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 여러분에게 건강비법을 묻는다면 무엇이라고 말씀하시겠습니까?
노만 빈센트 필 목사님은 이렇게 답했습니다.
1. 병이 생기면, 의사를 부르듯 목사를 불러라.
2. 당신의 몸, 마음, 영혼의 완치자는 예수 그리스도라는 사실을 믿어라.
3. 당신의 몸은 영혼의 성전이라는 사실을 알고 그것을 귀중하게 취급하라.
4. 모든 복수심과 미움을 버려라.
5. 당신의 병을 치료하는 담당 의사를 위해서 진심으로 기도하라.
6. 매일 운동을 하고, 성경을 읽고 기도 드리면 당신의 몸, 마음, 영혼이 튼튼해진다.
7. 건강을 생각하여 당신 자신이나 사랑하는 자들에게 악의를 품지 말라.
8. 창조주 하나님이 건강의 원천이라는 사실을 알라.
9. 성경에 기록된 건강의 규칙들을 연구하고 실천하라.
10. 치료자는 의사지만 완치하게 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심을 믿어라.
이상은 한 목회자의 건강에 관한 관점입니다. 성경에 꼭 그렇게 쓰여 있는 것도 아닙니다.
노만 빈센트 필 목사님의 관점에서 건강할 수 있는 방법을 바라본 것입니다.
오늘 여러분은 예수님께서 이 시대를 어떤 관점에서 바라보고 계시는가를 만나게 됩니다.
1. 추수기의 관점입니다.
1 이후에 주께서 달리 칠십 인을 세우사 친히 가시려는 각동 각처로 둘씩 앞서 보내시며 02 이르시되 `추수할 것은 많되 일군이 적으니 그러므로 추수하는 주인에게 청하여 추수할 일군들을 보내어 주소서 하라
많은 사람들은 그 시대가 인류의 온갖 문명이 꽃피는 봄이라 말하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는 봄이 아니었습니다. 추수기였습니다.
사람들은 예루살렘의 봄이라 환호하였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당시 세계적인 성전이 있는 예루살렘을 보시면서 우셨습니다. 예수님께는 추수기였습니다.
마23:37 예루살렘아 ! 예루살렘아 ! 선지자들을 죽이고 네게 파송된 자들을 돌로 치는 자여 암탉이 그 새끼를 날개 아래 모음같이 내가 네 자녀를 모으려 한 일이 몇 번이냐 그러나 너희가 원치 아니하였도다 38 보라 ! 너희 집이 황폐하여 버린바 되리라
만일 그들이 예수님의 추수기라는 관점을 이해하고 준비하였더라면, 100만명 이상이 희생당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이런 관점을 말씀하셨습니다.
요4:35 너희가 넉 달이 지나야 추수할 때가 이르겠다 하지 아니하느냐 ?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눈을 들어 밭을 보라 희어져 추수하게 되었도다 36 거두는 자가 이미 삯도 받고 영생에 이르는 열매를 모으나니 이는 뿌리는 자와 거두는 자가 함께 즐거워하게 하려 함이니라
주님께서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약속이 무엇입니까? 눈을 들어 세상을 바라보십시오. 세상은 넓습니다. 추수할 곡식은 들에 가득합니다. 다만 추수할 일꾼이 소수입니다. 주님께서는 우리와 같은 연약한 신
앙인이라도 일꾼으로 쓰기를 원하신다는 사실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말할 것입니다. 나같이 신앙경륜이 어린데 무슨 하나님의 일이냐? 나는 돈이 없어서 하나님의 일하기엔 적합치 않다는 분도 있습니다. 나는 나이가 너무 많다는 분도 계신 줄 압니다. 그러나 여러분, 추수기에 추수하는 일터에 가 보세요. 한 어린아이의 손이 아쉽습니다. 나이 드신 분이나 연약하신 분이 다 아쉽습니다. 그러므로 추수기에 서 있는 제자들은 일꾼을 위해 기도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말꾼이 아닌 일꾼이 될 수 있습니다.
일깜이 아닌 일꾼이 될 수 있습니다.
예레미야는 마음 속으로 늘 이런 생각을 하였습니다.(렘5:24)
우리에게 이른 비와 늦은 비를 때를 따라 주시며 우리를 위하여 추수 기한을 정하시는 우리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자
그는 하나님으로부터 이런 음성을 들었습니다.
딸 바벨론은 때가 이른 타작마당과 같은지라
미구에 추수 때가 이르리라(렘51:33)
빌리그레함 목사님은 추수하러 다가오는 심판주의 말발굽 소리를 듣는 심정으로 살았습니다.
추수 때는 세상 끝이요 추숫군은 천사들이니 (마13:39)
충성된 사자는 그를 보낸 이에게 마치 추수하는 날에 얼음 냉수 같아서 능히 그 주인의 마음을 시원케 하느니라 (잠25:13)
그렇습니다. 시대를 잘 분별하고 추수하는 날에 얼음 냉수와 같아서 주인의 마음을 시원케 하시는 충성된 사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평안의 관점입니다.(3-
03 갈지어다 내가 너희를 보냄이 어린양을 이리 가운데로 보냄과 같도다 04 전대나 주머니나 신을 가지지 말며 길에서 아무에게도 문안하지 말며 05 어느 집에 들어가든지 먼저 말하되 이 집이 평안할지어다 하라 06 만일 평안을 받을 사람이 거기 있으면 너희 빈 평안이 그에게 머물 것이요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로 돌아오리라 07 그 집에 유하며 주는 것을 먹고 마시
라 일군이 그 삯을 얻는 것이 마땅하니라 이 집에서 저 집으로 옮기지 말라
우리는 여기에서도 질문을 해볼 수 있습니다. '기독교인들은 여행할 때에 짐을 가지고 다니지 말라는 말씀인가?' 하는 것입니다.
1] 세상 일은 세상 사람들에게 맡기고 오직 제자들은 하나님 나라의 사명에 전심전력하라는 의미입니다.
즉 성도들은 예수를 좇음에 있어서 우선 순위를 하나님의 일에 두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세상의 얽매임을 극복하라는 말씀입니다. 그 긴급성은 준비에 있어서 서두를 것을 요구했습니다. 즉, 그들은 불필요한 짐 때문에 방
해받지 말아야 했습니다.
그러므로 본문의 제자들은 세상과 비교하면 연약합니다. 가난합니다. 전대나 주머니나 변변한 신 한 켤레 자랑할 것이 없을 수 있습니다.
아무에게도 문안하지 말라! 같은 의미입니다. 주님은, 그들이 불친절한 것을 원하지 않으셨으나, 동양의 문안 절차는 매우 복잡하므로 그들이 격식을 차리느라 많은 시간을 소모할 것을 우려하셨습니다.
제자들에게는 특별한 사명이 있습니다. 복음사역이지요. 이를 온전히 이루기 위해서는 하찮은 일에 시간을 낭비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그러나 그들에게는 세상이 갖지 못한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평안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할 일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평안의 대사입니다.
세상에서 일년만 평안할 수 있다면, 소원이 없겠다는 분이 있습니다. 이 세상은 평안이 없는 곳입니다.
오직 평강의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 평안이 있습니다.
왜 이 집에서 저 집으로 옮기지 말라 하십니까? 옮긴다고 해서 평안이 오는 것이 아닙니다. 제자들은 평안을 전해주는 자요, 평안을 빌어주는 평안의 전달자입니다. 평안을 찾아 구걸하는 자가 아닙니다. 평안을 전해주는 하나님 나라의 사자(使者)입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평안을 위해 가장 안락한 장소, 그리고 가장 마음이 맞는 상대를 찾아 배회해서는 안 되었습니다. 파송 받은 장소에서 평안을 전하기를 원하셨습니다.
이리 같이 탐욕스럽고 잔인한 세상에서 양같이 힘없고 지혜 없는 약자처럼 살아야 하는 제자들이 겉으로 보기에는 약하여 보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주신 평안이 있습니다. 이 평안은 세상이 줄 수도 없고, 주지 못하는 평안입니다.
누가 이 평안을 누릴 수 있습니까?
우리는 평안을 잃고 우상 앞에서 춤을 추는 이스라엘 백성을 광야에서 만납니다. 그들이 소중하게 생각하는 금귀걸이를 내놓을 정도라면 엄청나게 큰 희생을 한 헌신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놓아서 금송아지를 만들고 그 앞에서 춤을 추는 까닭은 평안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성경적으로 생각해 보면, 그들은 몸만 출애굽 했지 속 사람은 애굽의 노예일 뿐입니다. 그들이 옛사람에 속한 모든 것을 배설물로 여기고 하나님의 통치 가운데 나아올 때, 하나님께서 주시는 평안이 있습니다.
3. 하나님 나라 관점에서 세상을 보시지요.
08 어느 동네에 들어가든지 너희를 영접하거든 너희 앞에 차려 놓는 것을 먹고 09 거기 있는 병자들을 고치고 또 말하기를 하나님의 나라가 너희에게 가까이 왔다 하라
10 어느 동네에 들어가든지 너희를 영접지 아니하거든 그 거리로 나와서 말하되 11 너희 동네에서 우리 발에 묻은 먼지도 너희에게 떨어버리노라 그러나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온 줄을 알라 하라 12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저날에 소돔이 그 동네보다 견디기 쉬우리라. 13 화 있을진저 고라신아 화 있을진저 벳새다야 너희에게서 행한 모든 권능을 두로와 시돈에서 행하였더면 저희가 벌써 베옷을 입고 재에 앉아 회개하였으리라 14 심판 때에 두로와 시돈이 너희보다 견디기 쉬우리라 15 가버나움아 네가 하늘에까지 높아지겠느냐 ? 음부에까지 낮아지리라
16 너희 말을 듣는 자는 곧 내 말을 듣는 것이요 너희를 저버리는 자는 곧 나를 저버리는 것이요 나를 저버리는 자는 나 보내신 이를 저버리는 것이라' 하시니라
1] 하나님 나라 관점이란 그 나라의 왕에 대한 관점이 바로 선 것을 의미합니다.
화 있을진저 고라신아 화 있을진저 벳새다야!
가버나움아 네가 하늘에까지 높아지겠느냐 ?
음부에까지 낮아지리라.
왜 이런 진노의 말씀이 나옵니까? 그 지역이 하나님 나라의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관점을 바꾸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벳세다에서 오병이어로 5천명을 먹이셨습니다.
가버나움은 예수님께서 사신 곳입니다. 이 지역을 중심으로 사역을 하셨습니다.
귀신들린 사람을 고치셨습니다.
나병환자를 고치셨습니다.
중풍병자를 고쳐주셨습니다.
백부장의 종이 이곳에서 나음을 받았습니다.
회당장 야이로의 딸이 나음을 받은 곳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이적에만 환호하였을 뿐 진정한 왕권을 거부하였습니다.
그들이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영접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하나님 나라의 왕으로 오신 예수님께 대한 관점을 바꾸지 않았습니다.
인도의 성자 선다싱이 영국에 갔을 때의 일입니다. 어떤 신학 교수가 물었습니다.
"당신은 힌두교에서 기독교로 개종하였군요. 기독교에는 힌두교에 없는 무엇이 있나요?"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기독교에는 힌두교와 다른 가르침이나 교리가 있습니까?"
"아니요.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를 개종시키셨습니다."
"다른 사상이나 철학이 있느냐 하는 질문입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였습니다."
선다싱을 개종하게 한 '기독교의 가르침이나 교리, 철학, 사상 등'은 한마디로 예수 그리스도 그분이셨습니다.
2] 예수님께서 왜 70명의 제자들을 파송하셨을까요?
70이라는 숫자는 세상의 모든 민족들을 상징합니다.
창 10장에 70개의 민족 이름들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에는 복음이 전 세계를 위한 것이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70은 모세의 의해 임명된 장로들의 숫자입니다.(민11:16, 24)
70명의 제자들을 파송하시는 주님의 중심을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이스라엘 중에 하나님 나라의 온전한 통치가 이루어지길 원하셨던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왕으로 그 통치를 받아들이는 지역과 사람들은 매우 극소수였습니다. 오늘 말씀을 보면, 8-9절이 영접에 관한 기사요, 10-16절 말씀은 받아들이지 않은 기사입니다.
마무리하는 말
이리와 같은 세상에서 양 같은 제자들이 무엇을 할 수 있습니까? 어떻게 추수할 수 있습니까?
우선, 추수할 곡식이 많으니, 일꾼을 보내주시도록 기도하여야 합니다. 전대나 주머니나 신을 가져서 될 일이 아닙니다. 탐욕스러운 저 이리 같은 세상에서 양 같은 하나님의 사람들이 얼마만큼의 탐욕을 채울 수 있겠으며, 좋은 신을 준비한들 이리를 따라잡을 수 있겠습니까? 이 사람 저 사람 인사하고 다닌다고 해결될 일도 아닙니다. 이 집 저 집 찾아 헤맨다고 될 일도 아닙니다.
오직 주님이 주신 권능을 덧입어야 합니다.
또한 그 말씀대로 주님께서 주신 평안을 전해주는 종이어야 합니다.
나아가서 저들을 위해 예비하신 하나님의 나라가 그들 곁에 있음을 전파하면 됩니다.
(노하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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