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16:1-12
들어가는 말
오늘은 2003년 마지막 주일입니다.
52주간을 어떻게 보내셨습니까?
한 해를 보내면서 마지막 한 주간을 어떻게 보낼 것인가?
이것은 우리에게 주시는 좋은 숙제일 수 있습니다.
오늘 말씀에 비추어 나의 한 해를 돌아보고 묵어 가는 한 해를 기경할 수 있다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것입니다.
1. 한해가 가면 묵은 밭이 됩니다.
1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이 와서 예수를 시험하여 하늘로서 오는 표적 보이기를 청하니 2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희가 저녁에 하늘이 붉으면 날이 좋겠다 하고 3 아침에 하늘이 붉고 흐리면 오늘은 날이 궂겠다 하나니 너희가 천기는 분별할 줄 알면서 시대의 표적은 분별할 수 없느냐 4 악하고 음란한 세대가 표적을 구하나 요나의 표적밖에는 보여 줄 표적이 없느니라 하시고 저희를 떠나가시다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은 당시 유대교를 대표하는 양대 산맥과 같습니다. 그러나 오늘 그들은 와서 예수님을 시험하고 있습니다. 이런 일로 인하여 그들은
주님으로부터 분별력이 없는 사람으로 평가를 받습니다.
타인들에게 악한 영향력을 미치는 존재라 말씀하십니다.
그 원인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저들의 심령이 기경하지 않은 묵은 밭처럼 영적 분별력을 잃고 있기 때문입니다.
앞장에 예수님의 놀라운 사역이 소개되어 있습니다.
마15:30 큰 무리가 절뚝발이와 불구자와 소경과 벙어리와 기타 여럿을 데리고 와서 예수의 발 앞에 두매 고쳐 주시니 31 벙어리가 말하고 불구자가 건전하고 절뚝발이가 걸으며 소경이 보는 것을 무리가 보고 기이히 여겨 이스라엘의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니라
그리고 떡 7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여자와 아이 외에 4,000명이 먹고도 일곱 광주리가 남았습니다.
이런 놀라운 기적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런데 오늘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이 예수님께 와서 무엇을 말하고 있습니까?
하늘로서 오는 표적을 보여주십시오! 합니다.
지금까지 하나님 나라의 왕으로서 들어보지도 못한 많은 표적을 행하였는데, 그들은 그런 표적에서 별 의미를 찾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런 놀라운 표적은 지금까지 보지도 듣지도 못한 놀라운 표적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아무런 감동이 되지 않는 듯 다른 표적을 구하고 있습니다.
이들의 문제는 표적이 작거나 대단한 것이 아니어서가 아닙니다. 그들 영적 심령이 기경되어 있지 않아 영적 감각이 마비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 심령의 밭에는 곡식이 떨어져도 전혀 싹이 나지 않게 마련입니다.
영적 무감각은 예수님의 기적을 바로 분별하지 못하는 데서 그치는 것이 아닙니다.
나아가, 서로 원수 관계인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시험하기 위하여 서로 연합하는 모습을 보십시오.
신앙의 경향으로 볼 때, 바리새인들은 보수주의자들입니다. 그래서 바리새인들은 부활도 믿고 천사의 존재도 인정했습니다. 바리새인은 마카비 시대부터 철두철미한 애국자들로 신앙중심으로 살려고 하는 사람들이라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두개인들은 진보주의자들입니다. 그들은 모세 오경의 율법에 기록된 것들만 타당한 것으로 받아들였기 때문에 부활이나 내세나 천국, 천사에 대한 교리를 부인했습니다. 성공과 고난은 인간의 행동의 결과라고 믿었습니다. 사두개인들은 예루살렘을 중심으로 해서 공회의 주도권을 잡고 풍요와 부요의 온갖 정치적 기득권을 마음껏 누리며 즐기는 현실주의자들이었습니다.
얼핏 저들은 유사해 보이지만, 늘 서로 으르렁거리는 적입니다. 그러나 오늘 저들에게 공통점이 있었는데, 그것은 그 심령이 묵은 밭과 같이 영적 무감각에 빠져 있었다는 점입니다.
예수님을 여러 가지 일에서 원수였던 빌라도와 헤롯이 서로 "친구가 되었"던 것처럼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이 오늘 본문에서 친구가 되었습니다(눅 23:6-12).
"하늘로부터 오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행하신 기적들을 적어가다가 사도 요한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요21:25 예수의 행하신 일이 이 외에도 많으니 만일 낱낱이 기록된다면 이 세상이라도 이 기록된 책을 두기에 부족할 줄 아노라
그러나 예수님의 메시아이심을 믿지 않는 저들은 예수를 시험하여 하늘로서 오는 표적 보이기를 청합니다. 영적 수준이 묵은 밭같이 무감각에 빠져 있음을 잘 말해줍니다.
예수님께서 행하신 많은 표적을 유대인들이 그렇게 메시아의 표상처럼 떠받드는 다윗은 예수님과 같은 표적을 행한 적이 없습니다.
엘리야의 경우 하늘로부터 불이 내려오고 비가 내려 아합을 뒤집어엎는 기적이 있었던 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엘리야의 기적과 예수님의 기적은 차원이 다르고 횟수에 있어서 비교할 수 없습니다.
엘리사 선지자에게서 기적이 나타나지만 그 질과 양에서 예수님과 비교할 수 없습니다.
모세를 통해서 열 가지 재앙으로, 홍해를 가름으로 그 백성을 구원한 사건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기적의 한 표에 불과 합니다.
모세 시절에 하늘로부터 만나(떡)이 내려주신 사건도 사실은 생명의 떡이 되시는 하나님께서 하신 일입니다. 모세가 쓰임을 받았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준 그 일이 전부입니다. 하나님의 도구였지요.
그러나 예수님의 경우는 친히 떡을 들고 축사하시고 , 또 생명의 떡이 되심으로 생명을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예수님의 기적은 단지 이방 술사들을 이기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하나님의 영광과 통치를 온 땅에 나타내는 것입니다.
이런 놀라운 예수님의 기적을 보고 듣고도 또 다른 표적을 구하는 저들의 영적인 상태는 묵은 밭과 같이 마비된 것입니다.
금년도 한 해를 돌아보면 우리 삶의 전반에 하나님의 은혜가 많습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한 가지 한 가지를 헤아려 볼 때, 말할 수 없는 은혜가 됩니다.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감사가 됩니다.
영적 감각이 살아 있는 복 있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에게는 전혀 감사가 되지 않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향해서 퉁명스럽게 말합니다.
"하나님, 금년 한해도 공수로 돌아가게 하십니까? 네가 그렇게 표적을 바라는데 이럴 수가 있습니까? 좀 표적을 보여주십시오. 언제까지 제 생활은 이 모양 이 꼴입니까? 제발 하나님께서 살아 계시다는 표적을 좀 보여주십시오."
나는 어떤 편에 속합니까?
생각할수록 감사하신 하나님의 은혜로 인하여 감격하세요?
아니면, 금년도 아무런 표적을 보여준 것이 없다는 쿨한 마음이 드십니까?
많은 사람들은 밭이 몇 십 년 묵어야 황무지와 같이 묵은 밭이 되는 줄 압니다. 몇 십년 묵어야 그곳은 곡식을 심어도 잡초만 무성할 뿐, 잘 자라지 않는 줄 압니다.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을 보면서 이런 묵은 밭을 생각하게 되는 거죠. 그러나 주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오직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의 누룩을 주의하라
말씀하고 계십니다. 바리새인과 서기관의 묵은 밭과 같은 영적 무감각을 책망하신 것이 아니고 제자들이 그런 영적 무감각에 떨어지지 말 것을 경고한 것입니다.
우리도 후자에 속할 때, 책망받을 수밖에 없음을 기억할 수 있는 사람은 복이 있는 사람입니다.
우리는 한 해를 보내는 나의 심령은 묵어 있지 않습니까?
몇 년 째 묵어오지 않았습니까?
그렇지는 않더라도 금년 나의 심령이 묵어 있지 않습니까?
한 해만 기경하지 않아도 그냥 잡초가 무성해집니다.
기경하지 않고도 안심할 밭은 없습니다.
이 한 해가 가기 전에 혹은 새해를 맞으면서 밭을 기경해 보고 싶지 않으십니까?
많은 사람들은 감사제목을 찾으라면 무슨 업적이 내 삶에 두드러지게 나타난 것을 찾으려 합니다.
하박국 3장에 나와 있는 말씀대로 바른 믿음 앞에 서기만 하면 얼마든지 감사의 열매는 있게 마련입니다.
17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치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식물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18 나는 여호와를 인하여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을 인하여 기뻐하리로다
요한 사도와 같이 심령이 하늘을 향해 열린 사람은 밧모섬에 귀양을 가도 감당할 수 없는 은혜로 인하여 요한 계시록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한 해를 보내면서 감격하는 마음이 얼마나 있는지 점검하는 복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기경하시는 복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2. 주님께서는 묵은 밭을 기경하기 원하십니다.
5 제자들이 건너편으로 갈새 떡 가져가기를 잊었더니 6 예수께서 이르시되 삼가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의 누룩을 주의하라 하신대 ..........
11 어찌 내 말한 것이 떡에 관함이 아닌 줄을 깨닫지 못하느냐 오직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의 누룩을 주의하라 하시니 12 그제야 제자들이 떡의 누룩이 아니요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의 교훈을 삼가라고 말씀하신 줄을 깨달으니라
어떻게 묵은 땅을 기경할 수 있습니까?
이 질문은 '어떻게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의 교훈을 극복할 수 있습니까?'과 맥을 같이 합니다. 우리는 그들 앞서 갔던 선지자들의 교훈을 살펴봄으로 그것이 가능합니다.
호세아 선지자를 통해 선포된 하나님의 마음은 하나님의 긍휼입니다.
호세아를 통해 하나님께서 주시기 원하시는 말씀은 하나님의 긍휼을 받아 묵은 땅을 기경하라는 것입니다.
호2:23 내가 나를 위하여 이 땅에 심고 긍휼히 여김을 받지 못하였던 자를 긍휼히 여기며 내 백성 아니었던 자에게 향하여 이르기를 너는 내 백성이라 하리니 저희는 이르기를 주는 내 하나님이시라 하리라
10:12 너희가 자기를 위하여 의를 심고 긍휼을 거두라 지금이 곧 여호와를 찾을 때니 너희 묵은 땅을 기경하라 마침내 여호와께서 임하사 의를 비처럼 너희에게 내리시리라
하나님께서 그분의 백성이 아닌 자를 내 백성이라 하셨습니다.(로암미->암미)
긍휼히 여김을 받을 수 없는 자를 긍휼히 여기셨습니다.(로루하마 ->루하마)
이런 긍휼의 하나님을 찾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찾음으로 묵은 땅(심령)을 기경하여야 합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긍휼하심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백성 가운데 계시면서 사랑하시기 때문에 구원을 베푸실 전능자시라는 중요한 메시지를 말씀하십니다. 스바냐를 보세요.
습3:17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의 가운데 계시니 그는 구원을 베푸실 전능자시라 그가 너로 인하여 기쁨을 이기지 못하여 하시며 너를 잠잠히 사랑하시며 너로 인하여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시리라 하리라
메시아가 그들 가운데 계시면서 구원을 베푸시길 원하시는 데, 그 백성으로 인하여 기쁨을 이기지 못하시는데, 저들을 사랑하시면서 기뻐하십니다. 이 아름다운 교훈을 온 세상에 베풀라고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을 세우셨습니다.
그러나 저들은 묵은 밭이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죄 용서하심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표현하시는 분이십니다. 미가 선지자는 이 놀라운 하나님을 만나고 놀랍니다.
미7:18 주와 같은 신이 어디 있으리이까 주께서는 죄악을 사유하시며 그 기업의 남은 자의 허물을 넘기시며 인애를 기뻐하심으로 노를 항상 품지 아니하시나이다 19 다시 우리를 긍휼히 여기셔서 우리의 죄악을 발로 밟으시고 우리의 모든 죄를 깊은 바다에 던지시리이다
죄를 용서하시는 하나님을 선포하고 계십니다.
우리는 간음하다 현장에서 잡힌 여인이 예수님의 긍휼함을 입는 것을 보면서 놀라는데 사실은 그분이 하나님의 마음을 그대로 보여주신 사건입니다.
당시 종교지도자들은 그러한 죄 용서함을 교훈하지 않았습니다.
묵은 밭이 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죄악을 발로 밟으시고 우리의 모든 죄를 깊은 바다에 던지시리이다
하나님만 나의 하나님 나라의 시민권을 회복하실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긍휼히 여기실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여호와 하나님만이 나의 묵은 밭을 기경하실 수 있는 능력자이십니다. 사람의 힘으로 할 수 없고, 능으로 할 수 없는 것이 내 마음을 기경하는 일입니다.
요나 선지자를 보세요. 그는 우리에게 묵은 땅을 기경하는 것이 참으로 힘든 일임을 알려주십니다.
요나는 묵은 땅을 기경하려 들지 않다가 하나님께 혼이 났습니다. 물고기 배속에 사흘 밤을 들어갔다 나와서 말하는 요나를 보십시오. 그는 니느웨가 재앙을 받아야 한다고 강변합니다. 하나님을 향해 내 생명을 취하라고 항변하고 있습니다.
4:1 요나가 심히 싫어하고 노하여
2 여호와께 기도하여 가로되 여호와여 내가 고국에 있을 때에 이러하겠다고 말씀하지 아니하였나이까 그러므로 내가 빨리 다시스로 도망하였사오니 주께서는 은혜로우시며 자비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하시며 인애가 크시사 뜻을 돌이켜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이신 줄을 알았음이니이다
3 여호와여 원컨대 이제 내 생명을 취하소서 사는 것보다 죽는 것이 내게 나음이니이다
하나님께서는 요나를 통해 니느웨를 복주시기 원하셨지만 묵은 땅을 기경하지 않은 요나는 복의 근원이 되는 일을 거부하고 있습니다.
요나의 표적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온전해집니다. 요나의 표적이 우리에게 전해주는 복음이 무엇입니까? 예수님의 죽으심을 통하여 구원의 길을 여시겠다는 것입니다.
스가랴 선지자를 통하여 하나님께서는 그 백성에게 순이라 이름하는 사람이 자기 곳에서 돋아날 것을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그리스도를 통해 성전회복이 이루어질 것이라는 중요한 메시지를 말씀하십니다.
6:11 은과 금을 취하여 면류관을 만들어 여호사닥의 아들 대제사장 여호수아의 머리에 씌우고 12 고하여 이르기를 만군의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보라 순이라 이름하는 사람이 자기 곳에서 돋아나서 여호와의 전을 건축하리라 13 그가 여호와의 전을 건축하고 영광도 얻고 그 위에 앉아서 다스릴 것이요 또 제사장이 자기 위에 있으리니 이 두 사이에 평화의 의논이 있으리라 하셨다 하고 ..... 15 먼 데 사람이 와서 여호와의 전을 건축하리니 만군의 여호와께서 나를 너희에게 보내신 줄을 너희가 알리라 너희가 만일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청종할진대 이같이 되리라
9:9 시온의 딸아 크게 기뻐할지어다 예루살렘의 딸아 즐거이 부를지어다 보라 네 왕이 네게 임하나니 그는 공의로우며 구원을 베풀며 겸손하여서 나귀를 타나니 나귀의 작은 것 곧 나귀새끼니라9:16 이 날에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들을 자기 백성의 양 떼같이 구원하시리니 그들이 면류관의 보석같이 여호와의 땅에 빛나리로다
그날은 왔습니다. 순이라 이름하는 예수님께서 성전을 내가 세우리라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성전을 회복하는 일에 앞장 서야할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은 그런 교훈을 전혀 전해주지 못하고 있습니다.
밭이 묵어 있기 때문입니다. '성전' 하면 헤롯이 지어놓은 화려한 성전밖에 생각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메시아의 통치가 있는 성전입니다. 나귀를 타고 저들 가운데 오셔서 회복하기를 원하시는 성전은 나귀를 타고 오시는 메시아께서 임하셔서 다스리시는 성전입니다. 하나님께서 저들의 하나님이 되고 저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성전입니다.
죄 사함이 있고, 구원을 베푸시는 성전입니다.
마무리하는 말
우리나라에 박카스가 있습니다. 한국 역대의 최고 상품으로 선정되었습니다. 오리온 초코파이, 새우깡 모나미 볼펜 등의 쟁쟁한 상품들과 함께 한국인을 즐겁게 하는 공로 1호가 된 것입니다. 연 매상 2000억이 넘는다는 이 음료수는 지난 40년간 줄곧 선두를 유지해온 청량 음료입니다. 동아제약 회장인 강신우씨가 1963년 독일 유학 중 개발했다는 이 음료수가 141억 병을 생산하여 지구를 42바퀴 돌만큼 많은 생산을 할 수 있었던 까닭은 그 안에 타우린이란 들어 있어서 간과 심장을 건강하게 한다는 내적인 요인을 갖고 있지만, 사람들의 입에 변함이 없는 상쾌함을 주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무엇으로 하나님의 마음을 시원하게 할 수 있습니까? 심령의 밭을 기경하는 일입니다. 예수님 당시의 종교지도자들이 책망을 받을 수밖에 없었던 까닭은 저들이 지식이 없어서도 아니오, 세상적인 무엇이 갖추어 있기 때문도 아닙니다. 묵은 밭을 기경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새로운 한 해를 선물로 주십니다. 그리고 기대하십니다.
기경하는 일이 밭의 입장에서는 아픈 일이지만, 새로운 소망이기도 합니다. 기경함이 없이는 소망도 없습니다.
세상이 급격히 변하고 있습니다.
월드 라이프 스타일(World Life Style) 즉 세계적 생활 방식이 생겼습니다. 요즘 우리 아이들이 좋아하는 음식 김치나 된장국이 아니고 피자나 햄버거 같은 것들입니다.
60년대에는 우리가 태평양을 건너려면 배를 타고 3개월내지 6개월이 걸려서 갔습니다. 70년대에는 비행기를 타고 20시간, 80년대에는 논스톱으로 14시간, 2000년 대, 10시간, 얼마 전에는 4시간대의 비행기가 발명되었습니다.
컴퓨터는 이제 핵심도구요, 절대 필수적입니다.
여성도 거의가 다 직업을 갖습니다. 그만큼 파워도 커집니다.
부자 중심의 사회가 부부중심으로 바뀌더니 이제 부부 중심의 가정도 도전 받고 있습니다. 한국도 두쌍 결혼하면, 그 중 한 쌍이 이혼한다는 놀라운 소식을 접합니다. 동성애가 극성을 부립니다.
노인들이 급증하며, 실버산업이 중요한 시대입니다.
예수님께서 지신 십자가의 도는 많이 미련해 보이는 세상입니다.
어떻게 살 것인가?
그러나 고린도전서 1장에서 하신 말씀대로 "유대인은 표적을 구하고 헬라인은 지혜를 찾으나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전할 것"(22)입니다. 십자가의 도는 참으로 우리 심령을 기경하고 박카스보다 훨씬 하나님의 마음을 시원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권세가 있습니다. 주님이 원하시는 도는 요나의 표적인 십자가뿐입니다.
금주는 한 해가 마무리되는 주입니다. 그리고 새로운 한 주가 시작이 됩니다. 그래서 송구영신 예배도 있고, 신년 금식 기도회도 마련했습니다. 기경함으로 새로운 한 해를 준비하는 축복을 받으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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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구영신예배메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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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제목: 빛의 자녀가 새해에 힘쓸 일
성경본문: 살전5:1-11
들어가는 말
우리 성도가 어떤 존재입니까?
5 너희는 다 빛의 아들이요 낮의 아들이라
우리가 밤이나 어두움에 속하지 아니하나니
우리는 빛의 아들입니다.
성도는 낮의 아들입니다.
성도에게 지나간 금년 한 해의 날들은 무엇이며, 오는 새해의 날은 어떤 의미가 있습니까?
2 주의 날이 밤에 도적같이 이를 줄을 너희 자신이 자세히 앎이라
주님의 날과 연관이 있음을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우리 성도를 위해 예비된 한 날, 곧 주의 날을 기다리며 살고 있습니다.
도적같이 임하신다는 말씀은 주의 재림이 사람의 인식 밖의 일이란 말씀입니다. 바울은 주의 재림의 때와 시기에 관하여서 만은 성도들에게 쓸 것이 없음을 진술했습니다. 주님께서 하시는 일에 대하여 왈가왈부할 사항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자신이 살고 있는 세상이 평안하다고 생각하며 안심하고 자신들의 쾌락을 좇아 살아갑니다. 그러나 그들로서는 전혀 생각하지 못한 때에, 돌연히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실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때에 악인들은 그리스도의 재림에 대하여 전혀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을 것입니다. 따라서 심판을 결단코 피할 수 없습니다.
노아의 홍수 심판 때, 사람들은 아무런 준비 없이 일상 생활을 누리다가 갑자기 쏟아지는 홍수심판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새해를 맞이하면서 어떻게 살아왔는가를 돌아보면서 새해를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는 우리 모든 성도들에게 중요한 주제입니다.
1. 구원받은 자는 입어야 할 옷이 있습니다.
7 자는 자들은 밤에 자고 취하는 자들은 밤에 취하되
8 우리는 낮에 속하였으니 근신하여 믿음과 사랑의 흉배를 붙이고 구원의 소망의 투구를 쓰자
성도들은 빛의 아들들로서 낮에 속하였기 때문에 입어야 할 옷이 있습니다. 믿음과 사랑과 소망의 옷입니다. 그리스도의 심판 날의 뜨거운 불심판을 견딜 수 있는 견고한 옷은 열이 스며들지 않는 어떤 특수 방열의 옷이 아닙니다. 믿음과 사랑과 소망의 옷입니다. 이 옷만 입고 있으면 말세지말의 심판을 두려워하지 않아도 됩니다.
이것이 구원받은 빛의 아들의 중요한 재산입니다. 믿음과 사랑과 소망입니다. 모두가 다 있어야 할 것이고 소중합니다. 그러나 고린도 교회와 같이 진흙탕 밭에서 서로 반목하고 싸우는 교회에게는 주님께서 그 중에 사랑이 제일 빛을 발합니다. 그러나 재림을 기다리는 데살로니가 교회에게는 소망의 투구가 가장 유효할 것입니다.
2004년을 맞는 서머나 교우 여러분,
우리에게는 어떤 옷이 가장 필요하다고 생각하십니까? 낮에 속한 자들 다웁게 믿음과 사랑과 소망의 옷을 견고히 입으시는 이 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2. 자나깨나 함께 살아야 할 분이 계십니다.
9 하나님이 우리를 세우심은 노하심에 이르게 하심이 아니요 오직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게 하신 것이라
10 예수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사 우리로 하여금 깨든지 자든지 자기와 함께 살게 하려 하셨느니라
우리가 공산주의자들을 용납하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 사상이전에 우리 동족을 둘로 갈라놓는데 일조 했기 때문입니다. 함께 도우면서 살아야 할 우리 동족이 서로 다투며 삶을 살아야 하니 보통 문제가 아닙니다.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죄가 우리와 하나님 사이를 갈라놓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무엇보다 하나님께 감사하는 이유는 우리가 죄인 되어 하나님과 원수되었을 때에 독생자를 주심으로 죄문제를 해결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간절한 소원은 이 죄문제를 떨쳐버리고 하나님과 함께 사는 일입니다.
자나깨나 함께 살게하려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를 구속하셨습니다.
그리스도의 재림도 성도의 구속을 완성시키시어 자신과 함께 영원히 살게 하기 위함이라는 것입니다.
2004년을 선물로 받는 서머나 교회 성도 여러분,
주님과 함께 사는 복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3. 덕을 세우는 삶을 원하십니다.
11 그러므로 피차 권면하고 피차 덕을 세우기를 너희가 하는 것같이 하라
[히] @jE (chen) [그] ajrethv (arete) [영] Virtue 세상에서 덕이라 하면 일반적으로는 사람에게 요구되는 도덕을 말합니다. 고대 희랍인들은 지혜, 절제, 용감, 공정을 인생의 4대 덕으로 생각했습니다. 고대 중국에서는 지, 인, 용(智仁勇)을 삼달덕이라 부르고, 유교 방면에서는 인의예지(仁義禮知), 즉 사람의 몸에 갖추어야 할 네 가지 마음씨-어질고, 의롭고, 예절 바르고, 지혜가 있는 것을 총칭하여 덕이라 말했습니다. 노자(전 5-4세기 중국 老子道德經 저자)의 해석은 이것과 달라, 우주의 원칙인 도의 다음에 위치하는것으로서 덕을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학창시절에 도덕을 배웠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그리스도인의 생활 중에 당연히 갖추어야할 품성을 말합니다.(빌 4:8, 벧후 1:5).
신약에는 이 원어로는 4회 씌어져 있습니다(빌 4:8, 벧전 2:9, 벧후 1:3, 5), 바울은 여기서 하나님의 찬미에 관련하여 하나님의 탁월하심과 권능의 의미로 쓰고 있다] (빌 4:8 viture). 베드로는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자(하나님)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는 일](벧전 2:9)이 바로 빛의 자녀의 할 사명임을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신의 성품에 참여하는 자](벧후 1:4)로 된 자는 이 덕을 자기의 몸에 지니도록 해야 합니다. 그리고 이 덕을 갖춤에 있어 믿음은 필수요소이지만 믿음만 있다고 덕은 그냥 갖추어지지 않습니다. 열심히 구해야 합니다(벧후 1:5). 믿음이 중요하지만 믿음이 있다고 그냥 덕이 형성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성숙한 믿음으로 사는 사람에게 갖추어주시는 선물이 바로 덕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에 덕을, 덕에 지식을, 지식에 절제를, 절제에 인내를, 인내에 경건을, 경건에 형제 우애를, 형제 우애에 사랑을 공급하라]고 말씀하십니다. 믿음으로 덕을 사모하면서 [심는 자에게 씨와 먹을 양식을 주시는 이가 너희 심을 것을 주사 풍성하게 하시고 너의 의의 열매가 더하게 하시]겠다는 것이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공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십니다(벧전 4:11).
그러므로 성도들이 피차 권면하고 피차 덕을 세우기를 힘쓰라고 권면하십니다. 믿음 충만한 사람들이 교회를 세웁니까? 맞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믿음 충만한 사람들이라고 하는데 교회를 허는 사람도 많습니다. 상대편이 믿음이 없다고 생각하여 함께 세워져 가는 일을 할 때 가능합니다. 교회는 마치 건물을 세워 나가는 것과 유사합니다. 믿음도 좋고, 은사도 좋은데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를 세워 나가는 데 정말 필요한 요소는 덕입니다.
마무리하는 말
종말을 살아가는 서머나 성도 여러분,
그리스도께서 재림을 말씀하셨습니다.
빛의 자녀답게 믿음과 사랑과 소망의 옷을 입고, 하나님과 함게 덕을 세우는 삶을 살아가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과 함께 살며 항상 하나님과 교통하는 가운데 천국 시민으로서의 합당한 삶이 이루어집니다.
마지막 때를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지 생각해야 합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너무 현실에 안일하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믿음이 있다는 성도들 간에도 신앙생활에서 부조화를 많이 경험하고 있습니다.
우리 성도들은 그분이 오실 날을 기다리며 준비하며 살아가는 성도들입니다. 하나님은 빛이시며, 그리스도는 세상의 빛이십니다(요 8:12). 우리 그리스도인은 낮에 속하였으므로 빛 가운데서 살아야 하며, 그리스도의 재림을 대비하여야 합니다.
구원받지 못한 세상은 마치 1912년 "가라앉지 않을 것 같은 배"였으나 빙산에 부딪혀 침몰해 버린 타이타닉호에 탄 사람들과 같습니다. 해안 경비대는 타이타닉호에 빙산을 주의시키는 전보를 몇 차례나 보냈으나 무선사는 이 경고를 무시하였으며, 마지막에는 "나를 괴롭히지 마시오! 나는 바쁘단 말이오"라고 전신을 보내왔습니다. 그러나, 그로부터 한 시간도 안 되어 그 배는 가라앉고 있었습니다.
바울은 그리스도께서 오신다는 것을 두 가지로 묘사하였습니다. 도둑의 예를 들었습니다.
해산하는 여인의 예로 갑작스러운 진텅에 비유하였습니다.
깨어서 주님오실 날을 준비하는 복된 서머나 교우 여러분이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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