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nday, 1 March 2015

마7:13-29 하나님 자녀에게 주는 영적 부모의 선물


들어가는 말

오늘은 어버이 주일입니다. 부모님을 생각하면 늘 고맙습니다. 
부모님은 가지고 계신 모든 것을 주십니다.
아낌없이 주십니다. 
부모님은 가장 좋은 것을 주십니다. 
그래서 언제든지 부모님을 생각하면 가슴이 뭉클합니다.
감동이 됩니다.
감사합니다.

이 복된 어버이 주일에 우리는 영적인 어버이이신 우리 하나님께서 주시는 선물을 열어봅니다.
그것은 주님께서 주신 사랑의 편지입니다.
그 중 산상수훈(5-7장) 결론 부분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를 향한 영적 부모의 권면은 무엇입니까?


1.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에 들어가라.

(13)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14)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이가 적음이니라 

스핑크스에 전해오는 전설이 있습니다. '아침에는 네발, 낮은 두발, 저녁에는 세 발인 짐승이 무엇인가 물어 답하지 못하면 죽였다'는 전설입니다. 태어나서 기어다니고 늙어서 지팡이를 집고 다니다 죽는 것이 인생이라는 것입니다. 그런 사실도 모르는 존재는 죽어 마땅하다 죽였던 것일까요?
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한 일입니다. 그러나 그 후에는 심판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후에는 무엇입니까?
둘 중 하나입니다. 하나는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이요, 또 다른 하나는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입니다. 
모든 부모는 그 자녀가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으로 들어가길 원합니다. 사랑하는 자녀가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으로 들어가고 싶은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으로 들어가는 일은 어렵습니다.
주님께서는 앞선 산상 수훈에서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으로 들어가는 방법을 그림처럼 알려주셨습니다.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어라.
형제에게 노하지 말라.
음욕을 품지 말라.
오른뺨을 때리는 자에게 왼편을 돌려대라.
속옷을 달라하는 자에게 겉옷까지 주라.
오리를 가게 하는 자에게 십리를 동행하라.
원수를 사랑하라.
핍박하는 자를 위해 기도하라.
사람들의 과실을 비판하기보다 용서하라.
염려하지 말라.
하나님의 나라와 그 의를 구하라.
대접받기보다 대접하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으로 들어가지 않고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에 들어가는 까닭은 생명으로 들어가는 문이 좁은 문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문제입니다.
자기를 부인해야 하는 고통이 따릅니다. 
자기 십자가를 지고 가는 인종이 필요합니다.
그리스도와 함께 죽은 자가 들어가는 문입니다. 
나의 힘이나 공로로는 들어갈 수 없는 문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믿음으로 받은 자만 들어갑니다.

마태복음 8장 18-22절에서 두 사람이 넓은 문을 통해서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을 들어가려 합니다. 

[마8:18-22)예수께서 무리가 자기를 에워쌈을 보시고 저 편으로 건너가기를 명하시니라 [18]한 서기관이 나아와 예수께 말씀하되 선생님이여 어디로 가시든지 저는 좇으리이다 [19] 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거처가 있으되 오직 인자는 머리 둘 곳이없다 하시더라 [20]제자 중에 또 하나가 가로되 주여 나로 먼저 가서 내 부친을 장사하게 허락하옵소서 [21] 예수께서 가라사대 죽은 자들로 저희 죽은 자를 장사하게 하고 너는 나를 좇으라 하시니라 [22]

데마도 넓은 문을 통해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에 들어가려 하였습니다(딤후 4:10).
그러나 넓은 문을 통해 생명으로 들어가는 문은 없습니다.

형제에게 노하면서 들어갈 수 있는 생명의 문은 없습니다. 그 일은 누구나 하는 넓은 문이기 때문입니다.
음욕을 품고도 들어갈 수 있는 생명의 문은 없습니다. 그 일은 누구나 하는 넓은 문이기 때문입니다.
오른뺨을 때리는 자에게 복수하면서 들어갈 수 있는 생명의 문은 없습니다. 그 일은 누구나 하는 넓은 문이기 때문입니다.
속옷을 달라하는 자를 경멸하면서 들어갈 수 있는 생명의 문은 없습니다. 그 일은 누구나 하는 넓은 문이기 때문입니다.
오리를 가게 하는 자를 원망하면서 들어갈 수 있는 생명의 문은 없습니다. 그 일은 누구나 하는 넓은 문이기 때문입니다.
원수를 미워하며 들어갈 수 있는 생명의 문은 없습니다. 그 일은 누구나 하는 넓은 문이기 때문입니다.
핍박하는 자를 저주하며 들어갈 수 있는 생명의 문은 없습니다. 그 일은 누구나 하는 넓은 문이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의 과실을 비판하면서 들어갈 수 있는 생명의 문은 없습니다. 그 일은 누구나 하는 넓은 문이기 때문입니다.
염려하면서 들어갈 수 있는 생명의 문은 없습니다. 그 일은 누구나 하는 넓은 문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나라와 그 의를 구하지 않으면서 들어갈 수 있는 생명의 문은 없습니다. 그 일은 누구나 하는 넓은 문이기 때문입니다.
대접받기만 좋아하면서 들어갈 수 있는 생명의 문은 없습니다. 그 일은 누구나 하는 넓은 문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에 들어갈 수 있습니까?
예수 그리스도께서 생명의 문이 되셨습니다.
우리의 죄를 사하기 위해 희생 제물이 되셨습니다.
십자가를 대신 지셨습니다. 사람들은 누구나 십자가를 좋아하지 않기 때문에 결국 예수님께서는 세상사람들이 싫어하는 좁은 문이 되셨습니다.

좁은 문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생명으로 인도하는 좁은 문이십니다.
여러분은 오늘 지금 이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 앞에 서 계십니까? 
하나님께서는 그 자녀된 여러분이 모두 이 생명의 문으로 들어오시길 기다리고 계십니다.

예수가 우리를 부르는 소리 
그 음성 부드러워 문 앞에 나와서 사면을 보며
우리를 기다리네
오라 오라 방황치 말고 오라
죄 있는 자들아 이리로 오라 주예수 앞에 오라.



2. 좋은 나무로 아름다운 열매를 맺으라

(15)거짓 선지자들을 삼가라 양의 옷을 입고 너희에게 나아오나 속에는 노략질하는 이리라 (16)그의 열매로 그들을 알지니 가시나무에서 포도를, 또는 엉겅퀴에서 무화과를 따겠느냐 (17)이와 같이 좋은 나무마다 아름다운 열매를 맺고 못된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나니 (18)좋은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을 수 없고 못된 나무가 아름다운 열매를 맺을 수 없느니라 (19)아름다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지우느니라 (마20)이러므로 그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 (21)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22)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 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치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23)그 때에 내가 저희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인생은 열매로 말합니다. 가을이 되면 무성한 잎들이 다 떨어져 앙상한 가지만 남아도 열매가 풍성하면 아름답습니다.
세상 어버이들의 한결같은 바램은 자녀가 아름다운 열매를 맺는 것입니다.
행실에 아름다운 열매 맺기를 원합니다.
언어에서 아름다운 열매 맺기를 원합니다.
학업에서 아름다운 열매 맺기를 원합니다.
인간관계에서 아름다운 열매 맺기를 원합니다.
인격에서 아름다운 열매 맺기를 원합니다.
신앙에서 아름다운 열매 맺기를 원합니다.

헨리 에버스란 사람을 아십니까? 그녀는 호주 멜본에서 열린 독립 100주년 행사에 Main Speaker로 등장하여 세상을 놀라게 한 소녀입니다. 그 행사에는 세계 각처에서 유명인사들이 모여 성대한 잔치를 베풀었는데요. 그 엄청난 자리에 한국 홀트 아동복지회에서 호주로 입양하여 자란 소녀가 Main Speaker로 뽑혔던 것입니다.
그 소녀는 한국 어느 철없는 여학생에게서 태어나 버려진 고아였습니다. 그러나 그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 좋은 부모를 만나 세계적인 인물로 열매를 맺은 것입니다. 천명의 난 사람들이 모여 각종 테스트를 하였는데 당당히 1등을 하여 그 자리에 섰답니다. "나는 이 사회가 변화된 것을 여러분에게 보여주기 위하여 이 자리에 섰습니다. 나는 미래의 목소리입니다."
열매는 이처럼 아름답습니다.


그러나 아름다운 열매를 방해하는 세력이 있습니다.

(15)거짓 선지자들을 삼가라 양의 옷을 입고 너희에게 나아오나 속에는 노략질하는 이리라 (16)그의 열매로 그들을 알지니 가시나무에서 포도를, 또는 엉겅퀴에서 무화과를 따겠느냐

"거짓 선지자들"입니다. 거짓된 복음을 전하는 "거짓 설교자"입니다. 그들은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고백한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그 믿음의 내용이 잘못되어 있는 사람들입니다. 내면은 변화되지 않았습니다(벧후 1:4참조). 이들은 다만 외적으로 양의 탈을 쓰고 있습니다. 그리스도를 "주님"이라고 부르며 신앙적인 행동을 합니다. 그러나 구원을 받지 못한 사람들입니다 ! 
저들이 하는 '주여 주여'는 전 인격을 실은 고백이 아닙니다. 
입술만의 고백입니다. 
참된 회개가 없습니다. 
예수님의 피 값으로 사신 은혜를 바꾸어 버렸습니다.
.
거짓 선지자는 하나님으로부터 말씀을 받지 아니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으로부터 메시지를 받은 것처럼 가장하여 성도를 미혹(迷惑)합니다(렘 6:14;8:11;마 24:24).
거짓선지자들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며…귀신을 쫓아 내며…많은 권능을 행하였습니다(22). 극적인 행위 - 심지어는 초자연적 행위까지도 -를 행하합니다. 따라서 이런 것만으로는 하나님의 열매임을 증명할 수 없습니다(신 13:1 - 5; 살후 2:8 - 12 ; 마 24:24).

매일의 시험들을 물리쳐야 합니다.
우리의 성향에 거스리는 의무들을 이행해야 합니다.  
우리는 어려움을 견뎌야 합니다.
고통과 씨름을 해야 합니다.
많은 고난을 겪어야 합니다.  

거짓 선지자들은 양의 옷을 입은 이리입니다.
그들의 겉치레는 아름답습니다.
양의 옷을 입고, 선지자들의 복장으로 옵니다.  
양인 체 가장하기 때문에 겉으로는 순진하고 무해하며 온유하고 유익한 존재로 보입니다.  
자신을 '광명한 천사로' 가장합니다(고후 11:13,14).
그러나 속에는 노략질하는 이리라.  
우리를 속여 우리에게서 진리를 빼앗습니다.
우리 영혼에 해를 끼칩니다.  
바울은 그들을 '흉악한 이라'(행 20:29)라고 불렀습니다.

이런 이단들은 열매가 좋지 않습니다. 
얼마 전 중국을 다녀오신 곽선희 목사님이 Tm신 글을 읽었습니다. 연길에서 종교국장을 만나서 한 대화입니다. 연길에 캐톨릭도 하나, 불교도 하나를 허가해주었습니다. 통일교, 무슨 이단 많은 돈을 넣어도 허락해주지 않았답니다. 그런데 기독교는 25개 교회를 허가해 주었답니다. 중국의 건강한 발전을 위해서랍니다.

그 나무가 어떤 나무인지는 열매에서 보게 됩니다.  
나무 껍질이나 잎사귀를 가지고 언제나 나무들을 다 식별할 수는 없습니다.  
가지들의 뻗어 나간 모양을 가지고도 알 수 없습니다.  
나무가 어떤 나무인지를 안다면 그 나무에서 어떤 열매가 맺힐지를 알 수 있습니다. 
아무도 '가시나무에서 포도를, 엉겅퀴에서 무화과' 따기를 기대하지 않습니다. 
타락하고 사악하며 불결한 마음은, 죄로 말미암아 마침내 불에 던져질 가시나무와 엉겅퀴와 같습니다.  
그러나 선한 행실들은, 포도와 무화과처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사람에게 유익을 주는 좋은 열매입니다.  
이 좋은 열매는 깨끗한 것이 불결한 것에서 나올 수 없는 것처럼 결코 악한 자에게서 기대될 수 없습니다. 

거짓 선지자들의 겉모양은 아름답고 선해보입니다. 그러나 그들의 열매는 거짓 선지자들이 만들어 낸 교리에 뿌리를 내리고 있습니다. 의혹을 사지 않도록 위장하지 않으면 속지 않기 때문입니다. 
권능이 있으니까, 귀신을 쫓아내니까, 많은 사람이 그 주변에 모이니까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사람이라고 속지 마십시오. 
거짓 선지자에 미혹될 때,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지 않게 됩니다.(21-23절) 아름다운 열매를 기대할 수 없습니다.
"모조품"들은 우리를 속일 수 있습니다. 사단은 마음의 눈을 멀게 하며(고후 4:3-4) 사람들이 자신은 구원을 받았다고 생각하도록 속임수를 씁니다. 

파스칼이 말했습니다.
"인간은 천사처럼 살려고 하면서도 실제로는 짐승처럼 행동하고 있다."
누구나 아름다운 열매를 맺기 원하면서도 좋은 나무가 아니기에 짐승처럼 살고 있다는 사실은 서글픈 현실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아름다운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까?

1] 좋은 나무 신자이어야 합니다.

(17)이와 같이 좋은 나무마다 아름다운 열매를 맺고 못된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나니 (18)좋은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을 수 없고 못된 나무가 아름다운 열매를 맺을 수 없느니라 

그러나 좋은 나무 신자는 하나님의 뜻을 존중하는 신자입니다. 효자가 부모의 말씀을 존중하는 것처럼, 하나님과 하나님의 뜻을 존중합니다. 그는 좋은 나무와 같아서 그의 열매도 좋습니다.  좋은 나무 신자는 아름다운 열매를 맺게 마련입니다. 
못된 나무 신자는 하나님을 존중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열매도 나쁩니다.(15-20절) 그러므로 좋은 나무 신자가 되어야 합니다.



2] 하나님 아버지 말씀을 존중하고 순종하는 신자입니다. 

시1편에는 그런 사람을 복있는 사람이라 하였고, 시절을 좇아 과실을 맺는다고 하였습니다.

그 나라의 법을 잘 지키라는 말씀입니다.

(마20)이러므로 그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 (21)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그러므로 먼저 그들의 열매가 바른 말씀(교리) 위에 믿고 있는가를 살펴보아야 합니다.

좋은 나무 신자일 때,  아름다운 열매가 맺힙니다.
하나님 말씀에 순종할 때 아름다운 열매가 맺힙니다.

-성령의 열매가 맺힙니다.(갈 5:22-23)
-그리스도인의 성품의 열매가 맺힙니다.
-입술의 열매가 맺힙니다. 하나님을 찬송합니다(히 13:15)
-거룩한 삶이 맺힙니다.(롬 6:22)
-선한 행실이 맺힙니다.(골 1:10)
-잃어버린 영혼들을 그리스도께로 인도합니다(롬 1:13).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 아버지를 존중하십니까?
하나님의 뜻을 존중하고 그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살고 계십니까?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고 좋은 나무 신자가 되십시오. 말
씀에 순종하다 보면 아름다운 열매를 맺을 날이 올 것입니다. 자신의 나무에 아름다운 열매가 맺히는 날을 보게 될 것입니다.

금년 2003년이 조나단 에드워드 출생 300년이 되는 해입니다. 예수님을 잘믿고 프린스턴 대학교 총장까지하 s 그는 그 후손들이 다 잘된 것으로 유명합니다. 13 대학총장, 85대학교수, 60의자 100목사 60저술가, 75장군, 100법률가, 30판사 3부통령  등등 놀랍지 않습니까?



3. 반석 위의 집이 서도록 듣고 행하라

(24)그러므로 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으리니 (25)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히되 무너지지 아니하나니 이는 주초를 반석 위에 놓은 연고요 (26)나의 이 말을 듣고 행치 아니하는 자는 그 집을 모래 위에 지은 어리석은 사람 같으리니 (27)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히매 무너져 그 무너짐이 심하니라 (28)예수께서 이 말씀을 마치시매 무리들이 그 가르치심에 놀래니 (29)이는 그 가르치시는 것이 권세 있는 자와 같고 저희 서기관들과 같지 아니함일러라

반석(24)은 그리스도십니다(고전 3:11). 예수 그리스도 위에 인생을 세운 사람은 지혜로운 건축자입니다.
반석은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입니다. 나의 이 말은, 5 - 7장의 내용입니다. 주님께서 주시는 말씀을 듣고 실천한 사람은 반석 위에 집을 세운 것과 같습니다.
역사를 두고 기독교는 많은 도전에 직면하였습니다. 그 원인 중 하나는 반석 위에 집을 세우지 않은 자는 망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산상수훈은 예수님을 메시야로 영접한 성도들에게 선포되었습니다. 반석이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사는 경건한 생활 그 자체가 요청됩니다.

두 건축자는 이 생의 두 인간을 대표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같은 재료와 같은 설계도를 사용하였습니다. 세상은 이 두 집의 차이점을 말할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폭풍(시험기간)이 오면 반석에 기초를 두지 않은 집은 무너져 내려  앉습니다. 
그러므로 반석 위에 집을 세우는 일은 절대적으로 중요합니다. 그 집이 무너진 사람은, 공사에 실패했기 때문이 아니라, 반석 위에 세우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참된 그리스도인은 반석 되시는 그리스도 예수께 기초를 두고 있습니다(고전 3:11). 그의 의는 교회나 신조나 "선한 생활"에 근거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그를 하나님을 위하여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께 들은 것을 행하는 데 있습니다. 참된 그리스도인은 그를 시험하는 폭풍을 뚫고 지속해 감으로써 하나님의 자녀임을 입증하며, 그리스도께 순종함으로써 그가 참된 신앙인임을 입증합니다. 말씀을 들을 뿐만 아니라 행하는 사람입니다(약 1:22-25).

굳건한 반석이시니
그 위에 내가 서리라 그 위에 내가 서리라


마무리하는 말

"좋은 것은 위대한 것의 적이다(Good is the enemy of Great)." 
하나님의 사역을 감당하는 우리가 범하는 실수 가운데 하나는 너무 쉽게 포기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보다 높은 수준의 삶과 사역을 감당하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의 온전하심과 같이 우리도 온전하기를 요구하십니다. 그러나 우리는 너무 쉽게 우리가 추구하던 비전과 가치를 포기하고 "여기가 좋사오니" 라며 평범한 삶의 수준으로 우리의 표준을 낮춰 잡고 있지는 않습니까?

평범(mediocrity)이란 말의 뜻은 높은 산을 올라가다가 산 중턱에 머물러 서서 이만하면 됐다고 스스로 만족하며 산 정상에 대한 비전을 포기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 안에는 하나님이 주신 탁월함이 잠재되어 있는데도 우리는 이만한 수준이면 되지 않았느냐고 반문하면서 평범한 삶을 택하는 자신을 합리화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위대한 사명을 맡기셨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우리 맘에 드는 어느 정도의 수준에서 스스로 만족하며 하나님의 일을 제한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짐 콜린스가 쓴 "좋은 기업을 넘어 위대한 기업으로(Good to Great)"라는 책은 우리의 리더십을 그저 좋음의 수준을 뛰어 넘어 위대함의 수준으로 한 단계 도약할 수 있도록 돕는 통찰력을 제공해줍니다. 그는 연구팀을 구성하고 그들과 함께 어떤 전환점을 기준으로 15년간의 누적 주식 수익률이 전체 주식시장과 같거나 그보다 못한 실적을 보이다가, 이후 15년간 시장의 최소 3배에 달하는 누적 수익률을 보인 회사를 찾아내었습니다. 이렇게 선정된 "좋은 회사에서 위대한 회사로 도약한 기업군"과 비슷한 형편의 다른 기업군을 비교 분석함으로 어떤 패턴을 찾아내었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왕이신 예수님께서 
천국의 법도를 알려 주시고 
그렇게 살라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요, 위대한 천국 시민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이신 얘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십시오.
우리는 좋은 나무가 될 것입니다.
좋은 나무에 아름다운 열매가 맺히게 마련입니다.
좋은 나무 신자가 되어 아버지를 존중하고 그분의 뜻에 순종함으로 아름다운 열매가 맺히게 됩니다.
만세 반석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반석 위에 집을 세운 지혜로운 건축자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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