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dnesday, 25 February 2015

눅10:17-24 주님의 기쁨과 감사

예수님께서 기뻐하셨다는 말씀을 듣습니다. 죄로 충만한 세상에서 주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이 있습니다. 그것은 참으로 특이한 일입니다. 오늘 본문이 예수님의 기쁨과 감사를 담고 있습니다.
주님은 언제 기뻐하실까요? 오늘 우리는 본문에서 주님의 기쁨을 만나시고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을 깨달아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아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1. 그 백성이 구원을 받을 때입니다.

21 이 때에 예수께서 성령으로 기뻐하사!

'이 때'는 바로 예수님의 제자들이 전도 여행을 성공적으로 마쳤을 때입니다. 영적 전쟁을 승리로 이끌고 그 승전보를 전하였을 때입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나아가 귀신의 권세에서 그 지경을 빼앗아 하나님께 바쳤을
때입니다.
제자들이 예수님의 이름으로 나아갔을 때, 그 영적인 군대 앞에서 귀신의 권세들이 간 곳마다 속속 무너지고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단이 하늘로서 번개 같이 떨어지는 것을 보셨습니다. 예수님 군사들의 승전보는 그 이름과 함께 하나님 나라의 생명 책에 기록되고 있었습니다.
이때, 예수님께서는 기쁘셨습니다. 이 때, 예수님께서는 성령으로 기뻐하셨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기쁨을 이해하기 위해 구약에서 구원받은 백성들의 기쁨을 찾아봅니다.

1] 애굽으로부터 이스라엘이 구원을 받았을 때!

애굽군대가 모세와 이스라엘을 추격해 오고 있었습니다. 홍해 바다가 이스라엘 백성 앞에서 넘실거리고 있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바다에 수장되든지 애굽 군대의 말발굽에 짓밟히고 노예로 끌려가야 합니다. 바로 그 때, 모세는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지팡이를 들어 홍해를 가리키고 바다가 그들 앞에 열립니다. 지금까지 적으로 가로막고 있다고 생각되던 바다가 순식간에 애굽군대를 삼킵니다. 그때 이스라엘이 얼마나 기뻤겠습니까?
(축15:1-22)]

2] 골리앗으로부터 구원을 받았을 때!

골리앗은 강한 적이었습니다. 누구도 그 앞에 설 자가 없었습니다. 블레셌 장군 골리앗은 큰 소리로 외쳤습니다.
너희는 한 사람을 택하여 내게로 내려보내라.
그가 능히 싸워서 나를 이기면, 우리가 너희의 종이 되겠고 만일 내가 이기어 그를 죽이면 너희가 우리의 종이 되어 우리를 섬길 것이니라.(삼상17:9)

그러나 이스라엘 모든 사람들은 그를 보고 심히 두려워하여 그 앞에서 도망치고 있었습니다. 원수 앞에서 이스라엘은 무너지고 있었습니다. 그 때, 다윗이 일어났습니다.

사시는 하나님의 군대를 모욜한 이 할례없는 블레셋 사람이리이까?

다윗은 골리앗에게 선포합니다.

너는 칼과 창과 단창으로 내게 오거니와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 곧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네게 가노라(45)

다윗은 원수 골리앗을 무너뜨립니다. 그때, 이스라엘 백성의 기쁨이 얼마나 컸겠습니까?

요나단은 다윗을 생명같이 사랑했다고 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의 환호는 하늘에 사무쳤습니다.

사울이 죽인 자는 천천이요, 다윗은 만만이로다!

3] 하만으로부터 구원을 받았을 때입니다.

포로가 된 것도 억울하고 서글픈 일인데, 이스라엘 백성은 포로된 나라에서 큰 곤경에 빠집니다.
원수 하만의 횡포는 이스라엘 백성을 몰살하자는 것이었습니다.

12월 13일 하루 동안에 모든 유다인을 노소나 어린 아이나 부녀를 무론하고 죽이고 도륙하고 진멸하고 또 그 재산을 탈취하라.
(에스더3:13)

왕은 이미 하만이 바친 은 1만 달란트의 뇌물에 녹아서 조서에 찍을 반지를 내어주었습니다.
이 음모를 간파한 모르드개와 그 백성들은 금식에 들어갔고, 왕비 에스더까지 금식하게 됩니다.

죽으면 죽으리이다

금식하고 왕 앞에 나아갔습니다. 그 결과는 무엇이었습니까? 하만이 모르드개를 매달기 위해 준비한 나무에 하만이 달려 죽게 됩니다.

수산성이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고 유다인에게는 영광과 기쁨과 존귀함이 있는지라.  ...  유다인이 즐기고 기뻐하여 잔치를 베풀고(8:16-17)

그 기쁨을 무엇으로 표현할 수 있었겠습니까?

구약에서는 이 믿음의 용장들에게 있는 기쁨은 원수를 죽였다는 데서 오는 것 이상임을 말씀하고 계십니다.
애굽군대를 몰살시켰다는데서 오는 쾌감이라고 생각하면 안됩니다.
다윗이 골리앗을 살해했다는 기쁨을 넘어갑니다.
원수 하만을 나무에 매달았다는 기쁨 이상입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그 민족을 구원하실 때에 귀히 쓰임 받은 자로 하나님의 생명 책에 기록된 기쁨입니다.

19 내가 너희에게 뱀과 전갈을 밟으며 원수의 모든 능력을 제어할 권세를 주었으니 너희를 해할 자가 결단코 없으리라 20 그러나 귀신들이 너희에게 항복하는 것으로 기뻐하지 말고 너희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으로 기뻐하라' 하시니라


2. 하나님과 그 행사를 보고 듣고 알아갈 때입니다.

`천지의 주재이신 아버지여 이것을 지혜롭고 슬기 있는 자들에게는 숨기시고 어린아이들에게는 나타내심을 감사하나이다. 옳소이다 이렇게 된 것이 아버지의 뜻이니이다

영국 속담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하루를 기쁘게 살려는가? 이발을 하라.
한 주를 기쁘게 살려는가? 자동차를 사라.
한 달을 기쁘게 살려는가? 결혼을 하라.
평생을 기쁘게 살기 원하십니까? 그러면 무엇을 해야 하겠습니까?
하나님과 우리에게 향하신 하나님의 인자하심을 보고 듣고 알아가야 합니다.

세상에서 지혜롭고 슬기롭다고 하여 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아는 것이 아닙니다.
당시 서기관들이나 바리새인들은 자타가 지혜롭다고 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의 구속사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였습니다. 그들이 기다리던 메시야를 십자가에 못박았습니다. 사도 바울이 초기에 그러하
였던 것처럼 예수님을 믿은 사람들을 스데반 핍박하듯이 핍박하였습니다.
산헤드린 공회 회원이었던 니고데모는 그 대표적인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거듭나지 않으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는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너무 힘들어합니다. 불가능한 일로 생각합니다.

사람이 늙으면 어떻게 날 수 있삽나이까?
두 번 째 모태에 들어갔다가 날 수 있삽나이까?

힘으로 되지 않고, 능으로 되지 않고 오직 물과 성령으로 거듭난 자만이 알 수 있는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러나 이 세상에서 지능이나 경험이 약하다고 하여 하나님과 그 뜻을 모르는 것이 아닙니다.
갈릴리 지역의 어부들이었던 제자들은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영접하였습니다. 그들은 세상에서 세상 지혜로 볼 때, 어린아이와 같은 존재들이었습니다. 그들은 메시야에 대하여 이론적으로 종교지도자들 만큼 알지 못
하였습니다. 그들이 아는 지식에 비교하자면 어른 앞에 서있는 어린이와 같았습니다.
하지만 오늘 말씀은 무엇을 전해줍니까?

22 내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내게 주셨으니 아버지 외에는 아들이 누군지 아는 자가 없고 아들과 또 아들의 소원대로 계시를 받는 자 외에는 아버지가 누군지 아는 자가 없나이다' 하시고 23 제자들을 돌아보시며 종용히 이르시되 `너희의 보는 것을 보는 눈은 복이 있도다 24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많은 선지자와 임금이 너희 보는 바를 보고자 하였으되 보지 못하였으며 너희 듣는
바를 듣고자 하였으되 듣지 못하였느니라'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아들을 보여주셨고, 그들에게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들려주셨습니다. 수많은 선지자들이 보고 듣기를 그렇게도 사모하고 기다렸던 메시야를 어린아이와 같은 제자들에게 알려주셨습니다.

본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아버지의 품속에 있는 독생하신 하나님이 나타내셨느니라(요1:18)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독생자를 보이시고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어찌하여 아버지를 보이라 하느냐?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생명의 구주로 영접한 사람에게 하나님과 그 하시는 일을 보여주셨습니다.


3. 제자들이 하나님 나라 일꾼으로 사명을 감당할 때입니다.

17 칠십 인이 기뻐 돌아와 가로되 `주여, 주의 이름으로 귀신들도 우리에게 항복하더이다' 18 예수께서 이르시되 `사단이 하늘로서 번개같이 떨어지는 것을 내가 보았노라


본문에서 우리는 예수님께서 사명을 감당하고 돌아 온 제자들을 보시며 성령으로 기뻐하심을 만나게 됩니다.
나아가 예수님께서는 사명을 감당할 권세를 주십니다.

19 내가 너희에게 뱀과 전갈을 밟으며 원수의 모든 능력을 제어할 권세를 주었으니 너희를 해할 자가 결단코 없으리라

그들은 주님우로부터 받은 그들의 능력을 다이나마이트와 같이 들고 세상에 나아가 사단을 향해 힘있게 대적하여 던졌습니다.

(1) 공격적인 능력을 받았습니다:

뱀과 전갈을 밟으며 원수의 모든 능력을 제어할 권세를 주었으니

즉 뱀과 전갈을 밟고, 마귀와 극악한 귀신 그리고 그 옛 뱀을 제어할 권세를 받았습니다. 귀신이 지금 너희에게 항복했습니다.

(2) 방어할 능력을 받았습니다.

너희를 해할 자가 결단코 없으리라

"만일 사악한 자가 너희에게 뱀같이 굴고 전갈 같이 너희를 해하려 할지라도 너희는 그들의 포악함을 제어하고 밟을 수 있을 것이다. 그들은 겁을 줄지는 모르나 너희를 해칠 수는 없을 것이다." (매튜 헨리)

이 사명은 지혜롭고 지식 있는 자들, 즉 이방 철학자와 유대의 랍비들에게 주신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들에게는 철저히 숨기셨습니다. 이에 대해 주님은 구체적으로 감사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복음의
사건을 나타내시지도 않으셨으며 하나님 나라를 전파하는 일을 맡기시지도 않았습니다.
바울은 그 좋은 사례입니다. 그가 지혜가 있고 학식이 있어서 그를 부르신 것이 아닙니다. 그가 죄인되었을 때에 부르셨습니다. 그는 원래 지혜롭고 슬기로운 자들 가운데서 교육받은 자였습니다. 그러나 그가 사도가
되었을 때는 어린아이가 되었습니다. 그는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외에는 어떠한 지식도 자랑하지 않았습니다(고전 2:2,4).
하나님께서는 그 사명을 제자들에게 주권적으로 행사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은혜와 그의 아들에 관한 지식을 보다 합당치 않다고 생각되는 자들에게 주셨습니다.
그러나 유효하게 전도할 것이라고 생각되는 사람에게는 사명을 주시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지혜와 힘으로 사명을 감당하려는 자보다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능력으로 전파하려는 자에게 복음 전하는 일을 맡기셨습니다.
이리 앞에 파송된 양과 같은 연약한 존재를 강하게 해 주시고 사명을 맡기셨다는 사실은 온 우주가 놀라는 사실입니다.

며느리: 제자 시집와서 처음 지은 밥이 삼층밥입니다. 저의 아버님, 어머님 이 밥 잡수시고도 건강하게 도와 주십시오.
이를 보고 들은 시어머니: 며느리가 처음 지은 밥을 먹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제가 시집와서 지은 밥은 불난집(탄밥)을 지었는데, 제 며느리는 3층집을 지었으니 감사합니다. 우리 초가집이 앞으로 3층집으로 바꿔주실 줄 믿고 감사하며 기도합니다
감격한 아들: 어머니 기도대로 꼭 3층집을 지어드리겠습니다.
시아버지: 믿음 있는 가족이니 3층집을 아니 지어도 우리 집은 부자가 아니냐?

3층 밥으로 눈물을 짜는 며느리, 꾸중하는 시어머니, 수저를 놓고 방을 나가는 시아버지, 일손이 안 잡혀 안절부절 하는 아들! 이런 분위기와 얼마나 다른가?

누가 이 세상의 신음 소리를 듣고 하나님의 이름을 위해 일어서야 하겠습니까? 연약할 때, 부르신 주님께서 우리에게 사명을 주시기 원하십니다.
이 사명을 감사하면서 비록 우리가 연약할 지라도 하나님의 큰 기쁨에 참여하는 복 받은 것을 감사하면서 주님께 충성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우리의 연약함을 한탄하지 말고, 우리를 충성되이 여겨 사명을 맡기신 하나님께 감사하면서 맡기신 사명에 충성합시다. 이곳에 예수님의 기쁨이 있습니다.


마무리하는 말

제이니란 분은 이런 말을 학생들에게 들려주었습니다.
'기쁨이란 하나의 깃발(旗)이라고 생각합니다. 성에 기가 걸려 있다는 것은 왕이 살고 계시다는 것을 나타냅니다.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 기쁨은 내 안에 하나님께서 계시다는 표시가 아닐까요?'
성령으로 기뻐하시는 예수님을 바라보면서 우리의 삶에 예수님의 기쁨의 깃발이 휘날리는 남은 생애가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노하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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