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종교개혁 주일입니다. 루터와 칼빈 같은 개혁주의 신앙의 용장들은 외쳤습니다.
"Sola Gratia, Sola Fide, Sola Scriptura!"
1] 교황과 전통 중심에서 하나님 말씀, 성경 중심으로
2] 인간의 행위 중심에서 하나님의 은혜와 믿음 중심으로
개혁자들은 이런 신앙의 본질 회복을 위해 목숨을 걸고 종교개혁을 단행하였습니다. 개신교는 이 숭고한 정신을 기념하기 위해서 9월 마지막 주일을 종교 개혁일로 정하였습니다.
우리는 오늘 성경 본문에서 이 귀한 개혁 정신이 예수 그리스도께 뿌리를 두고 있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이 개혁 정신을 어떻게든 이 세대에 꽃피울 의무가 있음을 깨닫게 됩니다.
박윤선 목사님은 다음과 같은 말씀을 남겼습니다. "개혁이란 자신에게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개인주의를 따라 우리 모두는 하나님 앞에 바로 서야 한다. 대개의 경우 인생은 일생동안 자신의 문제 하나를 해결하지 못한 채 죽는다"라고
나란 인생은 어디서부터 개혁을 해야 할지 하나님 말씀으로부터 답을 찾을 수 있다면 그 사람은 복된 사람입니다.
1. 예수님 당시에도 개혁해야 할 일이 있었습니다.
본문 배경은 안식일입니다. 안식일은 하나님께서 거룩하고 복되게 구별하신 날입니다. 유대 사람들은 이 한날, 일손을 멈추고 경건한 시간으로 채웠습니다.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의 미풍양속 중에는 손님 접대가 있었습니다. 결혼 예식은 물론이고 생일 때 같은 좋은 날은 잔치를 배설하고 손님을 초대하였습니다. 한 주일 전에 초청장을 보내고, 잔치하는 그날, 하인을 다시 보내 잔치에 오실 분들을 다시 모셔오도록 하였습니다.
바리새인의 두령은 안식일인 그날 식탁을 어느 때보다 풍성하게 차린 후, 예수님을 식사에 초대하였습니다. 많은 사람들 또한 식사에 초대되었습니다.
주님에게 있어서의 모든 기회는 다 메시야로서의 사명을 수행하는 기회로 삼으시고 어떤 사람, 어떤 장소, 어떤 때라도 사양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만큼 주님은 그의 사역에 자신을 가지고 계셨으며, 그렇게 하실 수 있는 능력을 구비하고 계셨던 것입니다. 주님에게 있어서 모든 상황은 메시야적 기회였습니다. 주님은 어떤 환경에서도 그 환경에 지배당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환경을 지배하시고, 또 거기서 구속사역을 수행할 수 있으셨던 분이십니다.
그 가운데, 고창병을 앓고 있는 사람이 있습니다. 몸에 물이 고여 부어오르는 병으로 몸이 썩어져 가는 사람입니다. 당시 많은 사람들은 고창병이 하나님의 저주를 받은 병으로 생각하였습니다. 고창병 환자까지 잔치에 등장하는 것을 보면, 그날의 잔치는 매우 의미 있는 자리였다고 생각이 됩니다.
예수님이 계신 안식일의 잔치입니다.
연약한 고창병자가 초대된 안식일의 잔치입니다.
하나님의 축복이 넘칠 수 있는 조건을 충분히 갖춘 잔치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모임을 가질 때마다 이런 복된 잔치 자리가 되도록 기도하시길 바랍니다.
2. 종교인들에게 개혁해야할 일이 있었습니다.
이는 당시 종교인들의 중추적 위치에서 그들을 이끌어 가던 바리새인들의 행태입니다.
1] 예수님께 대한 시각이 개혁되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그 집에 들어오실 때부터 그들은 엿보고 있습니다. 그들은 그 잔치의 복의 근원이신 예수님께 대한 비뚤어진 시각을 가지고 노려보고 있습니다. 메튜 헨리는 이 상황을 이렇게 진단하였습니다.
'그리스도께서 그들에게 '안식일에 병 고쳐 주는 것이 합당하냐 아니냐'하고 그들의 의견을 물으셨을 때 그들은 그것이 옳다고도 또는 그르다고도 대답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들의 의도는 그에게 가르침을 받으려는 것이 아니라 그를 비난하려는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병 고쳐 주는 것이 합당하고 말하지 않았으며 또한 수치스러워 그것이 합당하지 않다고 말할 수도 없었다. 선한 사람들은 종종 그들의 박해자들까지도 합당하고 선하다고 인정할 수밖에 없는 일을 행함으로 오히려 박해를 받게 된다. 그리스도께서 수많은 선행을 베푸신 바로 그 사실 때문에 그들은 그와 그의 이름에 돌을 던졌다.'(메튜 헨리)
복의 근원이신 예수님께 대한 비뚤어진 시각은 개혁되어야 할 첫 때 대상입니다.
20세기의 기적(이동원 목사의 짧은 이야기 긴 감동)
저는 여러 해 전에 유럽을 방문했다가 독일에 있는 선교사님 한 분을 만났습니다. 그 분은 독일에 주둔하면서 공산주의가 팽배한 동구권에 들어가서 성경을 전달하고 전도하는 일을 하셨던 선교사님이셨습니다. 늘 성경을 숨겨서 들어가고 전달하는 일을 했는데, 이 분이 한 번은 기도하다가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내가 하나님의 일을 하는데, 좀 당당하게 성경을 가지고 들어갈 수 없나.' 그래서 보통 때는 007 작전처럼 성경을 숨겨서 들어가는 작전을 했는데, 기도가운데 담대함이 생겨 배짱 좋게 가방에 성경을 잔뜩 집어넣고, 헝가리 쪽으로 들어갔습니다.
경계선상에서 세관을 통과하는데, 세관 관원이 이렇게 물었습니다. "신고할 물품이 있으십니까?" 그래서 처음으로 "예, 있습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뭡니까?"라고 묻는 세관 관원의 물음에 선교사님은 가방을 열면서 "성경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랬더니 세관이 눈이 동그래지면서 "이것이 왜 신고할 물품입니까?"라고 물었습니다. 선교사님이 "이게 워낙 비싸서요"라고 말하자 "얼마나 비쌉니까?"라고 되묻습니다. 그때 선교사님은 침착하게 "이건 너무 비싸서 돈으로 환산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이 책에 있는 메시지는 사람들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고, 평화가 없던 사람들에게 평안을 주고, 죄 속에 빠져있던 사람들에게 용서와 구원을 주는 말씀이 이 안에 들어있기 때문입니다"라고 당당하게 전했습니다. 그러자 세관은 "그 책 나 하나 주시오"라고 하면서 나머지는 그냥 들고 들어가라고 했습니다.
할렐루야! 이 분이 막 들어갔다가 나와서 저를 만나자 흥분된 어조로 "목사님, 기적은 20세기에도 가능하다는 사실을 체험했습니다"라고 말합니다. 여러분, 기적이 20세기에도 가능하다는 것을 믿으십니까? 그러나 그것은 아무에게나 가능한 것은 아닙니다. 참으로 주의 말씀을 순종하고자 할 때 그 기적은 지금도 가능합니다.
너는 마음을 강하게 하고 담대히 하라 그들을 두려워 말라 그들 앞에서 떨지 말라 이는 네 하나님 여호와 그가 너와 함께 행하실 것임이라 반드시 너를 떠나지 아니하시며 버리지 아니하시리라 하고 -신명기 31:6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저는 지난주간 믿지 않은 어떤 분이 누구는 약하니까 교회를 다녀야 하고 자신은 강하고 완전하니까 다닐 필요가 없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렇습니까? 모든 사람이 예수님을 바로 알 때,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야 영생의 복락을 얻을 수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의 예수님께 대한 시각이 비뚤어지지 않았는지 점검해보시기 바랍니다.
2] 연약한 이웃에 대한 시각이 개혁되어야 합니다.
그들은 고창병자의 고통을 보았던 사람들입니다. 고창병자의 고통을 알았던 사람입니다. 고창병자는 그들의 사회의 일원이었을 것입니다. 그들의 형제일 수 있고, 친척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의 고통에 대하여 잠잠하고 있습니다.
죄인 된 인간의 마음속엔, 그들이 종교 지도자라 할지라도 긍휼히 여기는 마음이 없습니다. 긍휼히 여길 자를 돌아보지 않은 채, 오히려 살리시는 예수님의 생명까지 엿보고 있는 바래새인들! 긍휼히 여기는 마음이 없습니다.
I'm OK, You're OK(이동원의 짧은 이야기 긴 감동)
심리학자인 해리슨의 저서 가운데 아주 유명한 'I'm OK, You're OK'라는 책이 있습니다. 이 책의 제목처럼 '나도 옳을 수가 있고 당신도 옳을 수가 있다. 또 나도 틀릴 수가 있고 당신도 틀릴 수가 있다'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건강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나는 옳은데 네가 틀렸다'(I'm OK, You're not OK)라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은 항상 네가 틀렸다며 상대방을 비난하기 때문에 항상 자기가 정의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자기가 정의의 잣대이기에 다른 사람은 항상 불의 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이들은 단순한 방법론의 차이, 주관적 해석 등을 가지고 자기가 옳다고 생각하여 다른 사람을 평가합니다. 이들은 항상 자신이 옳다고 주장하면서 항상 공격적이고 파괴적이며 비판적인 그런 이론을 진술하는 사람들입니다.
심리학자들은 이런 사람들을 거의 환자라고 봅니다. 이런 사람들은 정신병을 앓고 있는 것이기에 치료해야만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자신도 불행하고 공동체를 불행하게 만들고 맙니다. 이런 사람들은 공동체 안의 화평과 조화를 깨뜨리는 경향이 있습니다. 과연 우리 자신은 어떤 사람들일까요?
많은 사람이 이웃은 개혁되어야 한다고 확신합니다. 그러나 내가 개혁의 대상이라는 생각을 하는 사람은 극소수입니다. 나의 시각은 과연 옳은 것입니까? 개혁되어야 할 대상이 아닙니까?
3] 하나님 법에 대한 시각이 개혁되어야 합니다.
그들은 안식일이란 하나님의 법을 자신들의 완악한 죄성을 숨기는 울타리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으로부터 한 질문을 받습니다.
"안식일에 병 고쳐주는 것이 합당하냐?"
그러나 그들은 그의 고통에 대하여 잠잠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이유가 있다고 합니다. 그날이 안식일이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외적으로 볼 때, 그들은 안식일을 지키기 위해 굉장히 열심인 것처럼 보입니다. 그렇지만 긍휼과 자비함이 없이 장로들의 유전을 들이대는 일은 인본주의지 바른 신앙이 아닙니다.
유대인에게는 유전되어 오는 법이 모두 613조나 되었고, 그 가운데 안식일에 관한 것이 39개 조항이 있었다. 그 안식일 법에 따르면 안식일에 사람이 구덩이에 빠져 생명이 위태로우면 구해낼 수 있다고 했으며, 동물이 빠졌을 경우에는 안식일이 지나서 구해야 한다는 설(엣세네파)과 상자 같은 것을 던져 스스로 기어오르게 할 수 잇다는 설(일반 미쉬나의 규정)이 있었다.
그들의 중심에는 고통 당하는 자를 긍휼히 여기는 마음이 없었습니다. 아들은 말할 것 없고, 자기 소만큼도 소중히 여기고 있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말씀하십니다.
[눅 14:5] 또 저희에게 이르시되 너희 중(中)에 누가 그
아들이나 소나 우물에 빠졌으면 안식일(安息日)에라도
곧 끌어내지 않겠느냐 하시니
이 고창병으로 고통 당하는 사람이 만일 그들의 아들이었다면? 이 사람이 만일 그들의 소였다면? 어떻게 하였겠습니까? 그들의 아들과 소가 우물에 빠졌다면 과연 안식일이라고 하더라도 다른 각도에서 생각하였을 것입니다. 안식일이라 할지라도 살려 내기 위한 법을 찾았을 것입니다.
3. 예수님께선 이런 종교인들 완고한 마음을 개혁하시기 원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정면으로 맞서서 생명의 소중함, 긍휼의 참 가치를 깨우쳐 주십니다.
'예수께서 그 사람을 데려다가 고쳐 보내시고'(4절).
예수님께서는 고창병 든 환자를 즉시 고쳐 보내셨습니다. 안식일이 사람을 위해서 있음을 보여 주셨습니다. 안식일에 생명을 구원한다는 것은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라신 하나님의 뜻에 맞는 것이라고 주님은 가르치셨습니다.
'너희 중에 누가 그 아들이나 소나 우물에 빠졌으면
안식일에라도 곧 끌어내지 않겠느냐'
근본 하나님이신 예수님의 심중에는 긍휼히 여기시는 마음이 넘치고 있으셨습니다. 참 안식은 고창병 든 병자가 고침받은 것처럼, 인간이 하나님의 은혜를 입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율법의 굴레로 바리새인들이 생명 위협함을 인식하면서도 고창병자를 데려다가 고쳐주십니다. 하나님의 긍휼을 보여주십니다. 세상 사람들이 돌아보지 않는 중한 병자의 생명을 자신의 생명보다 더 귀중히 생각하십니다.
예화]
16세기 유럽의 곤고한 백성들은 [생명의 떡], 구원을 갈망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로마천주교회는 면죄부라는 수단을 통해서 죄인을 징벌과 허물에서부터 건져낸다고 주장했습니다. 그 결과 단순한 사람들에게 교황청의 면죄부는 완전 용서와 동의어가 되었습니다. 혼동은 심각했습니다. 면죄부가 연옥의 영혼들을 위해서도 팔릴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교황에게서 그는 그리스도의 긍휼을 찾을 수 없었습니다.
루터는 성경을 연구하며 분명한 결론을 얻었습니다. '구원은 오직 하나님만 줄뿐이다.' 그는 하나님 말씀인 성경에 순종하는 길만이 구원과 복음을 얻을 수 있다고 확신케 되었습니다.
'우리의 신앙은
오직 성서와 양심에 비추어보고 거리낌없어야 한다!'
면죄부 판매를 반대하기로 결심했습니다.
루터는 비텐베르크 대학 교회건물 앞에서 그를 지지하는 동류교수들과 학생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교황의 교서를 불태웠습니다.
너! 주의 거룩한 사람들을 괴롭히는 자여!
영원한 불이 너를 소멸시키리라.
루터는 교황을 [적 그리스도]로 지목하였습니다. 루터는 Worms의 의회당 지붕 위에 촘촘히 깔려있는 기왓장을 쳐다보며
원수가 저 기와만큼 많을지라도
나는 옳은 일을 위해 싸우겠다.
내 주장이 성서와 이성에 의해 잘못이라고 느껴지지 않는 한 나는 교황과 교회의회를 지지하지 않는다. 내 주장을 절대 취소하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양심을 속일 수 없기 때문이다.
내가 여기 섰습니다.
나는 달리 말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여 나를 도우소서. 아멘.
루터는 62세를 일기로 다음과 같은 유언을 남기고 눈을 감았습니다.
'평생 모든 사람 앞에서 그렇게도 용감하게 고백한
그리스도를 의지하며 떠나게 됨을 기쁘게 생각한다.'
그가 [95개조의 논제]를 처음 붙였었고(1517년 10월 31일), 그의 육신이 묻혔던 비텐베르크 교회에 이런 글이 남아 있습니다.
내가 죽지 아니하고 살아서 주의 일을 선포하리라.
우리는 이런 아름다운 개혁자의 신앙을 만나면서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에 대한 생각을 하게 됩니다. 우리는 예수님이 아니고, 루터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 자신 안에서 개혁이 이루어질 필요가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버려야할 열 가지 말 (이규태) (말언어의식개혁)
개화기에 서양사람들이 보기에는 이상한 대나무 컵을 종로거리에서 팔았던 것 같다.
이 대나무 컵에 물을 부어 약 팔 푼(팔분)쯤이 차면 컵의 밑이 빠져 물이 쏟아져 버리게되어 있기에 서양사람들에겐 이상한 컵일 수밖에 없었다. 물론 쓸모가 있어 사가는 컵이 아니었다. 밥을 먹어도 팔푼을 넘겨 먹으면 배탈이 나고 부(부)나 권(권)이나 명(명)이나 색(색)도 팔 푼을 넘으면 이 컵물 처럼 쏟아져 버리는 것이니 분을 지키라는 교훈을 얻기 위한 교훈용 컵인 것이다.
이 같은 교훈용 기구를 의기(의항) 라 했으며, 우리 조상들 의기 문화가 꽤 발달해 있었다. 이를테면 선비들은 일곱 모가 난 주사위를 손아귀에 굴리며 살았는데 일곱 개 면에 사-인-찬-과...같은 일곱 글씨가 새겨져 있었다.
- 하루에 감사하는 말을 세 번 하라
- 홧김에 나오는 말을 세 번 참아라
- 칭찬하는 말을 세 번 하라
- 잘못했다는 말을 세 번 하라
- 세 번만 꾸짖지 마라
- 세 번만 탓하지 마라
- 세 번만 헐뜯지 마라
는 일곱 교훈을 실천하는 의기인 것이다. 이로써 도덕적으로 성숙했을 우리 선조들의 모습이 손에 잡힐듯하다.
영국의 신사도(신사도)에서 다음 세 가지 말을 말머리나 말끝에 꼭 해야한다는 조건이 있었다.
- I am sorry
- Thank you
- Please
가 바로 그 세 마디 말이다. 이 말을 쓰지 않을 수 없게 된다면 어찌 친절하지 않고 겸손하지 않게 되겠는가.
미국의 접객업소마다 다음 세 가지 말 추방운동이 벌어진 것은 10여 년이 된다. 미네소타 주립대학병원에서 시작되어 전 미국으로 번지고 있다는 이 하지 말아야 할 세 마디 말이란 누군가가 뮤인가를 물었을 때
That's not my job,
I don't care,
That's your problem.
하는 것이다.
이 세 마디 말을 쓰지 않고 대꾸해야 하기에 친절해지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마무리 하는 말
종교개혁일을 맞은 성도 여러분,
우리가 이 귀한 주일에 무엇을 개혁할 수 있겠습니까? 저는 어떤 분의 고백을 접하고 많은 동감을 하게 되었습니다.
젊은 시절에 나는 혁명가였고, 하나님께 드리는 나의 기도는 이것이 모두였다.
"주여, 내게 세상을 개혁할 힘을 주소서."
중년에 이르러 한 사람의 영혼도 고쳐 놓지 못한 채 내 반생이 흘렀음을 깨닫자 내 기도는 이렇게 달라졌다.
"주여, 나와 접촉하게 되는 모든 사람들을 변화시킬 은총을 주소서. 그저 가족과 친지들만 개종시켜도 만족하겠나이다."
이제 노인이 되어 죽을 날도 오늘 내일로 다가오니 이제야 내가 얼마나 어리석었던가를 알게 되었다. 이제 나의 유일한 기도는 이것이다.
"주여, 나 자신을 고칠 은총을 주소서."
처음부터 이렇게 빌었던들 일생을 허비하지 않았으련만.
신앙적인 면이든 가정적인 면이든 하나님의 자녀다웁게 자신을 개혁하여 가는 일은 매우 중요한 일입니다. 끊임없는 개혁으로 하나님의 아름다운 형상을 회복하는 큰 축복을 받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노하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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