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가는 말
하나님 나라의 잔치를 마련하신 주님께서는 그 백성을 잔치에 모으시기 원하십니다.
(34)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선지자(先知者)들을 죽이고 네게 파송(派送)된 자(者)들을 돌로 치는 자(者)여 암탉이 제 새끼를 날개 아래 모음 같이 내가 너희의 자녀(子女)를 모으려 한 일이 몇번이냐 그러나 너희가 원(願)치 아니하였도다
이를 아는 백성들은 그 길을 부지런히 달려갑니다.
조선 왕조 초기의 명상인 황희 정승이 길을 가다 농부에게 "산너머 마을에 가려하는데 일몰 전에 갈 수 있겠습니까?"라고 물었다.
농부는 대답하지 않고 부지런히 일손만 움직였다. 황희는 바빠서 그런가 보다라고 생각하며 종종걸음으로 걸어갔다.
그런데 조금 후 농부가 부르더니
"일몰 전에 가겠소이다"라고 소리쳤다.
"아까는 가만있더니 왜 이제서 대답하는 거요?"
황희가 뒤돌아 서서 묻자 농부가 말했다.
"어르신의 걸음 속도를 봐야 말씀드리지 않겠습니까."
하나님의 부르심을 따라 자신의 길을 간다는 것은 의미 있는 일입니다.
1. 이 사역을 이루시려고 가시는 주님의 길은 험합니다.
33)그러나 오늘과 내일과 모레는 내가 갈 길을 가야 하리니
예수님께서는 이런 인생의 가시밭길을 앞서 걸어가셨습니다.
예수님을 죽이려 하는 위정자 헤롯을 봅니다.
헤롯은 세례 요한을 죽인 바로 그 헤롯입니다. 갈릴리와 베뢰아 지방을 다스리던 분봉왕 헤롯 안티파스(B.C.4-A.D.39)! 그는 동생 빌립의 아내를 취하고 그 죄를 지적하는 세례요한을 죽인 장본인입니다(마 14:1-12;막 6:16-28). 공의도 없고, 법도 없는 그 헤롯이 예수님을 죽이려 합니다.
그 헤롯이 왜 예수님을 죽이려 합니까?
그가 밥먹듯이 짓는 죄를 예수님께서는 짓지 않으실 뿐만 아니라, 죄문제를 해결하시는 메시야시기 때문입니다. 깨끗하시기 때문입니다. 이런 예수님의 권세가 분봉왕 헤롯을 당황하게 하였습니다. 그는 생각하였습니다.
'요한이 살아났는가?'
요한은 내가 목을 베었거늘
이제 이런 일이 들리니
이 사람이 누군고?
한 위정자의 황당한 배척이 선하게 나타나 있습니다.
선지자를 원치 않는 예루살렘 성읍을 봅니다.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선지자들을 죽이고 네게 파송된 자들을 돌로 치는 자여. 암탉이 제 새끼를 날개 아래 모음 같이 내가 너희의 자녀를 모으려 한 일이 몇 번이냐? 그러나 너희가 원치 아니하였도다.
예수님을 배척하는 사람들은 정치가 뿐만이 아닙니다. 종교 지도자들이 예수님을 배척하고 있습니다. 예루살렘의 산헤드린 공회에서는 이미 예수를 죽이기로 가결하였습니다. 이러한 사실을 아신 예수님은 자신이 예루살렘에서 죽을 것을 예언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선지자를 배척하고 메시아를 죽인 예루살렘이 황폐될 것을 가슴 아파하고 계십니다.
예수님을 방해하는 영적인 권세도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지상에서) 귀신을 좇아내며 병을 고치십니다. 하나님 나라의 권세를 우리는 주님의 사역에서 만납니다.
예수님께서는 열두 제자들에게 귀신을 좇아내며 병을 고치는 권세 주십니다. 이는 '하나님 나라!'와 그 복음을 전파하는 일이 연결되어 있습니다. 추수할 것은 많되 일꾼은 적다고 말씀하시면서 제자들을 보내십니다. 예수님께서는 거기 있는 병자들을 고치고 말하기를 하나님의 나라가 너희에게 가까이 왔다! 하라(10:9)하십니다.
사역을 성공적으로 마치고 기뻐 뛰는 제자들에게 귀신들이 너희에게 항복하는 것으로 기뻐하지 말고 너희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으로 기뻐하라(10:20) 하십니다.
"내가 만일 하나님의 손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내는 것이면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임하였느니라(11:20)
정치가의 방해도, 종교지도자들의 간교한 술책도, 악한 어두움의 권세의 방해를 모두 극복하고 예수님께서는 변함없이 그 길을 걸어갔습니다. 주님께서는 환난이 있다하여 그 길을 변개하지 않으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가셨습니다. 하나님 나라를 온전히 이루기 위한 길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겨자씨와 누룩에 비유하시고
들어갈 좁은 문까지 알려주시고
동서남북으로 와서 그 나라의 잔치에 참석할 것을 말씀하신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를 온전히 이루기 위한 길에서 비껴가지 않으셨습니다.
예화] 크리스쳔 리거 목사님이 계십니다. 그는 엄청난 추락을 현실 속에서 경험해 본 사람입니다.
크리스쳔 리거는 독일 고백교회 목사로 히틀러에 혐력할 수 없었습니다. 이로 인하여 다카우에게 4년 간 감옥생활을 하였습니다.
1941년 7월, 그는 아내로부터 한 통의 편지를 받았습니다. 맨 밑에 행4:26-29 말씀이 적혀 있었습니다. 베드로와 요한의 이 설교는 그에게 별로 감동을 주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심문을 받기 위해 떨고 있는 그에게 그와 같이 잡혀와서 심문을 받고 나오는 처음 보는 목사님이 그의 주머니에 무엇인가를 넣어주고 떠났습니다. 그 성냥 갑 속에는 놀라웁게도 행4:26-29 말씀이 적혀 있었습니다.
그는 그 때, 깨달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여전히 살아계시며 힘을 주시며 신뢰할 수 있는 분이심을 증명해 주셨다고 말입니다. 그리고 다카우가 연합군에 접수되는 그날까지 기적적으로 살아 남았습니다.
그는 그날을 생각하면서 지금도 강제 수용소의 예배당에서 대학살의 생존자로 한 주제를 증거하며 살아갑니다. 그는 지금까지 변함없이 증거하는 메시지가 있습니다.
'인간 악행의 구렁텅이 보다 하나님의 사랑이 더 깊다!'
헤롯의 어떤 방해 공작도, 백성들의 배척도 하나님의 구속 경륜을 방해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일정표는 일점 일획도 변개됨 없이 진행됩니다. 누구도 그 일정표를 바꿀 수 없습니다.
2. 완성된 제 3일이 있습니다.
모든 사역을 오늘과 내일 마치신 후, 제 삼일에 십자가에 달리심으로 '하나님의 나라'가 온전하여집니다. 하나님의 구속경륜은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 완성됩니다.
보라 너희 집이 황폐하여 버린 바 되리라.
하시지만 그날은 예루살렘의 끝이 아닙니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가 계십니다. 그 메시야를 찬송할 그날이 있습니다. 이는 종말에 예루살렘이 메시야를 인정하고 그를 찬송할 것을 보여 준 것입니다. 예루살렘에서 죽으시고 제삼일에 부활하실 것을 암시하심으로 하나님 나라의 구원은 완성됩니다. 자기를 죽인 자까지 아끼시며 끝까지 사랑하시는 인자(人子)의 자비로우심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지난주간에 우리는 상당히 당혹스런 사건을 만났습니다. 우리에게 다가온 사건은 많은 생각을 하기에 충분하였습니다. 어떤 사람은 가장 믿음으로 살려고 하는 윤종칠 집사님, 최영철 목사님 가정에 왜 이런 사건을 주시는가 의아하게 생각하는 사람도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저는 이 기간에 복음주의 최고의 작가라고 말하기도 하는 필립 얀시의 '내가 고통당할 때 하나님은 어디 계십니까?'란 책을 읽었습니다.
'모든 고난은 우리 죄와 관련이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성경은 단호하게 No!라고 선포합니다. 이는 우리가 이 책에서 밑줄을 그으면서 읽을 수밖에 없는 사실입니다.
예수님께서 그 시대의 어떤 사람보다 죄가 많아서 그 모진 십자가 형틀을 지셨다고 믿는 사람은 없습니다. 욥기에 장장 42장이란 방대한 양의 변론을 통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의 요지는 욥의 죄와 고난은 별개의 문제라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11장은 성공적인 믿음의 용사들을 많이 싣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매맞아 죽었습니다. 채찍에 맞았습니다. 옥에 갇히고, 돌에 맞고, 광야에서 굶어 죽습니다. 톱으로 켜 죽임을 당합니다.
이는 성경이 고난을 죄로부터 분리시킴을 이야기해 줍니다.
하나님께선 고통을 통해서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고통을 무릅쓰고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그를 깨닫게 하기 위해서 고통을 사용하실 수 있다(필립 얀시) 합니다.
알베르 까뮈가 쓴 '페스트'란 책에는 파눌루 신부의 설교에 이렇게 말합니다.
'어린아이들의 고난은 우리들의 쓴 빵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빵이 없다면 우리의 영혼은 영적 굶주림으로 죽고 말 것입니다.'
미국의 세계 무역 센타가 무너진 사건 후로 미국 교회는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께로 돌아오고 있다는 통계가 나오고 있습니다. 성경책 판매부수가 30% 늘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10% 이상의 교인들이 증가했다는 기사를 봅니다. 하나님께선 미국인들의 고통을 통해서 바로 우리에게 말씀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제 3일에 온전히 이루시는 주님을 끝까지 신뢰하고 살아 승리하는 일은 신앙인만 가진 비밀입니다.
맺음말
아빠는 매독환자요, 엄마는 폐결핵 환자인 부부가 있었습니다.
첫째 아이는 장님이었습니다.
둘째는 출생직후 사망하였습니다.
셋째는 귀머거리요 벙어리였습니다.
넷째는 폐결핵 환자였습니다.
그런데 다섯 번 째 아이가 들어섰습니다.
여러분이 이런 상황에 있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이렇게 하여 태어난 아이가 베토벤이었습니다.
인생 길은 많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이 가는 길이라고 해서 모든 길이 우리 성도들이 가야할 길은 아닙니다.
배척할지라도 예수님처럼 가야할 길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를 지시기까지 끝까지 가셨기 때문에 제 3 일에 온전히 이루셨습니다. 베토벤은 자신들의 연약함을 돌아보지 않고 하나님의 섭리를 끝까지 신뢰한 부모의 품에서 태어납니다.
예화] 워너메이커의 꿈
필라델피아에 죤이라는 13세의 소년이 있었다. 벽돌공장에서 노동하는 아이였다. 그런데 죤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것은 교회로 들어가는 길이었다. 비가 조금만 내려도 진창길이 되어 몹시 불편했다. 그러나 어른들은 대책을 안세웠다. 자기 집 같으면 벌써 훌륭하게 벽돌이나 돌로 포장 되었을 것이다.
어느 주일 죤은 결심했다.
이미 죤의 눈에는 벽돌로 포장된 길과 그리로 들어가는 많은 아이와 어른들이 보였던 것이다. 죤은 7센트의 임금 속에서 날마다 벽돌을 한 장씩 자기 공장에서 사서 깔기 시작했다. 이 길과 넓은 길을 죤이 혼자 완성하려면 2년이 걸릴 것이었다.
그러나 기적은 1개월내에 일어났다. 죤의 모습을 보고 이기적이며 형식적이었던 신앙생활을 반성한 교인들은 길뿐이 아니라 낡은 교회당을 헐고 신축하기로 결의했던 것이다.
이 소년의 이름은 죤 워너메이커이다. 미국의 백화점왕이 되었고 미국과 전세계에 YMCA 건물을 수없이 지어 주었는데 서울 종로 2가에 있던 Y 벽돌건물도 워너메이커의 기증이었다. 꿈을 가진 소년. 진창 속에 아름다운 벽돌 포장도로를 본 소년. 구름을 뚫고 무지개를 본 소년이었다. 워너메이커씨가 평생에 지녔던 표에는 세 개의 T자이다. 생각하고.실천하고.
하나님을 믿자(Thinking, Trying, and Trusting in God)이다.
참으로 좋은 크리스천의 표어이다.
(노하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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