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iday, 6 March 2015

로마서 8:17-25 하나님의 영광을 꽃피우는 자녀들

  [들어가는 말]

    요즈음 토론토 거리를 지나노라면 수목들이 벅찬 감격으로 춤을 추고 있는 듯합니다.
주체할 수 없는 감격들이 나무마다 가득하게 뿜어나옵니다.
어떤 나무는 가지에 벅차오르는 감격을 신록으로 피워내고, 어떤 나무들에서는 꽃봉오리마다 가득 감격으로 넘쳐 오릅니다.
라일락은 기다렸다는 듯이 보랏빛으로 단장한 새옷을 입고, 짙은 향수 내음을 풍겨냅니다.
지난해도 그랬지 않았나 말하는 이들이 있지만, 그것 좀 무심한 분들의 이야입니다. 지난 해 봄에는 너무도 많은 나무들이 침묵했습니다. 목련을 비롯한 많은 나무들이 꽃을 피우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올해는 완연히 다릅니다. 대부분의 나무들이 꽃을 피울 뿐만 아니라 그 꽃들도 풍성합니다.
도대체 이 감격이 어디서 온 것일까요?

    '70년만에 찾아온 폭설을 안고 그리도 긴 사랑을 나누더니 안으로 안으로 빨아들인 그 사랑을 이렇게 수목들은 품어내는구나!'

   하나님 자녀가 성령 안에 거할 때 그 인생에는 피어나는 영광이 있습니다.
이로 인한 벅찬 감격이 있습니다.
이로 인한  열매가 있습니다.


    1.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함으로 시작됩니다.

   17. 자녀이면 또한 후사 곧 하나님의 후사요 그리스도와 함께한 후사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될 것이니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고난을 당하시기 전에 이런 기도를 하나님께 올릷니다.

   [요한복음17:1]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시고 눈을 들어 하늘을 우러러 가라사대 아버지여 때가 이르렀사오니 아들을 영화롭게 하사 아들로 아버지를 영화롭게 하게 하옵소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기 위해 주님께서 어떤 고난을 받으셨습니까?

    십자가에서 우리 대신 생명을 내어주신 고난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은 그리스도의 고난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예화]

    "존 큐"란 영화에서 감당 못할 고난으로 몸부림치던 아버지와 그 아들 마이크에 대한 이야기가 그려져 있다.
아버지 존 큐는 아내와 아들을 사랑하는 그러나 평범한 가장이다. 보험료 얼마라도 절약하기 위해 좀더 저렴한 보험을 찾아가는 회사에서 일하고 있다. 그의 아내는 슈퍼에서 일하며 일당을 얼마씩 받고 수입이 적은 남편에게 바가지도 긁으며 알콩달콩 살고 있다.
그러나 이 가정에 갑자기 닥친 불행으로 인하여 이 가정의 삶이 급격히 흔들린다.
어린 아들 마이크가 심장이 세배까지 늘어나더가 결국 호흡장애를 일으키고, 서서히 죽어간다.
이내 혈압은 40까지 떨어져 간다.
마이크가 살 수 있는 길은 새로운 심장을 이식하여 것 밖에 없다.
그러나 그 가정에는 심장 이식시킬 수 있는 경제적 능력이 없다. 보험이란 걸 회사에서 들어놓았지만 정작 이렇게 많은 돈이 들어가는 병에는 감당하지 않는 싼 보험일 뿐이다.
백방으로 돈을 구하나 아들을 구할 수 없다는 현실!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없다.
그는 참으로 무서운 결단을 한다. 총을 들고 심장이식할 수 있는 병원과 의사를 향해 돌진한 것이다. 그러나 그 총은 누구를 쏘자는 것이 아니다. 그가 준비한 총알은 오직 한 알이다. 오직 자기를 쏠 총이었다.

그 아버지는 의사에게 부탁한다.

"내 심장을 꺼내어 아이에게 주시오."

아버지는 자신이 하나밖에 없는 심장을 아들에게 주겠다고 말한다.
자신의 생명을 아들을 위해 주겠다는 것이다.
곁에 있는 사람들은 미쳤다고 말한다.
의사는 농담하지 말라 한다.
곁에 있는 친구가 충심으로 말한다.

   '자살은 해결책이 아니다. 때로는 하나님께 맡기는 게 옳다. 이를 받아들이라.'

   그는 무엇을 받아들이란 말이냐고 되묻는다. 마이크란 아들이 죽는 것을 받아들이라는 말을 들으면서 아버지는 아들의 죽음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단번에 거절한다.
절대로!
죽어가는 마이크가 다른 사람들에게는 환자일 뿐이지만 아버지에게는 아들인 것이다.

총을 들고 있는 존 큐에게 의사는 말한다.

"그래서 수술을 안하겠다면 나를 쏠거요?"

아버지는 간단히 대답한다.

"No!"

대신 자신을 쏘겠다 한다.
그가 의사를 찾아온 까닭은 아들에게 자신의 심장을 이식시켜 줄 사람이 필요하기 때문이었다
의사는 그 행위가 선을 넘는 행위요, 비윤리적인 행위라 말한다.
그러나 아버지는 세상 체제 자체가 선을 이미 넘었지 않으냐고 반론한다.
아들만 살릴 수 있다면  죽음까지 받아들이겠다 강변한다.
누군가 죽어야 하니까 아빠인 자신이 죽겠다고 말한다.

아버지의 아들을 향한 사랑에 감복한 심장과 명의가 죽음보다 무서운 아버지의 사랑에 고개를 숙인다.
의사 명예에 금이 갈텐데.......... .
의사 생명이 끝날지도 모르는데..... .

아버지는 아들을 찾아간다. 마지막 인사를 나누기 위하여.
아직 철이 덜 든 아들은 겨우 눈을 뜨고 아빠를 본 후, 심장을 가져왔느냐고 묻는다.
아버지는 그렇다고 대답한다. 아버지는 속으로 자신의 심장을 생각했을 것이다.
아버지는 아들에게 유언을 남긴다.
너의 곁에 있겠다.
항상 함께 있겠다.
아들의 심장을 가리키며 그 안에 있겠노라 말한다.

모든 것이 끝낸 아버지는 자결하기 위해 준비해온 총알 한 개를 장전한다.
이를 보던 의사가 말한다.
당신은 빈총을 가지고 지금까지 협박한 것이냐고.
그 아버지는 대답한다.
이 총으로 죽을 사람은 처음부터 자신 한 사람 뿐이었다고.

이 영화의 귀결은 극적으로 다른 심장이 직송되어 아버지가 죽지 않고, 아들을 살리는 것으로 끝난다.

이 영화를 통해 난 소중한 깨달음을 갖게 된다.

하나님께서 나를 위해 외아들을 내어주신 일이 선을 넘어 비윤리적인 사실이었음을 새삼 깨달았다.

   그리고 심장을 수술하기 위해 들어가며 아들 마이크가 아빠에게 남긴 Goodbye!
그 인사를 받아 또다른 인사를 하는 아빠의 마음이 생각한다.
Not Goodbye son. see you later!

    그렇다. 진정한 사랑을 심은 아버지 하나님에게 아들과 영원한 이별은 없다. 다시 볼 날이 남아 있을 뿐이다.


    하나님의 영광은 이보다 더 크고 놀라운 그리스도의 십자가 고난에 동참하는 성도들 삶에 나타납니다.



2. 하나님의 자녀들이 누리는 영광의 자유에서 나타납니다.

    19. 피조물의 고대 하는 바는 하나님의 아들들의 나타나는 것이니
20. 피조물이 허무한데 굴복하는 것은 자기 뜻이 아니요 오직 굴복케 하시는 이로 말미암음이라
21. 그 바라는 것은 피조물도 썩어짐의 종노릇 한데서 해방되어 하나님의 자녀들의 영광의 자유에 이르는 것이니라

    하나님 자녀들은 세상이 피어낼 수 없는 영광이 있습니다.
허무한데 굴복하는 세상 사람들이 피어낼 수 없는 영광이 있습니다.
썩어짐의 종노릇을 하는 세상 사람들이 피어낼 수 없는 영광이 있습니다.

썩어짐의 종노릇 한데서 해방되어 하나님의 자녀들만이 누리는 영광의 자유가 있습니다.

      요셉의 생에서 하나님의 영광이 피어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요셉을 저는 많이 사랑합니다. 그에게는  썩어짐의 종노릇 한데서 해방되어 하나님의 자녀들만이 누리는 영광의 자유가 있기 때문입니다.

    [창45:4-5]

    4. 요셉이 형들에게 이르되 내게로 가까이 오소서 그들이 가까이 가니 가로되 나는 당신들의 아우 요셉이니 당신들이 애굽에 판 자라
5. 당신들이 나를 이곳에 팔았으므로 근심하지 마소서 한탄하지 마소서 하나님이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나를 당신들 앞서 보내셨나이다

    다윗의 생에서 하나님의 영광이 피어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다윗에게는 썩어짐의 종노릇 한데서 해방되어 하나님의 자녀들만이 누리는 영광의 자유가 있기 때문입니다.

    다니엘의 생에서 하나님의 영광이 피어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다니엘에게는 썩어짐의 종노릇 한데서 해방되어 하나님의 자녀들만이 누리는 영광의 자유가 있기 때문입니다.

    [단6:10-11]

    10. ○다니엘이 이 조서에 어인이 찍힌 것을 알고도 자기 집에 돌아가서는 그 방의 예루살렘으로 향하여 열린 창에서 전에 행하던대로 하루 세번씩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그 하나님께 감사하였더라
11. 그 무리들이 모여서 다니엘이 자기 하나님 앞에 기도하며 간구하는 것을 발견하고

    우리 민족의 기독교 역사가 길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 짧은 역사에도 그렇게 큰 부흥이 일어난 것은  썩어짐의 종노릇 한데서 해방되어 하나님의 자녀들만이 누리는 영광의 자유가 있기 때문입니다.


    설교신문에 적절한 교회역사 이야기가 있어서 소개합니다.

    1904년 10월 11일, 전북 금산에사는 테이트 선교사의 집례로 조덕삼, 이자익, 박희서 3인이 최초로 세례를 받고 성찬 예식을 거행합니다.
    이날 양반이요 주인이기도 한 조덕삼과 함께 세례를 받은 이자익은 조덕삼 집의 머슴이었습니다. 어린 나이에 부모를 여의고 고아가 된 이자익은 호구지책을 위해 고향인 경상남도 남해를 떠나 곡창지대인 김제로 찾아온 인물이었습니다.
소학교도 변변히 다니지 못했지만 총명하여 조덕삼 집에 마부로 있으면서 틈틈이 독학을 했고 주인을 따라 기독교 신앙을 받아들였습니다. 그 뒤 조덕삼과 이자익은 힘을 모아 금산교회를 세우는 데 앞장섰습니다. 교회는 날로 성장했습니다.

1907년 두 사람은 금산교회의 영수로 임명되었습니다. 교인수가 200명을 넘자 장로를 뽑기 위한 투표를 실시했습니다. 교인들과 마을사람들은 당연히 조덕삼 영수가 먼저 장로가 되리라고 생각했지만 결과는 반대였습니다. 이자익 영수가 장로로 추천된 것입니다.

반상(班常)의 법도가 엄연하던 시대에 충격적인 일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큰 술렁임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조덕삼 영수는 곧바로 일어나 “하나님께서 우리 교회 사랑하셔서 젊은 일꾼을 세워주셨습니다. 하나님께 감사드리고 이자익 장로께 축하의 박수를 드립시다.”라고 말했습니다.

이자익 장로가 강단에서 예배를 인도하고 설교할 때 조덕삼 영수도 함께 예배를 드렸습니다. 집에서는 다시 주인과 머슴으로 돌아갔습니다. 공과 사가 분명했습니다. 반 년 뒤 조덕삼 영수가 2대 장로로 장립됩니다.

조덕삼 장로는 교인들과 함께 이자익 장로의 평양신학교 입학을 기도와 물질로 돕습니다. 1910년 평양신학교에 입학한 이자익 장로는 1915년 제8회 졸업으로 그 해 가을 목사안수를 받습니다. 조덕삼 장로는 이자익 목사를 담임목사로 청빙했고, 1915년부터 금산교회의 2대 목사로 본격적인 목회를 시작하였습니다.

1908년, 조덕삼 장로를 건축위원장으로 교회당을 짓습니다. 조덕삼 장로가 돈 15환을 헌금, 모악산 배재에 있던 전주 이씨 집안 제실을 사들여 옮겨온것이었습니다. 일자형 집 모서리에 동쪽 방향으로 두 칸을 더 달아내어 지금의 ㄱ자 교회당을 완성하였습니다.
    3.1운동에도 참여했던 조덕삼 장로님이 신병으로 1919년 12월 17일 갑자기 소천할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마지막 돌아가실 때 자손들에게 유언하기를, “절대로 우상 섬기지 말고 제사 지내지 말라, 예수를 잘 믿어야 나를 만날 수 있다.”고 하며, 숨이 끊기기 직전까지 찬송가 525장(주 믿는 형제들)을 불렀습니다.

    19. 피조물의 고대 하는 바는 하나님의 아들들의 나타나는 것이니
20. 피조물이 허무한데 굴복하는 것은 자기 뜻이 아니요 오직 굴복케 하시는 이로 말미암음이라
21. 그 바라는 것은 피조물도 썩어짐의 종노릇 한데서 해방되어 하나님의 자녀들의 영광의 자유에 이르는 것이니라

     하나님의 자녀들이 세상에서 썩어짐의 종노릇하는 데서 해방되어 하나님 자녀들의 자유에 이를 때, 하나님의 영광은 나타납니다.

    이자익 목사의 손자 이규완 장로는 연변과학기술대학의 교수로 헌신하고 있고, 조덕삼 장로의 손자 조세형 장로(전 주일대사)는 할아버지와 아버지에 이어 금산교회의 9대 장로로 봉사하고 있습니다.

    자손 3대까지도 하나님께서 축복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대전신학대학교에 이자익 목사 기념관이 2005년 4월 19일 개원되었습니다. 400여 명의 내빈 가운데는 이자익 목사님의 후손은 물론 조덕삼 장로님의 후손도 있었습니다. 조덕삼 장로님의 손자 조세형(전 국회의원, 주일대사 역임) 장로님이 축사를, 이자익 목사님의 손자 이규완(대덕 연구원 공학박사, 중국 연변과기대 교수) 장로님이 인사말을 맡았습니다.

    이규완 장로님은 그 많은 사람 있는데서 조세형 장로님에게 가서 허리를 숙여 깍듯하게 인사를 했습니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우리 할아버지께서 주인을 잘 만났습니다. 만약에 우리 할아버지께서 주인을 잘못 만났다면 오늘날 우리도 없고, 우리 할아버지도 안 계십니다.”라고 조덕삼 장로님에 대한 존경을 표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한국 기독교의 부흥 발전을 말할 때, 이런 하나님의 영광을 피워내는 자녀들을 첫손가락에 꼾는 이유가 있습니다.



3. 믿고 참음으로 기다림 속에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납니다.

    24. 우리가 소망으로 구원을 얻었으매 보이는 소망이 소망이 아니니 보는 것을 누가 바라리요
25. 만일 우리가 보지 못하는 것을 바라면 참음으로 기다릴찌니라


    참을 수 없는 일을 만납니다.
    참을 수 없는 사람을 만납니다.
    참을 수 없는 사건을 만납니다.
    손해가 될 때, 자존심에 상할 때 우리는 참기 힘듭니다.

    사울 왕이 사무엘 늦게 오는 것을 참고 기다리지 못합니다. 그래서 제 힘으로 제사를 드리고 맙니다.
    베드로가 참지 못하고 말고의 귀를 베어버립니다.

    보지 못하는 것을 소망할 때, 우리는 참기 힘든 본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참고 기다리지 못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고 맙니다.

    그러나 성경에서는 믿고 참음으로 기다릴 줄 아는 사람들에게 하나님께서 그 영광을 두셨음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이 약속의 씨를 받는 과정에 참을 수 없는 시간과 사건들이 많았습니다.

    하갈을 취하여 이스마엘을 낳는 사건이 왜 있습니까
    그러나 결국 이삭을 받는 데는 25년의 기간을 믿음으로 참고 기다려야 했습니다. 아브라함이 25년을 참고 기다림으로 약속을 받았습니다.

    다윗이 얼마나 잘 참고 기다리는 아시지요?
    다니엘이 얼마나 길이 참았는지 아시지요?
    욥이 얼마나 인내하였는지 아시지요?

    [욥2:10]

    1그가 이르되 그대의 말이 어리석은 여자 중 하나의 말 같도다 우리가 하나님께 복을 받았은즉 재앙도 받지 아니하겠느뇨 하고 이 모든 일에 욥이 입술로 범죄치 아니하니라

    [욥2:10]

     나의 가는 길을 오직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정금 같이 나오리라

    하나님께서 살아계심을 믿기 때문입니다.

믿음의 사람의 특징은 참고 기다릴 줄 안다는 것입니다.
속사람을 강건케 하여 견고하게 설 수 있기 바랍니다.

그런데 어떻게 참을 수 있습니까?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믿을 때 우리는 어떤 일도 참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인되심을 인정할 때 참고 기다릴 수 있습니다.

    농부는 수고하지만 그 중심에는 하나님께서 열매를 주실 것에 대한 소망이 있기에 봄 여름을 참고 기다리는 것과 같습니다.


    예수님을 생각함으로 참고 기다릴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도 애매히 고난을 받으셨습니다.
개인적으로 손해볼 때, 자존심을 상할 때, 예수님을 생각함으로 참아야 합니다.

    인내를 성령의 아홉가지 열매가운데서 찾게 되는 이유가 있습니다.

    [갈라디아서 5:22-23]

    22.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23. 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예수님을 생각함으로 믿고 참으면, 그런 사람의 삶에서는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납니다.


    마르틴 루터 킹 목사는 억압 받는 흑인이었습니다. 백인과의 평등한 지위를 소망하면서 그는 믿고 참았습니다.

“내게 꿈이 있습니다.
언젠가 조지아의 붉은 언덕에 예전에 노예였던 부모의 자식과 그 노예의 주인이었던 부모의 자식들이 형제애의 식탁에 함께 둘러앉는 날을 봅니다.
나의 네 자녀들이 피부색이 아니라 인격에 따라 평가받는 그런 나라에 살게 되는 날을 봅니다.”


    오늘날 누가 하나님의 영광을 피워내겠습니까?

    24. 우리가 소망으로 구원을 얻었으매 보이는 소망이 소망이 아니니 보는 것을 누가 바라리요
25. 만일 우리가 보지 못하는 것을 바라면 참음으로 기다릴찌니라


    [마무리하는 말]

    수목들 가운데 아름답게 피어나는 꽃들을 보면서
하나님의 형상대로 빚은 바 된 하나님의 자녀들 안에서 피어날 하나님의 영광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우리 안에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시기 위해 십자가에서 고난을 당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에 접목될 때, 그래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허락하신 고난을 즐거운 마음으로 삶의 현장에서 감당할 때, 그런 하나님의 자녀 위에서 하나님의 영광이 피어나는 것을 봅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에 세상에서 썩어질 것들의 종노릇을 하지 않고, 허무한데 굴복하는 일을 벗어버리고, 대신 하나님의 진리를 따라 삶으로 참 자유함을 누릴 때,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납니다.
    진리가 나를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을 벗어버리게 하고 부와 신분과 학력 등을 뛰어 넘게 할 때,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납니다.
    하나님께서 살아계시기 때문에 이를 믿음으로 상황 속에서 참을 수 있을 때,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게 됩니다.

[설교성경본문]

17. 자녀이면 또한 후사 곧 하나님의 후사요 그리스도와 함께한 후사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될 것이니라
18. 생각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도다
19. 피조물의 고대 하는 바는 하나님의 아들들의 나타나는 것이니
20. 피조물이 허무한데 굴복하는 것은 자기 뜻이 아니요 오직 굴복케 하시는 이로 말미암음이라
21. 그 바라는 것은 피조물도 썩어짐의 종노릇 한데서 해방되어 하나님의 자녀들의 영광의 자유에 이르는 것이니라
22. 피조물이 다 이제까지 함께 탄식하며 함께 고통하는 것을 우리가 아나니
23. 이뿐 아니라 또한 우리 곧 성령의 처음 익은 열매를 받은 우리까지도 속으로 탄식하여 양자 될 것 곧 우리 몸의 구속을 기다리느니라
24. 우리가 소망으로 구원을 얻었으매 보이는 소망이 소망이 아니니 보는 것을 누가 바라리요
25. 만일 우리가 보지 못하는 것을 바라면 참음으로 기다릴찌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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