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가는 말
자신이 가진 물질에 불만족 형제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는 형님으로부터 유산을 나누어 받을 수 있는 기회를 포착하였습니다. 그는 이 유산을 얻기 위하여 예수님을 찾아 왔습니다.
`선생님, 내 형을 명하여 유업을 나와 나누게 하소서'
예수님께 나아온 많은 사람 중에는 비록 세상적이라 할지라도, 자기 나름대로 심각한 문제를 가지고 나아오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 문제의 성격을 떠나서 문제를 가지고 주님께 나아왔다는 것은 매우 잘한 일입니다. 예수님은 우리 문제를 해결하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기도하는 사람이 좀 부끄럽고 떳떳치 못한 일이라 하더라도 주님께만 가져올 수 있다면 잘한 일입니다. 가장 좋은 답이 주님께 있기 때문입니다.
당신은 이 시간 어떤 기도제목을 가지고 주님 앞에 서 있습니까?
개인적으로 더 나은 세상적 지위, 물질입니까 ?
가정적으로 더 풍요한 삶입니까?
교회적으로 더 많은 양적 부흥입니까?
그것이 무엇이든지 주님께 가지고 나아와 기도하세요. 이것이 옳은 일입니다.
주님께서는 여러분들의 기도를 통해서 문제를 해결해 주시기 원하십니다.
이 세상 내가 살 동안에
주께로 날마다 더 가까이
저 뵈는 천국 나 들어가
한없는 복락을 다 얻도록
풍성한 은혜를 비나이다.
그러나 알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1. 우리 인간의 간구에는 문제가 있습니다.
무리 중 한사람은 예수님께서 명하시면 그의 형이 유업을 나누어주시려니 생각했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면, 그 형님은 '아니오!' 할 수 없는 사람일른지도 모릅니다.
율법 또한 장자에게 동생 두 배의 유산을 주도록 되어 있습니다. 형이 둘을 가지면, 동생이 하나 가지라는 것이 법입니다. 그런데 형제간에 누군가 율법을 존중하지 않았거나 그 법에 만족하지 못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형이나 동생 중 누군가 욕심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일로 인하여 동생은 괴롭습니다. 자신에게는 형으로부터 얼마의 재산을 더 받아야 만족하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사람의 간구에는 문제가 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먼저 들어보겠습니다.
1] 간구의 대상이신 주님께 대한 오해입니다.
14 이르시되 `이 사람아, 누가 나를 너희의 재판장이나 물건 나누는 자로 세웠느냐 ?' 하시고
주님께서는 문제를 주님께 가져오는 것은 환영하십니다. 다만 주님을 '재판장이나 물건 나누는 자'로 생각한 것이 오햅니다. 주님께서는 이 세상의 어떤 직분이나 명예, 그리고 세상의 부(富)를 위해 오신 분이 아니십니다.
2] 기도 내용에 문제가 있습니다.
15 저희에게 이르시되 `삼가 모든 탐심을 물리치라 ! 사람의 생명이 그 소유의 넉넉한데 있지 아니하니라 하시고
안에 탐심이 들어 있었던 것입니다. 오늘 이 형제는 부를 팔아 사야할 형제 우애를 거꾸로 부를 얻기 위해 우애를 버리려 하고 있습니다. 탐욕이 그를 사로잡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는 그에게 탐욕을 버리라고 처방하십니다. 그 사람의 해답은 '그 소유의 넉넉한데 있지 않았던 것입니다. 자신의 소유 이상의 것을 얻고자 하는 탐심이란 죄가 그의 내면에 담겨 있었습니다. 주님께선 인류의 근본 문제인 탐욕이란 죄문제를 해결하기 원하십니다. 그의 간구는 탐욕을 물리치라는 말씀으로 응답되었습니다.
우리는 이 청년의 기도와 예수님의 답변을 보면서 우리 안에 있는 중요한 사실을 깨닫습니다.
이런 현상이 우리 믿는 사람들 가운데도 얼마든지 있다는 사실입니다.
'물질이 더 많아야 되겠다!'
'재산이 더 많아야 행복해 지겠다'
'내 인생의 근본 문제는 재산이 증식되어야겠다.'는 것 등입니다.
요즈음 토론토에 200 교회를 헤아립니다. 이 모든 교회의 한결같은 바람은 교인들이 더 많아야겠다는 것입니다. 헌금도 좀더 많아졌으면 좋겠다는 것입니다.
우리 교우들도 서머나 교회가 이 빈자리가 가득 찼으면 생각합니다.
교인 수가 제일 많다는 교회도 그 갈증은 끊이지 않습니다. 큰 교회는 가진 것을 장점으로 삼아 공격적으로 교인을 끌어 모읍니다.
새로 사역지를 맡아 오신 어떤 목사님이 계셨습니다. 한인지역(Bloor & Christie.)에 갔다가 자기에게 전도하는 분을 만났습니다. '목사입니다' 했으면 되었을 텐데 겸손한 그분은 자기가 예수님을 믿는다고만 말씀드렸습니다. 그러나 그 목사님을 건성으로 교회에 다니는 날나리 신자나, 구원의 확신이 없는 전도대상으로 단정하고 막무가내로 몰아붙이더랍니다. 그는 큰 봉변을 당했노라면서 큰 교회면 다냐고 만찬 석에서 불쾌한 표정을 짓는 것을 보았습니다. 전도도 지나치면, 탐심이 될 수 있습니다.
교인들을 가뭄에 단비 기다리듯 하는 작은 교회들 또한 탐심을 조심해야 합니다.
물질의 탐욕이 형제 우애를 넘어가지 않았는가?
욕심이 이웃 사업장과의 우애를 해치지 않았는가?
교인을 더 바라는 탐욕이 이웃교회와의 우애를 해치지 않았나? 돌이켜 생각해야 합니다.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 즉 사망을 낳느니라.(약1:15)는 말씀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러나
2. 주님의 말씀 안에는 해답이 있습니다.(소극적 처방)
15 저희에게 이르시되 `삼가 모든 탐심을 물리치라 ! 사람의 생명이 그 소유의 넉넉한데 있지 아니하니라 하시고
`삼가 모든 탐심을 물리치라는 말씀에 순종할 때, 이 형제의 우애는 회복됩니다. 사람의 생명은 그 소유의 넉넉한데 있지 아니하기 때문입니다.
1) 사람의 해답은 욕심이 채워지는 데 있는 게 아닙니다. 인생의 생명은 이 세상 재물을 많이 소유하는데 달려있지 않습니다. 생명은 재물에 의존하지 않습니다. 사람의 해답은 탐심을 극복해야 얻을 수 있습니다. 재물은 영혼의 필요를 채우지 못합니다. 사실 육신의 생명과 행복까지도 세상 재물의 넉넉한 데 있지 않습니다.
감사한 마음과 하나님께 대한 사랑을 가지고 채소를 먹는 것이 불평과 불만족한 마음으로 기름진 잔칫상을 대하는 것보다 낫습니다. 적은 재물을 가지고서도 매우 만족스럽게 세상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반면에 이 세상 재물을 많이 소유하고서도 불행하게 사는 자들도 많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삼가 모든 탐심을 물리치라는 것입니다. 즉 탐욕이 마음에 스며들지 않도록 마음을 지키고, 탐욕이 마음을 지배하지 않도록 마음을 굳게 지키라 하십니다.
주님께서 말씀해 주신 한 부자의 비유는 이 진리를 잘 설명해 주십니다.
여기 탐심 때문에 망한 한 부자의 이야기가 소개되어 있습니다.
16 또 비유로 저희에게 일러 가라사대 한 부자가 그 밭에 소출이 풍성하매 17 심중에 생각하여 가로되 내가 곡식 쌓아 둘 곳이 없으니 어찌할꼬 하고 18 또 가로되 내가 이렇게 하리라 내 곡간을 헐고 더 크게 짓고 내 모든 곡식과 물건을 거기 쌓아 두리라 19 또 내가 내 영혼에게 이르되 영혼아 여러 해 쓸 물건을 많이 쌓아 두었으니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 하리라 하되 20 하나님은 이르시되 어리석은 자여 오늘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예비한 것이 뉘 것이 되겠느냐 ? 하셨으니
그는 소유가 넉넉한 부자였습니다. 하지만 이 부자의 삶과 죽음을 볼 때, 그는 물질은 넉넉히 가졌으나 해답을 소유한 자는 아닙니다.
1) 그는 이 세상에서 매우 많은 밭을 소유했고 그의 밭은 소출이 풍성했습니다.
심중에 생각하여 가로되
내가 곡식 쌓아 둘 곳이 없으니 어찌할꼬?
부자의 유일한 관심은 곡식입니다. 하지만 그 풍성한 곡식은 그의 인생에 해답이 되지 못했습니다.
2) 그는 자기 밭의 소출이 굉장함을 보자 혼란스러워졌습니다.
17 심중에 생각하여 가로되 내가 곡식 쌓아 둘 곳이 없으니 어찌할꼬 하고
해답을 찾지 못한 채, 혼란에 빠져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습니다. "내가 이제 어찌할꼬?" 소유는 넉넉하지만, 혼란한 인생, 해답이 없기 때문이지요.
누가 부자에게 "왜, 무슨 일입니까"라고 묻는다면 그는 재물이 많아 그것을 쌓을 장소 때문에 걱정합니다 할 것이니, 참으로 역설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가 받은 부(富)로 인해 하나님께 감사할 수 있는데 감사하지 못합니다. 보다 선한 일을 행할 수 있는 기회인데 전혀 그런 관심이 없습니다.
3) 곡간 확장으로 해결하려듭니다.
18 또 가로되 내가 이렇게 하리라 내 곡간을 헐고 더 크게 짓고 내 모든 곡식과 물건을 거기 쌓아 두리라
그의 생명은 비우는 데서 시작되고 나누어 주는 구제에서 실마리가 있는데 채울 곡간 확장 공사에 전심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4) 그는 땅의 소산을 '내 곡식', '내 물건'이라고 부르지만 거기에도 해답은 없습니다. 그가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이 하나님께서 맡기신 것입니다. 소유권은 하나님께 있습니다. 그는 주인의 물건을 관리하는 청지기일 뿐입니다.
이 모든 것을 자기 스스로 계획하고 결정합니다. 내가 해답을 찾으리라는 것이 교만입니다. '주의 뜻이면 내가 살리라'(약 4:13-15) 말해야지요.
5) 그가 가진 모든 것을 '쌓아 두고' 나서 잘 보관하지만 해답은 없습니다.
19 또 내가 내 영혼에게 이르되 영혼아 여러 해 쓸 물건을 많이 쌓아 두었으니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 하리라 하되
그가 찾은 답이란 것이 새 창고만 크게 지으면 된다는 것입니다. 과연 새 창고가 해답입니까? 가난한 자나 이방인, 아비 없는 자나 과부를 위해 나누는 것이 아닙니다. 자신만을 위해 저 거대한 창고 안에 쌓습니다.
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을 좇아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성도 여러분, 그는 형제의 유업을 탐하고 자족하지 못하다 답을 잃었습니다. 우리 성도는 확인해야할 일이 있습니다.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갈5:24)
는 말씀입니다.
예화]
6000만원을 장판 밑에 숨겨 두고 죽어간 아버지
일체 할 말이 없는 딸
3.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한 자가 됩시다.(적극적 처방)
21 자기를 위하여 재물을 쌓아 두고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치 못한 자가 이와 같으니라
그가 영혼의 문제를 고려했다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하지만 물질적 풍요함이 영혼에게 평안과 위로를 줄 것으로 생각하고 있는 점이 어리석습니다. 영혼은 창고에 곡식이 가득 차 있거나 또는 황금이 가득하다 할지라도 관계가 없습니다. '좀과 동록이 해하며 도적이 구멍을 뚫고 도적질 할 것'으로 영적 문제를 채울 수 없습니다. 부자는 스스로에게 '내 영혼아 평안히 쉴' 것을 기대하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전혀 다르게 말씀하십니다.
20 하나님은 이르시되 어리석은 자여 오늘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예비한 것이 뉘 것이 되겠느냐 ? 하셨으니
하나님의 판정이 무엇입니까? 그가 성취감에 충만하여 있을 때, 들려온 하나님의 선고는 정반대였다는 점에서 충격은 더욱 큽니다.
자신은 지혜롭다고 확신하였는데 하나님께서는 그를 어리석은 자로 판정하셨습니다. 그는 많은 것을 소유했다고 생각했었으나 사실 그날 밤, 그는 가장 가난한 자로 하나님 앞에 서야 했던 것입니다. 그가 허둥지둥 떠나야만 했던 이 세상에서 그토록 애써 쌓은 재물들이 이제 그가 서둘러 가야 할 그 세상에서는 전혀 소중히 할 필요가 없는 무가치한 것입니다.
어리석었던 나발이 생각나는 순간입니다.
자신은 살게 되었다고 생각하였는데, 그에게 내린 판결은 죽음의 선고였거든요.
인생이 무엇입니까? 모든 것을 뒤에 두고 떠나는 것입니다. 희망을 걸었던 모든 것을 남겨두고 떠나야만 합니다. 알지도 못하는 자에게 남겨 주어야 합니다.
"그러면 네 예비한 것이 뉘 것이 되겠느냐. 더 이상 네 것이 아님은 분명하다. 또한 그것들이 네가 원하는 자들, 네 자녀나 친척들을 위하여 쓰여지게 될지 그것도 알 수 없다. 그들이 슬기로운지 어리석은지 알 수 없으며, 그 재물로 너를 기억하며 축복할지 오히려 저주할지, 네 가족에게 유익이 될지 해가 될지도, 그리고 그들에게 남겨준 그 재물로 선을 행할지 악을 행할지도 알 수 없다." (전 2:18,19)
"사람들이 만일 자신이 죽은 후 자기의 집이 누구의 소유가 될 지를 알 수 있다면 그 집을 아름답게 장식하기보다는 차라리 태워 버리려 할 것이다."
부정되어야만 하는 자기를 위하여 재물을 쌓아 둔 결과가 이렇습니다. 가장 큰 과오는 그가 전혀 '하나님께 대하여는 부요치 못한 자'였다는 것입니다.
그는 자신의 영혼을 생각했다면 당연히 물질을 창고에 쌓지 말고,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한 삶을 위해 사용했어야 합니다. 이웃을 살리는 일에 구제했어야 합니다.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한 자가 되십시오.
마음이 가난한 자가 복이 있습니다.
마무리하는 말
사람의 생명은 탐심을 버리는 데서 시작합니다.
부자 청년이 율법을 지키는데 부끄러움이 없는 깨끗한 사람입니다. 그런데도 왜 서글픈 길로 돌아갔습니까? 결정적인 순간에 탐심을 버리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부자청년의 실패 원인은 사람과 하나님께 대하여 인색한 데에 있습니다.
삭개오가 죄인의 삶을 살았습니다. 그러나 왜 주님께 그토록 귀한 삶을 살게 되었습니까? 결정적인 순간에 탐심을 버렸기 때문입니다. 삭개오의 성공 비밀은 사람과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한 결단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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