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가는 말]
오늘 예배가 끝나고 친교하시는 시간에 우리들은 한나회 회원들이 정성껏 준비한 추석맞이 애찬을 나누게 됩니다.
한나회 어머님들께서는 후손들에게 추석의 감사함을 알려주기 위해 어제 새벽기도를 마치고부터 밤 10시가 되도록, 하루 종일 음식을 준비하셨습니다.
수고하시는 모습을 보면서 이 어른들이 우리에게 전해주고 싶은 마음이 있는데, 우리가 의미없이 그냥 애찬을 나누면 어떻하나 하는 노파심이 생겼습니다. 어른들이 음식을 통해 우리에게 전해주시고자 하는 심장을 이해하는 것이 마땅한 줄 압니다.
"녹두나물은 소양(消陽)한다고 하여 잔치상에 잘 오르고, 토란은 몸을 보호한다고 해서 즐긴다. 또한 송편,대추, 호박, 토란국 같이 둥근 모양의 음식을 많이 먹은 이유는 달의 둥근 형상을 나타내는 것이라 추측됩니다.
달처럼 둥글게 화목하라! 토란처럼 둥글고 부드럽고 온유하라! 서로 관용을 보이라!
[디도서 3:2]
아무도 비방하지 말며 다투지 말며 관용하며 범사에 온유함을 모든 사람에게 나타낼 것을 기억하게 하라
[빌립보서 4:5]
너희 관용을 모든 사람에게 알게 하라 주께서 가까우시니라
이런 의미를 묵상하시면서 호박나물, 토란국을 드시기 바랍니다.
삼색나물로 도라지,시금치,고사리가 들어가는 이유는?
도라지는 도(道)를 알라는 뜻이고
시금치는 도(道)를 구하라는 의미이며
고사리는 도를 하라는 의미로 먹었다고 합니다"
[요한복음 8:32]
진리를 알찌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요한복음 17:17]
저희를 진리로 거룩하게 하옵소서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니이다
[요한3서 1:3]
형제들이 와서 네게 있는 진리를 증거하되 네가 진리 안에서 행한다 하니 내가 심히 기뻐하노라
우리 믿는 사람들에 진리인 하나님의 말씀을 알고 구하고 행하는 일은 가장 우선순위에 두어야 할 일입니다.
무엇보다 추석의 진수는 송편이라 할 법한데, 그 송편에 또한 소중한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저는 지난 주간에 이 추석 송편을 만들기 위한 떡가루를 사는 일에 라이드를 해드렸습니다. 발효식품에서 가장 좋은 쌀가루를 제공한다 하여서 Victoria Park & Denforth까지 돌아서 오는데 한나절이 갔습니다. 이렇게 까지 할 필요가 있느냐 말씀하시는 분도 있겠지만 수고하시는 분들의 노고를 이해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송편 하나가 만들어지는데 이렇게 많은 정성과 수고가 들어가는 구나 체험하는 귀한 시간이었습니다.
송편이 만들어지는데 들어가는 수고와 정성은 떡쌀 가루를 사오는데서 그냥 끝나지 않습니다. 그것을 반죽하여 반날 모양으로 빚고, 그 안에 쪄서 뭉갠 콩을 넣고, 그 밑에 솔잎을 깔아 찝니다. 이런 일들이 하루 종일 진행됩니다.
더구나 우리가 먹게 될 송편들은 작품입니다. 30년 전 고국 땅, 송편 콘테스트에서 금상을 받으신 분이 참여하여 만든 작품입니다.
우리 어른들이 추석날에 송편을 이렇게 정성껏 빚어먹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송편은 이름은 솔잎을 깔고 쪘기 때문에 유래가 되었습니다. 송편을 먹으면 소나무처럼 끈기 있고 건강하기를 원하는, 소나무처럼 절개와 정조가 강해지기를 원하는 마음을 담은 것입니다.
[흰떡에 솔의 정기를 침투시킨 것]으로, 정월초하루 유두, 추석날 제 나이 수 만큼 송편을 먹어 솔의 정기를 체질화 시키자는 마음을 담았습니다.
그런데 둥근 보름달이 뜨는 추석날 왜 반달 모양의 송편을 먹는 것일까요?
그 이유는 [반달이 보름달이 되듯이 모든 일들이 커지고 계속 이어지라는 바람]에서라고 한다. 둥근 보름달 아래서 반달 모양의 떡을 먹는 데에는 '계속 발전'이라는 기원의 뜻이 담겨 있답니다. 곧 [[반달이 보름달이 되듯 좋은 일이 더욱 커지고 계속 이어지라]]는 바램에서 송편을 먹는다는 것입니다."
우리 성경 말씀에서 "시작은 미약하나 끝은 창대하라"는 말씀을 많이 인용하시는데 그런 중심을 송편에 담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제가 여러분들에게 송편을 빚어 먹는 의미를 굳이 강조하여 말씀드리는 까닭이 있습니다. 우리 기독교인들의 추수감사주일과 같은 이 추석에, 조상들이 우리에게 전해준 추석 음식의 의미를 분명히 알고 먹는 것이 하루종일 힘들여 빚은 어른들의 마음(심장)에 동참하는 것이기 때문이지요.
오늘 설교 시간에 이런 말씀을 서론적으로 전하는 또 하나의 이유가 있습니다.
다시 한 번 그 의미를 음미하지 않으면 안될 중요고 의미있는 사건, 때문입니다. 33-34을 함께 읽어보십시다.
33 예수께 이르러는 이미 죽은 것을 보고 다리를 꺾지 아니하고
34 그 중 한 군병이 창으로 옆구리를 찌르니 곧 피와 물이 나오더라
아들의 심장을 내어주신 하나님을 더 깊이 묵상하기 원해서입니다.
우리가 젊은 시절에는 이런 복음 성가를 많이 불렀습니다.
"머리에는 가시 면류관 허리에는 긇은 창자국
손과 발목 다 찔리신 지치신 주님의 모습
오 나의 주님 용서 하소서 죄인 위해 고난 받으셨네
이 세상에 생명 주시길 그렇게도 원하셨던 길"
[김영기: 주님 가신길]
머리에 가시관으로 짓누르고, 손과 발목에 못을 박아 죽인 것도 부족하여 로마군인의 무서운 창으로 심장을 꼭 찔리셔야만 하셨는가!
허리에는 굵은 창자국!
로마군인의 무서운 창으로 심장까지 꼭 찔리셔야만 하셨는가!
아들의 심장을 내어주신 하나님 마음을 반드시 알아야 할 필요가 있기 때문입니다.
1. 심장은 신체의 가장 중요한 부위입니다.
자동차에서는 엔진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저는 현대 소나타를 7년이 넘도록 타고 있는데요. 240,000Km 이상을 뛰었는데도 새차 엔진처럼 조용하고 힘이 있습니다. 제가 이 차의 엔진을 40,000Km까지 탈 수 있을 것으로 확신한다고 자랑하니까 어떤 분이 50,000Km도 끄덕 없게다고 하시는 말씀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저는 제 차를 운전할 때마다 엔진의 부드러움을 즐깁니다.
자동차에 심장이 중요한 것처럼 사람에게는 심장이 중요합니다.
지난 주에는 면허증을 새로 만들면서 제가 어떤 경로로 이 세상을 떠나면 저의 장기를 기증하도록 하였습니다. 제 심장은 55년을 사용하였지만 아직도 건강합니다.
하나님께서 제 심장을 정말 튼튼하게 잘 만드셨습니다.
지난 여름 우루무치에 갔을 때, 5천미터가 넘는 천산고지대를 방문한 적이 있습니다. 사람들은 숨을 쉬기가 어려울 만큼 높은 곳입니다.
그런데 저는 그곳에서 가장 높은 곳으로 달려 올라갔습니다.
하나님을 찬양하기에는 그곳이 적합했기 때문입니다.
제 심장을 그토록 튼튼하게 만드신 하나님은 찬양받기에 합당하신 창조주이십니다.
심장은 주먹만한 근육으로 구성되어 있으나 속이 비어있는 장기이며 무게는 약 250~300gm입니다. 심장은 신체의 각 부위로 혈액을 수송하며 또한 혈액량을 조절하여 각 기관으로 보내는 작용을 합니다.
건강한 성인 심장은 1분에 60번쯤 뛰면서 약 5리터의 혈액을 피를 전신에 흘려보내는 펌프 역할을 합니다. 율동적인 수축을 통해 전신으로 혈액을 공급하는데 필요한 압력을 형성합니다.
혈류는 신체조직에 영양소를 공급하고 대사산물을 이동하며, 체온을 조절하는 역할을 합니다.
심장으로부터 나온 혈액이 동맥을 지나 모세혈관을 거쳐 정맥을 통해 다시 심장으로 들어오면 한 순환이 끝나게 됩니다.
그러니까 이 심장이 우리 인간에게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심장이 고장나면 신체의 각 부위로 혈액 수송이 중단됩니다.
혈액량을 조절이 되지 않습니다.
하여 각 기관으로 보내는 작용을 합니다.
신체 각 조직에 공급될 영양소와 대사산물 이동이 중단됩니다.
체온이 조절되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심장 기능이 중단되면 죽음이 찾아오는 것이지요.
마치 엔진이 서버리면 자동차가 달리는 것을 중단하게 되는 것처럼 말입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여러분 심장 위에 손을 얹으시고, 심장을 만들어 우리 중심에 장착하신 하나님을 찬양하실 수 있기 바랍니다.
심장을 만드시고 우리 온 몸에 영양소를 공급하고 대사산물을 이동하며, 체온을 조절하는 하나님을 찬양하실 수 있기 바랍니다.
2. 하나님께서는 우리 인류를 위해 외아들의 심장을 주셨습니다.
성경은 마지막 장면을 이렇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마가복음 15:37]
"예수께서 큰 소리를 지르시고 운명하시다"
[누가복음 23:46]
예수께서 큰 소리로 불러 가라사대 아버지여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 하고 이 말씀을 하신 후 운명하시다
예수님께서 하나님 아버지를 향하여 큰 소리로 부르짖으시고는 갑자기 고개를 떨구시고 숨을 거두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이 파열되어 돌아가신 것입니다.
다음 날은 안식일이었으므로 유대인들의 요청으로 로마 군인들이 십자가에 달린 예수님께서 죽었는지를 확인해 보기 위하여 주님의 옆구리를 창으로 찔렀습니다. 찌르자 피와 물이 흘렀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심장이 작동하기를 멈추고 파열되었기 때문에 혈구와 혈청이 나뉘어져서 물과 피가 따로 흘러내린 것입니다. 인류의 죄를 지시면서 그 괴로움과 죄의 의식을 더 이상 견디실 수가 없으셔서 예수님의 심장은 그만 터져 버리고 만 것입니다.
[빌립보서2:6-8]에는 이런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인간이 앓고 있는 죄가 많습니다. 그 중, 가장 심각한 죄가 무엇입니까?
존 스토트는 "자기 중심성이라는 우상숭배"라고 선포합니다.
예수님께서는 공생애 기간 중에 제자들에게 주신 중요한 말씀이 있습니다.
[마가복음 8:34]
무리와 제자들을 불러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
그러나 세상 사람들은 자기를 부인하지 못하였습니다.
[베드로후서 2:1]
그러나 민간에 또한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났었나니 이와 같이 너희 중에도 거짓 선생들이 있으리라 저희는 멸망케 할 이단을 가만히 끌어들여 자기들을 사신 주를 부인하고 임박한 멸망을 스스로 취하는 자들이라
하나님의 아들이 우리 안에 심장처럼 중요한 위치에 자리 잡고 있는 이 무서운 "자기 중심성이라는 우상숭배"를 깨뜨리시기 위해
신체 기관 중 가장 중요한 '심장'을 내어주신 것입니다.
[마가복음 14:72]
닭이 곧 두번째 울더라 이에 베드로가 예수께서 자기에게 하신 말씀 곧 닭이 두번 울기 전에 네가 세번 나를 부인하리라 하심이 기억되어 생각하고 울었더라
이와 같이 죄 가운데서 무너지고 또 무너지는 자신을 부인하지 못하여 무너지는 성도들을 위해 주님께서는 심장을 내어주신 것입니다.
[심장]하면 [충성]하면 우리에겐 생각나는 분이 있습니다.
우리 고국에 주군을 위해 심장을 바친 정몽주란 분이 계셨습니다.
고려 말 충신 정몽주가 후일의 조선 3대 임금 태종 이방원과 마주 앉아서
속뜻을 주고 받을 때, 이방원의 하여가(何如歌)로 정몽주의 마음을 돌이켜 보고자 하였습니다.
이런들 어떠하며 저런들 어떠하리
만수산(萬壽山) 드렁츩이 얽어진들 긔 어떠리
우리도 이같이 얽어져 백년까지 누리리라
다음은 이에 대한 대답으로 정몽주가 읊었던 시조입니다.
[단심가]
이몸이 죽고 죽어 일백 번 고쳐 죽어
백골이 진토되어 넋이라도 있고 없고
임 향한 일편 단심이야 가실 줄이 있으랴.
포은은 이 일로 인하여 방원이 보낸 조영규에 의해 개경-지금의 개성 선죽교에서 죽임을 당합니다.
충신의 대명사였던 포은, 不事二君(불사이군)을 지킨 그의 죽음을 통하여 그가 피살된 선죽교는 핏자국, 대나무의 전설과 함께 유명한 이야기로 전해져 내려 오고 있습니다.
[예화]
중국에도 이런 충신이 있어 많은 사람들의 입에 회자되고 있습니다.
조나라의 양자 왕은 진나라 지도자 지백을 죽여 그 해골에 옷칠을 한 후, 그것을 오강으로 사용하였습니다.
그러나 진나라 지백 밑에는 충신 예양이란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주군에 대한 원한을 갚기 위해 불철주야 노심초사하였습니다.
그는 어느날 양자 왕의 화장실을 수리하는 벽수리공틀 틈에 스며들어 원수 갚을 길을 찾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를 수상히 여긴 양자왕 부하들의 수사에 의해 예양은 가슴에 비수를 품은 것이 발각 되었고, 마침내 예양은 양자왕 앞에 끌려왔습니다. 예양은 그 이유를 묻는 양자왕에게 당돌하게 자백하였습니다.
"당신을 죽이지 않으면 내 혼백이 어떻게 주군 지백 앞에 설 수 있겠소?"
"내 시대에 의를 위해 목숨을 내놓은 사람은 본적이 없다!"
양자왕은 예양의 충성에 감복하여 그냥 풀어주도록 하였습니다.
그러나 예양의 주군을 향한 충성심은 변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주군의 해골에 옻칠을 했다하여 자신의 온몸에 옷칠을 하고, 숯가루를 먹고 주군원한을 갚을 기회를 찾고 있었습니다.
어느날 양자왕이 다리 위를 지나가는데 말이 뛰는 것이었습니다. 수상히 여겨 다리 밑을 수색해 보니 지백이 양자왕을 암살하려고 숨어 있었습니다.
"너같은 신하만 있어도........... ."
다시 끌려온 예양을 보며 양자왕은 탄식하며 물었습니다.
"네가 지백의 수하에 있기 전에 다른 주군을 섬긴 적이 있지 않은가?그런에 이제 나를 섬길 수도 있지 않으냐?"
"왕이여, 여자는 사랑하는 이를 위해 화장을 하고 사나이는 알아주는 이를 위해 목숨을 내어 놓는 법입니다."
그의 내 심장을 꺼내기 전에는 그 마음은 변하지 않을 것 이라는 그의 중심을 보고 양자왕은 탄식을 했습니다.
"예양아, 너는 죽일 수도 없고 살릴 수도 없으니 내가 너를 어이하면 좋으냐?"
땅을 치며 우는 양자왕에게 예양은 답했습니다.
"나를 살려두면 당신은 반드시 죽습니다. 그러니 왕의 옷자락이라도 넘겨주시요. 그는 양자왕의 베인 옷자락을 칼로 세번 찌르고 세상을 떠났습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심장을 바치는 모습 속에는 감동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심장을 바쳐 충성하는 일꾼들을 기억하십니다.
[예레미야 20:12]
의인을 시험하사 그 폐부와 심장을 보시는 만군의 여호와여 나의 사정을 주께 아뢰었사온즉 주께서 그들에게 보수하심을 나로 보게 하옵소서
심장을 십자가에서 내어주신 사건은 아버지 하나님께 대한 최고의 충성이셨습니다.
모세는 사환으로 충성하였으나 그리스도는 그의 집 맡은 아들로 충성하였습니다.
[히브리서3:5]
그리스도는 그의 집 맡은 아들로 충성하였으니 우리가 소망의 담대함과 자랑을 끝까지 견고히 잡으면 그의 집이라
심장을 하나님께 바침으로 우리에게 하나님의 사랑을 보여주신 예수 그리스도!
그분이 십자가에서 우리 위해 내어주신 심장은 우리 믿는 성도들 안에서 계속하여 뛰어야 할 줄 압니다.
무엇을 위해 여러분의 심장을 뛰고 있습니까?
그리스도의 심장을 거저 받은 우리 성도들입니다.
그리스도의 심장이 삶의 원동력이 되어야 할 줄 압니다.
3. 주의 심장으로 우리도 주님을 섬길 일입니다.
사도 바울은 심장으로 자신을 사랑하신 예수님을 만난 후, 이런 고백을 하고 있습니다.
[빌1:6-8]
6 너희 속에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가 확신하노라
7 내가 너희 무리를 위하여 이와 같이 생각하는 것이 마땅하니 이는 너희가 내 마음에 있음이며 나의 매임과 복음을 변명함과 확정함에 너희가 다 나와 함께 은혜에 참예한 자가 됨이라
8 내가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으로 너희 무리를 어떻게 사모하는지 하나님이 내 증인이시니라
아도니람 저드슨이란 선교사는 주님의 우리를 위해 내어주신 하나님 아들의 심장을 만나고 자신의 삶을 충성스럽게 헌신하셨습니다.
그는 미국 최초의 해외 선교사였고 버마(지금의 미얀마)에서 일생동안 복음을 전했던 선교사였습니다. 그의 수고를 통해 수 많은 버마 영혼들이 주님께로 돌아왔으며 버마 기독교 역사의 그루터기를 형성하였습니다.
그의 눈물과 땀방울과 헌신의 핏방울은 버마인들의 생명의 양식이었던 버마어 성경을 잉태했으며, 또한 영어-버마어 사전을 잉태했습니다.
아도니람 져드슨(Adoniram Judson)은 1788년 메사츄세츠에서 한 회중교회 목사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그는 16세에 브라운 대학교에 입학해 4년 과정을 3년만에 수석으로 졸업할 정도로 수재였습니다.
하지만
그의 아버지는 회중교회 목사였고, 어머니의 눈물어린 설득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저드슨은 20살이될 때가지 구원받지 못했습니다.
그는 당시 자연신론에 심취했던 친구로부터 악영향을 받아 방황의 세월을 보냈습니다. 오히려 성장할수록 그는 확고한 범신론자가 되어갔습니다.
그러나 저드슨이 극적으로 주님께로 회심하고 구원받은 것은 다름아닌 바로 그 범신론자 친구 때문이었습니다.
졸업 후 저드슨은 집을 떠나 방랑자처럼 여행을 하고 있었습니다.
어느날 한 시골 여인숙에서 하루 밤을 묵게 되었는데, 저드슨은 옆 방에서 밤새도록 들려오던 그 남자의 끝임 없는 신음소리로 인해서 저드슨은 한 잠도 잘 수 없었습니다.
다음날 아침, 저드슨이 여관 주인에게 그 죽은 사람이 누구냐고 물었을 때 그가 들은 대답은 너무 충격적인 말이었습니다.
그는 프로비던스 대학출신의 매우 똑똑한 젊은이, 바로 범신론자였던 자기 친구였던 것입니다.
저드슨 안에 있는 하나님께 대한 믿음을 파괴시켰던 바로 그 불신자였습니다.
버려졌다! 버려졌다‥‥지옥에 버려진 것이다. !
그의 뇌리를 파고들었습니다. 귀에 맴돌고 떠나가질 않았습니다.
그의 마음 속에서 큰 소리로 메아리치고 있었습니다.
어둡고 낮은 지옥으로 떨어지려는 절벽의 가장자리에서 떨고 있는 그는 어디에서 죽음 후의 영원한 시간을 보내게 될까?
죽음 이후에 무언가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는 자신을 발견하였습니다.
그 이후로 저드슨은 자신도 역시 잃어버려진 상태에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자신의 혼을 지옥으로부터 구원해 달라고 하나님께 매달렸으며, 마침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통해 영원한 불타는 지옥으로부터 구원받게 되었습니다.
그는 여행을 중단하고 집으로 돌아와서 앤도버 신학교에 입학했습니다.
그리고 그의 인생을 주님을 위해 바치기로 결심하였습니다.
그가 회심하고 구원받음으로 인해서 그동안 자기가 꿈꾸어 왔던 모든 것들,즉 명예를 얻고 세상의 인정과 칭찬을 받으려는 마음을 버렸습니다.
이제 그의 유일한 목표는 오직 주님을 기쁘게 해 드리기 위하여 자신을 바치는 것이었습니다.
회중교회에 다니기 시작한 1807년, 아도니람 저드슨은 선교사가 되려는 부담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는 월리암 대학에 다니는 몇 몇 친구를 알게 되었는데, 그들은 저드슨과 같은 부담을 갖고 있던 친구들로서 그 대학의 운동장에 있는 건초더미에서 자주 모임을 가졌습니다.
그들은 복음을 듣지 못한 야만인들과 미개인들이 구원받도록 전심으로 기도했고, 그들이 선교사로서 갈 수 있도록 복음의 문을 열어 주시도록 하나님께 간구했습니다.
그 장소가 바로 미국 선교의 발원지가 되었습니다.
그는 한 영국 선교사의 선교사역 보고서를 읽는 중에 크게 감동되어 미국 최초의 해외 선교사가 되기로 결심했습니다.
미국 선교회를 결성하게 되었고, 1812년 이제 막 결혼한 그의 아내 낸시와 함께 인도로 파송되었습니다.
하지만 동인도회사의 방해로 인도를 떠나, 버마로 향하게 되었습니다.
불교 문화권에서의 사역은 쉽지 않았다.
언어의 장벽, 문화의 장벽, 정부의 간섭 등 많은 장벽들이 있었습니다.
수백만 명이 살고 있는 버마 땅에는 그리스도인이라고는 한 명도 없었습니다. 게다가 도둑과 강도들이 들끓고 우상숭배가 만연하며 죄악으로 가득차 있었습니다. 더구나 그 땅에는 마음을 터놓고 이야기할 수 있는 친구가 단 한 명도 없었습니다.
콜레라로 죽은 수천 명을 위하여 우울하게 둥~둥~ 울리는 죽음의 북소리와 몽둥이로 집을 두들기는 관습 역시 이 선교사 부부의 민감한 영을 괴롭게 했습니다.
그러나 6년이라는 긴 세월이 지난 후, 마침내 그들은 버마에서 첫 영혼을 그리스도께로 인도하게 되었습니다.
1819년 6월 27일, 구원받은 첫 번째 버마 사람인 멍나우(Moung Nau)에게 침례를 베풀었던 것입니다.
저드슨은 그의 일기에 다음과 같이 기록했습니다.
"주님, 오늘을 기점으로 주님이 오시는 날까지 버마 사람들이 끝임없이 회심하고 침례를 받을 수 있도록 인도하여 주십시오."
구원받는 사람들의 숫자는 2명, 3명, 6명, 18명으로 천천히늘어갔습니다.
그러나 마귀의 공격도 만만치 않았습니다.
그의 선교사역에는 너무나도 엄청난 고통과 눈물과 희생이 따랐습니다.
그들은 열대성 열병으로 수십 번 죽을 고비를 넘겼고, 사랑하는 아내와 많은 자식들이 병들어 죽어갔고, 그의 자녀들은 사산되거나 대부분 열병으로 먼저 하나님의 나라로 보내야만 했습니다.
한 때, 저드슨은 영국에서 보낸 스파이라는 누명을 쓰고 21개월 동안이나 감옥에 갇히게 되었고 사형선고가지 받게 되었습니다. 간절한 기도와 저드슨의 아내의 공무원들에게 끝임없이 간청, 영국의 중재로 인하여 그는 감옥에서 나오게 되었지만.
하지만 그는 진정 버마인들의 영적 거인이었습니다.
그의 영혼을 향한 정신과 희생의 삶은 지금도 많은 하나님의 종들 마음 가운데 남아있으며 계승되어지고 있습니다.
져드슨의 이러한 마음의 병은 그를 위해 엄청난 사랑의 기도를 드렸던 동료 선교사들과 개종자들로 인하여 점점 치유되어 정상의 생활로 돌아올 수있었습니다.
그는 더욱더 열심히 성경 번역 작업과 복음 사역에 힘썼습니다.
1834 년 그는 버마에 머물면서 선교 사역을 감당했던 30세의 미망인 사라 보어드맨과 재혼했으며, 그녀와 함께 계속해서 선교사역을 감당했습니다.
1810년 그는 버마어 성경번역을 시작한지 23년 만에 많은 질병과 아내와 자녀들의 죽음을 맛보는 고통의 사투 끝에 그는 결국 버마어 성경을 완성하였습니다.
사역이 진행됨에 따라 복음은 진전되었고, 복음의 능력이 죄인들의 감겼던 눈을 뜨게 하였고, 우상에 속박된 마음을 깨뜨리기 시작했으며, 갓 거듭난 회심자들을 승리하는 그리스도인들로 변화시키기 시작했습니다.
그가 죽은 직후 정부의 보고서에 의하면 버마에 210,000명의 그리스도인들이 있는 것으로 보고 되었습니다.
이는 버마인 58명 중 한 명이 그리스도인이라는 놀라운 숫자였습니다!
이것은 성령의 위대한 업적이었으며, 그는 버마 수도인 아바(Ava)에서 부처의 사원을 응시하면서
"머지않아 나의 목소리보다 훨씬 더 강력한 한 음성이 너의 왕국의 모든 흔적을 쓸어 없애 버릴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들이 곧 이 우상숭배의 신전을 대신할 것이며, 열렬한 불교도의 노래 소리는 그리스도인들의 찬양 앞에 사라지게 될 것이다!"
라고 강력하게 도전한 저드슨의 헌신적인 사역의 결과라고 할 수 있습니다.
1850년 4월 12일, 그는 결핵으로 해상에서 조용히 눈을 감았습니다.
아무런 장례식도 없이 평소 자주 입었던 검정색 양복 차림으로 바다에 수장되었습니다.
[마무리하는 말]
복음 성가 가운데 고형원 형제가 쓴 가사가운데 물이 바다 덮음 같이란 작품이 있습니다.
세상 모든 민족이 구원을 얻기까지 쉬지 않으시는 하나님
주의 심장 가지고 우리 이제 일어나 주 따르게 하소서
세상 모든 육체가 주의 영광보도록 우릴 부르시는 하나님
주의 손과 발되어 세상을 치유하며 주 섬기게 하소서
그렇습니다.
주의 심장을 가지고 우리 하나님의 사람들이 주의 손과 발이 되어 세상을 섬길 때, 하나님 나라의 구원이 우리에게 힘있게 임할 줄 믿습니다.
"내 눈이 이땅의 충성된 자를 살펴 나와 함께 거하게 하리니"(시101:6)
"착하고 충성된 종아 ..... 내가 많은 것으로 네게 맡기리니"(마25:23)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면류관을 네게 주리라"(계2:10)
[성경본문]
30 예수께서 신 포도주를 받으신 후 가라사대 다 이루었다 하시고 머리를 숙이시고 영혼이 돌아가시니라
31 이 날은 예비일이라 유대인들은 그 안식일이 큰 날이므로 그 안식일에 시체들을 십자가에 두지 아니하려 하여 빌라도에게 그들의 다리를 꺾어 시체를 치워 달라 하니
32 군병들이 가서 예수와 함께 못 박힌 첫째 사람과 또 그 다른 사람의 다리를 꺾고
33 예수께 이르러는 이미 죽은 것을 보고 다리를 꺾지 아니하고
34 그 중 한 군병이 창으로 옆구리를 찌르니 곧 피와 물이 나오더라
35 이를 본 자가 증거하였으니 그 증거가 참이라 저가 자기의 말하는 것이 참인줄 알고 너희로 믿게 하려함이니라
36 이 일이 이룬 것은 그 뼈가 하나도 꺾이우지 아니하리라 한 성경을 응하게 하려함이라
37 또 다른 성경에 저희가 그 찌른 자를 보리라 하였느니라
38 아리마대 사람 요셉이 예수의 제자나 유대인을 두려워하여 은휘하더니 이 일 후에 빌라도더러 예수의 시체를 가져가기를 구하매 빌라도가 허락하는지라 이에 가서 예수의 시체를 가져가니라
39 일찍 예수께 밤에 나아왔던 니고데모도 몰약과 침향 섞은 것을 백 근쯤 가지고 온지라
40이에 예수의 시체를 가져다가 유대인의 장례 법대로 그 향품과 함께 세마포로 쌌더라
41 예수의 십자가에 못 박히신 곳에 동산이 있고 동산 안에 아직 사람을 장사한 일이 없는 새 무덤이 있는지라
42 이 날은 유대인의 예비일이요 또 무덤이 가까운고로 예수를 거기 두니라
No comments:
Post a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