습니다.

이 세상에 근심된 일이 많고 참 평안을 몰랐구나
내 주 예수 날 오라 부르시니 곧 평안히 쉬리로다

이 찬양은 믿는 성도들이 부르는 찬양입니다.
이 세상에는 곤고한 일이 많습니다.
이 세상에는 죄악된 일이 많습니다
참 죽을 일이 쌓였습니다.
그래서 두렵습니다.


1. 성도에겐 두려운 일이 있습니다.


1] 핍박하는 자가 있기 때문입니다.

(23)이 동네에서 너희를 핍박하거든 저 동네로 피하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스라엘의 모든 동네를 다 다니지 못하여서 인자가 오리라 (24) 제자가 그 선생보다, 또는 종이 그 상전보다 높지 못하나니

우리 믿음의 사람들은 세상을 향해 좋은 소식을 전해주는 사람들입니다. 세상이 복을 받는 통로가 됩니다. 복의 근원이 됩니다. 그러므로 세상은 우리 믿는 성도들이 곁에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감사하고 기뻐해야 합니다. 그러나 사실은 세상으로부터 좋은 무엇을 기대하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세상에서는 좋은 소식을 전해주면 기뻐합니다. 감사합니다. 그러나 하나님 나라 대사들에게는 그것을 기대하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오히려 핍박이 있습니다. 이것을 주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알려주십니다. 대접받을 생각 대신 핍박을 받을 각오가 필요합니다.


2] 조롱하는 자가 있기 때문입니다.

(24) 제자가 그 선생보다, 또는 종이 그 상전보다 높지 못하나니 (25) 제자가 그 선생 같고 종이 그 상전 같으면 족하도다 집주인을 바알세불이라 하였거든 하물며 그 집사람들이랴

예수님은 우리 인류에게 어떤 분이셨습니까?
찬송가 94장을 보세요.

예수님은 누구신가?
우는 자의 위로와
없는 자의 풍성이며
비천 자의 높음과
잡힌 자의 놓임되고
우리 기쁨 되시네

예수님은 누구신가?
약한 자의 강함과
눈먼 자의 빛이시며
병든 자의 고침과
죽은 자의 부활되고
우리 생명 되시네

예수님은 누구신가?
추한 자의 정함과
죽을 자의 생명이며
죄인들의 중보와
멸망자의 구원되고
우리 평화되시네

하나님 나라의 가장 귀한 선물로 충만히 채우셨습니다.

그러나 정작
예수님께서는 귀신들의 왕인 바알세불이라고(25절) 놀림을 받았습니다.  사단의 친구로 표현되었습니다. 이런 법이 어디 있습니까? 그러나 그것이 현실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빛의 자녀로 나타날 것입니다.
그러나 어두움이 빛을 싫어한다는 사실도 알아야 합니다.
죄 가운데 사는 사람이 그 죄를 밝혀주는 빛을 사랑하리라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입니다. 오히려 미움을 받을 것입니다. 모독적인 말로 놀림을 받을 것입니다.


3] 목숨을 노리는 자가 있기 때문입니다.

(28)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시는 자를 두려워하라 (29) 참새 두 마리가 한 앗사리온에 팔리는 것이 아니냐

믿음으로 살려는 다니엘의 목숨을 노리는 자들이 있습니다. 다니엘이 바벨론 왕국에 얼마나 유익한 사람입니까? 그러나 그렇기 때문에 다니엘의 목숨을 노리는 자들이 있습니다. 다니엘이 하나님께 충성되고 세상에 유익한 존재이기 때문에 그의 목숨을 노리는 자들이 있습니다.
모르드개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왕에게 충성고 동족을 사랑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모르드개의 목숨을 노리는 하만이 있습니다.


4] 가정의 기존 질서가 재편됩니다.

(35) 내가 온 것은 사람이 그 아비와, 딸이 어미와, 며느리가 시어미와 불화 하게 하려 함이니 (36)사람의 원수가 자기 집안 식구리라

가정은 천국의 전초기지입니다. 사탄이 에덴에 침투하였을 때, 맨 먼저 가정을 공격했습니다. 살 중의 살이요, 뼈 중의 뼈라고 고백하였던 아담과 이브 사이에 원망과 손가락질이 난무한 가정으로 전락합니다.
가정이 어두움 권세의 점령지가 되었습니다. 그리스도는 평화의 왕이십니다. 복음은 하나님 나라 평화의 소식입니다. 그러나 세상 사람이 그리스도를 믿고 그 나라 시민권을 획득하기로 고백한 그 순간부터 세상 권세의 반격은 생기게 마련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그 자녀를 죄와 악으로부터 분리시키기 원하십니다.
그러므로, 어떤 사람이 하나님 나라의 시민권을 얻을 때, 가정은 전시상태로 변합니다. 그 전쟁을 통해서 천국의 전초기기로 변화될 수 있습니다. 이 과정에서 가족과 친구라는 가장 강력해 보이는 자연적인 관계가 재편되는 어려움을 겪습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을 라 천국의 전초기지라 할 수 있는 가정을 회복해야 합니다(34-39)

5] 십자가를 져야합니다.

[38] 또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지 않는 자도 내게 합당치 아니하니라

주님께서도 그런 두려운 일을 당하셨습니다.
주님도 그런 취급을 받으셨습니다.
우리가 주님을 위하여 고난을 받는 것은 하나의 특권입니다(빌
1:29/행 5:41).
참된 그리스도인은 십자가를 짐으로써, 십자가에 달려 그의 수치와 비난을 감수하지 않고는 그리스도를 섬길 수가 없습니다. 우리의 생명을 이기적으로 구하려는 것은 생명을 잃는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을 위하여 우리의 생명을 잃는 것은 생명을 구하는 것입니다.

이밖에도 믿음의 길에 들어온 사람들이 갖는 두려운 일이 많습니다.

경제적인 손실이 올까 두려워합니다.
건강을 잃을까 두려워합니다.
나는 무엇이 두렵습니까?


2. 성도는 삶에서 주님을 시인하는 존재입니다.

(32)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시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저를 시인할 것이요 (33)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부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저를 부인하리라


시인(是認)의 상대적인 말은 부인(否認)입니다. 누가 예수 그리스도를 부인한다는 말을 예수님의 그리스도로서의 사명과 직분을 부인한다는 의미입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신 신분을 부인합니다.
우리 죄를 대속하기 위해서 십자가에서 고난을 받으신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이해하려 들지 않음을 의미입니다.
때로는 생각으로 부인합니다.
때로는 말이나 글로 부인합니다.
때로는 (사악한) 행동으로 부인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이해하고 계십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이해한다는 것은 무슨 뜻입니까?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시인하고 싶은 마음이 생긴 것을 의미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아십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안다는 것은 무슨 뜻입니까?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시인할 수 있는 능력을 갖는 것을 의미합니다.
어떤 사람이 예수님을 자신의 그리스도로 시인하고 싶은 마음을 가지고 실제로 사람 앞에서 시인을 하였다면 그는 예수님을 이해할 뿐만 아니라 예수님을 아는 사람입니다.
예수님을  이해하고 아는 방법은 다양합니다.
입으로 인정합니다.
명령을 지킵니다.
박해를 견딥니다.

런던 한 연회장에서의 일입니다. 그날의 화제는 기독교를 규탄하는 내용 일색이었습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명예는 바닥을 쳤습니다.
그때, 조용히 자리를 지키던 한 신사가 주인에게 벨을 울려도 되는가 양해를 구했습니다. 그 자리를 떠나겠다는 표시였습니다. 그를 바라보는 많은 사람들에게 그는 절제된 언어로 말했습니다.
"여러분이 뭐라고 말해도 아직 아는 그리스도인입니다."
그리고 그는 자리를 떠났습니다.
그 사람이 바로 빅토리아 왕조 초기의 위대한 수상 Robert Peel 경입니다.
프레드릭 대왕(Frederick the Great) 때의 이야기입니다. 한 장군이 왕의 만찬을 거절하였습니다. 그 이유는 성찬식에  참여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얼마 후, 그가 왕의 초대를 받아 왕실식사에 참석하였을 때, 사람들은 그 장군과 성찬을 비판했습니다. 그는 왕에게 예의를 표한 후, 회중 가운데서 정중하고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저에게는 프레드릭 대왕(Frederick the Great)보다 더 위대한 왕이 있습니다. 누구든지 그분을 모독하는 것을 용납할 수 없습니다."
왕은 용감한 그 장군의 손을 잡고 말했습니다.
"나는 장군처럼 확고한 믿음이 없고, 그 믿음을 장군처럼 선포하지도 못하는데 장군은 바로 그 일을 했습니다."


진정한 지도력이란 “하나님을 시인하는 올바른 사람이 올바른 목표를 가지고 올바른 일을 올바른 사람들과 함께 올바로 행하는 것”입니다. 목숨 걸고 맡겨진 사명을 감당합니다.



3. 하나님께서는 시인하는 성도를 책임지십니다.


하나님께서 두려워하지 말라고 명하십니다.


1] 몸과 영혼을 주관하십니다.

그러므로 몸은 죽여도 영혼은 죽이지 못하는 사람을 두려워하지 말고 몸과 영혼을 손에 쥐고 계시는 하나님을 두려워 하라 명하십니다.

(28)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시는 자를 두려워하라

예] 폴리갑


2] 하나님께서는 성도를 친히 보호하십니다.(29-31)

(29) 참새 두 마리가 한 앗사리온에 팔리는 것이 아니냐 그러나 너희 아버지께서 허락지 아니하시면 그 하나라도 땅에 떨어지지 아니하리라 (30)너희에게는 머리털까지 다 세신 바 되었나니 (31) 두려워하지 말라 너희는 많은 참새보다 귀하니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만을 두려워하고 경외하라고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인간이 하나님을 경외할 때에 다른 것은 아무 것도 두려워 할 필요가 없습니다. 아버지 하나님께서 돌보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참새들조차 돌보시는 분이십니다.
세상의 모든 것이 하나님의 섭리 하에 있습니다.
그 가운데 하물며 하나님 나라 확장을 위해 부름을 받은 사람들을 방치하실 까닭이 없지요.


3] 주님 영접하는 것으로 선대하십니다.

[40] 너희를 영접하는 자는  나를 영접하는 것이요 나를 영접하는  자는 나 보내신 이를 영접하는 것이니라 [41] 선지자의 이름으로 선지자를 영접하는  자는 선지자의 상을 받을 것이요 의인의 이름으로 의인을 영접하는 자는 의인의 상을 받을 것이요 [42] 또 누구든지 제자의 이름으로 이 소자 중 하나에게 냉수 한 그릇이라도 주는 자는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 사람이 결단코 상을 잃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그리스도 제자를 영접하는 일은 중요합니다(40-42절) 그 제자는 그리스도를 대리합니다. 종을 거절하는 것은 바울이 고린도후서 5장 20절에서 언급한 것처럼 그리스도를 거절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왕 중의 왕을 대리하고 있다는 사실과, 우리가 주님을 섬길 때에 주께서 우리의 우편에 계신다는 것을 아는 일은 참으로 큰 격려가 됩니다.
종이 주인보다 높은 것은 아니지만 그의 주인을 대리합니다.

그리스도를 위한 조그만 봉사라도 귀합니다. 주의 종을 위해 물 한 그릇을 대접하는 일은 조그만 봉사입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그 조그만 봉사를 크게 생각하십니다. 그 봉사가 그리스도를 위한 봉사일 때, 커다란 결과를 가져옵니다.



마무리하는 말


벌판은 아름답다.
농부는 무르익은 곡식이 황금물결을 이루고 있는 모습을 보기만 해도 배가 부르다.
구슬땀을 흘리며 추수하는 사람들은 피곤한 줄을 모른다.
몸이 납처럼 무거워질 때, 농부는 맨땅에 벌렁 누워 푸른 하늘을 이불 삼고 팔베개를 하고 쉼을 갖기도 한다.
그러나 잠깐일 뿐, 벌떡 일어나 일을 계속한다.
농부에게는 충분히 쉬일 집이 따로 있다.
이 땅은 하나님의 사명자들의 추수하는 벌판이다.
들판에서 잠시 누워 피로를 풀기도 하고,
날라 온 음식을 먹기도 한다.
그러나 이 모든 의식주는 추수를 효과적으로 감당하기 위한 과정이다.
벌판이 아무리 낭만적이고 아름답다 하여도 해가 지면 농부는 일손을 거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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