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학생들 사이에 유행하는 유머 중에는 이런 퀴즈가 있습니다.
'한 버스가 어떤 길을 가다가 큰 교통사고를 내서 그 안에 타고 있던 많은 승객들이 죽었는데 그들 중 가장 억울하게 죽은 사람은 누구일까요?'
버스가 출발할 때 놓칠까봐 급하게 달려와서 간신히 버스를 탄 사람,
웃기지요. 그런데 이 웃음 뒤에 결코 웃어넘길 수 없는 진리가 그 속에 숨어 있는 것을 우리는 발견합니다. 이런 비극이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에 보편적으로 일어나고 있기 때문입니다.
세상 것을 놓치지 않으려고 달려가 잡은 그 일로 인하여 우리가 죽음을 당하지 않느냐는 것입니다.
앞에서 치병(治病)의 이적으로 하나님 나라가 도래하기 시작했음을 보이신 후, 그 나라의 성격과 주인을 비유로 말씀해 주십니다.
1. 하나님의 나라는 시작이 다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겨자씨와 누룩 같이 시작이 매우 작습니다. 외부로 잘 나타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세상은 시작이 요란합니다. 그러나 그 끝은 창대하지 못합니다. 세상은 결코 우리에게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해 주지 못함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예화] 세상 나라와 그 부(富)의 허무함
미국 역사 중에 모든 미국인들의 생활에 경종을 울렸던 사건이 하나 있었습니다. 1923년 어느 날 시카고에 있는 에드워드 비치호텔에서 그 당시 미국 최고의 부자라고 불리는 7명의 사람이 모였습니다. 어느 정도의 부자냐 하면 그들의 전 재산을 모두 합칠 때 미국 전체의 국고를 능가할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어느 신문 기자가 시카고에 모였던 그 날로 시작해서 정확히 25년이 지난 후의 그들의 생애가 어떻게 되었는지 추적하여 발표를 했습니다.
첫 번째 사람이었던 강철회사 사장, 찰스 슈업은 25년 후 무일푼의 거지가 되어 죽었습니다.
두 번째 사람인 알써 카튼은 밀농사로 거부가 된 사업가였는데 그 역시 파산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쓸쓸하고 고독한 가운데 혼자 임종을 맞이하고 죽었습니다.
세 번째 사람인 리차드 위트니는 뉴욕 은행의 총재였지만 자기를 둘러싼 여러 가지 상황이 잘못되어 감옥에서 고독하게 여생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네 번째 사람인 엘버트 홀은 미국의 재무장관까지 지냈지만 감옥에서 막 풀려 나와 집에서 자신의 죽음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다섯 번째 사람인 웰스프리트의 회장이었던 J. C. 리버모아는 인생의 끝을 자살로 마쳤습니다.
여섯 번째 사람인 국제은행 총재였던 리온 프레이져 역시 자살로 자신의 삶을 마쳤습니다.
일곱 번째 사람인 이반 크루컬은 부동산 업계의 거부였지만 자살 미수로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었습니다.
그들의 인생은 미국인들에게 부의 허무를 알려주는 커다란 충격과 교훈이 되었습니다.
겨자씨는 팔레스틴에서 자라는 1년생 식물로 맵고 향기로운 맛을 지녔다. 이 씨는 굉장히 작지만 성장하면 1.2m∼2.7m나 되는 큰 나무가 된다. 이는 하나님 나라의 외적 성장을 비유한 것입니다.
누룩은 인간의 마음 속에 간직된 하나님의 복음이 점차 퍼져 사람을 변화시키는 교회의 내적 성장을 상징합니다.
그러나 하나님 나라는 겨자씨나 적은 양의 누룩과 같이 미약하게 시작되고 있지만 종말에는 완전한 승리에 이르는 역동성을 가집니다. 창대합니다.
예수님 제자들은 당시 겨자씨와 같았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오늘날 세계를 가득채우고 있습니다.
예화] 어떤 할머니의 독특한 전도법
아프리카에서 선교를 하시던 선교사님께서 어떤 원주민 할머니의 독특한 전도법에 감탄하여 말씀하신 내용입니다. 이 할머니는 문맹에다가 시각 장애를 가지고 계신 분이셨다고 합니다. 그런 분이 어떻게 전도를 기가 막힐 정도로 잘 할 수 있었을까? 할머니의 독특한 전도법은 이러했습니다.
할머니가 예수님을 영접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어느 날 선교사님을 찾아와서 대뜸 이렇게 묻는 것이었습니다. "선교사님, 요한복음 3장 16절이 성경 어디에 있습니까?" 선교사님은 영문도 모른 채 할머니의 요구대로 성경을 찾아 빨간 줄을 그어주었습니다. 선교사님은 글을 읽을 수도 볼 수도 없는 할머니인데 왜 그런 부탁을 할까 의아하기만 했습니다.
그날 이후부터 할머니는 전도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할머니는 날마다 학생들이 수업을 마칠 시간쯤에 동네 학교 정문 앞으로 나갔습니다. 그리고 수업을 마치고 나오는 학생들에게 "학생, 나 좀 도와줄 수 있겠어?"라며 말을 건넵니다. 앞을 보지 못하는 할머니가 도와달라고 하니 학생들은 거절 못하고 "뭘 도와드릴까요?"라며 다가옵니다.
"사실은 이 할미가 좋아하는 책이 있는데 눈이 잘 안보여서 볼 수가 있어야지. 그래서 말인데 여기 빨간 줄 쳐 놓은 부분만 좀 읽어주겠어?"
그러면 학생은 요한복음 3장 16절을 할머니가 잘 들을 수 있도록 또박또박 읽어줍니다.
"정말 고마우이. 그런데 학생은 방금 읽은 말이 무슨 뜻인지 알겠어?"
"잘 모르겠어요."
"내가 가르쳐줄게. 이 말씀은 바로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셨다는 거야. 나와 학생을 사랑하셔서 그분의 하나밖에 없는 외아들인 예수님을 주셨다는 거야. 그런데 우리가 그 예수님을 믿으면 죄를 다 용서함 받고 자녀가 되며 영생을 얻게 된단다."
할머니의 독특한 전도법은 이러했던 것입니다. 할머니로 인해 많이 사람들이 예수님을 알게 되었고 그 가운데는 그 나라의 기독교 지도자로 성장한 사람도 많이 있다고 합니다.
비록 겨자씨와 같지만 누룩처럼 그 사회를 맛있게 한 복된 존재입니다.
2. 하나님의 나라는 문이 다릅니다.
하나님 나라로 들어가는 문은 좁은 문입니다.
시간적으로나 공간적으로 제한되어 있습니다.
사람들에게도 제한적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좁은 문을 통해 들어가는 소수의 것입니다.
문이 좁다는 것은 겸손을 의미합니다. 죄아래 사는 사람들은 교만합니다. 가라지와 밀은 처음엔 구분이 잘 가지 않습니다. 그러나 자라가면서 차이가 납니다. 밀은 자라 열매가 맺을수록 고개를 더 깊숙이 숙입니다. 그러나 가라지는 고개가 더 뻣뻣하여 집니다. 가을이 오고 추수기가 되면 가라지를 창고에 들이는 사람은 없습니다. 땔감으로 사용하지요. 그러나 겸손이 열매를 맺은 밀은 창고에 들입니다.
가지가 땅에 닿을 만큼 가지를 많이 맺은 과일 나무는 겸손이 얼마나 아름다운 미덕인가를 그림처럼 보여 줍니다.
하나님은 겸손한 신앙인을 귀히 사용하셨습니다.
다윗은 그 많은 시편을 기록하면서도 골리앗을 물리친 내용을 적지 않았습니다.
복음서 기자들은 그 복음서에서 자기 이름을 지웠습니다. 베드로는 자기 위대함을 추켜세우는 대신 인격에 누가 되는 예수님 부인한 이야기와 실패한 기록을 마가복음에 많이 남겼습니다.(제롬) 누가가 누가 복음과 사도행전을 기록하였지만 자기 이름을 기록하지 않았습니다.
세례요한은 자기를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라 하였고 자기는 그의 신들메를 풀기도 감당치 못하겠노라 하였습니다.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 합니다.
인도 총독의 저녁식사에 초대받은 윌리엄 케리에게 귀족 계급의 장성이 멸시하는 질문을 했습니다. "전직이 구두제조공이었다면서요?"
"아니요. 저는 구두 수선공이었을 뿐입니다."
십자가를 지시기 전날까지 예수님의 제자들은 s가 큰가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그 슬픈 날 밤에 종처럼 수건을 허리에 동이고 그들의 발을 씻기셨습니다.
문이 좁다는 것은 자기 십자가를 지고 산다는 의미입니다.
문이 좁다는 것은 자기 부인의 고통을 통과한다는 말입니다.
더 높으신 분의 부름
현대 선교의 아버지라 불리는 윌리암 케리(William Carey)는 구두 수선공으로 일하면서 독학을 했습니다. 독학을 하면서도 그는 여러 나라의 언어를 꾸준히 공부하여 능숙하게 구사할 수 있는 능력까지 키웠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케리의 친척동생이 자신이 들어가기로 한 옥스퍼드의 단과대학에 케리를 데리고 갔습니다. 그들은 단과 대학의 한 유명한 어학교수를 찾아가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대화 중에 그 교수는 케리의 어학 실력에 주목하게 되었습니다. 그 교수는 케리에게 "당신이 이 학교에 들어오면 이 나라 역사에 큰 영향을 미칠 것이오. 그리고 이 나라의 여왕께서도 당신을 기뻐하실 것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분의 말에 케리는 이렇게 거절하였습니다. "교수님께서는 영국이라는 나라의 여왕을 말씀하셨는데, 제게는 이미 저의 전 생애를 건 한 나라가 있습니다. 그 나라는 바로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저는 여왕보다 더 높으신 분의 부름을 받았고, 그분을 향한 저의 충성은 변할 수 없습니다."
결국 케리는 그 교수의 제의를 거절하고 세계 선교를 위해서 인도로 떠났습니다.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좇아가노라-빌립보서 3:14
3. 구성원이 다릅니다.
또한 그 나라는 인간적인 생각에 의하여 좌우되는 것이 아닙니다. 유대인이라 하여서 보장되지 않습니다. 예수님과 함께 먹고 마시며 그 가르침을 받았다하여 갈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친분관계나 인정으로 될 일이 아닙니다. 하나님께 합당하지 않으면 들어갈 수 없습니다.
한편 유대인과 전혀 상관이 없는 동서남북으로부터 온 이방인들이라도 그 나라의 잔치에 참여할 길이 열리게 됩니다. 이방인 신자들을 위한 하나님의 고려가 있습니다(29-30절).
평화의 제물
돈 리처드슨(Don Richardson) 선교사로부터 들은 간증입니다. 인도네시아에 속한 큰 섬인 이리안자야에는 식인종이라고 알려진 사위 족속 부락이 있었습니다. 이들은 워낙 싸움을 즐기고 공격적인 성향이 강한 족속이라 복음을 전하는데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더욱이 이들은 배반을 미덕으로 여겼기 때문에 오히려 예수님보다 가룟 유다를 더 받아들이고 영웅으로 떠받드는 웃지 못할 일까지 벌어졌습니다. 선교사님은 이런 사람들에게 어떻게 복음을 전할 수 있을까 고민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이들의 전통의식을 바라보다가 아주 멋진 영감을 하나 얻었습니다. 이들에게는 두 부족이 싸우다가 한 부족이 지면 진 부족의 추장이 자기 아들을 상대 부족에게 제물로 갖다 바치는 전통이 있었습니다. 그 전통을 치름으로써 전쟁은 끝나고 평화가 이루어졌던 것입니다. 선교사님은 그 모습을 보고 요한복음 3장 16절 말씀을 생각해 냈고 그 의식이 행해질 때 이 말씀을 전하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여 평화의 아이를 주셨으니 이는 아이가 제물로 바쳐짐으로써 평화가 이루어지는 것처럼 그 평화의 아들을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기 위함이라."
그때부터 이 사위 족속은 복음을 깨닫게 되었고 점차 싸움을 즐기며 공격적이던 그들의 모습이 변하기 시작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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