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uesday, 24 February 2015

윌버포스; 영국의 양심, 하나님의 정치가

예수 그리스도를 왕으로 모시고 살았던 역사적인 인물 가운데 윌리엄 윌버포스란 분이 있다. 
1759년 8월 24일, 윌리엄 윌버포스는 태어났닸. 제임스 울프 장군이 퀘백을 점령하고 육해상 전누에서 프랑스를 물리친 해였다.
그는 하나님의 정치가(God's politician)란 책명에 걸맞는 삶을 살았다.

그의 인생 목표는 관습을 개혁하는 일이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노예무역을 금지하는 것이었다. 

당시 영국은 세계적인 해군력과 바다를 지배하던 힘으로 아프리카 흑인들을 북미대륙으로 실어 나르는 일에 많은 국력을 쏟아 붓고 있었다. 그러기도 할 것이 당시 영국의 수입 1/3이 노예 수송에서 들어온 것이라니 알만하다. 왕족, 귀족, 경제인, 정치가 할 것 없이 노예 장사한 이익에 중독들이 되어 있었다. 

노예 해방을 말하는 사람은 매국노처럼 인식되던 시대에 그는 살았다. 노예무역이 국가의 번영을 가져온다고 생각했고, 노예제도의 폐지는 무역을 망치는 것이라 했다. 노예문제는 안보에도 중요하다는 것이 당시 사회적 통념이었다.

어떤이는 150여년 동안 약200만이나 북미대륙으로 노예로 팔려갔다고 하지만, 1776넌까지 영국이 프랑스, 스페인, 영국 식민지에 공급한 노예 수는 약 300만 정도였다. 그리고 더 비참한 것은 노예선 안에서 죽어 간 흑인들은 10%-25% 정도였다. 살아 남은 자 중에서도 1/3은 새로운 땅에 정착하는 가운데 죽어갔다. 

1783년 종(Zong)이란 노예선에서 벌어진 잔학 행위는 당시 노예들의 비참한 상황을 적나라하게 보여 준다. 이 배는 대서양 중앙 항로에서 길을 잃게 되었다. 그때 전념병이 돌아 60명의 노예와 7명의 선원이 죽었다. 더 무서운 것은 나머지 132명이나 되는 노예들도 바다 한 가운데 던져 버렸다. 족쇄가 채워진 채 그들은 수장되고 말았다. 마지막 10명은 족쇄를 푼 채 바다에 뛰어 내렸는데, 그 중 한 명이 배를 잡고 살아 나와 그 진상이 세상에 알려졌다. 선주는 돌아와서 보험금을 받았지만, 보험회사는 민사소송에서 졌다. 
당시 대법원장은 이렇게 말했다.
'마치 말을 바다에 빠뜨린 것이나 다를 바 없다.'
당시 법무부 장관은 간단히 말했다. 
'남은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서 물건을 바다에 던진 것과 같다.'
법무부 차관은 이렇게 거들었다.
'주인에게는 잔인하다거나 부당하다는 생각없이 자기가 적절하다고 여기는 만큼 얼마든지 노예를 물에 빠뜨릴 수 있는 명백한 권리가 있다.'
지도자들이 이런 몰상식한 폭언을 남기고 있다. 
그들에게 노예는 '가재도구의 문제'였던 것이다.

이런 열악한 사회 풍토 속에서 뜻을 세우고 노예제도를 영구히 폐지하는 법안을 통과시키는데는 56년이 걸렸다. 

그는 150번이나 되는 국회 논쟁을 통해서 불같은 사자후를 토했다.
"영국이 진정 위대한 나라가 되고자 한다면 하나님의 법을 지켜야 하는데 노예제도는 분명 하나님의 분노를 자극하는 일이다. 기독교 국가를 자처하는 영국이 황금에 눈이 멀어 노예제도를 갖고 있다니..... . 이러고도 오래 살아남은 제국은 역사에 없었다."

그를 '영국의 양심'이라고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 있다.
그가 이 막중한 사명을 감당할 수 있었던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온 우주의 왕이라고 확신하는 믿음이 기본이 되었다. 그리고 뜻을 정하고 하루 두 시간씩 기도와 말씀으로 보냈다는 것은 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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