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iday, 27 February 2015

마가10:32-45 사랑의 표현을 이렇게!

들어가는 말

지금으로부터 350년 전만 해도, 검은 피부를 가진 사람들이 이 땅에서 짐승처럼 취급당하고 있었습니다.
그런 노예들의 해방을 그리워하며 기록되어 세계적인 명저가 스토우 부인이 쓴 [톰 아저씨의 오두막 집]이란 책입니다. 그 책의 첫머리엔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사랑이 있는 곳에 하나님이 계십니다."

세상 사람들이 가장 그리워하는 것이 무엇일까요?
우리 신앙인들이 가장 그리워하는 것이 무엇일까요?
사랑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그 사랑 속에 늘 함께 하십니다.
우리는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보여주신 그 사랑 안에서 그 놀라운 하나님의 사랑을 만납니다.
그리고 그 사랑은 고린도전서 13장에 나오는 말씀으로 성도 가운데서 오늘 날도 계속적으로 피어나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는 예수님의 제자들 가운데 있었던 사랑의 표현들과 이에 대한 예수님의 말씀을 살펴보면서 참된 사랑은 무엇인가를 다시 한번 생각해 볼 수 있기 원합니다.
   그리고 어떻게 우리의 현실 속에서 이 참된 사랑을 실현할 수 있는가에 대한 답을 찾을 수 있기 바랍니다.




1. 두 제자는 사랑하기 때문에 예수님 곁에 있고 싶었습니다.

     37 여짜오되 주의 영광 중에서 우리를 하나는 주의 우편에, 하나는 좌편에 앉게 하여 주옵소서

    야고보와 요한은 예수님의 열두 제자 가운데서도 핵심 세 사람 가운데 꼽히는 수제자들이었습니다.

    야고보: 예수의 12제자 가운데 한 사람. 보통 대(大) 야고보라고 하며, 《신약성서》에 있는 <공관복음서(共觀福音書)>가 그의 생애를 단편적으로 전한다. 그는 세베대의 아들이며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갈릴리의 어부였는데, 예수의 부름을 받고 시몬(베드로)·안드레·요한과 함께 최초의 제자가 되었다(마태복음 4:21∼22, 마가복음1:16∼20). 그와 요한은 격정적인 성격 때문에 <우뢰(雨雷)의 아들>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뒤에 헤롯 아그립바왕의 박해로 순교하였다(사도행전 12:2).

     이런 야고보와 요한이 예수님께 나아와 고백합니다.

    선생님이여, 무엇이든이 우리의 구하는 바를 우리에게 하여 주시기를 원하옵나이다.

    주님, 이 부탁만은 꼭 들어주시기 바랍니다. 꼭 그렇게 해보고 싶은 그런 부탁이었습니다. 그것은 자신들이 예수님 좌우편에 있고 싶었던 것입니다.
     야고보와 요한의 고백은 다른 성경에서 보도하는 바와 같이 그들의 어머니까지 나아와 부탁할 만큼 진지한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주님의 좌우편, 그러니까 주님의 가장 가까운 곳에서 함께 지내고 싶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야고보와 요한이 이렇게 간곡히 부탁을 드린 이유는 예수님을 매우 사랑하였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누구나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있고 싶은 법이거든요.

부모님이 왜 자녀들과 함께 살고 싶어합니까?
자녀를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부모님이 자녀들과 함께 살고 싶어하는데 반하여, 어떤 자녀들은 왜 부모님과 함께 살고 싶어하지 않습니까?
부모만큼 자녀들은 부모님을 사랑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요한과 야고보가 예수님의 좌우편에 있게 하여주세요 간청한 까닭은 예수님을 너무 사랑하였기 때문입니다.
사랑하였기 때문에 가장 가까운 곳에 있고 싶었습니다.

야고보와 요한이 예수님을 너무 사랑하였구나 하는 확신은 사도 요한을 통해 훗날 기록된 요한 복음이나 요한1,2,3서들을 읽어보면 금방 알 수 있습니다.
이 성경들은 사랑이란 말을 가리고 나면 내용이 통하지 않을 만큼 사랑이란 주제로 가득 하 있습니다.
이는 요한이 얼마나 예수님을 사랑하고 있는가를 구구절절히 담고 있는 것입니다.
야고보와 요한은 사랑이 아니면 설교가 이루어지지 않았을 만큼 예수님을 사랑하였던 것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사랑하는 제자였습니다.
예수님의 사랑을 받는 제자였습니다.
예수님을 사랑하는 제자였습니다.

    그들이 얼마나 예수님을 사랑하였는가는 야고보의 순교를 통해서 절정을 표현합니다. 야고보는 사도 가운데서 맨처음 순교하신 분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우리 죄를 위해 희생하신 일이 있은 후, 스데반에 이어 주님을 위해 목숨을 내놓은 사도가 바로 야고보입니다.

    왜 이런 영광을 그가 누렸다고 생각하십니까?
야고보가 정말 예수님을 사랑하였기 때문입니다.
그가 예수님을 부인했다면
야고보가 예수님을 사랑하지 않았다면
예수님을 사랑하되 적당히 사랑하였다면
그는 순교하지 않았을 지 모릅니다.

    예수님께서 유대인들에 의하여 처형당하셨지만 빌라도의 손을 빌어서야 죽일 수 있었습니다.

    행4장을 보면, 베드로와 요한이 유대인 종교 지도자들 앞에 잡혀가 심문을 당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러나 쉽게 죽이지 않았습니다.

   제사장들과 성전 맡은 자와 사두개인들이 베드로 일행을 잡습니다.
    그리고 그들을 불러 경계하여 도무지 예수님의 이름으로 말하지도 말고 가르치지도 말라 합니다.
    그러나 베드로와 요한이 대답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너희 말 듣는 것이 하나님 말씀 듣는 것보다 옳은가 판단하라."

    관원들이 백성을 인하여 저희를 어떻게 벌할 도리를 찾지 못하고 다시 위협하여 놓아 주었으니....."

     이런 일련의 사건들은 야고보가 어떤 위협과 협박에도 불구하고 예수님께 대한 사랑을 고백하였음을 깨닫게 됩니다.

    야고보가 저들이 십자가에 못박아 죽인 예수님을 깊이 사랑하고 그렇게 고백하였을 것이라는 생각을 계산해 넣지 않으면 야고보의 죽음은 무리가 있습니다.
   우리는 야고보의 순교를 예수님과 함께 있기를 간절히 사모한 측면에서 이해하여 보았습니다.


    사랑하는 서머나 교우 여러분,
주님 사랑하십니까?
주님 곁에 머물고 싶은 간절한 소원을 야고보와 요한과 같이 가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주님과 함께 거닐 수 있기를 바랍니다.
주님과 함께 대화를 늘 나눌 수 있기를 바랍니다.
주님과 함께 꿈을 꿀 수 있기를 바랍니다.
주님과 함께 미래를 설계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주님과 함께 사역을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주님과 함께 잠들고 주님과 함께 일어나고 주님과 함께 길을 가는 사람은 복이 있습니다.

456장을 함께 찬양해 봅시다.

1] 주와 함께 길 가는 것 즐거운 일 아닌가
우리 주님 걸어가신 발자취를 밟겠네

(후렴)

한걸음 한걸음 주예수와 함께
날마다 날마다 우리는 걷겠네


2] 어린 아이 같은 우리 미련하고 약하나
주의 손에 이끌리어 생명길로 가겠네


3] 꽃이 피는 들판이나 험한 골짜기라도
주가 인도하는대로 주와 같이 가겠네


4] 옛날 선지 에녹같이 우리들도 천국에
들려 올라 갈 때까지 주와 같이 걷겠네




2. 사랑하는 자는 쓴 잔을 함께 마십니다.

    야고보와 요한이 예수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함께 있기를 원하는 마음은 너무 아름답지만 앞에 붙은 한 마디가 그 말을 들은 사람들에게 당혹감을 안겨 주었습니다.

주의 영광 중에서 우리를 하나는 우편에 하나는 좌편에 앉게 하여 주옵소서!

주의 영광 중에서란 말이 듣는 사람들에게 역반응을 일으키게 하였습니다.

이런 저들의 간청은 예수님의 충정어린 권면을 받게 하였습니다.
그리고 곁에 있는 다른 제자들을 상당히 당혹하게 하였습니다.

'주의 영광'이란 말의 의미를 야고보와 요한이 오해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받으실 영광은 바로 쓴 잔을 마시는 일이었고 쓴잔은 바로 십자가의 영광과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예수님께선 야고보와 요한에게 말씀해주셨습니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너희 구하는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 도다
너희가 나의 마시는 잔을 마시며 나의 받는 세례를 받을 수 있느냐?(38)

주의 영광은 쓴 잔을 마시는 자에게 주어지는 영광이었고 바로 십자가의 죽음이었습니다.

이에 대한 야고보와 요한의 답변은 명확합니다.

    야고보와 요한은 주님을 너무 사랑했기 때문에 그 쓴 잔까지도 마실 수 있다는 확신이었습니다.
그래서

    "나의 마시는 잔을 마시며 나의 받는 세례를 받을 수 있느냐?"

고 말씀하셨을 때에, 그들은 확고하게 대답하였습니다.

       "할 수 있나이다."

야고보는 예수님을 정말 사랑하였기 때문에 예수님과 함께라면 그 쓴잔의 내용물이 무엇이든간에 마실 수 있다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야고보와 요한이 주님을 사랑한다는 것은 주님 좌우편에 머물 뿐만 아니라 주님과 쓴 잔을 함께 마시는 그것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을 사랑하였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마셨던 쓴 잔을 마실 수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야고보와 요한의 귀한 점은
예수님을 사랑하였기 때문에 예수님의 곁에 있길 원하였을 뿐만 아니라
예수님을 사랑하였기 때문에 쓴 잔을 함께 마실 수 있었다는 점입니다.
예수님과 함께 쓴 잔을 마신 일을 통하여 야고보와 요한은 예수님 곁에 영원히 있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서머나 교우 여러분,
주님을 사랑하십니까?
주님께서 우리를 위해 마신 십자가의 쓴 잔을 사랑하십니까?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주님과 함께 마시는 쓴 잔은 무엇입니까?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기 때문에 쓴 잔을 마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것은 종으로서 종의 형제를 입고 우리 곁에 찾아오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세상을 이렇게 사랑한다고 하셨을 때, 종의 형체를 입고 우리 가운데 오실 뿐만 아니라 우리와 함께 사셨던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진정한 사랑은 쓴 잔을 십자가에서 마신 일로 인하여 완성되었습니다.


이번 주간에 우리 젊은 청년들이 원주민 마을을 찾아갑니다.
벌써 여러분들이 적극적으로 기도해주시고 도와주셔서 준비를 잘 하고 떠납니다.
재정적 협조도 잘 되어 부족함이 없겠다고 감사하고 있습니다.
원주민들에 대한 배려는 우리가 마셔야 할 쓴 잔입니다.
원주민들의 삶이 달콤하지 못합니다.
언주민들의 삶이 본이 되지 못합니다.
원주민들의 마음 속에 쓴 뿌리가 있습니다.
그래서 원주민들의 삶은 쓴 잔입니다.

주님께서 저들을 위해서도 목숨을 버리셨기 때문에 우리도 저들의 아픔을 함께 마셔야 할 부분이 있습니다.


하나님과 친해지려면 하나님께 나아가야 합니다.
우리가 서로 친애지려면 그 친해지길 원하는 사람에게 나아가야 합니다.
원주민과 친해지려면 원주민들에게 나아가야 합니다.
자연보호나 자연 사랑을 구호로 외치기 전에 자연을 찾아가면 자연과 친해지게 되어있습니다. 자연과 친해지면 자연을 사랑하게 됩니다. 그리고 쓴 잔을 마실 수 있게 됩니다

주님을 사랑한다는 것은 바로 주님과 쓴 잔을 함께 마심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서머나 교우 여러분,

주님을 사랑하십니까?
주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이로 인하여 어떤 쓴 잔을 마시고 계십니까?
그 쓴 잔을 사랑하시기 바랍니다.

그 손 못자국 만져라
그  손 못자국 만져라
주가 지키며 인도하시리
그 손 못자국 만져라

이 시간에 이런 마음을 찬양에 담아 이동훈, 박민욱, 김현혜 찬양을 하겠습니다.



3. 사랑한다는 것은 종의 직분을 수행하는 것입니다.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모든 사람의 종이 되어야 하리라
인자의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ㅣ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당시 많은 이방인들도 사랑을 이야기 하였습니다.
세상의 철학자들도 사랑에 대하여 발표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행하고 말한 사랑은 예수님께 인정을 받을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바로 그 한 사랑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종이되는 사랑이었습니다.
사랑한다는 것은 종의 모양을 취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사랑한다는 것은 종의 행동을 취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사랑한다는 것은 종의 마음을 갖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우리들이 살아가는 삶의 형태를 살펴보십시오.
내가 다스리는
내가 섬김을 받는
내가 왕노릇을 하는
그런 삶의 양식을 성공적인 삶의 양식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나는 사랑한다고 말하지요
사랑한다고 생각하지요.

내가 왕이되어 얼마의 자선을 베풀었으니까 사랑했다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왕이되어 얼마의 시간을 내어 주었으니까 사랑했다 이렇게 생각합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그 왕의 자리에서 내려오셨습니다.

내가 선생이 되어 너의 발을 쌋겼으니

무슨 말씀입니까?

왕의 자리에서 내려왔다는 말씀이지요.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모든 사람의 종이 되어야 하리라

종의 자리에 무릎을 꿇기 전까지는 사랑하는 것이 아닙니다.
종의 자리에서 상대를 공경하는 마음을 갖기 전까지는 사랑하는 것이 아닙니다.
종의 입장에서 상대를 섬기기 전까지는 사랑하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내 가정의 으뜸이 되고 있다면 나는 가정을 사랑하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내 가정을 쥐락패락하고 있다면 나는 가정을 사랑하는 것이 아닙니다.

말로
자세로
행동으로
섬길 때,
종노릇을 할 때
나는 비로소 사랑하는 것입니다.

주 안에서 사랑하는 것은
그래서
오래 참음과
온유하며
시기하지 않으며
자랑도 교만도 하지 않는 그런 것입니다.


[마무리하는 말]

한 청년이 길을 가다 다리 밑에 웅크리고 있는 누추한 사람을 보았습니다. 옷을 때에 절어 있었고 굶주림에 지쳐 배를 꼭 끌어 앉고 있었습니다.
길 가던 청년의 마음에 동정심이 일어났습니다. 그를 도울 양으로 그에게 다가갔습니다. 그리고 그를 보는 순간 깜짝 놀랐습니다. 바로 그의 친구였기 때문입니다. 그는 얼마간의 돈을 쥐어주었습니다.  위로의 말과 함께.
그 돈을 받아든 청년은 곧 바로 빵집을 향해 달려갔습니다. 굶주림으로 현기증 나는 몸을 추슬러 빵집으로 들어가는 순간 그의 눈에 빵집 옆에 있는 화방이 보였습니다.
그는 손에 쥐어 진 얼마의 지폐를 쳐다보며 한 참을 서 있었습니다. 그러다 결국 화방 문을 열었습니다. 이 사람이 바로 유명한 렘브란트입니다.

렘브란트 그는 거지같은 인생으로 생을 마감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를 사랑한 한 친구의 작은 정성으로 살아날 수 있었습니다.
렘브란트 그는 빵과 돈을 바꿀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림을 사랑하는 그림을 붙들 수 있었습니다. 이로 인하여 위대한 인물, 위대한 작품이 탄생한 것입니다.
사랑은 이처럼 죽어 가는 인생을 소생시킵니다.

오늘 저는 사랑을 위해 자신의 생을 내어놓은 한 사람을 여러분께 소개합니다. 그는 정진호 선교사입니다. 복된 선교보고를 통해 하나님의 사랑과 그 사랑에 보답하는 답을 찾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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