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사람들의 특징이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주기를 좋아하는 것입니다.
자녀를 사랑하는 부모는 자녀에게 모든 것을 줍니다. 그것도 즐겁게 !
부부간에도 사랑을 하는 부부를 보면, 없어서 못줍니다.
연인과의 사이에서도 그 특징은 모든 것을 주고 싶어 하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은 이런 사랑의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는 본문입니다.
오늘 가난한 과부는 보통 사람이지만, 하나님의 은혜에 크게 감복한 여인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에 엄청난 감동을 가진 그래서 하나님을 너무나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353장 아시지요?
3. 주 예수께 빚진 것이 한 없건만
나 주 위해 갚은 것은 참 적으니
주 예수여 너그럽게 보옵소서
2. 주 날 위해 보배로운 피 흘리사
그 귀하신 생명까지 다 주시니
내 천한 몸 이 생명을 왜 아끼랴!
1. 내주 예수 주신 은혜 한없건만
내주 앞에 이적은 것 다 드리니
주 예수여 내 정성을 받으소서
이런 중심을 가지고 오늘 여인은 헌금을 하고 있습니다.
오늘 여러분이 이런 여인처럼 하나님 사랑을 깨달으시고 또 그런 기쁜 헌신으로 하나님과의 사랑을 하실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1. 주님께서는 헌금 속에서 우리의 사랑을 보십니다.
41 예수께서 연보 궤를 대하여 앉으사 무리의 연보 궤에 돈 넣는 것을 보실쌔
주님께서 오늘 무엇을 보고 계십니까?
헌금 궤에 사람들이 헌금을 넣고 있는 모습을 보고 계십니다.
주님은 헌금 궤에 돈 넣는 것을 유심히 보고 계십니다.
주님께서는 헌금에 담긴 사람들의 사랑을 보기 원하셨습니다.
오늘도 주님께서는 헌금함 곁에서 계셔서 헌금자를 유심히 보십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세상 사람들에게 있어 돈은 하나님을 대체하는 우상화이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캘빈은 '돈에 대하여 너무 많은 말을 하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바른 얘기를 하지 않는 게 문제"라 했습니다.
웨슬레는 '나는 주머니가 회개하지 않은 사람의 회개를 믿을 수가 없다'
하나님을 사랑함이 없는 헌금은 천박합니다.
43 예수께서 제자들을 불러다가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가난한 과부는 연보 궤에 넣는 모든 사람보다 많이 넣었도다
주님께서 과부를 칭찬하셨습니다. 부자보다 그녀에게는 하나님 사랑하는 마음이 많았습니다.
오늘 우리의 헌금하는 모습을 보신 주님께서, 우리가 과연 무엇을 더 사랑하는가를 보신 줄 압니다.
사랑하는 서머나 교우 여러분,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믿으십니까?
헌금하실 때,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사랑하는 마음을 표현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주님으로부터 칭찬을 들으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오늘 여인은 왜 칭찬을 받았습니까?
1. 구차한 중에서도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44 저희는 다 그 풍족한 중에서 넣었거니와 이 과부는 그 구차한 중에서.....넣었느니라
가난한 과부가 헌금함에 다가왔습니다.
많은 부자들의 헌금하는 소리가 둔탁하게 떨어지는 데, 그 뒤를 이어 가난한 과부의 헌금한 한 고드란트의 가벼운 금속성 소리가 바람에 날리듯이 떨어졌습니다.
한 렙돈은 노동자 품삯인 한 데나리온의 1/128로 알려져 있습니다.
노동자 하루 소득을 $128로 환산한다면 과부가 드린 두렙돈이란 어림잡아 $2 정도를 헌금한 셈입니다.
누가 들어도 그녀가 헌금한 액수는 너무 작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사회복지 제도가 전무하다시피 하던 당시 과부와 고아의 경제 상태는 매우 열악했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구차한 중에서 헌금을 넣었습니다.
자기 자신의 앞가림조차 어려운 과부가 자신이 가진 전 생활비 $2을 헌금한 것입니다.
구차한 중에서 드린 가난한 과부의 헌금이 무엇을 의미할까요?
드림의 법칙, 나눔의 법칙을 따라 성실하게 살아가는 사람은 물질의 종이 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은혜를 주시기 원하십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은혜는 놀랍게도 물질을 하나님께 드리고 이웃과 나누는 마음에 나누는 마음에 담긴다는 것입니다.
물질을 하나님께 드리고 이웃과 나눌 줄 아는 사람은 물질을 하나님으로 섬기지 않습니다.
물질을 하나님께 드리고 이웃과 나눌 줄 아는 사람은 하나님을 물질보다 더 사랑합니다
마게도냐 교회는 바로 구차한 중에서 드리고 나눔의 법칙을 실현한 이런 교회입니다.(고후8:1-5)
1 형제들아 하나님께서 마게도냐 교회들에게 주신 은혜를 우리가 너희에게 알게 하노니
2 환난의 많은 시련 가운데서 저희 넘치는 기쁨과 극한 가난이 저희로 풍성한 연보를 넘치도록 하게 하였느니라
3 내가 증거하노니 저희가 힘대로 할 뿐아니라 힘에 지나도록 자원하여
4 이 은혜와 성도 섬기는 일에 참여함에 대하여 우리에게 간절히 구하니
5 우리의 바라던 것뿐 아니라 저희가 먼저 자신을 주께 드리고 또 하나님 뜻을 좇아 우리에게 주었도다
보아스란 사람은 그런 일로 인하여 룻을 아내로 얻고 그리스도의 조상이 되는 영광을 얻습니다.
구차한 중에서도 하나님께 드릴 수 있다는 것은 하나님을 신뢰하는 자만이 할 수 있는 일입니다.
헌금이란
액수 문제가 아닙니다.
부의 문제가 아닙니다.
사랑하기 때문에
구차한 중에서 드릴 수 있다는 것을 통해 하나님을 향한 그녀의 사랑이 얼마나 큰가를 알 수 있습니다.
그녀는 비록 가난했지만 하나님께 대한 사랑을 헌금함에 담았습니다.
그녀의 믿음에는 하나님께 대한 사랑이 넘쳐나고 있었습니다.
가난하지만 하나님을 사랑하는 여유와 넉넉함이 있었습니다.
사렙다 과부를 아시지요?
마지막 남은 밀가루 한 줌, 그리고 기름 얼마!
먹으면 더 이상 먹을 양식이 없는 극한 상황입니다.
더구나 사랑하는 아들까지 굶겨야 하는 그 절박한 형편입니다.
그러나
그녀의 마음에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여유와 넉넉함이 있었습니다.
하나님께 대한 신뢰를 빵으로 구워 선지자에게 바쳤습니다.
믿음에 하나님께 대한 사랑이 있었습니다.
가난하지만 하나님을 사랑하는 여유와 넉넉함이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사랑을 받으시고 축복하셨습니다.
그 신뢰를 마중물로 삼아서 넉넉하게 물질의 축복을 허락하셨습니다.
룻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밭 한 평 없는 과부입니다.
그래서 농사를 지을 수조차 없었습니다.
그저 추수하고 있는 밭에 나아가 이삭이라도 주어야 생계를 이어갈 수밖에 없는 처지입니다.
하지만 룻은 시어머니 나오미를 정성껏 봉양합니다.
그녀의 마음에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여유와 넉넉함이 있었습니다.
믿음에 부요함이 있었습니다.
가난하지만 하나님을 사랑하는 여유와 넉넉함이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마중물을 하나님께 올려드리는 룻을 축복하셔서 넘치는 생애를 살게 하셨습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사람들은 헌금을 부와 빈곤의 문제로 생각합니다.
사람들은 내가 돈이 없기 때문에 헌금을 못한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돈을 많이 주시면 나도 많은 헌금을 할 수 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비록 우리가 가난할지라도 하나님을 사랑하면 헌금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을 향한 사랑을 하나님의 손에 올려드리기를 원하십니다.
마중물을 받으시기 원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물질에 가난하신 분이 아니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는 헌금은 자기 과시일 뿐입니다.
하나님,
하나님께서 저에게 이 모든 것을 맡기셨습니다.
맡기신 것을 주님께 올려드립니다.
마중물로 올려드립니다.
사렙다 과부를 받으신 하나님께서
룻을 책임지신 하나님께서
하나님을 사랑하는 우리의 여유와 넉넉함을 채우실 줄을 믿습니다.
2. 하나님을 사랑하는 모든 수유로 표현하였습니다.
44 저희는 다 그 풍족한 중에서 넣었거니와 이 과부는 그 구차한 중에서 자기 모든 소유 곧 생활비 전부를 넣었느니라 하셨더라
대부분의 사람들은 재물을 사랑합니다.
그러나 자신이 사랑하는 재물도 더 사랑하는 대상을 만날 때, 순수하게 그 재물을 내어놓습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이 재물 사용하는 것을 보면,
그 사람이 누구를 사랑하는가?
얼마나 사랑하는가?
그 사랑이 얼마나 순수한가?
등을 헤아려 볼 수 있습니다.
어린아이가 예수님께 가져온 5병2어를 생각하시지요?
남정네만 해도 5,000명이 넘는데 5병2어를 누구 입에 풀칠을 하겠다고 가져온다는 말입니까?
하지만 그 어린 아이의 주님을 향한 사랑은 순수한 것입니다.
사랑하는 주님께서 드시도록 가져왔을 수도 있습니다.
내주여 뜻대로 행하시옵소서.
사용하실 것 같아서 가져왔습니다.
주님께 필요할 것 같아서 그냥 가져온 것입니다.
그것이 얼마나 될 것이냐?
200데나리온의 몇 만분지 일이냐를 헤아리지 않았어요.
어린아이의 순수한 신앙은 헤아리지 않았습니다.
순전한 사랑은 결과를 헤아리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어린 아이의 5병이어를 받으시고 아프리카의 놀라운 복음화를 허락하셨습니다.
사도행전에 보면 바나바란 분이 나옵니다.
초대교회가 한참 그 기초를 이루어갈 때, 바나바는 자신의 재산을 교회에 내어놓았습니다.
그 반응은 매우 좋았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럴 수밖에 없지요.
성령의 충만함을 체험한 예루살렘 교우들의 눈에 바나바가 얼마나 순수하게 보였을 것인가 넉넉히 이해할 수 있지 않습니까?
하나님과 그분의 몸된 교회를 사랑하는 순수함이 있습니다.
같은 사도행전에 보면,
다비다란 과부의 행적이 나옵니다.
그녀의 삶은 그렇게 넉넉해 보이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그녀에겐 바느질을 잘하는 은사가 있었습니다.
그녀는 정성껏 그 바느질 기술로 옷을 지어 과부들을 섬겼습니다.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하는 순수함이 있습니다.
어떻게 생각하세요?
사랑은 순수한 것이 좋지요?
계산하지 않는 사랑 말입니다.
하지만 아나니아와 삽비라는 똑같은 상황에서 재산을 처분한 재산 절반을 감추고 남은 절반만 가지고 나왔습니다.
누가 뭐라 한 것도 아닌데 계산하고 숨기고 다인것처럼 위장하고 힘들게 헌금했습니다.
액수는 많았지만 하나님을 순수하게 사랑하지 못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을 순수하게 사랑하지 않은 채 시위용으로 드리는 헌금을 즐거워하시지 않습니다.
헌금을 자기 마음대로 쓰는 사람도 본 적이 있습니다.
자기가 하나님이 되어서 어느 교회에 헌금할 것인가?
누구에게 얼마를 나누어 주어야 할 것인가 계산하는 사람도 보았습니다.
순수함에서 좀 떨어져 보이지 않습니까?
헌금은 순수한 것이 좋습니다.
하나님을 인정하고 하나님의 몸된 교회를 다스리시는 교회의 머리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인정하는 헌금이 순수한 헌금이라 할 수 있습니다.
헌금은 하나님께 대한 순수한 사랑의 고백이어야 합니다.
3. 하나님 사랑을 생활비 전부로 표현하였습니다.
“생활비 전부를 넣었느니라”
생활비 전부를 넣어버리면 어떡합니까?
주님께서 그것을 다 아시는 분이신데 말려야 되는 것 아닙니까?
그런데 주님께서는 그녀의 헌금을 막지 않으셨습니다.
그녀는 하나님 사랑하는 마음을 생활비 전부로 때문입니다.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무엇을 마실까
염려하지 않고 있었습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의 사랑을 확신할 때 생활비 전부를 헌금 할 수 있습니다.
생활비 전부를 드리는 헌금은 살아계신 하나님의 사랑을 확신하는 곳에서 가능합니다.
그녀의 생활비 전부를 드린 헌금 속에는 일상생활을 책임지는 믿음을 축복하십니다.
그리고 최선을 다한 마음을 축복하십니다.
하나님은 선하신 분이십니다.
생활비 전부를 드리는 사랑을 하나님은 기뻐하십니다.
W.L. 더글러스란 분을 아십니까?
경제적으로 몹시 큰 어려움을 당하고 있던 때의 일입니다.
그에게는 오직 $1이 남아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주일예배에 들어갔다가 매우 큰 결단을 하고 50센트 하나님께 바쳤습니다. 그리고 다음날 구직광고를 보니 그곳에 가는 차비가 딱 $1입니다.
잠깐 후회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남은 50센트로 가는 데까지 가고 남은 거리는 걸어가리라 하고 한 도시의 정거장에 내렸습니다.
그런데 그 정거장에 구직광고가 붙어있었습니다.
제 친구 가운데 육 이삭이란 친구가 있습니다.
제 생애에 가장 보람된 일 중 하나는 그 친구를 예수님께 인도한 것입니다.
그는 예수님을 믿고 폐병을 치유받았습니다.
그는 독일에 있는 선교사님과 결혼하여 쾰른에서 살았습니다.
그의 가정은 생활비 모두를 주님께 바치고 살았습니다.
두 부부가 가정을 독일 학생들에게 개방하구요.
얼마나 아름다운 헌신을 하는지 모릅니다.
지난 번에 우리 교회에서 창조 세미나를 하셨던 임번삼 박사님을 모시고 그 가정에서 하루밤을 보냈는데요. 그분이 말씀하시던 말씀이 생각납니다.
자신의 생애에서 이처럼 아름다운 크리스챤 가정을 만난 것은 처음이다.
할렐루야!
하나님을 사랑하면 생활비 전부를 주님께 바칠 수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100세에 낳은 독자 이삭을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을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최선의 헌금은 삶의 주인이 하나님이심을 사랑할 때 가능합니다.
최선의 헌금은 다 드리는 헌금입니다.
다드림교회라는 이름을 본적이 있습니다.
최선을 다하지 못하는 교인들에게는 좀 부담스런 이름입니다.
십일조가 하나님의 것이기 때문에 1/10을 드리는 것이 아닙니다.
전체가 다 하나님의 것인데 1/10을 드릴 뿐입니다.
이것이 다드리는 정신입니다.
마무리하는 말
하나님 사랑하십니까?
하나님이 얼마나 나를 사랑하는 지 아십니까?
그 사랑을 표현하는 것은 참 즐거운 일입니다.
어떤 농부가 소를 기르는데 어느날 송아지 두 마리를 낳았습니다.
너무 기뻤습니다.
하나는 자기 것 한 마리는 하나님의 것이라 했습니다.
어느날 송아지 한 마리가 죽었습니다.
여보, 하나님의 송아지가 죽었어
주님의 송아지가 죽었다는 것입니다.
스터드는 그런 말을 남기고 선교지로 떠났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분의 아들을 주신 것이 사실이라면
내가 그분을 위해 바치는 어떤 희생도 지나친 것일 수는 없다
고 말입니다.(노하덕)
[성경본문]
41 예수께서 연보 궤를 대하여 앉으사 무리의 연보 궤에 돈 넣는 것을 보실쌔 여러 부자는 많이 넣는데
42 한 가난한 과부는 와서 두 렙돈 곧 한 고드란트를 넣는지라
43 예수께서 제자들을 불러다가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가난한 과부는 연보 궤에 넣는 모든 사람보다 많이 넣었도다
44 저희는 다 그 풍족한 중에서 넣었거니와 이 과부는 그 구차한 중에서 자기 모든 소유 곧 생활비 전부를 넣었느니라 하셨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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