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uesday, 4 February 2020

고전15:13-22 살아계신 하나님 손 안에서

 
 
[함께 부를 찬송]
9 하늘에 가득찬 영광의 하나님
216 성자의 귀한 몸
80 천지에 있는 이름 중
 
[들어가는 말]
 
박종순 목사님의 칼럼에 '하나님의 손'이란 글이 있습니다.
 
"스웨덴이 낳은 조각가밀레스1874년에 태어나 1967년에 세상을 떠난 세계적인 조각가이다. 스톡홀롬에 가면 밀레스의 조각 공원이 세워져 있는데 공원 마당 한가운데 하나님의 손이라는 작품이 전시되어 있다. 이 작품은 1954년에 만든 작품으로 벌거벗은 인간이 하나님의 손위에 서서 하늘을 응시하는 모습이다.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하셨다는 것, 그 인간은 하나님의 손을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이다.
 
예수님은 '너희가 나를 떠나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다.'
 
 
한 때 석가모니의 뼈가 발견되었다고 인도를 위시한 불교 국가에서는 떠들썩 했다는 글을 본적이 있습니다. 석가모니의 뼈들은 잘 진열되어 수많은 인도 사람들의 경의 속에 시가행진을 했답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 뼈 앞에 머리 숙여 절했습니다.
그것을 지켜보던 한 선교사가 그의 친구에게 말했답니다.
 
"만약 저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뼈 하나라도 발견할 수 있었다면 기독교는 가짜가 되고 말았을 것이다."
 
 
1. 살아계신 하나님은 그리스도를 다시 살리셨습니다.
 
예수님의 구속의 사역은 십자가의 죽으심을 통해 열리고, 그리스도 부활을 통해서 완성됩니다.
 
"어찌하여 산 자를 죽은 자 가운데서 찾느냐?"
 
예수님의 십자가는 세계 구원에 대한 담보가 되었으며, 모든 고난과 버림받음을 극복하는 표징이 되었습니다. 부활의 빛에서만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 죽었으며, 우리가 그의 죽음을 통해서 하나님으로부터의 분리를 극복했다는 사실이지요
 
사실 먹고 마시는 일은 우리가 죽음에 직면해서 행해야할 그 어떤 다른 일들보다 훨씬 의미심장한 일이 못됩니다. 그런데도 오늘날 많은 사람들은 죽음이 불가피한 이런 상황에서 여전히 이런 슬픈 삶의 지혜에 머물러 있기만 할 뿐이지 이런 죽음의 상황을 극복할 수 있는 어떤 환상에 집중해서 살아가지 않습니다. 아마 죽은 자의 부활이라는 환상을 근거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이런 무미건조한 삶에 빠져있는 것 같습니다.
만약 예수님이 죽음으로부터 부활하지 않았다면 기독교의 신앙은 정당화될 수 없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이런 보편적 진리에서 고립된 기적이 결코 아닙니다. 부활에 관한 사신은 오히려 우리에게 이렇게 묻습니다. 과연 우리 인간들에게 실질적인 것(Wirklichkeit)은 무엇입니까?
 
우리의 손으로 생산해낼 수 있는 것들만 실질적인 것이라고 주장할 수 있습니까? 아니면 우리에게 낯익은 것들만이 그럴까요?
 
"하나님"은 죽음을 뛰어넘어요.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나지 못한다는 어떤 사람들의 주장은 단지 보이는 세계에 갇힌 자의 선입견에 불과할 수 있습니다.우리의 일상적이고 일반적인 경험의 주변에서 사실상 이것과 똑같은 일들이 발생하지 않는다는 사실에 근거한 것이지요. 따라서 일상적인 경험과 수천 번 반복된 익숙한 사건의 진행을 전체적인 현실성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죽은 자가 결코 다시 살아날 수 없다는 명제를 당연하게 생각합니다. 그런데 일상 경험과 사물의 낯익은 과정을 이렇게 일반화시키는 태도는 보지 못하는 영적인 세계, 하나님께서 다스리는 세계를 눈에 보이는 것만의 잣대로 재려는 우를 범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세상과 인간과 우리 자신을 부활절 아침의 새로운 빛 가운데서 새로운 눈으로 바라보는 것을 배워야합니다. 여기서 사람들과 우리 자신과의 새로운 관계가 생깁니다. 우리는 결코 죽음을 최종적인 것으로 생각할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는 눈앞에 보이는 것만을 판단의 기준으로 삼지 않고 살아가는 것을 배워야합니다. 우리가 현안의 척도로만 사람이나 사물을 대하는 것은 곧 사랑 없이 대하는 게 됩니다. 사랑은 어떤 사람이나 사물과의 관계에서 현안보다는 실질적인 것을 훨씬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사랑은 부활절을 향해 열려진 하나님의 미래라는 빛에서 실질적인 것을 내다보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2. 예수님의 제자들은 다시 사신 그리스도를 증거했습니다.
 
주님께서 부활하시지 않았다면, 우리의 전파하는 것이나 우리의 믿음이 헛것이 되고 만다는 것입니다(고전15:13-14).
왜냐하면 제자들의 설교 주제는 그리스도께서 성경의 약속대로 부활하셨다고 전파하였기 때문입니다.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죽은 지 사흘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것을 믿고 전파하였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제자들이 부활의 증인임을 말하고 있지만, 사실은 부활을 믿지 않는 이야기로 성경은 보도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따르던 제자들도 예수님이 부활하리라고는 전혀 기대하지도 않았습니다. 예수님이 부활을 그들에게 귀가 따갑게 들려 주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 말씀의 의미를 몰랐습니다.
예수님을 따라 다니던 도마라는 제자는 예수님이 부활 했다는 소식을 듣고도 예수님의 손바닥과 허리에 나있는 창 자국에 자기의 손가락을 찔러 확인해 보기 전에는 믿지 못하겠다고 말했습니다.
베드로와 요한은 막달라 마리아와 다른 여자들이 전해 주었던 부활의 소식을 듣고도 믿지 못했습니다.
엠마오로 가던 제자들은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기 전에도 따르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죽으시자 허탈한 마음으로 모든 것을 청산하고 고향으로 돌아가던 중이었습니다. 그들은 가면서 서로 예루살렘에서 일어났던 예수님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이 그들에게 다가가 말을 걸어도 알아 보지 못했습니다.
 
[24:25]
 
25. 이르시되 미련하고 선지자들이 말한 모든 것을 마음에 더디 믿는 자들이여
26. 그리스도가 이런 고난을 받고 자기의 영광에 들어가야 할 것이 아니냐 하시고
 
제자들에게는 예수님의 부활 사건이 생명의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베드로는 이렇게 외칩니다. “찬송하리로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이 그 많으신 긍휼대로 예수 그리스도의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 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산 소망이 있게 하시며”(벧전1:3).
 
 
 
3. 성도는 다시 사신 그리스도 안에서 부활을 누립니다.
 
그리고 그리스도께서 다시 사신 것이 없으면 우리의 믿음도 헛될 뿐만 아니라 우리가 여전히 죄 가운데 있을 것입니다.
 
우리가 만일 부활의 신앙을 갖지 못한다면, 우리는 이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자입니다(고전15:18).
우리 그리스도인들과 세상의 믿지 않는 사람들과의 가장 근본적인 차이점이 무엇입니까?
부활의 주님을 체험하고 사는 일입니다.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
 
미켈란젤로라는 유명한 조각가가 있었습니다. 그가 조각한 피에타라는 조각품이 로마의 바티칸 궁정에 있는데 그 작품은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님의 시체를 성모 마리아가 품에 안고 있는 모습을 조각한 것입니다.
만약 그 작품의 모습처럼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그의 일생이 끝났다면 우리가 믿는 기독교는 생명이 없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죽으셨을 뿐만 아니라, 사흘 만에 죽음의 권세를 이기시고 부활하셨습니다. 부활하시므로 우리의 주와 그리스도가 되셨습니다.
 
부활 신앙을 가지고 사는 성도는 그가 살아가는 삶의 방식과 태도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부활의 신앙을 갖지 못하고 사는 사람들의 생활은 그저 현세에 머물러 잘 살고 즐겨 보려는 것에만 초점 맞추며 삽니다. 그러나 부활 신앙을 가진 성도는 현재뿐만 아니라, 영원한 세계를 품고 삽니다.
 
12, 어리석은 부자
 
"마귀는 인간을 괴롭히다가 죽이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독생자를 내주는 엄청난 값을 지불하고 우리를 자유케 하셨습니다. 이 사건이 예수님의 십자가요, 부활의 역사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바라는 것이 다만 이생뿐이면 모든 사람들 가운데서 우리가 가장 불쌍한 자입니다.
 
부활은 현재에서 나아가 미래에도 소망을 줍니다.
 
예수님은 부활하셔서 죽음을 두려워 하며 일생동안 종 노릇하는 인간들에게 사망의 권세 아래 있는 사람들에게 영원한 삶을 주시기 위해 오신 것입니다.
 
 
1967630일 열 일곱 살의 운동 선수 조니 에릭슨은 체사피크 만에서 다이빙을 하다 사고를 당했습니다. 그로 인해 목 아래부터 전신이 마비된 그녀는 쓰라림, 좌절, 원망, 분노, 심지어 자살하고 싶은 침체까지 인간이 겪을 수 있는 모든 감정에 휩싸였습니다. 하지만 재활 훈련 및 치료 기간을 통해, 그리고 부모님, 자매들과 친구들의 열렬한 후원을 통해 점차 깊은 블랙홀에서 빠져 나왔습니다. 그녀는 입으로 그림을 그리는 법을 배웠습니다. 그리고 장애를 가진 사람들을 후원하는 모임도 만들었습니다. 그녀의 변화의 중심에는 성경을 재발견한 일이 있었습니다. 그녀는 자기처럼 움직이지 못하고 무력하며 마비된 채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에 대한 환상을 보면서 도움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그녀에게 가장 큰 도움을 준 것은 부활이었습니다. “나는 이제 미래에 대한 소망이 있다. 성경은 우리의 몸이 하늘에서 영화롭게된다고 말한다. 그때는 내가 여기에서 죽은 후 내 발로 춤을 출 것이다. 손가락은 오그라들어 구부러지고, 근육은 쇠약해지고, 무릎은 비틀리고, 어깨 아래로는 아무런 감각이 없지만, 내가 언젠가는 가볍고 밝으며 강력하고 눈부신 의로 옷 입은 새로운 몸을 가지게 될 것이다.”
 
 
[마무리하는 말]
 
 
[설교본문 고전15:12-22]
12.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다 전파되었거늘 너희 중에서 어떤 사람들은 어찌하여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이 없다 하느냐
13. 만일 죽은 자의 부활이 없으면 그리스도도 다시 살아나지 못하셨으리라
14. 그리스도께서 만일 다시 살아나지 못하셨으면 우리가 전파하는 것도 헛것이요 또 너희 믿음도 헛것이며
15. 또 우리가 하나님의 거짓 증인으로 발견되리니 우리가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다시 살리셨다고 증언하였음이라 만일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나는 일이 없으면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다시 살리지 아니하셨으리라
16. 만일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나는 일이 없으면 그리스도도 다시 살아나신 일이 없었을 터이요
17. 그리스도께서 다시 살아나신 일이 없으면 너희의 믿음도 헛되고 너희가 여전히 죄 가운데 있을 것이요
18. 또한 그리스도 안에서 잠자는 자도 망하였으리니
19. 만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바라는 것이 다만 이 세상의 삶뿐이면 모든 사람 가운데 우리가 더욱 불쌍한 자이리라
20.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사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
21. 사망이 한 사람으로 말미암았으니 죽은 자의 부활도 한 사람으로 말미암는도다
22.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
 
20.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사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
21. 사망이 한 사람으로 말미암았으니 죽은 자의 부활도 한 사람으로 말미암는도다
22.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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