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가는 말
축복을 누리고 사는 사고(思考)를 하며 사는 사람이 있습니다. 축복을 받을 만한 복된 생각을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은 늘 주변에 축복을 베풀고 삽니다. 그런데 그런 사람에게 축복이 머물러요.
존경을 받기도 합니다.
어떤 경우는 세상 물질까지도 그 곁에 머물기도 합니다.
그런데 그 반대도 있습니다. 축복을 발로 차고 사는 사람도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기회를 주시는구나 느껴지는데 그걸 발로 차버립니다.
대신 돈 되는 것이 무언가 늘 찾아다닙니다.
그렇다고 물질이 그 곁에 머무는가는 또 다른 문제일 수 있습니다.
오늘 나사렛 사람들을 보면서 우리는 참으로 안타까운 삶의 모습을 만납니다.
그렇게도 그들이 그리워하며 기다리던 메시아가 그들 가운데 계셨습니다. 그들이 꿈에도 그리던 하나님의 나라가 그들 가운데 이루어 질 수 있는 기회가 그들 가운데 왔습니다. 이것은 축복입니다. 인류 역사상 이렇게 좋은 축복의 기회를 받은 사람들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 축복을 전혀 누리지 못했습니다. 대신
"이 사람의 이 지혜와 이런 능력이 어디서 났느뇨"
배척해버렸습니다.
대신 돈되는 것을 찾아 다녔습니다. 그러나 돈도 별로 모으지 못하고 한 평생을 살다가 죽어 영원한 지옥에 떨어져 갔습니다.
우리는 이 장면을 생각하면, 너무 억울하고 너무 안타까워서 눈물이 나오려고 합니다.
오늘 우리는 두 가지를 알기 원합니다.
무엇이 우리 삶의 현장 속에 하나님 축복을 막고 있는가
어떻게 하나님의 축복이 우리 삶의 현장에 넘치도록 할 것인가?
1. 주님께서는 제자를 통해 축복을 주시기 원하십니다.
51 이 모든 것을 깨달았느냐 하시니 대답하되 그러하오이다
52 예수께서 가라사대 그러므로 천국의 제자 된 서기관마다 마치 새 것과 옛 것을 그 곳간에서 내어오는 집주인과 같으니라
본문은 천국 비유 설교의 결론입니다. 앞부분에서 예수님께서는 7가지로 천국을 제자들에게 설명해주셨습니다.
주님께서는 왜 이 천국 비유를 주셨겠습니까?
천국을 그들 가운데 이루기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주님께서 고향 회당에 돌아와 왜 가르치십니까?
이렇게 잘 가르친다 자랑하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이렇게 능력이 있는 자다 뽐내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기 위해서입니다.
오늘 우리에게 천국 복음을 들려주시는 이유도 우리 안에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시기 원해서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삶의 현장에서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기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우리 교회에서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기 원하십니다.
우리 다락방에서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기 원하십니다.
우리 가정에서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기 원하십니다.
주님이 왜 제자들을 세우셨습니까?[제자의 정체성]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기 위해 천국의 제자들을 세우셨습니다.
52 예수께서 가라사대 그러므로 천국의 제자 된 서기관마다 마치 새 것과 옛 것을 그 곳간에서 내어오는 집주인과 같으니라
예수님께서는 '천국의 제자 된 서기관'으로 제자들의 정체성을 말씀해 주십니다.
제자들은 예수님께 배운 새로운 진리를 천국 창고에서 내어오는 주인과 같은 존재입니다.
동시에 구약에 감춰져 있는 언약의 비밀을 캐내는 서기관과 같은 존귀한 존재들입니다.
제자들은 말씀 사역을 어떻게 해야 합니까?[사역 방법]
1] 예수님처럼 - 예수님께서는 구약의 옛 가르침을 존중하시면서 새 언약을 전하셨습니다.
종교지도자들은 예수님께서 율법과 선지자들을 폐하는 줄로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나 폐하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케 하려 함이로다"(5:17)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새 언약의 복음을 항상 '선지자들의 말한 모든 것'(눅24:25) 위에 가르치셨습니다. 그는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글과 시편에'(눅24:44) 관해 말씀하셨습니다.
새것과 옛것은 신약과 구약을 의미한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Bengel). 우리는 '새것'인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옛 구약'의 정통성 위에서 이루어졌음을 기억합니다.
또한 '천국의 제자 된 서기관'이 말씀을 천국의 보물로 다루는 자세를 배웁니다.
2] 서기관처럼 - 예수님 당시의 서기관들은 성경 해석을 책임지고 있는 신학자일 뿐만 아니라 교사였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생명과 같이 소중히 여겼습니다.
서기관들은 하나님 말씀을 천국 보물 다루듯하였습니다.
천국 창고에서 구약과 신약을 가져와 세상에 나르는 일에 자신을 헌신한 우리들에게 있어서이겠습니까?
주님께서는 [천국의 제자 된 서기관]을 통해 하나님 나라를 전해주기 원하십니다.
2, 왕을 고향 사람들이 배척하였습니다.
57 예수를 배척한지라 예수께서 저희에게 말씀하시되 선지자가 자기 고향과 자기 집 외에서는 존경을 받지 않음이 없느니라 하시고
예수님께서는 저들의 회당에서 능력을 행하시고 지혜 있는 말씀을 전하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분을 누구보다 잘 안다고 생각되는 고향 사람들은 배척했습니다.
55 이는 그 목수의 아들이 아니냐 그 모친은 마리아, 그 형제들은 야고보, 요셉, 시몬, 유다라 하지 않느냐 56 그 누이들은 다 우리와 함께 있지 아니하냐 그런즉 이 사람의 이 모든 것이 어디서 났느뇨 하고
배척한 사람들은 예수님께 대하여 낯선 사람들이 아닙니다. 예수님과 같은 생활환경에서 살았던 마을 사람들입니다. 당사자들은 예수님 누이의 남편, 곧 처남들일 수 있어 보입니다(막6:3). 고향 사람들입니다(눅4:22) 그들은 예수님이 자신들과 같은 존재로 생각하고 살았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회당에서 가르치시는 말씀을 들으니 권세 있는 자와 같고 서기관들과 같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은 고향 사람들에게 충격을 주는 놀라운 일이었습니다. 예수님의 지혜만 그들을 놀라게 한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능력이 그들의 생각을 훨씬 뛰어넘었습니다. 능력을 뜻하는 뒤나미스는 힘, 전능, 세력을 의미합니다. 고향 사람들은 이 진리에 대한 넓고 깊은 예수님의 가르침과 예수님께서 자유롭게 행하시는 이적에 놀랐습니다.
그들에게는 두 결단이 요구되었습니다. 예수님을 메시아로 믿든지 지금까지 모든 유대인들이 선지자들에게 그렇게 했던 것처럼 배척하든지 말입니다.
그들이 배척한 이유가 무엇입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까?
그들이 예수의 친척들과 동향 사람들이어서 예수님을 시기하고 질투했기 때문입니까?
1] 예수님을 피상적으로만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알고 있는 예수님은 목수의 아들(막6:3)입니다. 저들에게 예수님은 '연한 순같고, 마른 땅에서 나온 줄기 같아서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어서 우리 보기에 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이것이 그들의 판단하는 기준입니다.
이와같이 예수님을 인간적 외모만 보고 피상적으로 생각할 때, 그들은 예수님의 참 본질을 놓치고 말았습니다.예수님을 목수 요셉의 아들인 것만 알고 인정하였지 나사렛 사람들은 천지를 지으신 목수이심을 깨닫지 못하였습니다. 톱과 망치를 사용하며 목재를 다듬는 세상의 목수와 달리, 예수께서는 말씀으로 세상을 다듬어 지으셨던 사실에는 눈멀어 있었습니다.
[적용1]
우리가 예수님을 피상적으로만 알 때, 예수님은 신앙의 대상이 될 수 없습니다. 인간으로 피상적으로 볼 때, 하나님이신 그분에 대한 믿음이 생기지 않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피상적으로만 알 때,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라고 고백하지 못합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피상적으로만 알 때, 예수님은 나에게 아무런 감동이 되지 못합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피상적으로만 알 때, 우리는 예수님을 그들처럼 배척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피상적으로만 알 때,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하지 못합니다.
[적용2]
우리가 교회에서 목사나 다른 직분자, 형제 자매를 바라볼 때도 피상적으로 보게 되면 그 본질을 바로 이해할 수 없습니다. 그들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알게 될 때 존경할 수 있습니다.
2] 그 결과는 시기요 배척입니다.
'고향'은 예수가 성장한 나사렛입니다. 나사렛 동향 사람들은 예수의 지혜와 기적적 능력에 놀랐지만 시기하여 본능적으로 적대적 감정을 터뜨렸습니다(Morris, Carson).
55 이는 그 목수의 아들이 아니냐 그 모친은 마리아, 그 형제들은 야고보, 요셉, 시몬, 유다라 하지 않느냐 56 그 누이들은 다 우리와 함께 있지 아니하냐 그런즉 이 사람의 이 모든 것이 어디서 났느뇨 하고
예수님께서는 죄를 사하시는 권세가 있으시고, 하나님의 능력으로 치유의 은혜를 베푸시며, 하나님의 지혜로 영혼을 거듭날 수 있게 가르치시는 하나님이심에 대하여 그들은 전혀 무지합니다.
대신 그들은 예수님이 자기들과 같은 인간이라는 사실을 붙들고 여러 가지 질문을 합니다. 첫 질문인 55절의 이(후토스)는 경멸적 표현입니다. 56절의 "다 우리와 함께 있지 아니하냐?"는 우리보다 더 높은 출신이 아님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오히려 예수님께 나타나는 놀라운 일들이 그들에게는 시기 질투의 대상으로 나타날 뿐입니다. 자신들과 다른 존재임이 부각이 되자 오히려 시기와 질투가 나타납니다.
영원하신 왕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사람으로만 볼 때, 그들은 시기 질투하다 결국 배척하는 죄를 범하였습니다.
예수님을 생명의 하나님 나라의 왕으로 섬기고 통치 아래 살 때, 하나님 나라가 이루어집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나와 같은 인간으로 생각할 때, 고향사람들처럼 배척함에 이릅니다.
여러분에게 예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같은 고향 사람이었던 예수님의 능력을 체험하였던 베드로는 그 발 앞에 엎드렸습니다.
'주여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나를 떠나소서.'
너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는 질문을 받았을 때 그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우리 안에 이런 고백이 늘 살아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하며 기도합니다.
3. 하나님의 나라는 주님의 지혜와 능력이 다스리는 곳에 임하십니다.
58 저희의 믿지 않음을 인하여 거기서 많은 능력을 행치 아니하시니라
예수님이 같은 마을에 사신다는 것은 큰 기회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자신의 왕으로 영접하여 그 분의 통치를 받을 때, 그분의 지혜와 능력이 자신들에게 임하십니다.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영접하는 믿음이 없는 사람들에게는 주님의 지혜와 능력이 임하지 않습니다(마13:58) 그들은 분명 예수님과 같은 마을에 살았습니다.
그러나 그분을 왕으로 영접하지 않았습니다.
이로 인하여 많은 손해를 보았습니다.
이로 인하여 하나님의 은혜를 누릴 수 없었습니다.
이로 인하여 하나님께서 거저 주시는 구원의 기회를 상실하였습니다.
58 저희의 믿지 않음을 인하여 거기서 많은 능력을 행치 아니하시니라
우리가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영접할 때, 그분의 지혜와 능력이 우리에게 임하십니다.
말구유에 아기로 오신 하나님의 아들, 나사렛에서 목수로 사시는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영접할 때 우리는 무엇을 얻을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의 겸손이란 지혜를 선물로 받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본문에서 예수님의 겸손이 얼마나 완벽한 것이었는가를 알게 됩니다. 함께 자라고 함께 생활한 사람들의 말("이는 그 목수의 아들이 아니냐")은 예수님 겸손이 얼마나 완벽하신가를 보여주십니다. 사람의 몸을 입고 오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종의 형체를 입으셨는데, 이렇게까지 철저히 자신을 '사람의 아들'로 낮추셨습니다.
마을 사람들이 30년을 함께 살았지만 예수님은 그들과 온전히 같아지셨던 것입니다.
우리는 세상에서 조그만 무엇인가 있어도 달라 보이기 위해 무척 애를 쓰는 사람들 사이에서 삽니다. 그렇지 않은 겸손한 사람들을 만날 때, 신선한 충격을 받게 됩니다.
저는 이곳 캐나다에 살면서 여러 유학생들을 만났습니다. 그 중에 아직 기억에 남아있는 어떤 청년이 생각납니다. 그는 한국에서 괜찮은 기업체의 사장 아들이었습니다. 그런데 그가 이곳에 사는 동안 전혀 그런 내색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가 이곳에 살면서 기업체의 사장 아들이라는 냄새도 없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정도가 아닙니다. 근본이 하나님이셨고 엄청난 능력을 가지신 하나님셨습니다. 그렇지만 온전히 목수와 같이 되셨던 것입니다.
목수로 일을 하셨습니다.
목수의 생활비를 받으셨습니다.
목수 아들이라 불리우셨습니다.
목수가 먹는 맛없는 음식을 자셨습니다.
목수가 입는 초라한 옷을 입으셨습니다.
그리고도 아무런 내색을 하지 않으셨습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입니다.
갈망하지 않고 배척하게 되면 아무런 역사를 기대할 수 없습니다. 고향 사람들의 불 신앙이 예수님의 치료 능력과 의지를 막았습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여러분의 다락방에서 이런 문제를 놓고 심각하게 나누어 보시기 바랍니다.
설교에 대한 평가를 하라는 말씀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더러 설교학 교수가 되라고 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을 배척했을 때, 얼마나 가난한 삶을 살았던가?
내가 예수님을 왕(그리스도)으로 영접하고 살면서 얼마나 풍성한 하나님의 지혜와 능력을 체험하고 살고 있는가를 나누라는 말씀입니다.
마무리하는 말
저는 간증할 수 있습니다. 제가 얼마나 평범한 사람인가를 제 자신이 너무 잘 압니다.
국어국문학을 하겠다고 대학을 갔는데 저에겐 재능이 없는 것을 알았습니다.
시를 배우면서 시를 써보았습니다. 그런데 이건 아니다 싶어서 그만 두었습니다. 나는 시인이 될 능력이 없음을 알겠더라구요.
소설도 써보려고 했습니다. 그것도 아니었습니다. 소설을 쓰려면 우선 이야기를 재미나게 전개할 능력이 필요한데 여러분이 제 설교를 들어서 아시지만 그런 능력이 별로 없어요.
그래서 평론은 가능한가 하고 평론도 몇 편 썼습니다. 그래서 교지에 발표도 했습니다. 그런데 그 일도 제가 평생 할 일이 못되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다른 사람의 소설이나 시를 예리하게 분석 비판할 수 있는 재능이 저에게 약합니다. 남을 깐다는 것이 체질에 맞지도 않았습니다.
그러면 학자가 되어야겠다고 하고 대학원에 들어갔습니다. 조교를 하면서 몇 년간 대학원에서 머물렀습니다.
그런데 저에게는 교수를 할 천재성이 없구나 하는 한계가 확실하게 느껴졌어요.
이 얼마나 안타까운 일입니까?
그래서 저는 중고등학교 교사 자격시험을 보아 학교교사 부임해 갔습니다. 그 일도 과분하지만 좀 부족한 건 몸으로 뛰면 되는 것이 교직이거든요. 그렇게 일하는 일이 제게는 더 적합했고 행복함을 깨달았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저에게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 줄 아십니까?
지난 주말, 한국 최고의 기독교 출판사라고 알려진 생명의 말씀사에서 제 이름으로 신앙시집이 출판되었습니다.
약 10년 전에 '나그네 목사'란 책이 서울 은혜문화사에서 출판되어 나왔습니다.
약 5년 전에는 '살맛나는 인생'이란 신앙수필집이 서울 쿰란 출판사에서 나왔습니다.
그리고 오늘은 '내가 왜 이렇게 행복한가' 하는 신앙 시집이 출판되었습니다.
세상 많은 사람들에게는 가능한 일일른지 몰라도 제게는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시도 보통 시들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놀라운 진리를 담은 신앙시들입니다.
지난 주일에 미국 뉴욕 중부 교회에서 설교를 부탁해서 이 시들을 세 편 소개해 주었는데요. 많은 사람들이 많은 은혜를 받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하나님께서 저에게 주신 은혜인데 그분들인들 하나님의 선물이 은혜가 되지 않겠습니까? 은혜가 되지 않는다면 내가 받은 은혜가 가짜겠지요.
어떻게 이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까? 주님을 영접하고 그분의 은혜 때문입니다.
주님을 나의 왕으로 인정할 때, 내 안에 작품을 만들어가시는 왕의 능력과 지혜를 우리는 얼마든지 체험하고 살아갑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누가 뭐라고 해도 제가 세 권의 신앙서적을 출판하였다는 사실이 하나님께서 왕으로 섬기는 종을 후대하신 표적입니다.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는 그 일이 가능할지 몰라도 제게는 기적이요,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주님을 왕으로 모셔들이십시오.
주님만이 우리의 교회를 천국으로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주님을 왕으로 모셔들이십시오.
주님만이 우리의 가정을 천국으로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주님을 왕으로 모셔들이십시오.
주님만이 우리의 삶의 현장을 천국으로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58 저희의 믿지 않음을 인하여 거기서 많은 능력을 행치 아니하시니라
이 말씀은 너무 슬픈 장면입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왕으로 모시고 살면, 그 반대의 일이 끝없이 일어납니다
저희의 믿음을 인하여 거기서 많은 능력을 행하시니라
이런 놀라운 축복이 우리 생애에서 끝없이 일어나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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