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iday, 27 February 2015

마가11:11,15-21 성전의 두 문제 해결

[들어가는 말]

오늘 새벽, 입력된 찬양반주기에서는 410장을 100번 되풀이 하여 찬양하였습니다.

“아, 하나님의 은혜로 이 쓸 데 없는 자
왜 구속하여 주는 지 난 알 수 없도다.
내가 믿고 늘 의지함은
내 모든 형편 잘 아시는 주님
늘 간수해주실 것을 나는 확실히 아네.”

이 찬송을 왜 새벽부터 찬양하고 싶었는가 하면요, 사실 여러분도 알다시피 제 53번째 생일을 맞고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들이 저에게 생일 선물을 준비하고 생일 케이크를 준비하여 생일 축하를 해주신다는 말을 듣고 정말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제 생애에 가장 놀라운 일은 하나님께서 저를 찾아와 만나 주신 일입니다.
그리고 저의 죄를 용서하시려고 십자가에서 죽으신 일입니다.
여러분들이 저에게 생신을 축하합니다 말씀하시지만
저는 사실
왜 구속하여 주는 지 알 수 없어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을 감사하며
아침 내내 410장을 노래한 것입니다.

제가 이렇게 감사하게 되는 까닭은 하나님께서 외아들을 2천 년 전에 십자가에 내어 주셔서 저의 모든 죄를 이미 용서하여 주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믿는 저를 성전으로 삼으셨기 때문입니다.

오늘 성경 본문은 이런 놀라운 성전회복을 위해 애쓰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땀방울을 만나게 됩니다.

성전 회복을 열어주신
아,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가 여러분의 생애에도 넘쳐서 축복된 천국을 누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1. 성전은 하나님의 풍부한 죄용서를 누리는 곳입니다.

11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이르러 성전에 들어가사 모든 것을 둘러보시고 때가 이미 저물매 열두 제자를 데리시고 베다니에 나가시다

예루살렘에 들어가신 예수님의 관심은 성전에 집중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오신 목적은 이 성전의 원래 목적을 이루기 위함이시기 때문입니다.

성전의 원래 목적이 무엇입니까?

    성전은 하나님께서 임재하셔서 그분께 속죄물을 들고 나아오는 죄인들의 죄를 용서하시는 장소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죄의 크기, 죄의 다소, 죄의 무게에 따라 인생을 평가하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더 작은 죄를 지은 죄인이 더 큰 죄를 지은 죄인을 정죄하려 합니다.
적은 죄를 지은 죄인이 더 많은 죄를 지은 죄인을 정죄하려 합니다.
더 가벼운 죄를 지은 죄인이 더 무거운 죄를 지은 죄인보다 우월한 척합니다.

그러나 그것보다 더 중요한 사실이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죄를 성소에서 해결할 길을 열어 주셨습니다.
근본적으로 십자가에서 해결하셨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있어서는

죄용서함을 얼마나 많이 받았는가!
죄용서함을 얼마나 크게 받았는가!
얼마나 무거운 죄 용서함을 받았는가!
이것이 내가 어떤 죄를 지었는가보다 더 중요합니다.

예를 들어 탕자의 비유는 큰 형이 의롭다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 큰 죄인 탕자가 죄를 전부 용서함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모든 죄 용서함이 구약시대에는 성전에서 이루어졌습니다.
구약시대에 사는 사람들에게 있어서 성전은 하나님의 백성이 그곳에 속죄물을 가지고 찾아와서 하나님의 죄용서함을 받을 수 있었던 유일한 처소였습니다.


그러므로 이 성소가 얼마나 중요하겠습니까?

그러므로 다윗은 성막의 언약궤가 예루살렘으로 들어올 때, 자기 몸에서 옷이 흩어져서 몸이 드러나는 것도 모르고 기뻐서 춤을 추었습니다.

다윗은 성전을 주신 하나님의 중심을 정확히 이해한 분입니다. 그리고 그 성전에서 하나님의 죄용서함을 체험한 분입니다.

시37:5-6을 보시면,

너희 길을 여호와께 맡기라
저를 의지하면 저가 이루시고
네 의를 빛같이 나타내시며
네  공의를 정오의 빛같이 하시리로다.


다윗은 죄 용서하시는 하나님을 기뻐함으로 인생에서 성공한 신앙의 용장입니다.

또 여호와를 기뻐하라
저가 네 마음의 소원을 이루시고(시37:4)


마가복음2:17은 예수님이 성전의 원래 목적을 이루러 오셨음을 말씀해주고 계십니다.

예수께서 들으시고 저희에게 이르시되 건강한 자에게는 의원이 쓸 데 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 데 있느니라.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성전 기능을 완성하시기 위해 예수님께서 오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12살 때의 일입니다.
예수님을 잃고 그 부모님이 매우 당혹하여 있을 때였습니다. 그 때,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아버지의 집에 있어야 할 줄을 알지 못하셨습니까?”

예수님은 성전에 대한 온전한 꿈을 갖고 계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성전은 아버지의 집이라는 분명한 인식을 갖고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성전이 자신이 있어야 할 집이라는 인식을 어린 시절부터 갖고 계셨습니다.
예수님께 있어서 성전은 자신이 머물러 있어야 할 아버지의 집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실 것을 말씀하시면서 예수님의 오신 목적을 마가복음 10:45에서 이렇게 요약하셨습니다.

"인자의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예수님께서는 성전이 되시고 성전 기능을 완성시키시기 위해 오셨던 것입니다.

성전 청결의 시작은 예수님께서 성전에 임재하시는 그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금도 성전된 우리 안에 들어오셔서
죄 용서를 이루기 원하셔서 둘러보시는
예수님을 믿으십니까?
그분의 놀라운 은혜가 우리 안에 넘치기를 축복하며 기도드립니다.


2. 성전은 만민이 기도하는 하나님과 화목하는 집입니다.

15 저희가 예루살렘에 들어가니라 예수께서 성전에 들어가사 성전 안에서 매매하는 자들을 내어 쫓으시며 돈 바꾸는 자들의 상과 비둘기파는 자들의 의자를 둘러엎으시며 16 아무나 기구를 가지고 성전 안으로 지나다님을 허치 아니하시고
17 이에 가르쳐 이르시되 기록된바 내 집은 만민의 기도하는 집이라 칭함을 받으리라고 하지 아니하였느냐 너희는 강도의 굴혈을 만들었도다 하시매

성전의 또다른 기능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입니다.
하나님과 깊은 영적 교제가 이루어지는 곳이 바로 성전이라는 말씀입니다. 성전에서 그 백성들이 하나님과 깊이 교제하는 기능이 썩어 있을 때, 주님께서는 썩은 성전 기능을 수술하시기 원하셨습니다.
암 환자에게서 암덩이를 떼어내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성전에 나아오서 모든 만민이 교회에 나아와서 주님과 교제하게 하시려고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서 몸을 찢기셨습니다. 세상 장사하는 마음들을 다 내려놓고 기도할 수 있기를 주님께서는 원하십니다.

화목제물은 하나님과 화목하고 교제하게 하는 제물이었습니다. 먼 지방에서 예배를 올리기 위해 찾아 온 순례자들을 위해 희생제물을 준비하는 일은 필수적인 일이기도 했습니다.
더구나 흠 없는 제물을 하나님께 올려드린다는 것은 예배자로서 마땅히 행하여야 할 일이기도 하였습니다.
하지만 그 아름다운 명분 속에는 인간의 이기적인 죄(욕심)가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멀리서 가져온 제물들에 대하여 판정권을 가진 제사장들은 쉽게 불합격 판정을 내렸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헐값에 사서 제물을 원하는 다른 사람들에게 비싼 값에 팔아 이익을 챙기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거룩한 제물을 놓고 행해지는 제사장들의 그 무서운 상술을 간과할 수 없으셨습니다.
성전에서 그들이 하는 일은 명목상으로는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이었지만, 사실은 부당한 폭리가 개입된 장사였고 도적질이었습니다. 탐심과 탐욕이 울렁거리고 있었습니다.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없는 자들에게서 너희는 돌아서라”(딤후3:5)

예수님께서는 이런 모순된 사람들을 향해 물로 지적해 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에게 있어 성전은 무엇입니까?하나님께서 주신 이 아름다운 성전에서
하나님과 화목하고 깊은 교제에 들어가지 않으시렵니까?


3. 예수님은 죄용서와 화목의 권세자이십니다.

27 저희가 다시 예루살렘에 들어가니라 예수께서 성전에서 걸어다니실 때에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과 장로들이 나아와
28 가로되 무슨 권세로 이런 일을 하느뇨 누가 이런 일 할 이 권세를 주었느뇨
33 이에 예수께 대답하여 가로되 우리가 알지 못하노라 하니 예수께서 가라사대 나도 무슨 권세로 이런 일을 하는지 너희에게 이르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오늘 하나님께서 그 나라와 의를 세우시려고 독생자를 보내셨습니다. 그리고 성전을 깨끗케 하십니다.
그러나 그 주님의 뜻을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제 더 이상 돈이 들어가지 않습니다.
왜요?
그 아들이 작년에 죽었거든요.
살아있는 교회는 늘 돈을 필요로 한답니다.


남태평양에 서식하는 원숭이들에게 새로운 정보 수용과 유통과정을 연구해보았습니다. 이곳 원숭이들이 모래에 섞인 열매들을 하나하나 가려 먹는 원숭이들 앞에서 열매가 포함된 한 움큼의 모래를 손으로 떠서 물에 모래를 가라앉혀 보다 열매를 손쉽게 가려먹는 방법을 시범으로 보여주었습니다.
그런데 젊은 암컷 원숭이가 가장 먼저 신기술을 받아들이고 다음으로 그 원숭이의 친구, 젊은 수것 원숭이, 엄마 원숭이의 순서로 신기술이 보급되어 갔습니다.
그런데 끝내 새로운 기술을 받아들이지 않고 여전히 재래식 방법으로 모래 속에서 열매를 골라 먹는 원숭이가 있었습니다. 그것은 늙은 수컷 원숭이들이었습니다.



마무리하는 말

저는 여러분들에게 성경에 입각한 평범한 질문을 한 가지 올리기 원합니다..

착한 사람이 천국에 갑니까?
용서받은 사람이 천국에 갑니까?

그렇습니다.

용서받은 사람이 천국에 갑니다.

한 가지만 더 질문할까요?

천국으로 가기 위하여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입니까?

아무 것도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모든 일을 해두셨습니다. 예수님이 하신 일을 믿음으로 받아들이면 됩니다.

누군가 성경 이야기를 해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누구도 나를 대신해서 결신해줄 수는 없습니다.
이는 인간의 한계입니다.
결신은 오직 우리 자신의 몫입니다.

우리를 죄로부터 깨끗케 하시려고 오신 주님으로부터 죄 용서함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과 화목게 하시기 위해 화목제물이 되신 주님을 생각하며 기도하는 복을 받으시길 바랍니다.

고전3:16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뇨? 누구든지 성전을 더럽히면 하나님이 그 사람을 멸하시리라

고전 6:19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는 분이십니다.



[성경본문]

11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이르러 성전에 들어가사 모든 것을 둘러보시고 때가 이미 저물매 열두 제자를 데리시고 베다니에 나가시다

15 저희가 예루살렘에 들어가니라 예수께서 성전에 들어가사 성전 안에서 매매하는 자들을 내어 쫓으시며 돈 바꾸는 자들의 상과 비둘기파는 자들의 의자를 둘러엎으시며
16 아무나 기구를 가지고 성전 안으로 지나다님을 허치 아니하시고
17 이에 가르쳐 이르시되 기록된바 내 집은 만민의 기도하는 집이라 칭함을 받으리라고 하지 아니하였느냐 너희는 강도의 굴혈을 만들었도다 하시매
18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이 듣고 예수를 어떻게 멸할까 하고 꾀하니 이는 무리가 다 그의 교훈을 기이히 여기므로 그를 두려워함일러라
19 매양 저물매 저희가 성밖으로 나가더라


27 저희가 다시 예루살렘에 들어가니라 예수께서 성전에서 걸어다니실 때에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과 장로들이 나아와
28 가로되 무슨 권세로 이런 일을 하느뇨 누가 이런 일 할 이 권세를 주었느뇨
29 예수께서 가라사대 나도 한 말을 너희에게 물으리니 대답하라 그리하면 나도 무슨 권세로 이런 일을 하는지 이르리라
30 요한의 세례가 하늘로서냐 사람에게로서냐 내게 대답하라
31 저희가 서로 의논하여 가로되 만일 하늘로서라 하면 어찌하여 저를 믿지 아니하였느냐 할것이니
32 그러면 사람에게로서라 할까 하였으나 모든 사람이 요한을 참 선지자로 여기므로 저희가 백성을 무서워하는지라
33 이에 예수께 대답하여 가로되 우리가 알지 못하노라 하니 예수께서 가라사대 나도 무슨 권세로 이런 일을 하는지 너희에게 이르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이제 더 이상 돈이 들어가지 않습니다.
왜요?
그 아들이 작년에 죽었거든요.
살아있는 교회는 늘 돈을 필요로 한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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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는 말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선하심(영광)을 만물 가운데 꽃피우시기를 원하십니다.

그 목적을 이루시기 원하셔서 여러 가지 환경을 허락하시지요.

새들이나 꽃들을 보면 하나님의 영광을 나름대로 노래로 꽃으로 피어냄

그러나 인간의 경우에 있어서 하나님의 선하심을 드러내는 경우가 지극히 희박함

롬 1:21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으로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치도 아니하고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나니
22 스스로 지혜 있다 하나 우준하게 되어
23 썩어지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사람과 금수와 버러지 형상의 우상으로 바꾸었느니라.



하나님께 좋은 기회를 받은 사람들

왕궁(제일 좋은 집)
교육(최고의 교육)
재물
명예
8명의 아내

죄로 그 인생을 채워버리는 사람들

암논
- 사랑을 꽃피울 수 있는 기회를 강간과 배신으로

압살롬
- 하나님의 용서를 꽃피울 수 있는 기회를 무서운 보복 살인으로 대응

다윗과 무엇이 다른가?
- 하나님을 목자로 모심
- 하나님의 도우심을 체험
- 하나님의 은혜와 용서를 체험
-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

하나님의 선하심이 그 인생에 꽃처럼 피어남
다윗을 통해 기록된 복의 강론은 복음이 매우 풍성히 들어 있습니다.

시 32:1-2

허물의 사함을 얻고
그 죄의 가리움을 받는 자는 복이 있도다.
마음에 간사가 없고
여호와께 정죄를 당치 않는 자는 복이 있도다.


그러나 암논이나 압살롬에게는 이런 하나님의 선하심을 맛보지도 못하고 누리지도 못하고 있습니다.


- 왜 이런 지저분한 이야기를 성경에 기록해 놓았는가?

  롬3:13 “저희 목구멍은 열린 무덤이요 그 혀로는 속임을 베풀며 그 입술에는 독사의 독이 있고
14 그 입에는 저주와 악독이 가득하고
15 그 발은 피 흘리는 데 빠른지라
18 저희 눈앞에 하나님을 두려워함이 없느니라.

- 성경은 지저분한 사람들과 인간의 지저분한 삶의 모습을 사실 그대로 말해줌

며느리 다말과 혈통을 이어가는 유다
두 딸의 자녀를 낳은 롯
우리아를 죽게 하고 그 아내를 취한 다윗




마무리하는 말


사람들이 갈망하고 떠 받드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의인을 찾습니다.
위인을 찾습니다.
성자를 그리워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말합니다.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다

칼 바르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사람들이 하나님을 찾고 있는 것 같지만 사실은 우상을 찾고 있는 것에 불과하다

슈바이쪄는?

“나는 이 세가지 단어를 믿지 않는다. 의인이나 위인이나 성자가 존재한다는 것을 믿지 않는다. 이 땅에는 오직 한 가지 사람들만이 존재한다. 그들은 죄인이다.”(슈바이쪄)



 우리는 이래서 하나님이 필요한 사람들입니다.
 우리 곁에 있는 그 사람도 하나님이 필요합니다.
 그들이 암논과 압살롬처럼 멸망하지 않도록 하나님의 선하심을 꽃피울 수 있도록 기도할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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