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사랑하는 사람이 떠나갈 때 슬퍼한다. 임종의 자리가 더 슬픈 이유다.
나에겐 한 꿈이 있다. 아버지 앞에서 형제들이 화목하며 사는 거다. 서로 사랑을 나누며 더불어 가는 삶이다. 어떤 이는 형님일 수 있고, 오라버니일 수 있고, 아우일 수 있고, 누이일 수 있다. 어떨 때는 노래도 하고, 생활의 애환도 나누고 그러면서 살고 싶다.
하지만, 이 소박한 꿈은 때로 현실이란 벽에 막혀 슬픔이 된다.
몇 년 전, 아들 위로와 대화를 나누던 중, 나는 그런 벽을 경험하였다. 사춘기를 지나던 아들은 내가 이해할 수 없는 말을 하고 있었다. 내가 하는 말도 위로에게 막히고 있었다. 한 시간 정도를 서로 씨름하였을까? 나는 자리를 떠나는 것이 좋겠다 말하고 일어났다. 그런데 위로가 충격을 받은 것 같았다. 대성통곡을 했다. 나는 당황했다. “자리를 떠나는 것이 좋겠다”는 말까지 벽에 막힌 탓일까? 아니면, 자기 말은 그런 뜻이 아니었다는 걸까?
그때 깨달은 게 있다. 현실이란 벽과 떠난다는 말의 슬픔이었다. 아버지와 아들에게까지도 벽은 존재할 수 있다. 그 벽은 때로 우리를 슬픔으로 몰아간다.
그리고 십여 년이 지난 오늘, 나는 세계 역사상 유래 없는 장벽에 막힌 남과 북의 하나 됨을 꿈꾸고 있다.
남과 북을 가로막은 장벽, 그 앞에서 느끼는 슬픔이 우리에게 있다. “떠날까? 헤어지자!” 대신 “나는 결코 너를 떠나지 않겠다! 내가 너의 울타리가 되어줄게!” 곁을 지키시는 아버지 마음으로, 슬픈 벽을 우리 삶에서 헐어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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