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가는 말]
하나님의 일을 하겠다고 일어서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열두 제자들이 바로 그런 열정을 가진 분들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일을 위하여 자신의 직업을 버렸습니다.
예수님을 따르기 위하여 부모를 뒤로하였습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은 우리에게 무엇을 알려주십니까?
50 제자들이 다 예수를 버리고 도망하니라.
그들은 가장 중요한 순간에 모두 자기 길로 떠났습니다.
오직 예수! 그 한 분만이 하나님 앞에 끝까지 서 계셨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붙들고 서 계셨습니다.
진정한 제자의 도는 무엇일까요?
참된 제자의 도는 무엇을 따라 가는 것일까요?
1. 참 제자도는 지식에까지 새로워지는 것입니다
아는 것이 힘이라는 말처럼 지식은 인간의 큰 힘입니다. 가룟 유다는 자신의 지식으로 큰일을 했습니다.
43 말씀하실 때에 곧 열 둘 중의 하나인 유다가 왔는데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과 장로들에게서 파송된 무리가 검과 몽치를 가지고 그와 함께 하였더라 44 예수를 파는 자가 이미 그들과 군호를 짜 가로되 내가 입맞추는 자가 그이니 그를 잡아 단단히 끌어가라 하였는지라 45 이에 와서 곧 예수께 나아와 랍비여 하고 입을 맞추니
유다란 이름은 '예수님 찬양'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는 다른 제자들과는 달리 갈릴리 사람이 아닌 유다 사람입니다.
다른 제자들보다 교육 수준이 높았습니다.
예수님과 함께 동고동락한 12제자 중 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3년간 성령 충만하신 예수님을 체험하였습니다.
귀신을 좇고 병을 고치는 능력과 기적을 행하시는 모습을 보았을 뿐만 아니라 행하기도 하였던 사람입니다.(마10:6) 그는 재정을 맡았습니다.
마리아가 향유를 예수님께 부었을 때 그 많은 돈으로 가난한 사람을 돕는 것이 좋았을 것이라고 강변하였습니다. 그는 나름대로의 철학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는 하나님께 가장 크고 아름답게 쓰임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를 통해서 크고 비밀한 계획을 행하시기 원하셨습니다.
그러나 그가 가진 지식은 주님을 떠나 있었습니다.
예수님을 담기에는 세상이 값져 보였습니다.
예수님을 담기에는 돈이 더 필요하고 소중하였습니다.
결국 그는 하나님의 모든 기대를 뒤에 둔 채 예수님으로부터 등을 돌렸습니다.
하나님께서 그에게 보배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주시기 원하셨지만 그는 그 보배를 지식 안에 담지 못했습니다.
예수님을 아는 지식이 구원할 수 있음을 몰랐습니다.
그러나 죄로 전염된 지식은 자신과 세상을 구원할 수 없습니다.
가룟 유다는 예수님을 따르면서도 세상을 두리번거리며 세상 지식을 의지하다가 자신에게 주어진 은사와 기회를 내팽개치고 말았습니다.
그를 구원하러 오신 예수님을 배신하고 말았습니다.
진정한 제자도란 세상 지식으로 우리 죽을 몸에 왕노릇하지 못하게 하는 것입니다. 진정한 제자도란 자신의 지식을 하나님 앞에 내려놓고 하나님께서 주신 은사와 지혜를 의의 병기로 삼아 주님을 따르는 것입니다.
그 때, 주께서 그분의 영으로 그의 지식을 복되게 하시고, 놀라운 일을 행하십니다.
가룟 유다, 그는 세상 지식을 좇다가 불의의 병기로 자신을 내놓았습니다.
주님의 몸 된 교회에서 충성하는 교우 여러분,
내가 세상으로부터 받은 지식이 무엇입니까?
받은 지식 안에 하나님의 영이 담겨 있습니까?
나의 지식은 예수님의 은혜에 열려 있기보다 세상에 더 열려 있지 않습니까?
그리하여 나의 지식이 불의의 병기가 되어 있지 않습니까?
롬7:12-13에는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죄로 너희 죽을 몸에 왕노릇하지 못하게 하여 몸의 사욕을 순종치 말고 또한 너희 지체를 불의의 병기로 죄에게 드리지 말고 오직 너희 자신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산 자 같이 하나님께 드리며 너희 지체를 의의 병기로 하나님께 드리라.
2. 참 제자도는 감성이 주님 따르는 것입니다.
감성은 중요합니다. 희로애락의 감성이 메마른 사람은 마른 포도나무처럼 불쌍한 사람입니다.
요한은 '여호와께서 사랑하시는 자'라는 이름에 걸맞게 감성에 풍성한 제자였습니다.
'우뢰의 아들'이라는 별명이 그의 풍부한 감성을 말해 줍니다.
사마리아 사람들이 예수님을 받아들이지 않자 격분하는 모습을 보십시오.
"주여, 우리가 불을 명하여 하늘로 좇아내려 저희를 멸하라 하기를 원하시나이까?"(눅9:54)
요한이 예수님으로부터 부름을 받을 때, 부친과 그물을 버려두고 예수님을 좇아옵니다. 그가 감성적으로 화끈한 사람인가를 생각하게 합니다. 그가 지적인 사람이라면 뒷정리를 잘하고 예수님을 따랐을 것입니다.
그가 예수님의 몸에 머리를 기대고 비스듬히 누워 예수님의 말씀 듣는 모습을 보십시오.
"예수의 제자 중 하나, 곧 그의 사랑하시는 자가 예수의 품에 의지하여 누웠는지라"(요13:23)
"그가 예수의 가슴에 그대로 의지하여 말하되 주여 누구오니이까?"(13:25)
지적인 자세보다는 매우 낭만과 정감이 넘치는 사람이었음을 생각하게 해줍니다.
그의 어머니를 모시고 예수님께 찾아와 영광 중에 오실 때 예수님 좌우편에 앉게 해 주십사고 간청하는 모습 또한 절제되고 지적인 모습보다는 감성이 넘치는 그 가정의 분위기를 엿보게 하는 바 있습니다.
그는 누구보다도 가슴으로 예수님을 사랑하였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으로부터 사랑도 받았습니다.
풍성한 감성을 가지고 예수님을 사랑하였습니다.
그러나 오늘 말씀은 무엇을 보도하고 있습니까?
50 제자들이 다 예수를 버리고 도망하니라
진정한 제자도란 풍부한 감성만으로 되는 일이 아닙니다. 주님 영의 인도하심을 받아야 합니다.
아버지와 직업과 그물을 던지고 따르는 풍부한 감성이 있을지라도 그 감성이 성령의 인도함을 받지 못하면, 그 풍성한 감성도 사위어가는 불처럼 꺼져버릴 수 있습니다.
3. 참 제자도는 의지가 주님을 따라야 합니다.
저희가 예수께 손을 대어 잡거늘
곁에 섰는 자 중에 한 사람이 검을 빼어 대제사장의 종을 쳐 그 귀를 떨어뜨리니라
베드로는 의지적으로 주님을 따른 사람입니다.
그에게 주님께서 지어주신 이름, 게바를 번역하면 베드로입니다. 즉 반석이라는 뜻입니다. 반석처럼 견고하고 의지적인 모습을 보신 것입니다.
그가 예수님의 부르심을 받던 때는 바다에서 고기를 잡던 중이었습니다.
"나를 따라 오너라. 내가 너를 사람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주님의 부르심을 받았을 때, 베드로는 과감히 의지적인 결단을 하였습니다.
그물을 버려두고 주님을 좇았습니다.
밤이 맞도록 수고하며 그물을 던졌으나 잡은 것이 없던 밤이 그에게는 있었습니다. 주님께서 그를 찾아오셔서 '깊은 곳에 그물을 내리라' 명하셨습니다. 전문가인 베드로가 비전문가인 예수님의 명령에 순종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주님의 말씀에 의지하여 그물을 내립니다. 말씀에 순종하는 베드로의 모습은 의지적인 베드로의 순종을 잘 나타내 줍니다.
풍랑 위로 걸어오시는 예수님을 향해 그는 소원을 아룁니다. 그 역시 바다 위로 주님과 함께 걷고 싶어 하는 그의 의지를 봅니다.
십자가 고난을 말씀하시는 주님께 그리마옵소서 간청하는 베드로, 그는 매우 행동적인 사람이요 의지적인 인물이었습니다.
주님께서 성만찬의 자리에서 오늘 밤 너희들이 다 나를 버리고 도망할 것이라고 말씀하셨을 때 베드로는 다른 사람들은 다 주님을 버릴찌라도 나는 주님을 버리지 않겠나이다고 강한 의지를 표현하던 베드로입니다.
주님께서 새벽닭이 울기 전에 나를 새번 부인할 것이라고 했을 때 그는 죽는 한이 있어도 주님을 버리지 않겠다고 다짐하던 베드로를 보십시오. 그 당시 그는 정말 죽어도 버리고 싶지 않은 의지가 있었을 것입니다.
베드로의 의지적인 신앙은 예수님께서 잡히시던 밤에 절정을 이룹니다.
46 저희가 예수께 손을 대어 잡거늘
47 곁에 섰는 자 중에 한 사람이 검을 빼어 대제사장의 종을 쳐 그 귀를 떨어뜨리니라
요한복음은 이 제자가 바로 베드로임을 알려줍니다.
"이에 시몬 베드로가 검을 가졌는데 이것을 빼어 대제사장의 종을 쳐서 오른편 귀를 베어버리니 그 종의 이름은 말고라" (요18:10)
그러나 이런 그의 특별한 의지는 한계상황 속에서 철저히 망가지고 맙니다.
용수철이 강하지만 어느 한계 상황이 지나면 부러지거나 탄성이 무너지게 마련인 것처럼, 베드로의 의지적 신앙이 강하기는 하였지만 예수님께 다가온 한계 상황은 베드로의 의지로 감당하기 힘든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결국 무너지고 맙니다.
71 베드로가 저주하며 맹세하되 나는 너희의 말하는 이 사람을 알지 못하노라 하니
군인들이 칼을 목에 들이대는 것도 아닌데, 베드로는 어린 계집 종 앞에서 예수님을 부인하고 말았습니다. 그것도 세번씩이나 말입니다. 나중에는 저주하면서 예수님을 부인하고 있어요.
베드로의 한계요, 베드로란 인간 의지의 한계입니다.
우리는 이런 베드로의 의지적인 한계 속에서 진정한 제자도는 의지가 주의 영의 인도하심을 받아야 합니다.
작심삼일이 의지가 없는 사람의 삶의 양식이라고만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주님을 끝까지 따르는 일은 인간의 의지만으로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힘으로 할 수 없고 능으로 할 수 없다는 말씀을 우리는 이상의 세 제자 안에서 만납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일을 주님은 어떻게 행하셨습니까?
4. 참 제자도는 지정의 전인격이 하나님의 언약을 따라야 합니다.
예수께서 무리에게 말씀하여 가라사대 너희가 강도를 잡는 것 같이 검과 몽치를 가지고 나를 잡으러 나왔느냐
내가 날마다 너희와 함께 성전에 있어서 가르쳤으되 너희가 나를 잡지 아니하였도다 그러나 이는 성경을 이루려 함이니라 하시더라
'이는 성경을 이루려 함이니라!'
성경에 말씀하신 언약은 이루어져야 한다! 예수님의 지식은 하나님을 따릅니다.
예수님의 의지는 하나님의 뜻을 따릅니다.
하나님의 언약을 이루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므로
하나님의 영이 인도하시는 일이므로
'내 뜻대로 하지 않고, 하나님의 뜻대로 하시겠다'는 말씀이십니다.
그러므로 베드로가 칼을 들어 말고의 귀를 베었을 때도 다시 치료하시며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에게 말씀하십니다.
검을 집에 꽂으라 아버지께서 주신 잔을 내가 마시지 아니하겠느냐 요18:11)
하나님의 영을 좇아 하나님의 언약을 이루시려 행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보여주신 언약을 주의 영을 따라 이루어갈 때, 그곳에 바로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집니다.
이것이 바로 진정한 제자도입니다.
[마무리하는 말]
힘으로 할 수 없고 능으로 할 수 없는 것이 하나님의 일입니다. 오직 하나님의 신으로 할 수 있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일입니다.
지적인 계산을 하고 예수님을 따랐던 가룟 유다! 그는 그의 지적인 계산을 따라 예수님을 배신하였습니다.
정적인 따스함을 가지고 예수님을 따르던 제자가 있었습니다.
그는 정서가 심하게 흔들리던 지점에서 모든 것을 벗어버리고 떠났습니다.
의지적인 결심을 하고 예수님을 따랐던 제자가 있었습니다.
그는 한계상황 속에서 그의 의지가 꺾임으로 예수님을 부인했습니다.
그들의 공통점이 무엇입니까?
'축록자 불견산'이란 말이 있습니다. 사슴만 잡으려고 쫓아가는 사람은 산을 볼 수 없다는 말이지요. 예수님을 따른다 하면서도 눈앞에 있는 현실만 바라보고 좇아가는 사람은 결코 하나님의 큰 뜻을 보지 못합니다.
지식을 따라 하나님을 섬길 수 있습니다.
감성을 따라 하나님을 섬길 수 있습니다.
의지를 따라 하나님을 섬길 수 있습니다.
지정의 전인격을 따라 하나님을 섬길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 명심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이 완성은 아닙니다.
지정의 전 인격이 주의 언약에 연결되고 하나님의 영을 좇아 섬길 때, 주의 영을 따라 하나님을 섬길 때, 참된 제자도를 이룰 수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진정한 제자도입니다.
예수님으로부터 이 진리를 배운 베드로는 훗날, 참된 제자도를 갑니다. 그의 의지적인 신앙으로 뛰어넘을 수 없던 한계상황을 사도행전에서 극복합니다. 주님의 영을 좇아 하나님을 섬기게 됩니다.
공회 앞에 서서 베드로가 '내가 너희 말 듣는 것이 옳은 가 하나님 말씀 듣는 것이 옳은가 결단하라 우리가 보고 들은 것을 말하지 아니할 수 없노라' 외치는 모습은 베드로의 의지적 신앙에서 만날 수 없었던 신앙의 백미를 보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자신의 의지만 믿고 행하다 하나님을 섬기는 일에 실패하였던 베드로였지만 주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았을 때 참제자도에 성공할 수 있었습니다.
진정한 제자도는 전인격이 주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을 때 비로소 완성 됩니다.
예수님과 같이 오직 성령의 인도함을 받아 하나님의 언약을 이루어가는 진정한 제자가 되시길 바랍니다.
바른 제자도 위에 선 자를 하나님은 반드시 도우십니다. 축복하십니다.
이사야 40장에 “너는 알지 못하였느냐 듣지 못하였느냐 영원하신 하나님 여호와 땅 끝까지 창조하신 자는 피곤치 아니하시며 곤비치 아니하시며 명철이 한이 없으시며 피곤한 자에게는 능력을 주시며 무능한 자에게는 힘을 더하시나니 소년이라도 피곤하며 곤비하며 장정이라도 넘어지며 자빠지되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의 날개 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달음박질하여도 곤비치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치 아니하리로다”
참 제자도를 회복합시다. 고난은 어느 곳에나 존재합니다. 문제는 내 인격 안에 참 제자도가 회복되어 있느냐입니다.
"미국에도 카트리나가 있고, 아시아에는 아시아대로 어려움이 있는 것이지, 어느 대륙인들 어려움이 없는 대륙이 이 땅에 어디 있습니까? 왕궁에도 있고, 판자촌에도 있습니다. 거지로 살아도 어려움은 또 있는 것입니다. 아무것도 없으면 어려움이 없느냐? 아무것도 없어도 어려움은 있습니다. 있어도 있고, 없어도 있는 것입니다. 주 예수 믿는 믿음으로 이 모든 어려움을 이겨 낼 줄로 믿습니다."(김삼환목사)
릭 워렌은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한 문제를 놓고 반복적으로 생각하면 그것은 걱정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을 반복해서 생각하면 그것은 묵상입니다.
걱정할 줄 아는 사람은 묵상하는 방법을 이미 터득한 것입니다. 묵상함으로 걱정거리를 줄일 수 있습니다."
"여호와의 친밀함이 경외하는 자에게 있음이여 그 언약을 저희에게 보이시리로다(시25:14)
교독문: 49번
찬송: 23장, 101장, 399장
[성경본문]
[세번째 오사 저희에게 이르시되 이제는 자고 쉬라 그만이다 때가 왔도다 보라 인자가 죄인의 손에 팔리우느니라
일어나라 함께 가자 보라 나를 파는 자가 가까이 왔느니라 ]
43 말씀하실 때에 곧 열 둘 중의 하나인 유다가 왔는데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과 장로들에게서 파송된 무리가 검과 몽치를 가지고 그와 함께 하였더라
44 예수를 파는 자가 이미 그들과 군호를 짜 가로되 내가 입맞추는 자가 그이니 그를 잡아 단단히 끌어가라 하였는지라
45 이에 와서 곧 예수께 나아와 랍비여 하고 입을 맞추니
46 저희가 예수께 손을 대어 잡거늘
47 곁에 섰는 자 중에 한 사람이 검을 빼어 대제사장의 종을 쳐 그 귀를 떨어뜨리니라
48 예수께서 무리에게 말씀하여 가라사대 너희가 강도를 잡는 것 같이 검과 몽치를 가지고 나를 잡으러 나왔느냐
49 내가 날마다 너희와 함께 성전에 있어서 가르쳤으되 너희가 나를 잡지 아니하였도다 그러나 이는 성경을 이루려 함이니라 하시더라
50 제자들이 다 예수를 버리고 도망하니라
51 한 청년이 벗은 몸에 베 홑이불을 두르고 예수를 따라오다가 무리에게 잡히매
52 베 홑이불을 버리고 벗은 몸으로 도망하니라
54 베드로가 예수를 멀찍이 좇아 대제사장의 집 뜰안까지 들어가서 하속들과 함께 앉아 불을 쬐더라
66베드로는 아래 뜰에 있더니 대제사장의 비자 하나가 와서
67 베드로의 불 쬠을 보고 주목하여 가로되 너도 나사렛 예수와 함께 있었도다 하거늘
68 베드로가 부인하여 가로되 나는 네 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지도 못하고 깨닫지도 못하겠노라 하며 앞뜰로 나갈쌔
69 비자가 그를 보고 곁에 서 있는 자들에게 다시 이르되 이 사람은 그 당이라 하되
70 또 부인하더라 조금 후에 곁에 서 있는 사람들이 다시 베드로에게 말하되 너는 갈릴리 사람이니 참으로 그 당이니라
71 베드로가 저주하며 맹세하되 나는 너희의 말하는 이 사람을 알지 못하노라 하니
72 닭이 곧 두번째 울더라 이에 베드로가 예수께서 자기에게 하신 말씀 곧 닭이 두번 울기 전에 네가 세번 나를 부인하리라 하심이 기억되어 생각하고 울었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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