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dnesday, 25 February 2015

눅16:14-18 존귀한 삶을 꿈꾸는 이에게

들어가는 말

사람마다 존경을 받으면서 살기를 원합니다. 그리고 존경을 받고 사는 사람도 있습니다. 저는 많은 목사님들 가운데서 존경을 받는 목사님을 가끔 만납니다. 존경받는 장로님들이 있습니다. 존경 받는 성도님들이 있습니다. 오늘 우리는 한 해를 마치면서 존경을 받으면서 살 수 있는 비밀을 찾을 수 있기를 원합니다.
오늘 주님께서는 사람 앞에 높임을 받기 원하는 바리새인에게 주시는 말씀입니다.

지극(至極)히 작은 것, 불의(不義)한 재물, 남의 것에 충성(忠誠)하라. 하나님과 재물(財物)을 겸하여 섬길 수 없다.

이 말씀을 들으실 때, 또 돌아온 탕자의 이야기를 들으셨을 때, 여러분은 마음에 어떤 반응이 일어납니까?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의 이 모든 말씀을 듣더니 비웃고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을 듣고 비웃거늘 !

비웃는다는 말씀은 '코웃음친다'는 뜻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에 동의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좀 심하게 말하면 그런 말씀을 경멸한다는 의미입니다.

  1. 비웃지 마십시오.

율법과 선지자는 구약성경을 의미합니다. 바리새인들은 이 율법과 선지자의 권위?의탁하여 사는 사람들입니다. 율법과 선지자를 본으로 삼고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죄와 분리되어 살려고 힘쓰는 특별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리고 사람들로부터 존경을 받고 살기를 원하였습니다. 그러나 실제로 그들이 존경을 받고 살지는 못하였습니다.
사람들 앞에서 스스로 옳다고 여기고 있는데! . 뿐만 아니라 세상에 자신들의 의로움을 드러냈는데 사람들은 그렇게 존경하지 않았습니다.

그 가장 근본 원인을 우리는 예수님의 깊은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고 비웃는 그들의 마음에서 그 원인을 생각하기 원합니다.
왜 그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비웃었을까요? 예수님께서 하신 어떤 말씀이 그들의 내면에 충돌을 일으켰을까요? 예수님 말씀을 비웃은 이유가 무엇이었을까요?

     1] 스스로 옳다고 생각한 자기 의 때문입니다.

(15) 너희는 사람 앞에서 스스로 옳다 하는 자(者)이나 너희 마음을 하나님께서 아시나니

바리새인은 자기 의에  충만한 사람들입니다. 스스로 올바른 삶을 추구합니다. 자신들의 삶에 자신이 있습니다. 맏아들처럼 자기 의(義)에 충만합니다. 그들은 맏아들의 사고를 가지고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다 보니 그들의 눈에는 예수님께서 하시는 일이 비웃음거리가 됩니다. 맏아들 눈에 아버지의 하는 일이 비웃음거리가 된 것처럼 말입니다. 죄인과 세리를 맞아들여 그들의 죄를 용서하시고 값없이 천국 잔치의 주빈으로 받아들이는 일은 그들에게 이해하기 어려운 일입니다. 맏아들을 위해 소를 잡아야지 어떻게 창기와 함께 재산을 탕진한 아들을 위해 잔치를 베푼다는 말입니까? 그래서 그들은 비웃고 있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이 세상에는 자기 스스로 의롭고 선하다고 생각하면서 살아가는 사람이 있습니다. 자신의 의를 믿고 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그들의 눈에는 예수님의 말씀까지도 걸러지고 자신의 의에 벗어날 때는 비웃기까지 하면서 사는 사람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사람들은 자기들 또한 존경을 받을 수 없다는 점입니다. 자신들의 의와 선행으로는 자신의  구원을 얻지 못할 뿐만 아니라 존경을 받을 수도 없습니다.
"너희가 그 의를 인하여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우리에게서 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선물이라" 하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의로 자신을 채울 때, 구원이 있고, 존경을 받을 수 있습니다.
"우리를 구원하시되 우리가 행한 바 의를 인하지 않고 하나님의 긍휼하심을 좇아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하셨음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의와 긍휼로 자신을 채울 때 구원과 존경을 받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성도들이 자신의 의가 아닌, 하나님의 의에 충만하기를 원하십니다.

2] 사람 중에서 높임을 받으려 하기 때문입니다.

(15) 사람 중(中)에 높임을 받는 그것은 하나님 앞에 미움을 받는 것이니라.

사람 중에서 높임을 받으려 하는 사람은 하나님 눈밖에 날뿐만 아니라 사람으로부터도 결코 존경을 받을 수 없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과 그 율법에 충성하기 때문에 사람들 사이에서는 스스로 높임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금식을 한 주일에 두 번씩 합니다. 위세를 위한 십일조를 합니다. 사람 앞에 드러내기 위한 자선을 베풀기도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마음의 중심과 자선 행위 배후에 숨은 동기를 아십니다. 바리새인들에게 이런 종교행위는 높임을 받기보다 외식이란 죄에서 나온 일종의 영적 질병일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오신 목적을 섬기러 오셨다고 하셨습니다. 종의 형체를 입고 오셨습니다.

3] 돈을 좋아하기 때문입니다.

불의(不義)한 재물(財物)에 충성(忠誠)하라.

주님께서 '불의(不義)한 재물(財物)에 충성(忠誠)하라' 하실 때, 그들은 웃습니다.
자신들은 돈에 깨끗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물질에 깨끗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더러운 물질에 충성하라는 말씀을 비웃습니다. 그런데 주님께서 그들의 중심을 보신 후, 그들 내면에 물질을 사랑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십니다.

바리새인(人)들은 돈을 좋아하는 자(者)라

이는 너무 서글프고 씁쓸한 인생의 병든 모습입니다. 내면으로 병이 든 현상이지요.

우리는 십일조 신앙으로 위선을 쌓는 위험도 알고 있지만 우리 시대에는 십일조를 거부하고 비난함으로 자신의 신앙이 옳은 체하는 종교인들을 때로 만납니다. 그때마다 여러분은 어떤 생각을 하셨습니까? 박수를 치는 사람도 있다고 들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 고상한 주장 이면에 돈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는 것은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하나님께 불순종하는 마음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나는 돈을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명하신 말씀을 지키지 못합니다.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하고 있습니다. 하나님 말씀에 불순종하고 있습니다."
"십일조를 드리고 나면 우리 가족이 굶어죽게 됩니다."
이렇게 말하면 참 알아듣기가 쉬운데, 성경을 들먹이면서 지식의 칼을 휘두릅니다. 자신의 돈을 사랑하는 마음은 마음 깊은 곳에 묻어두고 오히려 십일조 신앙을  공격하는 것을 보면, 구토증이 납니다. 그러나 이 경우도 주님은 그 중심을 보십니다. 돈을 주님보다 앞세우는 바리새인이 존경을 받는 일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런 그들에게 주님은 앞에서 말씀하셨습니다.

불의(不義)한 재물(財物)에 충성(忠誠)하라.

[요약]
내 안에는 주님의 말씀을 비웃는 마음이 없습니까? 진리를 비웃지 마십시오. 진리는 존중할 때, 생명이 있습니다. 비웃을 때,  진리는 심판 날 심판의 도구가 됩니다.


  2. 진리 안으로 들어오십시오.

이제 메시야가 오셨습니다. 종교지도자들은 그분을 앞장서서 영접해야 했습니다. 율법과 선지자들이 알려 주셨던 그분을 모시고 이제는 그분의 통치 속에서 살아야 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는, 저들 앞에 중대한 선언을 하십니다.

(16)율법(律法)과 선지자(先知者)는 요한의 때까지요

세례 요한이 한 시대의 마지막을 나타내는 전환점이었음을 선언하셨습니다.
요한이 메시야의 오심을 선포하고 하나님의 나라를 소개하기 시작하였을 때, 율법과 선지자는 그들의 사명을 마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바리새인의 불의에 대하여 책망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예수가 주신 비유의 핵심을 깨닫지 못하고, 자신들의 기존 가치관과 다름을 이유로 조소하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메시야 시대의 도래로 율법이 역동적인 복음으로 대체된 것을 가르치십니다. 동시에 율법의 영원성을 역설하십니다. 이런 의미에서 예수는 율법의 폐기론자가 아니라 완성자이십니다.그들에게
1] 예수님께서 율법을 무가치한 것으로 말씀하신다고 생각하면 안됩니다(17절). 오늘날도 율법은 몽학선생이 되어 우리를 예수님께서 인도합니다. 모든 사람이 죄인임을 알려줍니다. 죄의 삯은 사망임을 깨닫게 하여줍니다. 자기 혼자의 힘으로는 누구도 천국에 이를 수 없음을 깨닫게 해 주는 것이 바로 율법입니다. 그리하여 율법은 사람들로 그리스도를 갈망하고 사모하게 합니다. 오늘날 유대인들이 그리스도를 갈망하는 까닭은 그래도 율법을 간직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율법은 모든 사람을 그리스도께로 인도합니다.
2] 율법은 우리에게 하나님의 의로우심을 나타내 줍니다. 천지의 피조물들은 창조주 하나님의 능력을  잘 나타내 주고 있지만, 울법은 하나님께서 얼마나 의로우신 분이신가를 알려주십니다.
3] 율법의 하나라도 쓸모 없는 것으로 취급한다면 그것은 율법을 주신 하나님을 어리석은 분으로 취급하는 결과와 같습니다.

(17)그러나 율법(律法)의 한 획이 떨어짐보다 천지(天地)의 없어짐이 쉬우리라

그러므로 주님께서는 이 율법이 명하는 진리는 여전히 존중되어야 합니다. 그것이 금하는 죄는 여전히 죄로서 존재합니다. 율법의 한 획이 떨어짐보다 천지의 없어짐이 쉬우리라 말씀하십니다. 다만 의식적인 법의 경우에는 그리스도께서 오심으로 온전하여 졌음으로 복음을 지킴으로 완전히 지키는 셈이 됩니다.

우리가 힘써야 할 일은 진리 안으로 들어가는 일입니다.
아버지의 중심은 무엇인가?
아버지께서 그 집에 어떤 잔치를 준비하셨는가?
그 상은 얼마나 풍성한가? 그런 잔치를 준비하신 아버지의 의도는 무엇인가?
들어와서 두루 알아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 후(後)부터는 하나님 나라의 복음(福音)이 전파(傳播)되어 사람마다 그리로 침입하느니라

  예수님께서는 이 거드럭거리고 자만에 가득한 바리새인들에게 마음이 가난한 세리와 죄인들의 복음 영접하는 모습을 보여주십니다(16절).
율법과 선지자는 요한의 때까지요, 그 후부터는 하나님 나라의 복음이 전파되어 사람마다 그리로 침입하느니라.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영접한 사람들이 그 복음을 통하여 하나님의 통치권 속으로 돌아오는 모습입니다. 복음에 눈이 열린 사람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사모하여 침노하는 사람들처럼 몰려옵니다."

요즈음 이스라엘의 모습을 보면서, 참 안타까워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땅 끝까지 이르러 메시야의 증인이 되어야 할 백성이 시오니즘에 얽매어 세계의 문제아가 되어 있습니다. 그들로 인하여 복음을 받아야 할 팔레스타인 백성들은 저주를 받고 있습니다

    3. 말씀 안에서 함께 사십시오.

(17)그러나 율법(律法)의 한 획이 떨어짐보다 천지(天地)의 없어짐이 쉬우리라
(18)무릇 그 아내를 버리고 다른데 장가드는 자(者)도 간음(姦淫)함이요 무릇 버리운 이에게 장가드는 자(者)도 간음(姦淫)함이니라

주님의 말씀 안에서 살면서 말씀을 높이며 사는 사람은 존경을 받습니다. 하나님 말씀 한 마디를 천하의 모든 보배보다 더 귀하게 생각하고 그 안에서 기적을 체험하면서 사는 사람이 존경을 받습니다. 저는 자기 부모님의 말씀을 하늘처럼 받드는 사람을 만날 때, 존경하는 마음이 생깁니다. 하물며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말씀을 한 구절이라도 소홀히 하지 않는 사람을 왜 존경하지 않겠습니까?
말씀을 가볍게 생각하는 사람은 하나님으로부터 멸시를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이는 너무 서글프고 씁쓸한 인생의 병든 모습입니다. 내면으로 병이 든 현상이지요.

이전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물이 끓을 때, 뚜껑이 움직이는 것을 보았으나 그들은 아무 생각도 못하였습니다. 그러나 제임스 와트(1736-1819스코틀랜드의 발명가)를 생각해 봅시다.

 18세기 중엽 영국에서는 방적기계·직물기계 등이 급속히 발달하여 공업이 점차 발전하게 되었습니다. 글래스고대학의 수리공장에 근무하던 J.와트는 뉴커먼의 대기압 증기기관의 수리를 의뢰받고 성능개선에 노력한 결과 증기를 실린더 내에서 응고시키지 않고 다른 용기(응축기)에 이끌어서 응고시켜 피스톤을 대기압이 아닌 증기압력으로 구동하는 발명을 하여 오늘날 증기기관의 기초를 구축하였습니다.

주님은 우리의 너무도 가까운 곳에서 일하시는 분이십니다. 우리가 우리 안에서 일하시는 분의 능력을믿고 말씀 그대로 이루어 일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는 것보다 더 귀한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노하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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