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우리는 있는 힘을 다해 스윙을 하고도 파울볼만 날리다 플라이 아웃된 선수와 조용히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나서 단번에 홈런을 날린 홈런 타자를 만납니다. 그녀의 이름은 마르다와 마리아입니다.
주의 일은 부지런히 뛴다고 되는 게 아니더라구요. 갈곳을 알고 달려야지요. 주님의 일은 내가 열심이 있다고, 성실하다고 되는 것도 아닙니다. 모른 채 달리기만 하면 되나요. 힘으로 안되고 능으로 안되요. 오직 여호와의 신으로 된다는 말씀이 옳습니다.
'한 촌에 들어가시매'. 한 촌은 요 11:1과 12:1-3에 의하면 나사로와 마르다, 마리아 자매들이 살고 있는 '베다니'입니다. '베다니'는 예루살렘 동쪽과 감람산 동쪽 기슭에 위치하는데 예루살렘까지는 3Km 정도 떨어진 가까운 곳입니다(Hendriksen). '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에 오실 때마다 베다니에 있는 마르다와 마리아의 집에 자주 들르셨습니다. 그들은 주님께서 매우 각별하게 지내는 사이였습니다. 이 가정은 주님의 사랑을 많이 받고 있었습니다. 그 오라비인 나사로를 소생시켜 주신 일을 통해 보더라도 그들의 마음 안에는 얼마든지 잘해드리고 싶으신 마음이 있었을 것입니다.
주님의 이번 예루살렘 방문은 십자가를 지시기 위한 마지막 방문으로서 이 가정에 머무시는 것도 특별한 의미를 갖고 있었습니다. 이들 자매가 예수께서 곧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실 것이라는 것을 알지는 못했지만 마르다는 정성을 다하여 주님을 공궤하려 하고 있었습니다.
이 두 여인들의 태도에서 우리는 주님을 섬기는 두 가지 유형을 발견하게 됩니다. 주님께서는 마리아가 더 좋은 편을 택했다고 하셨는데, 이 두 여인들의 봉사 태도에서 우리에게 교훈하는 바가 무엇인지를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우리 주 예수님께서는 마르다의 집에 들어가자마자 복음을 전파하기 시작하셨습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실 때, 우리는 즉각적으로 들어야 합니다. 마리아는 앉아 그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마르다의 동생 마리아는 그리스도의 말씀에 귀를 기울였습니다(39절).
우리는 본문을 통해서 주님과 동행하고 섬길 때 일하는 지혜를 배웁니다.
두 자매의 공통점
마르다와 마리아는 참으로 신실한 제자들이었습니다. 두 사람은 모두 예수님을 믿었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그리스도를 영접하지 않을 때, 그들은 예수님을 영접하였고 존경했습니다. 예수님을 사랑했으며,예수님 역시 그들 자매를 사랑했습니다. 이 두 사람의 심령 속에 하나님의 은혜가 있었다는 것은 확실합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이 믿음으로 하는 모든 일은 신앙의 원리에 있어서는 일치점을 갖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 교훈을 기억하는 것이 우리에게 매우 유익할 것입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신자들이 모두가 같지는 않다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의 경험이 나의 것과 같지 않다고 은혜가 없다고 속단을 내리거나, 다른 사람의 봉사가 나와 다른 것이라고 해서 이상하게 생각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우리가 교회 안에서 봉사하는 것과, 겉으로 드러나는 믿음의 양상이 서로 다르다고 해서 멸시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주님 오시는 그날까지 교회 안에는 마르다와 마리아가 공존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서로의 차이를 인정한다면 그리스도를 믿는 일에 하나가 될 수 있습니다.
1) 진실한 신자들이라 할지라도 주님을 섬기는 두 사람의 태도는 서로 현저하게 다릅니다.
1. 칭찬 받을 만한 점이 마르다에겐 있었습니다.
1) 주님을 영접하는 마음입니다.
38 저희가 길 갈 때에 예수께서 한 촌에 들어가시매 마르다라 이름하는 한 여자가 자기 집으로 영접하더라
마르다는 이 가정의 여주인입니다. 예수께서 이 집을 자주 오실 수 있었던 까닭은 이 마르다의 마음이 늘 예수님을 따뜻이 영접하였기 때문입니다. 물론 오라비 나사로를 살려 주시기도 하셨지만 그전부터 예수님과는 친밀한 관계에 있었습니다(참조, 요 11:1-4). 그녀는 주님께서 원하시기만 하면 언제나 자기 집에 오시기를 환영하고 있었습니다. 주님 영접할 마음의 준비를 항상 하고 있었습니다. 이는 참으로 축복 받은 마음입니다. 그리스도인은 누구나 이 마르다와 같이 주님께서 언제 오시든지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참조, 계 22:20) 하고 영접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합니다.
2) 정성껏 주님을 대접하고 싶었습니다.
40 마르다는 준비하는 일이 많아 마음이 분주한지라
왜 이토록 마르다의 마음이 분주합니까? 주님을 잘 대접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그녀는 주님을 위한 잔치 준비에 여념이 없었습니다. 그녀는 우리 주 예수님을 사랑하는 마음을 봉사로 표현하였습니다. 이는 칭찬받을 만한 장점입니다. 그녀의 이러한 대접은 겉치레가 아니라 그리스도에 대한 순수한 사랑의 표현이었습니다.
마르다에게는 책망 받는 점이 있었습니다. 마르다는 준비하는 봉사에 모든 정성을 쏟았습니다. 그녀는 주님보다 일[봉사] 자체에 매달려 있었습니다. 일은 주님의 영광을 나타낼 때, 아름답습니다. 마르다는 말씀을 주시기 위해 찾아오신 주님의 발 앞에 앉을 시간보다 준비하는 일에 전심을 기울였습니다.
<준비하는 일>은 중요합니다. 그러나 본질을 떠난 분주한 준비는 위험합니다. 일에 분주하다가 하나님을 멀리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일과 일상업무, 사업, 집안 일, 사회와의 교제 등이 다 중요합니다. 그러나 때로 우리 영혼이 사는 일보다 중요한 건 아닙니다. 목자로부터 바로 공급을 받지 않으면, 우리 심령을 넘어지게 하는 올무가 될 수 있습니다. 영혼이 잘됨 같이 범사가 잘되어야지요. 범사가 잘되고 영혼이 잘되기를 바라
는 것은 우선 순위가 바뀐 것이지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어떠한 일을 맡기시든지 우리는 그것 때문에 주님을 잃어서는 안됩니다.
마르다는 그녀의 동생 마리아와 주님께 불평하였습니다.(40절).
예수께 나아가 가로되 `주여, 내 동생이 나 혼자 일하게 두는 것을 생각지 아니하시나이까 ? 저를 명하사 나를 도와주라 하소서'
마르다는 혼자서 일을 하는데서 멈추지 않고 자기를 도와주지 아니하고, 주님의 발치에 앉아 말씀을 듣고 있는 마리아를 판단하는 죄를 범하고 있습니다.
그녀는 마리아가 선택한 일, 즉 그리스도의 발 앞에 앉아 그의 말씀을 듣는 일었습니다.
또한 마르다의 봉사는 마리아의 경건과 헌신을 뒷받침하는 것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그것을 기뻐하지 못하고 있다면, 그 봉사는 주님께 대한 방해요, 올바른 봉사라고 생각할 수 없습니다. 마르다는 마리아의 경건과 헌신에 대해 격려해 주어야 그녀는 봉사다운 봉사를 하는 것입니다
마르다는 예수님을 대접하는 일에 매달려 목자가 자기 영혼을 푸른 초장과 쉴만한 물가로 인도하시기 위해 찾아오신 예수님의 사랑을 받아들이는 일을 소홀히 했습니다.
본문을 통해서 이생의 염려에 지나치게 신경을 쓰면, 그것이 신앙에 올무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합니다.
주님께서는 그녀를 책망하실 때 '마르다야'하고 그녀의 이름을 반복해서 부르셨습니다. 주님께서는 마르다의 지나친 염려에 대하여 책망하셨습니다(41절).주님께서는 그녀에게 평안 주시기를 진심으로 바라셨습니다.
마르다는 주님을 위해 일한다고 하면서 주님께서 주시고자 하시는 평안의 복음을 받지 못하고 생활에 대한 염려에 빠졌습니다.
제자들이 주님의 일을 하면서 지나치게 염려하고 근심할 수 있습니다. 평안을 잃고 화를 낼 수 있습니다. 그것은 주님께서 원하시는 일이 아닙니다.
또한 하나님께 열렬하게 간청할지라도 주님의 뜻을 떠나 있을 때, 옳은 일은 아닙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리스도가 우리의 부당하고 근거 없는 불평을 들어줄 것이라고 기대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합니다.
주님께서는 마르다의 세상일로 분열된 마음을 치료해 주기 원하셨습니다. '마르다야 마르다야'. 이름을 거듭 부르신 예가 신약성경 중에 몇 군데에서 나타나는데, 이는 모두가 깊은 연민의 정을 담고 있을 때 사용되고 있습니다. 눅 22:31에서 시몬 베드로를 부르실 때나 행 9:4에서 사울을 부르실 때 사용합니다. 눅 22:31에서 시몬 베드로를 부르실 때나 행 9:4에서 사울을 부르실 때가 그 좋은 예입니다(spence). '염려하다'는 여러 가지로 마음이 분열됨을 나타냅니다. '근심하다'는 소요한 모습입니다. 주님께서는 내적인 마음의 분열 상태든, 외적인 혼란 상태은 치료해주시길 원하십니다.
좋은 처방으로 마르다를 살리시는 예수님을 만납니다.
주님께서는 사랑하는 양의 병든 부분을 아시고 지혜로운 의사처럼 마르다의 마음속에 좀먹고 있는 질병을 찾아 처방을 주셨습니다.
이 세상에서 사람들이 추구하는 많은 일들이 다 필요합니다. 그러나 구원을 가져오는 하나님의 은혜는 오직 우리를 근본적으로 치료하실 수 있는 그리스도 한 분을 소유하는 일입니다. 지금은 바로 이 순간입니다.
마르다의 실수는 모든 신자들에게 주는 하나의 경고입니다. 은혜 가운데 자라며 영혼이 잘 되는 기쁨을 누리고자 한다면, 우리는 마땅히 영적인 우선 순위를 바로해야 한다 것입니다.
2. 좋은 편을 택한 마리아
마리아는 찾아오신 주님의 발치에 앉아 말씀을 듣는 데 여념이 없었습니다. 마리아는 언니에 비하면 행함보다 듣는 면이 발달되어 있습니다.
양이 목자를 위해 할 일은 목자가 인도하는 곳에서 공급해주시는 꼴을 잘 받아들이는 것이요, 그 꼴을 먹고 건강히 잘 자라는 것입니다.
1) 주님의 말씀 듣는 일을 우선순위로 삼았습니다.
'마리아라 하는 동생이 있어 주의 발 아래 앉아 가장 중요한 일이 무엇인가를 안 사람입니다. 그것은 주님의 말씀 듣는 일입니다. 이러한 마리아를 주님께서는 기뻐하셨습니다.
우리가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가장 좋은 길은 주님의 말씀 듣는 일입니다. 믿음이 바로 이 들음에서 납니다. 무얼 행하여야 하는가 하는 것도 말씀을 잘 들을 때 가능합니다.
2) 주님께서 오신 목적을 알게 됩니다.
마리아는 주님께서 자기 집에 오신 목적을 잘 알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만사를 제껴두고 주님께서 하시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참으로 하실 일이 많으신 주님께서 이 집에 오실 때는 먹을 것이 없어서가 아닙니다. 주무실 곳이 없어서가 아닙니다. 하실 말씀이 있어서입니다. 마리아는 주님으로부터 먼저 그 말씀을 듣고 싶었습니다.
3) 마리아는 장래를 준비하였습니다.
마리아는 요 11:2에 의한다면 예수의 발에 향유를 붓고 머리털로 씻었던 여인과 같은 사람이었습니다.
주님은 그의 선택을 칭찬해 주셨습니다.
'마리아는 이 좋은 편을 택하였으니 빼앗기지 아니하리라'(42절)
주님께서 마리아의 선택을 지극히 칭찬한 것을 봅니다. 마리아는 가장 가치있는 일을 올바르게 선택하였습니다. 그리스도와 함께 있는 편을 택하였습니다. 그리스도의 말씀을 마음속에 받아들임으로써 주님을 기쁘게 해드리는 방법을 택하였습니다.
마무리하는 말
이 말씀은 마리아만을 위한 말씀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믿는 모든 사람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마르다는
주님을 영접한 한 사람(38)입니다.
준비하는 많은 일로 마음이 분주한 사람입니다.
(염려하고 근심하는 사람)입니다.
자기 중심주의 자(동생 걸고, 주님 명하고)입니다.
마리아는
주의 발아래 앉아 말씀을 듣는 사람입니다(39)
주님 한 분만으로도 족한 사람입니다(42)
주님 중심주의 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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