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iday, 27 February 2015

마가13:1-13 성전의 기능을 회복하자

[들어가는 말]

쓰나미가 동남아 해안을 휩쓸었을 때, ‘아체서만 40만 명 사망’이란 기사를 접한 적이 있습니다.
뉴올리언즈에 카타리나가 덮쳐서 1만여 명 사망, 100만 이재민, 1000억의 달러의 피해를 보도하고 있습니다. 남북전쟁 이후의 최대 비극이라 전해집니다.
3천여 명의 한인 이재민이 있고, 180여 업체, 주택 800여채가 손상을 입었습니다. 1인 최고 피해액은 $600만을 헤아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재민들의 모습 속에 한인들이 별로 보이지 않는답니다. 한인 이재민이 없어서가 아닙니다. 그에 못지않은 회복의 손길이 활발하게 펼쳐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한인 교회와 성도들 중심으로 회복을 위한 노력은 감동적입니다. 교회를 개방하고,  성도들은 가정을 개방하여, 적극 구제함으로 타민족들의 부러움을 사고 있습니다. 4인씩 조를 짜서 적극 식사와 필요한 것들을 공급하고 있습니다.
이제 리타가 다시 남부를 흔들고 있지만, 회복을 통해 더 아름다운 뉴올리언즈로 태어날 것을 우리는 기대해 봅니다.

허리케인이 대재앙이라면 이 시대의 죄악 된 많은 일들이 성전의 기능을 마비시키는 대재앙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큰 관심은 죄악의 대재앙 속에서 함몰되어가는 하나님의 성전을 회복하는 일입니다.
어떻게 성전의 기능을 회복될 수 있습니까?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이라는 메시지를 듣는데요.
하나님의 성전답지 못한 내가 회복될 소망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요?



1. 외형보다 성전본질을 회복해야 합니다.

1 예수께서 성전에서 나가실 때에 제자 중 하나가 가로되 선생님이여 보소서 이 돌들이 어떠하며 이 건물들이 어떠하니이까?
2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가 이 큰 건물들을 보느냐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뜨려지리라 하시니라

예루살렘 성전은 제2성전을 수리한 제 3성전으로 46년에 걸쳐 지어진 당대에 가장 아름다운 건축물 중의 하나였습니다.  성전 재건에 쓰인 돌 하나의 길이가 12m, 너비가 3.6m, 높이가 6m에 달하였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는 그 성전의 아름다움에 도취 되어서 말했습니다.

선생님이여 보소서 이 돌들이 어떠하며 이 건물들이 어떠하니이까?

제자의 감동은 외형을 본 자의 감상입니다. 정말 그 성전은 감동적으로 아름다웠습니다.
돌 하나하나가 작품이었고 감동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외형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대답은 간단했습니다.

네가 이 큰 건물들을 보느냐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뜨려지리라

하나님의 자녀가 있어야 할, 아버지 집다움이 없었습니다.
수많은 제물이 나의 죄 용서함을 위해 대신 죽어가는 제사가 기능을 잃고 있었습니다.
만민이 기도하는 집으로의 기능이 희석되어 있었습니다.
감사가 넘쳐나지 않았습니다.
구원받은 백성의 찬양이 감격스럽게 울려 퍼지지 못하였습니다.

대신
그 안에서는 장사가 이루어지고 있었습니다.
악한 정치와 음모술수가 판을 치고 있었습니다.

성전 내면을 꿰뚫어보시는 예수님께서는 성전 건물의 외형이 아름답다고 해서 감동할 수 없었습니다.

대신 예수님께서는 성전 기능이 회복되기를 원하셨습니다.

우리는 이 시대에 변함없는 메시지를 듣습니다.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우리의 성전을 보실 때, 주님께서는 무엇을 회복시키기 원하실까요?

예수님의 제자처럼 허울만 말짱한 나 자신의 외형에 스스로 속고 있지는 않습니까?

어떤 분이 저를 칭찬할 때, 감사하지만 한편 저는 참 괴롭습니다.
시인 목사님이십니다 소개할 때, 저는 겉으로는 웃지만 속으로 ‘저는 죄인 목사입니다’ 고백합니다. 저는 새벽마다 405장을 70번씩 되풀이해 들은 후, 기도회를 갖습니다.

나 같은 죄인 살리신 그  은혜 고마워
잃었던 생명 찾았고 광명을 얻었네.

죤 뉴우톤의 이 신앙고백은 나의 하루 출발점이요 목회의 출발점입니다.

우리도 예루살렘 성전처럼 외모만 멀쩡하지 않습니까? 외형적 모습에 스스로 속고 있지 않습니까?
내 안에서 죄 용서함의 산제사가 날마다 이루어지고 있습니까?
나의 성전에서는 기도와 찬송이 감격스럽게 날마다 울려 퍼지고 있습니까?

죄 용서함이 날마다 이루어지는, 감사와 찬송과 기도가 끊임없이 이루어지는 그런 성전으로 회복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미혹을 받지 않도록 주의해야 합니다.

4 우리에게 이르소서 어느 때에 이런 일이 있겠사오며 이 모든 일이 이루려 할 때에 무슨 징조가 있사오리이까
5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가 사람의 미혹을 받지 않도록 주의하라

미혹은 성전 기능을 마비시키는 것입니다.

    미혹자는 사람이라고 쉽게 단정하면 안됩니다.
미혹자를 세상적 물질이나 어떤 사상이나 세속철학이라고 단순히 말하면 안 됩니다.
인간이나 물질이나 사상 철학 이상입니다.
미혹자의 정체는 사탄입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이나 물질, 사상 철학 등에 구원이 있다고 거기에 목줄을 맨다면 그것은 무리를 미혹할 수 있습니다.
미혹자 사탄은 우리가 좋아하는 무엇을 통해 다가오기 때문입니다.

첫 사람 아담의 경우가 바로 그것입니다.
미혹자는 에덴동산에서 첫 사람에게 다가왔습니다. 미혹자는 먹음직하고 보암직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러운 열매를 통해 다가왔습니다.

미혹자는 물질이나 사상이나 철학이나 사람을 통해서 다가올 수 있습니다.
보암직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러운 사상을 통해 미혹자는 다가옵니다.
보암직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러운 철학을 통해 미혹자는 다가옵니다.
보암직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러운 사람을 통해 미혹자는 다가옵니다.
보암직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러운 물질을 통해 미혹자는 다가옵니다.
보암직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러운 경험을 통해 미혹자는 다가옵니다.

그리하여 성전 기능을 파괴해 버립니다.

   첫사람을 미혹한 사탄은 오늘날도 우는 사자와 같이 삼킬 자를 찾아 헤맵니다.

    사람들은 지진이나 전쟁이나 재난이 올 때, 구원자를 절실히 기다립니다.
유대인들도 로마제국의 압제 속에서 그들을 극복할 수 있는 구원자를 기다렸습니다.

사람들은 구원자가 자신의 갈증을 채워줄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은 물질을 구원자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사람을 구원자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어떤 정치가가 출현하면 구원이 올 것으로 생각합니다.
어떤 훌륭한 종교 지도자를 구원자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경제적인 호전을 구원으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것만 있느면 나의 삶에 구원이 올 것으로 생각하여 끊임없이 그곳으로 달려가고 그곳으로 찾아갑니다.
그러나 세상 어디에서 구원은 없습니다.
그러나 그 어떤 것도 구원자가 아닙니다.

세상의 무엇으로도 우리의 성전 기능을 회복할 구원자는 없습니다.

오직 구원자는 오직 그리스도 예수님이십니다.
하나님께서 마련해 주신 한 분 만이 구원자이십니다.

유명한 문학가이신 집사님께서 폐암 진단을 받았습니다. 그는 자신이 6개월 시한부 인생임을 병실 밖의 집안 식구들의 말을 통해 알았습니다.
그는 6개월을 죽음 준비 기간으로 정했습니다.
빚을 다 갚았습니다.
관계가 서먹한 사람들과 만나 오해를 풀고 화해를 했어요.
자녀들과 대화 시간도 많이 가졌습니다.
그 동안 해보고 싶었던 일도 해 보았습니다.
6개월이 지났습니다. 아무 일도 없었습니다.
진단을 받아보라는 권면이 있었습니다.
암의 증상은 없었습니다.

누군가 말했습니다. 억울하지 않으냐고.
돈 낭비, 마음고생, 등
그는 말했습니다.
지난 6개월만큼 그렇게 진지한 삶을 살았던 때가 없었다고. 나머지 인생도 그렇게 살고 싶다고.

우리는 이 세상의 엄청난 미혹의 파도 속에 밀려가며 살아  갑니다.
그 집사님께 사형선고를 받고 지낸 6개월이 의미 있는 삶의 회복이었듯이 우리 성도에게는 미혹에서 벗어날 성전회복이 필요합니다.
나를 미혹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6개월밖에 남지 않은 심정으로 성전을 회복하는 축복을 받으실 수 있기 바랍니다.



3. 복음 전파 기능을 회복해야 합니다.

9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라 사람들이 너희를 공회에 넘겨주겠고 너희를 회당에서 매질하겠으며 나를 인하여 너희가 관장들과 임금들 앞에 서리니 이는 저희에게 증거 되려함이라.
10 또 복음이 먼저 만국에 전파되어야 할 것이니라.


성전기능의 본질 중 하나는 바로 복음 증거입니다.
성전에서는 하나님 사랑이 전해져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나를 위한 구원자로 보내셨다, 믿는 자에게 구원이 있다는 복음이 전파되어야 합니다.
이것이 성전 기능의 중요한 본질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이렇게 말하면 웃습니다.
아버지라도 아들이 그렇게 말하면 웃습니다.
형제라도 형이나 동생이 그렇게 말하면 웃습니다.

이 복음은 세상이 말하는 구원 방식과 대치되기 때문입니다.
이 복음은 세상 철학과 사상과 경험을 대적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성전이 이 복음 전파에 전념할 때, 세상에서 배척을 받게 됩니다.

12 형제가 형제를, 아비가 자식을 죽는데 내어주며 자식들이 부모를 대적하여 죽게 하리라

그러나 성전된 우리는 그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이 사랑이 전파되는 곳에 성전기능의 회복이 있습니다.
우리 조선에 복음을 전하기 위해 미 상선 제너럴 셔먼호를 탔던 토마스 선교사의 전기에 이런 구절이 나옵니다.

"윌리암슨, 사실은 얼마 전에 조선의 동지사를 만나 그곳 소식을 들을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의 말에 의하면 지금 조선에는 많은 천주교신자들이 예수를 믿는 것으로 죽음을 당하고 있다고 합니다. 심지어는 오작통이라고 하여 한 가족이 예수를 믿으면 다섯가족이 죽음을 당하는 등의 핍박을 당하고 있답니다. 이 말을 듣고 난 후부터 제 마음은 어떻게 하면 제가 조선에 가서 복음을 전할 수 있을까?하는 생각으로 가득 차 있답니다. 저는 중국에 복음전하는 것을 생각하고 있었지만 주님께서는 제가 조선에 복음전하길 원하시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토마스 선교사님은 하나님 사랑에 눈먼 조선 백성이 하나님께서 그들을 사랑하시기 때문에 하신 일을 알기 원하였습니다.

수년 동안 알콜 중독으로 고생하던 척이란 사람이야기가 101 전도법이란 책에 소개되어 있습니다. 그는 알콜 중독자 클럽에 다니면서 술을 끊었습니다.
그러나 부정적인 습관을 멈추는 것과 무언가 긍정적인 것으로 다시 그 자리를 채우는 것 사이에는 커다란 공간이 있음을 알았습니다. 그는 더 이상 술을 마시지는 않았지만 그의 내면은 늘 공허했습니다.
어느 토요일 오후, 교회 전도팀이 다가와 음료수와 전도지를 나누어 주었습니다. 그러면서 한 마디를 남기고 갔습니다.
“당신은 목만 마른 게 아닌 것 같아요. 도움이 필요하시면 전화를 주세요.”
몇 주 후, 그는 전도지에 적힌 교회를 찾아왔고 하나님의 사랑으로 그 공허한 마음이 채워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몇 달 후, 자신도 하나님의 사랑을 세상에 전해주는 사람으로 변화되기 시작하였습니다.
성전 기능이 회복되기 시작한 것입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영접한 우리에게 성전 기능이 활발한가를 묻고 계십니다.

우리의 마음을 하나님의 사랑과 계획으로 가득 채우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그 놀라운 하나님의 사랑과 계획을 세상 공허한 심령들에게 전하며 사시는 성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마무리하는 말

테리 폭스군의 이야기를 들으신 적이 있습니까?
그는 캐나다인이었습니다. 학창시절 스포츠에 발군의 실력을 나타냈습니다. 프로에 진출할 꿈을 키워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어느 날 암이 다리에 침투해서 다리를 자를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는 그의 인생을 망가뜨린 암과의 전쟁을 선포하고 암연구 기금 마련에 남은 생애를 바치기로 했습니다.
기금 마련 방법으로는 의족을 단체 캐나다 해안 전부를 달리는 것이었습니다. 부모님도, 암 협회도, 트루도 수상도 그의 생각에 선뜻 동의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뉴펀들런드부터 해안을 돌기 시작하여 327일이 지나서 언론의 조명을 받기 시작하였습니다. 길바닥에 피가 뚝뚝 떨어지는 의족으로 그는 하루 50Km 이상씩을 달렸습니다.
온타리오 주의 썬더 베이 주까지 달렸을 때, 그는 심한 호흡기 장애를 일으켰습니다. 의사는 질겁하여 달리기를 중단하라 권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담담히 말했습니다.
캐나다 인구수와 같은 2,410만 달러의 암연구 기금이 모아지기까지 저는 달릴 것입니다.
얼마 후, 뱅쿠버에서 그는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러나 2,410만 달러의 암연구기금이 모아졌습니다.

사람이 사는 목적이 무엇입니까?사람들은 흔히 말합니다.

‘사람이라고 사람이 아니다.
사람다웁게 살아야 사람이지.’

하나님의 성전다운 기능을 회복하는 일은 우리 모두의 숙제입니다.

성전기능 회복이 쉬운 일은 아니지만 우리 주님께서 가장 기뻐하시는 일입니다.


[성경본문]

1 예수께서 성전에서 나가실 때에 제자 중 하나가 가로되 선생님이여 보소서 이 돌들이 어떠하며 이 건물들이 어떠하니이까?
2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가 이 큰 건물들을 보느냐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뜨려지리라 하시니라
3 예수께서 감람산에서 성전을 마주 대하여 앉으셨을 때에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과 안드레가 종용히 묻자오되
4 우리에게 이르소서 어느 때에 이런 일이 있겠사오며 이 모든 일이 이루려 할 때에 무슨 징조가 있사오리이까
5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가 사람의 미혹을 받지 않도록 주의하라
6 많은 사람이 내 이름으로 와서 이르되 내가 그로라 하여 많은 사람을 미혹케 하리라
7 난리와 난리 소문을 들을 때에 두려워 말라 이런 일이 있어야 하되 끝은 아직 아니니라
8 민족이 민족을, 나라가 나라를 대적하여 일어나겠고 처처에 지진이 있으며 기근이 있으리니 이는 재난의 시작이니라
9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라 사람들이 너희를 공회에 넘겨주겠고 너희를 회당에서 매질하겠으며 나를 인하여 너희가 관장들과 임금들 앞에 서리니 이는 저희에게 증거되려함이라
10 또 복음이 먼저 만국에 전파되어야 할것이니라
11 사람들이 너희를 끌어다가 넘겨줄 때에 무슨 말을 할까 미리 염려치 말고 무엇이든지 그 시에 너희에게 주시는 그 말을 하라 말하는 이는 너희가 아니요 성령이시니라
12 형제가 형제를, 아비가 자식을 죽는데 내어주며 자식들이 부모를 대적하여 죽게 하리라
13 또 너희가 내 이름을 인하여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나 나중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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