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dnesday, 25 February 2015

눅13:10-17 회복

병든 자녀를 둔 부모의 소원은 자나깨나 병든 자녀가 건강을 회복하는 일입니다. 죄로 병든 인류를 향한 하나님의 소원은 죄로부터 회복되는 일입니다. 하나님 자녀의 형상을 회복하는 것입니다. 이는 하나님의 관심사! 바로 그것입니다.
안식일은 어떻게 사용되어야 하는가?
예수님께서는 그 복된 날을 사단에게 오랫동안 매였던 아브라함의 딸을 회복하신 일에 쓰십니다. 사탄의 나라에서 그 매인 자녀를 회복하심으로 하나님 나라의 승리를 보여주십니다. 죄로 인해 안식을 상실한 자들에게 하나님 나라에서의 참 안식을 누리게 하십니다. 예수님은 죄 가운데 고통 당하는 만민을 회복하시기 위해 오셨습니다.

1. 이 세상엔 회복되지 못한 사람이 많습니다.
10 안식일에 한 회당에서 가르치실 때에 11 십 팔 년 동안을 귀신들려 앓으며 꼬부라져 조금도 펴지 못하는 한 여자가 있더라

한 주간 신종 바이러스 '님다' 때문에 골치를 썩은 분들이 많이 계신 듯합니다. 컴퓨터에 바이러스가 들어가면 기능이 마비됩니다. 이와같이 사람에게는 죄가 들어가면 기능이 마비됩니다.
요즈음 우리가 묵상하는 사무엘 하를 보첩庸?우리는 무엇을 교훈으로 받습니까? 다윗의 왕가 전체가 죄로 감염되어서 얼마나 몸살을 겪는지를 그림처럼 보여주십니다.
이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그림처럼 보여주십니다. 죄가 개인에게서나 가정 안에서, 얼마나 강하게 기능을 파괴하여 가는가 경고하는 겁니다. 회복되지 못한 왕가의 슬픔을 봅니다.

곱추로 18년을 고통 속에서 살아온 여인이 여기에 있습니다. 질병의 원인이 여러 가지가 있지만 , 오늘 그녀의 질병은 어둠의 권세에 의하여 앓게 되었고 꼬부라지게 된 것입니다. 이는 공중의 권세 잡은 자의 통치 아래서 기능을 마비 당한 채, 고통 당하는 한 여인의 모습입니다. 죄의 권세가 그를 사로잡은 경우입니다.
주님께서 그녀의 질병에 반대하는 많은 사람들의 곱지 않은 시선에도 불구하고 그녀를 깨끗케 하심은 예수님께서 어두움의 통치, 곧 죄의 통치에서 그녀를 해방시키시고 하나님의 나라 백성으로 회복하시는 구주가 되십니다.

한 변호사의 간증

젊은 나이에 벌써 성공의 길에 들어선 영국의 한 변호사가 있었습니다. 어느 날 그는 영국 의사당 앞에서 비중 높은 변호를 하기로 되어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이 변호사역을 통해 명성을 날릴 수 있는 기회가 왔습니다. 그러나 그 일에 대해 많은 긴장과 부담감을 가진 나머지 지나친 스트레스로 인하여 그만 쓰러지고 말았습니다. 그 이후 출세 가도를 달리던 그의 인생은 점차 망가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정신착란 증세로 정상적인 생활을 유지할 수 없었습니다. 급기야 그는 자신이 더럽고 추한 무가치한 존재라고 자학함으로써 자살까지 하려고 했습니다.
다행히 그는 주변에 그를 불쌍히 여기며 관심을 가진 그리스도인들을 통해서 복음을 알게 되었고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게 됩니다. 자신의 존재를 쓸모 없다고 여기며 자살하려 했던 그가 죽음의 쇠사슬로부터 풀려 나오는 데는 10년이라는 긴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그는 주님께서 자신의 죄를 담당하여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심으로써 더럽고 추한 자신의 삶이 새로운 삶으로 변했다고 믿었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변한 삶의 모습과 그 사랑의 감격을 시로 고백하기 시작합니다.

샘물과 같은 보혈은 임마누엘 피로다
이 샘에 죄를 씻으면 정하게 되겠네
저 도적 회개하고서 이 샘에 씻었네
저 도적 같은 이 몸도 죄 씻기 원하네
속함을 얻은 백성은 영생을 얻겠네
샘솟듯 하는 피 권세 한없이 있도다

찬송가 190장이 바로 그의 간증의 노래입니다.
그는 바로 윌리엄 카우퍼(William Cowper)로서 영국 문학사에 있어서 고전 문학가로 손꼽힐 만한 인물입니다. 그는 스가랴서 13장 1절 "그 날에 죄와 더러움을 씻는 샘이"라는 구절을 읽다가 더러움을 씻는 샘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흘리신 보혈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제 그는 세상의 굴레로부터 영원히 해방된 자유의 몸이 되어 이렇게 찬양합니다.    

날 정케 하신 피 보니 그 사랑 한없네
살 동안 받는 사랑을 늘 찬송하겠네

새사람을 입었으니 이는 자기를 창조하신 자의 형상을 좇아 자식에까지 새롭게 하심을 받는 자니라-골로새서 3:10

우리는 여기서도 회복시키신 주님의 사랑을 만납니다.

2. 외식 신앙에는 회복이 없습니다.

14 회당장이 예수께서 안식일에 병 고치시는 것을 분내어 무리에게 이르되 `일할 날이 엿새가 있으니 그 동안에 와서 고침을 받을 것이요 안식일에는 말 것이니라' 하거늘
15 주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외식하는 자들아 ! 너희가 각각 안식일에 자기의 소나 나귀나 마구에서 풀어내어 이끌고 가서 물을 먹이지 아니하느냐 ? 16 그러면 십 팔 년 동안 사단에게 매인 바 된 이 아브라함의 딸을 안식일에 이 매임에서 푸는 것이 합당치 아니하냐 ?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병 고치는 일에 대하여 분노하는 회당장에 대하여 '외식하는 자!'라고 나무라시는 말씀을 만납니다. 아브라함의 딸을 매임에서 푸는 일이더 중요한 때문입니다.  안식일을 문자적으로 지킨다는 명목하에 열중쉬어 하는 것은 회복이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가장 기뻐하시는 일을 금하는 위선입니다.
위선(Hypocrisy, Hypocrite)이란 자기가 가지고 있지 못하는 덕성(德性), 또는 자질(資質) 등을 가지고 있는 듯이 가장하는 일입니다. 특히 종교인에게 흔한 일로서, 겉으로는 종교적 경건을 가장하고 있으나, 안으로는 세속적이며, 불경건한 바리새인적인 태도를 말합니다.  원래는 무대에서 가면을 쓰고서 연출하는 배우를 가리킨 것으로서, 후에는 위선자(외식하는 자]는 복음서에만 보여지고, 종교적인 의미에서, 외면으로는 아주 종교적인 인물의 역할을 하나, 내면으로는 참된 종교적 정신에 어긋나 있는 자를 가리킵니다. 외식은 의식적으로 행해지기도 했는데(마 6:2, 5, 16, 22:18 기타). 때로는 무의식적으로 행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마 7:5, 막 7:6, 눅 6:42, 12:56 기타). 예수께서는, 의식적이거나 무의식적이거나를 불문하고, 참으로 종교적이 아니면서, 종교적인 체하는 자를 외식 자로 보시고, 엄하게 비난하셨습니다(마 23장). 이런 외식으로는 회복이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마23:25 화 있을진저 !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잔과 대접의 겉은 깨끗이 하되 그 안에는 탐욕과 방탕으로 가득하게 하는도다

외식이라는 말은 복음서의 기록(마 23:28, 막 12:15, 눅 12:1) 외에는, 다만 서신(편지)에 한해져 있습니다(갈 2:13, 딤전 4:2, 벧전 2:1). 바울은 베드로가 유대인을 겁내어, 인간적인 약함에서 [같이 외식하므로](갈 2:13), 바나바도 외식에 말려든 것에 언급하여(갈 2:13), 반성을 촉구하고 있습니다.

갈2:12 야고보에게서 온 어떤 이들이 이르기 전에 게바가 이방인과 함께 먹다가 저희가 오매 그가 할례자들을 두려워하여 떠나 물러가매 13 남은 유대인들도 저와 같이 외식하므로 바나바도 저희의 외식에 유혹되었느니라

그러므로 외식(위선)은 크리스챤이 가장 경계해야 할 부덕(不德)입니다(딤전 4:2, 벧전 2:1).

세계에서 부자로 유명한 록펠러(Rockefeller)는 33세가 되었을 때 최초로 자기 인생에서 100만 불의 순수한 이익을 얻는 백만장자가 되었습니다. 43세에는 미국에서 가장 커다란 회사를 소유했고 53세에는 억만 장자가 되어 세계 최대의 부호(富豪)가 되었습니다.
그런데도 그는 53세까지 행복한 사람이 되지 못했습니다. 그에게는 알로피셔(alopecia)라는 탈모증 비슷한 병이 있었는데 머리카락과 눈썹이 빠지고 몸이 초췌하게 말라 가는 병이었습니다. 어느 날 그는 의사로부터 결정적인 소식을 듣습니다. "이런 상태로 1년을 견딜 수 있을까 싶습니다." 그 선언을 들은 그날 밤 그는 잠을 이루지 못하고 괴로워했습니다.
그 당시 사업은 너무나도 잘돼서 하루에 100만 불을 벌었지만, 그는 먹지도 못하고 자지도 못하는 괴로운 인생을 보내야 했습니다. 그는 순간 이 많은 재산이 무엇을 의미하는가 하는 허무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밤새 괴로워하다가 한 순간 그는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서 "돈은 아무 것도 아니다! 하나님은 모든 것 되신다"라고 소리쳤습니다. 그리고 그는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아 침대 곁에 무릎을 꿇고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기도와 함께 새벽을 맞이한 록펠러의 인생은 그 다음부터 달라졌습니다. 피상적으로 교회에 나갔던 모습은 사라지고 성실하게 교회에 출석하며 진정한 그리스도인이 되었습니다. 그는 신실하게 신앙생활을 시작한지 얼마 지난 후 교회 하나를 지었습니다. 그 교회가 바로 뉴욕에 있는 유명한 리버사이드 교회입니다. 그리고 그는 록펠러 재단을 만들어 가난한 사람들을 돕는 의료사업을 위해서 자기 모든 재산을 쏟아 부었습니다. 이러한 결단을 내린 직후 이상하게도 그는 잘 먹기 시작했고 잠도 잘 자게 되었습니다. 의사들은 그가 거의 55세를 넘기기 어려울 것이라고 판단했지만 이 록펠러는 98세까지 살았습니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마태복음 6:338.

우리는 록펠러를 '외식'이란 말로 쉽게 말할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돈은 아무 것도 아니다! 하나님은 모든 것 되신다"
고 외쳤을 때, 그의 삶은 돈의 매임에서 풀려 하나님의 손에 들리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의 인생은 이제 회복되었습니다. 하나님께 들린 것입니다. 외적인 것을 작게 보고 하나님을 크게 보는 자에게 하나님 나라의 회복하는 역사가 나타납니다.

내적인 죄와 외적인 외식이 극복되는 곳에서
3. 하나님나라 회복은 시작됩니다.(18-21)


18 그러므로 가라사대 `하나님의 나라가 무엇과 같을꼬 내가 무엇으로 비할꼬 19 마치 사람이 자기 채전에 갖다 심은 겨자씨 한 알 같으니 자라 나무가 되어 공중의 새들이 그 가지에 깃들였느니라'

주님께서 위 사건을 통해서 알려주시고자 원하신 메시지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나라 회복이었습니다. 잃어버린 아브라함의 딸을 죄의 굴레에서 끊어 하나님 나라 가족으로 받아들이신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회복은 급진적이고 혁명적인 방법을 통해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겨자씨의 성장과정처럼, 누룩이 빵을 부풀리는 일처럼 사람들이 깨닫지 못하는 은밀한 가운데 일어나는 것입니다.
겨자는 팔레스티나에서 자생(自生) 또는 재배되었습니다. 잘 키우면 줄기높이 5m까지 되고, 4-6월경 황색의 십자화(十字花)가 피는데, 그 씨앗은 흑색이고, 중요한 상품으로 되었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성장의 현저함을 나타내는 비유에(마13:31, 막 4:31, 눅 13:19), 또는 신앙의 힘이 이적적 결과를 초래하는 대담한 비유에 인용되었습니다(마 17:20, 눅 17:6). [모든 씨보다 작은 것이로되](마 13:32)란, 세계 최소의 씨라는 것이 아니라, 당시 보통 일반의 씨앗 중에서 가장 작은 것. 천국은 처음은 미소(微小)의 표본 같은 것이지만, 왕성한 생장력을 가집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복된 날을 사단에게 오랫동안 매였던 아브라함의 딸을 구원하신 일로 하나님 나라 회복을 진행하십니다. 예수님은 겨자씨처럼 작아 보이셨습니다. 그래서 회당장조차도 예수님을 크게 보지 않으셨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의 아들이셨습니다. 겨자씨가 채전에 심을 때는 너무 작아서 무엇이랴 싶지만 자라면 5m까지 자라는 것처럼, 하나님 나라의 시작은 미미해 보이지만 결국 엄청난 크기로 자랄 것입니다. 당시 12명의 제자로 출발하였지만, 지금은 20억의 기독교인을 헤아리는 만큼 자란 것입니다.
누룩의 비유도 하나님 나라의 회복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내적 회복이지요.

20 또 가라사대 `내가 하나님의 나라를 무엇으로 비할꼬 21 마치 여자가 가루 서 말 속에 갖다 넣어 전부 부풀게 한 누룩과 같으니라' 하셨더라

누룩은 밀을 굵게 갈아 반죽하여서 띄운 것으로, 빵을 만들 때 반죽한 가루 속에 넣어 부풀게 하는 발효소(출 12:15, 19, 13:7)입니다. 겨자씨 비유가 하나님 나라의 양적인 회복이라면, 누룩의 비유는 하나님 나라의 질적인 회복입니다.

찰스 콜슨의 획기적인 전환

찰스 콜슨(Charles Colson)은 미국 닉슨 대통령 시절에 대통령 보좌관으로 있으면서 정치적인 권력을 누렸던 사람입니다. 그는 머리가 비상할 뿐더러 지독할 정도로 냉철한 사람으로 유명했습니다. 그런 그가 워터게이트 사건에 연루되어 옥에 갇히게 되었습니다.
그 때 상원의원 세 사람(헤트필더, 휴스, 퀴에)이 누룩이 됩니다. 그들은 콜슨에게 복음을 전하고자 애썼습니다. 찰스 콜슨이 투옥되자, 그들은 그를 위해 날마다 기도 시간을 정하여 함께 기도하였고 그를 찾아가서 위로하며 책을 주었습니다.
찰스 콜슨의 형 집행기간이 7개월 가량 남았을 때의 일입니다. 어느 날 평상시처럼 기도하는 가운데 퀴에의 마음에 그를 위해서 대신 옥살이를 해야겠다는 감동이 생겼습니다. 변호사였던 퀴에는 특수 법조문 안에 다른 사람을 대신하여 형기를 치를 수 있다는 내용이 언급되었다는 사실을 알아내고 법원에 제안해 보았지만 거절당하고 맙니다.
그러나 퀴에의 노력은 헛되지 않았습니다. 콜슨이 마침내 감옥에서 마음을 열고 복음을 받아들인 것입니다. 믿는 자들이 값없이 베푼 사랑 앞에 교만하기 그지없던 그의 자아가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자신도 누군가에게 사랑을 베풀어야겠다는 마음을 먹습니다. 남아 있는 형기 동안 그가 사랑을 베풀 수 있는 대상은 오로지 동료 죄수들 밖에 없었습니다. 그때부터 그는 어떻게 하면 저들을 사랑할 수 있을까하고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죄수들이 제일 싫어하는 빨래를 자청해서 하기 시작했는데 처음에 죄수들은 그런 그의 태도를 믿지 못하고 다른 속셈이 있을 것이라고만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죄수들은 자신들의 반응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한결같이 봉사하는 그의 모습을 보고 하나 둘씩 감동을 받기 시작합니다. 누룩이 퍼져나가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과 더불어 기도 모임을 시작하고 사랑의 교제를 나눕니다. 콜슨은 그의 자서전에서 "평생 동안 집안에서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던 나는 저들을 사랑하면서 인생의 진정한 행복을 발견했다"고 고백할 만큼 비참할 수밖에 없는 감옥에서 사랑을 베풀며 지냈습니다. 그리고 그 때 그는 일평생 죄수들을 위해서 살겠다는 다짐을 하게 됩니다.
그는 형기를 마치고 나와서 '거듭나기'(Born Again)라는 책 한 권을 발행했는데, 그 책은 한 때 미국 사회의 커다란 화젯거리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감옥에서 결심한대로 "교도소 선교회"(Prison Fellowship)라는 단체를 조직해서 죄수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일에 힘씁니다. 그후에 그는 종교계의 노벨상이라고 불리는 템플턴상을 받게 됩니다.
어느 외국잡지에 탬플턴상을 수상한 찰스 콜슨에 대해서 이렇게 평가하였습니다.
"현재 미국의 가장 건강한 사상적 영향을 끼치고 있는 저술가이자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통해서 가장 강력한 영향을 끼치고 있는 전도자, 그리고 가난하고 억눌린 사람들의 가장 따뜻한 이웃인 그가 새로운 이웃이 되어 우리 곁에 돌아왔다."
어느 누구도 그가 그런 존재가 되리라고 상상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를 변화시킨 것은 세 사람이 나누어 준 주님의 사랑이었습니다.  
무엇보다도 열심으로 서로 사랑할지니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  -베드로전서 4:8


마무리하는 말

겨자씨 비유가 하나님 나라의 양적인 회복이라면, 누룩의 비유는 하나님 나라의 질적인 회복입니다. 주님께서는 오늘 본문에서 하나님 나라를 회복하시는 모습을 보여 주십니다.

사랑하는 서머나 교우 여러분,
주님의 관심사는 우리 안에서 하나님 나라가 회복되어 가는 것입니다. 겨자씨처럼 우리 믿음이 작을지라도, 하나님께서는 우리 안에서 하나님 나라를 회복하시기를 원하십니다. 내 인격 안에서, 가정 안에서, 우리 교회 안에서 하나님의 나라가 회복되기를 그렇게도 원하십니다. 이 일로 기도를 시작해보지 않으시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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