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ursday, 30 April 2015
고통을 넘는 사랑 / 노하덕 칼럼
황병철님의 책을 읽다가 언뜻 깨달은 이야기인데요
하나
추운 북극이나 남극에 사는 펭귄은 아빠 펭귄의 발등에 알을 낳는답니다.
아빠 펭귄의 발등엔 털이 많이 나 있어서 알을 부화하기에 좋은 환경이기 때문입니다.
두 달 동안 아빠 펭귄의 발등에서 지내다 새끼가 부화되면 어미 펭귄은 먹이를 새끼에게 주어 키운답니다.
그때까지 쫄쫄 굶으면서도 새끼가 부화될 날을 기다리던 아빠 펭귄은 드디어 사명을 다 하고 바다로 향하는 중 대부분 아빠 펭귄들은 죽어간다는군요.
아,
너무 눈물겨운 이야기지요?
그러나 저는 그보다 더 눈물겹고 감동이 있는 이야기 하나를 알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이야기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십자가를 벗어버릴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벗어버리지 않았습니다.
우리란 하나님의 자녀를 부화시키기 위함이었습니다.
얼마든지 십자가의 고통을 피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피하지 않으셨습니다.
십자가는 죄인인 우리를 하나님의 작품으로 변화시킬 수 있는 유일한 환경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로 태어나길 기다리신 것입니다.
참 추우셨을 텐데... .
참 아프셨을 텐데.... .
참 고독하셨을 텐데... .
마치 아빠 펭귄이 그 발등에 두 달 동안이나 알을 두고 기다린 것처럼 말입니다.
우리 안에서 하나님의 극상품 열매를 이루기 위해 십자가에서 대신 끊어지셨습니다.
우리 안에서 하나님의 극상품 열매를 이루기 위해 십자가에서 겨울을 나셨습니다.
우리 안에서 하나님의 극상품 열매를 이루기 위해 한 알의 밀 알로 썩어지셨습니다.
때로 나의 자아가 뭉개지는 고통을 당할 때,
우리 위해 짓이겨질 대로 짓이겨지신 예수 그리스도를 생각합니다.
둘
토기장이는 잘게 빻아 체질한 흙을 물에 풀어 반죽합니다.
그런 다음 커다란 나무망치로 무수히 흙반죽을 내리칩니다.
그렇게 하면 흙 속의 공기가 빠집니다.
흙과 흙 사이의 간격이 좁아지고 흙은 엉겨붙어 차지게 됩니다.
그래서 많이 짓이겨진 한 흙일수록 좋은 토기의 재료가 됩니다.
구두 수선공의 망치아래 좋은 가죽이 무두질을 당하듯
그래야 털이 뽑히고 기름이 온전히 처리되듯
양질의 철들이 대장장이에게 뭇매를 맞듯
소제가 고운 가루로 빻아질 때 제물이 되듯
그러고 보면,
우리가 지고 가는 십자가란
좋은 자기로 빚어져 가는 반죽 과정일 수 있습니다.
맹렬히 돌아가는 녹로 위에서 살점이 뜯겨 나가는 그 현장일 수도 있습니다.
온몸이 빨갛게 달궈져 가는 가마 속일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아프고 어지럽습니다.
뜨거울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과정을 통하여 지금보다 훨씬 쓸모 있고 아름다운 존재로 세상에 나타납니다.
꼭 필요한 존재, 유익한 존재로 세상에 나타납니다.
우리 주님께서 전능자의 채찍을 대신 받으시고 대신 고난을 당하신 겨울을
그래서 우리 신앙인들은 사랑하나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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