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turday, 28 March 2015

(죽으심) 롬 8:35-39 그리스도 고난의 축복

 [들어가는 말]

    오늘 강단에 놓인 종려나무를 보세요. 단정하게 이발을 하였지요?
누가 했는지 모르지만 아름다운 일을 하였습니다.  

    오늘이 종려주일입니다.

    2천년 전 오늘, 사람들은 종려나무 가지를 흔들며 왕으로 오신 메시야를 환영하였습니다.

    "호산나 찬송하리로라. 가장 높은 곳에서 호산나"

     사람들은 참 의미를 다 알지 못한 채 환호하였지만,
사실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을 그들은 기뻐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이 무엇입니까?


1. 고난을 당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은 인류의 근본 문제를 해결했습니다.

  36. 기록된 바 우리가 종일 주를 위하여 죽임을 당하게 되며 도살 당할 양 같이 여김을 받았나이다 함과 같으니라

    우리 민족의 근본문제는 죄문제입니다.
분열의 죄입니다.
시기와 질시의 죄입니다.
더 가지려는 죄입니다.
교만의 죄입니다.

이러한 죄들이 민족을 나누어지게 하였습니다.
추악한 전쟁을 일으키게 하였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마지막 분단국가라는 아픔을 당하고 있습니다.

    누가 우리 민족의 근본문제를 해결하시겠습니까?
우리 하나님밖에 없으십니다.
소련의 근본문제를 해결하여 가시는 우리 하나님
독일의 분단문제를 해결하여 주신 하나님께서 우리 민족의 고난도 긍휼히 여겨주심을 믿습니다.

    [예화]

    오늘 아침, 손가락이 아파서 웬일인가 살펴보니 비접이 들어 있습니다.
조그만 비접인데 참 고통스럽습니다.
바늘을 가지고 그 비접을 후벼내기 시작했습니다.
힘들지만 그 비접을 파내고 나니 고통이 사라졌습니다.
죄란 바로 비접과 같은 것입니다.
누군가 해결하지 않으면 언제까지나 손가락을 사용할 수 없는 그런 것입니다.

    비접은 누군가 파내야 하지만 고통스럽기 때문에 그 고통을 감당하고 싶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그 고통을 피하고 싶어합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그 아들을 보내셔서 그 고통을 감당하게 하시었습니다.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 두신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예수님은 고난을 피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기꺼이 그 쓴 잔을 마셨습니다.

예수님께 어찌할 힘이 없었기 때문입니까?
예수님께 쓴잔을 피할 힘이 없었기 때문입니까?
예수님께 고난을 받지 않으면 안될 무슨 죄나 약점이 있어서입니까?

아닙니다.      사랑하셨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백성을 고통스럽게 하는 비접같은 죄문제를 외면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지붕 위의 바이올린’에서 주인공 테빗의 아내가 살기 힘들다고 불평을 늘어놓습니다. 살아가면서 겪는 수고와 고통으로 인해 삶의 어려움을 호소합니다.
그러나 저들의 문제 실상이 무엇이었습니까? 비접이 든 것이지요.
저들의 실상은 "사랑이 식은 것”이었습니다. 사랑이 있다면, 모든 고난을 잠재우고, 모든 역경을 무력화하며, 어떤 제약도 뛰어넘을 수 있었습니다.
비접이 들면 이런 순기능은 사라지고 오직 불평과 투덜거림만 난무합니다.
 
    그러나

    1] 하나님께서는 세상을 이렇게 사랑하셨기 때문에 천국을 버릴 수 있었습니다.
사랑하셨기에 근본 하나님이신 분이 사람의 몸을 입으셨습니다.
사랑하셨기에 천국이 아닌 이 땅을 그 나라고 삼고 찾아오셨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임마누엘은 하나님 사랑의 표현입니다.

    [사53:2-3]

    2. 그는 주 앞에서 자라나기를 연한 순 같고 마른 땅에서 나온 줄기 같아서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은즉 우리의 보기에 흠모할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도다
3. 그는 멸시를 받아서 사람에게 싫어버린 바 되었으며 간고를 많이 겪었으며 질고를 아는 자라 마치 사람들에게 얼굴을 가리우고 보지않음을 받는 자 같아서 멸시를 당하였고 우리도 그를 귀히 여기지 아니하였도다

    [예화]

    저는 Patricia 선교사님(김찬영 님의 사모)을 생각할 때, 감사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40여년 전의 한국 현실은 지금 가장 열악한 선교대상국과 다름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분은 그나라 청년을 사랑함으로 그의 고국을 찾아옵니다. 자신의 나라로 삼았습니다. 그리고 미국으로부터 좋은 후원을 이끌어내며 한국민의 가장 불쌍한 고아들을 자기 자녀로 삼고 2-30년을 섬기었습니다.
자신에게는 고난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를 만난 많은 어린 영혼들에게는 구원이었습니다. 단지 입양된 다섯 자녀뿐만이 아닙니다.


    2] 무죄하신 분이 죄를 대신 지시는 고난을 당하셨습니다.

    [눅22:44]

    예수께서 힘쓰고 애써 더욱 간절히 기도하시니 땀이 땅에 떨어지는 피방울 같이 되더라


    3] 존귀하신 분이 비천한 자와 같이 멸시를 받으셨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러나 우리 주님께서는 그 선교사님 정도가 아닙니다.

    4] 가장 인격적이신 주님께서 비인격적인 채찍과 십자가 형을 당하셨습니다.

   

2. 어떤 고난도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습니다.


35.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박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초대 교회 성도들은 많은 고난을 당했습니다.
야고보는 사형을 당했습니다.
열한 제자들이 순교했습니다.
남은 한 사람 요한도 밧모섬에서 귀양살이를 하면서 죽을만큼 고난을 당했습니다.
사도 바울도 복음을 전하면서, 그리고 감옥에서 수없이 많은 고난을 당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순교하였다고 전해오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어떤 고난도 하나님의 종들을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었습니다.

    오히려 그분들의 순교의 피는 하나님 나라를 더욱 견고하게 자라게 하는 밑거름이 되었습니다.

    기독교가 우리 민족을 처음 찾아 왔을 때, 우리 민족은 고난 속에서 풍전등화와 같았습니다. 그러나 마지막인 것처럼 흔들리던 백의민족 내면에 기독교는 성령의 불을 지폈습니다.
    일제 36년이란 열악한 상황 속에서 온 민족의 심장이 촛물처럼 녹아내리고 있었을 때, 기독교는 학교 교육, 병원 선교, 교회 활동을 통해, 새 나라의 뼈대를 세웠습니다. 이승훈 선생님, 주기철 목사님이나 안이숙 여사의 체험기에서 만나는 것처럼 감옥을 안방 드나들듯 하면서도 고통 속에서 그것들은 국민들에게 소망이 심었습니다.
    6.25 전쟁이란 쓰나미가 휩쓸고 지나갔을 때도 기독교는 진정한 사랑이 무엇인지 백성들에게 생생히 보여주었습니다.
    전후, 민족적 생존 몸부림 가운데서도 기독교는 복구에 앞장섰습니다.

    아직, 우리의 형제 중 북에 있는 동족은 많은 고통 가운데 있습니다.

    북한 수용소를 고발하면서 세계 최악의 인권문제를 거론하는 메스컴 보도를 접합니다.
    탈북한 수십만의 동족이 이 추운 겨울에 만주 벌판을 헤매고 있습니다.
그중 많은 여성들이 얼마의 돈에 노예처럼 팔려가 고통을 당하고 있습니다.
    기독교를 접한 사람들이 총살당했다는 보도는 심심찮게 만나고 있습니다.
   
    우리는 압니다. 그 어떤 고난도 우리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습니다.

    그렇습니다. 어떤 고난도 우리를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습니다.


    아직도 겨울을 혹독하게 당하는 절반의 땅을 기독교는 진심으로 섬기고 있습니다. 우리가 찾아가는 북방이 아직 꽁꽁 얼어있지만, 하나님의 따스한 봄이 올 것을 믿으며.
    하나님께서는 우리 민족의 고난을 영광으로 바꾸는 열쇠를 가지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한국 민족 가운데 폭풍처럼 몰려왔던 고난을 영광으로 바꾼 하나님께서 가지고 계시는 열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지신 십자가요 부활입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이루신 승리입니다.

    오늘은 먼저 그리스도의 십자가 고난! 이것이 우리 성도들의 고난을 영광으로 꾸는 하나님의 축복인 이유를 묵상하기 원합니다.
특히 아직 고난의 길을 가고 있는 우리 형제들에게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축복의 열쇠일 수 있는 이유를 찾기 원합니다.

    [예화]

    이 세상은 하나님의 사랑으로 가득합니다.

    어제는 할아버지 최목사님께서 비전펠로우십 기도회에 말씀을 전하시기 위해 오셨습니다.
날씨가 너무 좋아서 저는 그분을 모시고 호숫가에 나갔습니다.
온 하늘에 하나님의 사랑이 충만한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랑 가운데서도 가장 핵심적인 사랑이 무엇인지 아세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을 김석균 형제가 작詩,작曲한 '예수가 좋다오'로  힘차게 하나님을 찬양하며 호숫가를 걸었습니다.

1
많은 사람들 참된 진리를 모른채 주님 곁을 떠나가지만
내가 만난 주님은 참 사랑이었고 진리었고 소망이었소
2
무거운 짐진자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를 쉬게 하리라
이 길만이 생명의 길 참 복된 길이라 항상 내게 들려주셨소
3
그대가 만일 참된 행복을 찾거든 예수님을 만나 보세요
그분으로 인하여 참 평안을 얻으면 나와 같이 고백할거요

(후렴)
난 예수가 좋다오 난 예수가 좋다오
주를 사랑한다던 베드로 고백처럼 난 예수를 사랑한다오

     참된 행복을 찾으십니까?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을 만나보시기 바랍니다.



3. 그리스도의 고난으로 인하여 넉넉히 이기며 살아갑니다.

37.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38.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39.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우리에게는 산적한 고난이 앞에 있습니다.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39.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 힘으로는 감당할 수 없는 산적한 문제들이 우리 앞에 큰 산처럼 놓여 있습니다.
당장 그 고난들이 내게 덮쳐올 것 같습니다.

    그러나 우리 성도들은 이 모든 고난을 이기며 살아갑니다.

어떻게요?

    고난을 이기고 황금메달을 얻기 원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알기 때문입니다.

    올림픽 금메달리스트는 황금메달을 얻기 위해 모진 고통을 감수하였을 것입니다.
우리 성도들 또한 하나님께서 주고 싶어하시는 삶의 목표를 황금메달에 맞추고 삽니다.
다른 모든 삶을 부수적으로 여기며 살아갑니다.
그의 모든 관심과 시선은 그 황금메달에 맞추어 삽니다.

    헨리 나우웬은 이렇게 말합니다.

   영생이란 내세나 사후 이전에 하나님 안에서 그와 더불어 사는 삶을 말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랑에 둘러쌓여 기쁨과 평안을 맛보며 산다면 하나님은 내가 있는 지금 여기에 계십니다.

    그래서 베드로 사도는 그 모진 고난 가운데서도 하나님께서 주시기 원하시는 황금메달을 바라고 이런 삶을 살았습니다.


    [벧전4:13]

    오직 너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라.

    그래서 바울 사도는 그 모진 고난 가운데서도 하나님께서 주시기 원하시는 황금메달을 바라고 이런 삶을 살았습니다.

    [고전2:2]

    2. 내가 너희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음이라

    [갈6:17]

    이 후로는 누구든지 나를 괴롭게 말라 내가 내 몸에 예수의 흔적을 가졌노라

     필 컬러웨이란 분이 쓴 <돈 한 푼 없이 부자로 사는 법>이란 책이 있습니다.

'돈 한 푼 없이 부자로 사는 법’은 무엇일까요?

저자는 진정한 부자를 돈의 많고 적음에 있지 않음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진정한 부자는 빈털터리가 되었을 때 그의 품에 달려들어 안기는 아내가 있는 사람입니다.”
그렇다고 필의 아내가 실패한 남편을 위해 거액의 통장을 준비해 놓으며 “아무런 걱정 말아요. 이 돈으로 다시 시작해 보세요”라고 힘을 보태준다는 게 아닙니다. 오히려 필의 아내는 ‘헌팅턴’이라고 불리는 희귀질환을 앓고 있습니다. 자신이 의도하지 않는 움직임을 보이는 증상으로 보통 치매와 같이 오는 경우가 많다는 질병이지요. 남편에게 물질적인 힘이 되기는커녕 귀찮은 존재에 불과할 뿐입니다. 저자가 말하고 싶은 것은 내 삶의 형태가 어떻게 바뀐다 할지라도 변함없이 사랑하는 아내(또는 남편)가 있다는 것이 바로 진정한 ‘부자’라는 말입니다.


저자는 ‘시간’을 소유한 자가 진정한 부자라고 언급합니다. 특별히 아내(또는 남편)와 함께 보낼 수 있는 시간, 자녀들과 야구와 축구 등 놀이를 할 수 있는 시간을 소유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돈’이라는 것을 얻기 위해 너무 바쁘게 사는 나머지 ‘시간’이라는 재산을 잃어버리고 만다는 것입니다.

“점점 빨라지는 삶의 방식은 우리가 가장 중요하게 여겨야 할 것들을 희생시킨다. 우리는 매일 감당할 수 있는 것보다 더 많은 일로 분주하다. 그것은 우리가 아무런 방해 없이 누려야 할 즐거움을 빼앗아 간다. 때로는 우리의 건강마저 해치고 만다”(p.19).

돈을 얻기 위해 시간을 마구잡이로 사용하고 또 건강해치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는 시대에 살고 있다. 할 수만 있으면 아내와 자녀와 함께하는 시간을 줄여서라도 돈을 벌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저자는 그것을 거부한다.

과거에는 캐나다에서 유럽까지 가려면 정기여객선에서 한 달 이상을 보내야 했습니다. 그 시간에 사람들은 사색을 하거나 친구들과 이야기를 하고 또는 책을 읽는 등 편안한 시간을 보낼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몇 시간 안에 도착을 하게 됩니다. 목적지에 도착하고도 서로 먼저 내리려고 안달을 합니다. 현대 노동자들은 과거에 비해 훨씬 많은 일을 하며 지내고 있습니다. 지금이 30년 전 정기 여객선 당시의 세상보다 더 좋다고 할 수 있을까요?

저자 필은 이렇게 외치고 있습니다.

“제발 그만 멈추세요. 우리는 지금 이대로가 좋습니다. 우리의 컴퓨터에는 충분한 저장용량이 있고 자동차 트렁크에도 공간은 충분합니다. 제트비행기는 이제 충분히 빠르게 날고 있습니다. 제발 우리의 속도를 늦추는 발명품을 만들기 위해 일해 주십시오. 그것은 우리의 가족을 단란하게 해 줄 것입니다. 그것이 병을 치유해 줄 것입니다”(p.18).


    그 결과 그는 이런 방법적인 결론에 도달합니다.

그가 알려주는 진정한 부자는
제한 속도를 알고 실천하는  사람입니다.
변화구를 칠 줄 알고 실천하는 사람입니다.
더불어 사는 삶을 알고 실천하는 사람입니다.
돈의 한계를 알고 실천하는 사람입니다.
옳은 것을 남기고 떠남을 알고 실천하는 사람입니다.
마지막에 웃는 법을 알고 실천하는 사람입니다.

    휴식이 줄어들면 웃음도 준다. 평범한 어린아이는 하루에 200번 정도 웃는다고 한다. 그러나 그 아이가 어른이 되면 하루에 6번 정도로 웃는 횟수가 줄어들게 된다. 194번의 웃음을 우리는 잃어버린 채 살아가고 있는 셈이다. 저자는 웃는 연습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자녀와 함께 코미디 프로그램을 보면서 함께 웃고 아내와 함께 수다를 떨면서 웃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바로 그것이 부자의 삶이라는 말이다.

“당신은 인생이 그렇게 유쾌하지 않을 때 어떻게 웃을 수 있습니까?”

저자 필이 TV토크쇼에 출연해서 진행자로부터 받은 질문입니다. 아내가 헌팅턴이라는 희귀병에 걸렸음에도 불구하고 즐겁게 사는 저자의 삶을 염두에 두고 한 질문이었습니다.

“기쁨은 즐거운 소식과 행복한 결말 같은 아주 좋은 환경에 달려 있지 않습니다. 그것은 무슨 일이 일어나든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한다는 것과 그분께서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더 좋은 일을 준비하신다는 것을 아는 것으로부터 나옵니다”(p.80).

    하나님께서 주기 원하시는 황금메달을 소망하며 우리 성도들은 오늘도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사랑합니다.

    돌아서서 우리의 마음을 주님의 나라에 두기 원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원하는 모든 자유를 우리에게 줄 것이다. 하나님 십자가를 소유한 사람들은 인간적 뒤얽힘의 감옥을 부수고 그리스도 안에서 자유하게 삽니다.

     타인을 판단하는 일에서 자유할 수 있는 법이 무엇입니까? 우리의 우리 됨이 성공이나 권력이나 인기에 근거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무한한 사랑에 있음을 알 때입니다.


[마무리하는 말]

   “미지의 세계를 향해 스페인을 떠났던 콜럼버스는 식량과 물이 점점 동이 나는 상황에서 선원들로부터 귀항 압력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태연하게 구약의 이사야서를 읽었습니다”
   “그는 고난 앞에서 절망하는 선원들에게 확신 있게 전했습니다.

    ’나는 나침반이나 선박의 성능을 믿고 항해를 시작한 것이 아니다. 나를 움직이는 힘은 꿈과 소망이다’

    [히12:2-3]에는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그는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3. 너희가 피곤하여 낙심하지 않기 위하여 죄인들이 이같이 자기에게 거역한 일을 참으신 이를 생각하라

    그러므로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이 귀한 고난 주간에는 영적인 구원(영생)이란 하나님의 축복을 주시려고, 세상에서 하나님 대사로 승리하는 축복을 주시려고 대신 고난을 당하신 예수님을 깊이 생각하시는 한 주간이 되시길 바랍니다.



[성경본문]

35.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박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36. 기록된 바 우리가 종일 주를 위하여 죽임을 당하게 되며 도살 당할 양 같이 여김을 받았나이다 함과 같으니라
37.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38.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39.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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