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가는 말
오늘은 종교개혁주일입니다.
오직 성경만!
오직 하나님만!
오직 은혜만!
오직 믿음만!
이런 기치를 힘있게 걸고 믿음의 용장들이 종교 개혁을 시작한지 벌써 500년이 넘어갑니다.
교리나 교파를 얘기하면 시대에 뒤떨어진 것으로 치부되는 시대입니다.
이단이면 어떤가 덮어놓고 믿자는 분도 있습니다.
천주교가 기독교의 정통인양 착각하는 분도 있습니다.
불교가 산에서 내려와 시중을 파고드는 중입니다.
점성술이 고국 형제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습니다.
신앙에도 혼합주의가 눈에 띄게 판을 치고 있습니다.
기독교는 살벌한 칼날 위에 서 있습니다.
이런 와중에서 오늘, 2004년 10월 31일, 우리는 다시 종교개혁주일을 맞이했습니다.
오늘 우리는, 사람을 낚는 어부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제자들을 부르시고 그들에게 보여주시는 복음을 통하여 넉넉히 세상을 이기는 신앙을 정립할 수 있기 바랍니다.
1. 오직 말씀만!
21 저희가 가버나움에 들어가니라 예수께서 곧 안식일에 회당에 들어가 가르치시매 22 뭇 사람이 그의 교훈에 놀라니 이는 그 가르치시는 것이 권세 있는 자와 같고 서기관들과 같지 아니함일러라
예수님께서는 흑암의 땅 갈릴리 가버나움에 들어가셨습니다. 그리고 말씀을 가르치셨습니다. 교훈(디다케)이란 핵심어로 압축되어 있는 그 일을 시작하셨습니다. 이는 첫 번 째 예수님께서 하신 일이셨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의 역사를 체험한 사람들은 이렇게 고백하였습니다.
27 다 놀라 서로 물어 가로되 이는 어찜이뇨 권세 있는 새 교훈이로다 더러운 귀신들을 명한즉 순종하는도다
권세 있는 말씀으로 명한즉 귀신이 순종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새 교훈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세상을 이렇게 사랑하셔서 독생자를 보내셨습니다.
그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회당에 들어가 사람들을 가르치셨습니다.
이 천국복음(마5-7)을 들었던 사람들이 똑같이 반응을 보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분의 본향인 천국에 대하여 가르치셨을 때 사람들이 그 교훈에 놀랐던 것입니다. 뭇 사람들은 하나님의 아들로부터 하나님 나라에 대하여 들으면서 놀랐습니다.
그 가르치시는 내용이 지금까지 서기관들로부터 들었던 내용과는 달랐습니다.
권세 있으신 하나님과 같았습니다.
사람이 사는 길은 사람이 근본적으로 가야할 길을 아는 것입니다. 가야할 그 본향, 하나님 나라에 대하여 아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께서는 나는 길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 나라를 가르치셨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 나라에 가는 길이 되셨습니다.
종교 개혁 당시 교황은 권세 있는 자였습니다. 교황의 권세는 구원까지 주고 빼앗을 수 있는 열쇠로 생각되었습니다. 그러나 개혁자들은 그렇게 생각할 수 없었습니다. 권세가 있는 것은 주님의 입에서 나오는 하나님의 말씀이요, 새 교훈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종교개혁자, 존 위클리프는 썩어빠진 권세자 교황에 맞서 영어로 성경을 옮겼습니다. 사람들이 읽을 수 있도록 토박이 말 영어로 권세 있는 새교훈을 읽게 했습니다. 그리고 권세 있는 새 교훈을 설교를 하는 이들을 세워 두루 돌아다니며 전하게 했습니다.
로마 교회는 위클리프가 번역한 성경을 불태웠으며 이미 죽어 묻힌 위클리프의 뼈를 파내 다시 불태웠습니다. 그러나 위클리프가 수고하며 기도한 대로 사람들은 권세 있는 새 교훈을 영어로 읽고 힘을 얻었습니다. 영적 능력을 회복하였습니다.
우리 민족이 100여년 전까지 암담한 역사를 살아왔었습니다. 그 결과 일제에 강점을 당하였습니다.
6.25란 동족 상잔의 비극을 체험하였습니다.
그러나 흑암 속을 걸어가던 우리 민족에게 권세있는 자의 말씀의 빛이 비추었습니다.
이 복음을 받아들였던 사람들은 구원을 받았습니다.
나아가 고국은 세계 제 2의 선교강국이 되었습니다.
성경을 가장 많이 출판하는 나라가 되었습니다.
세계 각국어로 성경이 출판되어 수출되고 있습니다.
이는 어찜이뇨 권세 있는 새 교훈이로다!
그러나 권세 있는 자의 교훈을 거부하였던 북쪽 지역은 여전히 흑암 속에서 고통을 당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요즈음 고국에서 들려오는 소식들은 우리 신앙인들을 우울하게 합니다.
할로윈데이가 급속히 퍼져간다는 기사가 났습니다.
붉은 악마를 입은 젊은이들이 온 땅을 붉게 뒤덮습니다.
산 속에 있던 불교는 시내로 입성하고 있습니다.
며칠 전에는 교육계를 책임지던 분들이 은퇴하여 법복을 입는다는 기사를 접합니다.
점성술은 거리마다 판을 치고 있다는 말을 듣습니다.
이런 일들이 우리 민족을 구원할 능력이 있습니까?
민족 구출에 앞장을 섰던 기독교회는 젊은이들은 물론 방송매체에서까지 거센 비판을 받고 있습니다.
권세 있는 새 교훈을 다시 한번 회복하여야 할 시기입니다.
지금이 바로 하나님 나라에 대한 복음을 들어야 할 때입니다.
사람을 낚는 어부가 전하여야 할 소식은 바로 하나님 나라에 대하여 가르치는 것입니다.
오직 하나님의 말씀만 우리 민족을 구원할 수 있습니다.
2. 오직 하나님만!
25 예수께서 꾸짖어 가라사대 잠잠하고 그 사람에게서 나오라 하시니 26 더러운 귀신이 그 사람으로 경련을 일으키게 하고 큰 소리를 지르며 나오는지라 27 다 놀라 서로 물어 가로되 이는 어찜이뇨 권세 있는 새 교훈이로다 더러운 귀신들을 명한즉 순종하는도다 하더라
공중의 권세 잡은 자, 어두움의 권세자는 하나님의 아들 앞에서만 굴복합니다.
더러운 귀신들린 사람이 외칩니다.
24 나사렛 예수여 우리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우리를 멸하러 왔나이까
귀신이 떠는 것은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귀신이 싫어하는 것은 하나님의 아들과 관계를 맺는 일입니다.
귀신은 하나님을 두려워합니다.
귀신은 하나님을 믿지는 않습니다. 귀신에게 있어 믿는 일은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무서워합니다.
귀신이 떠는 것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 하나님의 아들을 믿고 그분과 관계를 맺을 때, 어두움의 권세를 이길 수 있습니다.
귀신이 관계를 갖고 싶지 않은 대상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 하나님의 아들을 믿고 그분과 관계를 맺을 때, 어두움의 권세를 이길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찬송을 하면 귀신이 나간다고 말하는 분도 있습니다.
그 말은 상당히 일리가 있습니다. 그러나 사실은 찬송에 있는 멜로디 때문이 아니라 말씀을 담은 가사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 마음으로 찬송을 부를 때 마귀가 떱니다.
23 마침 저희 회당에 더러운 귀신들린 사람이 있어 소리질러 가로되 24 나사렛 예수여 우리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우리를 멸하러 왔나이까 나는 당신이 누구인 줄 아노니 하나님의 거룩한 자니이다 25 예수께서 꾸짖어 가라사대 잠잠하고 그 사람에게서 나오라 하시니 26 더러운 귀신이 그 사람으로 경련을 일으키게 하고 큰 소리를 지르며 나오는지라
귀신은 창조주 하나님께 반역한 타락한 천사들입니다.
저들은 믿지 아니하는 자들의 마음을 혼미케 하는(고후4:4) 귀신은 사람들 가운데서 역사합니다.
귀신은 때로 하나님의 집까지 찾아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집에서 설교를 듣고 놀랍니다.
이 타락한 귀신들이 인간 본성을 차지합니다.
인간의 머리를 지배합니다.
사람들의 마음을 지배합니다.
사람들의 입을 지배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무서워합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시면, 하나님의 집에서 쫓겨납니다.
사람에게서 귀신을 쫓아내는 것이 그리스도의 본성이기 때문입니다. 마귀의 권세를 멸하는 것입니다.
"24 나사렛 예수여 우리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우리를 멸하러 왔나이까?"
악한 영들은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에 관심이 없습니다.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은 바로 사탄의 권세를 멸하는 사역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신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하심이니라(요일3:8)는 말씀대로 입니다.
그러므로 사탄은 그리스도께 멸망당할 것을 두려워합니다.
14 자녀들은 혈육에 함께 속하였으매 그도 또한 한 모양으로 혈육에 함께 속하심은 사망으로 말미암아 사망의 세력을 잡은 자 곧 마귀를 없이 하시며 15 또 죽기를 무서워하므로 일생에 매여 종 노릇 하는 모든 자들을 놓아 주려 하심이니(히2:14-15)
어떤 사람들은 어떤 신령한 사람이 귀신의 권세를 쫓아내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귀신이 떠는 분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순복음 교회에 가면 많은 사람들이 조용기 목사님이 귀신을 쫓는 것으로 확신하고 있습니다. 여러분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생각을 바꾸셔야 합니다.
귀신을 쫓는 분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대한기도원에 가니까 안찰을 해서 귀신을 쫓아내고 병을 고친다고 합니다.
H 기도원에서는 환자를 두들기고 눈을 파고 귀신을 쫓아내고 병을 고친다고 합니다.
어떤 모임에서는 귀신을 쫓아내기 위해 이상한 소리를 지르고 악을 쓰기도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귀신을 쫓아내십니다.
두들기지 않아도,
안찰을 하지 않아도,
눈을 파지 않아도,
악을 쓰지 않아도
이상한 방언기도를 하지 않아도
하나님께서 원하시면 귀신이 쫓겨나갑니다.
26 더러운 귀신이 그 사람으로 경련을 일으키게 하고 큰 소리를 지르며 나오는지라
누가 이 더러운 귀신들린 사람을 구원하셨습니까?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빛이 있으라 하실 때, 빛이 있었던 바로 그분이십니다.
말씀으로 천지를 창조하셨던 그분이십니다.
지은 것이 하나도 말씀이 없이는 된 것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개혁주의 신앙인들은 “오직 하나님만!”이렇게 선언합니다.
3. 오직 은혜만!
29 회당에서 나와 곧 야고보와 요한과 함께 시몬과 안드레의 집에 들어가시니 30 시몬의 장모가 열병으로 누웠는지라 사람들이 곧 그의 일로 예수께 여짜온대 31 나아가사 그 손을 잡아 일으키시니 열병이 떠나고 여자가 저희에게 수종드니라
예수님께서 말씀 전하시고, 귀신도 쫓아내시고 베드로의 집에 들어가셨습니다. 모두에게 쉬임의 시간이 필요했기 때문일 수 있습니다.그런데 그곳엔 베드로의 장모님께서 열병으로 누워 있었습니다. 사람들이 예수님께 그 사실을 알렸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나아가사 그 손을 잡아 일으키시니 열병이 떠나고 주님을 위해 수종들었습니다.
우리는 어떻게 베드로의 장모님께 이런 놀라운 일이 일어났는가에 대해 여러모로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제일 정확한 답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누군가 기도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베드로가 예수님을 공궤하고 싶은 선한 행위 때문이라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 모든 일이 있었다 해서 베드로의 장모님이 나을 수는 없습니다. 예수님의 은혜로 베드로는 나은 것입니다.
종교 개혁이 일어나게 된 동기 중 한 가지는 당시 캐톨릭이 구원을 선행에 결부시켰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죽은 자가 범죄 때문에 연옥에 갔을 경우, 면죄부를 사면, 천국에 갈 수 있다는 선행을 가르쳤습니다.
루터는 과감히 선행으로 말미암아 천국에 가는 것은 불가능함을 전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을 얻을 수 있음을 가르쳤습니다.
제1차 세계대전 때의 일입니다. 영국 군함이 파손되어 물에 뛰어든 병사 한 명이 간신히 널판 하나를 붙들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옆에는 자기와 같이 수영을 잘하지 못하는 병사 하나가 물에 빠져 죽어가고 있었습니다. 그는 그 동료에게 널빤지를 붙들게 하였습니다.
그러나 널빤지는 너무 작아서 두 병사의 무게를 지탱하지 못한채 자꾸만 가라앉았습니다. 그러자 그는 동려에게 널빤지를 내어 주면서 말했습니다.
"아무쪼록 살아서 돌아가시오."
동료 병사는 극구 사양했습니다.
"아니오. 나는 예수님을 믿고 구원을 얻은 사람이니 천국에 가겠지만, 당신은 아직 믿지 않은 모양이니 살아서 예수님을 믿고 준비하여 천국에서 만납시다."
그는 널빤지를 놓고 물에 가라앉았습니다.
동료는 널빤지를 붙들고 헤엄을 쳐서 나와 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독실한 신자가 되었습니다. 그는 그를 만나는 모든 사람에게 이 사실을 전해주었습니다.
4. 오직 믿음만
40 한 문둥병자가 예수께 와서 꿇어 엎드리어 간구하여 가로되 원하시면 저를 깨끗케 하실 수 있나이다 41 예수께서 민망히 여기사 손을 내밀어 저에게 대시며 가라사대 내가 원하노니 께끗함을 받으라 하신대 42 곧 문둥병이 그 사람에게서 떠나가고 깨끗하여진지라
오늘 문둥병자는 어떻게 구원을 받을 수 있었습니까? 간구하는 기도를 통해서입니까? 물론 기도는 중요한 징검돌이 된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에게 중요한 것은 예수님의 은혜를 믿는 믿음입니다. 주님께서 원하시면 자신을 깨끗하게 하실 수 있다는 믿음입니다.
당시에 많은 문둥병자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치유함을 받지 못했습니다. 그 무서운 병으로부터 구원을 받을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오늘 예수님께 나아온 문둥병자는 구원을 받았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다른 문둥병환자들은 자신이 가진 병은 누구도 고칠 수 없다는 것만을 알고 있었습니다.
오늘 주님께 구원을 얻은 문둥병자도 그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한 가지 사실을 더 알고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원하시면 그가 깨끗함을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주님께서는 그의 믿음을 부끄러워하지 않으시고 그의 병을 깨끗이 치료하셨습니다.
오늘 구원을 받은 문둥병 환자는 하나님은 은혜로우신 분이시며 그 은혜를 믿음으로 나아가는 자를 부끄럽게 하지 않으심을 믿었습니다.
사랑하는 서머나 교우 여러분,
우리가 우리 자신에 대하여 무엇을 알고 있습니까? 나의 당한 상황이 절망적이라고 생각하십니까? 그것이 건강이든 경제적인 것이든 세상 어떤 일이든 말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 대하여 무엇을 알고 있습니까? 예수님께 대하여 한 가지 더 아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예수님께서 원하시면 그 절망적인 상황도 변화시킬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은혜로운 분이셔서 그 은혜를 믿고 나아오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지 않으십니다.
마무리하는 말
오늘 우리는 주님의 말씀 안에서 종교 개혁자들이 철석같이 믿었던 네 가지 신앙을 살펴보았습니다.
오직 말씀만!
오직 하나님만!
오직 은혜만!
오직 믿음만!
이 복된 신앙이 우리 안에서 새롭게 살아 역사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성경본문]
마가1:21-34
21 저희가 가버나움에 들어가니라 예수께서 곧 안식일에 회당에 들어가 가르치시매 22 뭇 사람이 그의 교훈에 놀라니 이는 그 가르치시는 것이 권세 있는 자와 같고 서기관들과 같지 아니함일러라
23 마침 저희 회당에 더러운 귀신들린 사람이 있어 소리질러 가로되 24 나사렛 예수여 우리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우리를 멸하러 왔나이까 나는 당신이 누구인 줄 아노니 하나님의 거룩한 자니이다 25 예수께서 꾸짖어 가라사대 잠잠하고 그 사람에게서 나오라 하시니 26 더러운 귀신이 그 사람으로 경련을 일으키게 하고 큰 소리를 지르며 나오는지라 27 다 놀라 서로 물어 가로되 이는 어찜이뇨 권세 있는 새 교훈이로다 더러운 귀신들을 명한즉 순종하는도다 하더라
28 예수의 소문이 곧 온 갈릴리 사방에 퍼지더라
29 회당에서 나와 곧 야고보와 요한과 함께 시몬과 안드레의 집에 들어가시니 30 시몬의 장모가 열병으로 누웠는지라 사람들이 곧 그의 일로 예수께 여짜온대 31 나아가사 그 손을 잡아 일으키시니 열병이 떠나고 여자가 저희에게 수종드니라
40 한 문둥병자가 예수께 와서 꿇어 엎드리어 간구하여 가로되 원하시면 저를 깨끗케 하실 수 있나이다 41 예수께서 민망히 여기사 손을 내밀어 저에게 대시며 가라사대 내가 원하노니 께끗함을 받으라 하신대 42 곧 문둥병이 그 사람에게서 떠나가고 깨끗하여진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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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윗을 부르신 하나님(수요설교)
들어가는 말
이스라엘은 사람이 세운 나라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세우신 나라입니다.
왕의 나라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다스리는 나라입니다.
그래서 모세와 여호수아, 사무엘 같은 분도 왕이 아니었습니다.
다만 수종 자로서 하나님의 지시를 따를 뿐이었습니다. 명령에 순종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수종자가 하나님의 뜻대로 다스릴 때, 이스라엘은 늘 승리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수종자가 하나님의 뜻을 거부할 때, 이스라엘은 짓밟힌 족속들이 머리를 들기 시작했습니다.
이스라엘은 그러나 그 원인이 왕이 없기 때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왕을 구했어요.
1. 그러나 사울 왕은 실패작이었습니다.
사울의 실패는 성령체험을 하지 못한데서 오는 실패가 아닙니다.
사울의 실패는 왕이되지 못한 사람의 실패가 아닙니다.
그의 내면에서 잡초처럼 자라나는 죄와 부패성을 성령의 은혜로 꾸준히 죽이지 못한데서 온 실패입니다.
사울은 하나님을 왕으로 모시는 일에서 실패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다스리기 원하시는 이스라엘을 세상 왕들과 같이 자기 임의로 다스렸기에 하나님께서는 그를 떠나실 수밖에 없었습니다
자기 뜻대로 살아가면서 자기를 나타내는 사울을 하나님께서는 더 이상 쓸 수가 없었습니다.
14 여호와의 신이 사울에게서 떠나고 여호와의 부리신 악신이 그를 번뇌케 한지라
사울에게서는 여호와의 신이 떠나고, 악신이 그를 번뇌케 하였습니다. (14) 하나님의 영이 떠난 사울의 내면엔 악신이 들어와 자리를 잡았습니다.
인간적으로 볼 때, 유능했던 사울 왕은 하나님께 버림을 받았습니다.
사울에게 악신이 임한 후, 그의 인생은 닫히기 시작했습니다.
[점검] 우리 인생은 무엇으로 충만하여 있습니까?
사울왕을 내리막길로 내리 몰아버린 불순물,
교만,
자기 과신,
불순종은 없습니까?
2. 하나님께서 어린 다윗을 부르셨습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알게된 사무엘은 슬픔에 빠져 시간을 보내고 있었어요.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목적을 하나님의 뜻대로 온전히 수행할 사람을 찾고 계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무엘을 찾아와서 대안을 제시했습니다.
1 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이르시되 내가 이미 사울을 버려 이스라엘 왕이 되지 못하게 하였거늘 네가 그를 위하여 언제까지 슬퍼하겠느냐 너는 기름을 뿔에 채워 가지고 가라 내가 너를 베들레헴 사람 이새에게로 보내리니 이는 내가 그 아들 중에서 한 왕을 예선하였음이니라
하나님께서는 다윗을 택하셨습니다.
이날 이후로 다윗은 여호와의 신에 크게 감동되었습니다(13절)
다윗이 성령으로 충만한 후, 그의 인생은 열리기 시작했습니다.
많고 많은 사람 중에서 왜 다윗이 택함을 받았을까요?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우리는 한 가지 의문 앞에 서게 됩니다.
다윗 안에 하나님께서 부르실 수밖에 없는 하나님 마음에 합당한 무엇이 있었기에 다윗이 하나님께 귀히 쓰임을 받았습니까?
아니면 하나님의 은혜 때문일까요? 하나님의 주권적인 사랑 때문일까요?
이 두 가지 요소는 늘 함께 포함되어 있습니다. 나의 나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그리고 택한 받은 이의 내면을 살펴보면, 하나님의 사랑을 받게 하는 어떤 내적 요인이 존재하는 것도 사실입니다.
1] 다윗이 하나님께 쓰임 받을 때는 약할 때였습니다. 골리앗을 쳐죽이고 부름을 받은 것이 아닙니다. 그가 강한 자였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부르신 것이 아닙니다.
수금으로 악신을 쫓아낸 후 부름을 받은 것이 아니죠. 능한 재능 때문에 부르심을 받은 것이 아닙니다.
부모 형제 같은 사랑하는 사람들의 전폭적인 후원을 통해서 부름을 받은 것이 아닙니다.
아버지도 그를 왕이 될 사람으로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형님들도 그를 왕이 될 사람으로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자기 자신도 그를 왕이 될 사람으로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말 째였을 때 부름을 받았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는 많은 사람을 내려다 보셨습니다.
그 많은 형제 가운데서 제일 약한 사람을 찾으셨습니다.
그 약한 사람에게 하나님의 능력과 영광을 나타내셨습니다.
[적용] 나는 약한 자이기에 쓰임을 받을 수 없다고 생각하십니까? 약한 다윗을 쓰셨던 하나님을 생각하세요.
나 자신도 나를 쓰임을 받기에 합당하지 않다고 생각하십니까? 다윗을 사용하신 하나님을 의지하십시오.
하나님께 쓰임을 받기 원하십니까? 자신이 말 째 자리에 머물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는 약한 자를 귀히 여기십니다.
베들레헴의 어린 다윗에게는 아무도 관심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가장 약한 어린 다윗을 찾으셨습니다.
그리고 그를 통하여 영광을 나타내기 원하셨습니다. 그리고 그에게 기름을 붓게 하셨습니다.
오늘날도 다윗과 같은 연약한 자를 찾으시고 그에게 영광과 그의 위대하심을 나타내기 원하십니다.
사도 바울은 지극히 작은 자라로 생각하였을 때 하나님께서 그를 높여 주셨습니다.
하나님과의 관계, 당신의 중심을 바로 하십시오.
다윗의 가치관을 가지고 살아가십시오.
약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능력을 세상에 나타낼 수 있습니다.
2] 그는 양을 지키고 있을 때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양치는 일은 귀족이 하는 일이 아니었습니다.
양지키는 일은 재미있는 일이 아니었습니다.
양을 지키는 일은 사람들이 앞을 다투어 하는 일이 아니었습니다.
엘리압에서 삼마에 이르기까지 일곱 형이 있었지만 그들이 다 뒷전에 던져두고 떠났을 만큼 우선순위에서 뒷전에 밀려 있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형님들이 다 떠나간 자리에서 그는 양을 지키고 있었습니다.
양을 치고 있었습니다.
참으로 성실하게 양을 치고 있었습니다. 그는 훗날 사울왕 앞에서 당시 양 치던 일을 이렇게 고백하였습니다.
34 다윗이 사울에게 고하되 주의 종이 아비의 양을 지킬 때에 사자나 곰이 와서 양 떼에서 새끼를 움키면 35 내가 따라가서 그것을 치고 그 입에서 새끼를 건져내었고 그것이 일어나 나를 해하고자 하면 내가 그 수염을 잡고 그것을 쳐죽였었나이다 36 주의 종이 사자와 곰도 쳤은즉 사시는 하나님의 군대를 모욕한 이 할례 없는 블레셋 사람이리이까 그가 그 짐승의 하나와 같이 되리이다.(삼상17:34-46)
하나님께서 쓰시는 사람은 작은 일에 충실한 사람입니다.
요셉이 보디발의 집에서나 옥중에서 작은 일에 열심을 보였을 때 그에게 애굽의 국무총리직을 맡겼습니다.
베드로가 그물을 내리고 있을 때, 부름을 받았습니다.
자기에게 맡긴 일을 잘 관리하고 있는 사람에게 하나님께서는 그 양떼를 맡기십니다.
심판의 기준을 기억하십니까?
네가 작은 일에 충성하였으니!
“인생의 고도를 결정하는 것은 그의 재능이 아니라 삶의 태도다”(지그지글러)
3] 그 속사람이 살아 있었습니다.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는 중심을 보느니라
모든 사람들은 외모를 중시하는 세상을 보게 됩니다.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께서 신장을 보지 말라고 하십니다.
속사람을 보시겠다는 것입니다.
다윗은 어린 사람이었지만, 그 안에 하나님을 향한 믿음이 살아 있었습니다.
삼상17: 37 또 가로되 여호와께서 나를 사자의 발톱과 곰의 발톱에서 건져내셨은즉 나를 이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도 건져내시리이다
칼빈의 사진을 보셨습니까? 참 볼품이 없습니다.
링컨이 얼마나 못생겼습니까? 오죽 했으면 고릴라란 별명이 붙었겠습니까? 그러나 그 중심에 믿음이 있기에 하나님께서는 저들의 인생을 기쁘게 사용하셨습니다. 그들에게는 신앙이 있었습니다.
3. 하나님께서는 택한 사람에게는 감당할 능력을 주십니다.
13 사무엘이 기름 뿔을 취하여 그 형제 중에서 그에게 부었더니 이 날 이후로 다윗이 여호와의 신에게 크게 감동되니라 사무엘이 떠나서 라마로 가니라
1] 성령의 큰 능력을 체험하게 되었습니다(13-14)
‘이날 이후로 다윗이 성령의 충만함 입어 큰 능력을 받았습니다.’
이는 시89:20-21 내가 다윗을 찾아서!
하나님의 강한 팔이 나를 견고하게 붙드실 때, 성령의 능력이 입었습니다.
성령이 함께 하시니 다윗은 유력한 자가 되었습니다. 사울은 성령이 떠나갈 때 무력한 자가 되었는데 말입니다.
2. 만군의 여호와께서 함께 하시는 사람입니다.(18)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하시더이다.
자기가 그렇게 소개한 것이 아닙니다.
주변 사람들이 그렇게 그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우리를 향해 누가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하신다’고 소개한다면 얼마나 기쁘겠습니까?
그런 믿음의 사람이 되시길 바랍니다.
그는 비록 평범한 시골 목동이지만 하나님께서 그와 함께 하시니 이토록 귀한 존재가 된 것입니다.
도디 도널리(영성을 가르치는 여교수)는 영성호흡법을 이렇게 가르쳤습니다.
하나님과 함께 호흡하라는 말씀입니다.
숨을 들이쉴 때, 하나님의 성품을 내면 깊숙이 받아들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 공의, 기쁨, 온유하심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숨을 내 쉴 때는 내 안에 있는 버려야 할 것들을 내어 쉬라는 것입니다.
마귀적인 모든 것들을 내어보내는 마음으로 내어 쉬라는 것입니다.
대구지하철 사건 때 이야기 하나가 전해오고 있습니다.
69세 된 안수집사님께로부터 집으로 전화가 걸려왔습니다.
정말 시끄럽고 혼란스러운 소리로 가득차 있었습니다.
두 번째 전화가 울렸습니다.
남편의 침착한 목소리를 듣게 되었습니다.
“나 하늘나라로 먼저 올라가 할렐루야!”
가지고 있는 성경책에 끼워있는 주보 내용을 보고 교회로 연락을 해서 죽은 지 5시간 만에 시신을 찾았습니다.
변화를 위해 값진 대가를 치룰 준비를 하십시오
자기 자신이 변하지 않는다면 그 누구도 변화를 시킬 수 없습니다.
그가 얼마든지 사울 왕을 죽일 수 있었지만 머리털 하나 상하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사울이 죽을 죄를 짓지 않아서가 아닙니다. 하나님을 경외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는 허물도 많고 실수도 많은 사람입니다. 성경을 많이 연구한 분이 스무 번 이상 실수를 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죄를 회개할 줄도 압니다. 남에게 책임을 전가하지도 않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다윗을 마음에 합한 사람이라고 말합니다.
성경에 가장 많이 나오는 이름이 다윗입니다. 995회나 나옵니다.
마무리하는 말
사울은 큰 사람입니다. 왕입니다. 어른입니다. 그러나 그는 악령에 의하여 시달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작은 사람입니다. 어린 소년입니다. 목동에 불과합니다. 그러나 그는 악령을 쫓고 있습니다.
성령의 감동을 받으니까 이렇게 놀라운 사람, 믿음의 용장이 되었습니다.
작으나 믿음의 거인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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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아들의 새 교훈
마가1:21-34
21 저희가 가버나움에 들어가니라 예수께서 곧 안식일에 회당에 들어가 가르치시매 22 뭇 사람이 그의 교훈에 놀라니 이는 그 가르치시는 것이 권세 있는 자와 같고 서기관들과 같지 아니함일러라
23 마침 저희 회당에 더러운 귀신들린 사람이 있어 소리질러 가로되 24 나사렛 예수여 우리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우리를 멸하러 왔나이까 나는 당신이 누구인 줄 아노니 하나님의 거룩한 자니이다 25 예수께서 꾸짖어 가라사대 잠잠하고 그 사람에게서 나오라 하시니 26 더러운 귀신이 그 사람으로 경련을 일으키게 하고 큰 소리를 지르며 나오는지라 27 다 놀라 서로 물어 가로되 이는 어찜이뇨 권세 있는 새 교훈이로다 더러운 귀신들을 명한즉 순종하는도다 하더라
들어가는 말
오늘은 종교개혁주일입니다.
오직 하나님만!
오직 성경만!
오직 은혜만!
오직 믿음만!
이런 기치를 힘있게 걸고 믿음의 용장들이 종교 개혁을 시작한지 벌써 500년이 넘어갑니다.
어떤 사람은 교파가 무슨 죄악인 양 함부로 말합니다.
어떤 사람은 이단이면 어떤가 생각합니다.
어떤 사람은 천주교가 기독교의 정통인양 착각합니다.
불교는 다시 시중을 파고 드는 중에 있습니다.
기독교는 살벌한 칼날 위에 서 있습니다.
신앙의 혼합주의가 눈에 띄게 판을 치는 2004년 우리는 다시 종교개혁주일을 맞이했습니다.
사람을 낚는 어부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오늘 듣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오늘날처럼 어두움의 영향력이 강한 흑암의 땅 갈릴리 가버나움에 들어가셨습니다. 그리고 사람을 낚는 어부가 해야 할 일을 시작하십니다.
본문에는 교훈(디다케)란 핵심어로 압축되어 있는 그 일을 시작하십니다. 회당에서 가르치신 교훈이 그 하나요, 어두움의 권세를 제어하는 교훈이 다른 하나입니다.
오늘 우리는 이 두 교훈에 담긴 주님의 뜻을 알아 넉넉히 세상을 이기는 신앙을 정립할 수 있기 바랍니다.
1. 예수님께서는 위의 것을 가르치셨습니다.
그 첫 번째 일이 가르침입니다.
21 저희가 가버나움에 들어가니라 예수께서 곧 안식일에 회당에 들어가 가르치시매 22 뭇 사람이 그의 교훈에 놀라니 이는 그 가르치시는 것이 권세 있는 자와 같고 서기관들과 같지 아니함일러라
하나님께서 세상을 이렇게 사랑하셔서 독생자를 보내셨습니다.
'사람을 낚는 어부'의 사역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회당에 들어가 사람들을 가르치셨습니다. 무엇을 가르쳤을까에 대하여는 22절에서 암시를 받게 됩니다.
천국복음을 마5-7까지 가르치셨을 때, 사람들이 똑같은 반응을 보였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분의 본향인 천국에 대하여 가르치셨을 때 사람들이 그 교훈에 놀랐던 것입니다.
뭇 사람들은 하나님의 아들로부터 하나님 나라에 대하여 들으면서 놀랐습니다.
그 가르치시는 내용이 지금까지 서기관들로부터 들었던 내용과는 달랐습니다.
권세 있으신 하나님과 같았습니다.
이는 산상에서 천국복음을 들었을 때 무리들도 똑같은 반응을 보였습니다.
사람이 사는 길은 사람이 근본적으로 가야할 길을 아는 것입니다. 가야할 그 본향, 하나님 나라에 대하여 아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께서는 나는 길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 나라를 가르치셨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 나라에 가는 길이 되셨습니다.
고국에서 들려오는 소식들은 우울하게 합니다. 할로윈데이가 급속히 퍼져간다는 기사가 났습니다.
붉은 악마를 입은 젊은이들이 온 땅을 붉게 뒤덮습니다.
산 속에 있던 불교는 시내로 입성하고 있습니다. 며칠 전에는 교육계를 책임지던 분들이 은퇴하여 법복을 입는다는 기사를 접합니다.
점성술은 거리마다 판을 치고 있다는 말을 듣습니다.
우리 민족을 영적 흑암 속에서 구출하였던 기독교는 젊은이들은 물론 방송매체에서까지 거센 비판을 받고 있습니다.
지금이 바로 하나님 나라에 대한 복음을 들어야 할 때입니다.
사람을 낚는 어부가 전하여야 할 소식은 바로 하나님 나라에 대하여 가르치는 것입니다.
2. 사람 낚는 어부는 하나님의 말씀을 가진 분입니다.
25 예수께서 꾸짖어 가라사대 잠잠하고 그 사람에게서 나오라 하시니 26 더러운 귀신이 그 사람으로 경련을 일으키게 하고 큰 소리를 지르며 나오는지라 27 다 놀라 서로 물어 가로되 이는 어찜이뇨 권세 있는 새 교훈이로다 더러운 귀신들을 명한즉 순종하는도다 하더라
권세 있는 자의 새 교훈
공중의 권세 잡은 자, 어두움의 권세자가 말씀 앞에서만 굴복합니다.
대한기도원에 가니까 안찰을 해서 귀신을 쫓아내고 병을 고친다고 합니다.
H 기도원에서는 환자를 두들기고 눈을 파고 귀신을 쫓아내고 병을 고친다고 합니다.
어떤 모임에서는 귀신을 쫓아내기 위해 소리를 지르고 악을 쓰기도 합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말씀으로 귀신을 쫓아내셨습니다.
두들기지 않아도,
안찰을 하지 않아도,
눈을 파지 않아도,
악을 쓰지 않아도
이상한 방언기도를 하지 않아도
말씀만 하시면 귀신이 나갔습니다.
“더러운 귀신이 그 사람으로 경련을 일으키게 하고 큰 소리를 지르며 나오는지라”
빛이 있으라 말씀만 하셔도 빛이 있었거든요.
말씀만으로 천지를 창조하셨거든요.
지은 것이 하나도 말씀이 없이는 된 것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개혁주의 신앙은 “오직 말씀만!”이란 선언하고 믿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권능 있으신 말씀의 역사를 체험한 사람들은 이렇게 고백하고 있습니다.
“이는 어찜이뇨? 권세 있는 새 교훈이로다. 더러운 귀신들을 명한즉 순종하는도다”
권세 있는 말씀으로 명한즉 귀신이 순종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말씀은 새 교훈인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찬송을 하면 귀신이 나간다고 말하는 분도 있습니다.
그 말은 상당히 일리가 있습니다. 그러나 사실은 찬송에 있는 멜로디 때문이 아니라 말씀을 담은 가사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 마음으로 찬송을 부를 때 마귀가 떱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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