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iday, 27 February 2015

마가14:10-25 성찬 속에 담아두신 하나님 축복

교독문 44번
찬송:  16장, 424장, 284장

     [들어가는 말]

     독일 마-북(Marbuch)시를 방문하면 시내 한 복판에 산이 있고 그 산 위에 오르면 큰 성이 있습니다. 그 성 맨 꼭대기에 오르면 기념적인 커다란 방이 있지요. 그 방의 벽은 사면이 500년 전 성만찬에 대한 논의를 심도있게 논의한 사람들의 모습으로 가득차 있습니다. 장로교의 문을 열었던 신앙의 거장이라 할 수 있는 캘빈과 그 동료들과 스위스를 중심으로 신앙운동을 주도했던 츠빙글리측이 성찬에 대해 진지한 논쟁을 하였습니다. 저들은 천주교의 화체설을 반대하는 데는 이론의 여지가 없었지만, 성찬의 떡은 상징일 뿐이라는 츠빙글리측의 주장에 성령이 임하신다는 칼빈측이 양보할 수 없는 견해차로 회담은 결렬되었습니다. 반드시 합의를 도출해야만 절급한 형편이었지만 양측이 합의를 이루지 못함으로 캐돌릭과의 싸움에서 큰 희생을 입어야만 했습니다.

      성찬에 담긴 뜻이 무엇이길래 그토록 많은 아픔을 나누면서까지도 그 가운데 담긴 의미를 지키려고 하였을까요?
예수님께서 성찬 淡?담아두신 깊은 의미가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예수님께서 떠나시면서 우리에게 유산으로 남겨두신 성찬을 바로 알고 행할 때, 하나님의 큰 축복이 임하는 줄 믿습니다.
성찬 속에 담아두신 하나님의 축복을 새롭게 영접하기를 바랍니다.


     1. 하나님을 배반한 인간을 향한 사랑이 담겨 있습니다.

10 열 둘 중에 하나인 가룟 유다가 예수를 넘겨 주려고 대제사장들에게 가매
11 저희가 듣고 기뻐하여 돈을 주기로 약속하니 유다가 예수를 어떻게 넘겨 줄 기회를 찾더라

     우리는 오늘 본문에서 가룟 유다의 배신을 만납니다. 부르터스가 시저를 배신한 사건이 로마 흥망사에서 크게 자리잡고 있는 것 이상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사에 가룟 유다의 배신이 크게 자리를 잡고 있습니다.

     열 손가락 가진 사람에게 손 가락 하나하나가 다 소중하듯 가룟 유다 또한 예수님께 소중한 존재였습니다. 유다는 재정을 맡았으니까 열 손가락 중에서도 검지 손가락처럼 소중히 쓰임을 받은 제자였습니다.

     그런 소중한 가룟 유다가 오늘 본문에 보면 예수님을 적에게 넘겨주고 있습니다.
적들의 입이 짝 벌어지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적과의 동침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런 기사를 보면서, 우선 어떤 생각이 드십니까?
야, 정말 가룟 유다 못됐다 하는 생각이 듭니다.
단테가 그의 신곡에 지옥 맨 밑바닥인 13층에 가룟 유다를 두도록 작품을 설정한 것이 정말 잘했다 싶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오늘 본문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대속하시려고 유월절 어린 양이 되는 전날 밤이란 사실을 생각해보아야 합니다.

그 중대한 기사 앞에 왜 가룟 유다의 배반 이야기를 전해 주시고 계시는지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이는 가룟 유다의 배반 이야기가 유별난 가십거리였기 때문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유월절 어린 양이 되어야만 하는 필연성을 말씀하시고 싶어서 이 기사를 삽입한 것입니다.

릭워렌 목사님은 그의 책에서

     "우리 가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사신이 되어(고후5:20)"

란 말씀을 묵상하면서 우리 기독교인들이 그리스도의 대사로 적국에 임명을 받았다고 도전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적국에서 그 사회와 국민들과 접촉을 하고 관계를 맺어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 나라가 편하게 느껴지고 그 나라와 사랑에 빠졌습니다. 모국인 하나님의 나라보다 이 세상과 세상에 있는 일을 우선시하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무엇을 위해 충성하고 헌신하는가 합니까? 그 대상이 세상 일로 변했습니다.
우리가 현재 살고 있는 세상이 우리의 진짜 집이라고 착각하고 있습니다.
모국을 대표하기 보다 적들과 같이 행동하여 그리스도의 대사로서의 역할이 위태로워졌습니다.
    기독교인들이 우리의 왕과 왕국을 배신한 것입니다.
     우리는 가룟 유다가 예수님을 배신하였다고 흥분하고 있는데, 릭 워렌 목사님은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예수님과 그분의 왕국을 배신하고 적국과 동침하고 있다는 말을 하고 있습니다.

     요한 사도는 요한 일서 2장 15-18절에 이렇게 적고 있습니다    

15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치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속에 있지 아니하니
16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 좇아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 좇아 온 것이라
17 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되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이는 영원히 거하느니라
18 아이들아 이것이 마지막 때라 적그리스도가 이르겠다 함을 너희가 들은 것과 같이 지금도 많은 적그리스도가 일어났으니 이러므로 우리가 마지막 때인줄 아노라

     하나님의 뜻을 행해야 할 우리가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에 빠져 사는 것입니다.
적그리스도가 기뻐할 일만 찾아 그 일에 올인하고 있는 것입니다.

    다시오실 우리의 왕 그리스도께는 무관심한 채, 적그리스도가 기뻐할 일을 하는데 정신을 못차리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베드로 사도는 이렇게 권합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나그네와 행인 같은 너희를 권하노니 영혼을 거스려 싸우는 육체의 정욕을 제어하라(벧전2:11)

     우리 하나님의 사람들이 대사의식을 가지고 하나님께 충성하지 못한다면 우리는 가룟 유다를 향해 정죄할 명분이 전혀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목적을 잃고 내 고집대로 세상과 짝하여 살고 있는 이 한 가지 삶의 양식만으로도 가룟 유다의 배반을 내 안에 가지고 있음을 고백해야 합니다.


     그러나 놀라웁게도 이 모든 일을 아시는 예수님께서 그를 매도하지 않습니다. 성찬을 준비하시고, 계속적인 관심과 회개를 촉구하고 말씀하십니다. 범죄한 아담을 찾아오신 하나님, 아벨을 살해한 가인에게 회개를 기다리시던 하나님의 중심을 우리는 성찬에서 만납니다.
     성찬에는 배신자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이 진하게 배어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20 이르시되 열 둘 중 하나 곧 나와 함께 그릇에 손을 넣는 자니라
21 인자는 자기에게 대하여 기록된대로 가거니와 인자를 파는 그 사람에게는 화가 있으리로다 그 사람은 차라리 나지 아니하였더면 제게 좋을뻔하였느니라 하시니라

     가룟 유다는 예수님과 함께 그릇에 손을 넣는 자라는 것입니다. 왜 주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셨을까요? 가롯 유다가 민망하라고 이런 말씀을 하셨을까요? 아닙니다. 가룟유다를 회개케 하시려는 주님의 중심이 담겨 있습니다. 이 배반의 사람은 차라리 나지 아니하였더면 제게 좋을뻔 하였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만큼 배신이 무서운 일이라는 것을 알려주시고 회개를 촉구하시는 것입니다. 만일 가룟 유다가 이 깊은 하나님의 사랑을 만의 하나라도 알았다면 회개하고 주님 앞에 돌아왔을 것입니다.

주님, 제가 잘못했습니다.
저의 배신하려는 마음을 용서해주십시오.

이렇게 깨우쳐 주시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보면,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대사로 임명하셨으나 내가 대사인 줄도 모르고 안다하여도 불충성하며 하나님께 배신을 때리고 살아가는 우리를 향해 하시는 말씀입니다.

    너 배반의 사람아, 너의 배신은 차라리 나지 아니하였더면 너에게 좋을뻔 하였으리만큼 무서운 것이다. 이제라도 회개하고 하나님께서 너를 이 땅에 대사로 파송하내신 그 목적을 회복하여라. 이런 말씀입니다.

하나님을 배반하고 멀리 떠난 우리
원수 같이 대적하나 사랑하여 주네
하나님은 사랑이라 죄악에 빠졌던
우리까지 사랑하니 참 사랑아닌가(416장 2절)

다윗처럼

"주여, 제가 이 일을 행하여 큰 죄를 범하였나이다"

외치며 가슴 깊이 회개할 때, 성찬에 담아두신 하나님의 축복이 임할 줄 믿습니다.



     2. 성찬의 떡 속에 예수님께서는 몸의 희생을 담아주셨습니다.

     22 저희가 먹을 때에 예수께서 떡을 가지사 축복하시고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며 가라사대 받으라 이것이 내 몸이니라 하시고


     엄마의 자녀에 대한 사랑은 아빠보다 남다릅니다. 그 이유는 몸의 희생 때문입니다.
아빠에게 없는 잉태하는 고통이 큽니다.
아빠에게 없는 해산의 수고가 큽니다.
그래서 아빠의 자녀 사랑은 엄마의 사랑을 따라갈 수가 없습니다.

     예수님의 사랑이 이세상 어떤 사랑보다 귀한 이유가  무엇입니까?
몸을 주신 사랑 때문입니다.

     마가복음 1장에는 참 흥미있는 주님의 권면이 나옵니다.
군중들은 예수님을 향해 몰려 오고 있었습니다.
각색 병든 자들을 몸을 던져 성심껏 고쳐주셨습니다.
밤이 되도록 몸으로 섬기시는 그 일은 계속되었습니다.
그러나 그 것으로 주님의 일은 끝난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는 오히려 한적한 곳에 가셔서 기도하셨습니다.
누구를 위해 기도하셨겠습니까? 예수님의 기도는 우리를 위한 중보기도입니다.
그런데 시몬과 및 그와 함께 있는 제자들이 예수님께 말씀을 드립니다.    

"모든 사람이 주를 찾나이다."

와, 정말 대단한 일입니다.
그때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다른 가까운 마을들로 가자(막1:38)

     이는 분명 좀 모순이 있어보입니다.

사람들은 예수님을 갈망하는데 예수님은 그들의 요구를 묵살하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그 수고를 피하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그러나 사실은 예수님께서 또 다른 몸의 수고를 계획하고 계심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사람들에게 나누어주고 싶으신 게 있으셨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수고는 좀 특별한 의미가 있습니다.

     "거기서도 전도하리니 내가 이를 위하여 왔노라"(막1:38)

     주님께서는 전도, 즉 하나님의 말씀을 주시는 일에 관심을 집중하십니다.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주시고자 하는 것에 관심을 기울이기 전에, 오직 병을 고치는 데, 세상적인 욕구를 채우는데, 필요를 충족시키려고 왔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주고 싶어하셨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서 주님께서는 성찬에서 주시고 싶어하는 것이 말씀입니다.
말씀이 육신을 입어 우리가운데 오신 바로 예수님 자신의 몸을 주고 싶어하셨습니다.

     22 저희가 먹을 때에 예수께서 떡을 가지사 축복하시고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며 가라사대 받으라 이것이 내 몸이니라 하시고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으로 사는 것이라 하신 말씀이 생각나지 않습니까?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몸입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오신 예수님, 말씀이 성육신 함으로 몸을 입으시고 오신 예수님께서는

요6:51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나는 하늘로서 내려온 산 떡이니 사람이 이 떡을 먹으면 영생하리라 나의 줄 떡은 곧 세상의 생명을 위한 내 살이로라 하시니라."

      세상의 생명을 위한 예수님의 몸을 하늘로서 내려온 산 떡이라 하십니다.
이 떡을 먹으면 영생하는, 그런 세상의 생명을 위한 예수님의 몸이 바로 말씀입니다.
오늘 주님께서는 성만찬에서 세상의 생명을 위한 주님의 살을 주시면서

예수님께서 이 떡을 먹으라 명령하십니다.

     "하늘로서 내려온 산 떡이니 사람이 이 떡을 먹으면 영생하리라"

예수님께서는 이 떡을 먹는 사람이 영생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의 몸을 받아 영생하는 것이 하나님의 보내신 뜻입니다.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려 함이니라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은 내게 주신 자 중에 내가 하나도 잃어버리지 아니하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이것이니라"(요6:39)

     세상을 사랑하시는 주님께서 한 사람도 잃어버리지 아니하고 마지막 날에 다 살리시는 일이 예수님을 세상에 보내신 하나님의 뜻입니다.

어떻게 살리나요?

내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이것이니"(40) 하였습니다.

      인자의 살을 먹는 것, 즉 예수님을 보고 믿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보고 믿을 때 영생을 얻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그 속에 생명이 있다는 것으로

"예수님께서
"이것은 하늘로서 내려온 떡이니 조상들이 먹고도 죽은 그것과 같지 아니하여 이떡을 먹는 자는 영원히 살리라"(58) 하신 바로 사람을 살리는 하나님의 말씀, 예수 그리스도 자신이십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 달리셔서 몸을 찢기셨습니다.

     "나는 하늘로서 내려온 산 떡이니 사람이 이 떡을 먹으면 영생하리라."(51)
     "이 떡을 먹는 자는 영원히 살리라"(58)

     따라서 성찬식은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한 생명이 되셨음을 기념하며, 우리를 위해 몸을 주신 예수님의 헌신을 바로 나를 위한 헌신으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이를 통해 하나님의 생명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어제 위로가 저에게 말합니다. 왜 아빠는 새벽마다 그렇게 힘든 기도회를 갖느냐고 묻습니다.
     저는 빚진 것 때문이라고 대답했습니다.

      리빙스턴을 초대한 글라스고우 대학에서 그는 학생들에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의 아프리카 생활은 도저히 갚을 길 없는 빚을 하나님께 조금 갚는 것일 뿐"이라고 말입니다.

     몸을 주시기까지 사랑하신 하나님의 축복을 성찬에서 만나십니까?
빚진 자의 심정으로 하나님께 충성하는 축복까지 받으시길 바랍니다.


     3. 잔(예수님의 피)속에 하나님 새언약 성취를 담아주셨습니다.

     23 또 잔을 가지사 사례하시고 저희에게 주시니 다 이를 마시매
     24 가라사대 이것은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을 보내시기 약 600년 전에 예레미야 선지자를 통해서 언약에 대한 중대한 선언을 선포하게 하셨습니다.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보라 날이 이르리니 내가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에 새언약을 세우리라"(렘31:31)

     그런데,
   
     예수님께서 잡히시던 밤에 잔을 가지시고 가라사대

     "이 잔은 내 피로 세운 새 언약이니
      이것을 행하여 마실 때마다 나를 기념하라(고전11:25)"

예레미야 선지자를 통해 선포하신 새언약을 이루실 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다음 날 십자가에서 많은 사람을 위한 피를 흘리셨습니다.

이 잔이 바로 주님의 피로 세운 새언약이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따라서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새 언약의 속에는 피흘리심의 사랑이 담겨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흘리신 피는 우리 죄구속을 의미하는 새언약의 완성입니다.

     히브리서 10:20에서 말씀하시는 대로 우리 성도들을 하나님의 지성소로 연결시켜주시는 새롭고 산 길입니다.

    휘장은 바로 예수님의 몸입니다.

"그 길은 우리를 위하여 휘장 가운데로 열어 놓으신새롭고 산 길이요 휘장은 곧 저의 육체니라(히 10:20)

하나님의 약속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우리가 죄 아래서 하나님의 언약에 무관한 사람이었을 때,

     하나님께서 십자가에 아들을 내어 주심으로 새롭고 산 길이 되어 주셨던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나아갈 때, 하나님의 새 언약에 참여하게 됩니다. 큰 제사장이 미쁘신 새언약이 우리 안에서 성취되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마무리하는 말]


윌리엄 텔이 쏜 화살이 그의 의중을 벗어나 아들의 이마를 맞추었다면 얼마나 슬픈 일이 일어났겠습니까?
설령 그렇지 않다 하더라도 화살을 쏘는 사람의 의중을 배반하고 제 임의대로 빗나간다면, 그 화살은 치명적인 손해를 쏜 이에게 입혀줍니다.
하나님의 손을 벗어나 세상을 향해가는 하나님의 화살이 우리라면, 하나님의 의도대로 목적대로 날아가 하나님의 꿈을 성취하는 것이 복입니다.

주여, 하나님의 뜻을 배반하지 말고 하나님의 뜻대로 쓰임받는 하나님의 대사이게 하소서. 하나님의 뜻대로 날아가는 화살이게 하소서!


[성경본문]

10 열 둘 중에 하나인 가룟 유다가 예수를 넘겨 주려고 대제사장들에게 가매
11 저희가 듣고 기뻐하여 돈을 주기로 약속하니 유다가 예수를 어떻게 넘겨 줄 기회를 찾더라

12 무교절의 첫날 곧 유월절 양 잡는 날에 제자들이 예수께 여짜오되 우리가 어디로 가서 선생님으로 유월절을 잡수시게 예비하기를 원하시나이까 하매
13 예수께서 제자 중에 둘을 보내시며 가라사대 성내로 들어가라 그리하면 물 한 동이를 가지고 가는 사람을 만나리니 그를 따라가서
14 어디든지 그의 들어가는 그 집 주인에게 이르되 선생님의 말씀이 내가 내 제자들과 함께 유월절을 먹을 나의 객실이 어디 있느뇨 하시더라 하라
15 그리하면 자리를 베풀고 예비된 큰 다락방을 보이리니 거기서 우리를 위하여 예비하라 하신대

16 제자들이 나가 성내로 들어가서 예수의 하시던 말씀대로 만나 유월절을 예비하니라
17 저물매 그 열 둘을 데리시고 와서
18 다 앉아 먹을 때에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중에 한 사람 곧 나와 함께 먹는 자가 나를 팔리라 하신대
19 저희가 근심하여 하나씩 하나씩 여짜오되 내니이까
20 이르시되 열 둘 중 하나 곧 나와 함께 그릇에 손을 넣는 자니라
21 인자는 자기에게 대하여 기록된대로 가거니와 인자를 파는 그 사람에게는 화가 있으리로다 그 사람은 차라리 나지 아니하였더면 제게 좋을뻔하였느니라 하시니라

22 저희가 먹을 때에 예수께서 떡을 가지사 축복하시고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며 가라사대 받으라 이것이 내 몸이니라 하시고

23 또 잔을 가지사 사례하시고 저희에게 주시니 다 이를 마시매
24 가라사대 이것은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

25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가 포도나무에서 난 것을 하나님 나라에서 새것으로 마시는 날까지 다시 마시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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