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가는 말
한 형제가 있습니다. 그 형제를 만날 수 있는 길은 스케이트를 하는 일입니다.
저는 스케이트를 배우기로 했습니다.
한 30분 스케이트를 타고 얼마나 많은 땀을 흘렸는지 모릅니다.
땅에서 가는 방법과 얼음 위에서 가는 방법이 다릅니다.
수영을 좀 할 줄 아는데요.
물에서 가는 방법과 또 다릅니다.
물에서 가고 방법을 알고 싶으신 분은 물에서 가는 방법을 배우셔야 합니다.
얼음 위에서 가고 싶으신 분은 얼음 위로 가는 방법을 배우셔야 합니다.
땅위로 걷듯이 자꾸 얼음 위를 가려 하면, 진보도 힘들거니와 낭패를 당하기 쉽습니다.
믿음의 생활, 신앙생활이란 세상 생활과 다릅니다.
신앙생활을 잘 하는 방법은 세상에서 살던 사고를 극복해야 합니다.
세상을 잘 살아왔기 때문에 그 사고만으로 신앙생활도 잘할 수 있을 것이다 생각한다면, 나는 땅에서 잘 달리는 사람이니까 얼음 위에서도 잘 갈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만큼이나 무모한 것입니다.
세상적인 사고로 하나님 나라를 다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은 오만입니다.
예수님께서 밤에 찾아온 니고데모에게 거듭나라 하셨어요. 니고데모는 세상에서 잘 나가던 알만큼 아는 분인데 그에게 주께서 하신 말씀을 새겨 볼 필요가 있습니다.
위로부터 거듭나지 아니하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
하셨습니다.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성령으로 난 것은 영이니
내가 거듭나야 하겠다 하는 말을 기이히 여기지 말라
하셨습니다.
오늘 저는 이 말씀을 준비하면서 심적 부담이 있었습니다. 세상적인 사고로 이해할 수 없는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저는 주님의 종놈이니 주인의 말씀을 여러분에게 전할 수밖에 없습니다. 여러분 가운데 이 말씀이 이해가 되지 않는 분이 있더라도 성경 말씀이니까 성경적인 사고로 받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예수님은 원래 하나님의 나라에서 오신 왕이십니다.
예수님은 유대 땅에 태어나셨지만, 원래 국적은 천국 분이십니다.
예수님의 사명은 이 세상에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하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 메시지의 주제는 하나님 나라입니다.
그런데 보통 사람들은 땅의 나라에서 살고 있습니다. 보통 사람들의 꿈은 땅에서 이상적인 복지 국가를 이루고, 시집가고 장가가고 집 짓고, 잘 살고, 잘 먹고, 잘입고, 출세하고, 건강하기를 원하는 겁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과 사람은 세계관이 다르지요. 관심사도 다릅니다.
우리 신앙인들은 인간 사회에 살면서도 하나님 나라의 거룩함과 고상함을 추구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바리새인들이 하나님 나라에 관하여 묻는 이 물음은 우리에게도 관심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어느 때에 임하나이까"
우리는 예수님께 하나님 나라에 관한 설명을 듣기 원합니다(20-21절). 그리고 제자들에게 가르쳐 주신 하나님 나라 왕의 재림에 대하여, 그리고 그 나라 백성들인 우리가 그 나라를 위해 무엇을 준비해야할 것인지 알기를 원합니다.(22-37절)
1. 하나님의 나라
왜 바리새인들이 예수님께 '하나님의 나라가 어느 때에 임하나이까' 물었을까요?
메시야의 나라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관심사이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그 나라를 학수고대하였습니다. 그들은 로마라는 이방 나라가 그들을 통치하는 것을 너무 싫어했습니다. 메시야의 나라가 이스라엘에 임하여 그 백성을 해방시켜줄 수 있기를 갈망했습니다. 이런 연유로 바리새인들은 예수님께 나아와 하나님의 나라가 어느 때에 임하느냐고 물었던 것입니다. 그들은 로마 아닌 메시야가 다스리는 정권 안에서 하나님의 나라를 찾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주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묻는 것을 너희는 알지 못한다'
'그것이 임할 것이로되 너희는 그것의 임함을 알지 못한다'
'볼 수 있게 임하지 않는다'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요지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 왕국은 외적으로 보이는 왕국이 아닙니다. 영적인 왕국이지요.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나라는 볼 수 있게 임하는 것이 아니라고 말씀하십니다. 로마가 아닌 어떤 정권도 하나님의 나라일 수 없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눈으로 볼 수 있는 세상의 또 다른 정권이 아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어떤 특정 지역에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대신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 말씀하였습니다.
(20)바리새인들이 하나님의 나라가 어느 때에 임하나이까 묻거늘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하나님의 나라는 볼 수 있게 임하는 것이 아니요 [21)또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도 못하리니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
그러면 예수님께서 말씀하고 계시는 하나님의 나라란 무엇일까요? 영적인 나라입니다. 하나님을 왕으로 섬기고, 하나님의 통치를 그 마음에 영접한 사람이 누릴 수 있는 나라입니다. 사람의 마음속에 이루어지는 나라입니다. 그의 마음속에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함으로 하나님의 '의(義)와 평강(平康)과 희락(喜樂)'이 이루어졌다면, 그의 내면에는 이미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진 것입니다.
그러나 내가 하나님의 성령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내는 것이면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임하였느니라(마 12:28)
그러나 그 날에 이르러 저희가 신랑을 빼앗기리니 그 날에는 금식할 것이니라(눅 5:35)
(롬14:17)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서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righteousness and peace and joy in the Holy Spirit.)
메튜 헨리는 이 부분에서 이렇게 주석을 썼습니다.
"너희는 그 나라가 언제 임할 것인가를 물으면서도 너희 가운데서 이미 그 나라가 시작된 것을 알지 못한다. 그것은 비록 너희 마음 안에서는 아니라 할지라도 너희 민족 안에서 시작되고 있는 것이다."
[적용]
예수님의 이 말씀은 우리에게 도전을 줍니다.
내 안에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져야 한다는 거죠. 지금 내 안에 하나님 나라가 이루어지지 않았다 할지라도 성도 안에는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여 있습니다. 지금 내가 잘 나가서 건강하고, 넉넉하고, 사업 잘되고, 자녀 잘되면 하나님 나라가 이루어진 것으로 만족하지 않습니까? 그렇지 못하면 그렇게 되는 것을 기다리며 그날을 유대인들이 메시야 갈망하듯 기다리는 것은 아닙니까?
하나님 나라는 이런 외형과는 먼 개념입니다. 세상에서 잘 살아도 하나님 나라와 다릅니다. 부자가 육신의 장막이 무너졌을 때, 자신은 지옥에서 발견하였습니다. 여기 저기 하나님 나라를 찾아다닐 일도 아닙니다. 카나다가 복지 시설이 비교적 잘 된 나라이지만 역시 하나님 나라는 아닙니다.
당신의 마음에는 하나님의 '의(義)와 평강(平康)과 희락(喜樂)'이 이루어져 있습니까?
a.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하나님의 나라는 바리새인들의 생각과 어떻게 다릅니까(요18:36)
b. 하나님 나라가 오늘날 내 안에서 이루어진 것을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롬14:17)
참고성구
이 열왕의 때에 하늘의 하나님이 한 나라를 세우시리니 이것은 영원히 망하지도 아니할 것이요 그 국권이 다른 백성에게로 돌아가지도 아니할 것이요 도리어 이 모든 나라를 쳐서 멸하고 영원히 설 것이라(단 2:44)
그가 내게 일러 가로되 여호와께서 스룹바벨에게 하신 말씀이 이러하니라 만군의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이는 힘으로 되지 아니하며 능으로 되지 아니하고 오직 나의 신으로 되느니라(슥 4:6)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라 만일 내 나라가 이 세상에 속한 것이었더면 내 종들이 싸워 나로 유대인들에게 넘기우지 않게 하였으리라 이제 내 나라는 여기에 속한 것이 아니니라(요 18:36)
2. 다시 오시는 왕
하나님의 나라가 왕국에 초점이 맞추어졌다면, 그리스도의 재림은 그 왕에게 초점이 있습니다. 그 왕이 우리 가운데 육신을 입고 오셔서 십자가를 지심으로 우리 중에 구원의 길을 열어주셨습니다. 이분이 바로 2천년 전에 구원의 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리스도는 이미(already) 우리 가운데 오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지금 부활, 승천하셔서 하나님 우편에서 우리 성도를 다스리고 계십니다. 우리 성도들은 성령의 전이되어서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통치를 받고 살아갑니다. 하지만 아직 우리는 이 세상에서 불완전한 육신을 입고 있으며, 공중의 권세잡은 자가 다스리는 땅에 있습니다. 아직(yet) 온전히 영광의 주와 같이 부활의 몸을 입고 있지 못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를 마음에 영접하고 있다고 하지만, 우리 안에 이루어진 하나님의 나라는 우리가 주님의 품에서 누릴 하나님의 나라와 비교할 때, 불완전하다고 할 수밖에 없습니다. 중국 사람이 캐나다 시민권을 얻었지만, 아직 중국에 살고 있는 모습과 같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분이 구름을 타고 오시는 재림의 주를 기다리는 것입니다. 심판의 주로 다시 오심을 기다리는 것입니다.
[22)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때가 이르리니 너희가 인자의 날 하루를 보고자 하되 보지 못하리라[23)사람이 너희에게 말하되 보라 저기 있다 보라 여기 있다 하리라 그러나 너희는 가지도 말고 좇지도 말라.[24)번개가 하늘 아래 이편에서 번뜻하여 하늘 아래 저편까지 비췸같이 인자도 자기 날에 그러하리라"
예수 그리스도의 날(the days of the Son of Man), 곧 재림의 그 날(His day)은 성경의 많은 곳에 약속되어 있습니다.
너희도 길이 참고 마음을 굳게 하라 주의 강림이 가까우니라(약 5:8)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가 말하였느니라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후에 인자가 권능의 우편에 앉은 것과 하늘 구름을 타고 오는 것을 너희가 보리라 (마 26:64)
그 때에 인자의 징조가 하늘에서 보이겠고 그 때에 땅의 모든 족속들이 통곡하며 그들이 인자가 구름을 타고 능력과 큰 영광으로 오는 것을 보리라(마 24:30)
언젠가! 어디엔가! 재림의 주는 임하십니다.
[그] parousiva(parousia)
[영] Parousia, Coming 부활의 주 예수 그리스도께 구원을 완성하시기 위해 마지막날에 지상에 다시 오시는 일.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실 일은 히 9:28,요 14:3등에 명언되어 있고, 성서전체에 있어서 32절마다 1절꼴로 언급되어 있다. 최초의 오심에 대해 보여져있는 성구와 비교해 보면, 재림은 8배나 더 되는 비율로 보여져 있다. 재림에 대해 언급되어있는 성구는, 216장에 걸쳐 모두 318회나 되는데, 그 중에 한권 전체로 취급되어 있는 데살로니가 전후서, 혹은 한 장 전체로 교시되어 있는 마태복음 24장, 마가복음 13장, 누가복음21장 등도 있다.그리스도의 재림은 구약의 선지자들의 메시지의 주제로서, 특히 그리스도 재림에 관하여 두가지 일이 분명히 되어 있다.
그날을 기다리며 사는 사람은 어떠한 삶을 영위해야 할까요?
[26)노아의 때에 된 것과 같이 인자의 때에도 그러하리라[27)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더니 홍수가 나서 저희를 다 멸하였으며 [28)또 롯의 때와 같으리니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사고 팔고 심고 집을 짓더니"[29)롯이 소돔에서 나가던 날에 하늘로서 불과 유황이 비오듯 하여 저희를 멸하였느니라"[30)인자의 나타나는 날에도 이러하리라 "
주께서 재림의 주로 오실 때, 그 전에 고난이 있을 것입니다.
재림 전의 세상 모습은 노아의 때와 롯의 때와 같습니다. 세속적인 신앙과 불신앙적인 삶에 빠져 살아갑니다. 하나님의 살아 계심을 잊어버리고 종말을 염두에 두지 않고 삽니다.
인자는 그날에 오십니다. 우리는 그날을 두려워하고 주님 보시기에 합당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3. 분리되는 백성
하나님의 나라가 있습니다.
그 나라의 왕이 계십니다.
이제 하나님께서는 그 백성을 부르십니다.
[31)그 날에 만일 사람이 지붕 위에 있고 그 세간이 집안에 있으면 그것을 가지러 내려오지 말 것이요 밭에 있는 자도 이와 같이 뒤로 돌이키지 말 것이니라.[33)무릇 자기 목숨을 보존하고자 하는 자는 잃을 것이요 잃는 자는 살리리라"
재림의 때까지 이 세상은 인간 생활의 모든 분야에서 하나님의 공평하심이 계속 됩니다. 준비 기간입니다. 선인에게나 악인에게 비와 햇빛이 공평하게 주어집니다.
하지만 그날은 지나가고 재림하시는 주님을 맞이하게 됩니다.
[34)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 밤에 두 남자가 한 자리에 누워 있으매 하나는 데려감을 당하고 하나는 버려 둠을 당할 것이요"[35)두 여자가 함께 매를 갈고 있으매 하나는 데려감을 당하고 하나는 버려 둠을 당할 것이니라 [37)저희가 대답하여 가로되 주여 어디오니이까 가라사대 주검 있는 곳에는 독수리가 모이느니라 하시니라
주님께서는 그날에 분리될 것을 말씀하십니다. 부부간에도, 일터에서도 분리가 있습니다. 인자의 날이 오면, 구원받을 자는 그가 시간과 장소에 관계없이 마지막 날에 들림을 받게 됩니다.
반면에 버림받는 자들은 세상에 소망을 두고 살아왔기에 마지막 날 멸망 받게 됩니다. 그 날에는 의인과 악인이 확연히 구분됩니다. 이러한 심판은 재림의 날에 사람들의 믿음을 보시고 결정하십니다.
주님의 마음은 당연히 우리가 들림을 받기 원하시지요. 독수리가 모이는 주검의 장소를 피합시다.
오늘이 그날이라면, 천국에 갈 수 있겠습니까?
(노하덕목사작성)
No comments:
Post a Comment