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dnesday, 25 February 2015

눅16:19-31 오늘만 살다간 부자, 내일을 살았던 나사로

들어가는 말

44세에 하나님 앞에 가신 Edward Payson 목사님께서 병상에서 그 누님께 보내신 글입니다.

"하나님은 내가 받은 축복을 하나씩 차례로 빼앗아 가셨습니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이 사라졌을 때, 나를 사랑하는 주님이 오셔서 그 자리를 대신 채우셨습니다. 비록 지금은 불구가 되어 움직일 수 없는 형편이지만 내 생에 있어서 그 어느 때보다 행복합니다. 죽음의 강이 내 앞에 있을지 모르지만, 그 죽음의 강이라는 것도 하나님께서 사랑하신다면 한발로 뛰어넘을 수 있는 개울일 뿐입니다."

우리는 본문에서 두 가지 근본적인 질문을 갖고 시작합니다.
나사로가 천국 간 이유는 무엇일까요?
부자가 지옥에 간 이유는 무엇일까요?
나사로처럼 가난하고 병든 것은 하나님의 심판이요 저주입니까?
한 부자처럼 윤택한 것은 하나님의 축복이라고 생각하십니까?


1. 고난 중에 있는 선인도 있습니다.

    나사로의 이름은 '하나님은 나의 도움이라!'는 뜻입니다. 그는 경건한 사람이었습니다(20절). 다만 그는 불행과 고난 가운데 있는 한 거지였습니다. 그는 살기 위해 구걸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의 몸은 욥처럼 병으로 망가졌고 피부는 헐었습니다.

    - 그러나 나사로가 거지요 병을 앓고 있었다는 사실이 부도덕하다는 말도 아니요 범죄로 인한 심판을 받고 있다는 말은 아닙니다.
    - 선한 사람들이 이 세상에서는 극심한 가난과 궁핍을 당할 수가 있습니다.
    요셉은 형들보다 선하였지만, 젊은 날에 극심한 고난을 당하였습니다. 그것은 그가 부도덕해서도 아니고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서도 아닙니다.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은 내가 아나니 재앙이 아니라 곧 평안이요 너희 장래에 소망을 주려 하는 생각이라(렘 29:11)

     - 나사로와 같이 곤고한 형편에 있습니까? 천국의 소망을 가집시다. 미래의 소망이 있을 때 현재의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으며, 더불어 사는 사랑의 실천자가 될 수 있습니다.

삶에 실패한 사람 중 많은 이들은 그들이 포기할 때, 자신이 얼마나 성공에 가까이 왔는지 깨닫지 못한 사람들입니다.(일만 번의 실험으로 백열전구를 만든 에디슨의 말)
그가 세운 세계적 발명 공장이 불에 타는 모습을 바라보면서 "얘들아, 어머니좀 모셔 오너라. 생전에 이런 불구경을 다시는 볼 수 없을꺼다."
"내 나이 이제 67이요. 아직 새출발을 못할 만큼 늙지는 않았소. 나는 평생 이런 일들을 숱하게 이겨냈다오." 에디슨이 땀과 영감, 그 이상의 것은 사물을 긍정적으로 보는 낙천성이다.

가난하지만 하나님 앞에서 믿음을 가지고 경건히 사는 사람은 현재의 불행에서 벗어날 날이 옵니다. 이 세상에서가 아니라면, 천국에서라도 하나님께서 그를 위해 마련하신 행복과 기쁨을 누리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서 믿음을 갖지 못하고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을 제대로 감당하지 않을 때, 이웃들에게 무책임한 삶을 살아갈 때, 지금 호화롭게 살지라도 그 삶은 영원한 것이 아닙니다. 비록 오늘 부유한 삶을 살지라도 죽어 견디기 어려운 고통의 상태로 들어간다고 하는 것입니다.

예화] 윌리엄 뮬러

    뮬러는 공장에서 어린 나이에 일하다 팔이 잘렸습니다. 아무 일도 할 수 없으므로 살아도 소용없는 인간이란 놀림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튼튼한 두 다리와 한 팔로 우편 배달부에 도전하여 성공하였습니다.
    그는 스무 살이 되기까지 다섯 번이나 성서 공회를 찾아간 끝에 성경 파는 일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는 부둣가 노동자들을 찾아다니면서 외쳤습니다.

 "여러분, 나는 손이 하나밖에 없습니다. 한 손을 잃었을 때, 나는 죽으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나는 한 권의 책을 읽고 희망과 용기를 얻었습니다. 바로 이 책입니다.  이제 나는 두 손 가진 사람보다 더 행복합니다. "
    많은 사람들이 비웃었지만, 한 팔이 장애인 아들을 둔 한 아버지만은 비웃을 수 없었습니다.
   "우리 아들이 장애인이라서 늘 비관하고 사는데 어디 그 책 한번 사다 주고 싶습니다."
    이렇게 시작된 그의 책 판매는 불티나게 팔리기 시작하였습니다.
    그의 성공을 본 성서공회는 그를 중국에 선교사로 파송하였습니다.
    그는 중국에서도 몸을 살리는 책, 마음을 살리는 책, 사람을 살리는 책을 자랑하며 많은 성경을 팔았습니다.
    그는 특히 장님들을 위하여 기도하다가 중국 점자를 만들기로 결심하고, 각고의 연구 끝에 중국 점자를 완성하였습니다.
    그리고 추운 밤에 다리 밑에서 얼어죽어 가는 장님 거지들을 모아다가 점자를 가르치며 점자 성경학교를 운영하였습니다. 그는 쉴 것을 권하는 사람들에게 이런 선교 편지를 써 보냈습니다.
    앞을 못 보는 형제가 아직도 많습니다. 내가 쉰다면 하나님께서 부르실 때뿐입니다.

    이런 사람을 위해 천국을 마련하시고 아브라함 품을 준비하고 계시는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비록 가난하고 병이 들어 세상에서 가진 것이 없을지라도 하나님 나라에 대하여 부요한 사람들을 후대하시는 하나님을 사랑합니다. 이 세상과는 전혀 다른 공의로운 세계를 마련하시고 우리를 기다리시는 하나님을 소망합니다.  고통 뒤에는 안식이 있습니다. 굴욕 뒤에는 영광이 있습니다. 슬픔 뒤에는 행복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마음이 가난한 성도를 위해 영원한 천국을 준비하고 계십니다.


2. 부요한 가운데 있는 악인도 있습니다.

    부자에게는 긍정적인 면이 있습니다.
    - 아브라함을 아버지라 부르는 것으로 보아 유대인이었을 것입니다. 형제들에 대한 뜨거운 사랑과 관심이 있습니다. 자기의 삶에 더 이상 구원의 방도가 없음을 알았을 때, 그는 형제들의 안타까운 장래를 염려합니다.
    - 결코 겉으로 드러나는 죄를 지은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자기 재산을 사기, 압제, 또는 착취로 모았다는 말도 없습니다. 그리고 그가 술 취했다거나 다른 사람을 술 취하게 했다는 말도 없습니다. 다만
  - 그는 '자색 옷과 고운 베옷'을 입었습니다.
  - 그는 '날마다 호화로이 연락하였습니다'. 그의 식탁에는 자연과 인력이 제공할 수 있는 각종 진귀한 음식들로 가득 차려졌습니다. 그는 풍성한 식탁을 먹었습니다. 자신의 쾌락이 영원히 지속적으로 계속될 것으로 생각하였습니다.

그러나 이런 것을 죄라고 해야 합니까? 이런 요소가 지옥에 갈 만큼 무서운 죄입니까? 그가 왜 지옥에 간 것일까 생각할 때, 우리는 좀 당황하게 됩니다.

    1]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지 못한 죄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는 자신의 특권에 대하여 너무 가벼운 태도를 취하였습니다. 맡겨주신 것들을 주인 되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바로 사용하지 못한 죄를 범하였습니다. 자신과 그 욕망을 위해 재산을 낭비하였습니다.

창세기에 나오는 9장면을 뽑아
400명이 넘는 인물을 4년에 걸쳐 혼신을 다해 그린 후,
친구들이 알아보지 못할 맡큼 늙어어버린 37세의 미켈란젤로 !
왜 그리 어두운 시스틴 성당 구석에서 아무도 보지 않을 것을 열심히 그리냐는 질문에
"하나님께서 보실 겁니다."

    2] 그는 하나님께서 다스리시는 내세가 있다는 사실에 대하여 무지하였습니다. 그는 사후의 세계에 대하여 무지하였습니다.
    - 저 세상의 좋은 것을 위하여 구체적인 준비를 하지 못하였습니다. 그는 이 세상에서 좋은 것만을 추구하며 살지 말고 저 세상의 좋은 것을 준비하며 살았어야 합니다. 그에게 내세는 가까운 현실이었는데 이에 대한 대책을 전혀 마련하지 않았습니다.
     - 눈앞의 쾌락에 파묻혀서 장래에 그를 위해 두신 소망에 눈먼 삶을 사는 죄일 수 있습니다. 사실 그에게는 이 세상의 일보다 저 세상에서 만날 일들이 훨씬 더 중요했습니다. 부(富)에 집착한 세속적 삶보다, 영원한 미래에 소망을 둔 삶이 값진 것이었습니다.
    - 부자의 죽음을 위하여 금으로 된 관을 사고 , 양손에 금 한 자루씩 쥐어준다고 한들 그 황금으로 된 관이 어떻게 그를 도울 수 있겠습니까? 추도객과 꽃다발이 가득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스펄젼)
     - 그는 영원한 삶을 무시하였습니다. 세상에서 부요하였으나 사실 영적으로는 가난한 사람이었습니다.

앤드류 잭슨 대통령이 예배에 참석한 것을 알고 설교하기를
"앤드류 잭슨도 자신의 죄를 회개하지 않으면 지옥에 간다는 것입니다."(피터 카트라이트 목사)

    - 자기 자신만을 위한 삶을 살았습니다. 자기를 부인하지 못한 삶을 살았습니다. 자기 부정은 자신을 즐겁게 하는 삶이 아니라 하나님을 바로 섬김으로 즐겁게 하고 이웃의 영과 육을 즐겁게 하는 삶입니다.
      - 얻으려고 애쓰는 것들도, 지상에서 누리는 모든 쾌락도 어린애들이 가지고 노는 장난감 같음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그날이 오면, 반짝반짝 빛이 나는 물방울처럼 빛이 나다가 곧 사라져버리는 물방울 같습니다.(스펄젼)
하나님께서 그에게 주신 것들로 이웃을 섬기는 삶이 복있는 삶입니다.

여러분의 운명이 어떻게 될지 나는 모릅니다. 하지만 한 가지는 알고 있습니다. 여러분 중 참으로 행복하게 될 사람이 있다면 그는 계속해서 섬기는 법을 찾으려는 사람입니다.(슈바이쩌)

   - 이웃에 대해 무관심한 죄를 지었습니다. 넘치도록 호사스러운 삶을 살면서도 주위의 가난한 사람을 돌아보지 아니하였습니다. 그는 좋은 음식으로 잔치를 하면서도, 굶주리는 사람은 보지 못하였습니다. 이웃의 삶은 그 사람 자신의 복이요, 자기 팔자라고 할지 모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런 이웃을 우리 곁에 두실 때, 생각이 있으십니다. 그를 돌아봄으로 하나님을 나타낼 수 있습니다. 이웃에 대한 무관심은 얼마든지 죄일 수 있습니다.

[예화]
어떤 부자의 화려한 만찬에 초대받은 신사가 만찬이 끝난 후, 들어간 집에는 가구와 침구도 없고, 먹을 것도 없는 초라한 집이었습니다. 남루한 옷을 입은 두 아이가 꺼져 가는 낡은 난로 가에 웅크리고 앉아 굶주리고 있었습니다. 엄마는 그 아이들에게 먹을 것을 구하려고 밖에 나갔지만, 이웃에서 준 희미한 촛불이 그들의 가난함을 더욱 선하게 드러내고 있었습니다.

Perle Mest 여사(자신이 아닌 타인에게 관심을 가진 사람)의 인사

"마침내 오셨군요."(맞는 인사)
"이렇게 빨리 가시다니 아쉽군요"(헤어지는 인사)

우리가 이웃의 깊은 곳까지 초대할 수 있는 마음이 요청됩니다.
    - 그는 기도의 때를 놓쳤습니다. 그의 영혼이 육체와 분리되는 날은 왔습니다. 그날 부자는 영혼이  저 음부, 즉 지옥에 떨어집니다. 거기서 그는 극도의 고통 중에서 이렇게 기도합니다.

    아버지 아브라함이여 나를 긍휼(矜恤)히 여기사
    나사로를 보내어 그 손가락 끝에 물을 찍어
    내 혀를 서늘하게 하소서

    그러나 불꽃 가운데서 고민하는 그를 아브라함도 어떻게 할 수 없습니다. 그는 기도가 응답되는 이 세상에서 기도하였더라면 좋았을 것입니다. 지옥에서는 어떤 기도도 응답되지 않습니다. 기도는 응답될 수 있는 지금 기도하는 것이 중요한 일입니다.

지혜를 얻고자 찾아온 젊은이를 데리고 소크라테스는 바다로 갔다.
몇 차례고 물 속에 잠근 후, 물었다.
무엇을 원하느냐?
공기요. 숨을 쉬고 싶습니다.
그만큼 지혜를 원하면 얻을 수 있으리라.

우리의 기도를 기다리고 계시는 지금 기도합시다. 하나님께서는 간절히 구하는 자를 외면하지 않으십니다.


마무리하는 말

나사로처럼 가난하고 병든 것은 하나님의 심판이요 저주입니까?  한 부자처럼 윤택한 것은 하나님의 축복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오늘 성경 본문의 답은 그 답이 심판날에 있다고 말해줍니다. 현재의 고통과 영일하는 모습으로 답하지 말아야 합니다.
     죽음이란 인간에게 필연적인 사건입니다. 죽음은 공통의 운명입니다.
     -   그들은 모두 죽었습니다(22절). 부자도 거지도 모두 죽었습니다.
     - 그리고 사후 그들은 다른 세계에서 살아 있는 자신들을 발견하였습니다. 거기서 그들은 서로를 확인하게 됩니다. 서로 뒤바뀐 자신들의 처지를 발견하게 됩니다. 사후에 두 사람 사이에는 대 변혁이 일어나 있었습니다.  화려하였던 부자는 너무도 참담하였고, 현세에서 초라하기 그지없었던 나사로는 한없이 복된 자리에 앉아 있었습니다. 입장이 전혀 다르게 나타난 것입니다.
    이 비유는 하나님 나라에는 장차 위로와 심판이 있음을 일깨워주고 있습니다. 믿음과 소망으로 그날을 준비하며 사는 사람에게는 이 세상에서 받을 수 없는 위로로, 눈에 보이는 쾌락에만 빠져 본분을 망각한 자에게는 장차 올 진노를 일깨워주고 있습니다.

44세에 하나님 앞에 가신 Edward Payson 목사님께서 병상에서 그 누님께 보내신 글입니다.

"하나님은 내가 받은 축복을 하나씩 차례로 빼앗아 가셨습니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이 사라졌을 때, 나를 사랑하는 주님이 오셔서 그 자리를 대신 채우셨습니다. 비록 지금은 불구가 되어 움직일 수 없는 형편이지만 내 생에 있어서 그 어느 때보다 행복합니다. 죽음의 강이 내 앞에 있을지 모르지만, 그 죽음의 강이라는 것도 하나님께서 사랑하신다면 한발로 뛰어넘을 수 있는 개울일 뿐입니다."

우리 성도로 하여금 고난과 고난이 결코 절망일 수 없음을 알려줍니다.
      - 하나님 나라에서는 현세의 상황이 그대로 되풀이되지 않습니다. 이 세상에서 부요하고 호화로운 삶을 사는 사람이 곧 의로운 사람일 수 없습니다. (G. Spring, D.D.)

한 그루의 나무를 심기에 가장 좋은 때는 25년 전이었다. 다음으로 좋은 때는 오늘이다.(캐나다 한 간호원 벽에 걸린 말)

오늘 천국의 소망을 가지고 그날을 준비하는 성도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드립니다. 부자가 영원히 부요한 것이 아닌 것처럼 가난한 나사로가 영원히 가난하거나, 병들어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노하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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