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uesday, 4 February 2020

고후7:1-10 하나님의 약속을 가진 우리는!


 
 
[들어가는 말]
 
우리는 고후6장에서 놀라운 하나님의 약속을 들었습니다.
 
이 약속이 무엇입니까?
 
[고후6:16b]
우리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성전이라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 이르시되 내가 그들 가운데 거하며 두루 행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나의 백성이 되리라
 
[고후6:17b-18]
내가 너희를 영접하여
18. 너희에게 아버지가 되고 너희는 내게 자녀가 되리라 전능하신 주의 말씀이니라 하셨느니라
 
하나님께서 우리를 살아계신 하나님이 거하는 성전이라 선포하신 약속입니다.
우리 하나님이실 뿐 아니라, 우리 아버지가 되신다는 약속입니다.
우리를 그 백성으로 삼으실 뿐만 아니라 그 자녀로 삼으시겠다는 약속입니다.
하나님께서 성도들과 함께 거하신다는 약속입니다.
그리고
다양한 약속들을 우리 생애에서 꽃 피우시길(성취하시길) 원하십니다.
 
아담은 이 약속을 떠났습니다.
아브라함은 이 약속의 백성이 되었습니다.
다윗은 이 약속을 잠정적으로 누렸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이 약속은 현실로 성취되었습니다.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는 우리 성도는 이 귀한 약속이 우리 생애에 성취되는 축복을 누릴 수 있습니다.
 
 
어떻게요?
하나님의 약속을 가진 우리는!
 
1.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중 자신을 깨끗이 합니다.
 
[고후7:1]
1. 그런즉 사랑하는 자들아 이 약속을 가진 우리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가운데서 거룩함을 온전히 이루어 육과 영의 온갖 더러운 것에서 자신을 깨끗하게 하자
 
1] 하나님을 두려워합니다.
 
하나님의 성전이라는 약속을 가진 사람은 하나님을 두려워합니다.
하나님은 더러움과 죄악을 심판하시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공의에 대한 두려움입니다.
주권자이신 하나님의 권위와 거룩함에 대해 피조물인 인간이 공경하는 마음에서 갖게 되는 두려움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에 대한 경외는 공포 같은 두려움이 아닙니다.(20:20),
죄인된 인간이 하나님의 거룩을 대면했을 때 갖게 되는 자연스러운 반응입니다(19:16).
하나님에 대한 경외는 율법을 들을 때 생기며(4:10),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 됩니다(111:10; 1:7).
또한 성경은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생명의 샘이며(14:27) 여호와를 경외함이 사람의 보배가 됩니다(33:6).
하나님의 성전이라는 약속을 가진 사람은 하나님께 대한 경외심을 갖게됩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이름을 높이게 됩니다(22:22-23),
하나님은 그러한 사람들에게 긍휼을 베푸십니다(103:13).
그래서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거룩을 온전히 이루게 되는 것입니다(고후 7:1).
하나님에 대한 이러한 경외심은 성도들이 성결(聖潔)한 삶을 살 수 있도록 해줍니다.
한편 신약에 나오는 고넬료는 하나님을 경외한 사람이었습니다(10:2). 하나님을 경외한 그는 쉬지 않고 기도하였으며 구제를 많이 하였습니다. 이러한 고넬료를 하나님은 기억하시고(10:31) 구원의 은혜를 베풀어 주셨습니다(10:35).
 
[2:11]
11. 여호와를 경외함으로 섬기고 떨며 즐거워할지어다
12. 그의 아들에게 입맞추라 그렇지 아니하면 진노하심으로 너희가 길에서 망하리니 그의 진노가 급하심이라 여호와께 피하는 모든 사람은 다 복이 있도다
 
[12:13]
일의 결국을 다 들었으니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의 명령들을 지킬지어다 이것이 모든 사람의 본분이니라
 
 
2] 온전한 거룩함을 이루어 갑니다.
 
하나님의 성전으로서의 성도에게 요청되는 것은 거룩함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거룩하기 때문에 거룩하신 하나님께서 거할 성전도 마땅히 거룩해야 합니다(19:2).
 
그런데 이 '거룩'은 일회적으로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성결을 향한 노력을 끊임없이 함으로써 얻어질 수 있습니다.
거룩'온전히 이루어'에 해당하는 헬라어 '에피텔룬테스'(*)계속 반복되는 과정을 의미하는 현재 분사형입니다.
 
 
3] 육과 영의 온갖 더러운 것에서 자신을 깨끗케 합니다.
 
여기서 '육과 영'이란 그리스도인의 전인격적 자아를 의미하며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 및 하나님과의 관계에 있어서 내적인 면과 외적인 면 전체를 일컫는 말입니다[고전 7:34].
따라서 어느 한쪽이 더러워지면 그것은 다른 쪽도 더러워짐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본문에서 '온갖 더러운 것'은 무엇일까요?
우상의 신전에서 음식을 함께 나누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이방인들의 사원에서 열리는 축제나 의식에 참여하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5:19-21에서 언급되고 있는
'음행과 호색과
우상숭배와
술수와
원수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 냄과
당 짓는 것과
분리함과
투기와
술 취함과
방탕함' 등이 '더러운 것'입니다.
 
성도들은 이런 것들로부터 자신을 분리시켜 성결하게 해야 하며 그렇게 할 때, '거룩함을 온전히 이루는' 것입니다.
 
(1) 성결은 하나님의 언약에 기초하여 하나님께서 요구하는 것입니다.
(2) 성결은 단순히 윤리적인 차원에서가 아니라 하나님에 대한 경외심에서 생겨납니다.
(3) 성결은 영과 육, 즉 성도의 전인격에서 동시에 이루어져야 합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가진 우리는!
 
2.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으로 구원에 이르게 하는 회개를 이룹니다.
 
[고후7:9-10]
9. 내가 지금 기뻐함은 너희로 근심하게 한 까닭이 아니요 도리어 너희가 근심함으로 회개함에 이른 까닭이라 너희가 하나님의 뜻대로 근심하게 된 것은 우리에게서 아무 해도 받지 않게 하려 함이라
10.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후회할 것이 없는 구원에 이르게 하는 회개를 이루는 것이요 세상 근심은 사망을 이루는 것이니라
 
내가 지금 기뻐함은’ .....‘너희가 근심함으로 회개함에 이른 까닭이라
 
이렇게 보면 오늘 사도의 중심은 기쁨입니다.
근심의 바람이 불고 있는데 사도의 중심에 기쁨의 강이 흐릅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우리의 근심이 회개와 연결이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기쁨을 이룰 수 있는 회개란 무엇으로 비유할 수 있겠습니까?
저는 청소로 비유하고 싶습니다.
청소를 깨끗이 하는 성전이 복이 있습니다.
 
우리 서머나 식구들 중에 행복을 누리는 식구들 예로 듭니다.
 
월요일 아침이나 토요일 아침에 성전 청소를 하는 사람들입니다.
 
성전이니까 먼지가 쌓이지 않았으면 싶은데 그렇지가 않아요.
쥐가 다니고
먼지가 쌓입니다.
 
새벽 예배를 마치고
기도를 드린 후에
간단한 청소도구를 챙겨서 약 30분간 청소를 합니다.
 
그리고
모여서 커피를 마시고 교제를 하다 일터로 나갑니다.
 
얼마나 행복하고 기분이 좋은지 몰라요.
 
회개란 죄로 쌓인 마음을 청소와 같습니다.
 
1] 교회는 근심에 쌓일 수 있습니다(5).
 
우리가 마게도냐에 이르렀을 때에도 우리 육체가 편하지 못하였고 사방으로 환난을 당하여 밖으로는 다툼이요 안으로는 두려움이었노라
 
 
2] 눈물로 강한 메시지를 전하였습니다.
 
 
바울이 '준엄한 편지'를 쓸 때 마음이 몹시 고통스러웠습니다.
하지만 그들을 정죄하려 하거나 고통을 주려고 한 것은 아니었습니다(3).
도리어 그는 자식을 생각하듯 사랑하는 마음으로 편지를 썼습니다(2:4;6:13).
그러나 이러한 의도와는 달리 고린도 교인들이 그 편지를 받고는 마음의 고통을 당했다는 소식을 듣고 바울은 잠시나마 그 편지에 대해 후회를 하였습니다. 아마 그는 너무나 강한 어조로 편지를 쓴 것에 대해 후회했을 것입니다.
 
 
3] 교회는 강한 메시지를 견뎌냈습니다.
 
잠시만 근심하게 한 줄을 앎이라 - 다행스럽게도 고린도 교인들의 고통과 근심은 지속되지 않았으므로 바울은 더 이상 '준엄한 편지'를 써 보낸 것에 대해서 근심하지 않았습니다.
만일 편지를 보낸 결과가 좋지 않은 것이었더라면 그때 바울은 그 편지를 쓴 것을 계속 후회하였을지 모릅니다.
바울의 준엄한 편지는 잠시 동안 고린도 교인들에게는 근심을, 바울에게는 후회를 가져다 주었지만 궁극적으로는 넉넉히 이겨냈습니다.
 
 
4] 하나님께서 반전을 이루셨습니다.
 
여기에서 나타나는 바, 근심에서 회개로 후회에서 기쁨으로의 반전(反轉)은 바울이 쓴 편지 자체의 능력 때문이 아니라 그것을 사용하시는 하나님의 개입 때문이었습니다.
그는 이렇게 고백합니다.
본문에서 하나님의 뜻대로 근심하게 되었다는 것은 '이렇게 여러분이 마음 아파한 것은 하나님의 뜻대로 된 일이니 결국 여러분이 우리로 해서 손해 본 것은 조금도 없습니다'(공동번역)란 뜻입니다.
 
바울은 고린도교인들의 근심이 회개로 이어졌을 때 그것을 단지 다행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한 것이아니라 그 과정에 하나님의 섭리가 개입되어 있었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하나님의 방법은 사람의 예상을 뛰어 넘습니다. 그러기에 때로 하나님께서는 근심을 통하여 회개에 이르게 하십니다.
 
 
5]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이란 열매를 이루었습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세상 근심
오늘 말씀은 두 종류의 근심과 그 각각의 결과들을 뚜렷하게 대조시켜 설명해 주십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구체적으로 무엇입니까 ?
그것은 자기의 행위가 하나님의 판단에 합당한 것인가를 생각하여 자기의 잘못을 진정으로 뉘우치고 돌이키는 데까지 나아가는 근심입니다.
죄에 대한 근심이요, 하나님의 은총을 저버린 행위에 대한 근심입니다.
그래서 M. Henry신령한 근심'이라는 정의를 남기고 있습니다.
 
이에 반해 '세상 근심'은 분노하고 원한을 품으며 자기를 정당화시키기 위해 애쓰는 근심입니다. 이 근심의 결과는 낙담하고 좌절에 빠져 자기 파괴적인 상황으로 발전합니다.
 
이상에서 언급한 두종류의 근심에 대한 성경의 전형적인 실례를 들어 봅시다.
 
에서와 다윗을 비교해 볼 수 있습니다(Hughes).
 
에서는 야곱에게 장자권을 빼앗긴 후 방성대곡을 합니다.
그는 근본적으로 하나님의 기업에 대하여 깊은 관심이 없었습니다.
팥죽 한그릇이 시급했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기업에 무관심한 자에게 그 기업을 맡기지 않습니다.
훗날에야 그 심각성을 알고 근심을 합니다.
그러나 세상근심이지요.
근본적인 마음의 변화는 없었습니다(12:16,17).
 
그러나 다윗의 근심은 다릅니다.
자기의 신하 우리아의 아내를 범한 다윗은 죄를 지적받았을 때 깊이 근심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따라 자기 죄를 뉘우치고 회개하였습니다.
결국 하나님으로부터 죄사함을 받았습니다(51:1-19).
 
[고후7:10]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후회할 것이 없는 구원에 이르게 하는 회개를 이루는 것이요
 
 
 
둘째는, 가룟 유다와 베드로의 경우입니다.
 
유다는 예수를 배반하기 전에 회개할 기회가 있었으나 끝까지 자기 고집대로 갑니다(26:24).
그러나, 베드로는 예수를 세 번 부인한 후 통곡하며 회개하였습니다(26:75).
 
고린도 교인들은 후자의 경우에 속하였습니다. 그들은 하나님 말씀을 듣고 회개하였습니다, 거짓 사도들로부터 돌아서서 하나님께로 향하였습니다.
하나님 말씀에 바르게 반응한 그들은 결과적으로 '영적 사망'을 낳는 죄의 길을 피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Martin).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후회할 것이 없는 구원에 이르게 하는 회개를 이루는 것이요
 
 
바울의 기쁨은 잃었던 고린도 교인들을 다시 찾은 기쁨이오, 더하여 자기의 사도직을 긍휼히 여겨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회복한 기쁨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주신 선물이었습니다(6).
 
 
하나님의 약속을 가진 우리는!
 
3. 환난 가운데서도 위로와 기쁨의 꽃을 피웁니다.
 
[고후7:4-5]
4. 나는 너희를 향하여 담대한 것도 많고 너희를 위하여 자랑하는 것도 많으니 내가 우리의 모든 환난 가운데서도 위로가 가득하고 기쁨이 넘치는도다
5. 우리가 마게도냐에 이르렀을 때에도 우리 육체가 편하지 못하였고 사방으로 환난을 당하여 밖으로는 다툼이요 안으로는 두려움이었노라
 
1] 가시적 교회엔 어느 때나 환난의 바람이 있습니다.
 
우리가 마게도냐에 이르렀을 때에도 우리 육체가 편하지 못하였고 사방으로 환난을 당하여 밖으로는 다툼이요 안으로는 두려움이었노라
 
함께 죽고 함께 살려는 목회자의 중심도 배척을 당하고 있었습니다.
 
[고후7:2-3]
2. 마음으로 우리를 영접하라 우리는 아무에게도 불의를 행하지 않고 아무에게도 해롭게 하지 않고 아무에게서도 속여 빼앗은 일이 없노라
3. 내가 이 말을 하는 것은 너희를 정죄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이전에 말하였거니와 너희가 우리 마음에 있어 함께 죽고 함께 살게 하고자 함이라
 
 
2] 바울 사도도 목회자 환경은 열악했습니다.
 
[고전4:12-13]
12. 또 수고하여 친히 손으로 일을 하며 모욕을 당한즉 축복하고 박해를 받은즉 참고
13. 비방을 받은즉 권면하니 우리가 지금까지 세상의 더러운 것과 만물의 찌꺼기 같이 되었도다
 
바울 사도의 경우 마게도냐에 도착한 후 그들이 신자든 불신자든 간에 많은 적대자들로부터 줄곧 박해를 받는 역경에 처했습니다. 또한 바울은 심적으로 고통을 겪고 있었습니다.
분쟁에 말린 고린도 교인들을 치유(治癒)하기 위해 디도를 파견했던 바, 고린도 교인들이 디도에 대해 어떤 반응을 보일 것인가에 대한 염려 또한 적지 않았어요.
 
 
그런데 사도는 그 환난의 시간에 하나님은 무엇을 하십니까?
 
3] 낙심한 자들을 위로하시는 하나님이 찾아 오십니다.
 
[고후7:6-7]
6. 그러나 낙심한 자들을 위로하시는 하나님이 디도가 옴으로 우리를 위로하셨으니
7. 그가 온 것뿐 아니요 오직 그가 너희에게서 받은 그 위로로 위로하고 너희의 사모함과 애통함과 나를 위하여 열심 있는 것을 우리에게 보고함으로 나를 더욱 기쁘게 하였느니라
 
낙심한 자들을 위로하시는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어려운 환경으로 인하여 낙심할 수밖에 없습니다.
교회 목회 환경이 사도를 낙심으로 몰아갑니다.
낙심한 자들은 세상에서 세상적 위치가 좋지 않고 형통함을 누리지 못한 자들로서 의지할 만한 그 어떤 인간적인 것을 소유하지 못하였습니다.
오직 하나님만 의지할 수밖에 없는 자들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이런 낙심한 자들을, 그래서 하나님밖에 바라볼 수 없는, 철저하게 주님만을 의지하는 자들을 위로하십니다.
 
[49:13]
여호와가 그 백성을 위로하였은즉 그 고난당한 자를 긍휼히 여길 것임이니라.
 
 
4] 하나님께 성전답게 반응합니다.
 
[고후7:4]
4. 나는 너희를 향하여 담대한 것도 많고 너희를 위하여 자랑하는 것도 많으니 내가 우리의 모든 환난 가운데서도 위로가 가득하고 기쁨이 넘치는도다
 
담대함과 자랑이 무엇입니까?
 
하나님 성전으로서 바울 사도는 고린도 교인들을 정죄? 없습니다!
 
성전에서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함으로 사람들의 잘못을 지적하고 권면을 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정죄의 차원이 아닙니다. 성전의 기능은 재판하는 법원의 기능다릅니다.
 
성전의 기능은 이미 문제를 일으킨 자들이나 그 문제에 동조한 자들이나 할 것 없이 모두 용서하였습니다(2:7-10).
성전의 기능은 사람들을 정죄하는 것이 아니라 회개할 수 있도록 돕고 용서함을 받게 하는 일입니다. 성전에서 죄용서함을 받고 구원에 이르도록 돕는 것입니다.
 
말씀에 자신을 비추어 보는 곳입니다.
허물과 죄로 죽은 자신의 부끄러움을 느껴 잘못을 뉘우고 죄 사함을 얻는 곳이 성전입니다(고전4:14;6:5;15:34)
 
나는 너희를 향하여 담대한 것도 많고 너희를 위하여 자랑하는 것도 많으니
 
함께 죽고 함께 살게 하고자 함이 사도의 전 생애를 통해 일관하는 목회자적 신념이었습니다(살전 2:8).
자기가 돌봐야 할 성도들과 운명을 같이 하며 그들을 위해서 자기의 목숨을 희생하며 충성하였습니다.
 
 
 
 
 
[마무리하는 말]
 
오늘 우리 서머나 교회 당회원들이 하나님과 성도들 앞에서 회개하는 시간을 갖습니다.
지상 모든 교회가 악한 권세 앞에 노출 되어 있고, 바람을 피할 수 없는 것처럼 우리 교회도 예외는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 당회원들은 이런 아픔들의 책임이 누구 탓이라 정죄하지 않습니다,
세상 근심을 하지 않습니다.
 
대신, 하나님의 뜻을 따라 근심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회개합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으로 후회할 것이 없는 구원이란 회개가 가 이루어짐을 믿기 때문입니다.
 
 
[고후7:1-10 말씀 요약]
하나님의 약속을 가진 우리는!
 
1.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중 자신을 깨끗이 합니다.
 
[고후7:1]
1. 그런즉 사랑하는 자들아 이 약속을 가진 우리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가운데서 거룩함을 온전히 이루어 육과 영의 온갖 더러운 것에서 자신을 깨끗하게 하자
 
1] 하나님을 두려워합니다.
 
2] 거룩해져 갑니다.
 
3] 육과 영의 온갖 더러운 것에서 자신을 깨끗케 합니다.
 
 
2.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으로 구원에 이르게 하는 회개를 이룹니다.
 
[고후7:9-10]
9. 내가 지금 기뻐함은 너희로 근심하게 한 까닭이 아니요 도리어 너희가 근심함으로 회개함에 이른 까닭이라
 
1] 교회는 근심에 쌓일 수 있습니다(5).
 
2] 사도는 눈물의 편지로 강한 내용을 전하였습니다.
 
3] 교회는 강한 메시지를 받았습니다.
 
4] 하나님께서 반전을 이루셨습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으로 후회할 것이 없는 구원이란 회개가 가 이루어졌습니다.
 
 
3. 환난 가운데서도 위로와 기쁨의 꽃을 피웁니다.
 
1] 교회엔 환난의 바람이 있게 마련입니다.
 
우리가 마게도냐에 이르렀을 때에도 우리 육체가 편하지 못하였고 사방으로 환난을 당하여 밖으로는 다툼이요 안으로는 두려움이었노라
 
2] 바울 사도도 목회자 환경은 열악했습니다.
 
3] 낙심한 자들을 위로하시는 하나님이 찾아오십니다.
 
4] 하나님 성전다운 반응입니다.
 
[고후7:4]
4. 나는 너희를 향하여 담대한 것도 많고 너희를 위하여 자랑하는 것도 많으니 내가 우리의 모든 환난 가운데서도 위로가 가득하고 기쁨이 넘치는도다.
 
 
 
[성경본문: 고후7:1-10]
1. 그런즉 사랑하는 자들아 이 약속을 가진 우리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가운데서 거룩함을 온전히 이루어 육과 영의 온갖 더러운 것에서 자신을 깨끗하게 하자
2. 마음으로 우리를 영접하라 우리는 아무에게도 불의를 행하지 않고 아무에게도 해롭게 하지 않고 아무에게서도 속여 빼앗은 일이 없노라
3. 내가 이 말을 하는 것은 너희를 정죄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이전에 말하였거니와 너희가 우리 마음에 있어 함께 죽고 함께 살게 하고자 함이라
4. 나는 너희를 향하여 담대한 것도 많고 너희를 위하여 자랑하는 것도 많으니 내가 우리의 모든 환난 가운데서도 위로가 가득하고 기쁨이 넘치는도다
5. 우리가 마게도냐에 이르렀을 때에도 우리 육체가 편하지 못하였고 사방으로 환난을 당하여 밖으로는 다툼이요 안으로는 두려움이었노라
6. 그러나 낙심한 자들을 위로하시는 하나님이 디도가 옴으로 우리를 위로하셨으니
7. 그가 온 것뿐 아니요 오직 그가 너희에게서 받은 그 위로로 위로하고 너희의 사모함과 애통함과 나를 위하여 열심 있는 것을 우리에게 보고함으로 나를 더욱 기쁘게 하였느니라
8. 그러므로 내가 편지로 너희를 근심하게 한 것을 후회하였으나 지금은 후회하지 아니함은 그 편지가 너희로 잠시만 근심하게 한 줄을 앎이라
9. 내가 지금 기뻐함은 너희로 근심하게 한 까닭이 아니요 도리어 너희가 근심함으로 회개함에 이른 까닭이라 너희가 하나님의 뜻대로 근심하게 된 것은 우리에게서 아무 해도 받지 않게 하려 함이라
10.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후회할 것이 없는 구원에 이르게 하는 회개를 이루는 것이요 세상 근심은 사망을 이루는 것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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