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가는 말]
1939년 7월 7일 뉴욕 항을 떠나 독일로 가는 배에 한 청년이 타고 있었습니다. 그는 20세기에 최대의 영향력을 가졌다는 '본 훼퍼'라는 신학자인데 미국의 유니온 신학교에서 박사 학위를 받고 자기의 조국으로 돌아가는 길입니다. 그가 쓴 저서들은 [성도의 교제], [행위와 존재], [바르멘 선언], [창조와 타락], [옥중 서간], [윤리학]등이 있는데 비록 자유주의적인 서적들이지만 현대 신학의 큰 영향을 준 저서들입니다.
그가 독일로 가는 이유는 그 나름대로 뜻이 있었습니다. 당시의 독일은 히틀러가 정권을 잡고 온통 세계를 전쟁의 불바다로 만들어 가고 있었으며, 특히 유대인의 대량 학살을 저질러 역사상 그 유래를 볼 수 없는 잔인 무도한 만행을 자행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안탑깝게도 독일의 교회는 이런 비인간적인 만행을 보면서도 침묵을 하고 있었습니다. 오히려 '히틀러 만세'를 부르고 있었습니다. 이런 교회를 일깨우고 하나님의 공의를 선포하고자 그는 독일로 갔던 것입니다. 그가 미국을 떠나려 할 때 많은 교수들과 동료들이 그를 만류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 모든 만류를 뿌리치고 독일을 향해 갔습니다. 그가 미국을 떠나던 날 그는 그의 일기장에 다음과 같은 글을 남겼습니다.
"나의 장래에 대하여 그 동안 파도처럼 일던, 몹시도 불안했던 마음이 이제 잔잔해졌다. 이는 내가 갈 길을 확실히 알게 되였기 때문이다."
독일로 돌아 간 그는 나치 학정에도 묵묵히 침묵을 지키고 있는 교회를 일깨우고 히틀러의 만행을 경고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그 유명한 [바르멘 선언]을 했습니다. 그 결과 독일은 그를 감옥에 집어넣었습니다.
그의 탁월한 재주와 학문의 깊이를 아까워한 미국 교회는 그를 구하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을 했습니다. 그러나 본 훼퍼는 유니온 신학교 교장에게 다음과 같은 글을 써 보냈습니다.
"나는 내가 독일에 돌아 온 것을 조금도 후회하지 않고 힘차게 일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내가 여기서 할 일이 무엇인가를 분명히 알고 있습니다."
그는 결국 1945년 4월 9일, 39세의 젊은 나이에 사형을 받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본 훼퍼는 행복한 사람이 였고, 성공한 학자였으며 목사였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자기의 걸어 갈 길과 목표와 할 일을 분명히 알고 있었을 뿐 느혜미아 아니라 자신과 긍지를 가지고 살았기 때문입니다.
본 훼퍼는 결코 고상한 목적을 위해 자신을 추락시키지 않았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비록 젊은 날에 죽는다고 해도 한 알의 밀 알이 되어 수많은 열매를 맺는 것입니다.
"믿는 자들만이 순종할 것이며 순종하는 자들만이 믿게 될 것이다."
이런 말은 웬만한 믿음을 가진 사람이면 할 수 있는 말입니다.
그렇지만, 본 훼퍼가 한 명언으로 우리 가운데 전해 옵니다.
그는 순종했거든요.
떠나야 할 것을 떠났고
가야 할 곳으로 갔고
머물러야 할 지점에 머물렀고
바라보아야 할 것을 소망했기 때문입니다.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
(창 15:6)
많고 많은 사람 가운데 왜 아브라함을 믿음의 조상이라고 합니까?
그는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믿었기에 믿은 하나님께 순종했거든요.
떠나라 할 때 떠났고
가라는 곳으로 갔고
머물러야 할 지점에서 살았고
바라보아야 할 것을 소망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순종을 그의 의로 인정하셨습니다.
이것을 믿음이라 합니다.
오늘날도
1. 하나님께서는 일꾼을 부르십니다.
아브라함
모세
사무엘
다윗
이사야
마리아
베드로,야고보,요한
바울
그리고?
나
그는 우상 숭배의 중심지, 갈대아 우르에서 출생했습니다.
[수24:2]
여호수아가 모든 백성에게 이르되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에 옛적에 너희 조상들 곧 아브라함의 아비,나홀의 아비 데라가 강 저편에 거하여 다른 신들을 섬겼으나 03 내가 너희 조상 아브라함을 강 저편에서 이끌어내어
그가 사는 곳은 이방의 문화로 가득차 있었습니다.
그가 태어나 75년의 인생을 살았던 고향과 친척과 아비집은 모든 것이 갖추어 있었으나 하나님과의 관계가 잘못되어 있었습니다.
이런 형편에 당신의 사랑하는 자녀가 살고 있다면 당신은 그를 어떻게 하겠습니까?
그 절박한 순간,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을 부르셨습니다.
[행7:02-3]
스데반이 가로되 `여러분 부형들이여, 들으소서 우리 조상 아브라함이 하란에 있기 전 메소보다미아에 있을 때에 영광의 하나님이 그에게 보여 03 가라사대 네 고향과 친척을 떠나 내가 네게 보일 땅으로 가라 하시니 04 아브라함이 갈대아 사람의 땅을 떠나 하란에 거하다가 그 아비가 죽으매 하나님이 그를 거기서 너희 시방 거하는 이 땅으로 옮기셨느니라
어떤 말씀이셨습니까?
"떠나!"
아브람이 떠나야 할 대상은 그의 [본토] - [친척] - [아비집]이었습니다.
너의 우상이 무엇이냐? 그 우상에서 떠나라!
너의 사고와 문화, 습관, 경험,생활방식,가치관에서 떠나라!
우리는 얼마든지 이 말씀 안에서 우리에게 적용해 볼 수 있습니다.
(2) 세상적 사고에서 떠나라.
(3) 긴급한 일의 횡포로부터 떠나라
(4) 옛사람의 언어, 생활습관, 가치관으로부터 떠나라
[엡4:22-24]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좇는 옛 사람을 벗어버리고 23 오직 심령으로 새롭게 되어 24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
이렇게 보면, 아브라함이 받은 부르심이란 단순히 아브라함아 이런 유령적 부르심이 아닙니다.
아브라함의 경우 부르심이란 하나님의 대사에게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옛사람의 가치관과 생활방식에서 분리를 의미합니다.
그러나 이 시대에 사는 많은 사람들은 하나님께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옛사람에 속한 가치관과 생활방식을 그대로 고집하면서도 나는 믿음이 좋다고 말합니다. 이것은 아브라함의 경우에는 모순이요, 역설입니다.
(고후5:17)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떠날 때 떠났던 룻은 다윗의 할머니가 되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떠나지 않고, 현실에 안주했던 오르바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습니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지금 어떤 현실을 떠나기 원하십니까?
2. 부르심 받았을 때 아브라함은 순종으로 반응하였습니다.
[8절]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순종하여 장래의 유업으로 받을 땅에 나아갈새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아갔으며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놀라운 언약에 순종하는 믿음으로 반응하였습니다.
[1] 순종으로 반응하였습니다.
그가 어디에서 믿음의 씨를 얻을 수 있었을까에 대한 답은 정확히 알 수 없습니다.
그런데 그가 노아의 10대 손으로 태어났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연대를 계산해 보면, 그가 태어났을 때 노아는 생존해 있었다는 것입니다.
노아가 누굽니까?
지난 주일 우리가 묵상한 대로 복종의 달인 아닙니까?
노아가 인류 역사상 전후 무후한 대 홍수 심판에서 복종 하나만으로 구원을 받은 믿음의 용장이거든요.
그런 복종이란 위대한 믿음 유산을 받았지 않겠는가!
믿음의 용장 슬하에서 자랐으므로 좋은 영향을 받았지 않았을까 생각해 봅니다.
아브라함은 노아와 같은 믿음의 용장으로부터 '하나님 말씀에 무조건 복종'이란 불편한 진실을 유산으로 이어받은 것으로 보입니다.
아브라함은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는(창 12:1) 하나님의 명령을 받고 즉시 길을 떠났습니다.
가나안 땅에 이르렀을 때도 그는 그곳이 하나님이 자신과 후손에게 주리라고 약속하신 땅인지를 모르고 있었습니다.(창 12:5, 6),
아브라함은 찾아가야 할 목적지도 알지 못한 채 나갔습니다.
오직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여 길을 떠났습니다.
어떻게 이런 단정을 할 수 있느냐구요?
하나님께 부르심을 받았을 때 모습을 보면 어느 정도 이해가 됩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람을 부르실 때 무슨 말씀을 하십니까?
[창12:1]
너는 너의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
아브라함 믿음은 (아브람의 어떤 의지가 아닌) 하나님과 그분의 말씀으로 시작합니다.
"가라!" 실 때 갔습니다.
아브라함은 그를 부르신 하나님께서 그를 통해 무언가 이루실 것이 있으시구나 인정하고 기대하고 그분이 가리키는 곳으로 나아갑니다,
하나님께서 지시하시는 곳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가리키는 곳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보여주시는 (Vision)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람을 부르셨을 때 아브람은 약속의 말씀을 좇아갑니다.
2] 마침내 들어가기까지 순종합니다.
[창12:4]
이에 아브람이 여호와의 말씀을 좇아 갔고 롯도 그와 함께 갔으며 아브람이 하란을 떠날 때에 그 나이 칠십 오세였더라 05 아브람이 그 아내 사래와 조카 롯과 하란에서 모은 모든 소유와 얻은 사람들을 이끌고 가나안 땅으로 가려고 떠나서 마침내 가나안 땅에 들어 갔더라
[히11:8]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순종하여 장래 기업으로 받을 땅에 나갈새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갔으며
- 믿음은 하나님의 약속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 믿음은 하나님의 보호 속으로 피하는 것입니다.
- 명령은 짧으나 순종하는 자에게 주시는 축복은 많습니다.
- 막내동생 하란이 우르에서 죽자 그 아들 롯을 데리고 떠납니다. 더불어 가는 신앙은 믿을 때 가능합니다.
나와 세상 중심의 삶에서 하나님 중심 생활로 나갑니다.
얼마나 가야합니까?
아브라함은 “마침내 들어가기까지(V.5)" 말씀에 순종하였습니다.
[예화]
인도네시아 청년이 예수를 열심히 믿다가 선교사로 부름을 받았습니다.
그는 정말로 자기에게 선교사의 사명이 있는 것인지, 자기가 하나님의 부르심에 대하여 착각하고 있는 것인지 분간을 할 수가 없어서 정말로 자기에게 선교사의 사명을 주셨다면 그 증거가 될 수 있을만한 기적을 보여주십사 기도했습니다.
그러면서 인도네시아에서 자기가 사는 지역을 중심으로 이 마을 저 마을로 전도 여행을 다녔다고 합니다.
아시다시피 인도네시아는 밀림지대라 사람을 해하는 많은 곤충이나 뱀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밀림을 헤치고 가다보면 나무에 매달려 있는 독사들이 꼭 자기가 지나가는 반대 방향으로 목을 돌리더라는 것입니다.
그러던 중, 어느 날은 한 마을에 전도하기로 날을 잡고 가기로 했는데 갑자기 쏟아진 소낙비 때문에 마을 앞에 있는 냇물이 강이 되어버렸습니다.
이미 자기가 오기를 기다리고 있을 마을 사람들을 생각하니 안 갈 수가 없어서 하나님께 기도했다고 합니다.
그 강을 건널 수 있게 해달라고 말입니다.
그런데 그 때 음성이 들려왔다는 것입니다. 강 위를 걸어가라
그래서 이 젊은이는 말씀을 믿고 순종하여 정말로 강에 발을 들여놓았습니다.
그랬더니 물이 발목까지만 차는 기분이 들며 건넜다는 것입니다.
약속한 마을 사람들이 강둑에 나왔다가 그것을 보고 온 마을 사람들이 예수를 영접했다는 선교지의 간증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반드시 계셔서 상급이 되어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상주심으로 그를 축복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그에게 주시길 원하시는 상급은 무엇입니까?(2)
[창12:2]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니 너는 복의 근원이 될지라 !
하나님께서 그에게 주시는 [복]입니다.
하나님께서 그에게 주시는 [큰 민족]입니다.
하나님께서 그에게 주시는 [창대한 이름](창17:5 ‘많은 무리의 아버지’)입니다.
3. 약속하신 땅에 거류함으로 순종하는 믿음을 증명하였습니다.
[히11:9]
믿음으로 그가 이방의 땅에 있는 것 같이 약속의 땅에 거류하여 동일한 약속을 유업으로 함께 받은 이삭 및 야곱과 더불어 장막에 거하였으니
1] 하나님의 언약에 머물렀습니다.
하나님의 언약이 무엇입니까?
[창12:2]
2.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
'큰 민족, 창대한 이름, 복이 됨'은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그를 통해서 땅의 모든 족속이 복을 얻게 하시겠다는 것이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이 언약을 신실하게 이행하시는 하나님과 함께 약속의 땅에 거류하였습니다.
[창12:3]
3.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 하신지라
그러므로 아브라함을 축복하는 자에게는 하나님께서 복을 주십니다.
아브라함을 저주하는 자는 하나님께서 저주하십니다.
약속을 신실하게 이행하시려는 하나님의 중심이지요.
문제는 하나님께서 놀라운 언약을 세우시고 그 언약을 신실히 이행하실지라도 그 언약에 동참하는 대상이 이 언약에 얼마나 신실하냐가 중요합니다.
영국의 [존 파우세트] 목사님이 부인과 함께
마차에 이사 짐을 싣고 있었습니다.
네 명의 자녀들은 신이 나서 떠들고, 부인의 얼굴에도 기쁨이 넘치고 있었습니다.
그 동안 고생스럽고 배고픈 빈촌에서 목회를 하다가
이제 런던에 있는 큰 교회로 부임하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 때 가난한 농촌의 교인들이 마차를 둘러싸고 서서
모두가 눈물을 흘리고 있었습니다. 한 여인이 목사님을 바라보며 ;
목사님 가지 마십시오. 목사님이 가시면 우리는 어떻게 합니까?
하면서 울고, 다른 교인들도 남녀 모두가 고개를 숙이고 울고들 있었습니다.
그러나 앞으로의 자녀들 교육문제 생활 문제를 생각하니 떠날 수밖에 없었습니다.
또 언제 다시 이런 기회가 올지 모르는 일이라 그냥 마차를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는 동네를 벗어나는데 산모퉁이를 돌아서서 조금을 가다가
갑자기 기도를 드리고 싶어졌습니다.
그래 마차를 세우고 길가에 앉아서 기도하기 시작했는데,
기도 하다가 그 때까지 한 번도 뵙지 못했던 예수님이 환상 중에
자기가 떠나온 동네를 향하여 슬픈 기색을 하고 걸어가시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파우세트] 목사님은 말 고비를 다시 돌려 동네 쪽으로 마차를 몰아갔습니다.
그 때까지도 전혀 움직이지 않고 서있던 교인들이 환호성을 질렀고,
목사님은 형제 자매 여러분,
우리 가족은 계속해서 여러분과 함께 살기로 했습니다.라고 외쳤습니다.
그리고 그 날밤에 목사님은 찬송가 525장의 가사가 된 시를 지었습니다.
♬♬ 1. 주믿∼는형∼제들∼사랑∼의사∼귐은
천국∼의교∼제같∼으니∼참좋∼은친∼교라.
2. 하나∼님보∼좌앞∼한기∼도드∼리니
우리∼의믿∼음소∼망이∼주안∼에하∼나라.
3. 피차∼에슬∼픔과∼수고∼를나∼누고
늘동∼고동∼락하∼는중∼위로∼를나∼누네.
4. 또이∼별할∼때에∼맘비∼록슬∼퍼도
주안∼에교∼통하∼면서∼또다∼시만∼나리.
그런데 이 찬송시를 본 영국 왕이 목사님에게 희망이 무엇인가를 물으면서
희망하는 일을 해결해주겠다는 편지를 보내왔습니다.
그에 대하여 [파우세트] 목사님은
나의 소원은 오직 이 마을 사람들과 함께 살면서 하나님을 섬기는 일입니다
라고 말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의 순종입니다.
하나님은 약속을 기다리는 자녀들을 부끄럽게 하지 않으시는 분이십니다.
요한 웨슬레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정해져 있으나 날짜는 적혀 있지 않다."
"하나님께서 약속은 하신 바로 그곳에서 그분을 만날 때까지 기다려라. 하나님께서는 항상 약속하신 그 길로 오신다."(D.L.무디)
정동섭씨는 3일만에 돌아오겠다는 약속을 하고 집을 나섰답니다. 그런데 6.25 동란으로 그 약속이 지체되다 40여년 만에야 그 약속을 지켰다는 책을 써서 읽는 이 들로 하여금 눈시울을 뜨겁게 하고 있습니다.
인간인지라 사흘이 40년 이상이 되고 말았지만, 그의 약속은 지켜졌기에 살아있는 기쁨이 되었습니다.
하물며 신실하신 하나님을 아버지로 두신 우리 성도들이겠습니까?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 들은 바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이는 승천하시던 주님의 말씀입니다.
[고후1:20]
하나님의 약속은 얼마든지 그리스도 안에서 예가 되니 그런즉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아멘 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되느니라
[고후7:1]
그런즉 사랑하는 자들아, 이 약속을 가진 우리가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가운데서 거룩함을 온전히 이루어 육과 영의 온갖 더러운 것에서 자신을 깨끗케 하자.
[2] 이방의 땅에 나그네로 살았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으로부터 약속을 받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발 붙일 만큼의 유업은 얻지 못하였습니다(행 7:5),
헤브론 근처의 막벨라 밭을 헷 사람 에브론에게서 사라의 매장지 외에는 아무것도 소유하지 못하였습니다. (창 23장)
가나안 땅을 주시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은 아브라함이 죽을 때까지 이루어지지 않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은 이방 땅에 나그네로 살았습니다.
쾌적하고 편안한 본토 친척 아버지집을 떠나서 이방의 땅에 나그네로 살았습니다.
불편하게 살았습니다.
그 이름처럼 존귀한 자가 이방 땅에서 나그네로 천대받고 살았습니다.
가진 것이 있던 사람이 가진 것이 없는 자처럼 살았습니다.
약한 자로 살았습니다.
어떤 때는 가정까지 위협을 당하면서 살았습니다.
아무 권리도 없고, 아무 가진 것도 없고, 아무 힘이 없는 자처럼 살았습니다.
왜입니까?
하나님께서 주신 약속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믿었기에 그 약속에 땅에 나그네로 사는 순종을 하였습니다.
4. 하늘의 도성을 바랐습니다.(소망)
[히11:10]
이는 그가 하나님이 계획하시고 지으실 터가 있는 성을 바랐음이라
장막은 터를 필요로 하지 않는 이동하기 위한 임시 거처인 반면에 '터가 있는 성'은 한 곳에 고정된 영구한 집입니다. 이 성은 지상에 있는 어떤 도성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진동치 못하며 장차 올(12:28;13:14) 영원한 하늘 도성입니다.(Bruce, Lenski)
하나님께서 '설계자'와 '건축가' 되셔서 견고히 세우신 '시온 성'을 암시합니다.
죄 많은 이 세상은 내 집 아니네
위엣 것을, 영원한 집을 소망하며 살았습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약속을 끝까지 참고 기다리며 믿음의 인내를 할 수 있었던 이유는 '하나님이 계획하시고 지으실 터가 있는 성을 바랐기 때문입니다.
약속을 기다리며 자손들과 장막 생활을 하였습니다.
[장막]이란 목적지만 정해지면, 아무 때나 거두어 목적지로 떠나기를 원하는 사람들이 사용하는 텐트입니다.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일들이 이루어질 것을 기다리며 장막에 거하였습니다. 약속을 이루시는 하나님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자손들과 함께] 장막에 거류하였습니다.
온전히 정착된 생활을 할 수 있는 아브라함이 아무 것도 없는 것처럼 자손들과 함께 장막에 거류하였습니다.
자손들에게도 하나님의 약속이 이루어질 것을 믿기 때문입니다.
자손들과 함께 하늘 도성을 소망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확실함을 믿고,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약속이 이루어질 것을 자녀들과 함께 장막에 살았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이 계획하시고 손수 지으신 하늘나라의 도성을 믿음으로 바라보았기 때문에 이 땅에서 믿음의 인내를 할 수 있었습니다.
[마무리하는 말]
코리 텐 붐의 이야기를 우리는 잘 압니다.
1893년 네델란드에서 태어나 유태인 학살 시에 그들을 숨겨 줍니다.
도와 주었던 사람의 배신으로 가장 악독한 라벤슨부르그 강제수용소에 갇힙니다.
베시: 감사! 이 수용소에 무엇을 준비하셨습니까?
성경읽기 모임 인도
비웃는 여성: 당신의 하나님이 이렇게 하셨습니까?
침묵 후의 답: 오심, 고통당하심, 십자가 죽으신 하나님을 알려줌
독일 집회 시: 수용소장의 용서
기독교를 사랑의 종교라고 말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의 깊이와 높이와 넓이를 생각하기 시작하면 충분히 동의가 됩니다.
그런데 그 위대한 사랑은 예수 그리스도의 순종을 통해 세상에 나타납니다.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신 일도 아들의 순종이요, 십자가에 돌아가심도 순종입니다.
떠나라 십니까?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그 꿈으로 가세요.
하나님의 약속 가운데 거류하십시오.
천국을 소망하고 장막에 머무십시오.
하나님께서 그 모든 가운데서 영광을 받으실 것입니다.
오늘 이 길을 가고 있는 정진호 선교사님 가정을 소개하게 되어 기쁩니다.
[설교 성경 본문]
8.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순종하여 장래의 유업으로 받을 땅에 나아갈새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아갔으며
9. 믿음으로 그가 이방의 땅에 있는 것 같이 약속의 땅에 거류하여 동일한 약속을 유업으로 함께 받은 이삭 및 야곱과 더불어 장막에 거하였으니
10. 이는 그가 하나님이 계획하시고 지으실 터가 있는 성을 바랐음이라
11. 믿음으로 사라 자신도 나이가 많아 단산하였으나 잉태할 수 있는 힘을 얻었으니 이는 약속하신 이를 미쁘신 줄 알았음이라
12. 이러므로 죽은 자와 같은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하늘의 허다한 별과 또 해변의 무수한 모래와 같이 많은 후손이 생육하였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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