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iday, 27 February 2015

마가12:18-27 오해를 극복하는 길

[들어가는 말]

이 세상에 사는 동안에는 오해를 받는 일이 있습니다.
형제자매 간에도 오해가 있습니다.
부모자식 간에도 오해가 있습니다.
공동체 생활 속에서도 오해가 있습니다.
회사나 일터에서 오해A로 고생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오해란 부족한 사람에게만 발생하는 것이 아닙니다.

꿈꾸는 요셉이 형들이나 보디발 아내의 오해 속에서 많은 고난을 받았습니다.

노아는 당대에 의인이었습니다. 그러나 사명을 감당하던 120년간 얼마나 많은 오해 가운데 살았는지 모릅니다.

예레미야가 지금은 대선지자 반열에 올라있지만 그는 극심한 오해 속에서 선지자 활동을 하다가 오해 속에서 죽어갔습니다.

사도 바울이 대 사도이지만 동족의 오해 속에서 얼마나 괴로워하는 지 우리는 사도행전이나 서신서 곳곳에서 읽을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오해를 받는 경우는 참 억울하지만,
오해를 받을 때면 살맛이 나지 않지만,
오해에 대한 좀더 적극적인 답을 찾을 필요합니다.
오해를 받았을 때 어떻게 반응할 수 있는가는 우리에게 매우 중요한 주제이기 때문입니다.


"위대하게 된다는 것은 오해 받는 것이다."(랄프 에멀슨)
"오해는 위대함을 위한 일종의 댓가이다. 위대함의 마지막 증거는 오해 그 자체가 아니라 오해를 아무 적개심 없이 견딜 수 있는 그의 성품이다."(엘버트 허버트)


노아나, 예레미야는 물론 사도 바울에게까지 위대하게 될 수 있었던 까닭은 오해가 없었던 것이 아니라 그 오해를 살아계신 하나님께 대한 믿음으로 잘 극복하였다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이 말씀을 통해
오해가 어디서 오는 경로를 알기 원합니다.
나아가
오해를 극복하는 길을 말씀 안에서 만날 수 있기 바랍니다.
그리고 오해받고 살아온 아픔을 치유받을 수 있기 바랍니다.


1. 이 세상에서는 오해 받는 일들이 많습니다.

1] 자연을 보는 일에서도 인간의 오해는 많습니다.

땅에서 보는 하늘 가득한 구름은 태양을 만나기까지는 먹구름입니다.

음지가 있으면 양지가 있습니다.
어두운 부분이 있으면 밝은 부분이 있습니다.

이번 휴가 기간에 새롭게 만나고 깨달은 사실인데요,
구름이 아무리 빽빽이 덮여서 검은 구름으로 보여도 구름 위로 올라가면 그 구름이 검은 구름이 아닙니다. 흰구름이예요.
비행기를 타고 창공에 날아보셨잖아요. 비행기 밑에는 모두 흰구름입니다.
이유를 물을 필요가 없습니다.
햇빛 아래서 수증기는 희게 보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검게 보인다면 햇빛이 비추고 있지 않은 때문이지요.
오해한 것입니다.

내가 검다고 확신하는 바로 그 사람이 주님의 햇빛 아래서는 얼마든지 흴 수 있음을 믿습니까?
오해를  푸시기 바랍니다.


2] 예수님께서도 많은 오해를 받으셨습니다.

    우리가 주와 그리스도로 섬기는 예수님의 경우, 그분을 오해할 일이 무엇이 있겠습니까? 그러나 예수님의 생애는 오해로 점철된 생애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많은 오해를 받는 분이 예수님이십니다.

성육신하신 하나님의 아들은 이땅에서 누구보다 아픈 오해를 받으셨습니다.
동정녀 마리아의 몸에서 태어나신 일로 인하여 오해를 받으셨습니다.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나올 수 있느냐는 흑암의 땅에서 자라나신 일로 오해를 받으셨습니다.
악독한 두 강도 사이에서 십자가에 달려 처형당하신 일까지 또한 오해를 받으셨습니다.
오늘 성경 본문은 우리에게 예수님께서 부활에 관하여 받으신 오해의 내용을 밝혀주십니다.
예수님의 생애는 오해를 받은 삶의 연속이라고 해도 될 만큼 많은 오해를 받으셨습니다.

    예수님께 문제가 있어서 오해가 발생한 것이 아닙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을 믿고 살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이 모든 일들이 오해로 나타났습니다.



3] 사두개인들이 예수님을 크게 오해한 대표적인 사람들이었습니다.(19-23)

19 선생님이여 모세가 우리에게 써 주기를 사람의 형이 자식이 없이 아내를 두고 죽거든 그 동생이 그 아내를 취하여 형을 위하여 후사를 세울찌니라 하였나이다
20 칠 형제가 있었는데 맏이 아내를 취하였다가 후사가 없이 죽고
21 둘째도 그 여자를 취하였다가 후사가 없이 죽고 세째도 그렇게 하여
22 일곱이 다 후사가 없었고 최후에 여자도 죽었나이다
23 일곱 사람이 다 그를 아내로 취하였으니 부활을 당하여 저희가 살아날 때에 그중에 뉘 아내가 되리이까

이것이 있을 수 있는 일입니까?
있을 수 없는 일이지요.
그런데 그것을 질문이라고 했습니다.
그것도 대여섯 살 살 먹은 어린아이가 하는 것이 아니라 당시 최고의 신앙과 지성을 갖추었다는 사두개인들이 말입니다.

어떻게 이런 질문을 할 수 있겠습니까?

답은 간단합니다.

사두개인들이 성경께 대하여 박사들인데도 그들은 잘못된 안경을 쓰고 있었습니다.
그런 그들의 눈에 예수님을 오해하는 것은 당연한 귀결이었습니다.

    사람의 형이 자식이 없이 아내를 두고 죽거든 그 동생이 그 아내를 취하여 형을 위하여 후사를 세울찌니라

왜 모세가 이런 말씀을 남겼을까요?

자식에 대하여 모세가 말해준 것을 인간이 오해하였기 때문입니다.
성경에 대한 오해가 저들의 삶을 사막화시켰습니다.

유대인 사회는 기업을 잇는 사회입니다.
자녀가 없으면 그 기업이 사라집니다.
슬로보핫의 딸들이 그 기업을 잇기 위해 지도자에게 하소연한 이유도 거기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기업을 이을 자녀가 없는 사람들은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자녀를 소유하려 합니다.
이런 무리한 방법으로 인하여 인간 사회의 질서가 무너집니다.
이런 인간 사회의 질서를 지키기 위해 부득이한 허용이 있습니다.

그것은 동생으로 하여금 형님의 가계를 잇도록 해주는 방법이었습니다.

우리 나라에서도 그 비슷한 법이 있습니다. 동생의 아들을 형님께 양자로 보내서 그 기업을 잇게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관습법과 같은 것이고 꼭 그것을 성문법으로 통용하는 것은 아닙니다.

이것을 가지고 7형제가 차례로 죽었다
그러니 그 형수는 부활의 날에 누구의 아내가 되어야 하느냐는 궤변으로 부활이 없다는 논리를 펴는 것은 참으로 황당한 일입니다.

오해의 극치입니다.

    하나님께서 자녀를 주시지 않았으면 그냥 현실로 받아들이고 감사하면 됩니다.
하나님께서 자녀를 주시지 않는 것은 그 사람에게 다른 할 일이 있어서일 것입니다.
자녀를 받았다는 것은 재산 목록을 받은 것이 아니라 책임을 떠받은 것입니다
하나님의 기업을 맡았다는 것은 하나님의 사람이 책임을 맡은 것입니다. 자녀가 없어서 기업이 끊어지면 하나님께서 그 기업의 책임을 다른 사람에게 물려주신 것으로 생각하면 됩니다.

    저는 위로에게 미안한 아빠입니다.
하나님께 책임감이 많아요.
    저는 이번 휴가 기간 중에 아들 위로와 좋은 시간을 많이 가졌습니다.
한 주간 동안 아무쪼록 같은 공간에 있었으니까요.
함께 운동도 하고, 함께 수영도 하고, 위로만할 때의 아빠 첫사랑이야기도 해주고, 그러면서 많은 대화시간도 가졌습니다.
자녀를 선물로 받는다는 것은 아름다운 일이지만 이렇게 늘 책임이 따르거든요.

    하나님께서 어떤 사람에게는 물질을 맡기시지 않거든요.

    하나님께서 사도바울 같은 사람에게는 약한 건강을 주셨거든요. 그것을 통해 그는 자신이 약할 때 하나님의 강함을 체험할 수 있었습니다.

    살아계신 하나님께서 살아계셔서 인간의 생사화복을 주관하십니다.
이것을 믿고 인정할 때, 잘될 때 겸손할 수 있고 어려운 가운데 힘을 얻게 됩니다.

    가정을 두고 생각할 때도 하나님께서 살아계심을 인정하고 살면 많은 부분을 아름답게 살 수 있습니다.

어떤 부부는 금슬이 좋습니다.
잉꼬부부라 하지 않습니까?
남편이 특별히 좋든, 아내가 아주 좋은지, 아니면 둘 다 마음이 잘 맞는지 그 이유는 다 설명할 길이 없지만 아무튼 좋은 부부가 있습니다.
그것으로 인하여 감사할 수 있으면 됩니다.
그것으로 교만할 필요는 없습니다.

어떤 부부는 잘 맞지 않는 부부도 있습니다.
평생을 살면서 남편이 아내의 약점으로 인하여 괴로워하는 분이 있습니다.
남편의 약점으로 인하여 힘들어하는 아내도 있습니다.
그런 부부는 장미꽃 부부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장미꽃은 아주 아름답지만 가시가 있습니다.
그 가시는 늘 찔러요.
아내가 가시노릇을 하는 가정도 있습니다.
남편이 가시노릇을 하는 가정도 있습니다.
남편과 아내가 가시가 되어 늘 찔러요.
남편이 아내를, 때로는 아내가 남편을 늘 찔러요.
그래서 서로 생각합니다.
내게는 저 가시가 아프다!
나는 저 가시 때문에 불행하다!
이렇게 생각하고 절망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살아계심을 믿을 때, 그 가시는 의미를 갖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부부를 장미꽃 부부로 부르신 것입니다.
장미꽃에 가시가 있다는 것은 매우 건강한 장미꽃임을 말해줍니다.
구태어 장미꽃 가시를 비난할 필요는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얼마나 깊이 생각하여 만들어 놓으신 장미꽃 가시입니까?
가시가 너무 아파서 힘들 때면 저 가시 때문에 내가 잘 보호되고 있나보다 감사할 수 있습니다.
사실 그렇습니다. 장미꽃이 얼마나 아름답습니까?
가시가 없다면 그 아름다운 장미꽃이 제대로 남아 그렇게 오랜 동안 피어있을 수 있을까요?
보는 사람들이 그냥 꺾어가 버리지 않을까요?

장미꽃 부부를 오해하지 맙시다.

억새풀 부부도 있습니다.
온몸이 가시투성이인 부부 말입니다.
그러나 그런 억새풀도 얼마나 아름다운 꽃을 피우는지 모릅니다.
그런 부부도 필요하시니까 주신 줄 압니다.
오해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살아계셔서 장미꽃만이 아니라 저 억새풀 가시까지 운행하시나보다 이렇게 꽃을 이해하는 것이 좋은 일입니다.

잉꼬부부든
장미꽃 부부든
억새풀 부부든
하나님 앞에 감사하면서 자신에게 주어진 현실 속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꽃피울 수 있으면 좋습니다.
오해하지 마십시오.

세계적으로 유명한 목회자 스펄젼 목사님의 이야기입니다.
그는 어느 날 자신에 대한 오해가 온 교회에 전염병처럼 퍼지고 있음을 알았습니다.
그는 참 괴로웠습니다.
사표를 내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농부 집 심방을 하였습니다.
그런데 참 진기한 광경을 보았습니다.
소들이 목을 빼어 울타리 사이로 내놓고 밖에 있는 풀밭을 쳐다보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 이유를 물었습니다.
"별 수 있나요? 주인이 문 열어주기만 기다리고 있습니다."
스펄젼 목사님은 크게 깨달았습니다.
'그래, 난 우리에 갇혀 있구나!
고난의 벽에 갇혀 있구나!
오해의 벽에 갇혀 있구나!
내가 이렇게 절망하고 슬퍼할 것이 아니라 주인이 문열어주기를 기다려야 하는 거야. 하나님께서 언젠가 문 열어 주실 그날을 기다려야 하는 거야.



검은 구름만 짙게 우리 삶을 덮고 있다고 생각하고 절망하고 있지 않습니까?
오해로 인해 괴로워하고 있지 않습니까?

"인간의 한계 상황이 바로 하나님의 기회"(죤 벨르벨)라는 말이 있습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을 바라보십시오.
태양보다 밝게 우리 삶은 비추시는 하나님은 우리를 덮고 있는 구름이 하얀 양털처럼 아름답게 변화시켜주십니다.

24 예수께서 가라사대
너희가 성경도 하나님의 능력도 알지 못하므로 오해함이 아니냐




2. 하나님 능력을 믿을 때, 오해는 극복됩니다.


26 죽은 자의 살아난다는 것을 의논할찐대 너희가 모세의 책 중 가시나무떨기에 관한 글에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나는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요 야곱의 하나님이로라 하신 말씀을 읽어보지 못하였느냐
27 하나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요 산 자의 하나님이시라 너희가 크게 오해하였도다 하시니라

    모세는 자신의 힘과 지혜를 믿고 동족을 위한 결단을 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살아계신 능력자이십니다.
검은 구름을 희게하실 수 있습니다.

박정근 목사님의 설교문에서 읽은 이야기입니다.

시카고의 한 교회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어느 날, 전 교인이  예배를 나갔습니다.
마크란 17세 된 목사님 아들도 차에 잔뜩 짐을 싣고 예배처소로 떠났습니다.
그는 주유소에 들러 기름을 가득 넣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날에 고객들에게 사은품으로 라이타를 하나씩 주는 것이었습니다.
목사님 아들 마크가 그것을 주머니에 넣고 모임 장소로 간 것입니다.

불고기를 구워 먹으려는데 준비한 집사님이 성냥을 깜박 잊고 왔습니다.
있을만한 사람 몇 사람에게 물었지만 시치미를 뚝 떼는 것이었습니다.
당황하는 집사님을 본 마크가 이유를 물었습니다.
라이타를 내어드렸습니다.
그날 밤, 그 집사님은 부인에게 말했습니다.
"마크를 위해 기도해야 되겠어요."
그부인은 다음날 다른 교인에게 그 기도제목을 전했습니다.
얼마후에는 목사님 아들이 마리화나를 한다는 소식이 쫙 퍼졌습니다.
휴가에서 다녀온 목사님을 모시고 당회가 열렸습니다.
목사님이 변론을 했지만 믿지를 않습니다.
마크를 불러 심문을 합니다.
아무리 말을 해도 믿으려 하지 않습니다.
오해를 받아 화가난 마크가 차를 몰고 고속도로를 질주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그날  교통사고로 죽었습니다.
교회는 이 일로 인하여 산산 조각이 났습니다.

오해!

어떻게 극복할 수 있습니까?
사람으로서는 안됩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믿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살아계심을 확신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아십니다.
하나님께서 행하십니다.
개인을 살릴 수 있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가정을 살릴 수 있는 분은 하나님밖에 없습니다.
교회를 살릴 수 있는 분은 하나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살아계시기 때문입니다.
우리들의 삶에 하나님께서 살아계십니다!
하나님께서 그 능력의 손으로 일하고 계십니다.

너의 짐을 여호와께 맡겨 버리라!

이것이 바로 오해를 이기는 지름길입니다.



[마무리하는 말]


오해가 어디서 옵니까?
예수님께서는 간단히 말씀하십니다.

24 예수께서 가라사대 너희가 성경도 하나님의 능력도 알지 못하므로 오해함이 아니냐

성경을 알 때 오해를 극복할 수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의 능력을 의지할 때 오해를 극복할 수 있습니다.
왜입니까?

27 하나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요 산 자의 하나님이시라

하나님께서는 살아계십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을 믿고 그 인생을 맡긴 자 안에서 넉넉히 오해를 이기게 하십니다.
나아가 크고 비밀한 일을 이루십니다.

복음 송에 이런 가사가 있습니다.

하나님 사랑의 눈으로 너를 어느 때나 바라보시고
하나님 인자한 귀로서 언제나 너에게 기울이시니
어두움에 밝은 빛을 비춰주시고
너의 작은 신음에도 응답하시니
너는 어느 곳에 있든지 주를 향하고
주만 바라 볼찌라

하나님은 살아계십니다.

하나님은 이해하시는 분이십니다.
길이 참으시고 용납하시고 널리 용서하십니다.
세상에서 이해를 받고 사는 것은 참 흐뭇한 일입니다.

야곱이 130년 자신의 생애를 바로 앞에서 험악한 세월이라고 고백했습니다.
그러나 라헬을 사랑했던 7년을 수일 같이 여겼다고 했습니다.
이해를 하고 이해를 받던 사람과의 시간은 비록 광야를 가더라도 기쁨이었음을 고백합니다.

다윗이 사울에게 고난과 오해를 받을 때 그 시간은 참으로 괴롭고 힘들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를 이해해 주는 친구 요나단과 여호와 하나님을 곁에 모시고 있었기 때문에 그는 그 힘든 사망의 골짜기를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었습니다.

사랑하는 서머나 교회 교우 여러분

이해하며 살아보시지 않겠습니까?
사람들의 이해를 받기 힘들 때, 길이 참으시고 용납하시고 이해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도 나를 이해하시는데!
성도간에 이해하지 못할 것이 무엇인가!
이 일로 인하여 은혜를 받으시길 바랍니다.

[성경본문]
18 부활이 없다 하는 사두개인들이 예수께 와서 물어 가로되
19 선생님이여 모세가 우리에게 써 주기를 사람의 형이 자식이 없이 아내를 두고 죽거든 그 동생이 그 아내를 취하여 형을 위하여 후사를 세울찌니라 하였나이다
20 칠 형제가 있었는데 맏이 아내를 취하였다가 후사가 없이 죽고
21 둘째도 그 여자를 취하였다가 후사가 없이 죽고 세째도 그렇게 하여 22 일곱이 다 후사가 없었고 최후에 여자도 죽었나이다
23 일곱 사람이 다 그를 아내로 취하였으니 부활을 당하여 저희가 살아날 때에 그중에 뉘 아내가 되리이까
24 예수께서 가라사대 너희가 성경도 하나님의 능력도 알지 못하므로 오해함이 아니냐 25 사람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날 때에는 장가도 아니가고 시집도 아니가고 하늘에 있는 천사들과 같으니라
26 죽은 자의 살아난다는 것을 의논할찐대 너희가 모세의 책 중 가시나무떨기에 관한 글에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나는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요 야곱의 하나님이로라 하신 말씀을 읽어보지 못하였느냐
27 하나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요 산 자의 하나님이시라 너희가 크게 오해하였도다 하시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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