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turday, 28 February 2015

마14:22-34 풍랑은 주님을 새롭게 바라볼 기회

들어가는 말

사람들이 싫어하는 것 중에 풍랑이 있습니다. 가는 길에 풍랑이 없기를 원하여 돼지 머리까지 등장시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재촉하셔서 풍랑이 있는 바다로 보내셨습니다.

22 예수께서 즉시 제자들을 재촉하사 자기가 무리를 보내는 동안에 배를 타고
앞서 건너편으로 가게 하시고

풍랑이 일어날 것을 아시는 주님께서 풍랑으로 인하여 고난을 당할 수밖에 없는 그곳으로 제자들을 보내셨습니다. 왜라고 생각하십니까? 예수님은 제자들을 골탕먹이실 분이 절대 아니신 데 말입니다.


1. 풍랑은 주님의 기도를 체험할 수 있는 기회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일어날 일이 중요한 사건이겠구나 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는 예수님께서 그들을 보내신 후에 기도하신 일을 통해 엿볼 수 있습니다.

23 무리를 보내신 후에 기도하러 따로 산에 올라가시다 저물매 거기 혼자 계시더니

사역을 시작하실 중요한 시점에서 기도하셨습니다.
제자들을 파송하실 때 기도하셨습니다.
십자가를 지실 때, 기도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오늘도 바다로 제자들을 보내시며 기도하셨습니다.
 허락하신 그 풍랑 속에는 깊은 의미가 있습니다. 이 날 밤 어떤 중요한 메시지를 주신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누군가 널 위하여 누군가 기도하네
내가 홀로 외로워서 마음이 무너질 때
누군가 널 위해 기도하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우리를 세상에 보내신 주님께서 하나님 우편에서 위하여 기도하고 계심을 기억하기 바랍니다.

나아가, 우리도 이런 주님을 본 받아 우리의 소중한 자녀와 교우들을 세상에 보낼 때 늘 위하여 주님의 중보기도에 동참하는 것이 마땅한 줄 압니다.

위로가 국민학교에 들어가기 전의 일입니다. 제가 엎드려 기도하고 있는데, 놀다가 재미가 없었는지 아니면 성령께서 감동을 주셨는지 그 마음을 알 수는 없지만 제 곁에 한참을 엎드려 있었습니다. 아마 10분 정도는 되었을 것입니다. 제 마음이 어떠했겠습니까? 참 뿌듯하고 좋더라구요. 그 어린이가 어떤 기도를 하였겠습니까? 저의 마음을 알았겠습니까? 아마 엉뚱한 기도를 하였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러나 아빠의 기도에 동참하는 것은 아름다운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참 중보자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기도에 참여하는 것을 주님께서 기뻐하십니다.
우리 자녀들을 위해 주님의 기도에 참여하는 것을 기도에 참여하는 것을 주님께서 기뻐하십니다.
우리가 선교사님들을 위해 예수 그리스도의 기도에 참여하는 것을 주님께서 기뻐하십니다.


2. 풍랑은 세상에서 하나님의 아들을 체험할 기회입니다

33 배에 있는 사람들이 예수께 절하며 가로되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로소이다 하더라

갈릴리 바다는 예수님의 제자들에게는 너무나 익숙한 생활현장입니다. 갈릴리 바다는 그들 인생과 불리할 수 없습니다.
그들은 어린 시절부터 바다를 보고 자랐습니다.
그들은 어린 시절부터 바다에 몸을 담그고 헤엄을 치면서 자랐습니다.
그들은 바다에서 고기를 잡아 생계를 이어왔습니다.
운전하는 사람이 하이웨이에서 차를 자유자제로 몰아가는 것처럼 그들은 배를 자유자제로 몰아가면서 생활을 해왔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친근한 갈릴리 바다였지만 천국은 아니었습니다.
대부분의 좋은 날, 그들은 바다를 여유있게 노저어가면서 고기를 잡고 살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바다는 궂은 날도 있었습니다.

바다는 사람들을 빨아들이는 속성을 내재하고 있었습니다.

바다는 풍랑이 이는 그런 날에 그들의 배를 뒤집어버릴 수 있는 두려운 존재이기도 했습니다.

이 바다를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이것은 갈릴리 바닷가에 사는 모든 사람들의 숙제였습니다.
그들은 이 무서운 속성에 살아남기 위하여 배를 만들었습니다.
수영을 배웠습니다.
날이 좋지 않은 날에는 바다에 나가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갈릴리 바다는 인간의 모든 준비를 순식간에 뒤집어 엎을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지형관계로 돌풍이란 변수가 자주 일어났습니다. 많은 고통을 당해야 했습니다.
오늘 본문은 바로 그런 상황입니다.

24 배가 이미 육지에서 수리나 떠나서 바람이 거슬리므로 물결을 인하여 고난을 당하더라

세상은 바로 이런 바다의 속성을 그대로 가지고 있습니다. 사람을 빨아들이는 속성말입니다.
사람들은 이 세상에서 자유를 누리고 삽니다.
생활을 영위합니다.
집을 짓고 삽니다.
문화를 누리고 삽니다.

그러나 이 세상이 에덴 동산은 아닙니다. 인간이 침몰되는 현장도 바로 세상입니다.
사람들은 이 세상이 때로 인간을 철저히 파괴하는 것을 체험하며 삽니다.
세상은 암이나 에이즈 같은 치명적인 질병으로 인간을 파괴합니다.
마약 술 같은 것들로 인간을 마취당합니다.
인본주의나 이분법적 사고들로 인하여 인간은 치명적 손상을 입습니다.

프란시스 쉐퍼는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살 것인가?’란 책에서 인간을 침몰시키는 이런 세상의 속성을 잘 다루고 있습니다.
그는 책의 곳곳에 인본주의적 사고의 위험성을 세상에 경고합니다. 이분법적 사고를 경고합니다. 성경이 우주, 역사 그리고 절대적 도덕 명령에 대하여 확증하는 것을 받아들이라 권고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세상에 빨려들어가서는 안됩니다.
빨려들어 가는 것은 곧 죽음을 의미합니다.
사람이 바다에 빨려들어가면 죽음이 오는 것처럼 사람이 세상에 빨려들어가 잠기면 죽음에 떨어집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지금 세상을 너무 신뢰하고 세상에 지나친 기대와 소망을 두고 있지 않습니까?
아니면 세상에 너무 깊이 들어와서 그 안에 침몰당하고 있지 않습니까?

요한 사도는 이렇게 권면하고 있습니다.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말아라
세상에는 하나님의 사랑이 그 속에 있지 않다!


3. 풍랑은 우리를 찾아오시는 주님을 만날 기회입니다.

25 밤 사경에 예수께서 바다 위로 걸어서 제자들에게 오시니
26 제자들이 그 바다 위로 걸어오심을 보고 놀라 유령이라 하며 무서워하여 소리지르거늘
27 예수께서 즉시 일러 가라사대 안심하라 내니 두려워 말라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바다로 보내시고 기도하셨습니다.
그러나 기도만 하고 계신 분이 아니십니다.
풍랑속에서 고군분투하는 제자들을 찾아오셨습니다.
죄 가운데 고통을 당하는 인류를 위해 하나님 우편에서 기도하실 뿐만아니라 때가 되어 육신을 입으시고 찾아오셨습니다.
풍랑 속에서 몸부림을 치던 제자들의 눈에 놀라우신 주님의 모습이 나타났습니다. 그것은 풍랑 이는 바다 위로 걸어오시는 모습이셨습니다.
밤이 4경이면 모든 사람이 다 잠이 든 깊은 밤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바로 그 깊은 시간에 찾아오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금 깊은 밤을 체험하고 있지 않습니까?

25 밤 사경에 예수께서 바다 위로 걸어서 제자들에게 오시니

이 말씀으로 인하여 위로를 받으시기 바랍니다.
제자들이 ‘그 바다’ 바로 풍랑이 당장 집어 삼킬 듯이 넘실거리던 그 바다 위로 걸어오심을 본 것처럼 우리도 우리가 고통 당하는 바로 그 곳으로 걸어오시는 예수님을 보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느낄 수 있기를 바랍니다.


 26 제자들이 그 바다 위로 걸어오심을 보고

그러나 그분을 오해하지는 마십시오. 이런 놀라운 사랑의 주님께서 오실지라도 제자들에겐 이런 오해가 있었습니다. 이성적으로 생각할 때, 있을 수 없는 모습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바다 위로 걸어오시는 것이었습니다. 이러니 놀라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놀라 유령이라 하며 무서워하여 소리지르거늘

그럴 수 있지요. 들어보지도 못한 사건을 대할 때 그 외의 무엇을 생각할 수 있었겠습니까? 그래서 제자들은 이해할 만한 난리가 났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믿음이 없는 그들을 나무라시지 않았습니다.
나무람 대신 큰 위로를 주셨습니다.

27 예수께서 즉시 일러 가라사대 안심하라 내니 두려워 말라

주님으로부터 이런 위로의 말씀을 늘 들을 수 있는 사람은 복이 있는 사람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아무리 힘든 현실이라 할지라도 이 사랑의 예수님을 만나시기 바랍니다.
우리에게는 우리의 힘든 현실을 알고 계시는 주님이 계십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위해 기도하실 뿐만 아니라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걸어오십니다.
아무리 깊은 밤이라도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걸어오십니다.
그리고 말씀하십니다.

안심하라 내니 두려워 말라


두려워 말라 어린 양이여
땅과 하늘의 권세 잡은 이(너 있는 곳에 주 늘 계시니)
널 찾아 내어 안보하시리니(이 밤이 지나 새멱 올 때까지)
죽음에서 생명에 이르리라(네 선한 목자 함께 하시리라)

다니엘과 세 친구가 풍랑 속에서 찾아오시는 주님을 체험하였습니다.

평강을 주시는 주님, 얼마나 놀라운 주님이십니까? 이런 주님을 만나서 그분을 주님으로, 목자로 모시고 사는 우리들은 복된 사람들입니다.


4. 풍랑은 주님의 구원을 체험할 기회입니다.

주님께서는 말씀만 ‘안심하라 내니 두려워 말라’고 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실제로 두려운 일들을 물리치실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계십니다.

모든 사람들이 바다에 빠져 살거나 바다에 순종하고 사는 세상에서 오직 한 분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그 바다 위로 걸어오고 계셨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풍랑 속에서 바다에 빠져들어가는 그 시간 바다에 빠지지 않으시는 한 분이 그들 곁으로 다가오고 계셨습니다.
바다를 이기시는 오직 한 분,  바로 그들이 주로 모시는 예수 그리스도이셨습니다.
베드로에게 이 사실은 엄청난 감동이었습니다. 그는 외쳤습니다.

28 베드로가 대답하여 가로되 주여 만일 주시어든 나를 명하사 물 위로 오라 하소서 한대

풍랑 앞에서 벌벌 떨던 자신도 예수님처럼 바다에 빠지지 않고 살 수 있는가 하는 질문이었습니다.

우리도 예수님께 물을 수 있습니다.

주님, 저도 이 악한 세상에 침몰되지 않을 수 있습니까?

예수님께서는 너무도 간단히 대답하셨습니다.

29 오라 !

  그 두려움의 대상인 세상을 이길 수 있는 분은 예수님만이 아닙니다.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선포하신 예수님께서는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고 따르는 우리 모두에게 세상을 이길 권세 주시기 원하십니다. 오병이어의 기적을 일으키심으로써 자신이 생명의 떡임을 확증시켜주신 예수님께서 바다 위로 걸을 수 있는 권세를 베드로에게 주셨습니다.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선포하신 왕 중 왕께서 그 제자인 베드로에게도 세상을 이길 수 있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베드로는 "오라!"는 그리스도의 말씀을 믿었으므로 물 위를 걸을 수 있었습니다.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롬 10:17).

그러나 안타까운 것은 베드로가 가진 그 믿음이었습니다.
  풍랑 앞에서 흔들리는 작은 믿음이었습니다.
무섭게 몰아치는 풍랑을 보면서 그는 잠깐 예수님 바라보는 믿음을 놓치고 말았습니다.

29 오라 하시니 베드로가 배에서 내려 물위로 걸어서 예수께로 가되 30 바람을 보고 무서워 빠져 가는지라 소리질러 가로되 주여 나를 구원하소서 하니

베드로가 말씀을 잊었을 때, 예수님을 쳐다보기를 멈추었을 때(히 12:1-2), 그는 바다 속으로 침몰하기 시작하였습니다.
  믿음에는 독불장군이 없습니다. 폭풍우를 극복하고 불가능한 일을 극복하는 믿음의 비결은 단순히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하나님의 아들을 계속해서 지켜보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사랑의 손으로 그를 붙드시면서 그가 침몰할 수밖에 없었던 비밀을 알려주셨습니다.

31 예수께서 즉시 손을 내밀어 저를 붙잡으시며 가라사대 믿음이 적은 자여 왜 의심하였느냐 하시고

우리가 실패할 때조차도 예수님께서는 은혜롭게 도와 주십니다.
베드로는 베드로전서 5장 7절을 기록하기에 적절하도록 훈련을 받은 셈입니다.
비결은 믿음에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우리 모든 풍랑 속의 성도들에게 "믿음이 적은" 그리스도인들이 되지 않기를 바라고 계십니다 !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겨 버리라 이는 저가 너희를 권고하심(돌보심)이라 !"

믿음으로 세상을 이길 수 있는 기회입니다.

31 예수께서 즉시 손을 내밀어 저를 붙잡으시며 가라사대 믿음이 적은 자여 왜 의심하였느냐 하시고 32 배에 함께 오르매 바람이 그치는지라

기독교 역사에 보면, 위기가 있었습니다. 중세에 들어서면서 암흑기가 오고 있었습니다. 성경을 읽겠다는 사람들의 손에서 교회는 성경을 뺏고 핍박을 하는 웃기는 현상이 유럽에서 일어나고 있었습니다. 왈도파는 이렇게 생겨났습니다. 후스는 이 침몰되어가는 인본주의적 사고 속에서 화형을 당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종교개혁을 통해 기독교에 들어온 인본주의적 사고에서 기독교의 본질을 회복한 사건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만!
오직 하나님의 은혜만!
오직 하나님을 향한 믿음만!

오늘날, 교회 역시 세상의 풍랑 가운데 있습니다.
제자들도 폭풍 가운데 있었던 것과 같습니다.
이것은 그들이 요나처럼 그리스도께 불순종했기 때문이 아닙니다. 오히려 주님께 순종하였기 때문이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한다면 세상에서 오히려 고난과 핍박이 따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위어스비가 깨우쳐주는 것처럼 그 풍랑으로 고통 당하는 바로 그 시간에
‘그리스도는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고 계십니다.’
‘어느 날, 우리를 집으로 데려가기 위하여 오실 것입니다.’



마무리 하는 말

풍랑 가운데 계신다고 생각하시는 성도 여러분,

오늘 여러분은 좋은 기회 가운데 있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풍랑은 주님을 새롭게 바라볼 기회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먼저 바다 건너편으로 가게하실 뿐만 아니라 그들을 위해 기도하셨습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위해 기도하고 계십니다.

주님께서는 우리가 풍랑 가운데 침몰하도록 방치해 두지 않으십니다.
예수님께서는 풍랑 속에서 고통당하는 제자들을 찾아가셨습니다.
우리를 찾아오십니다.

안심하십시오.
오늘 기적을 일으키심으로써 예수님께서는 세상 권세 아래 침몰되어가는 우리를 모든 부족함과 죄의 고통에서부터 구할 수 있는 메시이심을 보여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풍랑 속에서 고통당하는 제자들을 구원하셨습니다.

때로 베드로가 바다 위를 믿음으로 걸었던 것처럼, 우리 성도들은 세상 위를 걸어갑니다.
그러나 자주 거세게 불어 닥치는 풍랑 속에서 주님을 바라보는 일을 놓치게 됩니다.
보이는 것만 바라보다 두려움에 빠져 믿음을 상실하곤 합니다.
하지만 베드로는 믿음이 연약해져 바다에 침몰당할 뻔 하였으나 죽지는 아니하였습니다. 왜냐하면 능하신 주께서 그를 건져 주셨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때로 세상의 파도에 휩쓸려 믿음을 잃고 흔들릴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는 한 우리는 세상에 침몰당하지는 않습니다. 주님께서 찾아오시고 손을 내미셔서 구원하여 주십니다.

우리가 타고 있는 배는 침몰되지 않습니다.
우리는 우리를 찾아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선장으로 모시고, 반드시 강 저편 하나님이 계시는 보좌에 이를 것입니다.

이 놀라운 분이 우리의 목자이십니다.
우리 주님이십니다.
하늘의 것, 하나님의 영원한 구원을 바라보며 꿋꿋이 나아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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